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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오슨 웰스 백주년 회고전] 웰스 이후의 웰스 본문

영화일기

[오슨 웰스 백주년 회고전] 웰스 이후의 웰스

Hulot 2015. 5. 13. 01:16

Welles after Welles 

 

 

 

 

 

오슨 웰스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훼손하는 데 꽤 열중했던 작가다. 그는 의도적으로 몸을 부풀리고 과도한 분장을 하거나 앙각촬영으로 자신의 몸을 덩치크게 표현하려 했다. 그는 비만에도 무관심했다고 한다. <아카딘 씨>에서 그의 몸은 존재만으로도 인물들을 압도한다. <악의 손길>에서 그가 처음 등장할 때 마르린 디트리히의 놀란 표정은 잊기 힘들다. 미국의 일부 평자들은 그가 후기에 텔레비전이나 B급 영화 등의 저급한 역에 (젊은 웰스의 건장한 몸과 비교해) 예의 비만의 몸으로 출연했던 것을 한탄했다고 하는데,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만은 아닌 어떤 의도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그는 십대부터 조숙한 재능을 발휘했고,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당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도 누리지 못했던 편집권을 얻어 <시민 케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의 젊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후 60년대의 뉴웨이브 영화들처럼) 젊음을 찬양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는 젊음보다는 일찌감치 이미 노년을 연기했다. 노년의 권력과 젊음의 열정 사이에는 심각한 거리가 있고 웰스는 이를 처음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설은 제목에도 이미 나타나는데, 케인이라는 거대한 권력자와 시민이라는 차이가 이 영화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로즈버드’는 그러한 차이를 연결하는 마법의 열쇠이지만 <시민 케인>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웰스는 미국이 자신을 존중했던 것이 전적으로 젊음을 요구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라 말한 바 있다. 젊은 미국은 동어반복처럼 항상 젊음을 예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그 젊음을 지속시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웰스의 진정한 저항은 그러므로 젊음을 일찍부터 부정하거나 그것에 도전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 생각엔 젊음이라고 치기를 부리는 것보다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젊음의 저항처럼 보인다. 웰스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 그가 끊임없이 자신을 비대하고 늙은 모습으로, 혹은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젊고 잘생긴 얼굴을 가리고 의도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출연하려 했다. <심판>에서 웰스는 꽤 의식적으로 얼굴을 숨기고, 11명의 다른 캐릭터의 목소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속임수도 즐겨 했다. <오슨 웰스와 일하며>(1994)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웰스가 마술과 장난, 속임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정말 뛰어난 마술사였다.

 

 

 

말년의 걸작 <거짓과 진실>(1974)은 그런 웰스의 거짓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천재적인 그림 위조범, 즉 ‘거짓’이라는 책을 쓰고 하워드 휴즈의 가짜 자서전을 쓴 클리포드 어빙의 이야기에 웰스 자신이 전 미국인을 상대로 속임수를 썼던 <우주전쟁>의 라디오극 에피소드를 더한다. 이 영화에서 웰스는 “나 같은 사기꾼은 그러나 사실 진실을 추구합니다. 이걸 건방지게 표현하자면 예술이라 할 수 있죠. 피카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고요”라고 말한다. 그는 젊음 뒤의 노년, 혹은 눈에 보이는 세계 뒤편의 다른 책략과 연극을 영화로 다뤘던 작가다. 그가 연극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이런 다성성의 세계에 깊이를 더한다. <시민 케인>이 뛰어난 작품임에도 여전히 웰스를 <시민 케인>의 작가로만, 그의 젊은 시절과 혁명적 데뷔를 찬양하는 것에 머무는 일은 그래서 아쉬운 일이다. 이번 ‘오슨 웰스 백 주년 회고전’에서 이른바 웰스 이후의 웰스에 더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 그의 노년성이야말로 영화적 젊음의 모습이었다. 웰스에 관한 뛰어난 평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이렇다. 웰스는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제대로 발견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재발견의 대상이 되는 작가였다. 여전히 <아카딘 씨>가 대관절 뭘 말하는 영화인지(고다르는 <필름 소셜리즘>에서 아카딘 씨의 비밀 리포트에 대한 궁금증을 보여준 바 있다), <심판>이 현대영화가 새로 등장하던 60년대의 시기에 웰스의 어떤 태도를 담고 있는 작품인지, 왜 <불멸이 이야기>가 오슨 웰스의 '완벽한 영화'인지, 혹은 <심야의 종소리>가 왜 주목할 만한 작품인지를 말하는 이들은 드물다. 물론 쉽게 말하기도 어렵다. 웰스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웰스의 회고전 방문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