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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생각 본문

시네마테크 이야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생각

Hulot 2008. 10. 12. 02:06
* 충무로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필름2.0>에 실었던 글이다. 
 

지속적인 영화 상영 보존의 길 : 김성욱,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나다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인사를 한 이래로 나는 그를 몇 번 만났다. 3년 전 파리에서 그를 만나 짧게 인터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샤이오를 떠나 랑글루아 시절부터 염원했던 새로운 장소(최종적으로는 베르시로 결정됐다)로 이전하기 직전이었는데,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공간 계획과 관련해 몇 가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물론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고,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와 마찬가지로 민간에 의한 조직이지만 국가 재정 지원이 80%이고, 그럼에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점이 부러웠다. 장 프랑수아 로제는 1992년부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첫 번째로 기획했던 ‘마리오 바바 회고전’을 뜻 깊게 생각하고 있었고, 법학을 전공했던 때문이었는지 ‘폐쇄’라는 주제로 정신병원과 감옥과 관련한 기획전을 열었던 것을 또한 즐겁게 추억했다. 이번의 만남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새롭게 복원한 막스 오퓔스의 <롤랑 몽떼>(1955)의 복원판 상영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물론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현안을 더 논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일정 때문에 그런 논의는 나중을 기약해야만 했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이번에 충무로국제영화제에 참여한 건 <롤라 몽떼> 복원판 상영 때문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복원하게 됐나?
장 프랑수아 로제 일단 이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먼저 소개가 됐고, 7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도 야외에서 상영했었다. 11월부터는 파리의 두 곳 상영관에서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영화의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복원은 관장인 세르주 투비아나와의 협의 하에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사실 이 작품은 오래전부터 보지 못했던 영화다. 막스 오퓔스의 뜻대로 영화가 상영될 수 없었고 온전한 판본이 없었다. 프랑스 영화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작품이고 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작품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분은 제작자의 딸인 로렌스 브라운 베르제로, 그녀의 아버지가 제작자는 아니지만 1966년에 이 영화의 판권을 구매했었다. 그 분을 설득해 영화를 복원하게 됐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작업 중 어려움은 어떤 것이었나?
장 프랑수아 로제 작업 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했던 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로 이 영화의 여러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최대한 모아서 모든 소스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여러 시네마테크에서 가져온 프린트를 비교했다. 그 다음은 칼라 복원 문제가 있었다. LA에 있는 ‘테크니 칼라’에서 디지털 복원을 했다. 중요한 스폰서가 두 군데 있었다. ‘톰슨 재단’에서 영화 복원에 대한 기술적 지원을 받았고, ‘프랑스-미국 문화재단’이 공동으로 후원을 했다. 2년 이상이 소요됐는데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톰슨 파운데이션’은 어떤 곳인가?
장 프랑수아 로제 ‘톰슨 파운데이션’은 영화유산을 보존하고 그것의 복원에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다. LA에 테크니 칼러 복원회사를 또한 갖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톰슨에 의해 가능했다. 또한 자금적인 지원 또한 이들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영화의 기념비화, 혹은 디지털의 우려
 

<롤라 몽떼>의 복원에 참여한 곳은 정확하게 네 군데이다. 실무적인 진행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했고, 이 영화의 판권을 갖고 있던 ‘목요일 필름’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의 복원을 위한 판권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톰슨 파운데이션’은 2006년부터 <롤라 몽떼>의 복원과 관련한 작업에 지원을 했는데 주로 디지털 팀과 테크니 칼러의 복원과 관련한 진행을 했다. 또한 미국영화와 프랑스영화의 보존과 복원에 노력을 기울이는 ‘프랑스-미국 문화재단’이 참여했다. 이런 필름 복원은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를 보존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다. 90년대 이래로 서구에서는 ‘재발견의 영화’라 불리는 고전영화의 디지털 복원과 ‘복원판’의 재상영이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복원’은 종종 시네마테크의 숭고한 ‘임무’처럼 취급되고, 영화의 역사를 ‘기념비화’하는 마술적인 언어로 포장되는 문제를 낳기도 했다. 필름을 복원해 거대한 영화제에서 이벤트로 상영하는 것을 ‘숭고’하게 여기고 반면에 극장에서 그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게 되는 경향들이 있다는 것이다
 


김성욱(영화평론가) 근래에 디지털 복원이 유행처럼 많이 생기고 있다. 영화제를 통해 복원된 영화가 상영되고 DVD로 출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종종 이러한 복원은 비평적 관심보다는 영화의 ‘기념비’화를 초래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 프랑수아 로제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DVD의 경우는 또 다른 상영 방식이라 생각한다. 일단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데 있어서 상영관의 확보가 어려운 문제다. <롤라 몽떼>의 경우에는 사실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러 상영판본이 존재하면서 영화가 잘려나가는 수난을 겪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경우에는 제대로 상영되거나 본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감독의 의도대로 복원을 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시네마테크의 임무는 영화를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단순히 자료로서 창고에 정리돼 있는 것이 영화를 보존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존한다기보다는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보존하는 것, 결국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보존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김성욱(영화평론가) 한 예를 들고 싶다. 몇 년 전에 장 비고의 <라탈랑트>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 적이 있었다. 그 프린트 버전에서는 고몽영화사가 이 영화를 훼손한 것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는 짤막한 안내가 있었다. 고몽이 장 비고의 사후에 이 영화를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편집해서 상영한 것을 반성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해 초에 홍상수 감독의 추천작으로 이 영화를 다시 상영할 때에는 프린트의 앞부분에 이러한 내용이 없더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복원된 영화가 사실 결핍과 부재의 흔적을 제대로 지니지 못할 경우, 결국 이후의 관객들이 그 영화 복원의 함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좋은 화질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그래서 그런 영화의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런 복원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장 프랑수아 로제 그런 인식에 공감한다. 기술적인 면 때문에 피할 수 없지만 그러나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 영화와 관련해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복원의 과정에서도 감독이 의도한 대로의 진실성에 최대한 접근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부분을 놓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훌륭한 복원가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상영과 관련해서 디지털의 문제는 사실 더 심각하다. 갈수록 필름 프린트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괴테 인스트티튜드’를 통해 예전에는 독일영화의 16㎜ 프린트들이 유통됐었다. 이제는 필름이 아니라 모두 DVD로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 유럽의 고전영화를 필름으로 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시네마테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좋은 상태의 프린트를 찾는 것이 어렵고, DVD나 디지털 상영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것은 시네마테크의 상영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장 프랑수아 로제 시네마테크의 디지털 상영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반대의 입장이다. 그러나 가끔 보존 필름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 디지털 상영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필름이 없어지는 것이 오래된 영화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현대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자면 클로드 샤브롤의 일부 영화가 그렇다. 더 이상 좋은 상태의 35㎜ 필름이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 있다. 7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프린트가 손상됐고, 판권을 갖고 있던 회사가 샤브롤의 영화를 보존하는 데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루브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영화의 역사는 <롤라 몽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손실과 결핍, 폐허의 역사이기도 했다. 1930년대 이래로 절멸의 위기에 처했던 영화들은 그 기원의 장소인 상업극장에서 아카이브나 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의 수장고로 조금씩 이전해 갔다. 그렇지만 필름아카이브는 결코 완벽한 수장고가 아니었고 언제나 결핍의 흔적을 갖고 있다. 때문에 시네마테크는 영화박물관으로서의 새로운 기능들을 모색해야만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가 ‘영화박물관’, 즉 ‘영화의 루브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박물관이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른, 기존의 박물관으로부터의 일탈, 탈구축을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도르노가 박물관(Museun)과 사당(Mausoleum)의 발음상의 유사성에 근거해 박물관을 예술 작품의 묘지라 불렀던 그런 비판을 넘어서야만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2005년, 보다 크고 넓은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이런 오랫동안의 꿈을 부분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랑글루아는 1961년에 영화예술의 박물관이 기술의 박물관이 아니라 예술의 박물관이어야만 한다며 20세기 초의 모든 예술 경향들의 교차로서의 예술의 박물관, 시네마테크를 꿈꿨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 상영만이 아니라 기획전, 심포지엄, 교육,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공간이다. 한국에서 이런 박물관에 대한 꿈은 여전히 상상적으로 남아 있다.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입주하는 ‘복합 상영관’의 설립에 관심을 기울였고 예산의 일부를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네마테크는 박물관의 기능을 하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제도화된 박물관을 탈피해야만 한다. 영화가 제도화된 박물관의 불이 꺼진 후에 개장하는, 무의식의 밤의 역사를 담아낸 ‘밤의 박물관’이었기 때문이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박물관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요즈음 시네마테크에서는 ‘데니스 호퍼’의 전시회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전시를 하게 됐나?

장 프랑수아 로제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고, 10월에 전시회가 열릴 계획이다.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전시회였다. 데니스 호퍼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현대예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의 작품, 그의 주변 사진, 그리고 그가 수집하고 소장한 컬렉션들을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것이다. 시네마테크에서의 전시는 보통 일 년에 두 차례 치러지는데, 올해 초에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전시가 있었다. 그 전에는 샤샤 기트리에 관한 전시를 했었다. 내년에는 자크 타티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굉장히 특이한 전시가 될 것이다. 샤이오에서 2005년에 베르시로 이전하면서 전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해졌다.



김성욱(영화평론가) 베르시로 이전하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영화박물관’의 기능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전시도 열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상영관도 4개관이다. 영화도서관(BIFI)도 함께 입주해 있다. 랑글루아 시절부터 시네마테크는 박물관의 개념을 중요하게 여겼다. 시네마테크의 박물관적 기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장 프랑수아 로제 박물관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일반 박물관은 방문자들이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의 방문을 하고 끝나버리지만 시네마테크는 일반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 달리 영화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또한 시간을 보여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전과 더불어 공간을 확보하면서 그런 박물관의 이미지를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일반 방문객들이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과의 차이는 문화적인 공간으로서 작품을 만든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가 개발될 때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런 박물관과 관련한 문제가 시네마테크에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예전에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영화의 루브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장 프랑수아 로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웃음) 영화가 예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불투명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아주 노블레스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그래서 경계선이 애매하다. 어떻게 보면 그게 기회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하지만 동시에 고다르가 박물관에 대해 경멸조로 말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의 찬가>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일종의 약탈자로 묘사하는 식으로 말이다. 박물관에서 예술의 물리적 현존이 예술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장 프랑수아 로제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더 맞는 것 같다. 영화는 현존하는 예술의 분야이고 대단히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6~70년간 영화가 예술 장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네마테크가 출발했었다. 이런 의문은 사실 현대에 와서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 시네마네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래머인 장 프랑수와 로제와는 이번 인터뷰외에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에서 첫 만남 이래로, 파리에서 '김기영 감독 회고전'이 열릴 때 옮기기 전의 샤이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커피를 마시다 인사를 나눴다. 규모와 사정이 워낙 다른 탓에 뭔가 서로 교감을 나누기에는 힘든 실정이지만 결국 고민하는 문제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 공간의 법적인 지위와 관련한 제도적 문제가 요즘 관심사이기도 해서 그런 문제들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지만 다른 일정들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요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스파이크 리 회고전'을 하고 있던데, 문득 그 정도 연배급의 한국영화 작가들이 여전히 프랑스에서도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프랑세즈'라는 국적의 표현이 들어가있긴 하지만 실은 글로벌한 영화역사의 '박물관'이길 꿈꿨었다. 글로벌과 로컬리티의 충돌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건 여전히 그들의 시네마테크에 모순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또한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