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허하라!

전용관 없어 2~3년마다 이전 불가피, 필요성 인식 확산 및 각종 지원 시급

2007.02.08
글: 김민경

“잠시 영화 상식 퀴즈가 있겠습니다. 서울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있다, 없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4층에 자리한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해본 이라면 “있다!”고 자신있게 답할 것이다. 50년대 할리우드영화부터 90년대 한국영화까지 일반 영화관에선 결코 만날 수 없는 옛날영화들을 소개해주는 서울아트시네마는 명실상부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그렇다면 왜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김지운, 홍상수, 김홍준, 오승욱 감독들은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이라는 부제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마련해야 했을까. 1월31일 열린 전용관 포럼을 자발적으로 찾은 40여명의 관객이 “시네마테크는 집이 필요하다”며 고민을 나눈 건 어째서일까.

제 역할 위해 공간의 안정성 및 부대시설 확보해야

시네마테크는 일반 상업극장에서 보기 어렵지만 영화사에 의미가 깊은 영화들을 보존 및 상영하는 비영리 민간기관을 뜻한다.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에선 서울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시네마테크 부산, 대전시네마테크, JIFF테크(전주) 등 15개 단체의 연합체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지난 2002년 1월 출범했다.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에서 개관했다. 거장 감독들의 회고전 외에도 독립영화와 실험영화 후원, 청소년 대상의 교육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형태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상영관 임대료 전액과 운영비 일부를 지원한다.

문제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아슬아슬한 셋방살이를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처음 문을 열었던 아트선재센터가 2년 계약 만료 뒤 재계약 불가 통보를 보내자 서울아트시네마는 부랴부랴 새로운 셋방을 찾아 짐을 꾸려야 했다. 지금의 낙원상가에 겨우 간판을 달았지만 세입자 신세는 여전하다. 올해 3월 만료 예정이던 허리우드극장과의 계약은 다행히 1년 더 연장됐지만 안도할 수만은 없다. 시네마테크가 안정된 전용관 없이 2, 3년 단위로 방황하는 현실은 시네마테크의 위상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수정 사무국장은 “겨우 인지도를 확보할 만하면 금방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직도 아트선재센터에 가서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말한다. 건물과 장소가 지니는 의미가 무겁다는 주장이다. 현재 공간이 상영관 외의 부대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계속 지적돼왔다. 시네마테크는 스크린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로서 온전히 기능하기 위해 △ 무대 공연을 겸할 수 있는 200석 규모의 상영관 △ 25평 이상의 서적 및 영상자료실 △ 50석 규모의 소회의실 △ 필름보관실 등의 시설 모델을 제시한다. 상영 전후 관객이 관련 서적을 접할 자료실, 영화를 본 관객이 자연스레 모여 토론할 시네카페 등을 갖춰야 비로소 자생적인 영화 문화의 요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상영회 때마다 어렵게 구한 필름 프린트를 1회 상영 뒤에 반납하는 형편이지만, 상영용 필름을 지속적으로 보관, 재상영하기 위한 아카이브도 필수다. 상영 설비 역시 옛 영화들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상영해야 한다는 시네마테크의 원칙을 종종 좌절시킨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의 사정이 이렇다는 건 사실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해 무르나우 감독 회고전을 위해 독일에서 프린트를 공수받았는데, 우리 기계론 이 영화의 영사 속도인 14프레임을 제대로 재생할 수가 없었다”고 씁쓸한 심정을 토로했다.

양질의 영화문화를 위한 장소로서 인식 확산 필요

넉넉지 못한 운영비도 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6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한 예산은 3억7500만원. 서울아트시네마가 아닌 전국의 시네마테크에 할당된 금액이다. 이중 1억4천만원이 구 허리우드극장의 임대료로 쓰이고 있다. 10여편을 상영하는 회고전 한번에도 저작권료와 프린트 운송료, 자막 번역 비용 등으로 2천만~3천만원가량이 소요된다. 올해는 5천만원가량 지원금이 늘었지만 여전히 관객 수입과 타 영화제 자막 대행 사업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관객 수입에 의존하는 사정 때문에 관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발굴에 주저하게 된다. 운영 주체들이 자신의 경제적 보상을 희생해서 시네마테크를 지탱해가는 현실도 정상적인 풍경은 아니다. 시네마테크는 순수 민간기관이지만 영화의 문화적 가치를 지키고 유통시장의 대항 문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국가 및 비영리기관의 지원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위탁으로 99년 설립된 시네마테크 부산은 자체 운영비 7억원 중 5억원 이상을 시에서 지원한다. 부산시에서 부지를 매입해 건립한 전용관은 160석 규모 상영관과 서적 및 영상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자료실, 세미나실, 편집실 등을 갖췄다.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정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이 재정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포럼 데 이마주는 파리시로부터 90% 이상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독일의 코뮤날레 키노처럼 공익 목적의 사단법인이 예산의 80%를, 시가 나머지 20%를 지원하는 형태도 있다. 미국은 기부금과 기업에서 설립한 재단의 조성금이 재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필름 소사이어티 오브 링컨센터와 필름포럼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김보연 대리는 “안정적 공간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현재 독립영화 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입주할 적당할 공간을 물색 중”이라고 밝혔지만, 사업이 막 걸음을 뗀 상태라 가까운 시일에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서울아트시네마쪽은 다양한 선례를 참고하여 서울시의 지원, 기업 후원 등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당장 시네마테크의 존재 의의에 대한 공감대 형성부터 쉽지 않다. 전용관 포럼에 참석한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전국 시도에 박물관, 미술관이 하나씩은 다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예술행사에 쓰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미술관이 없다는 건 창피해하지만 시네마테크가 없다는 사실엔 놀라울 만큼 무관심하다”며 인식의 부재를 한탄했다.

결국 서울아트시네마의 새 집을 찾아주는 작업은 ‘한국사회에 시네마테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번 전용관 논의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영화산업의 눈부신 성장으로 영화가 산업으로 존중받게 되고 제도화된 영화 교육도 생겨났지만, 정작 다양한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기초적인 영화 문화는 퇴색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네마테크가 좋은 평론가와 관객, 감독을 배출하는 인큐베이터라는 인식이 확산되지 않으면 몇몇 활동가가 “독립운동 하듯이” 지속해온 시네마테크의 미래도 더이상 장담할 수 없을 거란 경고를 보낸다. 전용관 문제에서 시작된 이들의 호소는 영화진흥위원회나 문화관광부뿐만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가들부터 영화를 소비하는 일반 대중 모두를 향한 것이다. 우연히 퇴근길에 이곳에 들렀다가 인연을 맺었다는 한 관객은 “원래 영화를 잘 알진 못했다. 여길 집처럼 드나들다 1년 동안 200편 정도의 영화를 보게 됐는데, 내가 30년 동안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이곳은 내게 학교 같은 곳이다. 그런데 학교가 자기 건물도 없고, 교무실, 강당, 운동장 등 필요한 시설도 없다니 슬픈 일이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티켓 한장으로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이 영화 학교를 지켜가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를 향수하는 모든 이들의 능동적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류승완 감독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공간의 안정성이 시급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했다.
=거창한 명분 때문이 아니라 감독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1년 만에 눈에 띄는 양적 성작을 느낀 건 아니지만 관객층이 넓어지고 있다고 본다.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지난해엔 <와일드 번치>와 <분노의 주먹>을 본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비디오로 수십번 봤지만 스크린으로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더라. 그 감정의 크기하며,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가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명화를 화집에서 보고 그 그림을 봤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영화도 그렇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공간의 안정성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방문했을 때 많은 걸 느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회고전이 열렸는데 감독이 직접 큐레이팅하고 내부 디자인까지 참여하며 4개월을 준비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그런 것도 가능할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아쉬웠던 점은 ‘공인된 걸작’에만 관객이 쏠리는 현상이다. 알려져 있지 않은 걸작을 발굴하기 위해 모험을 하는 맛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봤을 땐 ‘이곳에 내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영화가 경쟁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시네마테크는 예술가들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앞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위해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지.
=관객과의 대화처럼 전용관 설립을 응원하는 행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감독들과 돈을 모아 좋은 영화를 구입, 기증하거나 각자의 영화 프린트를 상영용으로 제공하는 것도 토의 중이다.

글 : 김민경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를 몽라의 연주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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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8일 7시 30분, 세 번째로 열리는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를 개막작으로 시작합니다. 이번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지난 5년 동안의 시네마테크 활동을 되돌아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영년’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개최됩니다.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영년’을 선언하는 것은, 시네마테크가 영화를 보는 즐거움과 관객과의 교감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을 포함해 더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영화의 역사를 해석하고, 과거의 영화들을 통해 미래의 영화를 이야기하며, 또 새로운 영화의 탄생을 기원하는 소망의 피력이기도 합니다. 피아니스트 몽라의 연주와 함께 개막작 <셜록 주니어>가 상영된 뒤에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후원의 밤’ 행사도 열릴 예정입니다. 

무성영화 시대 극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셜록 주니어>는 지금 이 곳의 시네마테크 공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할 것입니다. 또, 피아니스트 몽라의 연주와 함께 상영되어 관객들이 새로운 영화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개막식 이후에는 1월 14일(월)에 한 번 더 상영됩니다.)

개막작 소개

셜록 주니어 Sherlock Jr. 1924년 45분 흑백 무성
감독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 잭 블리스톤Jack Blystone
출연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셜록 주니어/영사기사) 캐트린 맥과이어Kathryn McGuire(그의 연인) 조 키튼Joe Keaton(그녀의 아버지) 어윈 코넬리Erwin Connelly(집사/고용인) 워드 크레인Ward Crane(호색한/악당) 포드 웨스트Ford West(극장 지배인/질레트) 제인 코넬리Jane Connelly(어머니) 도리스 딘Doris Deane(극장 밖에서 돈 잃어버린 여자) 루스 홀리Ruth Holly(과자가게 여자) 큐피 모건Kewpie Morgan(공모자) 조지 데이비스George Davis(공모자) 존 패트릭John Patrick(공모자)

작은 극장의 영사기사 겸 청소부인 버스터는 셜록 홈즈 같은 명탐정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마을의 소녀 캐트린을 사랑하고 있는데, 어느 날 사랑의 라이벌인 워드가 캐트린 아버지의 시계를 훔쳐 버스터에게 누명을 씌운다. 탐정 솜씨를 발휘해보려다 오히려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린 버스터는 실의에 빠진 채 극장으로 돌아와 영사실 안에서 잠이 든다. 꿈속에서 상영중인 영화 속으로 들어가게 된 버스터는 영화 속의 탐정 셜록 주니어가 되어 진주 도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영화라는 기계장치에 대한 키튼의 매혹을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에 대한 영화. 극장에서 꿈을 꾸던 키튼의 몸이 분리되어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는 초현실적인 장면은 꿈과 유사한 영화의 특성을 드러내면서 꿈과 현실,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영화 속으로 들어간 키튼은 급격하게 점프컷 되는 배경의 변화에 따라 설원에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망망대해 위의 암초 위에 서있거나 담장 위에서 떨어지는 등,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장면들은 상황의 급전으로 인한 웃음을 유발하는 한편 시각적 환영을 창조해내는 영화 매체에 대한 키튼의 자의식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또한 영화 속 영화에서 특히 갱스터를 방불케 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나 자동차를 돛단배로 만들어버리는 장면 등은 키튼식 액션 개그의 정수를 보여준다.
극중의 영웅 셜록 주니어가 우연의 일치를 통해 위험에서 벗어나거나 지형지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는 데 비해, 현실 속의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노력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 누명을 벗게 된다는 사실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영사실 창문을 통해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영화 속 인물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키튼의 모습은, 영화를 통해 배우고 느끼고 살아감으로써 구성되는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45분에 불과한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우디 앨런을 비롯하여 영화의 자기반영성에 대해 성찰했던 많은 감독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무성영화 시대의 최고 걸작.
[2004년 ‘아크로바틱 액션 개그: 버스터 키튼 회고전 카탈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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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 소개
몽라 Live Performance of Monla
헤이리 페스티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에서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으며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성 테레민 연주자로서 일본, 프라하 등 국내외에서 활동 중이다. 프랑스 파리 에꼴 노르말 등 정통 음악학교에서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월드, 유로피언, 재즈, 뉴에이지, 라운지, 보사노바, 샹송, 블루스, 랙타임에 심지어는 트로트에 이르기까지 대안적인 뉴에이지를 한껏 그려나가고 있다. 지난해 발매된 첫 앨범 ‘꿈꾸는 아이 몽라’에 이어 곧 출시될 2집 앨범에서 영화, 사진, 미술, 전시, 무용, 인형극 등 다양한 예술문화에 대한 관심을 음악으로 표출하려 하는 젊은 ‘씨네마틱 크로스오버(Cinematic Crossover)’ 뮤지션이다.

연주의도
“초창기 무성영화 시절에는 스크린 앞에 오케스트라나 소규모 악단이 자리해서 화면에 맞춰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사는 없이 다른 음향들은 모두 있는 상태로 만들거나 혹은 음악만 집어넣는 형태로도 상영되었죠. 이번 <셜록 주니어>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부분의 절충된 실현과 함께 영화의 해석을 도울 수 있는 '음악과 함께 보는 영화'로 감상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화면에 맞춰 영화의 테마를 곳곳에 장식하며, 특별히 장면에서 대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에는 음악 또는 음향의 의도에 따라 영화의 흐름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즉흥적으로 연출될 피아노 연주,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일렉트로닉 효과, 1924년경에 개발한 고주파 합성장치로 두 개의 안테나 사이에 흐르는 미세한 전파를 이용한 독특한 악기인 테레민 등의 효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흑백 무성영화의 대표적인 감독 버스터 키튼의 비현실적 공간인 ‘꿈’을 매개체로 하여, 음악과 함께 영화 속 캐릭터들을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난 휴머니즘에 대한 시각으로 바라보시면 어떨까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특별전 여는 이두용 감독

부산국제영화제는 해마다 잊힌 한국의 옛 영화인들을 발굴하고 재평가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김기영, 이만희, 정창화, 김수용 감독, 그리고 배우 김승호 등이 이 회고전을 통해 현재의 관객과 멋진 대화를 나눠왔다. 이두용 감독은 진심으로 여기 추가하고 싶은 이름이다. 1981년 <피막>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그는 한국영화의 세계화라는 화두의 원조쯤 되며(같은 해 임권택 감독이 <만다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 1983년 <물레야 물레야>는 현재 한국 영화인들에게 어떤 상징과 같은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첫 번째 한국영화였다. 1970년대 데뷔 초의 그는 <어느 부부>(1971) 등을 통해 당대의 주류라 할 수 있었던 낡은 멜로드라마의 관습과 싸웠고, <용호대련>(1974)으로 시작된 이른바 태권 액션영화의 놀라운 활력은 홍콩과 일본의 액션영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독창성을 보여줬다. 이후 1980년대에도 한국 영화계에서 ‘임권택-송길한’이라는 감독과 작가의 파트너십에 겨룰 만한 ‘이두용-윤삼육’ 체제를 구축해 장르영화의 작가주의, 어느 한쪽으로 수렴하기 어려운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줬다. 당대 여느 감독들과 비교해도 남다른 편집 리듬의 속도감과 사실성은, 1년에 네댓 편의 영화를 양산하면서도 자신의 일관성과 장인정신을 잃지 않았던 그의 고집을 보여준다. 가장 최근에 만든 영화는 <아리랑>(2002)으로 그는 여전히 차기작을 고심하는 중이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오승욱 감독이 추천한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이 상영된다. 개봉 당시 검열로 40여분이 잘려나간 채 동시대인들에게, 그리고 후배 영화인들에게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던 이 영화는 1970년대를 마무리하는 한국영화의 중요한 성과이자 이른바 ‘한국적 하드보일드’의 걸작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2년 전 영상자료원이 발굴, 복원한 <최후의 증인>을 154분 원본 그대로 상영하는 것은 물론, 특별전 형식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인 <피막>(1980), <물레야 물레야>(1983), <뽕>(1985), <내시>(1986)를 소개한다.

-<최후의 증인>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도 예산문제도 그렇고 남다른 야심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내게는 굉장히 특별한 영화다. 1978년에 촬영을 시작해서 무려 1년 동안 찍은 영화다. 6·25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하다가 김성종 작가의 <최후의 증인>이 눈에 들어왔고 영화를 완성했다. 이제 정말 내 모든 걸 담아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거대 권력 속에서 이름없이 사라져간 민초들을 그리고 싶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물정 모르는 한 사람을 형무소에 넣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고, 법집행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비리를 저지르고 그런 치부를 다 드러내서 시대를 폭로하고 싶었다. 그렇게 6·25 역시 중요한 배경으로 쓰이긴 하지만 단순한 전투영화가 아니라 심층적인 드라마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무지하지만 착한 사람들이 권력에 마모되고 상처받는 그 광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몹시 착해서 남 뺨 한번 때리지 못하고 살아온 황바우(최불암)와 지혜(정윤희) 같은 사람을 통해 척박한 시대의 풍경 속에서 진짜 아름다운 건 무엇인지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후의 증인>은 검열에 걸려 무자비하게 삭제당하는 등 큰 고초를 겪었다.
=당시 1979년도 대종상 작품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였는데, 경쟁자 중 누군가가 청와대에 감독의 사상이 이상하다고 투고를 했다. 나를 빨갱이로 몰고 인민군을 미화한 거 아니냐고 공격한 거지. 그래서 검찰청에 불려갔다. 그 소문이 나서 제작자가 서둘러 다 자르고 나는 검찰청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최후의 증인>에서 황바우 구명운동을 하는 아내 지혜를 검사가 속여 겁탈 비슷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몇년 전 내 영화인 <경찰관>(1978)에서는 파출소장의 아들이 검사의 딸과 연인 사이인데, 검사 집에서 반대해서 파혼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장면들을 두고 “검사한테 무슨 원한 있냐?”라는 말까지 들었다. 거의 24시간 넘게 꼬박 잠도 못 자고 조사당하고 풀려나는데 기분이 정말 안 좋고 답답했다. 원작과 큰 차이는 없어서 그나마 괜찮았다. 나더러 사상이 이상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거 원작에 다 있는 거”라고 따졌던 거지. 그렇게 사람들이 무지몽매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극장개봉을 해서 가보니, 1차 편집으로 2시간53분 정도로 만든 영화를 1시간20분짜리로 만든 것 아닌가. 정말 내가 영화를 왜 하나, 하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창 젊을 때라 더 울분이 컸고 그냥 영화계를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밀고 탓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니까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다음엔 이데올로기에 대한 간섭이 좀 덜한, 편한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에 <최후의 증인>을 함께한 윤삼육 작가와 상의해서 <피막>을 한달 만에 만들었다.

-편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피막> 역시 여느 사극과 다른 독특한 미스테리 구조를 보여준다.
=이후에도 사극은 많이 만들었지만 옛날 얘기를 그냥 재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윤삼육 작가하고도 뭔가 미스테리컬한 문법을 시도해보자고 했고, 어렵지 않게 소재 택해서 시작한 작품이 <피막>이다. 내가 지금껏 60편 넘게 영화를 만들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 검열 걱정 없이 가장 편하게 만든 작품이다. 안동 하회마을에 오픈세트를 지어놓고 자연광은 물론 새벽안개도 담았고, 저녁에는 칠 줄 모르는 고스톱도 치면서(웃음) 여유를 즐겼다. 총 28일 촬영했는데 이전과 달리 다른 스탭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경직되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만든 영화가 해외영화제에 초청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윤삼육 작가와는 <피막> 외에도 <뽕> <내시> <업> 등 중요한 사극들을 함께했는데 <물레야 물레야>는 임충 작가의 시나리오다. 어떤 차이일까?
=<물레야 물레야>는 다른 작품과 달리 한림영화사에서 가지고 있던 각본으로 먼저 연출 의뢰가 온 작품이다. 그래서 계속 의견을 주고받으며 파트너를 이뤘던 작가는 윤삼육 작가가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다. 날렵하고 샤프한 맛은 없어도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고 글에서 흙 냄새가 났다. 메주덩이처럼 끈덕지고 느려서 말 한마디 동작 하나하나가 촌스럽게 짝이 없는데 그게 이상한 힘이 있었다. 필력을 자랑하려고 날씬하게 쓰는 게 아니라 그런 진득한 냄새를 풍겨서 좋아했다. <물레야 물레야>는 각본은 좋았는데 3가지 에피소드의 옴니버스영화였고 어딘지 <전설 따라 3천리> 같은 느낌이 풍겼다. 그래서 당시 김갑의 기획실장에게 굳이 3개의 이야기로 나눠 카메라로 옮기는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하고 거절했다. 어떡하면 좋겠냐고 묻기에 한 이틀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3개의 이야기를 묶어 봉건시대 속의 한 여자의 기구한 팔자 이야기로 풀고자 했다. 아무래도 <피막> 이후의 작품이다 보니 좀더 신경을 썼던 것 같고, 한국적 ‘한’과 문화의 정서를 짙게 드러내고 싶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우회로로 택한 사극 장르에 이후에는 본인이 더 빠져든 것 같아 보인다.
=사실은 <피막> 전에 <초분>(1977)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멜로드라마를 하다가 액션영화로 넘어갔는데 그것 역시도 검열문제로 고생했고, 심지어 ‘으악새 영화’라는 천대를 받다보니 액션에서 손 떼고 어쩌면 <최후의 증인>보다 앞서서 정말 제대로 된 영화를 해보자고 마음먹은 작품이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식이기도 했지만 본래 사극이라기보다 우리 근대사에 관심이 많았다. <초분>에서 보여준 샤머니즘과 미스테리의 조합, 우리 민속과 토속에 대한 관심이 <피막>에 반영됐다고 보면 된다. <초분>은 마을 박수무당이 혹세무민해서 땅을 팔게 하는데 그게 아파트 단지를 만들기 위한 뒷거래와 연결된다. 그렇게 그냥 과거 얘기로만 한정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피막>이 처음 나왔을 때도 어떤 비평가가 “무슨 사극이 저러냐”고 비판한 적도 있다. (웃음) <피막> 전에 만든 <물도리동>(1979) 역시도 그런 스타일의 연장이었다.

-<뽕>도 어두운 원작과 달리 이두용식 변형과 윤삼육의 해학이 돋보이는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에로영화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사실 원작을 보면 영화 할 맛이 안 난다. (웃음) 어둡고 칙칙하고 척박한 땅에서 사는 모습이 돼지우리 같기도 하고. 아마 시대적 영향이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아무래도 그런 점들이 나하고 잘 맞지 않았다. 일제 압제하의 모습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싫었다. <뽕> 역시도 윤삼육 작가가 구름에 달 흘러가듯이 잘 썼다. 무엇보다 해학적이고 풍류도 담으면서 요절복통하게 그려내자고 했다. 그런데 당시 그런 비슷한 제목의 에로영화들이 많다보니. (웃음)

-무엇보다 <뽕>은 당시 여느 사극과 비교해도 남다른 로케이션 촬영을 보여줬다.
=맞다. 한참 헌팅을 다니다 보쌈마을이라는 그 마을을 찾는 순간 ‘이 영화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용인 민속촌 말고는 딱히 선택할 여지가 없었는데, 거기는 전봇대도 있고 가옥 구조도 축소형이라 전체적인 배경으로 쓰기에는 좋아도 그 안에서 직접 촬영하기에는 좋지 않았다. 나는 한정된 공간에 스탭과 배우들을 몰아넣고 찍는 걸 즐겨서 그런 방식이 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경남 합천 어딘가에 20, 30호 정도가 거주하는 그런 좋은 마을이 있다고 해서 찾으러 갔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오고 차가 개울에 빠져서 차 건지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면서 나는 슬슬 산쪽으로 올라가봤는데 언덕에 딱 올라서니까 정말 무슨 솔로몬의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마을이 있었다. 차 끄집어내던 스탭들도 일을 멈추고 보더니 다 입을 쩍 벌릴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원래 세트 촬영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집수리하고 전봇대 뽑고 해서 촬영을 시작했다. 이후 영화가 개봉하고 그곳이 유명해지면서 언론사나 방송사에서 취재를 많이 갔다.

-<내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인데 아무래도 궁을 배경으로 하니까 변형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신상옥 감독의 이전 작품 <내시>(1968)도 신경이 쓰였을 것 같고.
=사실 신상옥의 감독의 작품은 못 봤다. 선입견을 가질 것 같아 일부러 안 봤는데 그 극단적인 소재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내시>는 내 영화사인 두성영화의 창립작이기도 해서 더욱 본격적인 내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남자가 살기 위해서 거세한다는 게 굉장히 강한 인상을 줬다. 궁에서의 출세가 문제가 아니고, 몹시 가난하니까 어려서 살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의 얘기가 너무 처절했다. 또 그들의 일이란 게 왕의 여자의 정조를 지키는 일인데, 아랫도리가 없는 사람들이 아랫도리를 지키는 일을 한다는 게 정말 아이러니하고 기막히는 일이다. 그만한 희비극적 소재가 없었다. 당시 홍보비까지 포함해서 5억원 정도를 썼는데 당시로서는 거의 최대 규모였다. 안성기가 가진 순박함이 영화에 잘 담겼고, 많은 사람들은 건장하고 당당한 미남자인 남궁원을 내시로 쓴 것을 많이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실제 조선시대 내시를 만나기도 했는데 거세하면 오히려 키가 커지고 체격이 커진다고 했다. 드라마를 보면 내시가 왜소하고 앵앵거리는 사람들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거다.

-지난 2005년에는 오히려 국내가 아닌 프랑스 브졸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열기도 했는데, 후배들의 추천으로 국내에서도 이런 재평가 작업이 시작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최후의 증인>은 2년 전 영상자료원의 발굴로 보게 된 건데, 말하자면 이제야 내 영화를 원본 그대로 스크린에서 보게 된 거다. 그런 현실이 슬프긴 하지만 <최후의 증인>을 중심으로 후배 감독들이 인정해준다는 사실이 기쁘다. 요즘 한국 영화계 상황이 좋지 않다고들 하는데도 이런 의미있는 일을 해준다는 생각에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게다가 영화감독들이 영화 만드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행사까지 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숙연해지기도 하면서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을 계속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글 : 주성철   사진 : 오계옥 | 200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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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욱

2007년 12월 26일, 두 시에 인사동의 '카페씬'에서 박찬욱 감독님, 최동훈 감독님이 참여한 가운데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관객회원의 밤'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2008년 1월 8일부터 2월 3일까지 개최되는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참여 감독, 배우, 평론가 들과 추천작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추천작과 상영작들에 대한 정보가 얼마 후에 카페와 사이트를 통해 소개되겠지만 기자회견도 했으니 미리 카페의 관객회원분들에게 2008년 시네마테크의 기획과 오늘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드릴까 합니다.  


2008년에 서울아트시네마는 '새로운 영년 New Year Zero'이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5년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며 새롭게 시작하려 합니다. 무엇보다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다양성 복합 상영관'의 건립에 나설 계획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울시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울시가 상영관의 장소를 제공해준다면 이 프로젝트는 좀더 빨리, 쉽게 진행되리라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시네마테크를 통해 고전명작들, 우리 시대의 중요한 작품들을 직접 배급할 계획입니다. '시네마테크 클래식'이라는 필름 라이브러리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현재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네 편의 작품, 특히나 국내에 원본으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옛날 옛적 서부에서> 등의 작품을 2008년 여름 시즌에 시네마테크를 통해 오리지널 버전으로 재배급할 계획입니다. 내년 여름 쯤에는 <아메리카>와 <서부에서>를 드디어 필름으로 극장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시네마테크의 교육적 기능을 좀더 확대할 계획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영화교육은 물론이고 올 해 진행했던 '영화사 강좌'와 같은 교육적 프로그램을 보다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네번째로, 영화제와 영상자료원, 다른 영화 단체들, 그리고 영화공동체, 시네클럽 들과의 문화적 연대를 강화해나갈 계획입니다. 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작품들이 시네마테크나 공공상영 등을 통해 좀더 다양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면 아마 한국의 영화문화는 획기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국제영화제와 다양한 단체들과 협력하고 또한 대학과 소규모의 영화공동체, 시네클럽 들의 영화 상영활동들과의 연대를 좀더 적극적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런 기획을 담아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내년 1월 8일부터 2월 3일까지 개최됩니다. 이번 영화제에는 영화 감독(박찬욱, 김지운, 김태용, 배창호, 오승욱, 이두용, 이명세,임순례, 장준환, 최동훈, 홍상수), 배우(김혜수, 류승범), 그리고 영화평론가(김영진, 정성일) 등이 참여합니다.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의 선택 목록


개막작: 셜록 주니어Sherlock Jr. 1924 버스터 키튼 - 무성영화 연주상영 by 몽라


꿈 The Dream 1990 배창호 연출- 김영진(영화평론가)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 마틴 스콜세지 - 김지운(영화감독)

우묵배미의 사랑 A Short Love Affair 1990 장선우 연출 - 김태용(영화감독)

글로리아 Gloria 1980 존 카사베츠 연출 - 김혜수(배우), 최동훈(영화감독)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1991 구스 반 산트 연출 - 류승범(배우)

순응자 Il Conformista / The Conformist 1970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연출 - 박찬욱(영화감독)

최후의 증인 The Last Witness 1980 이두용 연출 - 오승욱(영화감독)

로마 Roma 1972 페데리코 펠리니 연출 -이명세(영화감독)

집시의 시간 Time of the Gypsies 1988 에밀 쿠스트리차 연출 - 임순례(영화감독)

애니홀 Annie Hall 1977 우디 앨런 연출 - 장준환(영화감독)

수라 修羅 /Pandemonium(Shura) 1971 마츠모토 토시오 연출 - 정성일(영화평론가)

라탈랑트 L'Atalante 1934장 비고 연출 - 홍상수(영화감독)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Céline et Julie vont en bateau 1974 자크 리베트 연출 - 관객들의 선택

녹색 방 La Chambre verte 1978 프랑수아 트뤼포 연출 - 시네마테크의 선택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이러한 추천작들과 함께 두 가지 특별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벨 페라라 감독 특별전'이 열립니다. <복수의 립스틱>, <킹 뉴욕>, <악질 경찰>, <퓨너럴>, <블랙 아웃>, <R-X마스>가 상영되면서 (놀라지 마시길) 아벨 페라라 감독이 직접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해 마스터클래스와 관객들과의 대화를 할 예정입니다. 벌써부터 그와 만날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이두용 감독 특별전' 또한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늘 오승욱 감독님이 염원해 마지 않았던, 그리고 우리로서는 어렵게 세달여간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 나간 <최후의 증인>과 <피막>을 포함해 5편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물론, 이두용 감독님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눌 계획입니다.


오늘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이러한 시네마테크의 기획과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올해 관객들과 만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중 박찬욱(영화감독,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표), 최동훈(영화감독)이 참여하여 ‘친구들’로 참여하게 된 소회와 이번 영화제에 상영되는 본인들의 선택작에 대한 소개, 그리고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유지·발전 되어야하는 당위를 피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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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영화감독): 2006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는 한 해만 하고 말 줄 알았는데 기쁘다. 이 영화제를 하면서 극장에 여럿이 모여서 필름으로 영화 보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외국 유명감독들은 사무실이나 자택에 영사기를 놓고 개인 영화관을 마련해 35mm필름으로 영화를 본다고 한다. 나도 최근에는 블루레이 플레이어도 구매하는 등, 집에 시스템을 나름대로 갖추었지만, 관객들과 극장에서 필름으로 영화 보는 것의 감응을 반의 반도 재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을 함께 헤쳐가고 있는 최동훈 감독 등 동료들과 좋은 영화의 자극도 나누고 싶다. 내가 추천한 <순응자>는 코엔 형제가 영화 크랭크인 전에 언제나 스태프들과 함께 보는 영화라고 한다. 필름프린트를 소장할 수 있다면, 나도 <박쥐> 상영 전에 스태프들과 같이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김지운 감독도 <놈놈놈> 촬영 시작전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볼 수도 있을 테고. 시네마테크는 애호가의 호사취미가 아니라 현장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자극을 줄 수 있는 곳이다.
이두용 감독의 특별전을 여는 것도 매우 기쁘다. 시네마테크에서 회고전을 할 때 돌아가신 분들의 영화만 상영할 게 아니라 한국 감독들 같은 경우에는 특히 생전에 모시고 다시 보고 말씀도 나누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임권택 감독님 경우에 백 번째 작품 <천년학>을 최근에도 얘기를 많이 하지만, <짝코>나 <안개마을> 같은 예전 작품을 젊은 관객들은 잘 모르니까. 나는 몇 년째 이탈리아 영화를 계속 추천하고 있다. 요즘 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탈리아 영화와 우리 영화가 걸어온 길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업/소비 영화도 있고, 리얼리즘 시대를 거쳐 그를 벗어나며 독창적이고 새로운 영화의 궤적을 창출한 점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동훈(영화감독): ‘2007 시네바캉스 서울’ 상영작 중에 보고 싶었던 몇 편의 작품이 있었는데, 그 중에 와서 본 <졸업>은 이전에 열 몇 번을 봤으면서도 처음 본 영화 같았다.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가 그렇게 훌륭한 지 예전에는 몰랐다. 극장서 필름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새삼 깨달았다. 어제도 <아마데우스>를 DVD로 보는데, F. 머레이 에이브래험의 연기를 필름으로 보고 싶더라. 감독들이 시네마테크를 후원하는 게 아니라, 시네마테크가 감독들을 후원하는 것만 같다. 시네마테크가 없으면 감독들이 모여서 술 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웃음)
지적인 배우인 김혜수 씨는 언제나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고 싶어 했고, 마침 이번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관객들이 나보다 김혜수 씨에게 질문을 많이 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 (웃음) 후배들에게 글로리아가 갱들의 차에 총을 쏜 뒤 택시를 잡는 장면을 보여주며 이 장면이 얼마나 놀라운지 보여주고 싶다. 김혜수 씨가 총을 쏘는 장면을 찍는 것은 나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함께 <글로리아>를 선택했다.


박찬욱: 3월까지 <박쥐> 프리 프러덕션 중이라 영화제 중에 자주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참여하려 한다. 김기영 영화와 더불어 이두용 <최후의 증인>은 예전부터 걸작이라고 내가 침을 튀기며 칭찬하던 영화이다. 이번에 이두용 감독의 <해결사>가 상영되지 못하는 점은 아쉽지만. 예전에 우연히 무삭제 버전을 접하고 충격을 감출 수 없었던 작품이 바로 <최후의 증인>이다. 이제 이 작품을 대중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오승욱 감독은 이 작품을 DVD로 출시하려고 동분서주하기도 했지만, 저작권 등이 해결이 안 되어서 난망한 상태이다. 그동안 젊은이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는 게 안타깝다. 한 시대정신과 하드보일드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피막>도 대단한 영화이다. 베니스에서 수상하기도 했고.
페라라의 <복수의 립스틱> <악질경찰> 등에서 나는 큰 영향을 받았다. 스콜세지, 타란티노 등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작가가 페라라다. 이번에는 그의 걸작들 중 일부만 소개되는 것이고. 내년 라인 업 중에 할 하틀리 특별전도 있는데, 페라라처럼 초청해 외국 감독들도 직접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만들었으면 한다.

최동훈: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노라면, 대개 미국에서 이미 필름으로 봤다고 얘길 한다. 그러면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난다.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가 봤는데, 너무 부러웠다. 우리도 이런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큰 도움이 못 되어 안타깝다. 모두 어떻게 해야 제대로 추진될 지 고민하고 있지만, 재정 말고도 여러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앵벌이 같지만,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여러 기관에 역설하고 설득해야 한다.


박찬욱: (기자회견 자료집에 수록된) 배창호 감독님의 말씀에 공감한다. DVD는 화집일 뿐이다. 영화가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지만, 영화도 실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는 이 실물들을 볼 수 있는 한국의 대영박물관이다.

최동훈: 흑백영화나 옛날 영화를 사람들이 안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영화를 보러가기 위해 낙원상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함께 탄 관객들과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 시네바캉스 영화제 때, 어머니와 함께 빌리 와일더의 영화를 봤는데, 보시면서 우셨다. 옛날 영화가 꼭 더 우월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예전 영화들은 추억이 겹쳐 있어 요즘 영화와 다른 체험을 하게 해 준다.


박찬욱: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예전 영화들이 더 우월하다. (웃음) 80년대만 해도 걸작이 많이 나왔지만 90년대 이후 영화가 더 나빠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냥 회고 취미가 아니고, 오락적으로도 예전 영화들은 정말 뛰어나다. 얼마 전에 런던에 갔는데, 그곳 시네마테크들은 이런 정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형 센터 내에서 BBC오케스트라가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하는 컨서트를 염과 동시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삽입된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갤러리에서 러시아 구성주의 회화를 전시하는 기획을 동시에 진행하는 식으로 운영하더라. 거기에 레스토랑 식사까지 끼운 패키지 티켓을 파는 식으로. 그렇게 까지는 못해도, 적어도 좋은 영화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사조별, 감독별, 촬영감독별 등등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며 말이다.

최동훈: 시네마테크에서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나 감독 대담이 EBS같은 공중파나 케이블에 방송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큐브릭 특별전 때 봉준호-임필성 대담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일반 시청자들도 재미있어 하고 관심을 가질 것 같다. 나는 예전에 미국 프로그램인 '뉴욕 액션 스쿨'을 자주 봤는데, 할리우드 유명 배우를 초청해 극작가 등이 대담하는 프로였다. 이를 보고 배우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이 배웠다.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이제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서막이 올랍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상영작들에 대한 자세한 사항들과 아벨 페라라 감독의 내한 일정, 이두용 감독의 특별전 일정들이 카페와 사이트를 통해 소개될 것입니다. 1월 8일 개막하는 영화제의 개막작은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로 몽라의 특별한 연주가 함께 합니다.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여러 감독들의 후원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박찬욱 감독님이 언급한 것처럼 배창호 감독님의 후원의 메시지가 인상깊게 기억됩니다. 조금 길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배창호 감독님의 메시지를 옮겨 볼까 합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벌써 3회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영화는 예술로서 가치를 갖고 있고 지나간 스승과 선배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배우고 익혀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그림을 공부하는 미술학도나 신진화가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서 회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고 작법의 비밀을 연구하고 익힘으로서 자기의 작법을 정립하듯, 영화감독이나 영화학도들에게도 그런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요즘 시대가 영화의 시대라 말하지만, 사실은 영화언어가 실종되고 의미마저 퇴색해 버리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배워야 할 곳은 시네마테크입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훌륭한 언어를 남기신 장인감독들, 작가감독들의 영화를 음미하고 연구하고 그들의 작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지금 영화가 대중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고 극장이 아닌 다른 많은 매체에서 영화를 접하지만, 원판으로 그림을 보듯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 시네마테크입니다. 지나간 영화들, 배워야 할 가치가 있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네마테크는 어려운 가운데 관객들을 위해 이런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 배창호(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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