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 기뻤던 것은 카우리스마키의 '어둠은 걷히고'를 보러 많은 관객들이 왔었던 일이다. 다른 영화들도 그러하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영화의 운명이기에. 이 영화의 인물들은 그와 비슷한 운명에 처해있다. 실직한 이들은 그들을 고용해줄 사업자를 기다린다. 그들은 기다려진다. 하지만, 이들은 방향을 바꾸어 다른 이들에게 기다려지길 선택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카우리스마키의 인물들은 새롭게 오픈하는 '노동'이라는 음식점에서 찾아와줄 사람들을 기다린다. 대체로 그들은 전에는 떠났던 이들이다. 그들은 이제 음식을 맛볼 이들을 기다리기로 선택한다. 우리는 기다려지는 자들을 보게된다. 하나 둘씩, 여덟 명의 사람들. 아마도 그건 책임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음식을 맛본다는 것. 꽤나 오즈적인 주제인 미각은 이 영화에서 사실 표면적으로는 큰 관심을 끌 만한 주제가 아닌듯 하지만 사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외부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그 전의 카우리마키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유토피아를 향해 떠나던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여인들이 마시는 트로피칼 음료의 청량함의 블루가 있다. 그들은 낙원으로의 탈주대신에 레스토랑을 재건한다. 켄 로치의 영화가 건축적인 구성을 했다면 여기서 카우리스마키는 보다 회화적이다. 그리하여 엔딩은 결정이자 자세이다. 그들은 여기서 어떻게든 살기로 한다. 그래,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속적인 전투가 되어야하기에. 어떤 미래가 그들에게 도래할 것인지 기약할 수 없기에. 그들은 그럼에도 무언가를 빼앗기지만 아무것도 스스로 버리지 않으려 한다. 아나크로니즘적인, 꽤나 무뚝뚝한 반격의 시도. 2010년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와 같은 이유들이 여기에 있다. 기다려지던 영화관의 기억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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