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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조약돌이 쓸모 없다면 본문
줄리에타 마시나는 1920년 이탈리아의 산 지오르지오 디 피아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십대에 연기를 시작했고, 연극과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1943년 페데리코 펠리니와 결혼한 마시나는 펠리니의 영화에 출연하기 전부터 이미 여러 편의 이탈리아 영화에 출연했고, 1948년에는 <동정 없는>이라는 영화로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줄곧 마시나를 따라다녔던 이미지는 단연 <길>에서의 영원한 방랑자 젤소미나였다.
펠리니에게 그녀는 각별한 존재였다. 펠리니는 젊은 시절 미국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프레데릭 오퍼의 '해피 훌리건'이라는 멜랑콜리한 광대 주인공에 흠뻑 빠져있었다. 펠리니가 오퍼의 만화에 반하기 전에 이미 채플린은 '해피 훌리건'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해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 방랑자 찰리를 만들어냈다. 오퍼의 만화 캐릭터인 '해피 훌리건'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포르투넬로'라는 이름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고, 펠리니는 오퍼의 만화를 흉내 내어 여러 편의 삽화를 그렸다. 영화감독이 된 펠리니는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를 위한 영화를 오랫동안 구상했고, 배우로서 마시나가 자신이 매료된 광대의 페르소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순수한 영혼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펠리니는 마시나의 얼굴에서 우습고, 다소 꼴사납지만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자 광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마침내 펠리니는 <길>에서 '해피 훌리건'의 캐릭터와 방랑자 찰리의 이미지를 조합해 '여성 채플린'이라 불린 젤소미나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길>에서 젤소미나는 다소 지능이 모자라거나 좀 덜 떨어진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상사에 무지한 젤소미나는 아이, 동물, 심지어 사물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그녀는 나무 곁에 서서 자신이 마치 나뭇가지인 것처럼 흉내를 내거나, 전신주에 귀를 대고 음악소리를 듣는다. 특히 이 영화에서 젤소미나는 바다와 친화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잠파노가 젤소미나를 처음 만난 곳이 해변이었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잠파노가 상실감에 사로잡혀 흐느껴 울며 젤소미나를 떠올리는 곳 또한 해변가이다. 하지만 젤소미나의 특별함은 영혼의 순수성과 단순함에 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일 마토가 젤소미나에게 ‘조약돌의 우화’를 설명하는 순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조약돌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조약돌도 어딘가 쓸모가 있을 거야. 만약 이 조약돌이 쓸모없는 거라면, 모든 것이 다 쓸모없는 거지. 심지어 별도 그래.”라 말한다. 젤소미나는 ‘조약돌의 우화’를 받아들여 인간 야수에 가까운 잠파노의 영혼 구제라는 소명을 기꺼이 수행하려 한다.
마시나와 함께 펠리니는 네오리얼리즘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가고자 했다. 그가 탐험하고 싶었던 새로운 영토는 그러나 아직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길을 나서는 방랑자가 필요했다. 순수한 영혼의 얼굴을 지닌 줄리에타 마시나는 펠리니의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했다. 펠리니는 후에 "줄리에타 마시나는 내가 특정한 문턱을 넘어설 수 있도록 인도했다. 그녀는 내가 완벽하게 그려내지 못했던 새로운 영토를 관통하게 만들었다"라고 술회한다. 잠파노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젤소미나와는 달리 줄리에타 마시나는 펠리니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1993년 10월 31일 펠리니가 세상을 떠났고 5개월 뒤인 1994년 3월 23일 그녀가 사망했다.(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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