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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슬랩스틱 개그의 쿨한 매력 - 버스터 키튼 회고전* 68혁명 당시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2003)의 한 장면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돌아다니며 영화에 몰두한 두 명의 청년 매튜(마이클 피트)와 테오(루이 가렐)는 무성영화의 전설적인 코미디 배우에 대해 설전을 벌인다. 테오는 찰리 채플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코미디 감독이라며 에서 채플린과 눈먼 소녀가 나중에 다시 만나는 장면을 예로 들고 있다. 매튜는 채플린을 깍아내린다. 그는 위대한 배우였을 뿐이라고. 키튼이야말로 20년대의 고다르이자 위대한 작가였다고 그는 말한다. 매튜는 키튼의 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채플린과 키튼, 이들 중 누가 더 위대한 무성 코미디 감독이었는가를 묻는 질문은 아마도 20년대 할리우드에서 익살희극이 등..
우리들의 환대 Our Hospitality 버스터 키튼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에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에 서커스와 마임에 기원한 무성영화의 근본적인 장르인 뷔를레스크(익살희극)의 창시자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유성영화가 도래하던 2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잃기 시작해, 30년대 이후에는 할리우드에서 완전히 망각되었다. 1933년 이후에 그는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고작 나 정도였을 뿐이다. 이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그저 미미한 조연에 불과했다. 키튼의 영화는 그러나 1950년대에 새롭게 발굴됐다. 하나의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1954년 어느 여름밤. 버스터 키튼은 아내와 함께 이 상영되는 L.A.의 코로넷 극장을 우연..
이해영 감독의 신작을 보았다. 에 대한 리뷰가 아닌 아주 '조심스런' 단상을 적고 싶다. 영화 전체를 설명할 생각은 없고, 내가 눌려버린 어떤 이미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건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으로, 아니 사실 말을 꺼내기도 힘들고 정확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이미지에 놀란 피할 수 없는 '나-관객'의 경험에 속한다. 에서 내게 그것은 과다한 물의 이미지이며, 물에 잠긴 소녀들의 끔찍한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들은 놀라울 정도로 영화의 홍보성 자료들, 사진들에서는 결코 보이거나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터 끝까지 나를 공포에, 때로는 격한 슬픔에 잠기게 한 것들이다. 영화의 초반부 주란(박보영)과 연덕(박소담)이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