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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해변을 사랑한 드미와 바르다 본문

영화일기

해변을 사랑한 드미와 바르다

Hulot 2010. 9. 13. 02:11
1.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드미의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은 1992년 가을무렵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의 코아 아트홀에서 <쉘부르의 우산>이 재개봉을 했었다.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나면서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쉘부르의 우산>이 한국에서 재개봉한 것도 그런 일환이었다. 한국에서의 재개봉 또한 기회였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의 상영은 1991년에 자크 드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영화를 재평가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기도 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연인들이 있었다. 드믄 드믄 올드팬들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나 또한 끼어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먹먹한 마음에 대학로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가끔은 영화보다 그 때 종로의 거리들이 더 떠오를 때가 있다. 

2.
2005년에 파리에 잠시 머물면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하는 자크 드미의 회고전을 위해 다게레 거리에 있는 영화사 시네 타마리스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시네 타마리스는 드미의 부인이자 영화감독인 아녜스 바르다가 운영하는 영화제작사이다. 시네 타마리스의 맞은 켠 건물에는 그녀의 영화 비디오테이프와 DVD를 판매하는 상점이 있었는데, 그 가게 앞의 진열장에는 그녀의 <방랑자>에서 산드린 보네르가 입었던 가죽 재킷과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3.
시네 타마리스를 방문한 얼마 후, 알고 지내던 후배가 파리를 찾아왔다. 영화를 좋아하던 후배였고, 파리를 이틀간 여행하고 곧바로 런던으로 간다고 했다. 그해 겨울에 파리에서는 작은 규모이지만 자크 드미의 엑스포제가 '퐁 데 자르'근처의 '갤러리 쉐레'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후배와 그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겨울 파리가 대부분 그러하듯 그 때에 비가 주룩 내리고 있었다. 후배와 '퐁 생 미셸' 근처에서 만나 무작정 센느강변을 따라 걸으며 갤러리를 찾아갔다. 들어가는 입구에 <쉘부르의 우산>에 나오는 공간들의 다양한 색의 벽지가 채색되어 있고, 드미의 해맑게 웃는 사진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갤러리의 오른편에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고 엽서들과 사진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갤러리 안에는 꼬마 아이를 데려온 숙녀분과 호기심에 사진을 쳐다보는 몇 몇의 사람들이 있었다. 




<당나귀 공주>에서 델핀 세리그의 분홍색의 요정 복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정말 예뻤다. 자크 드미가 <로슈포르의 숙녀들>에서 카트린 드뇌브의 춤 장면의 연출을 지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자크 드미의 동작이 카트린의 그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일 정도였다. 그 사진의 왼편에는 모든 사람들이 자크 드미의 영화를 '유아적'이고 '친미적'이라 비난했던, 그래서 괴롭고 고독한 삶을 살았을때 그의 평생의 충실한 동반자이자 그의 영화적 활동을 지원해주었던 야네스 바르다가 카메라를 들고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고다르와 카리나의 결혼식날 찍었던 사진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자크 드미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대부분은 해변과 벌거벗은 남녀들. 이 그림은 나중에 <낭트의 자코>의 서두 부분에도 인용된다. 그리고, 바르다의 해변.




4.
아녜스 바르다는 90년대에 들어서 자신의 영화 뿐 아니라, 판권이 나뉘어져 있던 드미의 영화들 판권을 구매했고, 또 일부 작품을 복원하기도 했다. 지금, 드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런 아녜스 바르다의 노력 덕분이다. 게다가 그녀는 <로슈포르 25년 후>, <자크 드미의 세계>라는 드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두 편 찍었고, <낭트의 자코>라는 자크 드미의 유년기를 다룬 극영화, 그리고 최근작 <바르다의 해변>에서 자크 드미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다뤘다. 이는 단지 자크 드미가 그녀의 남편이라서만은 아니다. 아마도 그 근원에는 자크 드미의 영화가 프랑스 본국에서 지나칠 정도로 저 평가 받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장 피에르 멜빌이 범죄장르 영화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자크 드미는 뮤지컬 장르에서 독특한 성과를 이뤄냈는데, 이런 영화들은 흔히 그렇듯이 할리우드 영화를 모방한 작품으로 평가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할리우드 영화의 카피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자크 드미의 영화를 빈센트 미넬리, 혹은 스탠리 도넨의 뮤지컬 영화와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과 비교하자면 그렇다. 사실, 영화의 나라라는 프랑스에서도 자국에서 소외시킨 감독들이 꽤 많다. 멜빌, 자크 베케르, 자크 드미 등, 이런 감독들의 명단을 보자면 대부분 장르성 영화들이다. 


5.
후배가 떠났고, 2월 말, 파리에서 돌아오기 이틀 전, 델핀 세리그가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를 찾아갔었다. 그 날은 파리에서 지낸 시간 중에서 정말 가장 추운 날이었다.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샤를르 보들레르, 장 폴 사르트르, 사무엘 베케트, 앙리 랑글루아, 진 세버그, 그리고 델핀 세리그의 무덤이 있다. 한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사실 델핀 세리그의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추운 날이었다. 포기하고 몽파르나스 묘지를 나오려 하는데, 마침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시다 이런 날에 동양인 한 명이 왜 묘지를 돌아다니고 있는지 궁금했는지 날 보곤 말을 먼저 건넸다.  
 
- 뭘 찾으시오, 무슈?
- 아, 델핀 세리그의 무덤이요
- 응? 누구라구? 여긴 사르트르, 보들레르의 무덤이 있지. 그건 봤나? 근데, 누굴 찾는다구?
- 델핀 세리그요. 알랭 레네의 영화에 나오는?
- 아, 델핀 세리그.. 난 여기 무덤을 다 알고 있다우. 델핀 세리그라.. 날 따라오게 무슈. 저쪽 끝쪽에 있어..저기 보이나. .묘비 뒤의 흰색.. 거기가 델핀 세리그의 묘비라우.
- 고맙습니다.
 




그렇게 할머니 덕분에 델핀 세리그의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몽파르나스 묘지 구석, 거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곳에, 다른 묘비들에 놓인 수다한 꽃다발과 달리 아주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듯이 그녀의 무덤이 있었다. 사랑하고 찬미하던 사람의 무덤을 찾는 일은 가슴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음울한 파리의 날씨가 그 순간만큼은 다정하게 느껴졌었다.  


* 2005년. 벌써 5년전의 일이다. '시네바캉스'에서 <방랑자>를 상영하면서 그 해 겨울이 떠올랐다. 올, 10월에는 '아네스 바르다 회고전'을 할 계획이다. 대부분의 영화를 필름으로 보았지만(그녀의 소소한 단편들까지), 그래도 그녀의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상영할 생각을 하니 기다려진다.

* '시네바캉스'때 예전 글을 다시 수정해서 썼다가 계속 비공개로 두었던 글이다. 비공개들을 아주 소수만이 볼 수 있는 그런 장치가 있었으면. 그러다 샤브롤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문득 바르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로메르를 추모하던 샤브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 오래전이 아니거늘, 그 또한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에는 알랭 코르노가 사망했는데, 올 해는 특별히 프랑스 영화감독들의 사망 소식이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