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CINEMATHEQUE DE M. HULOT

[리뷰] 죽음의무도 본문

상상의 영화관

[리뷰] 죽음의무도

Hulot 2012. 4. 21. 15:19

<캐슬 오브 블러드 Castle of Blood>
: 죽음의 무도

 

 

‘죽음의 무도’라는 책에서 스티븐 킹은 공포물이 진정으로 어떤 춤, 움직이며 리듬을 타는 탐색이 된다고 썼다. 공포물은 문명화된 방들을 그냥 춤추며 통과해 지나갈 뿐이며, 다른 장소를 탐색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잘 만든 공포이야기는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한가운데로 가는 길에서 춤을 추면서 우리 자신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믿었던 방의 비밀의 문을 발견하도록 한다. 스티븐 킹의 공포에 관한 생각은 안토니오 마르게리티 Antonio Margheriti 의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영화의 원제는 스티븐 킹의 책의 제목과 동일한 ‘Danza Macabra’ 즉, ‘죽음의 무도’이다.

 

 

한여자가 앞을 보고있다 그리고 뒤에서 다른여자가 앞에 여자를 응시하고있다

 

 

어둠이 자욱한 런던의 거리. 마차가 도착하고 한 남자가 술집에 들어선다. 테이블에 앉아 큰 소리로 자작의 시를 낭독하는 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유명한 소설가 에드가 알렌 포우이다. 타임지의 기자인 앨런 포스터가 단독으로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았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포우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자신이 실재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앨런은 의문을 제기한다. 삶은 죽음과 함께 무덤에서 끝난다며, 포우의 소설에서처럼 죽은 자가 삶의 세계로 귀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 그들의 말을 옆에서 경청하던 포우의 친구 블랙우드 백작은 앨런에게 은밀한 제안을 내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귀신 들린 성이 있는데 그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라는 것이다. 오늘 밤이 바로 사망자의 밤으로, 사망자가 되살아나 과거의 참극을 반복하는 밤이기 때문이다. 앨런은 주저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수습할 수 없는 법이다. 그는 유령저택에 도착하고, 거기서 과거에 일어난 참극을 유령들과 함께 체험한다.

 

안토니오 마르게리티는 마리오 바바처럼 일종의 직공감독으로, SF, 호러, 서부극, 형사 드라마, 전쟁 스펙터클, 액션 코미디, 서스펜스 등의 다양한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만들었다. 영화의 작품 수준도 천차만별인데, <캐슬 오브 블러드>는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일종의 여정에서 시작한다. 앨런은 런던에 도착한 이방인이다. 게다가 그는 저택에 호기롭게 들어선다. 여정이란 경계선의 개념을 동반하는데, 근본적으로는 금지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의 첫 부분이 보여주는 바이다. 그가 저택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꽤나 길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외부에서 내부로, 이성에서 광기의 상태로의 이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저택에서 과거가 반복되는 장면에서 나온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유령들이 하나 둘 씩 앨런의 눈앞에 등장해 과거의 참극을 연기한다.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기괴한 시각성이 이런 출현과 사라짐의 순간을 흥미롭게 포착한다. 이런 식이다. 앨런은 엘리자베스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는데 그 여인은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에게 살해당하고, 앨런은 곧바로 그를 뒤쫓지만 이들은 사라져버린다. 이윽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인이 다시 등장한다.

 

밤마다 저택에 출현해 죽음에 이른 비극을 재연하는 유령들, 그들이 벌이는 파티는 스티븐 킹이 지적한 죽음의 무도를 떠올리게 한다. 움직이며 리듬을 타는 다른 장소, 즉 비밀의 문으로의 탐색이 요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탐색은 영화의 본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유령들은 그 곳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무언가를 가시화한다. 보이는 세계에 부재하는 사건을 드러내고, 인물을 부재하는 곳으로 끌어들이는 것. 이것이야 말로 영화에서 죽음의 무도가 보여주는 진실이다. (김성욱)

 

* 전주국제영화제서 '고전영화의 파멸'이라는 섹션에서 상영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