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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일은 5월 10일입니다. 2002년에 처음에는 소격동의 아트선재 센터 지하에서 시작했지요. 필름으로 온전하게 고전영화들을 상영하겠다는 취지하에 이러한 영화들이 관객들과 충분히 만날 수 있다는 믿음, 영화가 제대로 보여지고 소개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울아트시네마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의 낙원상가 옥상으로 올라온 것은 2005년의 일입니다. 그렇게 영화의 20세기가 끝난 21세기의 초두에 문을 연 서울아트시네마가 21세기의 10년이 지난 2010년에 여덟살이 됐습니다. 이번 8년을 맞는 서울아트시네마 '개관기념영화제'에서는 지난 10년 간에 소개된, 하지만 결코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했던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이 영화들 중의 일부는 국제영화제를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된 바 있지만 아직까지도..
4월 27일부터 열리는 '러시아 전쟁영화 특별전'은 2009년에 이어 러시아 영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세 번째 기획입니다. 지난해에는 소비에트 무성영화,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 그리고 러시아 영화의 근작을 소개하는 ‘모스필름 회고전’을 개최했고, 여름에는 러시아 뮤지컬 영화들과 기념비적인 4부작 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번에는 러시아 전쟁영화들입니다. 를 제외하자면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작품들입니다. '러시아 전쟁영화'란 말 그대로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했던 20세기 전쟁들을 다룬 영화들을 말합니다. 20세기 초두의 1차 대전에서, 내전, 2차 대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세기 말의 체첸 내전까지 전쟁은 러시아 역사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1차 대전과 볼셰비키 혁명, 내전을 거쳐 탄생..
엘리아 카잔은 2003년 9월 28일 사망했다. 1975년작인 으로 사실상 영화계를 은퇴했던 경력을 고려한다면 카잔의 후기의 삶이 비교적 조용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97년에 카잔은 860페이지에 달하는 '나의 삶'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20세기를 마감하는 사건이 있었다. 1999년 3월의 아카데미 수상식, 여기서 카잔은 '평생공헌상'을 수상했다. 곧바로 수상을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다. 카잔이 50년대에 동료들을 밀고했던 것이 문제였다. 1951년 반역행위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에서 증언을 거부해 16년 동안이나 할리우드에서 추방됐던 의 아브라함 폴란스키가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아카데미..
역사가 그러하듯 영화의 역사에도 나쁜 반복이 있기 마련이다. 42년전의 파리로 되돌아가보자. 1968년 2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와 그의 동료 마리 엡스텡, 로테 아이스너, 메리 미어슨이 일방적으로 해임되는 일이 발생한다. 당시 드골 정부의 관료들이 랑글루아의 비리를 문제삼아 이들을 몰아낸 것. 시네마테크는 비영리 독립단체이지만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었다. 우리 식의 영진위인 CNC가 문제였다. 이들은 시네마테크의 운영진을 바꾸고 싶어했다. 고다르, 트뤼포, 샤브롤 등의 ‘시네마테크의 자식들’이 반대성명을 내고 시위에 참여했다. 트뤼포는 ‘시네마테크에 가지 맙시다. 랑글루아가 돌아오지 않는 한 시네마테크를 상상의 것으로 남겨둡시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샤브롤은 이 사태가 영화계를..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2월 23일 공모제 문제로 서울아트시네마가 처한 상황에 우려를 표하면서 서울아트시네마와 최대한 연대할 것을 밝히는 서한을 우리들에게 보내왔습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최근 서울아트시네마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고, 몇 차례 이 문제와 관련해 저희들과 메일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표인 코스타 가브라스와 관장인 세르주 투비아나의 서명이 담긴 서한에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수년간 모범적인 방식으로 영화예술에 가치를 부여하고 진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이는 영화예술을 보다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운영진이 주도한 것으로 특별히 서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지금의 시네필들에게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울러 ..
젊은 시절의 존 포드는 양친에게 물려받은 아일랜드인의 뜨거운 피가 자신의 몸에 흐르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비록 미국에서 출생하긴 했지만 존 포드는 대다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그러했듯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다. 스물여섯이 되던 해인 1921년에 존 포드는 오매불망하던 고국 아일랜드를 처음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과의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던 탓에 아일랜드는 정치적 긴장상태로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예술가에서 그런 사회적 격변은 종종 긍정적인 창작의 열정을 부추기곤 한다. 존 포드는 이 여행에서 민감하게 느꼈던 것들을 나중에 작품을 통해 표현할 기회를 얻게 된다. (41)와 (52), 그리고 (55)과 같은 작품은 고국 아일랜드에 바치는 찬가로 그가 이 시기에 겪었던 체..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 2010년 1월 15일, 5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선 실로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국내 내로라하는 영화감독, 배우들이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를 결성하고 바로 이날, 그 뜻 깊은 결의를 알리고 다지는 발족식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참가, 공감대를 나눈 이 자리는 영화를 꿈꾸는,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염원을 모아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온전한 영화의 집을 짓기 위해 스스로 깃발을 들고 나서 이제 시작을 외치는 추진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추운 겨울이지만 열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불탔던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 발족식 현장을 전한다. 새해가 밝음과..
서울에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필요합니다!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 취지문 시네마테크는 영화에 담긴 우리 삶을 간직하는 박물관이자 영화문화를 다음 세대와 공유하는 장소입니다. 2002년 서울에 설립된 시네마테크 전용관(서울아트시네마)은 이제는 뉴욕이나 파리, 도쿄에 가지 않더라도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영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0년대 초반부터 좋은 영화 감상을 갈망했던 영화 관객들이 전국 곳곳에서 스스로 만들었던 지역 시네마테크들의 결합체로서 순수한 관객 운동의 뜻깊은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을 거쳐 간 관객들 중에서 감독도, 배우도, 스텝도, 제작자도, 평론가도, 교수도 나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