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모든 감정들. 질투와 불안, 기대와 염려, 자유와 쾌락, 사랑과 우정. 그 무엇보다 모든 이들이 품고 있는 열정. 물론 이를 구현하는 일은 어렵고 그만큼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아름다운 장면들은 낮은 위치의 사람들이, 한번도 무대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올려다볼 때이다.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기대와 질투. 낮은 위치의 사람들에 카메라를 두는 것. 그것이 그레미용의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그 짜릿한 비행을 맛본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공유될 수 없는 우정과 연대. 장 그레미용의 ‘창공은 당신의 것’.


영화관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나요? 

열 평 남짓한 극장 로비에 앉아 질문하던 이들에게 그가 되물었다. 창문 너머로 느릿느릿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가 다시 물었다. 영화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나요?
방금 전까지 우리는 일본 영화관의 폐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말을 이었다. “대체로 극장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이게 바로 방금 전의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의 젊고 활력 넘치는 목소리에 안경 너머 부드러운 눈빛은 여전했다.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도 했다. “영화관을 운영하면서 무엇이 가장 큰 고민이고, 어떤 일이 괴로웠나요? 활동하면서 즐거운 일이 무엇이었나요?”
2016년 2월의 어느 밤. 나고야에서 그를 만났다. 마지막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난 1월, 그가 쉰 일곱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1983년 개관 당시에는 직원으로 참여해, 1987년부터 근 삼십 년 넘게 나고야 시네마테크의 지배인으로 일했던 히라노 유지. 시네마테크라고는 하지만 이마이케역 근처 평범한 주상복합빌딩 이층에 세들어 있는 사십 석 규모의 미니시어터다.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영화란 영사기와 흰 벽만 있으면 상영 가능하다. 문제는 늘 다른 곳에 있다. 꼬박꼬박 월세를 내야 하고 상영할 영화들을 수급해야 한다. 이제는 나고야에도 서너 개의 예술영화관이 있으니 극장들이 서로 각자의 상영 밸런스를 유지해 고유의 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데뷔 감독이 유명해져서 차기작을 다른 큰 극장으로 들고 가버리면 다른 감독을 찾으면 된다고 여긴다. 다른 영화들, 다른 감독들이 여전히 있기 마련이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 극장들이 각자 상영에서 개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란 있을 리 없다. 그는 백 명이 보면 백 명 모두 만족할 만한 영화로는 작가성이 성립될리 없다고 말한다. 열명이 보면 그중 다섯 명이 ‘좋은 영화’라고 말하더라도 나머지 다섯 명이 ‘좀 그렇네’ 혹은 ‘뭐야, 이거’라고 말할 영화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야 작가가 출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관객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것도 아닌 영화관. 덧붙이는 그의 말. “그러니까, 이 일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영화도, 영화관도 그렇다고 마음만으로는 충분할 리 없다. 그도 개관 스무 해를 맞이할 무렵에는 각각 백 석, 사십 석 규모의 두 개관 모델의 시네마테크를 마련할 생각도 있었다. 세 들어 사는 단관 극장으로는 새로운 세기에 적응하기 어렵다. 최소한 두 개관의 운영으로, 각각 규모 있는 작품과 수지가 맞지 않을 마이너한 영화들을 동시에 공개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지만, 꿈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극장 구석구석의 벽면에는 상영했던 영화 포스터와 극장을 방문한 영화인들의 사인이 적힌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친필 사인도 있다. 감독이 극장을 깜짝 방문했던 일을 그는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가 쓴 글에서 사연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3년 <텐>을 개봉하던 때에, 극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키아로스타미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평일 낮 시간. 열 명도 채 안 되는 관객들이 있을 거라 우려했지만 감독은 상관없다며 극장을 찾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몇 명의 관객들에게 불쑥 나타나 ‘이 영화의 감독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마음 졸이는 순간인지 알 것이다. 미리 무대인사가 있다고 알렸다면 그래도 관객들이 더 찾아왔을 텐데, 라는 말에 키아로스타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미리 무대인사를 하겠다고 하면 손님이 더 들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오는 사람은 나를 보고 싶거나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키아로스타미 본인은 없어도 상관없이, 그저 내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인 관객들이다.”
키아로스타미가 불쑥 만났던 그날의 관객이 어떤 이들이었을까 상상해본다. 극장의 밤에는 너무 밝으면 사라질, 너무 사소해 보여 어떤 이도 밖에서는 전하지 않는 소식들이 있다. 그날의 관객들은 사진작가 필립 퍼키스가 말한 ‘크게 일을 벌렸을 때 사라지고 마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비록 어떤 말로도 인도되지 않는 침묵의 밤이긴 했지만, 히라노 유지와 이야기를 나눴던 마지막 밤의 기억이 내게는 그런 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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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예술영화관 국도예술관이 오늘 1월 31일 마지막 상영후 문을 닫는다고 한다. 건물주로부터 임대계약 연장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국에서라면 유독 흔한 일이다. 우리도 겪었던 일이다. 중구 남포동 옛 국도극장에 있던 국도예술관. 지금 그 자리는 CGV남포가 되었고, 2008년 6월 남구 유엔기념공원 근처에 있는 가람아트홀로 이전해 십년을 채우지 못하고 폐관한다. 이 또한 한국에서는 유독 흔한 일이다. 오늘 총회에 참석했던 지역 시네마테크 관계자들은 내일 극장의 마지막을 함께 할거라 한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일이 오늘이라 멀리서나마 폐관의 아쉬움을 마음으로만 보낼 뿐이다.
사람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온 열시 무렵, 사무국장에게서 동파된 수도관에서 물이 흘러 서울아트시네마 사무실 바닥이 흥건히 젖고 전기가 차단되는 일이 생겼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사무실 컴퓨터나 전기가 복구 가능한지는 내일에야 확인이 될 수 있다한다. 인터넷 예매가 오늘은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눈 온뒤의 물난리라니. 그럼에도 오늘은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 개막일이다. 어느 극장은 마지막 상영을 끝내고 사라지고 우리는 또 열세 번째 영화제의 개막을 시작한다.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보다 오랜 생을 스크린에서 살았을, 1926년의 무성영화를 만나러 사람들이 발길을 옮겨주었으면 한다.


* 아래의 글은 영상자료원의 2016 사사로운 리스트로 꼽은 열편의 영화에 대한 글이다. 무엇보다 내가 감동한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에 대한 마음의 글.


지금 말하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지극히 사적인 영화들의 목록이다. 만들고 싶은 영화, 꿈꾸는 영화들, 마음으로 두고 싶은 영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열 편의 작품은 굳이 말하자면 각별히 올해 내 마음에 다가왔던 영화들이다. 그러니 작품을 평가하거나 가치를 나열할 생각 대신에 마음이 동했던 몇 가지 이유들을 적으려 한다.

먼저, 최근에 세상을 떠난 두 작가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1993), 그리고 샹탈 아커만의 <노 홈 무비>(2015). 이 두 편의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획한 추모전의 일환으로 상영했다(사실 이들을 추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삶과 죽음을 간결하면서도 대담하게 다룬 작품들인데, 두 편 모두 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올리베이라는 영화가 예술이 아니며, 인생도 아니고, 그 둘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라 말했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영화는 늘 그 사이에 있고, 우리 또한 영화들 사이에 있다.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관객을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공간에 초대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에게 초대받을 만한 친밀한 이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들의 방문이 작별을 통고받는 자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실은 우리가 함께할 시간을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이라 생각한다.

후카다 코지의 <사요나라>(2015)와 필립 그랑드리외의 <밤임에도 불구하고>(2016)는 바라보는 것의 불안을 오래간만에 느낀 작품들이다. 후카다 코지의 영화에 대해서만 짧게 언급하자면,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대전아트시네마에서 개최한 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했다. 히라타 오리자의 안드로이드 연극을 원작으로, 이른바 ‘포스트 3.11 영화’의 계열에 자리 잡을만한 작품이다. 미래의 어느 때, 원전사고가 일어난 일본에서 해외 이주정책이 발표되고, 폴란드 난민 출신의 여인은 이제는 더 이상 떠날 곳을 찾지 못해 예정된 죽음을 기다린다. 하루하루의 소멸될 시간에서 유일한 말벗은 시를 읽어주는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창가의 소파에 누워 마지막 시간을 보내던 여인은 마침내 숨이 꺼지고, 시간이 흘러 그녀의 피부는 썩어들어 가고 한 줌의 뼈로 남게 된다. 그 모든 시간을 그녀 앞에서 꼼짝 않고 바라보던 이는 그녀의 로봇이다.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게 될 세계에서 우리의 죽음을 지켜볼 시선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파멸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매혹적인가.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특별히 나이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게 했던 영화들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민하고 자숙한다. 자기 자신으로 남는 피로감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야 할 욕구 사이에서 주저하고 용기를 내기도 한다. 주아옹 니콜라우의 <존 프롬>(2015)은 십 대들의 욕구와 환각 모험을 그리는데, 여전히 이런 경쾌한 움직임이 영화에서 가능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몹시 반가웠던 영화다. 이제 서른인 대만의 여성감독 위에이산의 <어린 부모>(2015)는 내가 꼽는 올해의 데뷔작 중의 한 편이다. 이 영화의 라스트는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안이한 결말로 쉽게 끝나지 않으면서, 얇지만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서늘한 느낌이 오래 남았던 영화다. 비극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는 한 번 더 기회가 여전히 주어진다는, 그럴 기회가 있음을 믿게 하는 영화다. 사실 이 두 편의 영화는 이 작품을 본 소수의 관객들과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나만의 리스트’로 남게 될 것이다. 미아 한센 러브의 <다가오는 것들>(2016)은 유일한 개봉작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만든 성숙한 영화라는 점에서 공감했다. 생 말로의 고요한 섬, ‘파도와 바람 소리만을 듣고자 했다’는 샤토브리앙의 무덤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이 영화가 끝난 뒤 다시 생각난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거쳐,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 여인의 고립과 분리를 마치 섬의 고립처럼, 조수간만의 물결처럼 밀려오고 떠나가게 한다. 한때 급진적인 생각을 지녔던 주인공 여인은 학생들의 파업에 반발하고, 변모하는 철학 서적 마케팅 시장의 논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급진적인 사상의 제자에게서 사고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난까지 듣는다. 나도 이제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자각! 그녀는 “난 변했다”고 말한다. 제자는 그녀에게 “그런데 세상은 그대로인 걸요. 더 나쁘기만 해요”라 반문한다. 변한 게 없는 변화의 삶이라니. 삶의 변화란 어떤 마음의 결심을 하는 것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대신 다른 곳에 가고, 다른 것들을 보고, 다른 것을 듣고,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것으로나 가능할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와 켄 로치의 두 작품은 영화라는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은판 위의 여인>(2016)에서 한 컷을 촬영하는데 몇 시간 내지 하루가 걸리는, 노출 시간이 긴 촬영을 고집하는 은판사진작가의 강박적인 작업은 이미지에 대한 어떤 기대가 없다면 그저 시대에 뒤떨어진, 위험하고 지루한 노동일 것이다. 영화작업이란 여전히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노동이다. 켄 로치의 영화는 이제는 작가적 접근보다는 어떤 하나의 사상이 작동하는 영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외에 다른 불만을 내세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미 사상이 되어버린 예술가의 견해라고 할까.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본디 그에게 속한 존엄을 되돌려 받기 위해 주장한다. 행복에의 기대, 그 이미지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켄 로치에게 영화라는 노동은 시민에게 존엄을, 시민권을 되돌려주는 예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도 나 홀로 이야기하게 될 한 작품이 남았다. 케이타 무카이의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2016)가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이들은 내가 아는 한 서너 명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제주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한 바 있으니, 제주 시민들 백여 명 정도가 더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나라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작은 미술관 강당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보느라 서다 앉기를 반복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했다. 나라에는 사슴은 많지만 국제영화제가 개최될만한 영화관은 없다고 한다. 나라시의 지원도 끊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어 개막식 레드 카펫 행사에 나섰다. 영화제의 중심에는 알다시피 가와세 나오미가 있다.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내게 영화제 방문은 그녀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을 깨는데 충분한 기회였다. 그녀의 수고와 노력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였다. 아무튼, 이 작품은 실은 큰 기대 없이 보았던 영화다. 그때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였을 뿐이다. 영화 경험이 전무한 스물네 살의 청년이 만든 자전적인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카탈로그에 실린 짧은 소개 글을 읽으며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될까, 염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몸을 뒤척거리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는데, 첫 내레이션부터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석양에?물든 호류지(나라현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의 절이라고 한다)가 보이면서 배경에는 희미한 종소리가 울린다. “호류지의 종은 두 시간마다 울린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금속의 울림은 온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울려 퍼지다가 사라져 간다. 내 어린 시절, 하루의 끝에서 울리던 그 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호류지의 종소리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도록 재촉하는 불안한 소리였다. 양호시설의 통금시간은 여섯 시. 밤 아홉시에는 소등이 된다. 화면에는 마치 수용소를 보여주는 것 같은 몇 장의 사진들이 슬라이드 화면처럼 지나가고, 날마다 똑같은 고아원에서의 반복적인 일과들이 설명된다. 그나마 특별한 날이라면 달이 바뀔 때마다의 생일잔치였다고 한다. 파티 장식도 없고, 음악도 없었고, 늘 똑같은 축축한 버터크림의 초콜릿 케이크가 전부였던 생일잔치이다. 그런데 이 달콤한 초콜릿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도 같아 그에게 어두운 과거를 단박에 떠올리게 한다.

감독 케이타 무카이는 이 작품으로 양호시설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18세가 되면 아이들은 양호시설을 떠나 자립해 살아가야만 한다. 그는 이제 성인이 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고, 양호시설에 자신을 맡긴 아버지와 힘겨운 대화를 시작한다.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 관심을 두어 양호시설 자원봉사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영화작업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열등감, 부모에 대한 분노, 가난과 학대받은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말하게 하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함께 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예전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들에게 기억은 그러므로 일종의 이중구속으로,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들은 양호시설에서의 삶을 비판하되 부정하지 않는다. 비록 수용시설의 경험이라 하더라도, 그 기억과 시간은 이제 간신히 긍정할 수 있게 된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를 한편으로는 달콤하고 씁쓸한 기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든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표현한다.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의 종소리는 이 둘의 특별한 결합이다. 기술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케이타 무카이의 촬영이 가장 탁월한 표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는 중반 이후의 장면부터는 내내 서서 보아야 할 정도로 몹시 감동을 받기도 했다.

나라국제영화제에서의 첫 상영 후 잠깐 감독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작품이 상영되기를 기원한다고 말을 건넸다. 그 자리에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그의 친구들도 함께했다. 때마침 올해 제주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상영할 수 있었고, 상영 후 그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에서의 첫 상영에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공개될 만한 작품이 아니라며 부끄러워했고, 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가 국내에서도 더 상영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그를 한 명의 작가로서 기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삶이 영화라는 것을 통해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떻든 나는 그의 다음을 기대하고 있다.

김성욱 |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비토리오의 질문. "주식으로 사라진 돈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혹은, 정서적으로 무미건조해진 헤어진 연인들의 사랑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르트가 안토니오니를 예찬하며 말했던 것처럼 '일식'에서 안토니오니는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대상과 사물이, 인물이 사라질때까지 바라본다. 사물들이 소진될때까지 철저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것. 우리들이 없는 세계를 보는 불안. 이는 진정한 영화(관람)의 모험이다.


일식(1962)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Eclipse(1962) / Michelangelo Antonioni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 미즈키는 거실 뒤편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인기척을 느껴 되돌아본다. 한 남자가 서 있다. 남편 유스케다. “몇 년 만이지?” “3년이네요.” 둘의 대화는 이상할정도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이들 사이의 3년이란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속내를 알기 어려운 꽤나 느긋한 부부의 대화다. 그가 3년 만에 되돌아온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이런 상냥한 환대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실제로 3년 전에 사라졌고, 시체는 발견되지 못했지만 죽은 것은 사실이다. 유스케는 자신의 몸이 바다에 있고, 고기들이 몸을 이미 씹어 먹어 버렸기에 시체를 보더라도 자신을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끔찍한 말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내에게 말한다.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그녀는 성을 내지도, 눈물을 보이지도, 와락 달려드는 일도 없이 상냥하게 유령을 환대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해안가로의 여행>은 부부의 재회를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과묵한 대화는 몹시 인상적이다. 그 리듬을 잊기 어렵다.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리듬과는 무연하다. 누구나 자기만이 느끼는 아픔의 리듬이 있고, 이 순간의 리듬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다. 헤어짐을 견디거나 고통을 멀리 떼어내는데 그들 각자의 고유한 시간이 걸린다. 헤어짐의 아픔,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시간은 이곳 생에 걸친 사람들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이 장면은 저쪽 편, 죽음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도 그 아픔의 리듬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3년 만에 되돌아왔다. 유령의 도래에 담긴 비밀은 부활에 있을게 아니라 3년이란 시간의 간격에 있다. 죽은 자가 비록 당돌하게 되돌아오지만(그렇게 보일 뿐, 유령들 각자 재림의 고유한 리듬이 사연만큼 있다), 그러므로 공포나 놀람보다는 재림이 불러오는 것은 맑은 눈물이다. 브레송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여인의 눈에 촉촉이 젖은, 눈가의 물이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순간 말이다. 죽은 자 가운데 되돌아온 남편이 아내를 이끌어 당도하게 될 해안은 말 그대로 물이 가장 많고 빛나는 곳이다(더불어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에서 과다한 물의 이미지가 불러온 정서를 또한 떠올려보게 된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짧은 글에서 밝힌바 있지만, 3.11 혹은 4.16 이후 당분간 우리는 물의 이미지들에서 어떤 죽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안으로의 여행이란 그러므로 물에 도달하는 것이자(그 곳에서 남편은 죽었다고 한다), 밝게 빛나는 물들(눈물)과 만나는 여정이다. 그가 몹시도 아름다운 곳이라 말했던 이곳은 사실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디에나 있을 바닷가일 뿐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 도달하는 순간 관객인 우리는 이 여행을 납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말 아름다운 곳에 도착한다. 모든 것이 빛나는 곳이다. <도쿄 소나타>에 이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몹시도 감동적인 영화를 이 세상에 가져왔다는 것에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도 <도쿄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와 바다가 등장한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 반복에 대해 먼저 말해야만 한다.

 



<해안가로의 여행>은 피아노를 치는 한 소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느린 템포의 피아노곡이 연주되고 있다. 아이가 있는 거실의 넓은 공간은 몇 개의 가구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는 편인데, 이상한 것이 저 뒤편의 바깥으로 향한 창문에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기에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왜 여기서 창문이 열려 있어야만 할까? 문이 열려 있는 것도,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그 자체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이가 있는 거실의 창문이 바람에 흔들릴 정도로 열려 있다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자면 낯설다Unheimlich. 배치의 의도를 작가에게 묻지 않고는 가볍게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이다. 이 부조리한 장면에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구로사와 기요시의 과거 작을 거론하며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는 무례한 이들이 아닌, 여전히 최근작들을 몹시도 좋아하는 드문 팬들일 것이다. <도쿄 소나타>의 몇 장면들이 이 순간 그들에게도 떠올랐을 것이다. 거론하는 <도쿄 소나타>의 첫 장면은 이러하다. 카메라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측면 운동을 하며 움직여 거실을 보여준다. 거실의 바닥 위로 신문지 한 장이 바람에 날린다. 전경의 탁자 위에 놓인 잡지의 몇 페이지가 마찬가지로 바람에 날려 펄럭거린다. 집의 내부로 폭풍우가 밀려오고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더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저 뒤편,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을게 눈에 들어온다. 가정주부인 메구미가 급히 뛰어나와 창문을 황급히 닫고 마루를 걸레질한다. 물끄러미 창문을 쳐다보던 그녀는 다시 문을 열고는 비가 몰아치는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장면에서 열린 창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장면. 학교에서 꾸지람을 들은 소년은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는 우연히 카네코 피아노 교실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가정집 앞을 지나다 열린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된다. 아이가 고개를 돌려 집을 들여다보면 피아노 선생이 한 소녀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아이는 천천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얼마 후, 꼬마는 그 선생에게서 피아노 강습을 받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 피아노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아이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강당의 뒤 편 창문에서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이 어쩌면 <해안가로의 여행>의 첫 장면과 가장 유사하다 말할 수도 있겠다. 열린 창문으로 바깥의 바람이 실내로 들어온다. 반대로 내부의 무언가가 바깥으로 향하게 되기도 한다(<도쿄 소나타>에서 열린 문으로 들어온 정체불명의 도둑에 이끌려 메구미는 해안가로 납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설정을 <해안가로의 여행>의 기이한 여행과 연결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해안가로의 여행>의 첫 시작은 비슷한 구도에서 시작한다. 한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뒤편의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이 펄럭거린다. 잠시 후, 피아노 선생인 미즈키가 등장해 아이에게 천천히 연주할 것을 주문한다. 나중에 소녀의 어머니는 그런 미즈키의 주문을 못마땅해 한다. 조금 밝게, 빠르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는 없느냐고. 이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쯤에 다시 반복되어 나온다. 유스케와 해안가로의 여행 중에 음식점에서 함께 일하게 된 미즈키는 우연히 식당에 있는 피아노 위에 놓인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악보에 손이 끌린다. 무심결에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연주한다. 갑자기 가게 주인 여인이 달려와 그녀의 연주를 제지한다. 허락도 받지 않고 연주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 말한다. 격렬한 제지에 미즈키는 적잖게 놀라는데, 그녀는 슬픈 사연을 털어 놓는다. 그녀의 여동생이 연주하던 곡이다. 동생은 어릴 때 연주를 많이 했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곡을 완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린 나이에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부모는 피아노를 버리자 했지만, 악기가 동생의 몸의 한 부분이라 여긴 그녀는 동생을 기억하며 여태껏 버리지 못하고 있던 터다. 사연을 들은 미즈키는 자기가 그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싶다 말한다. 그러자 응답처럼 갑자기 어린 아이의 유령이 나타난다. 언니는 망연자실 바닥에 쓰러진다. 미즈키는 아이가 곡을 연주하도록 피아노로 이끈다. 아이는 건반 위에 손을 얹고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아마도 예전처럼 실력에 부친 듯 쉽지 않아한다. 연주를 지켜보던 미즈키는 나지막이 소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피아노가 놓인 식당 저 뒤쪽의 열린 창문으로 커튼이 마찬가지로 펄럭거린다. 실내는 잠시 어둠 속에 잠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이 이 세 명의 여인들을 어둠 속에서 감싸고 있다. 유미코는 소녀의 연주를 응시하고, 저 뒤편에서 언니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동생의 피아노 연주를 조용히 듣고 있다. 세 여성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구도가 인상적이다. 상냥한 기쁨, 혹은 부드러운 슬픔의 순간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지금 어쩌면 나루세의 세계에 근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미코의 눈에 촉촉이 눈물이 고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눈물을 반짝거리고 있다. 아이는 연주를 마치고 컷이 되면 장면이 바뀌어 이내 소녀는 사라지고 없다. 어둡던 식당이 천천히 밝아진다.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미즈키가 아이에게 주문했던 느린 템포의 연주는 기실은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리듬이었을 것이다(물론 그 템포는 남편과 사별한 미즈키의 삶의 리듬이기도 했다).




이런 식의 연출은 전형적인 호러영화와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유령이 어떻게 출현하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 반대가 중요하다. <절규>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2007년에도 그는 사다코의 유령처럼 어떻게 기발한 방법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흥미를 느끼는 것은 어떻게 유령이 사라지는가이다. 하늘로 날아갈 것인지, 문을 열고 나갈 것인지, 계단을 타고 내려갈 것인지 등등. 이런 생각은 호러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일찌감치 무효로 하는 설정이지만 더 흥미로운 질문이다. 유령은 이 세계에 갑자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빈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어떻게 유령을 보게 될 것인가. 혹은 유령임을 어떻게 판명할 것인가.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유령과 결별할 것인가. 횡으로 넓은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이런 빈 공간의 여백을 담아내는데 적절했을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달라진다. 유스케는 왜 돌아왔을까. 그것도 3년의 시간이 걸려서. 비록 유스케가 생전 좋아했을 음식을 요리하는 때에 매번 돌아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그의 첫 출현이 그랬다. 마찬가지로 그가 다시 사라진 이후-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즈키 그를 두고 떠났던 일이지만- 다시 그를 불러내기 위해 음식을 요리한다), 이는 개연성이 없는 하나의 설정,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유령은 언제나 빈 공간에 거주한다. 그의 출현은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다만 그를 소환하거나 사라지는 것에 영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프레임이라는 틀(구조물)과 컷 이라는 분리장치다. 영화의 프레임은 가시성의 틀이다. 틀 안에는 물론 보이지 않는 공백들도 담겨진다. 또 다른 하나. 하나의 컷에서 다른 컷 사이의 공백, 어둠에서 유령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가령, 한 컷에서는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다음 컷에서는 소녀는 없고 피아노만 놓여있다. 멜리에스의 영화처럼 트릭필름이라 불렀던 초기영화부터 있던 아주 단순하면서도 오래된 방식이다. 프레임이든 컷의 변경이든, 여기서 유령의 출현과 사라짐은 불가해한 바깥에의 감각을 강렬하게 한다. 프레임 안으로 바깥의 세계를 유입하는 것, 혹은 컷의 바깥으로 유령을 사라지게 하는 것.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유령이란 존재(와 그의 출현과 사라짐)가 인물의 심리와 무연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유령적 존재를 라울 루이즈의 용어를 빌려 ‘정오의 유령’이라 부르고 싶다. 루이즈가 들려주는 기이한 일화. “어느 날 한 사람이 칠레의 거리를 걷다 40년 전의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진부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다거나, 우유 값이 올랐다거나, 근처 다리에 구멍이 있다던가 하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얼마 후 그가 깨닫는다. 그 친구는 몇 년 전에 죽었던 것이다.” 루이즈는 이러한 존재를 ‘정오의 유령’이라 불렀다. 이는 나쁜 이들에게 복수하는 그림자나 고딕 유령이나, 억압된 것의 귀한이나 악의 있는 힘으로 살아 있는 자에 출몰하는 그런 유령이 아니다.

그가 돌아왔다. 처음에 미즈키는 유스케가 돌아온 것이 꿈인가 싶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깨어난 그녀는 그러나 “나랑 같이 가겠어. 아름다운 곳이야.”라 말한다. 이렇게 되돌아온 자가 같이 가자고 하는 곳은 그러나 피안의 세계가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현실의 세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실의 세계의 다른 곳이다. 그를 돌보아주었던 사람들이 있던 곳이다. 부부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기차를 타고 여행한다. 때론 버스를 타기도 한다. 현실의 수고는 유령이라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유령 유스케는 심지어 길을 몰라 기차역의 승무원에게 행선지를 묻기도 한다. 그들은 때론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여전히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어느 날밤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왜 돌아왔어요? 그는 대답대신 묵묵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다시 묻지만 왜 유스케는 3년 만에 되돌아온 것일까. 그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수백 장의 기도문을 썼던 응답이 되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마치 제사상의 음식처럼 어느 날 우연히 마련했기 때문인가. 사실 그 이유는 미즈키에게 연유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의문은 미즈키가 아닌 유스케에게 전적으로 속한 것이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아내에게 되돌아오기에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둘의 여행은 아내가 따라나선 그의 사후 3년의 행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녀에게 다가오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던 이유를 가늠하는 일은 드라마의 논리에 따라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설명은 그러나 흥미롭지 않다. 영화는 대신 다른 길, 꽤 물리학적 경로를 따라간다. 영화 후반부에 유스케는 시골 작은 마을에서 과학 선생처럼 주민들에게 우주의 기원에 대해 말한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언어로 우주의 기원과 존재에 대해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무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 설명은 드라마의 개연성과는 무연한 영화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자와 함께하는 여행은 단지 둘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유령이면서도 3년을 살았던 그의 행적을, 사후생의 흔적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아내는 그런 다른 생을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곳이 있어, 함께 가지 않겠어. 유스케가 미즈키를 여행으로 안내하는 주문이다. 아름다운 곳. 사실 그들이 찾은 곳은 절경도 실로 아름다운 곳이라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작은 마을들이다. 유스케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그러므로 아직 볼 수 없었던 바깥의 세계다. 평범하지만, 전적으로 유령의 눈에 비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의 세계란 아직 미즈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아직 들리지 않았던, 그러므로 아직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관련된다.


영화의 후반부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나는 궁금해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이 둘은 함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즈키는 지금 유스케와 같은 것을 보고 있던 것일까? 미즈키는 지금 영화에 고유한 특별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영화란 나 이외의 사람에게도(실은 죽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고유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한다. 존재하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최대한으로 줄여가는 것.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보는 사람이 공유하는, 영화적 체험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안가로의 여행>은 이를 가장 감동적으로 느끼게 하는 영화다.

사족을 달자면, <해안가로의 여행>은 올해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체험하고 싶다. 아직 정식 개봉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그 때에 남은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 더 기쁜 일은 이미 구로사와 기요시가 또 다른 신작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크리피>라는 작품으로, 일가족 실종사건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다. 올 6월에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늘 있었지만) 돌아온걸 환영해요.


보이지 않는 나루세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좋아했던 에드워드 양은 그의 영화적 특징을 ‘불가시의 스타일’이라 말했다. 오즈와 구로사와 아키라와 비교해 보자면 스타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양은 <흐트러진 구름>의 라스트 신을 그 사례로 지적한 바 있다. 물론, 나루세의 영화에 스타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루세 영화의 옥외 장면에서 인물들이 둘이서 걷는 순간을 천천히 카메라가 따라가며 보여주는 이동촬영은 그 자체로 완벽한 스타일이다. 오즈 야스지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루세의 연인들은 때론 멈춰 서고, 때론 되돌아보며 걷는다. 이토록 아름답게 연인들의 발걸음을 완성한 감독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루세의 스타일은 비가시적이다. 그간 한국에서 공개된 나루세의 영화가 대체로 12-13편 정도의 비슷한 목록들이 반복적으로 회자됐기 때문이다.
12월 20일부터 시네마테크가 준비한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은 그런 나루세의 비가시성에 주목해 열리는 행사다. 지난해 처음 이 회고전에 붙인 명칭은 ‘Unseen Naruse’였다. 이번 회고전은 총 26편의 작품이 상영되는 최대 규모의 행사다. 나루세는 오즈 야스지로와 달리 예도물 藝道物 영화에서 연애물, 부부 이야기, 여성 일대기, 가족물, 시대물, 문예물, 그리고 심리 서스펜스 영화(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후기작인 <뺑소니 ひき逃げ>(1966) 같은 영화가 있지만, 아쉽게도 이번 회고전에 포함되지는 못했다)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이번 회고전에는 실로 폭넓은 장르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나루세는 제작사가 제안한 기획들을 결코 거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의 약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나루세는 영화사가 제시한 예산과 스케줄을 언제나 준수한 월급쟁이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탁월한 예술가이지만 동시에 어떤 장르 영화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뽑아낸 ‘시스템의 작가’이기도 하다. <여배우와 시인 女優と詩人>(1935)이나 <여자 안의 타인 女の中にいる他人>(1966) 같은 작품들이 빠진 것이 못내 아쉽지만, 여전히 불가시의 영역에 있는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에 한 발 더 들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김성욱)

시네마테크 소식지 / 12월호. 에디토리얼

십년 만에 아트선재센터를 찾아 영화를 봤다. ‘허우 샤우시엔 회고전’을 진진과 공동 개최하면서 개막행사 참석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개막행사에 이어 '자객 섭은낭'을 보았다. 1시간 44분 동안 영화와 함께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처음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서식지를 마련했던 시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2003년 4월에 개최했다. 당시 6,000여명의 관객들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해가 지나 2004년 10월 무렵, 아트선재센터가 공사를 이유로 계약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통고를 해왔다(사실 이런 방식이 최근 벌어진 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서 놀랍기도 했다). 2000년이래로 시네마테크가(당시는 문화학교서울 영화제로 개최했다) 회고전을 계속 해왔던 곳이다. 이곳에서 프리츠 랑 백주년 회고전을 했고,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그 때 세이준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을,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개최했던 곳이다. 2002년 5월에 정식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아트선재 지하에 개관할 수 있었다. 개관 3년만에 계약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2005년 3월, 개관 이래로 1,000여편의 영화를 상영하고는 파스빈더 회고전을 끝으로(마지막엔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상영했다), 말 그대로 쫓겨난 시네마테크는 낙원으로 이전했다. 공사가 끝나면 되돌아갈 생각도 있었고, 몇 번 비공식적 경로로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나로서는 그 곳이 좋은 장소라기보다는, 처음 문을 연 곳에서 가능하면 오래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었다. 수 십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파리나 뉴욕, 도쿄의 영화관들처럼. 그곳에서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을 수 있는 곳으로. 하지만, 그 이후 아트선재센터가 개보수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고, 계약도 다시 할 일도 없었다.

그 이후로 십년간 나는 근처를 지나간 일은 있지만 한 번도 그곳에 들어가 본적이 없다. 그곳은 말하자면 기억이 노예가 되는 장소였다. 처음 시네마테크를 개관한 곳이지만, 나는 그곳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지난해, 어쩌다 참여한 학술 행사로 불가피하게 무대에 올랐고, 그리고 올해 초 좋아하는 필립 가렐의 '질투' 상영에 이은 토크로 어쩔 수 없이, 결코 되돌아갈 생각 없던 그 곳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 십년 만에 처음 객석에 앉아 영화를 봤다. 개막행사 전에 아주 짧게 그런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긴 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14년간 시네마테크를 하면서 네 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하게 됐다. 2003년 처음 소격동 시절에(아트선재 시절이라 결코 말하지 않는다), 2005년 낙원으로 넘어와 1회 대만영화제를 하면서(그 해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내한했다), 2008년 2회 대만영화제에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를 또 몇 편 상영했고, 그리고 올해 2015년 새 공간으로 이사 오면서 다시한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개최한다. 이번 회고전의 제목을 '最好的時光', 즉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시간’이라 정했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틀었던 그 시절은 시네마테크에도, 우리에게도 좋았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 기억들도 피하고 싶어진다. 다행히 거리에는 비가 내렸다(가렐 영화의 토크를 했던 날에도 우연처럼 비가 내렸다. 그 날, 예전 소격동 시절 영화를 보러오던 사람들과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던 길을 다시 걸으며 안국역 횡단보도에 이르러서는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그곳에, 아마도 더 이상 가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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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아이들' 영화를 이번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에서 상영한다지난해 베니스 인 서울에서 <용감무쌍 L'intrepido>(2013)을 소개하면서 지아니 아멜리오 감독에 대해 잠깐 언급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의 작품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바가 거의 없다그의 전작을 소개하는 일은 아직 요원하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아이들 도둑>을 통해 그의 작가적 세계에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베니스 인 서울'에서 소개한 지아니 아멜리오의 '용감무쌍'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  http://cinematheque.tistory.com/434 )

영화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어머니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한 11살 소녀 로제타와 그의 동생 루치아노가 젊은 경찰에 끌려 고아원으로 호송되어 가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힘든 현실에 노출되어 사회에 내던져진 아이들과 그들을 지키려는 경찰이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이 밀라노에서 시작해 시칠리로 향하는 여정으로 그려진다

아멜리오의 작품은 원제가 암시하듯이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떠올리게 한다내용적으로는 데 시카의 또 다른 두 편의 영화 <아이들이 보고 있다 I bambini ci guardano >(1942) <구두닦이 Sciuscià>(1946)와도 어울린다네오리얼리즘과의 연계를 따지자면 밀라노를 배경으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루키노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현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며비전문 배우의 기용과 로케이션의 활용드라마틱한 구조를 넘어선 보고와 산책의 형식이 분명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유산을 느끼게 한다. <자전거 도둑>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버지와 그를 따르는 아들의 교감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경찰 안토니오와 두 아이들의 감정의 교류가 영화 후반부의 가장 중요한 정서이다물론 차이는 있다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에서 자전거는 모든 이들이 원하는노동자의 삶에서 중요한 물질적 수단이다반면아멜리오의 영화에서 자전거를 대신한 아이들은 물질적 대상도 아니며 반대로 모두가 원치 않는 사회가 버린 이들이다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들을 어떻게 포착하는가이다유일하게 도둑질의 대상이 되는 것이 영화 후반부프랑스 여행객의 손에 들린 카메라인 것은 사소한 설정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이 카메라로 프랑스 여행자들은 소녀의 얼굴을 몰래 촬영했고이들은 나중에 소녀가 매춘에 가담했던 사실을 알고는 동정을 표한다로제타는 이를 거부한다

 

 

 

 

밀라노에서 시작해 시칠리로 향하는 로드무비의 여정은 세 가지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영화는 도시에서 바다로, 그리고 열린 공간으로 향한다. 이러한 공간적 이전은 물리적 이전이자 동시에 정신적 이전, 영혼의 순례에 가깝다. 이는 무엇보다 출발점에서의 아이들의 상태에서 그들이 정신과 영혼을 회복해가는 이야기의 설정이다. 아이들이 놓인 환경과의 관계가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에서 열린 자연적 환경으로 확장되어 간다. 그리하여, 여름빛으로 가득한 해변가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아이들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이 순간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게 될 장면이다. 이는 처음, 밀라노의 아파트, 범죄가 저질러지는 풍경과 사뭇 다르다.

둘째, 이 여정은 그들의 기원, 즉 시칠리가 고향인 그들의 고향, 근원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안토니오의 고향 또한 시실리 근처, 칼라브리아다. 이들이 시실리 해변에서 휴양을 하는 것은 그러므로 의사 가족적 관계, 즉 정서적 연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해변은 또한 그녀가 고민하던 문제, 즉 영혼의 순화와 연결된다. 일종의 제의적 여정이다.

셋째, 동시에 이 이동은 이탈리아의 역사, 말하자면 전후 이탈리아에서 시칠리 등 남부에서 북부 공업지대 밀라노로의 이민의 역사, 이주의 역사를 반대의 방향으로 거슬러 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여정은 90년대의 시점에서 이탈리아 역사의 과정을 거슬러 가는 것이다. 덧붙이지만, 아멜리오 감독 또한 칼라브리아 출신으로, 1962년에 로마로 이주해 텔레필름의 작업을 거쳐 1982년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여정은 그러므로 감독의 자전적 여정과 닮았다.

그렇다고 공간의 이전이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다. 여정과 더불어 이탈리아 전역에 놓인 사회의 문제가 겹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밀라노의 범죄적 환경, 로마 테르미니역 근처의 노숙자들, 집시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로제타는 여기서 노숙자의 술을 한잔 몰래 훔쳐 마신다. 게다가 불관용은 도처에 있다. 안토니오의 고향, 칼라브리아에서 친척들이 보이는 불관용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아이의 과거 사실을 폭로하는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들. 사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갈 곳이 없다. 칼라브리아에서의 불관용은 마찬가지로 동시대, 알바니아인들의 이탈리아 남부로의 대량이주의 역사와도 맞물린다. 1994년작인 <라메리카>는 알바니아 이민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모든 뛰어난 영화가 그러하듯 우리는 다른 잠재성의 순간들을 지켜볼 수 있다. 가령, 아이들의 만남. 그들만의 방식의 시선의 아름다운 교환의 순간이 있다. 가령, 가령, 아이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수녀원에서 동생 루치아노가 천천히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교실을 둘러보고 병원에 혼자 누워 있는 여자아이인지 남자애인지 알 수 없는 병약한 아이와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병실의 아이는 손거울을 보며 혼자 노래를 부른다. “나는 아주 작은 물고기를 보았네. 지독한 감기에 걸렸고 더러운 물에 병들었지만, 병원에는 그 물고기를 위한 방이 없었다네.” 루치아노는 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도둑과 연결되는 것이 카메라인 것은 꽤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본다, 만난다, 마주한다와 대비되는 것이 카메라와 연결된 사진의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처음 잡지에 실린 아이들의 모습이다. 로제타는 사진을 극도로 거부한다. 보도에는 아이들에 대한 묘사의 추악함이 있다. 영화는, 원래 실제로 신문에 실린 십대 매춘에 대한 아이의 사진에서 촉발했다. 영화에서 잠깐 잡지의 커버가 나오기도 한다. 아멜리오의 시도는 아이의 존엄을 회복시키고 그녀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돌려주는 것에 있다. 그것이 이 여정의 진정한 목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여정은 아이로 향한 관음증적 시선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로제타는 단지 매춘을 했다는 과거적 사건에 사로잡혀 있는 것만이 아닌 잡지의 퍼블릭한 이미지에 감금되어 있다. 관음증의 시선, 불관용의 시선, 매스미디어의 퍼블릭한 선정적 시선에서 벗어나 감독은 아이의 (도둑질 당한)이미지를 되돌려주려 한다. 아이에게(혹은 아이를 바라보는) 정당한 이미지를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러니 사회적 차원의 해결이 결말로 제시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을 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로 향한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불관용의 시선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두 아이가 진정으로 함께하는 순간을 영화의 마지막에 보게 될 것이다.





소마이 신지의 숀벤 라이더는 아멜리오의 영화와는 다른 방향에서 아이들을 담아낸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보다는 그에게는 몸짓을 그려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목할 만한 롱테이크에서 요점은 테크닉이 아니라(물론 타무라 마사키의 촬영은 그 자체로 뛰어나다 할 수 있다. 그는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의 촬영감독이자, 오가와 신스케의 산리즈카 시리즈의 다큐를 촬영했던 장인이다), 그 긴 지속에 담긴 아이들의 실존이다. 서툴러도 상관없다. 흔들려도 상관없다. 움직임의 지속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얼굴을 분별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는 개별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몸짓들, 움직임의 긴 여정을 무엇이라 말해야만 할까?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지리적 여정을 거듭하고, 유괴당한 아이를 찾겠다지만, 이 여정은 그 목표와는 상관없이, 가능한 방향의 모든 흔적들을 탐사한다. 부모와 가족이 사라진, 마찬가지로 아이 같은 야쿠자 어른들은 어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없는 세계를 통과해나간다




영화의 긴장은 매번 아이들의 서투른 분노에서 나오는데, 이는 80년대 동시대 액션의 설계와는 사뭇 다른 길이다. 가령, 숏들의 연결에서 나오는 폭력의 리듬을 대신하는 것이 그 반대의 몸짓이라 할 수 있다. 소마이 신지의 관심은 인물의 실존, 그가 놓인 상황, 그리고 시간을 거듭해가는 변형의 과정, 말하자면 변형의 지속을 담아내는 것에 있다. 클로즈업과 컷 어웨이, 혹은 명상적 장면들 대신에 끈질긴 롱테이크가 있다. 이는 우아한 안무와는 사뭇 다른, 장애물을 뛰어 건너야만 하는 허들 경주자의 몸짓처럼 끈질기게 이어가는 액션이다. 서투르지만 어떻게든 이어가는 지속의 몸짓. 여기에 예기치 않은 행동들과 갑작스런 중단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왜 아이들은 그렇게 뛰고 달리는가? 미지의 무엇이 부르는 육체의 뒤틀림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은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다른 쪽으로 몸을 움직여 간다. 컷의 반응에서 나오는 액션 게임은 그러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부와 외부의 게임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로 이끌리는 몸의 움직임을 그려내야만 한다. 그리하여 요코하마, 아타미, 나고야, 오사카로 향하는 지리적 여정 외에 장소 밖의 부름, 공간의 흔들림이 있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중단의 신호에도 장애물을 넘어서서 가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놀랍고도 고통스런 경험이다.

납치된 아이를 찾아가는 모험이 전시하는 것을 이렇듯 아이들의 특별한 힘의 실천이다. 영화의 몹시 감동적인 순간은 강둑에서 벌어지는 액션신이다. 수차례 아이들이 물에 빠지고 뛰어내린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자꾸 던지고 내던진다. 물의 흔들림과 나무들의 진동이 있다. 도달하고, 달리고, 안 빠지려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총격의 순간이 있다. 이 경험이 그들을 변형한다. 통과의례의 긴 시퀀스를 거쳐 그들이 살아남는 것은 결국, 살아가는 것의 신비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살아가야 한다. 2014년, 4월 이후,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벌써 열번째다. 한 여름 시네바캉스를 처음 시작한 것이 2006년의 일이다. 그 해 7월 25일, 개막작은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였다. 무려 40편의 영화를 쉬는 날 없이 하루에 네 편씩 한달간 상영했다. 에릭 로메르의 8편의 바캉스영화들, 불멸의 스타전, 특별전:비시 정권하의 프랑스 영화, 뮤지컬 영화걸작선, 공포특급, 마스터즈 오브 호러, 필름 콘서트, 씨네키드, 시네클래스 등의 행사가 열렸다. 시네바캉스 열 번의 포스터들을 되돌아보고 있으면 마치 가지 못했던 여름 휴가의-사실 그 십년간 영화제 때문에 여름 휴가를 갔던 적이 없기에-기억들을 떠올리는 것 같다. 이제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여름 바캉스를 떠난다. 2006년 첫 시작을 알렸던 개최의 변을 떠올리면서.

한 여름의 영화여행 - 시네바캉스를 시작합니다!
7월 25일부터 시작하는 ‘시네바캉스 서울’은 서울아트시네마가 해마다 5월에 개관을 기념해 개최하던 ‘시네필의 향연’을 좀더 대중적으로 확대한 행사입니다. 작품수를 약 60 편으로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기간도 늘어났고 동시에 영화감독들의 연출특강과 교육행사,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키드’, 그리고 영화와 음악이 함께하는 ‘필름콘서트’ 등의 다양한 행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영화애호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편하고 자유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시네바캉스 서울’은 기존의 거대한 영화제들과 비교하자면 아주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치러지는 영화제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함께 보고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길 원하기에, 다른 호사스런 행사는 없습니다. 레드 카펫도 필요 없고 개막을 알리는 떠들썩한 이벤트 공연도 없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혹은 여행을 떠나듯 극장을 방문해 해변의 폴린느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재회하는 장면을, 폭풍우 속의 장 가뱅과 미셸 모르강을, 매혹적인 자태의 마릴린 먼로와 도미니크 산다를 스크린 위에서 만나며 토드 브라우닝, 사무엘 풀러, 브라이언 드 팔머, 존 카펜터, 다리오 아르젠토와 함께 공포의 휴가길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축제를 영화로 떠나는 ‘바캉스’라 칭한 것도, 이 단어의 본래 의미인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제도화된 영화, 시간의 속박에 갇힌 영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다양한 영화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바캉스는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 아니라 한 달간 지속하는 긴 여행입니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그동안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열정적인 관객들과 새롭게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의미 있는 만남의 기회가 생기기를 원합니다.

영화는 장소의 기억과 결합한 대중문화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참된 기쁨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대형의 스크린에서 우리들은 감각, 감정과 감동을 경험하며 추억의 일부가 되는 다양한 세계의 기억과 만나게 됩니다. ‘시네바캉스 서울’은 그런 대중의 기억이 간직된 다양한 영화들을 극장에서 새롭게 다시 만나는 행사입니다. 여행은 매번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대감과 만남을 도모하는 용기를 제공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와 함께 즐거운 휴가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2006. 07.25.

슬랩스틱 개그의 쿨한 매력 - 버스터 키튼 회고전*

 

 

 

 

68혁명 당시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2003)의 한 장면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돌아다니며 영화에 몰두한 두 명의 청년 매튜(마이클 피트)와 테오(루이 가렐)는 무성영화의 전설적인 코미디 배우에 대해 설전을 벌인다. 테오는 찰리 채플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코미디 감독이라며 <시티 라이트>에서 채플린과 눈먼 소녀가 나중에 다시 만나는 장면을 예로 들고 있다. 매튜는 채플린을 깍아내린다. 그는 위대한 배우였을 뿐이라고. 키튼이야말로 20년대의 고다르이자 위대한 작가였다고 그는 말한다. 매튜는 키튼의 <카메라 맨>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채플린과 키튼, 이들 중 누가 더 위대한 무성 코미디 감독이었는가를 묻는 질문은 아마도 20년대 할리우드에서 익살희극이 등장한 이래 되풀이되어온 논쟁일 것이다. 일견 무의미해보이기도 하지만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 켈리에 대해 벌이는 논쟁만큼이나 오랜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는 채플린과 키튼의 차이는 앤드루 새리스에 따르자면 시와 산문, 평민과 귀족, 탈구와 적응, 사물의 의미와 기능, 천사로서의 인간과 기계로서의 인간, 이데아로서의 소녀와 관습으로서의 소녀, 슬랩스틱의 원심성과 구심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에는 보다 영화적인 문제가 있다.

버스터 키튼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프리츠 랑, 또는 장 뤽 고다르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20세기의 영화, 특히 세기 초의 영화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영화가 모던한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키튼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에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에 서커스와 마임에 기원한 무성영화의 근본적인 장르인 익살희극(뷔를레스크)의 창시자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유성영화가 도래하던 20년대 후반에 서서히 영화계에서 사라져, 30년대 이후에는 완전히 망각된 존재가 되었다. 그는 1933년 이후에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고작 <선 셋 대로>나 <라임 라이트> 정도였을 뿐이다. 이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미미한 조연에 불과했다. 하지만 버스터 키튼은 6-70년대에 새롭게 조명을 받았고,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5년(마찬가지로 키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해)에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할리우드의 이방인이었지만 방랑자 ‘찰리’의 캐릭터를 통해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채플린이 냉전의 시기에 할리우드에서 추방되면서 상징적인 인물로 남은 것과 달리 키튼은 할리우드의 시스템의 화려한 조명 아래 그림자속으로 조금씩 느리게 일식되어버렸다. 이는 키튼의 불가피한 운명이었을 런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모던한 세계를 떠나 자유롭게 방랑할 수 있던 찰리와 달리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을 일찌감치 습득했던 키튼은 자신의 몸을 모던한 세계의 기계화된 리듬에 최대한 적응시키려했고, 그 비인격적인 시스템에서 자신의 안정적인 위치를 발견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벌였다. 키튼의 영화속 캐릭터는 그의 화신과도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
성룡을 능가하는 버스터 키튼의 놀라운 기예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습득된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생후 6개월 되던 해에 계단에서 굴렀지만 멀쩡했고(이 황당한 꼬마아이를 본 탈출묘기의 고수였던 후디니는 ‘이런, 무척 튼튼한 아이구만buster!’이라 감탄했고 이 때문에 키튼은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3살 때에는 회오리에 휘말려 거리까지 날아갔지만 상채기 하나 없었다고 한다. 하여 키튼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다섯 살때부터 보드빌 쇼의 일원으로 활약을 하게 되었다. 거친 세계에서 일하면서 키튼은 심각한 표정을 유지할수록 웃음을 촉발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어떤 고난에도 불평하지 않았으며 육체적 고통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넘어져도 일어나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럴 때까지 기다리며 결코 울지 않으며 미소 지으려 하지도 않는 것.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표정한 얼굴 great stone face'은 이런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는 철저하게 환경에 적응하면서 완전한 육체적 추상을 통한 우아한 몸놀림을 통해 스스로를 해방하려 했다.

키튼의 무표정과 날렵한 몸놀림을 통한 개그는 기계적인 성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베르그송은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기계적인 배열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행동과 사건의 배치는 모두 희극적’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키튼의 개그에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채플린과 키튼은 1920년대 무성영화를 대표하는 두 명의 희극 배우였지만 웃음을 제조하는 방식에서 서로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채플린의 웃음은 늘 얼굴과 함께하며 표정을 통해 감정을 포현해냈다. 얼굴이 신체의 가장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채플린의 마임에 근거한 다양한 얼굴표현은 보다 정신적인 천상의 웃음을 만들어냈다. 반면 키튼은 얼굴의 표정을 지워버리면서 마치 거대한 도박장과도 같은 비인격적인 세계 안에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부지런한 발을 움직이며 아크로바틱 액션개그를 선보였다. 키튼의 재빠른 발은 채플린의 얼굴과 대조적으로 지상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천상의 즐거움과 다른 지상의 수고스러움과 고난을 담아내고 있다. 키튼 영화의 묘미는 이런 발 빠른 액션과 상상을 불허하는 스턴트 묘기에 있다. <스팀보트 빌 주니어>에서 폭풍우가 치는 가운데 돌연히 집이 무너지는 순간 키튼이 창으로 무사히 빠져나오는 장면(키튼은 이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 않았기에 몇 번의 NG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놓일뻔 했다고 한다), <제너럴>에서의 기차위에서 벌어지는 추격 장면, <항해자>에서 문어와 벌이는 수중 액션, <손님 접대법>에서 폭포에서 벌어지는 구조작업 등, 키튼의 액션은 당시의 어떤 영화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톰 거닝이 지적하듯이 키튼은 자신의 영화에서 늘 비합리적인 원칙에 근거한 합리화된 시스템(이는 20년대 미국의 지배적인 생산구조인 테일러주의 또는 포드주의와 등치되는 것이다)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을 묘사한다. 채플린이 산업적인 생산시스템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계파괴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키튼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인물을 통해 역설적으로 시스템의 부조리성을 폭로한다. 이 차이는 채플린과 키튼이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가령 채플린의 희극에서 사물, 기계와 싸우는 찰리는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가아니라 사물, 기계의 악마성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서투른 투쟁을 벌인다. 최종적으로 사물과 기계는 찰리에게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물화되지 않은 찰리의 ‘휴머니티’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찰리가 기계를 다루고 통제하는데 서투른 것은 그가 기계의 단조로운 리듬과 다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튼의 경우에 사정은 달라진다.

 

기계 개그
채플린이 인간과 기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한 반면 키튼은 기계를 인간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키튼의 캐릭터는 대규모의 산업기계와 직면해 그것에 순응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결국은 그것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지배와 통제를 위해서는 기계와 사물에 순응해야 하며, 또한 기계와 사물을 몸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럴 때 사물과 기계는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 키튼의 몸에 반응한다. 예를 들어 <제너럴>(1926)에서 기관사인 키튼은 영화의 한 장면에서 애인을 납치한 북군병사들을 쫓아 기관차 ‘제너럴’을 몰고 추격전을 벌인다. 키튼은 기관차에 탑재된 대포에 불을 붙여 전방의 기관차를 겨냥하는데 이 순간 대포의 포신이 갑자기 주저앉아 오히려 키튼의 기차를 겨냥한다. 위험에 빠진 키튼. 당황한 키튼은 기차의 운전좌석으로 대피하지만 포탄은 이제 막 발사될 직전이다. 이 순간 기관차는 커브에 접어들고, 수평으로 발사된 포탄은 정확하게 직선으로 날아가 북군병사가 탄 기관차에 명중한다. 대포는 키튼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에서 키튼의 의도를 따라온 것이다. 기계를 통제하려는 키튼의 몸, 자율적인 대포기계, 이탈하는 선로와 포탄의 궤도. 이렇게 웃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키튼의 영화에서 사랑과 결혼 또한 이와 유사한 패턴을 반복한다. 영화 속에서 키튼은 매번 채플린과 마찬가지로 한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녀와의 연애의 성공은 늘 예상치 않은 방식으로 갑작스레 다가오고, 둘의 사랑은 매번 결혼식이란 최종적인 절차를 요구받는다. <스팀보트 빌 주니어>에서 갑작스런 태풍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지만 키튼은 아버지, 연인을 차례로 구한 뒤에 급기야 조난중인 목사를 물에서 구조해 결혼식을 치른다. 이는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순종적인 사랑에 다름 아니다. (키튼의 영화에서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슬픔의 시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전문학교>와 <셜록 주니어>의 마지막 장면의 결혼식은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방식의 결과로 얻게 된 이런 행운(혹은 불운?)은 키튼의 영화에서 웃음(또는 적지 않은 슬픔을 간직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런 양가성이야말로 키튼 영화가 지닌 독특한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키튼 영화의 희극성은 따라서 배우가 자빠지고 넘어져서 웃음을 유발하는 퍼포먼스에 머물지 않는다. 물리학의 법칙에 의거해 고도로 연출된 장면의 효과로 인한 웃음, 이것이야 말로 키튼 영화의 묘미에 가깝다. 키튼을 위대한 ‘작가’로 채플린을 위대한 ‘배우’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채플린에게 카메라는 사실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단지 배우인 채플린과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을 중계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키튼의 경우 카메라는 사뭇 다르다. 키튼에게 카메라는 액션과 관련되어 있고,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키튼의 영화에서 카메라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화의 세부적인 디테일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키튼의 영화에서 마찬가지로 정말로 잊기 힘든 것은 그의 몸과 액션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속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환경들, 사물들, 그것의 운동들이다. <항해자>(1924)와 <스팀보트 빌 주니어>(1928)의 거대한 증기선, <제너럴>과 <손님 접대법>(1923)의 기차, <셜록 주니어>(1924)의 영화관이 이와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기계와 키튼이 맺는 관계는 하지만 대단히 양가적인데, 이는 그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물과 기계의 시스템에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하면서 키튼이 자신이 거주할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던한 세계의 기계문명 앞에서 무력한 아이와도 같은 위치에 서 있었고, 동시에 수학과 물리학에 능통한 숙달된 운동선수처럼 세계의 무질서에 맞서 몸의 개그를 보여주었다. 키튼의 기계-개그는 그리하여 살바도르 달리와 루이스 부뉴엘과 같은 2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소비에트의 형식주의자들과 미래파들을 열광시켰으며 영화의 미장센에 주목한 누벨바그리언들을 매료시켰다. 

 

 

 

 

이렇게 되리라곤...
키튼은 화려한 20년대를 마감하면서 1928년 MGM으로 옮겼고, 여기서 <카메라 맨>(1928)이란 각별한 작품을 남겼지만 유성영화의 도래와 더불어 퇴락을 겪게 된다. ‘MGM으로 이적한 것은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술회하듯이 키튼은 할리우드 시스템의 포로가 되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1933년에는 급기야 알콜중독자란 표면상의 이유로 MGM에서 쫓겨나기에 이른다. 이후 키튼은 삶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는 6-70년대에야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이는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한데, 1940년대의 후반부터 50년대에 걸쳐 할리우드에서 발생한 촬영소 시스템, 호화찬란한 할리우드 시스템의 붕괴를 겪고 나서 키튼이 다시 영화사안에 복권되었기 때문이다. 키튼의 영화와 삶은 그리하여 20세기의 모던한 세계, 그 역사와 맥을 같이한 할리우드 시스템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키튼은 모던한 세계에서 인간이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기 위해 시스템에 순응해야 하며 그것에 맞춰 신체를 조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키튼의 이러한 페시미즘은 <라임 라이트>(1953)에서 관객들의 썰렁한 반응을 지켜보는 초라한 배우가 된 그가 ‘우리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어’라고 비탄에 젖어 이야기할 때 극에 달한다. 그럼에도 그의 ‘쿨’한 액션개그가 지닌 매력은 슬픔을 넘어설 만큼 기쁨을 주고 있다.
김성욱(영화평론가)

 

* 예전 2004년 처음으로 '버스터 키튼 회고전'을 개최할 때, 이제는 사라진 '필름 2.0'에 썼던 글이다.  



우리들의 환대 Our Hospitality

버스터 키튼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에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에 서커스와 마임에 기원한 무성영화의 근본적인 장르인 뷔를레스크(익살희극)의 창시자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유성영화가 도래하던 2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잃기 시작해, 30년대 이후에는 할리우드에서 완전히 망각되었다. 1933년 이후에 그는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고작 <선 셋 대로>나 <라임 라이트> 정도였을 뿐이다. 이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그저 미미한 조연에 불과했다.

키튼의 영화는 그러나 1950년대에 새롭게 발굴됐다. 하나의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1954년 어느 여름밤. 버스터 키튼은 아내와 함께 <제너럴>이 상영되는 L.A.의 코로넷 극장을 우연히 방문했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자신의 옛 영화를 결코 보려하지 않았던 키튼이기에 이 방문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극장의 지배인이었던 레이먼드 로하우어는 키튼이 극장을 방문한 것에 놀라 그에게 무성영화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키튼은 자신의 차고에 몇 편의 영화가 있다며 필요하다면 가져가라고 그에게 말했다. 다음 날, 키튼의 집을 방문한 로하우어는 그의 주차장에서 <세 가지 시대>, <전문학교>, <셜록 주니어>, <항해자> 등의 질산염 프린트를 발견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미 파산한 ‘버스터 키튼 프로덕션’의 유실된 영화들이 수집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할리우드 무성영화의 80% 이상이 소실되었음에도 키튼의 영화는 이례적으로 보존되어 1950년대 미국의 극장에서 다시 새로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영화는 6-70년대에 새롭게 조명되었다. 1965년에는 사무엘 베케트의 <필름>에 출연했고, 1968년에는 케빈 브라운로우의 무성영화에 관한 인터뷰책 'The Parade's gone by'가 출간되었고 같은 해 '그레이트 스톤 페이스'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이번 특별전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5년(마찬가지로 키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해)에 다시 화려하게 키튼은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1995년. 키튼의 탄생 100주년의 해에 ‘버스터 키튼의 예술’이란 세 박스 세트의 DVD가 출시되었다. 11편의 극영화에 19편의 투 릴 영화들이 DVD에 수록되었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키튼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DVD의 출시 덕분이었다.

버스터 키튼의 회고전을 처음 개최한 것이 이미 2004년의 일이다. 당시 레이먼드 로하우어의 방대한 무성영화 컬렉션-700편-을 인수한 곳이 두리스 코퍼레이션으로 이 곳의 팀 란자 씨의 협조로 이번에 상영하는 영화들 대부분을 필름으로 상영할 수 있었다. 당시 31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방대한 두리스 필름의 무성영화 컬렉션이 다른 곳으로 팔리면서 한동안 대규모 회고전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십년이 지나 다시 한번 큰 규모의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2004년을 기억하며 그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터 키튼에 대한 "우리들의 환대"를 표하고 싶다. 그는 최선을 다해 불가능한 일을 완수하고 고독한 형상의 이미지를 남기고 사라졌고, 다시 우리들에게 나타났다. 그는 형편없는 패가 들어와도 태연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새로운 리듬으로 사랑하고 이 세계에서 가장 쿨하게 생존했다. 댄 칼라한이 했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그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단지 우리들의 웃음이었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을 보았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리뷰가 아닌 아주 '조심스런' 단상을 적고 싶다. 영화 전체를 설명할 생각은 없고, 내가 눌려버린 어떤 이미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건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으로, 아니 사실 말을 꺼내기도 힘들고 정확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이미지에 놀란 피할 수 없는 '나-관객'의 경험에 속한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내게 그것은 과다한 물의 이미지이며, 물에 잠긴 소녀들의 끔찍한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들은 놀라울 정도로 영화의 홍보성 자료들, 사진들에서는 결코 보이거나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터 끝까지 나를 공포에, 때로는 격한 슬픔에 잠기게 한 것들이다. 영화의 초반부 주란(박보영)과 연덕(박소담)이 호숫가의 물에 빠져들게 될 때. 이미 그 순간부터 물(속에 잠긴 소녀들)의 이미지는 내게 압도적인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그 때부터 쉽지 않았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설정이나, 회자되는 레퍼런스 영화들(굳이 말하자면 레퍼런스와 관련해 나는 드 팔마의 <캐리>보다는 <분노의 악령Fury>에 이 영화가 더 근접하다고 생각한다)의 어떤 장르성에도 회수되지 않는 이미지들이다. 그 때 이미지는 이야기의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라, 반대로 이 이미지들 때문에 어떤 다른 현실과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이 이미지가 불러오는 압도적인 현실감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가장 끔찍하면서도 처참한 현실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4.16의 이미지이다. 이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에서 과다한 물의 이미지를 보고 3.11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관객의 경험으로서 말하고 있기에, 이 이미지에 감독의 숨겨진 의도나 무의식이 있다고 말하고픈 것이 아니다. 이해영 감독은 이에 대해서 내가 아는 한, 어떤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이 이미지들은 크라카우어가 일찍이 지적하듯이 그 끔찍함 때문에 본능적으로 우리가 보기를 거부했던 다른 사건으로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한다. 픽션의 이미지는 페르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괴물의 형상처럼 우리가 그동안 회피했던 끔찍한 사건을 직시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것을 직접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무서웠던 것들이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주란(박보영)이 보게 되는 것들, 혹은 의미심장한 영사기의 등장과 사진들, 레코드는 그런 점에서 이미 예시적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만큼 4.16 이후를 살아버린, 공포와 슬픔에 잠기게 한 영화를 아직까지, 나는 보지 못했다. 순전히 그것이 나-관객의 경험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보아야만 한다"(다네).

  1. 잘 읽었습니다... 2015.07.02 16:30

    서너개 감상평? 재미 있네 없네...그냥 너무 무책임하게 내뱉는 것 같은 글들 때문에, 영화 보다는 그들의 언사가 너무 짜증스러웠는데,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숨기려고들 노력하는 역사를 백일하에 드러내놓고 치유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Welles after Welles 

 

 

 

 

 

오슨 웰스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훼손하는 데 꽤 열중했던 작가다. 그는 의도적으로 몸을 부풀리고 과도한 분장을 하거나 앙각촬영으로 자신의 몸을 덩치크게 표현하려 했다. 그는 비만에도 무관심했다고 한다. <아카딘 씨>에서 그의 몸은 존재만으로도 인물들을 압도한다. <악의 손길>에서 그가 처음 등장할 때 마르린 디트리히의 놀란 표정은 잊기 힘들다. 미국의 일부 평자들은 그가 후기에 텔레비전이나 B급 영화 등의 저급한 역에 (젊은 웰스의 건장한 몸과 비교해) 예의 비만의 몸으로 출연했던 것을 한탄했다고 하는데,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만은 아닌 어떤 의도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그는 십대부터 조숙한 재능을 발휘했고,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당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도 누리지 못했던 편집권을 얻어 <시민 케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의 젊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후 60년대의 뉴웨이브 영화들처럼) 젊음을 찬양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는 젊음보다는 일찌감치 이미 노년을 연기했다. 노년의 권력과 젊음의 열정 사이에는 심각한 거리가 있고 웰스는 이를 처음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설은 제목에도 이미 나타나는데, 케인이라는 거대한 권력자와 시민이라는 차이가 이 영화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로즈버드’는 그러한 차이를 연결하는 마법의 열쇠이지만 <시민 케인>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웰스는 미국이 자신을 존중했던 것이 전적으로 젊음을 요구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라 말한 바 있다. 젊은 미국은 동어반복처럼 항상 젊음을 예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그 젊음을 지속시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웰스의 진정한 저항은 그러므로 젊음을 일찍부터 부정하거나 그것에 도전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 생각엔 젊음이라고 치기를 부리는 것보다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젊음의 저항처럼 보인다. 웰스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 그가 끊임없이 자신을 비대하고 늙은 모습으로, 혹은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젊고 잘생긴 얼굴을 가리고 의도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출연하려 했다. <심판>에서 웰스는 꽤 의식적으로 얼굴을 숨기고, 11명의 다른 캐릭터의 목소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속임수도 즐겨 했다. <오슨 웰스와 일하며>(1994)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웰스가 마술과 장난, 속임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정말 뛰어난 마술사였다.

 

 

 

말년의 걸작 <거짓과 진실>(1974)은 그런 웰스의 거짓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천재적인 그림 위조범, 즉 ‘거짓’이라는 책을 쓰고 하워드 휴즈의 가짜 자서전을 쓴 클리포드 어빙의 이야기에 웰스 자신이 전 미국인을 상대로 속임수를 썼던 <우주전쟁>의 라디오극 에피소드를 더한다. 이 영화에서 웰스는 “나 같은 사기꾼은 그러나 사실 진실을 추구합니다. 이걸 건방지게 표현하자면 예술이라 할 수 있죠. 피카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고요”라고 말한다. 그는 젊음 뒤의 노년, 혹은 눈에 보이는 세계 뒤편의 다른 책략과 연극을 영화로 다뤘던 작가다. 그가 연극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이런 다성성의 세계에 깊이를 더한다. <시민 케인>이 뛰어난 작품임에도 여전히 웰스를 <시민 케인>의 작가로만, 그의 젊은 시절과 혁명적 데뷔를 찬양하는 것에 머무는 일은 그래서 아쉬운 일이다. 이번 ‘오슨 웰스 백 주년 회고전’에서 이른바 웰스 이후의 웰스에 더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 그의 노년성이야말로 영화적 젊음의 모습이었다. 웰스에 관한 뛰어난 평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이렇다. 웰스는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제대로 발견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재발견의 대상이 되는 작가였다. 여전히 <아카딘 씨>가 대관절 뭘 말하는 영화인지(고다르는 <필름 소셜리즘>에서 아카딘 씨의 비밀 리포트에 대한 궁금증을 보여준 바 있다), <심판>이 현대영화가 새로 등장하던 60년대의 시기에 웰스의 어떤 태도를 담고 있는 작품인지, 왜 <불멸이 이야기>가 오슨 웰스의 '완벽한 영화'인지, 혹은 <심야의 종소리>가 왜 주목할 만한 작품인지를 말하는 이들은 드물다. 물론 쉽게 말하기도 어렵다. 웰스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웰스의 회고전 방문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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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9 18:50

    비밀댓글입니다

 

 

 

예전부터 내가 쓰는 메일이나 트위터, 페이스북의 아이디는 대체로 Hulot이다. 버려진 숲처럼 방치되고 있는 이 블로그의 이름도 “Cinematheque de M.Hulot”이다. 가끔 원고를 청탁하는 기자나 강의를 의뢰하는 분들에게 전화로 메일 주소의 알파벳 단어를 또박또박 불러줄 때마다 다시 환기되곤 하는 이 이름은 대체로 '훌로' 혹은 '휠롯'으로 불리곤 했다. 정확한 프랑스식 발음은 윌로이다. 시네필들은 대체로 알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괴상한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물론 나 또한 그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엘르 잡지의) 에디터의 질문을 받기 전까지도 내가 왜 윌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90년대 초에 처음 비디오로 그를 만났던 것 같다. 내가 쓸데없이 본격적으로 영화에 빠져들던 때이다. <윌로씨의 휴가>라는 작품이었는데, 발랄하긴 하지만 큰 웃음을 만들기엔 재주가 없는 프랑스에서 백년에 한 번 나올까 싶은 자크 타티라는 영화감독이 1953년에 만든 작품이다. 윌로는 타티가 연기한 그의 분신이다. 영문자막이 들어간 미국판 비디오였는데, 사실 자막이 필요 없는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에 가까운 영화였다. 그 당시 나는 새벽에 두 세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을 의식처럼 치르고 있었는데, 불안한 정신을 추스르려 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해야 했고 할 일을 찾아야만 하는 낮의 일들은 대체로 피곤했고, 때마침 누나가 구입한 비디오플레이어 덕분에 밤에는 눈을 뜨고 꿈을 꿀 수 있었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지만, 코미디와 뮤지컬이 새벽의 주요 목록이었다. 내 앞의 미래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계획 없는 삶에 그래도 가급적 진지한 영화는 새벽에는 피했던 탓이다. 그때 헤매었던 비디오 무덤사이로 윌로라는 아저씨가 나타났다. 어릴적 이끌렸던 배우들의 목록은 많았지만 성인이 되어 무심하게 매혹을 느낀 첫 아저씨였다. 

 

그는 시동이 종종 꺼지고 소리만 요란한 20년대산 구식 아밀카를 몰고 남들처럼 바캉스를 떠나는 평범한 아저씨로 나타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이다. 그는 외톨이지만 그렇다고 채플린처럼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떠나는 방랑자는 아니다. 해변을 찾는다고 여자를 꼬드기거나 낭만을 즐기는 식의 그 흔한 동기도 없다. 반겨줄 친구나 함께 시간을 보낼 애인도 없다. 남들처럼 그도 휴가를 떠났을 뿐이다. 이름도 없고 약간은 격식 차린 '무슈'라는 표현이 앞에 붙거나 '나의 삼촌' 같은 식의(그 다음의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말할 때 호명되는 식으로 등장한다. 사실 그는 언제나 타자의 눈과 말을 빌려 존재성을 얻은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이다. 내면의 실체가 불분명한 존재. 한 여름 바캉스에 그가 처음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캉스의 '바쿰'이라는 어원의 의미가 그러하듯, 그는 텅 빈 존재이다.

 

윌로는 불평 없는 과묵한 아이이거나 철없는 어른이다. 여기에 축복과 고독이 교차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로 놀러왔지만 휴가가 끝나면 다시 부모의 손에 강제로 학교나 집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바캉스에서 탄생한 월로는 되돌아갈 곳이 없다. 그가 떠났던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윌로는 매일 바캉스를 떠나거나 즐기는 축복받은 아이이자 아직도 바캉스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여전히 해변에 머물러 있는 미련한 어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모두가 떠난 해변에서 휴가가 끝났다는 사실을 모른 채 계속 머물러 있다. 내가 그에게 속절없이 매혹됐던 이유다. 내 젊음의 축제는 끝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에게서 나는 어둡지만 위안을 얻을 그림자를 보았던 것이다. 얼마 후 내가 발을 들이게 된 영화라는 세계는 휴가철의 해변처럼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됐지만, 나는 축제가 끝난 해변에 있는 윌로처럼 오래된 극장에 앉아 있다. 염원하던 일이기도 했다. 윌로는 내가 매혹에 빠진 그림자, 나의 영무자影武者이기 때문이다.  /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엘르 잡지 에디터가 '내가 매혹된 대상'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한 것에, 썼던 글이다.

 

 

 

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식민지 치하의 조선에서는 '시적 리얼리즘' 혹은 '사회적 판타지'라 명명된 1930년대 프랑스 영화들이 대거 수입되어 관객들의 사랑을 얻었다. 자크 페데나 마르셀 카르네의 영화, 줄리앙 뒤비비에의 <망향>(1936), <무도회의 수첩>(1937)과 같은 작품들이 특히 대중적 인기를 얻었는데, 가령 작가인 김남천은 <망향>(첫 개봉 제목은 <페페 르 모코>이었지만, 전후에 재개봉할 때 <망향>이란 제목으로 바뀌었다)을 본 후의 소감을 소설에서 이런 식으로 기술한다. “어떤 날 오후, 봄이라지만, 아직도 치위가 완전히 대기 속에서 가시어 버리지 않은 날, 나는 영화 상설관에서 <페페 르 모코>를 구경하고 일곱 시경에 거리에 나섰다. 저녁을 먹어야 할 끼니때가 이미 지났으나, 곧 뻐스에 시달리면서 집으로 향할 생각을 먹지 않고, 어데 그늘진 거리나 거닐면서 지금 보고 나오는 토키가 주는 아름다운 흥분을, 고지낙하니 향락하고 싶어서, 나는 발을 뒷골목으로 돌려놓았다. 서울의 빈약한 거리를 걸으면서도, 나의 상념의 촉수는 ‘카즈바’의 소란하고 수상스러운 세계를 헤매고 있었다. <페페 르 모코>가 소프트의 뒷전을 추켜서 머리에 올려놓고, 줄이 반뜻한 양복에 색 구두를 신고, 목에는 명주 수건을 얌전히 둘러 감고서, ‘카즈바’의, 소굴을 탈출하야 계집을 찾아 부두로 향하던 그림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필름 누아르라는 표현은 원래 1930년대 프랑스의 시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시적 리얼리즘 영화 대부분은 파리의 노동자등의 하층계급에 의한 도시적 드라마가 주를 이루면서 인물의 파멸이나 절망을 강조한 연애, 범죄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한 범죄 소설의 전통을 계승했다. 특히 조르주 심농과 당시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들이 영감의 원천이었다. ‘시적’이란 표현에서의 이 영화의 시정은 그래서 일상적인 사물, 배경, 환경, 분위기 등에 있다. 대표적인 작가였던 마르셀 카르네와 시인 자크 프레베르는 현대 도시의 산업지역에서 길을 잃어버린 19세기 말의 낭만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기질은 회색빛 색조의 우울한 세계에 가까웠다. 그의 영화에서 선한 자들은 종종 범죄를 저지른다. 이는 반항이나 사랑과 같은 우발적 이유 때문이었고, 악인들은 추상적인 범죄자들이 아니라 사악하고 비열하며 사기꾼에 탐욕스럽기까지 하다. 불한당들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반면 실패는 언제나 선한 자들의 운명이었다. 아마도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가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들에게 어필했던 것이리라.

 

이렇듯 1930년대 프랑스 영화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일치감치 친숙했다. 사실 40대를 넘긴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마도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이들의 작품 한두 편을 시청했던 공동적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 영화의 비관주의는 인민전선의 희미한 희망이 사라진 시점의 불안한 정신사를 반영하는 것이라 말해진다. 정치적 불안정과 임박한 전쟁의 위협,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배신과 회의, 이런 식으로 모든 희망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때 개인적인 반항(때로는 거의 자살에 이르는 시도) 외에는 달리 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 몰락을 씁쓸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었다.

 

1930년대 프랑스는 격변으로 치닫던 때이다. 글로벌한 경제적 위기를 겪었고, 정치적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대중들의 열망을 사로잡고 있었다. 프랑스 영화는 당시 아방가르드에서 대중적 영화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전의 대담한 실험가들이 좌파 인민전선과 결합했지만, 이내 좌절로 끝났고 어두운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다양성과 프랑스 제작의 양질의 전통에 따르자면, 이 시기 마르셀 카르네, 르네 클레르, 줄리앙 뒤비비에, 자크 페이데르, 사샤 기트리, 마르셀 파뇰, 장 르누아르, 장 비고 등의 작가들이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게다가 사운드의 도래로 프랑스 영화가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변화를 겪던 때인데, 문화적 비관주의와 산업적인 파멸의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영화산업을 표준화시켰고 로케이션 촬영은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대신 영화제작이 스튜디오의 통제 가능한 환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30년에서 누벨바그 직전의 30년간은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로 제작편수로 보자면 일종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3,094편의 극영화가 만들어졌는데, 1930년대에 1,305편, 1940년대에 807편, 그리고 1950년대에 982편의 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고전기’라는 표현은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주의를 요한다. 가령, 이 시기를 연속성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을까? 전전과 전후로 이 시기를 구분해야 할까? 앙드레 바쟁은 이와 관련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종전의 시기가 아니라, 1941년에 프랑스 영화의 단절의 시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 시기가 비록 전쟁의 기간이긴 했지만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전전 프랑스 영화의 위대한 거장들인 장 르누아르, 르네 클레르, 줄리앙 뒤비비에 등이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연속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대적 차이와 미학적 견지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명백하게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어떤 식으로 시대를 구분하던 이 시기는 누벨바그의 도래와 비교하자면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로 불리어질만하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들(세계 경제위기, 인민전선, 2차 대전, 냉전 등)이 있었고, 영화의 중요한 기술적 혁신(사운드와 컬러의 도래)이 있었다.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작가 영화와 대중(주류)영화의 구분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전후의 젊은 비평가들은 ‘작가정책’이라는 표현으로 이 시기의 주류 영화들 가운데 ‘작가’를 구분하려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영화는 이 시기 할리우드 영화처럼 장르성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스릴러, 사극 등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있었고 배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영화의 대부분은 게다가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프랑스의 고전기가 할리우드의 고전적 규범과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학자인 지네트 뱅상도는 이 시기의 프랑스 영화를 ‘스펙터클의 예술’이라 불렀다. 이는 몇 가지 중요한 미학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 정교한 음악과 대사, 뮤지컬적인 퍼포먼스가 있다. 둘째, 섬세한 편집과 긴 카메라의 움직임이 활용되고 있었다. 가령, 줄리앙 뒤비비에, 장 르누아르, 막스 오퓔스 등의 영화는 할리우드의 보편적 리듬과 속도와 상이한 섬세한 편집과 연극적이고 뮤지컬적인 전통에서 기원한 느린 리듬의 카메라 움직임이 있었다.

 

시적 리얼리즘은 또한 대중주의적 멜로드라마, 사회적 판타지, 누아르 리얼리즘, 로맨틱한 페시미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의 다양한 표현들을 내포한 새로운 형식의 리얼리즘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서정의 시학으로 끌어올리는 시적 리얼리즘은 바쟁이 카르네의 영화를 두고 지적했듯이 특별히 인물들의 주변을 둘러싼 사물과 환경의 역할을 탐구했다. 가령, <망향>에서 장 가뱅이 마지막 밤을 보낼 때에 그의 운명적 상황과 과거를 지시하는 것은 테디베어, 자전거, 거울, 브로치, 담배들과 같은 시시한 사물들이다. <북호텔>(1938)에서 시학을 구성하는 것은 감상적인 노래들과 대사들, 독일 촬영술에 근거한 표현주의적 조명, 파리의 아름다운 환유를 제공한 노스탤직한 세트 디자인들이다. 시적 리얼리즘의 미학은 그래서 창조되고 양식화된 시각적 구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프랑스 고전기의 사멸은 이러한 시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화의 등장이라 말할 수 있다. 바쟁의 표현을 빌자면 ‘시적’인 것에서 ‘사실적’인 것으로의 변화가 전후의 프랑스 영화에서 등장한다. 시적 리얼리즘을 계승하고 넘어선 두 종류의 사실적인 장르가 있었다. 그 하나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 앙리 베르뇌유, 클로드 오탕 라라의 누아르 심리학적 드라마가 있다. 이들의 영화는 개인의 심리학에 근거한 범죄 드라마들이다. 이전의 범죄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사랑이 더 이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혼성의 상실이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자크 베케르, 줄스 다신, 장 피에르 멜빌이 창조한 황혼의 갱스터 영화들이다.

 

누벨바그의 도래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의 명백한 단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계승과 영속성의 관점에서 프랑스 고전기의 영화들은 이후의 영화들에 거대한 영향을 행사했다. 비평의 새로운 시작도 이러한 변경의 과정에서 발생했다. 가령, 바쟁의 영화비평은 점령기 프랑스 영화들의 비평에서 시작해 마르셀 카르네, 장 그레미용, 줄리앙 뒤비비에의 영화들을 세심하게 분석했다. 또한 ‘사실적인 미학을 위하여’, ‘영화적 비평을 향해서’, ‘대중을 창조하기’, ‘리얼리즘에 대하여’, ‘영화와 대중 예술’ 등의 비평적 에세이가 이 시기의 영화들에서 나왔다. 바쟁은 1943년에 쓴 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 예술은 창조 그 자체이다. 이제 영화를 재발견하자!’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이제 고전기 프랑스 영화들을 재발견하자! 이 특별전은 그 첫 시작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 이 글은 지난 2011년 겨울에 기획해 열린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때 썼던 글을 다시 올린 것이다.

말이 실패하는 곳에서, 사랑이 떠난 시간에서 음악이 시작한다고 한다. 음악을 듣는 것은 그래서 우리를 매번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젖게한다. 우울할 때 음악을 듣는 일은 그래서 예전에는 피했던 일이다. 대신 그럴때 나는 책을 꺼내들곤 했다. 책은 우울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악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머물게 하기에. 그러면 영화는 우리를 어디에 데려다줄까. 혹은 영화는 어디에서 시작하게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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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빈 자리는 정말 비워진것이 아니라 거기 없는 사람들, 떠났거나 아직 오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해왔다. 좋은 영화는 빈 자리의 영혼의 무게를 동반한다. 극장안의 우리는 혼자라도 홀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기 없는 이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앞서 보고 있는 일종의 척후병斥候兵들로- 사실 누가 그들을 파견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차용되어 나온 것이다. 빈 자리의 그들은 우리의 정찰과 탐색 이후에 어쩌면 나중에 오게 될 것이다. 극장을 하는 나의 믿음은 이러했다. 사람들은 이제 생각을 바꾸라 한다.
대체로 영업의 논리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문화라 부르는, 사실은 영업과 통상通商의 규칙은 채워짐을 욕망하고, 요구한다. 대체로 관료들이나 통상인들의 주문이 그러한데, 이제는 다른 이들도 나선다. 사람들은 자신이 변했거나 변하기를 원할 때 상대도 바뀌기를 원한다. 때로 어떤 이들은 변화를 자신의 능력으로 여긴다. 그러면서 그들 대부분은 정작 변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대체로 느끼지 못하거나 숨기면서 상대가 변하기를 요구한다. "그래요, 예전 같지 않아요. 당신 말예요."(20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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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세 감독의 영화를 연이어 상영하는 날이다. 13:00에는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 16:10에는 마이클 만의 '미이애미 바이스'를 그리고 19:00에는 드 팔마의 '하이 맘' 상영과 상영후에 해설을 한다. 이중 아마도 가장 생소한 작품이 드 팔마의 '하이 맘'일 것이다.

드 팔마를 히치콕의 적자로만 이해하는 이들이 보기에는 그의 60년대 초기작들은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리팅스>, <하이 맘!>, 그리고 <디오니소스 69>와 같은 작품들은 히치콕보다는 거의 고다르의 <주말>이나 <남성, 여성> 같은 작품들의 영향 아래 있는 일종의 언더그라운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60년대, 뜨거운 젊음의 20대를 거치면서 고다르의 세례를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작가란 없을 테지만, 할리우드에서 이런 과격한 시도를 대놓고 한 작가는 찾기 쉽지 않다. 60년대 후반, 고다르의 영화가 베트남, 반전, 미제국주의, 맑스, 계급투쟁, 마오주의 등의 용어들을 떠올리게 했다면, 이 모든 것은 마찬가지로 드 팔마의 영화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JFK의 암살과 베트남 전쟁을 거친 드 팔마는 아메리칸 고다르를 꿈꿨던 것이다. <하이 맘!>은 이 모든 것의 예증이다.

<하이 맘!>의 서두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한 남자의 일인칭 시점을 따라 움직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주관적인 카메라의 활용은 관객들이 주인공과 동일화되도록 만드는데, 마침 이 남자는 건너편 아파트의 거주자들을 몰래 8미리 카메라로 촬영하는 영화를 제작 중에 있다. 남자 주인공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다(그는 베트남에서 돌아온 젊은이로, 그의 특권화된 연기는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를 일치감치 예고하고 있다). 영화 대부분의 내용은 주인공의 특권화된 관음증적 시선을 따라가지만, 그럼에도 시점과 형식은 인물을 넘어 여러 가지로 분산된다. 가령, 그가 카메라 숍을 방문하는 순간은 16미리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여인 라라의 시점으로 중계되며, 영화의 중간 중간에는 흑인운동을 알리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화면이 삽입되어 있다. 드 팔마는 고다르가 <남성, 여성>과 같은 작품에서 했던 것처럼 시네마 베리테의 관습을 빌려와 다큐멘터리적 진실이 영화의 테크닉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자기반영적으로 보여준다. 크게 보자면 이 영화는 세 가지 구성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가 백인 중산계급의 아파트에서 일상을 보여주는 ‘주부 다이어리’이다. 고다르가 중산층의 일상을 르포르타주처럼 파악한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 연상된다. 두 번째는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로, 백인 중산계급에 대한 흑인들의 비전을 보여준다. 셋째는, 이 전체를 조망하는 주인공의 시선이 담긴 ‘관음증적 영화’이다.
이 영화는 예술영화, 포르노그래피, 아방가르드 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60년대 미국 사회를 중산계급의 외설성과 흑인의 바깥의 시선으로 포착한 급진적이면서도 진지하게 유머러스한 영화다. 말하자면 <하이 맘>은 60년대 정치운동의 실패와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예고된 실패를 예감한 젊은 아메리칸 고다르'의 가장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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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미 아흐마드의 <묵신>

 

말레이시아 영화계의 ‘대모’라 불린 야스민 아흐마드는 단 6편의 청춘송가와도 같은 보석 같은 작품을 남기고 2009년, 5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그녀의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0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우리 시대의 아시아 영화 특별전’에서 그녀의 유작인 <탈렌타임>(2009)을 상영했었다. 말레이시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예회를 무대로 벌어지는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인데, 아무도 없는 교실에 빛이 들어오고 하나씩 불이 꺼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명멸하는 빛과 시간의 무상함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야스민 아흐마드의 영화는 주로 민족이나 종교의 차이를 넘은 연애를 드라마의 소재로 다뤘는데 <묵신>도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묵신>은 오키드라는 소녀의 여러 생애를 다룬 ‘오키드 4부작’의 마지막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 4부작의 시간 순서는 제작 순서와는 다른데, <묵신>은 4부작의 대미를 장식하지만 극 중 이야기의 시간으로는 가장 빠른 유년기의 사랑을 그린다(가령, 극 중의 시간축은 <묵신>(2006), <가는 눈>(2004), <라분>(2003), <그부라>(2005)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는 우정과 사랑의 틈새에서 흔들리는 유년기의 감정의 혼란, 소녀 시대의 첫사랑을 그려내는 감상적인 필치가 모든 평범한 장면들에 묻어 있어 세심한 관찰을 요한다. 아니 관찰이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눈길이 장면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만큼 사랑스럽다. 야스민 아흐마드는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에게 어느 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이 90분 동안의 상영시간 동안 지속된다. 무엇보다 소녀에게 갑자기 발생하는 운명의 만남, 사랑의 순간을 지켜보는 매혹이 있다. 갑자기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빗속의 춤, 평범한 축구 경기, 벌판에서의 연날리기, 그리고 자전거를 함께 타는 순간들이 모여 작은 우주를 형성한다. 이렇듯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지나가 버린 작은 것들의 경험에서 소중한 시간들을 되찾게 한다. 무대가 되는 말레이시아의 다민족적, 다문화적 양상이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관의 충돌, 계층적 차이, 언어적 차이(가령, 오키드는 영국 유학의 경험을 지닌 어머니 아래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중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중국계 학교를 다닌다)로 부각되지만, 그리 심각한 편은 아니다. 영화는 이러한 모순과 갈등보다는 유년기의 첫사랑이라는 테마에 보다 집중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독의 상냥한 눈길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작품이기에, 설명은 그 다음의 일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너무 많이 보았던  작가, 브라이언 팔마

 

브라이언 팔마의 영화를 자극적인 불량식품 같은, 정상성의 궤도에서 벗어난 독특한 취향의 작품으로 취급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수정되어야 전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가령 6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의 정신에 기대어 말하자면, 조금은 삐뚤어진 방식처럼 보이긴 하지만 현재 팔마보다 직접적인 계승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는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변모의 윤리를 지켜왔기에 희귀하게 생존한 아메리칸 시네마의 작가로 남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들이 지금 보여주는 작업들을 팔마의 근작인 <리댁티드> <팜므 파탈> 같은 영화와 비교해 보면 차이를 느낄 있다. 팔마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제외하자면(가령, <언터처블>, <미션 임파서블>) 상품으로 제대로 팔리거나 예술적 매버릭으로 이해되는 작가는 아니었다. 종종 그는 아메리칸 시네마의 낭만적 영혼의 계승자로 찬미되었지만 쓸데없는 영화들에 재능을 낭비한 작가로 치부되기도 한다. 여성의 재현과 관련한 오래된 논란도 여전히 풀어야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단번에 수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그의 초기작을 주의 깊게 보았으면 한다. 이를테면 <하이 !> 경우가 그렇다(아쉽게도 이번 상영작에서 누락되었지만 <디오니소스 69> <그리팅스> 같은 계열에서 생각해야 한다).

 

팔마는 60년대 실험적이고 정치적인 영화의 급진적 경향에서 빠져나오면서 70년대에 다른 시네마의 작가들과 다른 노선을 밟아나갔다. 선택의 교차로가 있었다. 하나는 상업적 시스템의 영화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경로는 언더그라운드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팔마는 스콜세지와 코폴라처럼 장르영화 제작을 실용적 수단으로 채택했지만, 이를 개작하고 실험하는 전복의 장기 전략으로 활용했다. 여기에 B영화와 히치콕의 서브코드를 동력으로 장착한다. 코폴라와 스콜세지가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모던한 영화 스타일을 결합해 품격의 고급스러운 길로 향했다면, 팔마는 B 호러, 포르노그래피 등의 한계적인 영화들을 섞어 낮은 길로 향한다. 길은 물론 많이, 다르게 보면서 하위의 역량을 이미지의 에너지로 끌어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는 너무 많이 보려 아메리칸 시네마의 작가다. <캐리> <퓨리>에서 소년과 소녀가 몬스터가 되는 것은 6-70년대에 너무 끔찍한 것들을( 대부분은 전쟁과 폭력, 암살 등이다)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비전의 희생자가 되었다. <드레스드 >에서의 살인과 광학적 장치들, <필사의 추적>에서의 시각적 도청, <스네이크 아이즈> <미션 임파서블> 하이테크 비전들, 그리고 <팜므파탈> 눈에 대한 공격까지. 그리고 최근작인 <리댁티드>에서의 멀티플 스크린까지, 팔마의 비전은 실로 다양하고 넓게 확장되었다. <리댁티드> 다루는 이라크 전쟁의 참상은  복수의 스크린들이 서로 전투를 벌이는 양상이다. 영화에서 60년대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시 되돌아가는 1960년대의 아메리카.  미국(영화) 꿈과 실패에서 기원한 모든 것들이 여전히 그의 영화에서 잔존하는 것들이다. 그는 영화의 변혁이 실패로 끝난 이후를 살아간 끈질긴 작가다.  

 

아메리칸 고다르 브라이언 팔마의 <하이 >

 

 

 

팔마를 히치콕의 적자로 이해하는 이들은 아마도 그의 60년대 초기작들을 보면 의아해 것이다. <그리팅스>, <하이 !>, 그리고 <디오니소스 69> 같은 작품들은 히치콕보다는 거의 고다르의 <주말>이나 <남성, 여성> 같은 작품들의 영향 아래 있는 일종의 언더그라운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60년대에 고다르의 세례를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작가란 없을 테지만, 할리우드에서 이런 과격한 시도를 대놓고 작가는 찾기 쉽지 않다. 60년대 후반, 고다르의 영화가 베트남, 반전, 미제국주의, 맑스, 계급투쟁, 마오주의 등의 용어들을 떠올리게 했다면, 모든 것은 마찬가지로 팔마의 영화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JFK 암살과 베트남 전쟁을 거친 팔마는 아메리칸 고다르를 꿈꿨던 것이다.  <하이 !> 모든 것의 예증이다.  

 

 

 

<하이 !> 서두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남자의 일인칭 시점을 따라 움직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주관적인 카메라의 활용은 관객들이 주인공과 동일화되도록 만드는데, 마침 남자는 건너편 아파트의 거주자들을 몰래 8미리 카메라로 촬영하는 영화를 제작 중에 있다. 남자 주인공은 로버트 니로가 연기한다. 영화 대부분의 내용은 주인공의 특권화된 관음증적 시선을 따라가지만, 그럼에도 시점과 형식은 인물을 넘어 여러 가지로 분산된다. 가령, 그가 카메라 숍을 방문하는 순간은 16미리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여인 라라의 시점으로 중계되며, 영화의 중간 중간에는 흑인운동을 알리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화면이 삽입되어 있다. 팔마는 고다르가 <남성, 여성> 같은 작품에서 했던 것처럼 시네마 베리테의 관습을 빌려와 다큐멘터리적 진실이 영화의 테크닉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자기반영적으로 보여준다. 크게 보자면 영화는 가지 구성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가 백인 중산계급의 아파트에서 일상을 보여주는주부 다이어리이다. 고다르가 중산층의 일상을 르포르타주처럼 파악한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연상된다. 번째는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로, 백인 중산계급에 대한 흑인들의 비전을 보여준다. 셋째는, 전체를 조망하는 주인공의 시선이 담긴관음증적 영화이다. 예술영화, 포르노그래피, 아방가르드 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60년대 미국 사회를 중산계급의 외설성과 흑인의 바깥의 시선으로 포착한 급진적이면서도 진지하게 유머러스한 영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고양이의 눈은 아게이트 보석의 깊이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마르케의 기욤이 그러하듯 고양이는 모든 걸 지켜본다. 비오는 날 김경의 '상상 고양이'를 보니 그런 냥이와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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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내 사라질거라는 걸 느끼게한다. 그런 아이들은 극장에서 너무 일찍 조숙해지고 사회에선 미숙한 상태로 남게된다. 연애 경험 이전에 헤어짐을 알아버리게 했던 우리 어린 시절의 영화들...

 

 

체코 영화제가 끝난 다음주엔 '필름 아카이브 특별전'을 개최한다. 35미리 필름으로 고전명작을 극장에서 볼 기회다. 이런 雨期엔 지난해 개봉 50주년을 맞았던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을 보는 것도 제법 어울릴 듯. 어릴적 이 영화를 보며 연애란걸 하기전부터 헤어짐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당신이 떠나면 난 죽어버릴줄 알았는데..."

 

어릴적 텔레비전에서 처음 본 이래로 대부분의 장면을 이상할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하는 영화들이 있다.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장면이 생생한 경우. 물론 그 기억들이 맞는 것인지를 가늠할 기회를 갖지 않았던, 혹은 그 이후로 두번다시 보지 않았던 영화들이 꽤 있는 편이다. 르네 클레망의 '금지된 장난'이 그 중의 하나. 특히나 곱슬머리 꼬마가 미쉘을 부르며 뛰어가던 라스트를 마치 극장에서 혼자 본것처럼 착각한다. '필름 아카이브 특별전'에서 '금지된 장난'을 다시 볼 기회. 예전 공개제목은 '금지된 작란'이었다.

 

지배의 공허한 영광

-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빅토르 에리세, 아키 카우리스마키, 페드로 코스타의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






포르투갈의 북서부에 자리한 구시가지 기마랑이스 지구는 포르투갈의 발상지라 불리는 최초의 수도이다. 2012, EU는 이 지구를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했고 1년간 집중적으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는 이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제작됐다. 감독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러했다. 1143년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된 후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거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따라 유럽의 영화계를 대표한 네 명의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 북유럽 핀란드 출신이면서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 그리고 포르투갈을 대표해 페드로 코스타,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가 참여했다.


카우리스마키의 <식당 주인>은 기마랑이스 거리의 한 식당 주인의 하루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언제나 그러하듯 카우리스마키는 과묵하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그린다. 언뜻 <어둠은 걷히고>의 식당이 떠오르는데, 그 영화에서는 비즈니스의 정글의 법칙에서도 오래된 고객과 가게의 일원들 간의 연대감이 돋보였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관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관계는 절연됐고 정서적 차가움이 더하다. 그의 가게에는 종일 손님의 발길이 드물다. 가게를 닫고 저녁에 댄스클럽에서 춤을 함께했던 여인에게 그는 마음을 전하려 하는데 그녀가 기혼임을 알게 되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카네이션이 거리에 버려진다. 라디오로 들리는 소리들은 2012EU의 전례가 없는 헝가리에 대한 경제 제제조치의 내용들이다. EU는 당시 재정적 감축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었다. 간혹 축구경기의 중계방송 소리도 들려온다. 이 고독한 정서에 다른 기운을 불러오는 것은 파두의 노래다. 블루의 컬러 또한 여전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 남자는 그럼에도 길거리의 고양이를 위해 문 앞에 우유접시를 놓는다. 이 단순한 행동이 묵묵히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물론 그가 낮에 식당에서 준비한 어부를 위한 스프에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던 것처럼 고양이 또한 등장하지는 않는다. 남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이다. 이 막연한 기다림이 마음을 울린다.





빅토르 에리세의 <깨어진 창문>은 기마랑이스에서 조금 떨어진 방치된 옛 방직 공장을 무대로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영화다. 일찍이 이 공장에 근무했던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 명씩 옛 공장의 식당을 배경으로 과거 그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1845년에 창업한 이 공장은 1990년에 경영위기로 2002년에 문을 닫았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의 소중한 추억이자 고된 노동의 괴로운 경험들이다. 14세에 일을 시작했던 한 여성은 기계의 소음 때문에 고막 이식 수술을 했는데, 이제 56세라며 인생이 끝났다고 토로한다. 영화 마지막에 한 남자가 아버지의 일을 회상하면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데 그 곡에 맞추어 식당 벽에 걸린 거대한 크기의 사진에 보이는 무수한 익명의 사람들의 얼굴이 화면을 장식한다. ‘포르투갈에서의 영화를 위한 테스트라는 작은 제목이 영화의 시작 부분에 나오지만 평범할 수도 있는 장면이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을 불어오는 이 작품을 에리세의 가벼운 습작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정복된 정복자>는 기마랑이스 지구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담은 가장 짧은 단편이다. 기마랑이스 지구의 거리와 광장, 엔리케스 아퐁수의 동상과 그곳을 관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를 이룬다. 정복자의 동상을 올려다보는 쇼트에 모든 관광객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대조시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페드로 코스타의 <스위트 엑소시스트>는 그 자체만으로는 기마랑이스 지구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영화다. 그는 기마랑이스라는 주제로 얼마나 기마랑이스라는 특정한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포르투갈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시험한 듯하다. 코스타는 대신 1974년 포르투갈의 독재정권에 대항해 젊은 장교들이 궐기한 카네이션 혁명에 대해 말한다. 식민지 카보베르데의 이민자 출신인 벤투라가 이번에도 주인공이다. 그는 이 쿠테타에 참가했다 숲속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에 입원한다. 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청동의 페인트로 칠한 (사람인지 역사의 유령인지, 혹은 기념비적인 조각인지 모를)병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던 코스타는 74년의 카네이션 혁명의 체험이 벤투라와 같은 이민자들에게는 아프리카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고 말했었다. 혁명에의 체험이 달랐던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역사적 순간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감정, 역사, 특별히 제목처럼 공포의 체험을 전한다. 영화의 제목 스위트 엑소시스트1974년에 발매된 커티스 메이필드의 앨범에서 따온 것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포르투갈어권 영화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대한민국 외교부와 함께 5월 1일(목)부터 7일(수)까지 “포르투갈어권 영화제”를 개최합니다. 포르투갈어권 국가들의 다양한 영화 아홉 편을 소개하는 이번 영화제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행사로,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영화는 물론 기니비사우, 동티모르, 모잠비크, 앙골라 등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나라의 영화들을 모두 무료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포르투갈어는 그 긴 역사와 함께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의 토양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중 이번 영화제에서는 포르투갈을 비롯해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의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의 영화는 뛰어난 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인 배급을 통해서는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은 영화들입니다. 이번 영화제는 포르투갈어권 국가들의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주제들을 담은 영화들, 그리고 영화 미학의 혁신을 시도한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합니다.

일찍이 세르반테스는 포르투갈어를 “달콤한 언어”로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포르투갈어권 영화제”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노래하는 아홉 편의 영화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영화제 기간 중에는 <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의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감독에 대한 비평좌담도 준비하였으니 더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포르투갈어권 영화제”에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Bem-vindo!

▣ 특별행사

비평 대담 - 21세기 작가열전 Ⅸ.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일시│5월 3일(토) 15:30 <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 상영 후
참석│이용철 영화평론가,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

▣ 관람 안내

*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을 원하시는 관객은 이메일 thequeseoul@naver.com 으로 미리 신청이 가능합니다. 
단, 선착순이기 때문에 매진 시에는 관람을 하실 수 없습니다. 상영작이 매진 될 경우, 홈페이지나 공식 페이스북에 공지됩니다. 
(메일에는 신청자 이름, 휴대폰 번호, 회차(상영시간), 영화제목을 기재해 주시고 티켓은 1인당 2매까지 가능)

* 보시고자 하는 영화의 티켓을 반드시 티켓 부스에서 받으신 후 입장하셔야 합니다.

* "포르투갈어권 영화제"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lusophonefestival


Cinematheque Seoul Art Cinema proudly presents a Lusophone Film Festival from 1st to 7th May, 2014 under the partnership with the Korean Ministry of Foreign Affairs. This is the very first film festival to show the 9 films from the Portuguese-speaking countries including Angola, Mozambique, Guinea-Bissau and East Timor as well as Portugal and Brazil. All the screenings are for free.

Portuguese is the language that has the 7th largest speaking population in the world, having nurtured the culture in variety and richness. This festival particularly focuses on ‘film’ in Portuguese. Some show the cultural, social or historical themes seriously or humorously; the others try the cinematic challenges. However, you can find the fact that these 9 films have the common value: all of them are chant for life, whether they are sweet or bitter. In addition, these films have rarely been released commercially in Korea, though their cinematic and aesthetic achievement.

We wish you enjoy these bitter-sweet paeans to life in a variety of forms and features. Bem-vindo!

For more information, please visit the facebook page : https://www.facebook.com/lusophonefestival


- All the films are subtitled in English.
- All the screenings are for free but you need the ticket issued at the box office for entrance.
- The box office is open 1 hour before the 1st screening begins of the date.
- You can book the seats in advance via e-mail(thequeseoul@naver.com). Please let us know your name, the mobile number, the title and the date. 2 tickets are available for each screening .
- Reservation on the web ticketing site is not available.
- You are now allowed to attend the screening 15 minutes after it begins.
- No food allowed. You can bring the non-alcoholic beverage with the cap only.


1.센트로 히스토리코 Centro Historico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페드로 코스타, 빅토르 에리세, 아키 카우리스마키2012 | 포르투갈 | 96min | Color
2.바이 바이 브라질 Bye Bye Brazil카를로스 디에게스1979 | 브라질 | 105min | Color
3.죽을 수 없는 Death Denied플로라 고메스1988 | 기니비사우 | 85min | Color
4.영혼의 나무 Tree of Blood플로라 고메스1996 | 기니비사우, 포르투갈, 프랑스, 튀니지 | 1996 | Color
5.영웅 The Hero제제 감보아2004 | 앙골라, 포르투갈, 프랑스 | 97min | Color
6.몽유의 땅 Sleepwalking Land테레사 프라타2007 | 모잠비크, 프랑스 | 96min | Color
7.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 The Last Time I Saw Macao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주앙 루이 게라 다 마타2012 | 포르투갈, 프랑스, 마카오 | 85min | Color
8.베아트리스의 전쟁 Beatriz’s War베티 레이스, 루이지 아퀴스토2012 | 동티모르 | 101min | Color
9.네이버링 사운즈클레버 멘돈사 필로2012 | 브라질 | 131min | Color


S1/S2/S3/
05.01.Thu
17:00
바이 바이 브라질 
Bye Bye Brazil ⓔ 
100min

20:00
개막작 
센트로 히스토리코 
Centro Historico ⓔ
96min

05.02.Fri

17:00
네이버링 사운즈 
Neighbouring Sounds ⓔ
131min

20:00
영웅 
The Hero ⓔ
97min
05.03.Sat

13:30
영혼의 나무 
Tree of Blood ⓔ
90min

15:30
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 
The Last Time I Saw Macao ⓔ
85min

비평좌담_이용철, 김성욱

19:00
베아트리스의 전쟁 
Beatriz's War ⓔ
101min

05.04.Sun13:30
네이버링 사운즈 
Neighbouring Sounds ⓔ
131min

16:30
영웅 
The Hero ⓔ
97min

19:00
바이 바이 브라질 
Bye Bye Brazil ⓔ
100min

05.05.Mon14:00
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 
The Last Time I Saw Macao ⓔ
85min
16:30
몽유의 땅 
Sleepwalking Land ⓔ
96min

19:00
죽을 수 없는 
Death Denied ⓔ
85min

05.06.Tue14:00
몽유의 땅 
Sleepwalking Land ⓔ
96min

16:30
센트로 히스토리코 
Centro Historico ⓔ
96min
19:00
영혼의 나무 
Tree of Blood ⓔ
90min
05.07.Wed 17:30
베아트리스의 전쟁 
Beatriz's War ⓔ
101min
20:00
죽을 수 없는 
Death Denied ⓔ
85min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고독한 남자들의 절도 있는 싸움을 그렸던 버드 보티커 감독의 특별전을 준비했습니다.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부제와 함께 4월 15일부터 27일까지 버드 보티커의 대표작 8편을 상영하는 이번 프로그램에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많은 기대와 참여를 바랍니다.

1916년에 태어난 버드 보티커는 남다른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투우에 크게 매력을 느껴 실제 투우사로 활동하던 그는 루벤 마물랭 감독의 <혈과 사 Blood and Sand>(1941)에서 투우 촬영을 도와주며 영화계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오스카 보티커란 이름으로 십여 편의 영화를 발표한 뒤 1951년에 <투우사와 숙녀>를 찍으며 처음으로 버드 보티커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수십 편의 서부극과 필름누아르를 찍었고, 특히 자신의 페르소나인 랜돌프 스콧과 찍은 서부극들은 ‘BB’ 특유의 스타일로 많은 인기와 비평적 지지를 누렸습니다. 앙드레 바쟁이 <7인의 무뢰한>을 두고 “전후에 본 것 중에서 가장 빼어난 서부극"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나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에서 버드 보티커에게 존경을 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번에 준비한 8편의 영화들은 그의 영화적 특징과 매력이 잘 드러난 작품들입니다. 항상 길에서 먹고 자는 버드 보티커의 주인공들은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으며 언제나 외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총을 꺼내들기에 앞서 적과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그의 모습은 짧은 공감의 순간을 만들어내며 다른 서부극에서 찾기 힘든 품격을 보여줍니다.

달려드는 황소 앞에서도 우아한 몸짓을 유지하는 투우사처럼 싸울 준비를 마친 채 상대를 정면으로 마주했던 버드 보티커의 남자들을 만날 수 있는 “버드 보티커 특별전 - 싸울 준비가 돼있다”에 관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특별히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투우사와 숙녀>를 복원판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한창호, 유운성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2일간 펼쳐질 버드 보티커 감독의 영화 세계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1.투우사와 숙녀버드 보티커1951 | 미국 | 124min | B&W
2.킬러 풀려나다버드 보티커1956 | 미국 | 73min | B&W
3.7인의 무뢰한버드 보티커1956 | 미국 | 78min | Color
4.선다운의 결전버드 보티커1957 | 미국 | 77min | Color
5.부캐넌의 고독한 질주버드 보티커1958 | 미국 | 78min | Color
6.외로이 달리다버드 보티커1959 | 미국 | 73min | Color
7.렉스 다이아몬드의 흥망성쇠버드 보티커1960 | 미국 | 101min | B&W
8.코만치 스테이션버드 보티커1960 | 미국 | 74min | Color


아침에 메일함을 확인하다 '반디앤루니스'의 뉴스레터로 '영화보러 낙원상가 갑니다'라는 사려깊은 글을 읽었다. 글의 필자는 명기되어 있지 않은데,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찾았던 분인가보다. 책도 어려울테지만 "잘 안팔리는 책은 그래도 기다려주는 법이 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은가봅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보며 극장에서 추위에 시달렸던 기억, 만프레드 아이허가 방문했을때 서울아트시네마가 세종문화회관이라도 된것처럼 기뻤다는 글 앞에서 속절없이 미소짓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프레드 아이허가 '서울방문시에 가장 기억에 남는곳이 어디였나'라는 질문에 낙원옥상의 서울아트시네마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었다. 에드워드 양의 질문처럼 내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도 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는 서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이 공감하고 있을까? 뉴스레터의 글은 링크를 걸 수 없는듯해서 본문을 옮겨놓았다. 반가운 목요일 오후.


[반디앤루니스] 책과사람 - 이슈와 추천도서

영화보러 낙원상가 갑니다.

정말 좋은 책인데, 잘 팔리고, 잘 나가는 책에 가려 주목을 못 받고 있다면, 저는 그 책에 더 애정을 쏟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일까, 방법을 고민합니다. 신간은 쏟아지는데, 시대를 잘못 태어나 빛을 보지 못한 책이 너무 많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책은 웬만하면 기다려주는 성질이 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에는 약 460개의 스크린이 있고, 대부분은 대기업의 멀티플렉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멀티플렉스는 조금이라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영화에 대한 고려가 없습니다. 정말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도 말이죠. 세상이 이렇게나 빨리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꼭대기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가 하는 일은 좀 달라 보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월 11일부터 ‘동시대 영화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인데, 일종의 ‘시차’가 보입니다. 이대로 잊히기엔 아쉬운 영화들, 영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만 극장에 머물렀던 영화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시차는 거기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세상이 차마 신경 쓰지 못한 영화들을 보존, 상영, 그리고 존중합니다. 작년 겨울, 추위를 뚫고 저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특별전을 보러 다녔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면, 추워도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관에서 그보다 따뜻할 순 없었으니까요. 저는 서울아트시네마를 다니면서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작년 가을, ECM 레이블의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을 땐 좌석이 매진됐습니다. 그때는 그곳이 마치 세종문화회관이라도 된 것 같아 덩달아 기뻤습니다. 오즈 야스지로를 처음 알고 좋아서 감상했던 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기억,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를 다 보고 영화관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던 기억도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서울아트시네마가 제대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본래의 목적인 영화를 수집, 보관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으며 많은 사람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극장 운영조차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계자가 서울시 온라인 청원사이트에 등록한 글 일부입니다. 해당 글은 서울 시민 1,000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 청원이 성립되었고, 지금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지만, 기뻐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 지원에 관해서는 3년 연속 서울시 정책 우선순위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영화를 결코 많이 보며 살아왔다고 말할 순 없지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 보는 기쁨을 처음으로 알았던 관객으로서,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올해는 서울시의 밝고 뚜렷한 약속을 기대해 봅니다.

공감하는 마음이 커져 변화가 생기길 바라며, 이만 오늘의 [책과 사람]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작자들은 과거에 히트한 작품만 영원히 쫓아다닌다. 새로운 꿈을 꾸려고 하지 않고 옛 꿈만을 바란다. 먹다 남은 음식을 재료로 해서 이상한 요리를 만드는 셈이다.”
- 구로사와 아키라,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모비딕, 2014


영화에서 감독이란 불가시의 존재이다. 나로서는 그런 보이지 않는 감독의 존재를 인지하게 해준 고마운 책 중의 하나가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이다. 이 책은 또한 좌절과 불평등의 인식을 안겨준 책이기도 했다. 비디오가 없던 시절에 순전히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고 감독과 인터뷰를 했던 트뤼포의 놀라운 기억력과 보는 능력에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트뤼포가 거의 외우다시피 보았던 영화들에서 사소한 질문을 할 경우에(가령 <숙녀 사라지다>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경우)는 가끔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은 한 명의 영화광이 자신이 숭배하는 작가를 만나 영화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비평가의 초기시절이 아니라 1966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물론, 인터뷰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시절부터, 그리고 본격적으로는 1962년부터 시작되었다), 트뤼포가 히치콕을 인터뷰한 본심은 자신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 정작 미국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한 것과 히치콕과의 정밀한 인터뷰가 가능하다면 사람들에게 그가 만든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는 표면적 이유는 거짓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는 감독의 자격으로 히치콕의 작업의 비밀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트뤼포는 영화를 만들면서 연출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마다 히치콕 식으로 생각하며 해결점을 찾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영화작법을 알기 위한 시도로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이 비슷한 일을 동시기에 자크 리베트도 했었다. 자크 리베트는 1966년 5월에서 6월까지 ‘우리 시대의 시네아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장 르누아르를 만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사실 그는 르누아르와 3주의 시간을 보내면서 르누아르의 영화적 비법을 전수받을 사심에 이 작업을 했다. 누벨바그 작가들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운, 도제시스템을 거치지 않았던 영화광들이다. 그들이 영화 연출에서 곤경에 처할 때 존경하는 감독을 인터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 ‘히치북Hitchbook’이라 불린 이 책은 프랑스에서는 ‘히치콕의 영화Le Cinéma selon Hitchcock’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정사각형 모양에 350장의 사진을 포함, 총 260페이지의 화려한 책으로 초판이 발행됐다. 미국판은 다음해인 1967년 11월에 출간되었는데, 정작 프랑스판은 5천부가 팔린 반면 미국판은 하드커버가 15,000부, 페이퍼북이 21,000부 가량 판매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한국 초판본은 1994년에 나왔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트뤼포의 친구이기도 했던 야마다 코이치와 하수미 시게이코의 번역으로 1981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이 책의 출간 기념회가 꽤 멋졌다고 생각한다. 트뤼포는 책 출간을 기념하는 리셉션에 히치콕을 초청하면서 출판사가 점심 파티를 제안한 것을 거절하고 감독에게 경의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히치콕의 영화 발췌본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발췌본에는 <39계단>에서 두 남녀가 서로 수갑을 채워지는 장면, <이창>의 마지막 장면, <나는 비밀을 안다>에서 앨버트 홀 시퀀스, <사이코>에서의 욕실 살해 장면과 안소니 퍼킨스가 물걸레질하는 장면, 그리고 자동차가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장면, <새>에서 멜라니가 학교에 도착하는 장면, <마니>에서 정신분석학적인 회합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혁명적인 인터뷰 책은 영화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나, 종종 영화연출이 절망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바이블이다. 지금 이 책이 한국에서는 절판 중이라고 한다. 책의 재출간과 더불어 히치콕의 대대적인 회고전을 시네마테크에서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김성욱)

 

*'씨네21'에 절판된 영화책에 대한 특별기획에 썼던 글이다.

  1. wina 2014.04.07 23:18

    궁금했던 책인데 글로써 소개해주시니 더욱 재출간 소식이 기다려지네요. dvd로만 만나던 히치콕의 작품들을 시네마테크에서 보게 되는 날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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