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식민지 치하의 조선에서는 '시적 리얼리즘' 혹은 '사회적 판타지'라 명명된 1930년대 프랑스 영화들이 대거 수입되어 관객들의 사랑을 얻었다. 자크 페데나 마르셀 카르네의 영화, 줄리앙 뒤비비에의 <망향>(1936), <무도회의 수첩>(1937)과 같은 작품들이 특히 대중적 인기를 얻었는데, 가령 작가인 김남천은 <망향>(첫 개봉 제목은 <페페 르 모코>이었지만, 전후에 재개봉할 때 <망향>이란 제목으로 바뀌었다)을 본 후의 소감을 소설에서 이런 식으로 기술한다. “어떤 날 오후, 봄이라지만, 아직도 치위가 완전히 대기 속에서 가시어 버리지 않은 날, 나는 영화 상설관에서 <페페 르 모코>를 구경하고 일곱 시경에 거리에 나섰다. 저녁을 먹어야 할 끼니때가 이미 지났으나, 곧 뻐스에 시달리면서 집으로 향할 생각을 먹지 않고, 어데 그늘진 거리나 거닐면서 지금 보고 나오는 토키가 주는 아름다운 흥분을, 고지낙하니 향락하고 싶어서, 나는 발을 뒷골목으로 돌려놓았다. 서울의 빈약한 거리를 걸으면서도, 나의 상념의 촉수는 ‘카즈바’의 소란하고 수상스러운 세계를 헤매고 있었다. <페페 르 모코>가 소프트의 뒷전을 추켜서 머리에 올려놓고, 줄이 반뜻한 양복에 색 구두를 신고, 목에는 명주 수건을 얌전히 둘러 감고서, ‘카즈바’의, 소굴을 탈출하야 계집을 찾아 부두로 향하던 그림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필름 누아르라는 표현은 원래 1930년대 프랑스의 시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시적 리얼리즘 영화 대부분은 파리의 노동자등의 하층계급에 의한 도시적 드라마가 주를 이루면서 인물의 파멸이나 절망을 강조한 연애, 범죄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한 범죄 소설의 전통을 계승했다. 특히 조르주 심농과 당시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들이 영감의 원천이었다. ‘시적’이란 표현에서의 이 영화의 시정은 그래서 일상적인 사물, 배경, 환경, 분위기 등에 있다. 대표적인 작가였던 마르셀 카르네와 시인 자크 프레베르는 현대 도시의 산업지역에서 길을 잃어버린 19세기 말의 낭만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기질은 회색빛 색조의 우울한 세계에 가까웠다. 그의 영화에서 선한 자들은 종종 범죄를 저지른다. 이는 반항이나 사랑과 같은 우발적 이유 때문이었고, 악인들은 추상적인 범죄자들이 아니라 사악하고 비열하며 사기꾼에 탐욕스럽기까지 하다. 불한당들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반면 실패는 언제나 선한 자들의 운명이었다. 아마도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가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들에게 어필했던 것이리라.

 

이렇듯 1930년대 프랑스 영화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일치감치 친숙했다. 사실 40대를 넘긴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마도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이들의 작품 한두 편을 시청했던 공동적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 영화의 비관주의는 인민전선의 희미한 희망이 사라진 시점의 불안한 정신사를 반영하는 것이라 말해진다. 정치적 불안정과 임박한 전쟁의 위협,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배신과 회의, 이런 식으로 모든 희망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때 개인적인 반항(때로는 거의 자살에 이르는 시도) 외에는 달리 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 몰락을 씁쓸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었다.

 

1930년대 프랑스는 격변으로 치닫던 때이다. 글로벌한 경제적 위기를 겪었고, 정치적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대중들의 열망을 사로잡고 있었다. 프랑스 영화는 당시 아방가르드에서 대중적 영화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전의 대담한 실험가들이 좌파 인민전선과 결합했지만, 이내 좌절로 끝났고 어두운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다양성과 프랑스 제작의 양질의 전통에 따르자면, 이 시기 마르셀 카르네, 르네 클레르, 줄리앙 뒤비비에, 자크 페이데르, 사샤 기트리, 마르셀 파뇰, 장 르누아르, 장 비고 등의 작가들이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게다가 사운드의 도래로 프랑스 영화가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변화를 겪던 때인데, 문화적 비관주의와 산업적인 파멸의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영화산업을 표준화시켰고 로케이션 촬영은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대신 영화제작이 스튜디오의 통제 가능한 환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30년에서 누벨바그 직전의 30년간은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로 제작편수로 보자면 일종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3,094편의 극영화가 만들어졌는데, 1930년대에 1,305편, 1940년대에 807편, 그리고 1950년대에 982편의 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고전기’라는 표현은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주의를 요한다. 가령, 이 시기를 연속성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을까? 전전과 전후로 이 시기를 구분해야 할까? 앙드레 바쟁은 이와 관련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종전의 시기가 아니라, 1941년에 프랑스 영화의 단절의 시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 시기가 비록 전쟁의 기간이긴 했지만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전전 프랑스 영화의 위대한 거장들인 장 르누아르, 르네 클레르, 줄리앙 뒤비비에 등이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연속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대적 차이와 미학적 견지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명백하게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어떤 식으로 시대를 구분하던 이 시기는 누벨바그의 도래와 비교하자면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로 불리어질만하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들(세계 경제위기, 인민전선, 2차 대전, 냉전 등)이 있었고, 영화의 중요한 기술적 혁신(사운드와 컬러의 도래)이 있었다.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작가 영화와 대중(주류)영화의 구분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전후의 젊은 비평가들은 ‘작가정책’이라는 표현으로 이 시기의 주류 영화들 가운데 ‘작가’를 구분하려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영화는 이 시기 할리우드 영화처럼 장르성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스릴러, 사극 등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있었고 배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영화의 대부분은 게다가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프랑스의 고전기가 할리우드의 고전적 규범과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학자인 지네트 뱅상도는 이 시기의 프랑스 영화를 ‘스펙터클의 예술’이라 불렀다. 이는 몇 가지 중요한 미학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 정교한 음악과 대사, 뮤지컬적인 퍼포먼스가 있다. 둘째, 섬세한 편집과 긴 카메라의 움직임이 활용되고 있었다. 가령, 줄리앙 뒤비비에, 장 르누아르, 막스 오퓔스 등의 영화는 할리우드의 보편적 리듬과 속도와 상이한 섬세한 편집과 연극적이고 뮤지컬적인 전통에서 기원한 느린 리듬의 카메라 움직임이 있었다.

 

시적 리얼리즘은 또한 대중주의적 멜로드라마, 사회적 판타지, 누아르 리얼리즘, 로맨틱한 페시미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의 다양한 표현들을 내포한 새로운 형식의 리얼리즘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서정의 시학으로 끌어올리는 시적 리얼리즘은 바쟁이 카르네의 영화를 두고 지적했듯이 특별히 인물들의 주변을 둘러싼 사물과 환경의 역할을 탐구했다. 가령, <망향>에서 장 가뱅이 마지막 밤을 보낼 때에 그의 운명적 상황과 과거를 지시하는 것은 테디베어, 자전거, 거울, 브로치, 담배들과 같은 시시한 사물들이다. <북호텔>(1938)에서 시학을 구성하는 것은 감상적인 노래들과 대사들, 독일 촬영술에 근거한 표현주의적 조명, 파리의 아름다운 환유를 제공한 노스탤직한 세트 디자인들이다. 시적 리얼리즘의 미학은 그래서 창조되고 양식화된 시각적 구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프랑스 고전기의 사멸은 이러한 시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화의 등장이라 말할 수 있다. 바쟁의 표현을 빌자면 ‘시적’인 것에서 ‘사실적’인 것으로의 변화가 전후의 프랑스 영화에서 등장한다. 시적 리얼리즘을 계승하고 넘어선 두 종류의 사실적인 장르가 있었다. 그 하나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 앙리 베르뇌유, 클로드 오탕 라라의 누아르 심리학적 드라마가 있다. 이들의 영화는 개인의 심리학에 근거한 범죄 드라마들이다. 이전의 범죄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사랑이 더 이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혼성의 상실이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자크 베케르, 줄스 다신, 장 피에르 멜빌이 창조한 황혼의 갱스터 영화들이다.

 

누벨바그의 도래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의 명백한 단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계승과 영속성의 관점에서 프랑스 고전기의 영화들은 이후의 영화들에 거대한 영향을 행사했다. 비평의 새로운 시작도 이러한 변경의 과정에서 발생했다. 가령, 바쟁의 영화비평은 점령기 프랑스 영화들의 비평에서 시작해 마르셀 카르네, 장 그레미용, 줄리앙 뒤비비에의 영화들을 세심하게 분석했다. 또한 ‘사실적인 미학을 위하여’, ‘영화적 비평을 향해서’, ‘대중을 창조하기’, ‘리얼리즘에 대하여’, ‘영화와 대중 예술’ 등의 비평적 에세이가 이 시기의 영화들에서 나왔다. 바쟁은 1943년에 쓴 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 예술은 창조 그 자체이다. 이제 영화를 재발견하자!’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이제 고전기 프랑스 영화들을 재발견하자! 이 특별전은 그 첫 시작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 이 글은 지난 2011년 겨울에 기획해 열린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때 썼던 글을 다시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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