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의 질문. "주식으로 사라진 돈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혹은, 정서적으로 무미건조해진 헤어진 연인들의 사랑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르트가 안토니오니를 예찬하며 말했던 것처럼 '일식'에서 안토니오니는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대상과 사물이, 인물이 사라질때까지 바라본다. 사물들이 소진될때까지 철저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것. 우리들이 없는 세계를 보는 불안. 이는 진정한 영화(관람)의 모험이다.


일식(1962)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Eclipse(1962) / Michelangelo Antonioni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 미즈키는 거실 뒤편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인기척을 느껴 되돌아본다. 한 남자가 서 있다. 남편 유스케다. “몇 년 만이지?” “3년이네요.” 둘의 대화는 이상할정도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이들 사이의 3년이란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속내를 알기 어려운 꽤나 느긋한 부부의 대화다. 그가 3년 만에 되돌아온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이런 상냥한 환대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실제로 3년 전에 사라졌고, 시체는 발견되지 못했지만 죽은 것은 사실이다. 유스케는 자신의 몸이 바다에 있고, 고기들이 몸을 이미 씹어 먹어 버렸기에 시체를 보더라도 자신을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끔찍한 말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내에게 말한다.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그녀는 성을 내지도, 눈물을 보이지도, 와락 달려드는 일도 없이 상냥하게 유령을 환대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해안가로의 여행>은 부부의 재회를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과묵한 대화는 몹시 인상적이다. 그 리듬을 잊기 어렵다.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리듬과는 무연하다. 누구나 자기만이 느끼는 아픔의 리듬이 있고, 이 순간의 리듬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다. 헤어짐을 견디거나 고통을 멀리 떼어내는데 그들 각자의 고유한 시간이 걸린다. 헤어짐의 아픔,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시간은 이곳 생에 걸친 사람들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이 장면은 저쪽 편, 죽음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도 그 아픔의 리듬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3년 만에 되돌아왔다. 유령의 도래에 담긴 비밀은 부활에 있을게 아니라 3년이란 시간의 간격에 있다. 죽은 자가 비록 당돌하게 되돌아오지만(그렇게 보일 뿐, 유령들 각자 재림의 고유한 리듬이 사연만큼 있다), 그러므로 공포나 놀람보다는 재림이 불러오는 것은 맑은 눈물이다. 브레송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여인의 눈에 촉촉이 젖은, 눈가의 물이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순간 말이다. 죽은 자 가운데 되돌아온 남편이 아내를 이끌어 당도하게 될 해안은 말 그대로 물이 가장 많고 빛나는 곳이다(더불어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에서 과다한 물의 이미지가 불러온 정서를 또한 떠올려보게 된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짧은 글에서 밝힌바 있지만, 3.11 혹은 4.16 이후 당분간 우리는 물의 이미지들에서 어떤 죽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안으로의 여행이란 그러므로 물에 도달하는 것이자(그 곳에서 남편은 죽었다고 한다), 밝게 빛나는 물들(눈물)과 만나는 여정이다. 그가 몹시도 아름다운 곳이라 말했던 이곳은 사실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디에나 있을 바닷가일 뿐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 도달하는 순간 관객인 우리는 이 여행을 납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말 아름다운 곳에 도착한다. 모든 것이 빛나는 곳이다. <도쿄 소나타>에 이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몹시도 감동적인 영화를 이 세상에 가져왔다는 것에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도 <도쿄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와 바다가 등장한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 반복에 대해 먼저 말해야만 한다.

 



<해안가로의 여행>은 피아노를 치는 한 소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느린 템포의 피아노곡이 연주되고 있다. 아이가 있는 거실의 넓은 공간은 몇 개의 가구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는 편인데, 이상한 것이 저 뒤편의 바깥으로 향한 창문에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기에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왜 여기서 창문이 열려 있어야만 할까? 문이 열려 있는 것도,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그 자체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이가 있는 거실의 창문이 바람에 흔들릴 정도로 열려 있다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자면 낯설다Unheimlich. 배치의 의도를 작가에게 묻지 않고는 가볍게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이다. 이 부조리한 장면에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구로사와 기요시의 과거 작을 거론하며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는 무례한 이들이 아닌, 여전히 최근작들을 몹시도 좋아하는 드문 팬들일 것이다. <도쿄 소나타>의 몇 장면들이 이 순간 그들에게도 떠올랐을 것이다. 거론하는 <도쿄 소나타>의 첫 장면은 이러하다. 카메라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측면 운동을 하며 움직여 거실을 보여준다. 거실의 바닥 위로 신문지 한 장이 바람에 날린다. 전경의 탁자 위에 놓인 잡지의 몇 페이지가 마찬가지로 바람에 날려 펄럭거린다. 집의 내부로 폭풍우가 밀려오고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더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저 뒤편,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을게 눈에 들어온다. 가정주부인 메구미가 급히 뛰어나와 창문을 황급히 닫고 마루를 걸레질한다. 물끄러미 창문을 쳐다보던 그녀는 다시 문을 열고는 비가 몰아치는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장면에서 열린 창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장면. 학교에서 꾸지람을 들은 소년은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는 우연히 카네코 피아노 교실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가정집 앞을 지나다 열린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된다. 아이가 고개를 돌려 집을 들여다보면 피아노 선생이 한 소녀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아이는 천천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얼마 후, 꼬마는 그 선생에게서 피아노 강습을 받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 피아노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아이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강당의 뒤 편 창문에서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이 어쩌면 <해안가로의 여행>의 첫 장면과 가장 유사하다 말할 수도 있겠다. 열린 창문으로 바깥의 바람이 실내로 들어온다. 반대로 내부의 무언가가 바깥으로 향하게 되기도 한다(<도쿄 소나타>에서 열린 문으로 들어온 정체불명의 도둑에 이끌려 메구미는 해안가로 납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설정을 <해안가로의 여행>의 기이한 여행과 연결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해안가로의 여행>의 첫 시작은 비슷한 구도에서 시작한다. 한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뒤편의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이 펄럭거린다. 잠시 후, 피아노 선생인 미즈키가 등장해 아이에게 천천히 연주할 것을 주문한다. 나중에 소녀의 어머니는 그런 미즈키의 주문을 못마땅해 한다. 조금 밝게, 빠르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는 없느냐고. 이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쯤에 다시 반복되어 나온다. 유스케와 해안가로의 여행 중에 음식점에서 함께 일하게 된 미즈키는 우연히 식당에 있는 피아노 위에 놓인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악보에 손이 끌린다. 무심결에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연주한다. 갑자기 가게 주인 여인이 달려와 그녀의 연주를 제지한다. 허락도 받지 않고 연주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 말한다. 격렬한 제지에 미즈키는 적잖게 놀라는데, 그녀는 슬픈 사연을 털어 놓는다. 그녀의 여동생이 연주하던 곡이다. 동생은 어릴 때 연주를 많이 했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곡을 완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린 나이에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부모는 피아노를 버리자 했지만, 악기가 동생의 몸의 한 부분이라 여긴 그녀는 동생을 기억하며 여태껏 버리지 못하고 있던 터다. 사연을 들은 미즈키는 자기가 그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싶다 말한다. 그러자 응답처럼 갑자기 어린 아이의 유령이 나타난다. 언니는 망연자실 바닥에 쓰러진다. 미즈키는 아이가 곡을 연주하도록 피아노로 이끈다. 아이는 건반 위에 손을 얹고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아마도 예전처럼 실력에 부친 듯 쉽지 않아한다. 연주를 지켜보던 미즈키는 나지막이 소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피아노가 놓인 식당 저 뒤쪽의 열린 창문으로 커튼이 마찬가지로 펄럭거린다. 실내는 잠시 어둠 속에 잠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이 이 세 명의 여인들을 어둠 속에서 감싸고 있다. 유미코는 소녀의 연주를 응시하고, 저 뒤편에서 언니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동생의 피아노 연주를 조용히 듣고 있다. 세 여성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구도가 인상적이다. 상냥한 기쁨, 혹은 부드러운 슬픔의 순간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지금 어쩌면 나루세의 세계에 근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미코의 눈에 촉촉이 눈물이 고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눈물을 반짝거리고 있다. 아이는 연주를 마치고 컷이 되면 장면이 바뀌어 이내 소녀는 사라지고 없다. 어둡던 식당이 천천히 밝아진다.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미즈키가 아이에게 주문했던 느린 템포의 연주는 기실은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리듬이었을 것이다(물론 그 템포는 남편과 사별한 미즈키의 삶의 리듬이기도 했다).




이런 식의 연출은 전형적인 호러영화와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유령이 어떻게 출현하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 반대가 중요하다. <절규>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2007년에도 그는 사다코의 유령처럼 어떻게 기발한 방법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흥미를 느끼는 것은 어떻게 유령이 사라지는가이다. 하늘로 날아갈 것인지, 문을 열고 나갈 것인지, 계단을 타고 내려갈 것인지 등등. 이런 생각은 호러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일찌감치 무효로 하는 설정이지만 더 흥미로운 질문이다. 유령은 이 세계에 갑자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빈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어떻게 유령을 보게 될 것인가. 혹은 유령임을 어떻게 판명할 것인가.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유령과 결별할 것인가. 횡으로 넓은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이런 빈 공간의 여백을 담아내는데 적절했을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달라진다. 유스케는 왜 돌아왔을까. 그것도 3년의 시간이 걸려서. 비록 유스케가 생전 좋아했을 음식을 요리하는 때에 매번 돌아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그의 첫 출현이 그랬다. 마찬가지로 그가 다시 사라진 이후-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즈키 그를 두고 떠났던 일이지만- 다시 그를 불러내기 위해 음식을 요리한다), 이는 개연성이 없는 하나의 설정,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유령은 언제나 빈 공간에 거주한다. 그의 출현은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다만 그를 소환하거나 사라지는 것에 영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프레임이라는 틀(구조물)과 컷 이라는 분리장치다. 영화의 프레임은 가시성의 틀이다. 틀 안에는 물론 보이지 않는 공백들도 담겨진다. 또 다른 하나. 하나의 컷에서 다른 컷 사이의 공백, 어둠에서 유령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가령, 한 컷에서는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다음 컷에서는 소녀는 없고 피아노만 놓여있다. 멜리에스의 영화처럼 트릭필름이라 불렀던 초기영화부터 있던 아주 단순하면서도 오래된 방식이다. 프레임이든 컷의 변경이든, 여기서 유령의 출현과 사라짐은 불가해한 바깥에의 감각을 강렬하게 한다. 프레임 안으로 바깥의 세계를 유입하는 것, 혹은 컷의 바깥으로 유령을 사라지게 하는 것.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유령이란 존재(와 그의 출현과 사라짐)가 인물의 심리와 무연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유령적 존재를 라울 루이즈의 용어를 빌려 ‘정오의 유령’이라 부르고 싶다. 루이즈가 들려주는 기이한 일화. “어느 날 한 사람이 칠레의 거리를 걷다 40년 전의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진부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다거나, 우유 값이 올랐다거나, 근처 다리에 구멍이 있다던가 하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얼마 후 그가 깨닫는다. 그 친구는 몇 년 전에 죽었던 것이다.” 루이즈는 이러한 존재를 ‘정오의 유령’이라 불렀다. 이는 나쁜 이들에게 복수하는 그림자나 고딕 유령이나, 억압된 것의 귀한이나 악의 있는 힘으로 살아 있는 자에 출몰하는 그런 유령이 아니다.

그가 돌아왔다. 처음에 미즈키는 유스케가 돌아온 것이 꿈인가 싶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깨어난 그녀는 그러나 “나랑 같이 가겠어. 아름다운 곳이야.”라 말한다. 이렇게 되돌아온 자가 같이 가자고 하는 곳은 그러나 피안의 세계가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현실의 세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실의 세계의 다른 곳이다. 그를 돌보아주었던 사람들이 있던 곳이다. 부부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기차를 타고 여행한다. 때론 버스를 타기도 한다. 현실의 수고는 유령이라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유령 유스케는 심지어 길을 몰라 기차역의 승무원에게 행선지를 묻기도 한다. 그들은 때론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여전히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어느 날밤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왜 돌아왔어요? 그는 대답대신 묵묵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다시 묻지만 왜 유스케는 3년 만에 되돌아온 것일까. 그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수백 장의 기도문을 썼던 응답이 되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마치 제사상의 음식처럼 어느 날 우연히 마련했기 때문인가. 사실 그 이유는 미즈키에게 연유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의문은 미즈키가 아닌 유스케에게 전적으로 속한 것이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아내에게 되돌아오기에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둘의 여행은 아내가 따라나선 그의 사후 3년의 행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녀에게 다가오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던 이유를 가늠하는 일은 드라마의 논리에 따라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설명은 그러나 흥미롭지 않다. 영화는 대신 다른 길, 꽤 물리학적 경로를 따라간다. 영화 후반부에 유스케는 시골 작은 마을에서 과학 선생처럼 주민들에게 우주의 기원에 대해 말한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언어로 우주의 기원과 존재에 대해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무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 설명은 드라마의 개연성과는 무연한 영화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자와 함께하는 여행은 단지 둘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유령이면서도 3년을 살았던 그의 행적을, 사후생의 흔적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아내는 그런 다른 생을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곳이 있어, 함께 가지 않겠어. 유스케가 미즈키를 여행으로 안내하는 주문이다. 아름다운 곳. 사실 그들이 찾은 곳은 절경도 실로 아름다운 곳이라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작은 마을들이다. 유스케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그러므로 아직 볼 수 없었던 바깥의 세계다. 평범하지만, 전적으로 유령의 눈에 비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의 세계란 아직 미즈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아직 들리지 않았던, 그러므로 아직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관련된다.


영화의 후반부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나는 궁금해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이 둘은 함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즈키는 지금 유스케와 같은 것을 보고 있던 것일까? 미즈키는 지금 영화에 고유한 특별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영화란 나 이외의 사람에게도(실은 죽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고유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한다. 존재하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최대한으로 줄여가는 것.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보는 사람이 공유하는, 영화적 체험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안가로의 여행>은 이를 가장 감동적으로 느끼게 하는 영화다.

사족을 달자면, <해안가로의 여행>은 올해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체험하고 싶다. 아직 정식 개봉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그 때에 남은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 더 기쁜 일은 이미 구로사와 기요시가 또 다른 신작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크리피>라는 작품으로, 일가족 실종사건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다. 올 6월에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늘 있었지만) 돌아온걸 환영해요.


보이지 않는 나루세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좋아했던 에드워드 양은 그의 영화적 특징을 ‘불가시의 스타일’이라 말했다. 오즈와 구로사와 아키라와 비교해 보자면 스타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양은 <흐트러진 구름>의 라스트 신을 그 사례로 지적한 바 있다. 물론, 나루세의 영화에 스타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루세 영화의 옥외 장면에서 인물들이 둘이서 걷는 순간을 천천히 카메라가 따라가며 보여주는 이동촬영은 그 자체로 완벽한 스타일이다. 오즈 야스지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루세의 연인들은 때론 멈춰 서고, 때론 되돌아보며 걷는다. 이토록 아름답게 연인들의 발걸음을 완성한 감독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루세의 스타일은 비가시적이다. 그간 한국에서 공개된 나루세의 영화가 대체로 12-13편 정도의 비슷한 목록들이 반복적으로 회자됐기 때문이다.
12월 20일부터 시네마테크가 준비한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은 그런 나루세의 비가시성에 주목해 열리는 행사다. 지난해 처음 이 회고전에 붙인 명칭은 ‘Unseen Naruse’였다. 이번 회고전은 총 26편의 작품이 상영되는 최대 규모의 행사다. 나루세는 오즈 야스지로와 달리 예도물 藝道物 영화에서 연애물, 부부 이야기, 여성 일대기, 가족물, 시대물, 문예물, 그리고 심리 서스펜스 영화(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후기작인 <뺑소니 ひき逃げ>(1966) 같은 영화가 있지만, 아쉽게도 이번 회고전에 포함되지는 못했다)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이번 회고전에는 실로 폭넓은 장르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나루세는 제작사가 제안한 기획들을 결코 거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의 약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나루세는 영화사가 제시한 예산과 스케줄을 언제나 준수한 월급쟁이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탁월한 예술가이지만 동시에 어떤 장르 영화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뽑아낸 ‘시스템의 작가’이기도 하다. <여배우와 시인 女優と詩人>(1935)이나 <여자 안의 타인 女の中にいる他人>(1966) 같은 작품들이 빠진 것이 못내 아쉽지만, 여전히 불가시의 영역에 있는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에 한 발 더 들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김성욱)

시네마테크 소식지 / 12월호. 에디토리얼



 

 

두 편의 '아이들' 영화를 이번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에서 상영한다지난해 베니스 인 서울에서 <용감무쌍 L'intrepido>(2013)을 소개하면서 지아니 아멜리오 감독에 대해 잠깐 언급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의 작품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바가 거의 없다그의 전작을 소개하는 일은 아직 요원하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아이들 도둑>을 통해 그의 작가적 세계에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베니스 인 서울'에서 소개한 지아니 아멜리오의 '용감무쌍'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  http://cinematheque.tistory.com/434 )

영화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어머니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한 11살 소녀 로제타와 그의 동생 루치아노가 젊은 경찰에 끌려 고아원으로 호송되어 가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힘든 현실에 노출되어 사회에 내던져진 아이들과 그들을 지키려는 경찰이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이 밀라노에서 시작해 시칠리로 향하는 여정으로 그려진다

아멜리오의 작품은 원제가 암시하듯이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떠올리게 한다내용적으로는 데 시카의 또 다른 두 편의 영화 <아이들이 보고 있다 I bambini ci guardano >(1942) <구두닦이 Sciuscià>(1946)와도 어울린다네오리얼리즘과의 연계를 따지자면 밀라노를 배경으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루키노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현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며비전문 배우의 기용과 로케이션의 활용드라마틱한 구조를 넘어선 보고와 산책의 형식이 분명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유산을 느끼게 한다. <자전거 도둑>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버지와 그를 따르는 아들의 교감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경찰 안토니오와 두 아이들의 감정의 교류가 영화 후반부의 가장 중요한 정서이다물론 차이는 있다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에서 자전거는 모든 이들이 원하는노동자의 삶에서 중요한 물질적 수단이다반면아멜리오의 영화에서 자전거를 대신한 아이들은 물질적 대상도 아니며 반대로 모두가 원치 않는 사회가 버린 이들이다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들을 어떻게 포착하는가이다유일하게 도둑질의 대상이 되는 것이 영화 후반부프랑스 여행객의 손에 들린 카메라인 것은 사소한 설정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이 카메라로 프랑스 여행자들은 소녀의 얼굴을 몰래 촬영했고이들은 나중에 소녀가 매춘에 가담했던 사실을 알고는 동정을 표한다로제타는 이를 거부한다

 

 

 

 

밀라노에서 시작해 시칠리로 향하는 로드무비의 여정은 세 가지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영화는 도시에서 바다로, 그리고 열린 공간으로 향한다. 이러한 공간적 이전은 물리적 이전이자 동시에 정신적 이전, 영혼의 순례에 가깝다. 이는 무엇보다 출발점에서의 아이들의 상태에서 그들이 정신과 영혼을 회복해가는 이야기의 설정이다. 아이들이 놓인 환경과의 관계가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에서 열린 자연적 환경으로 확장되어 간다. 그리하여, 여름빛으로 가득한 해변가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아이들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이 순간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게 될 장면이다. 이는 처음, 밀라노의 아파트, 범죄가 저질러지는 풍경과 사뭇 다르다.

둘째, 이 여정은 그들의 기원, 즉 시칠리가 고향인 그들의 고향, 근원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안토니오의 고향 또한 시실리 근처, 칼라브리아다. 이들이 시실리 해변에서 휴양을 하는 것은 그러므로 의사 가족적 관계, 즉 정서적 연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해변은 또한 그녀가 고민하던 문제, 즉 영혼의 순화와 연결된다. 일종의 제의적 여정이다.

셋째, 동시에 이 이동은 이탈리아의 역사, 말하자면 전후 이탈리아에서 시칠리 등 남부에서 북부 공업지대 밀라노로의 이민의 역사, 이주의 역사를 반대의 방향으로 거슬러 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여정은 90년대의 시점에서 이탈리아 역사의 과정을 거슬러 가는 것이다. 덧붙이지만, 아멜리오 감독 또한 칼라브리아 출신으로, 1962년에 로마로 이주해 텔레필름의 작업을 거쳐 1982년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여정은 그러므로 감독의 자전적 여정과 닮았다.

그렇다고 공간의 이전이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다. 여정과 더불어 이탈리아 전역에 놓인 사회의 문제가 겹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밀라노의 범죄적 환경, 로마 테르미니역 근처의 노숙자들, 집시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로제타는 여기서 노숙자의 술을 한잔 몰래 훔쳐 마신다. 게다가 불관용은 도처에 있다. 안토니오의 고향, 칼라브리아에서 친척들이 보이는 불관용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아이의 과거 사실을 폭로하는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들. 사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갈 곳이 없다. 칼라브리아에서의 불관용은 마찬가지로 동시대, 알바니아인들의 이탈리아 남부로의 대량이주의 역사와도 맞물린다. 1994년작인 <라메리카>는 알바니아 이민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모든 뛰어난 영화가 그러하듯 우리는 다른 잠재성의 순간들을 지켜볼 수 있다. 가령, 아이들의 만남. 그들만의 방식의 시선의 아름다운 교환의 순간이 있다. 가령, 가령, 아이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수녀원에서 동생 루치아노가 천천히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교실을 둘러보고 병원에 혼자 누워 있는 여자아이인지 남자애인지 알 수 없는 병약한 아이와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병실의 아이는 손거울을 보며 혼자 노래를 부른다. “나는 아주 작은 물고기를 보았네. 지독한 감기에 걸렸고 더러운 물에 병들었지만, 병원에는 그 물고기를 위한 방이 없었다네.” 루치아노는 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도둑과 연결되는 것이 카메라인 것은 꽤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본다, 만난다, 마주한다와 대비되는 것이 카메라와 연결된 사진의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처음 잡지에 실린 아이들의 모습이다. 로제타는 사진을 극도로 거부한다. 보도에는 아이들에 대한 묘사의 추악함이 있다. 영화는, 원래 실제로 신문에 실린 십대 매춘에 대한 아이의 사진에서 촉발했다. 영화에서 잠깐 잡지의 커버가 나오기도 한다. 아멜리오의 시도는 아이의 존엄을 회복시키고 그녀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돌려주는 것에 있다. 그것이 이 여정의 진정한 목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여정은 아이로 향한 관음증적 시선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로제타는 단지 매춘을 했다는 과거적 사건에 사로잡혀 있는 것만이 아닌 잡지의 퍼블릭한 이미지에 감금되어 있다. 관음증의 시선, 불관용의 시선, 매스미디어의 퍼블릭한 선정적 시선에서 벗어나 감독은 아이의 (도둑질 당한)이미지를 되돌려주려 한다. 아이에게(혹은 아이를 바라보는) 정당한 이미지를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러니 사회적 차원의 해결이 결말로 제시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을 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로 향한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불관용의 시선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두 아이가 진정으로 함께하는 순간을 영화의 마지막에 보게 될 것이다.





소마이 신지의 숀벤 라이더는 아멜리오의 영화와는 다른 방향에서 아이들을 담아낸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보다는 그에게는 몸짓을 그려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목할 만한 롱테이크에서 요점은 테크닉이 아니라(물론 타무라 마사키의 촬영은 그 자체로 뛰어나다 할 수 있다. 그는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의 촬영감독이자, 오가와 신스케의 산리즈카 시리즈의 다큐를 촬영했던 장인이다), 그 긴 지속에 담긴 아이들의 실존이다. 서툴러도 상관없다. 흔들려도 상관없다. 움직임의 지속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얼굴을 분별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는 개별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몸짓들, 움직임의 긴 여정을 무엇이라 말해야만 할까?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지리적 여정을 거듭하고, 유괴당한 아이를 찾겠다지만, 이 여정은 그 목표와는 상관없이, 가능한 방향의 모든 흔적들을 탐사한다. 부모와 가족이 사라진, 마찬가지로 아이 같은 야쿠자 어른들은 어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없는 세계를 통과해나간다




영화의 긴장은 매번 아이들의 서투른 분노에서 나오는데, 이는 80년대 동시대 액션의 설계와는 사뭇 다른 길이다. 가령, 숏들의 연결에서 나오는 폭력의 리듬을 대신하는 것이 그 반대의 몸짓이라 할 수 있다. 소마이 신지의 관심은 인물의 실존, 그가 놓인 상황, 그리고 시간을 거듭해가는 변형의 과정, 말하자면 변형의 지속을 담아내는 것에 있다. 클로즈업과 컷 어웨이, 혹은 명상적 장면들 대신에 끈질긴 롱테이크가 있다. 이는 우아한 안무와는 사뭇 다른, 장애물을 뛰어 건너야만 하는 허들 경주자의 몸짓처럼 끈질기게 이어가는 액션이다. 서투르지만 어떻게든 이어가는 지속의 몸짓. 여기에 예기치 않은 행동들과 갑작스런 중단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왜 아이들은 그렇게 뛰고 달리는가? 미지의 무엇이 부르는 육체의 뒤틀림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은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다른 쪽으로 몸을 움직여 간다. 컷의 반응에서 나오는 액션 게임은 그러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부와 외부의 게임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로 이끌리는 몸의 움직임을 그려내야만 한다. 그리하여 요코하마, 아타미, 나고야, 오사카로 향하는 지리적 여정 외에 장소 밖의 부름, 공간의 흔들림이 있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중단의 신호에도 장애물을 넘어서서 가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놀랍고도 고통스런 경험이다.

납치된 아이를 찾아가는 모험이 전시하는 것을 이렇듯 아이들의 특별한 힘의 실천이다. 영화의 몹시 감동적인 순간은 강둑에서 벌어지는 액션신이다. 수차례 아이들이 물에 빠지고 뛰어내린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자꾸 던지고 내던진다. 물의 흔들림과 나무들의 진동이 있다. 도달하고, 달리고, 안 빠지려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총격의 순간이 있다. 이 경험이 그들을 변형한다. 통과의례의 긴 시퀀스를 거쳐 그들이 살아남는 것은 결국, 살아가는 것의 신비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살아가야 한다. 2014년, 4월 이후,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벌써 열번째다. 한 여름 시네바캉스를 처음 시작한 것이 2006년의 일이다. 그 해 7월 25일, 개막작은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였다. 무려 40편의 영화를 쉬는 날 없이 하루에 네 편씩 한달간 상영했다. 에릭 로메르의 8편의 바캉스영화들, 불멸의 스타전, 특별전:비시 정권하의 프랑스 영화, 뮤지컬 영화걸작선, 공포특급, 마스터즈 오브 호러, 필름 콘서트, 씨네키드, 시네클래스 등의 행사가 열렸다. 시네바캉스 열 번의 포스터들을 되돌아보고 있으면 마치 가지 못했던 여름 휴가의-사실 그 십년간 영화제 때문에 여름 휴가를 갔던 적이 없기에-기억들을 떠올리는 것 같다. 이제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여름 바캉스를 떠난다. 2006년 첫 시작을 알렸던 개최의 변을 떠올리면서.

한 여름의 영화여행 - 시네바캉스를 시작합니다!
7월 25일부터 시작하는 ‘시네바캉스 서울’은 서울아트시네마가 해마다 5월에 개관을 기념해 개최하던 ‘시네필의 향연’을 좀더 대중적으로 확대한 행사입니다. 작품수를 약 60 편으로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기간도 늘어났고 동시에 영화감독들의 연출특강과 교육행사,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키드’, 그리고 영화와 음악이 함께하는 ‘필름콘서트’ 등의 다양한 행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영화애호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편하고 자유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시네바캉스 서울’은 기존의 거대한 영화제들과 비교하자면 아주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치러지는 영화제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함께 보고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길 원하기에, 다른 호사스런 행사는 없습니다. 레드 카펫도 필요 없고 개막을 알리는 떠들썩한 이벤트 공연도 없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혹은 여행을 떠나듯 극장을 방문해 해변의 폴린느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재회하는 장면을, 폭풍우 속의 장 가뱅과 미셸 모르강을, 매혹적인 자태의 마릴린 먼로와 도미니크 산다를 스크린 위에서 만나며 토드 브라우닝, 사무엘 풀러, 브라이언 드 팔머, 존 카펜터, 다리오 아르젠토와 함께 공포의 휴가길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축제를 영화로 떠나는 ‘바캉스’라 칭한 것도, 이 단어의 본래 의미인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제도화된 영화, 시간의 속박에 갇힌 영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다양한 영화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바캉스는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 아니라 한 달간 지속하는 긴 여행입니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그동안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열정적인 관객들과 새롭게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의미 있는 만남의 기회가 생기기를 원합니다.

영화는 장소의 기억과 결합한 대중문화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참된 기쁨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대형의 스크린에서 우리들은 감각, 감정과 감동을 경험하며 추억의 일부가 되는 다양한 세계의 기억과 만나게 됩니다. ‘시네바캉스 서울’은 그런 대중의 기억이 간직된 다양한 영화들을 극장에서 새롭게 다시 만나는 행사입니다. 여행은 매번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대감과 만남을 도모하는 용기를 제공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와 함께 즐거운 휴가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2006. 07.25.



우리들의 환대 Our Hospitality

버스터 키튼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에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에 서커스와 마임에 기원한 무성영화의 근본적인 장르인 뷔를레스크(익살희극)의 창시자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유성영화가 도래하던 2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잃기 시작해, 30년대 이후에는 할리우드에서 완전히 망각되었다. 1933년 이후에 그는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고작 <선 셋 대로>나 <라임 라이트> 정도였을 뿐이다. 이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그저 미미한 조연에 불과했다.

키튼의 영화는 그러나 1950년대에 새롭게 발굴됐다. 하나의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1954년 어느 여름밤. 버스터 키튼은 아내와 함께 <제너럴>이 상영되는 L.A.의 코로넷 극장을 우연히 방문했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자신의 옛 영화를 결코 보려하지 않았던 키튼이기에 이 방문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극장의 지배인이었던 레이먼드 로하우어는 키튼이 극장을 방문한 것에 놀라 그에게 무성영화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키튼은 자신의 차고에 몇 편의 영화가 있다며 필요하다면 가져가라고 그에게 말했다. 다음 날, 키튼의 집을 방문한 로하우어는 그의 주차장에서 <세 가지 시대>, <전문학교>, <셜록 주니어>, <항해자> 등의 질산염 프린트를 발견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미 파산한 ‘버스터 키튼 프로덕션’의 유실된 영화들이 수집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할리우드 무성영화의 80% 이상이 소실되었음에도 키튼의 영화는 이례적으로 보존되어 1950년대 미국의 극장에서 다시 새로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영화는 6-70년대에 새롭게 조명되었다. 1965년에는 사무엘 베케트의 <필름>에 출연했고, 1968년에는 케빈 브라운로우의 무성영화에 관한 인터뷰책 'The Parade's gone by'가 출간되었고 같은 해 '그레이트 스톤 페이스'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이번 특별전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5년(마찬가지로 키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해)에 다시 화려하게 키튼은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1995년. 키튼의 탄생 100주년의 해에 ‘버스터 키튼의 예술’이란 세 박스 세트의 DVD가 출시되었다. 11편의 극영화에 19편의 투 릴 영화들이 DVD에 수록되었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키튼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DVD의 출시 덕분이었다.

버스터 키튼의 회고전을 처음 개최한 것이 이미 2004년의 일이다. 당시 레이먼드 로하우어의 방대한 무성영화 컬렉션-700편-을 인수한 곳이 두리스 코퍼레이션으로 이 곳의 팀 란자 씨의 협조로 이번에 상영하는 영화들 대부분을 필름으로 상영할 수 있었다. 당시 31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방대한 두리스 필름의 무성영화 컬렉션이 다른 곳으로 팔리면서 한동안 대규모 회고전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십년이 지나 다시 한번 큰 규모의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2004년을 기억하며 그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터 키튼에 대한 "우리들의 환대"를 표하고 싶다. 그는 최선을 다해 불가능한 일을 완수하고 고독한 형상의 이미지를 남기고 사라졌고, 다시 우리들에게 나타났다. 그는 형편없는 패가 들어와도 태연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새로운 리듬으로 사랑하고 이 세계에서 가장 쿨하게 생존했다. 댄 칼라한이 했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그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단지 우리들의 웃음이었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Welles after Welles 

 

 

 

 

 

오슨 웰스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훼손하는 데 꽤 열중했던 작가다. 그는 의도적으로 몸을 부풀리고 과도한 분장을 하거나 앙각촬영으로 자신의 몸을 덩치크게 표현하려 했다. 그는 비만에도 무관심했다고 한다. <아카딘 씨>에서 그의 몸은 존재만으로도 인물들을 압도한다. <악의 손길>에서 그가 처음 등장할 때 마르린 디트리히의 놀란 표정은 잊기 힘들다. 미국의 일부 평자들은 그가 후기에 텔레비전이나 B급 영화 등의 저급한 역에 (젊은 웰스의 건장한 몸과 비교해) 예의 비만의 몸으로 출연했던 것을 한탄했다고 하는데,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만은 아닌 어떤 의도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그는 십대부터 조숙한 재능을 발휘했고,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당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도 누리지 못했던 편집권을 얻어 <시민 케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의 젊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후 60년대의 뉴웨이브 영화들처럼) 젊음을 찬양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는 젊음보다는 일찌감치 이미 노년을 연기했다. 노년의 권력과 젊음의 열정 사이에는 심각한 거리가 있고 웰스는 이를 처음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설은 제목에도 이미 나타나는데, 케인이라는 거대한 권력자와 시민이라는 차이가 이 영화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로즈버드’는 그러한 차이를 연결하는 마법의 열쇠이지만 <시민 케인>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웰스는 미국이 자신을 존중했던 것이 전적으로 젊음을 요구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라 말한 바 있다. 젊은 미국은 동어반복처럼 항상 젊음을 예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그 젊음을 지속시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웰스의 진정한 저항은 그러므로 젊음을 일찍부터 부정하거나 그것에 도전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 생각엔 젊음이라고 치기를 부리는 것보다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젊음의 저항처럼 보인다. 웰스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 그가 끊임없이 자신을 비대하고 늙은 모습으로, 혹은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젊고 잘생긴 얼굴을 가리고 의도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출연하려 했다. <심판>에서 웰스는 꽤 의식적으로 얼굴을 숨기고, 11명의 다른 캐릭터의 목소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속임수도 즐겨 했다. <오슨 웰스와 일하며>(1994)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웰스가 마술과 장난, 속임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정말 뛰어난 마술사였다.

 

 

 

말년의 걸작 <거짓과 진실>(1974)은 그런 웰스의 거짓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천재적인 그림 위조범, 즉 ‘거짓’이라는 책을 쓰고 하워드 휴즈의 가짜 자서전을 쓴 클리포드 어빙의 이야기에 웰스 자신이 전 미국인을 상대로 속임수를 썼던 <우주전쟁>의 라디오극 에피소드를 더한다. 이 영화에서 웰스는 “나 같은 사기꾼은 그러나 사실 진실을 추구합니다. 이걸 건방지게 표현하자면 예술이라 할 수 있죠. 피카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고요”라고 말한다. 그는 젊음 뒤의 노년, 혹은 눈에 보이는 세계 뒤편의 다른 책략과 연극을 영화로 다뤘던 작가다. 그가 연극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이런 다성성의 세계에 깊이를 더한다. <시민 케인>이 뛰어난 작품임에도 여전히 웰스를 <시민 케인>의 작가로만, 그의 젊은 시절과 혁명적 데뷔를 찬양하는 것에 머무는 일은 그래서 아쉬운 일이다. 이번 ‘오슨 웰스 백 주년 회고전’에서 이른바 웰스 이후의 웰스에 더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 그의 노년성이야말로 영화적 젊음의 모습이었다. 웰스에 관한 뛰어난 평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이렇다. 웰스는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제대로 발견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재발견의 대상이 되는 작가였다. 여전히 <아카딘 씨>가 대관절 뭘 말하는 영화인지(고다르는 <필름 소셜리즘>에서 아카딘 씨의 비밀 리포트에 대한 궁금증을 보여준 바 있다), <심판>이 현대영화가 새로 등장하던 60년대의 시기에 웰스의 어떤 태도를 담고 있는 작품인지, 왜 <불멸이 이야기>가 오슨 웰스의 '완벽한 영화'인지, 혹은 <심야의 종소리>가 왜 주목할 만한 작품인지를 말하는 이들은 드물다. 물론 쉽게 말하기도 어렵다. 웰스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웰스의 회고전 방문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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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9 18:50

    비밀댓글입니다

 

 

 

예전부터 내가 쓰는 메일이나 트위터, 페이스북의 아이디는 대체로 Hulot이다. 버려진 숲처럼 방치되고 있는 이 블로그의 이름도 “Cinematheque de M.Hulot”이다. 가끔 원고를 청탁하는 기자나 강의를 의뢰하는 분들에게 전화로 메일 주소의 알파벳 단어를 또박또박 불러줄 때마다 다시 환기되곤 하는 이 이름은 대체로 '훌로' 혹은 '휠롯'으로 불리곤 했다. 정확한 프랑스식 발음은 윌로이다. 시네필들은 대체로 알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괴상한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물론 나 또한 그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엘르 잡지의) 에디터의 질문을 받기 전까지도 내가 왜 윌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90년대 초에 처음 비디오로 그를 만났던 것 같다. 내가 쓸데없이 본격적으로 영화에 빠져들던 때이다. <윌로씨의 휴가>라는 작품이었는데, 발랄하긴 하지만 큰 웃음을 만들기엔 재주가 없는 프랑스에서 백년에 한 번 나올까 싶은 자크 타티라는 영화감독이 1953년에 만든 작품이다. 윌로는 타티가 연기한 그의 분신이다. 영문자막이 들어간 미국판 비디오였는데, 사실 자막이 필요 없는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에 가까운 영화였다. 그 당시 나는 새벽에 두 세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을 의식처럼 치르고 있었는데, 불안한 정신을 추스르려 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해야 했고 할 일을 찾아야만 하는 낮의 일들은 대체로 피곤했고, 때마침 누나가 구입한 비디오플레이어 덕분에 밤에는 눈을 뜨고 꿈을 꿀 수 있었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지만, 코미디와 뮤지컬이 새벽의 주요 목록이었다. 내 앞의 미래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계획 없는 삶에 그래도 가급적 진지한 영화는 새벽에는 피했던 탓이다. 그때 헤매었던 비디오 무덤사이로 윌로라는 아저씨가 나타났다. 어릴적 이끌렸던 배우들의 목록은 많았지만 성인이 되어 무심하게 매혹을 느낀 첫 아저씨였다. 

 

그는 시동이 종종 꺼지고 소리만 요란한 20년대산 구식 아밀카를 몰고 남들처럼 바캉스를 떠나는 평범한 아저씨로 나타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이다. 그는 외톨이지만 그렇다고 채플린처럼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떠나는 방랑자는 아니다. 해변을 찾는다고 여자를 꼬드기거나 낭만을 즐기는 식의 그 흔한 동기도 없다. 반겨줄 친구나 함께 시간을 보낼 애인도 없다. 남들처럼 그도 휴가를 떠났을 뿐이다. 이름도 없고 약간은 격식 차린 '무슈'라는 표현이 앞에 붙거나 '나의 삼촌' 같은 식의(그 다음의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말할 때 호명되는 식으로 등장한다. 사실 그는 언제나 타자의 눈과 말을 빌려 존재성을 얻은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이다. 내면의 실체가 불분명한 존재. 한 여름 바캉스에 그가 처음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캉스의 '바쿰'이라는 어원의 의미가 그러하듯, 그는 텅 빈 존재이다.

 

윌로는 불평 없는 과묵한 아이이거나 철없는 어른이다. 여기에 축복과 고독이 교차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로 놀러왔지만 휴가가 끝나면 다시 부모의 손에 강제로 학교나 집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바캉스에서 탄생한 월로는 되돌아갈 곳이 없다. 그가 떠났던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윌로는 매일 바캉스를 떠나거나 즐기는 축복받은 아이이자 아직도 바캉스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여전히 해변에 머물러 있는 미련한 어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모두가 떠난 해변에서 휴가가 끝났다는 사실을 모른 채 계속 머물러 있다. 내가 그에게 속절없이 매혹됐던 이유다. 내 젊음의 축제는 끝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에게서 나는 어둡지만 위안을 얻을 그림자를 보았던 것이다. 얼마 후 내가 발을 들이게 된 영화라는 세계는 휴가철의 해변처럼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됐지만, 나는 축제가 끝난 해변에 있는 윌로처럼 오래된 극장에 앉아 있다. 염원하던 일이기도 했다. 윌로는 내가 매혹에 빠진 그림자, 나의 영무자影武者이기 때문이다.  /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엘르 잡지 에디터가 '내가 매혹된 대상'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한 것에, 썼던 글이다.

 

 

 

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식민지 치하의 조선에서는 '시적 리얼리즘' 혹은 '사회적 판타지'라 명명된 1930년대 프랑스 영화들이 대거 수입되어 관객들의 사랑을 얻었다. 자크 페데나 마르셀 카르네의 영화, 줄리앙 뒤비비에의 <망향>(1936), <무도회의 수첩>(1937)과 같은 작품들이 특히 대중적 인기를 얻었는데, 가령 작가인 김남천은 <망향>(첫 개봉 제목은 <페페 르 모코>이었지만, 전후에 재개봉할 때 <망향>이란 제목으로 바뀌었다)을 본 후의 소감을 소설에서 이런 식으로 기술한다. “어떤 날 오후, 봄이라지만, 아직도 치위가 완전히 대기 속에서 가시어 버리지 않은 날, 나는 영화 상설관에서 <페페 르 모코>를 구경하고 일곱 시경에 거리에 나섰다. 저녁을 먹어야 할 끼니때가 이미 지났으나, 곧 뻐스에 시달리면서 집으로 향할 생각을 먹지 않고, 어데 그늘진 거리나 거닐면서 지금 보고 나오는 토키가 주는 아름다운 흥분을, 고지낙하니 향락하고 싶어서, 나는 발을 뒷골목으로 돌려놓았다. 서울의 빈약한 거리를 걸으면서도, 나의 상념의 촉수는 ‘카즈바’의 소란하고 수상스러운 세계를 헤매고 있었다. <페페 르 모코>가 소프트의 뒷전을 추켜서 머리에 올려놓고, 줄이 반뜻한 양복에 색 구두를 신고, 목에는 명주 수건을 얌전히 둘러 감고서, ‘카즈바’의, 소굴을 탈출하야 계집을 찾아 부두로 향하던 그림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필름 누아르라는 표현은 원래 1930년대 프랑스의 시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시적 리얼리즘 영화 대부분은 파리의 노동자등의 하층계급에 의한 도시적 드라마가 주를 이루면서 인물의 파멸이나 절망을 강조한 연애, 범죄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한 범죄 소설의 전통을 계승했다. 특히 조르주 심농과 당시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들이 영감의 원천이었다. ‘시적’이란 표현에서의 이 영화의 시정은 그래서 일상적인 사물, 배경, 환경, 분위기 등에 있다. 대표적인 작가였던 마르셀 카르네와 시인 자크 프레베르는 현대 도시의 산업지역에서 길을 잃어버린 19세기 말의 낭만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기질은 회색빛 색조의 우울한 세계에 가까웠다. 그의 영화에서 선한 자들은 종종 범죄를 저지른다. 이는 반항이나 사랑과 같은 우발적 이유 때문이었고, 악인들은 추상적인 범죄자들이 아니라 사악하고 비열하며 사기꾼에 탐욕스럽기까지 하다. 불한당들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반면 실패는 언제나 선한 자들의 운명이었다. 아마도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가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들에게 어필했던 것이리라.

 

이렇듯 1930년대 프랑스 영화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일치감치 친숙했다. 사실 40대를 넘긴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마도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이들의 작품 한두 편을 시청했던 공동적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 영화의 비관주의는 인민전선의 희미한 희망이 사라진 시점의 불안한 정신사를 반영하는 것이라 말해진다. 정치적 불안정과 임박한 전쟁의 위협,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배신과 회의, 이런 식으로 모든 희망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때 개인적인 반항(때로는 거의 자살에 이르는 시도) 외에는 달리 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 몰락을 씁쓸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었다.

 

1930년대 프랑스는 격변으로 치닫던 때이다. 글로벌한 경제적 위기를 겪었고, 정치적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대중들의 열망을 사로잡고 있었다. 프랑스 영화는 당시 아방가르드에서 대중적 영화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전의 대담한 실험가들이 좌파 인민전선과 결합했지만, 이내 좌절로 끝났고 어두운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다양성과 프랑스 제작의 양질의 전통에 따르자면, 이 시기 마르셀 카르네, 르네 클레르, 줄리앙 뒤비비에, 자크 페이데르, 사샤 기트리, 마르셀 파뇰, 장 르누아르, 장 비고 등의 작가들이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게다가 사운드의 도래로 프랑스 영화가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변화를 겪던 때인데, 문화적 비관주의와 산업적인 파멸의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영화산업을 표준화시켰고 로케이션 촬영은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대신 영화제작이 스튜디오의 통제 가능한 환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30년에서 누벨바그 직전의 30년간은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로 제작편수로 보자면 일종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3,094편의 극영화가 만들어졌는데, 1930년대에 1,305편, 1940년대에 807편, 그리고 1950년대에 982편의 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고전기’라는 표현은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주의를 요한다. 가령, 이 시기를 연속성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을까? 전전과 전후로 이 시기를 구분해야 할까? 앙드레 바쟁은 이와 관련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종전의 시기가 아니라, 1941년에 프랑스 영화의 단절의 시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 시기가 비록 전쟁의 기간이긴 했지만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전전 프랑스 영화의 위대한 거장들인 장 르누아르, 르네 클레르, 줄리앙 뒤비비에 등이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연속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대적 차이와 미학적 견지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명백하게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어떤 식으로 시대를 구분하던 이 시기는 누벨바그의 도래와 비교하자면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로 불리어질만하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들(세계 경제위기, 인민전선, 2차 대전, 냉전 등)이 있었고, 영화의 중요한 기술적 혁신(사운드와 컬러의 도래)이 있었다.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작가 영화와 대중(주류)영화의 구분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전후의 젊은 비평가들은 ‘작가정책’이라는 표현으로 이 시기의 주류 영화들 가운데 ‘작가’를 구분하려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영화는 이 시기 할리우드 영화처럼 장르성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스릴러, 사극 등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있었고 배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영화의 대부분은 게다가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프랑스의 고전기가 할리우드의 고전적 규범과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학자인 지네트 뱅상도는 이 시기의 프랑스 영화를 ‘스펙터클의 예술’이라 불렀다. 이는 몇 가지 중요한 미학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 정교한 음악과 대사, 뮤지컬적인 퍼포먼스가 있다. 둘째, 섬세한 편집과 긴 카메라의 움직임이 활용되고 있었다. 가령, 줄리앙 뒤비비에, 장 르누아르, 막스 오퓔스 등의 영화는 할리우드의 보편적 리듬과 속도와 상이한 섬세한 편집과 연극적이고 뮤지컬적인 전통에서 기원한 느린 리듬의 카메라 움직임이 있었다.

 

시적 리얼리즘은 또한 대중주의적 멜로드라마, 사회적 판타지, 누아르 리얼리즘, 로맨틱한 페시미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의 다양한 표현들을 내포한 새로운 형식의 리얼리즘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서정의 시학으로 끌어올리는 시적 리얼리즘은 바쟁이 카르네의 영화를 두고 지적했듯이 특별히 인물들의 주변을 둘러싼 사물과 환경의 역할을 탐구했다. 가령, <망향>에서 장 가뱅이 마지막 밤을 보낼 때에 그의 운명적 상황과 과거를 지시하는 것은 테디베어, 자전거, 거울, 브로치, 담배들과 같은 시시한 사물들이다. <북호텔>(1938)에서 시학을 구성하는 것은 감상적인 노래들과 대사들, 독일 촬영술에 근거한 표현주의적 조명, 파리의 아름다운 환유를 제공한 노스탤직한 세트 디자인들이다. 시적 리얼리즘의 미학은 그래서 창조되고 양식화된 시각적 구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프랑스 고전기의 사멸은 이러한 시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화의 등장이라 말할 수 있다. 바쟁의 표현을 빌자면 ‘시적’인 것에서 ‘사실적’인 것으로의 변화가 전후의 프랑스 영화에서 등장한다. 시적 리얼리즘을 계승하고 넘어선 두 종류의 사실적인 장르가 있었다. 그 하나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 앙리 베르뇌유, 클로드 오탕 라라의 누아르 심리학적 드라마가 있다. 이들의 영화는 개인의 심리학에 근거한 범죄 드라마들이다. 이전의 범죄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사랑이 더 이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혼성의 상실이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자크 베케르, 줄스 다신, 장 피에르 멜빌이 창조한 황혼의 갱스터 영화들이다.

 

누벨바그의 도래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의 명백한 단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계승과 영속성의 관점에서 프랑스 고전기의 영화들은 이후의 영화들에 거대한 영향을 행사했다. 비평의 새로운 시작도 이러한 변경의 과정에서 발생했다. 가령, 바쟁의 영화비평은 점령기 프랑스 영화들의 비평에서 시작해 마르셀 카르네, 장 그레미용, 줄리앙 뒤비비에의 영화들을 세심하게 분석했다. 또한 ‘사실적인 미학을 위하여’, ‘영화적 비평을 향해서’, ‘대중을 창조하기’, ‘리얼리즘에 대하여’, ‘영화와 대중 예술’ 등의 비평적 에세이가 이 시기의 영화들에서 나왔다. 바쟁은 1943년에 쓴 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 예술은 창조 그 자체이다. 이제 영화를 재발견하자!’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이제 고전기 프랑스 영화들을 재발견하자! 이 특별전은 그 첫 시작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 이 글은 지난 2011년 겨울에 기획해 열린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때 썼던 글을 다시 올린 것이다.

 

 

 

야스미 아흐마드의 <묵신>

 

말레이시아 영화계의 ‘대모’라 불린 야스민 아흐마드는 단 6편의 청춘송가와도 같은 보석 같은 작품을 남기고 2009년, 5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그녀의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0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우리 시대의 아시아 영화 특별전’에서 그녀의 유작인 <탈렌타임>(2009)을 상영했었다. 말레이시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예회를 무대로 벌어지는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인데, 아무도 없는 교실에 빛이 들어오고 하나씩 불이 꺼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명멸하는 빛과 시간의 무상함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야스민 아흐마드의 영화는 주로 민족이나 종교의 차이를 넘은 연애를 드라마의 소재로 다뤘는데 <묵신>도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묵신>은 오키드라는 소녀의 여러 생애를 다룬 ‘오키드 4부작’의 마지막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 4부작의 시간 순서는 제작 순서와는 다른데, <묵신>은 4부작의 대미를 장식하지만 극 중 이야기의 시간으로는 가장 빠른 유년기의 사랑을 그린다(가령, 극 중의 시간축은 <묵신>(2006), <가는 눈>(2004), <라분>(2003), <그부라>(2005)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는 우정과 사랑의 틈새에서 흔들리는 유년기의 감정의 혼란, 소녀 시대의 첫사랑을 그려내는 감상적인 필치가 모든 평범한 장면들에 묻어 있어 세심한 관찰을 요한다. 아니 관찰이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눈길이 장면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만큼 사랑스럽다. 야스민 아흐마드는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에게 어느 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이 90분 동안의 상영시간 동안 지속된다. 무엇보다 소녀에게 갑자기 발생하는 운명의 만남, 사랑의 순간을 지켜보는 매혹이 있다. 갑자기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빗속의 춤, 평범한 축구 경기, 벌판에서의 연날리기, 그리고 자전거를 함께 타는 순간들이 모여 작은 우주를 형성한다. 이렇듯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지나가 버린 작은 것들의 경험에서 소중한 시간들을 되찾게 한다. 무대가 되는 말레이시아의 다민족적, 다문화적 양상이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관의 충돌, 계층적 차이, 언어적 차이(가령, 오키드는 영국 유학의 경험을 지닌 어머니 아래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중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중국계 학교를 다닌다)로 부각되지만, 그리 심각한 편은 아니다. 영화는 이러한 모순과 갈등보다는 유년기의 첫사랑이라는 테마에 보다 집중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독의 상냥한 눈길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작품이기에, 설명은 그 다음의 일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고양이의 눈은 아게이트 보석의 깊이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마르케의 기욤이 그러하듯 고양이는 모든 걸 지켜본다. 비오는 날 김경의 '상상 고양이'를 보니 그런 냥이와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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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의 공허한 영광

-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빅토르 에리세, 아키 카우리스마키, 페드로 코스타의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






포르투갈의 북서부에 자리한 구시가지 기마랑이스 지구는 포르투갈의 발상지라 불리는 최초의 수도이다. 2012, EU는 이 지구를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했고 1년간 집중적으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는 이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제작됐다. 감독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러했다. 1143년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된 후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거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따라 유럽의 영화계를 대표한 네 명의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 북유럽 핀란드 출신이면서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 그리고 포르투갈을 대표해 페드로 코스타,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가 참여했다.


카우리스마키의 <식당 주인>은 기마랑이스 거리의 한 식당 주인의 하루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언제나 그러하듯 카우리스마키는 과묵하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그린다. 언뜻 <어둠은 걷히고>의 식당이 떠오르는데, 그 영화에서는 비즈니스의 정글의 법칙에서도 오래된 고객과 가게의 일원들 간의 연대감이 돋보였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관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관계는 절연됐고 정서적 차가움이 더하다. 그의 가게에는 종일 손님의 발길이 드물다. 가게를 닫고 저녁에 댄스클럽에서 춤을 함께했던 여인에게 그는 마음을 전하려 하는데 그녀가 기혼임을 알게 되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카네이션이 거리에 버려진다. 라디오로 들리는 소리들은 2012EU의 전례가 없는 헝가리에 대한 경제 제제조치의 내용들이다. EU는 당시 재정적 감축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었다. 간혹 축구경기의 중계방송 소리도 들려온다. 이 고독한 정서에 다른 기운을 불러오는 것은 파두의 노래다. 블루의 컬러 또한 여전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 남자는 그럼에도 길거리의 고양이를 위해 문 앞에 우유접시를 놓는다. 이 단순한 행동이 묵묵히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물론 그가 낮에 식당에서 준비한 어부를 위한 스프에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던 것처럼 고양이 또한 등장하지는 않는다. 남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이다. 이 막연한 기다림이 마음을 울린다.





빅토르 에리세의 <깨어진 창문>은 기마랑이스에서 조금 떨어진 방치된 옛 방직 공장을 무대로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영화다. 일찍이 이 공장에 근무했던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 명씩 옛 공장의 식당을 배경으로 과거 그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1845년에 창업한 이 공장은 1990년에 경영위기로 2002년에 문을 닫았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의 소중한 추억이자 고된 노동의 괴로운 경험들이다. 14세에 일을 시작했던 한 여성은 기계의 소음 때문에 고막 이식 수술을 했는데, 이제 56세라며 인생이 끝났다고 토로한다. 영화 마지막에 한 남자가 아버지의 일을 회상하면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데 그 곡에 맞추어 식당 벽에 걸린 거대한 크기의 사진에 보이는 무수한 익명의 사람들의 얼굴이 화면을 장식한다. ‘포르투갈에서의 영화를 위한 테스트라는 작은 제목이 영화의 시작 부분에 나오지만 평범할 수도 있는 장면이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을 불어오는 이 작품을 에리세의 가벼운 습작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정복된 정복자>는 기마랑이스 지구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담은 가장 짧은 단편이다. 기마랑이스 지구의 거리와 광장, 엔리케스 아퐁수의 동상과 그곳을 관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를 이룬다. 정복자의 동상을 올려다보는 쇼트에 모든 관광객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대조시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페드로 코스타의 <스위트 엑소시스트>는 그 자체만으로는 기마랑이스 지구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영화다. 그는 기마랑이스라는 주제로 얼마나 기마랑이스라는 특정한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포르투갈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시험한 듯하다. 코스타는 대신 1974년 포르투갈의 독재정권에 대항해 젊은 장교들이 궐기한 카네이션 혁명에 대해 말한다. 식민지 카보베르데의 이민자 출신인 벤투라가 이번에도 주인공이다. 그는 이 쿠테타에 참가했다 숲속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에 입원한다. 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청동의 페인트로 칠한 (사람인지 역사의 유령인지, 혹은 기념비적인 조각인지 모를)병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던 코스타는 74년의 카네이션 혁명의 체험이 벤투라와 같은 이민자들에게는 아프리카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고 말했었다. 혁명에의 체험이 달랐던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역사적 순간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감정, 역사, 특별히 제목처럼 공포의 체험을 전한다. 영화의 제목 스위트 엑소시스트1974년에 발매된 커티스 메이필드의 앨범에서 따온 것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포르투갈어권 영화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대한민국 외교부와 함께 5월 1일(목)부터 7일(수)까지 “포르투갈어권 영화제”를 개최합니다. 포르투갈어권 국가들의 다양한 영화 아홉 편을 소개하는 이번 영화제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행사로,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영화는 물론 기니비사우, 동티모르, 모잠비크, 앙골라 등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나라의 영화들을 모두 무료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포르투갈어는 그 긴 역사와 함께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의 토양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중 이번 영화제에서는 포르투갈을 비롯해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의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의 영화는 뛰어난 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인 배급을 통해서는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은 영화들입니다. 이번 영화제는 포르투갈어권 국가들의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주제들을 담은 영화들, 그리고 영화 미학의 혁신을 시도한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합니다.

일찍이 세르반테스는 포르투갈어를 “달콤한 언어”로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포르투갈어권 영화제”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노래하는 아홉 편의 영화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영화제 기간 중에는 <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의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감독에 대한 비평좌담도 준비하였으니 더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포르투갈어권 영화제”에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Bem-vindo!

▣ 특별행사

비평 대담 - 21세기 작가열전 Ⅸ.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일시│5월 3일(토) 15:30 <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 상영 후
참석│이용철 영화평론가,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

▣ 관람 안내

*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을 원하시는 관객은 이메일 thequeseoul@naver.com 으로 미리 신청이 가능합니다. 
단, 선착순이기 때문에 매진 시에는 관람을 하실 수 없습니다. 상영작이 매진 될 경우, 홈페이지나 공식 페이스북에 공지됩니다. 
(메일에는 신청자 이름, 휴대폰 번호, 회차(상영시간), 영화제목을 기재해 주시고 티켓은 1인당 2매까지 가능)

* 보시고자 하는 영화의 티켓을 반드시 티켓 부스에서 받으신 후 입장하셔야 합니다.

* "포르투갈어권 영화제"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lusophonefestival


Cinematheque Seoul Art Cinema proudly presents a Lusophone Film Festival from 1st to 7th May, 2014 under the partnership with the Korean Ministry of Foreign Affairs. This is the very first film festival to show the 9 films from the Portuguese-speaking countries including Angola, Mozambique, Guinea-Bissau and East Timor as well as Portugal and Brazil. All the screenings are for free.

Portuguese is the language that has the 7th largest speaking population in the world, having nurtured the culture in variety and richness. This festival particularly focuses on ‘film’ in Portuguese. Some show the cultural, social or historical themes seriously or humorously; the others try the cinematic challenges. However, you can find the fact that these 9 films have the common value: all of them are chant for life, whether they are sweet or bitter. In addition, these films have rarely been released commercially in Korea, though their cinematic and aesthetic achievement.

We wish you enjoy these bitter-sweet paeans to life in a variety of forms and features. Bem-vindo!

For more information, please visit the facebook page : https://www.facebook.com/lusophonefestival


- All the films are subtitled in English.
- All the screenings are for free but you need the ticket issued at the box office for entrance.
- The box office is open 1 hour before the 1st screening begins of the date.
- You can book the seats in advance via e-mail(thequeseoul@naver.com). Please let us know your name, the mobile number, the title and the date. 2 tickets are available for each screening .
- Reservation on the web ticketing site is not available.
- You are now allowed to attend the screening 15 minutes after it begins.
- No food allowed. You can bring the non-alcoholic beverage with the cap only.


1.센트로 히스토리코 Centro Historico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페드로 코스타, 빅토르 에리세, 아키 카우리스마키2012 | 포르투갈 | 96min | Color
2.바이 바이 브라질 Bye Bye Brazil카를로스 디에게스1979 | 브라질 | 105min | Color
3.죽을 수 없는 Death Denied플로라 고메스1988 | 기니비사우 | 85min | Color
4.영혼의 나무 Tree of Blood플로라 고메스1996 | 기니비사우, 포르투갈, 프랑스, 튀니지 | 1996 | Color
5.영웅 The Hero제제 감보아2004 | 앙골라, 포르투갈, 프랑스 | 97min | Color
6.몽유의 땅 Sleepwalking Land테레사 프라타2007 | 모잠비크, 프랑스 | 96min | Color
7.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 The Last Time I Saw Macao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주앙 루이 게라 다 마타2012 | 포르투갈, 프랑스, 마카오 | 85min | Color
8.베아트리스의 전쟁 Beatriz’s War베티 레이스, 루이지 아퀴스토2012 | 동티모르 | 101min | Color
9.네이버링 사운즈클레버 멘돈사 필로2012 | 브라질 | 131min | Color


S1/S2/S3/
05.01.Thu
17:00
바이 바이 브라질 
Bye Bye Brazil ⓔ 
100min

20:00
개막작 
센트로 히스토리코 
Centro Historico ⓔ
96min

05.02.Fri

17:00
네이버링 사운즈 
Neighbouring Sounds ⓔ
131min

20:00
영웅 
The Hero ⓔ
97min
05.03.Sat

13:30
영혼의 나무 
Tree of Blood ⓔ
90min

15:30
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 
The Last Time I Saw Macao ⓔ
85min

비평좌담_이용철, 김성욱

19:00
베아트리스의 전쟁 
Beatriz's War ⓔ
101min

05.04.Sun13:30
네이버링 사운즈 
Neighbouring Sounds ⓔ
131min

16:30
영웅 
The Hero ⓔ
97min

19:00
바이 바이 브라질 
Bye Bye Brazil ⓔ
100min

05.05.Mon14:00
내가 마지막 본 마카오 
The Last Time I Saw Macao ⓔ
85min
16:30
몽유의 땅 
Sleepwalking Land ⓔ
96min

19:00
죽을 수 없는 
Death Denied ⓔ
85min

05.06.Tue14:00
몽유의 땅 
Sleepwalking Land ⓔ
96min

16:30
센트로 히스토리코 
Centro Historico ⓔ
96min
19:00
영혼의 나무 
Tree of Blood ⓔ
90min
05.07.Wed 17:30
베아트리스의 전쟁 
Beatriz's War ⓔ
101min
20:00
죽을 수 없는 
Death Denied ⓔ
85min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고독한 남자들의 절도 있는 싸움을 그렸던 버드 보티커 감독의 특별전을 준비했습니다.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부제와 함께 4월 15일부터 27일까지 버드 보티커의 대표작 8편을 상영하는 이번 프로그램에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많은 기대와 참여를 바랍니다.

1916년에 태어난 버드 보티커는 남다른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투우에 크게 매력을 느껴 실제 투우사로 활동하던 그는 루벤 마물랭 감독의 <혈과 사 Blood and Sand>(1941)에서 투우 촬영을 도와주며 영화계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오스카 보티커란 이름으로 십여 편의 영화를 발표한 뒤 1951년에 <투우사와 숙녀>를 찍으며 처음으로 버드 보티커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수십 편의 서부극과 필름누아르를 찍었고, 특히 자신의 페르소나인 랜돌프 스콧과 찍은 서부극들은 ‘BB’ 특유의 스타일로 많은 인기와 비평적 지지를 누렸습니다. 앙드레 바쟁이 <7인의 무뢰한>을 두고 “전후에 본 것 중에서 가장 빼어난 서부극"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나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에서 버드 보티커에게 존경을 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번에 준비한 8편의 영화들은 그의 영화적 특징과 매력이 잘 드러난 작품들입니다. 항상 길에서 먹고 자는 버드 보티커의 주인공들은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으며 언제나 외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총을 꺼내들기에 앞서 적과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그의 모습은 짧은 공감의 순간을 만들어내며 다른 서부극에서 찾기 힘든 품격을 보여줍니다.

달려드는 황소 앞에서도 우아한 몸짓을 유지하는 투우사처럼 싸울 준비를 마친 채 상대를 정면으로 마주했던 버드 보티커의 남자들을 만날 수 있는 “버드 보티커 특별전 - 싸울 준비가 돼있다”에 관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특별히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투우사와 숙녀>를 복원판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한창호, 유운성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2일간 펼쳐질 버드 보티커 감독의 영화 세계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1.투우사와 숙녀버드 보티커1951 | 미국 | 124min | B&W
2.킬러 풀려나다버드 보티커1956 | 미국 | 73min | B&W
3.7인의 무뢰한버드 보티커1956 | 미국 | 78min | Color
4.선다운의 결전버드 보티커1957 | 미국 | 77min | Color
5.부캐넌의 고독한 질주버드 보티커1958 | 미국 | 78min | Color
6.외로이 달리다버드 보티커1959 | 미국 | 73min | Color
7.렉스 다이아몬드의 흥망성쇠버드 보티커1960 | 미국 | 101min | B&W
8.코만치 스테이션버드 보티커1960 | 미국 | 74min | Color


영화에서 감독이란 불가시의 존재이다. 나로서는 그런 보이지 않는 감독의 존재를 인지하게 해준 고마운 책 중의 하나가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이다. 이 책은 또한 좌절과 불평등의 인식을 안겨준 책이기도 했다. 비디오가 없던 시절에 순전히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고 감독과 인터뷰를 했던 트뤼포의 놀라운 기억력과 보는 능력에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트뤼포가 거의 외우다시피 보았던 영화들에서 사소한 질문을 할 경우에(가령 <숙녀 사라지다>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경우)는 가끔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은 한 명의 영화광이 자신이 숭배하는 작가를 만나 영화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비평가의 초기시절이 아니라 1966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물론, 인터뷰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시절부터, 그리고 본격적으로는 1962년부터 시작되었다), 트뤼포가 히치콕을 인터뷰한 본심은 자신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 정작 미국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한 것과 히치콕과의 정밀한 인터뷰가 가능하다면 사람들에게 그가 만든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는 표면적 이유는 거짓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는 감독의 자격으로 히치콕의 작업의 비밀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트뤼포는 영화를 만들면서 연출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마다 히치콕 식으로 생각하며 해결점을 찾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영화작법을 알기 위한 시도로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이 비슷한 일을 동시기에 자크 리베트도 했었다. 자크 리베트는 1966년 5월에서 6월까지 ‘우리 시대의 시네아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장 르누아르를 만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사실 그는 르누아르와 3주의 시간을 보내면서 르누아르의 영화적 비법을 전수받을 사심에 이 작업을 했다. 누벨바그 작가들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운, 도제시스템을 거치지 않았던 영화광들이다. 그들이 영화 연출에서 곤경에 처할 때 존경하는 감독을 인터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 ‘히치북Hitchbook’이라 불린 이 책은 프랑스에서는 ‘히치콕의 영화Le Cinéma selon Hitchcock’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정사각형 모양에 350장의 사진을 포함, 총 260페이지의 화려한 책으로 초판이 발행됐다. 미국판은 다음해인 1967년 11월에 출간되었는데, 정작 프랑스판은 5천부가 팔린 반면 미국판은 하드커버가 15,000부, 페이퍼북이 21,000부 가량 판매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한국 초판본은 1994년에 나왔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트뤼포의 친구이기도 했던 야마다 코이치와 하수미 시게이코의 번역으로 1981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이 책의 출간 기념회가 꽤 멋졌다고 생각한다. 트뤼포는 책 출간을 기념하는 리셉션에 히치콕을 초청하면서 출판사가 점심 파티를 제안한 것을 거절하고 감독에게 경의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히치콕의 영화 발췌본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발췌본에는 <39계단>에서 두 남녀가 서로 수갑을 채워지는 장면, <이창>의 마지막 장면, <나는 비밀을 안다>에서 앨버트 홀 시퀀스, <사이코>에서의 욕실 살해 장면과 안소니 퍼킨스가 물걸레질하는 장면, 그리고 자동차가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장면, <새>에서 멜라니가 학교에 도착하는 장면, <마니>에서 정신분석학적인 회합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혁명적인 인터뷰 책은 영화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나, 종종 영화연출이 절망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바이블이다. 지금 이 책이 한국에서는 절판 중이라고 한다. 책의 재출간과 더불어 히치콕의 대대적인 회고전을 시네마테크에서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김성욱)

 

*'씨네21'에 절판된 영화책에 대한 특별기획에 썼던 글이다.

  1. wina 2014.04.07 23:18

    궁금했던 책인데 글로써 소개해주시니 더욱 재출간 소식이 기다려지네요. dvd로만 만나던 히치콕의 작품들을 시네마테크에서 보게 되는 날도 기다려봅니다.

마가레테 폰 트로타의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는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전기 영화이지만, 그의 생애의 아주 작은, 하지만 강렬했던 순간을 담고 있다. 1961년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열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해 기사를 쓰게 되는데, 영화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아렌트의 곤경을 다룬다. 그녀는 1933년 나치스 정권 성립 후 독일에서 프랑스로 건너가 강제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아슬아슬하게 탈출해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러한 경험을 근거로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하지만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한 글은 논란을 불러왔다. 그녀는 아이히만이 냉혹한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관료였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러한 생각을 『더 뉴요커』에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1960년대 초에 아렌트의 주장은 꽤나 위험한 것으로 비쳐졌고, 그로 인해 그녀는 유대인들과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다. 영화는 그러나 아이히만의 재판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대신 그녀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옹호자로, 나치를 도운 일부 유대인 지도자를 고발한 비열한 자로 비난과 협박을 받았고, 대학에서는 사직을 권고당하고 오랜 친구와도 결별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영화의 끝 무렵 그녀의 대학 강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렌트 역의 바바라 슈코바의 연기가 워낙 탁월해 연설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녀는 이미 <로자 룩셈부르크>에서도 마찬가지로 로자의 탁월한 연설을 훌륭하게 연기한 바 있다.





아이히만의 재판이 영화에서 작은 비중으로 표현된 것에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미 이 사건은 에이알 시반의 탁월한 다큐멘터리 <스페셜리스트>에서 다뤄진 바 있다. 감독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축으로 4개월에 걸쳐 350시간 동안 열린 아이히만 재판의 기록 영상을 두 시간으로 재구성했다. 아이히만은 잔인한 괴물이 아니라 규율과 명령에 충실한 관리였고, 그러므로 생각과 양심과 상상력이 없이 관료 조직에 편입되었을 때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결국 거대한 악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악의 평범함이란 생각 없는 개인에게 악으로의 통로가 도처에 있다는 사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아렌트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주목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들이다. 


가령,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전적으로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대신하면서 감독은 범죄자와 희생자라는 강고한 도식에서 벗어나 아렌트의 평범한 일상에 주목한다. 그녀가 뉴욕의 친구들과 벌이는 파티들, 학생들과의 사소한 대화들, 남편과의 결혼 생활, 담배를 물고 소파에 누워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 등. 트로타의 카메라는 이런 평범한  일상에 작지만 어떤 거대한 변화들이 발생하는가를 지켜보게 한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 담담하게 말했다. 아렌트의 주장은 자각 없는 평범한 인간이 미증유의 학살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녀가 겪게 될 이후의 곤경을 거울처럼 비추는 듯하다. 그녀의 글에 대한 악의적인 반응들, 친구와의 결별, 이스라엘 정부의 출판 중지 요청, 학교 당국의 수업 중지 요구 등은 그녀의 순진한 눈빛(이는 세르주 다네가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와 비교해 2차 대전 당시 조지 스티븐슨이 수용소를 촬영할 때의 시선을 두고 했던 그런 의미에서다)에 대한 과도한 반응들이다. 이런 순진한 눈빛은 그녀의 합리적 지성 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시간에 그곳에 있던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다. 나중에 오는 자들은 더한 정당성과 윤리적 책임을 감수해야만 한다.

-시네마테크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문화척도 
-문화선진국으로 도약 위해 안정적인 시네마테크 공간 확보 및 재정적 지원 시급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대표 최정운www.cinematheque.seoul.kr)와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위원장 이명세, 이하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 추진위), 그리고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미경 의원이 공동 주최하는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위한 정책포럼’이 지난 26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영화단체 관계자, 영상문화에 관심이 많은 서울시의회 의원 및 서울시 집행부 관계자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일반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포럼은 1,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1부 행사 때에는 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등 시의회 관계자와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명세 감독,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2차 후원광고 캠페인에 출연한 이준익 감독 등의 영화인, 그리고 10여 년간 민간 단위에서 꾸준히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쳐온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최정운 대표가 모두발언자로 나서 기조연설을 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발표로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는 관련 영상 상영 및 현황 보고가 이어졌다.

본격적인 지원정책을 논의하고 모색해보기 위한 주제 발표 및 토론이 진행된 2부 행사에서는 허문영 시네마테크부산 원장과 여금미 파리3대학 영화학 박사이자 고려대학교 응용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이 각각 시네마테크의 지원에 관한 선진사례로서 부산과 파리시의 정책에 대하여 주제발표를 진행했고, 김혜준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와 김미경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이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정책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그 방안에 대한 주제발표를 했으며, 사회는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변재란 순천향대 영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가 맡았다. 또한 서울시의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안승일 서울특별시 문화관광기획관, 김경욱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위원, 송승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이 토론자로 나서 관련 주제에 대한 열띤 논의를 펼쳤다.

“서울을 최고의 영화도시로 만들기 위해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_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은 “제8대 시의회가 출범한 이래 많은 시대의 필요성과 요청에 의한 많은 전문적인 토론회가 이 장소에서 이루어졌지만 민간 단위에서 열심히 활동해오던 시네마테크와 같은 곳을 지원하기 위하여 서울시의회 관계자와 영화인, 민간 관련 단체가 공동으로 이렇게 준비한 포럼은 아마 지금까지 지방 의회 20년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며 “그래서 이 자리가 더할 나위 없이 뜻 깊고 앞으로 서울을 최고의 영화도시로 만들어내기 위한 관계자 여러분의 목소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며 노력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영화문화에 대한 지원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시네마테크이다”
_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영화는 종합예술로 패션, 음악 등이 총망라되어 있어 영화가 발전하면 산업이 발전하고 서울이 발전한다고 믿는다. 서울시는 현재 상암동에 DMC센터를 마련, 감독, 프로듀서를 지원하고 최근에는 프로덕션 센터까지 만들어 지원하고 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시네마테크 같다. 오늘 정책토론회가 영화산업과 영화발전을 위한 특별한 계기가 되길 기원하고 문화체육관광위원장으로서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시네마테크는 한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_이명세 영화감독,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추진위원장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위원장이자 영화인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참석한 이명세 감독은 “누벨바그의 아버지인 바쟁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네마테크는 한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며 “만약 이런 시네마테크가 좀 더 일찍 자리 잡았다면 한국영화의 진화는 좀 더 빠르게 이뤄졌을 것”이라 말했다. 또한 그는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2012년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10주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이제라도 이러한 자리를 통해 서울시가 공공문화예술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는데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문화권력을 우선시하는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_ 이준익 영화감독

또 다른 영화인으로 최근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광고에도 출연한 이준익 감독은 “정치, 경제, 문화 세 가지 권력 중 어디에 우선순위가 있느냐에 따라 선, 후진국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후진국은 정치권력이 우선하는 나라이고 중진국은 경제권력이 우선하는 나라이며, 마지막 문화 권력을 우선하는 나라가 가장 선진국에 속한다”며 “디자인 서울, 문화선진국을 꿈꾸는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에 번듯한 시네마테크 하나 없다는 것은 실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서울이 형식 면에서는 많이 발전했는데 내용면에서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이제는 서울이 형식보다는 내용에 충실할 때가 왔고 형식을 뛰어넘는 내용을 갖추는 첫 번째 조건은 장르간의 화합이며 그 내용의 구체적인 사례로 시네마테크가 기능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문화선진국에 살 수 있도록 서울시가 앞장서서 많은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네마테크의 공적 활동의 재원을 서울시가 지원하는 것은 문화도시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필요한 일이다” 
_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이사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이사는 “영화는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며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문화예술에 대한 활동을 제하고 서울이 세계 제 1의 문화도시라는 목표점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적 활동의 재원은 당연히 공공기관이나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에서 담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 이 자리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현실적 지원방안을 제안하고 검토하는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부산이 문화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씻어낸 것은 시네마테크 부산의 역할 덕분이다” 
_ 허문영 시네마테크 부산 원장

한편 본격적인 발제와 토론이 이어진 2부 행사의 첫 번째 주제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시네마테크전용관 선진사례로서 ‘시네마테크부산 지원사례’에 대하여 발표를 맡은 허문영 시네마테크부산 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과 문화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씻어내고 영상도시로 발돋움하려는 부산시의 의지가 맞아떨어졌기에 빠른 진행이 가능했다. 시네마테크부산이 공공기관이 주축이 된 위로부터의 건립이었다면, 서울은 자생적으로 성장한 아래로부터의 건립 추진이므로 더 큰 힘과 지속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네마테크부산의 경우도 하드웨어적으로 일정 정도 토대를 갖춰놓긴 했고 올해 9월 이후 더 넓은 공간인 영상센터로 이전할 예정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위탁운영이 올해로 끝나고 시네마테크 업무가 영상센터 운영법인에 이관될 가능성도 있어 부산시를 비롯해 여러 기관 단체, 혹은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시네마테크라는 고유한 기관의 성격, 고유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관한 지속적인 설득의 작업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리는 이미 80억 규모의 예산을 들여 시네마테크를 지원하고 있다.” 
_ 여금미(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파리3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여금미 박사는 해외 선진사례로 ‘영화적 다양성을 위한 파리시의 정책’을 주제로 파리시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시네마테크 포럼데지마주에 대한 사례를 발표했다. 그녀는 “포럼데지마주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수집함으로써 도시의 변모 과정이나 다양한 시각을 통해 조명된 도시의 이미지 등을 보관하고 이를 시민에게 제공한다는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무려 80억 규모의 예산을 파리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며 “서울아트시네마가 포럼데지마주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공간이므로 이 공간의 물적토대를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지 서울시와 함께 모색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안정적인 시네마테크전용관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의지가 중요하다” 
_ 김혜준(부천문화재단 대표)

‘서울의 시네마테크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세 번째 발제를 맡은 김혜준 부천문화재단 대표는 “무엇보다도 곧바로 일을 추진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전용관을 지을 수 있다”며 “일단 건물을 잘 지을 것인가, 지속적인 운영예산 마련에 힘쓸 것인가 등 실질적 문제들에 대한 서울시의회와 서울아트시네마 간의 협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용관을 잘 지어놓으면 건립을 도와준 의원의 이름이 100년간 기억될 것"이라며 의원들의 도움을 촉구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 조례제정을 통해 서울시의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_ 김미경(서울특별시의회 의원) 

마지막 발제자로 이날 포럼의 공동주최자이기도 한 김미경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은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정책 방안’에 대한 주제 발표에서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의 근거가 될 만한 현행 조례가 있지만 그 근거가 불명확하다. 별도의 독립영화 및 시네마테크 지원 조례 제정을 통해 서울시의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영화산업에 대한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가 끝난 후에는 토론자들의 질의와 함께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 서울시의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안승일 기획관은 "영화의 박물관이자 도서관이자 상영관인 시네마테크전용관의 필요성에 깊게 공감한다. 시민운동 형태로 추진되는 것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며, 이에 문화사업 총괄자로서 반성하는 바가 있다. 그동안 서울시도 문화영상 사업의 육성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예산이라는 게 늘 부족하다. 예산 책정의 실질적 권한을 지닌 서울시의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별도의 조례를 마련하지 않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다"고 말했다.



또 한명의 토론자인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김경욱 전문위원은 “조례 제정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시네마테크에 대한 조금 더 명확한 정의와 기존에 영상자료원 같은 공공기관과의 분명한 차별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미경 의원은 “조례를 통해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예산 책정도 어려울 것이다. 집행부 측은 새로운 예산을 되도록이면 추가하지 않으려고 하는 생리가 있다"고 밝혔고, 여금미 박사는 "한 도시에 시네마테크가 하나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그러하며, 파리의 경우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포럼데지마주 등의 다양한 기능의 시네마테크가 있다”며 시네마테크 서울 전용관의 건립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허문영 원장 또한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영화를 보존하고 상영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으며, 시네마테크 부산은 애초의 설립 취지에 맞추어 주로 아시아권 영화들을 보존하려 한다. 따라서 서울아트시네마는 지금까지 해오던 방향처럼 전 세계의 중요한 영화적 자료들을 보존한다면 세 기관 간에 서로 보완적인 조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뜨겁게 진행된 토론과 객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참여는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과 공간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성을 공감하는 자리가 됐다. 한편 주최측은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기 위해 5월 이후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방안과 조례제정에 관한 구체적인 후속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이와 관련하여 논의를 진전시켜나갈 수 있는 토론회 및 관련 기관과의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번 포럼의 공동주최로 나선 김미경 의원은 앞으로 시네마테크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을 발의하는 등 시네마테크 지원과 관련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 신선자 (서울아트시네마 기획홍보팀장) 

* 알랭 레네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90년대 초, 문화학교서울의 비디오테크에서 어렵게 만났던 그의 영화 덕분에 나는 영화에 매혹되었고 이 세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강박관념들: <밤과 안개>의 시체들, <세상의 모든 기억>의 (감옥)도서관, <히로시마 내 사랑>의 '그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라 말하는 기억의 괴로움에 사로잡힌 엠마누엘 리바, <지난 해 마리앵바드>와 <뮤리엘>의 돌아온 자들과 만나는 맘각으로 고통받는 델핀 세리그. 곤경에 처한 '우리들'. 알랭 레네에게서 내가 배웠던 것은 영화가 결국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레네는 영화의 동력이 그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장소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가였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의 모든 기억과 마주한 우리들의 변호인이었다. 아래 글은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를 기다리며 '씨네21'에 썼던 글이다. 하지만 결국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 소개된 <라일리의 삶>이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우리들은 모두 레네의 신작을 기다린다


본디 레네식의 만남이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인생이 기이하게 근거리에서 교차하고 평행해 새로운 삶의 리듬과 가능성을 창조하는 것에 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알랭 레네의 만남이 그랬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 출연한 엠마누엘 리바와 90세를 넘기고도 신작으로 칸을 방문한 알랭 레네의 우연한 조우. <히로시마 내 사랑>으로 둘이 칸을 찾았던 것이 1959년의 일이니, 실로 50년만의 일이다. 이들의 과거를 추억하고픈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그들에 대해 본 것이 없다. 다만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제목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의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대사가 떠올랐을 뿐이다. 물론 이 두 영화는 관계가 없을 것 같다.


‘씨네21’의 칸 영화제 중간리포트에서 정한석 기자는 주저 없이 홍상수의 영화와 알랭 레네의 신작을 최고의 영화로 손꼽았다. ‘한 노감독의 힘없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사유의 찬란한 결과물’이 선정이유였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전작 <마음>과 <잡초>의 파격이 여전하다면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 이래로 우리는 히로시마와 마리앵바드, 혹은 뮤리엘의 레네에게서 멀리 떨어진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행히 신작이 개봉예정이라는데, 이게 무슨 유언장처럼 보인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의 대략의 이야기는 이렇다고 한다. 연극 연출가 앙트완느 오투악이 사망한다. 그는 마치 유언처럼 자신의 연극에 출연했던 과거의 배우들을 성에 모이도록 한다. 이들은 모두 <에우리디스> 연극을 함께 했던 배우들이다. 그들은 거기서 거실의 스크린에 상영되는 젊은 배우들이 새롭게 번안한 연극을 보게 되는데, 어느 덧 스크린의 이쪽 편에 있는 배우들도 무대에 서 있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영화와 연극, 배우와 관객, 삶과 죽음의 관계를 다룬 영화라고들 한다.


궁금해서 찾아본 유투브의 칸 기자회견 영상을 보면서 은발의 노신사 곁에 미셀 피콜리를 위시해 그의 전속배우 사비느 아제마와 피에르 아르디티, 램버트 윌슨, 그리고 새롭게 레네의 배우군단에 자원한 마티유 아멜릭 등 실로 많은 배우들이 다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배우들이 너무나 사랑해 너도나도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했던 전성기 할리우드의 황태자 에른스트 루비치가 떠올랐다. 농담이 아니다. 그의 최근작들은 뮤지컬이 가미된 일종의 코미디이고 <입술만은 안돼요>는 루비치의 영화에서 특별한 영감을 얻었다. 루비치 터치는 레네의 기이한 작가성에도 있다. 그는 한 명의 모던한 작가라기보다는 화법과 형식을 파괴한 실험의 작가였고, 실로 작가라기보다는 연극처럼 배우들과 극단을 거느린 연출가에 가깝다. 알랭 플래셔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영화는 ‘아틀리에 예술’이다. 그는 언제나 집단을 구성해 다른 예술을 영화에 끌어들였다. 누보로망 작가들의 문학, 희곡의 영화화는 물론이고 엠마누엘 리바, 델핀 세리그, 사비느 아제마 등 무대 여배우들을 영화에 기용했고, 오페레타와 뮤지컬, 만화, 범죄 영화, 멜로드라마 등의 장르를 적극 활용했다. 레네의 영화는 개인보다는 집단의 산물이고, 그는 현대영화의 탁월한 황태자이다.


그러니 호모 사케르식 개인에 집중했던 초기작들을 넘어서 근작들에서 우리는 레네의 ‘우리들’을 보아야만 한다. 비록 실감 없는 현실에서 정체성의 위기와 우울증을 겪지만 그럼에도 감성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우리들 말이다. <마음>과 <잡초>에서 레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정신, 의식, 마음에 카메라를 올려놓았고 아스팔트의 틈새에서 굳건하게 피어오르는 잡초마냥 우리들의 마음을 피어오르게 했다. ‘극장을 나오면 어떤 것도 놀랄게 없다. 무엇이든 발생할 수 있다’고 <잡초>의 내레이터가 말한다. 그러니 그의 아틀리에에 들어가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레네의 신작을 기다린다. (김성욱)






  1. 느베르 2014.03.08 02:37

    "나도 망각과 싸웠지만 당신처럼 나도 잊고 말았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잊고마는 망각의 공포에 맞서
    매일 힘겹게 싸웠지만 당신처럼 나도 잊고 말았죠.
    .......................기억할 건 기억해야만 해요!!"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 중에서...............

  2. 고쌍 2014.11.30 15:01

    아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을 보았다. 기억나는건 물론 노래들과, 무엇보다 고양이. 고양이는 르윈 데이비스의 생활 공간에서 먼저 깨어나 움직이고 집에서 빠져나와 그의 예술을 위한 험난한 여정에 동행한다. 그는 고양이를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아무도 고양이를 보호할 이들은 없다. 르윈 또한 고양이를 두고 제 길을 떠나려 한다. 르윈이 도달하려 했던 두 세계를 왕래해 두 단절된 공간을 대면시키는 고양이의 믿기 힘든 모험. 고양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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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이 재개봉 중이다. 이 영화는 혁명전야의 시대를 살아간 세대를 그린다는 점에서 그의 혁명적인 데뷔작이기도 했던 <혁명전야>의 주제를 다시 반복한다. 베르톨루치에게 중요했던 것은 혁명의 효과나 68혁명에 관한 영화가 아니었다. 혁명의 시절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혁명 이전의 가능성을 다시 사고하는 것. 말하자면 정치적, 성적, 미학적(영화적) 유산의 잠재성들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문제를 이번 3월에 상영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5월 이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이 보낸 시대에 관한 이야기로, 5월 혁명의 공기로 감싸였던 파리에서 시작해 혁명과 예술에 몰두했던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다.


이미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카를로스>에서 70년대~80년대에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5월 이후>에서 그는 이제 자신의 분신이 분명한 주인공 고교생의 이야기를 빌어 한 손에는 돌을, 다른 손에는 붓을 들었던 청춘의 빛나던 시절을 노래한다. 소녀들과의 사랑 이야기 또한 빠질 수 없다. 1955년생인 아사야스는 68혁명 당시 열 세 살로 학생 운동에 참여하면서 음악과 예술, 그리고 영화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앤디 워홀의 예술에, 그리고 기 드보르를 위시한 상황주의자의 운동에 매혹되었다. 젊은 날의 아사야스에게 중요했던 것은 당시 그가 살던 사회 체제에서 어떻게든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론으로 아사야스는 예술에 끌리게 된 것이다. 빛나는 청춘은 물론 다소 염세적이고 고독을 맛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은 그러나 지나갔고, 혁명에 뒤늦게 도달한 세대는 그러므로 그 어디에서도 이상향을 찾기 힘든 가운데 다시 혁명의 가능성과 잠재성의 기원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아사야스의 영화는 그래서 장 뤽 고다르가 <즐거운 지식>에서 했던 표현을 빌자면 (영화)제로지대로의 회귀를 시도한다. 이 제로지대로의 회귀는 베르톨루치가 <혁명전야>에서 말한 현재의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아사야스는 ‘그라운드 제로’를 맞았던 21세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으로 혁명 전후를 되돌려 구축하는 것이다. 5월의 빛나는 청춘과 만나기를 기원한다.

-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3월의 '시네마테크' 소식지에 에디토리얼로 쓴 글이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와 베르톨루치의 영화가 3월, 동시기에 소개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클로드 소테와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들 간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를 말하는 것은 그들 각자의 영화에 어떤 일관된 테마와 스타일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감정의 세공술사’라는 이번 시네마테크 부산의 기획전 제목은 그래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터인데, 대신 나는 다른 비교들을 들고 싶다. 1924년생인 소테와 1947년생인 르 콩트는 작업의 시대로만 보자면 누벨바그 이전과 누벨바그 이후의 작가들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두 감독이 한국의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인지된 것은 90년대 초의 일이다. 여전히 대중적 기억에 회자되는 <겨울의 심장>(국내 개봉제목은 ‘금지된 사랑’이었다)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 서울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씨네하우스란 극장에서 소개되었다. 예술영화의 늦바람이 살랑거리던 때로 소테와 르콩트의 영화는 중년의 연애를 섬세하고 관능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는데, 그 때가 프랑스 영화들에 ‘누벨 이마주’라는 기묘한 꼬리표를 붙이던 시절이었기에 이들의 영화는 분류 불가능한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쯤으로 치부되었다.


프랑스라고 별반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던 듯하다. 가령, 클로드 소테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 할만한 <거대한 위험>(1960)은 개봉즉시 외면당했다. 하필이면 고다르의 충격적인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와 한 달 차이를 두고 개봉해 잔뜩 누벨바그에 쏠린 관심때문에 r의 영화가 쉽게 무시되었던 것이다. 소테의 영화는 누벨바그의 악동클럽들과는 달리 자크 베케르와 장 피에르 멜빌의 고전주의에 더 친화력을 갖고 있었다. <거대한 위험>은 호세 지오바니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그는 자크 베케르의 <구멍>(57)과 장 피에르 멜빌의 <두 번째 숨결>의 원작자이자, <시실리안>, <암흑가의 두 사람>의 연출가이기도 하다), 사내들의 우정과 배신을 그린 프렌치 누아르 풍의 영화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편견 없이 보자면 정말 감탄할 만큼 탁월하다. 지금으로 보자면 두기봉 영화의 오프닝 정도가 이에 필적할 만하다. 밀라노 역에 두 사내가 가족들을 데리고 등장한다.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가족들을 모두 기차에 태우고는 사람들로 붐비는 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얼마 후 우리는 이들이 백주대낮의 노상강도임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자동차 도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지 갑자기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로 갈아타는데 그는 경찰의 제지로 다시 야산으로 탈주한다. 다시 자동차를 훔쳐 달아난 이 사내는 반대편에서 오던 차를 몰고 오던 예의 친구를 만나 기쁨의 재회를 나눈다.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에서 은행을 턴 남녀가 차를 몰고 달아나다 재회해 기쁨의 키스를 나누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어 이들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프랑스로 건너가는데, 때마침 등장한 경찰들과의 총격전으로 가족들과 그 사내가 사살되고 주인공 니노 벤추라만이 살아남게 된다. 예측 불가능한 속도와 사건으로 치닫는 영화 초반부의 시퀀스는 실로 놀라운데, 운동의 리듬뿐만 아니라 음악, 액션의 안무, 얼굴의 클로즈업으로 이어지는 장면의 연쇄가 꽤나 시적이다.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잘 알려진 소테의 영화들 가운데 여전히 덜 알려진 이 영화가 이번 기획전에서 다시 재평가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1955년에 <미소여 안녕>이란 작품으로 데뷔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소테는 <거대한 위협>의 실패 이후에 절치부심하다(그는 이후 십여 년간 프랑스 영화계의 주요한 시나리오들을 손봐주는 ‘시나리오 닥터’로 활동했는데, 트뤼포를 포함해 모든 이들이 그에게 시나리오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1970년작인 <즐거운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197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로미 슈나이더와 엠마누엘 베아르 등의 여배우들과의 협연으로 유명하다. 특히 범죄자를 놓쳤다는 자책감에 시달린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맥스>(1971)와 중년의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세자르와 로잘리>(1972)에서의 로미 슈나이더의 마성의 미에 주목할 만하고, <겨울의 심장>(1992)과 <넬리와 아르노>(1995)에서의 엠마누엘 베아르의 귀품 있는 연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나쁜 아들>(1980)도 주목할 만하다.






소테의 영화에 대해 덧붙여 말한다면, 나는 그의 영화가 1930년대 프랑스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에 근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그의 영화에서 엿보이는 노스탤직한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작업의 방식, 스타일에서도 나온다. 프랑스 영화하면 작가 영화로 환대받지만 프랑스 고전주의는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스릴러, 사극 등의 장르 영화에 배우 시스템이 가미된 대중적인 영화였다. 시적 리얼리즘은 그러한 대중주의에 멜로드라마, 사회적 판타지, 누아르 리얼리즘, 낭만적인 페시미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을 결합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의 미덕이라 함은 일상에 시적, 정서적인 감성을 더하는 것으로 일상을 서정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에 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 또한 대중주의에 가까운데, 그는 비평가와의 불편한 관계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1999년 프랑스 비평가들이 대중적, 상업적인 프랑스 영화를 죽이기 위해 비평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며 맹비난을 했었다. 그의 대중적 면모는 스스로 ‘오락 영화를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자신감에 찬 말에서도 엿보인다. 물론 그의 대중주의는 이중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코미디에서 액션, 사극, 서스펜스 터치의 작품 등 르콩트는 다양한 장르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단일한 장르나 장르의 규범에 종속되지 않는 독특한 그만의 향기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는 과장된 코미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원래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다 영화를 시작했는데(최근작에서 그는 전력을 살려 드디어 3D 애니메이션 <파리의 자살가게>(2012)을 만들었다), 데뷔작의 실패 이후 그가 감독인생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은 프랑스 희극연극집단의 무대를 여름 휴양지로 옮겨 소시민들이 벌이는 레저 익살소동극인 <선탠하는 사람들>(1978)의 대중적 흥행덕분이었다. 후속작인 <선탠하는 사람들2>(1979)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들고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너무 열정적이라 조금은 왜곡된 사랑과 꿈같은 여정을 그린 출발점의 작품은 단연 <살인혐의>(1989)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1990)이라 할 수 있다. <살인혐의>는 언제나 창백하고 무표정한 고독한 중년 남자가 이웃집 아파트에 새로 이사온 앨리스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훔쳐보면서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인생이란 고독에서 행복과 사랑의 빛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의 영화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르콩트의 영화가 철저한 개인주의와 연애지상주의로 무장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노르망디 해안가를 배경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에 흥분을 느낀 소년이 나이가 들어 아름다운 미용사와 결혼해 꿈같은 사랑을 얻게 되는, 하지만 충격적인 비극으로 향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르콩트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인들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꿈처럼 제시한다. 그의 작품은 가장 일상적인 현실에서 시작해 다른 세계로의 꿈같은 여정을 그리는데, 이는 하나의 시간과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와 시간으로 톤과 분위기뿐만 아니라 빛, 컬러, 운동, 음악 등의 변형으로 표현된다. 일종의 무의식의 방법이라 할 만한 스타일에서 중요한 것은 정서적 일관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르콩트의 영화는 항상 현실과 허구의 세계가 다툼을 벌이고 남녀관계의 뒤얽힘이 계기가 되어 충만해져가는 꿈과 망상의 세계를 그린 우디 앨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르콩트의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특별한 연애관이다.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에서 엿보이듯이 르콩트의 주인공들은 연애라는 감정 안에서 서로의 차이들을 수용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습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연인들의 사랑의 감정인데, 이는 지극히 둘만의 유토피아적 세계에서만 납득할 만하다. 이런 경향은 결혼과 아이들 대신에 둘만의 관계와 모험, 여행을 강조하는 <걸 온더 브릿지>(1999)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영화는 관습과 모럴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애지도를 그리는 것만이 아닌 우리의 감각을 건드리는 침투해들어오는 여인의 몸들의 지닌 관능성 때문에 지극히 감각적이다. 그는 여인의 몸에서 빛이 쏟아지도록 화면을 장식한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물론이고 지극히 에로틱한 <이본느의 향기>(1994), 그리고 <친밀한 타인들>(2004)에서 우리는 여성의 머리카락, 어깨, 쇄골, 발끝이 얼마나 감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게 된다. 그의 영화는 루이 말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논리나 이성보다는 감성의 여행을 떠나기를 관객들에게 권고한다. 연인들은 그의 영화에 투영된 감성의 지도 위에 그려진 강줄기를 따라 미지의 영토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런 연인들의 유토피아는 또한 우리들의 삶의 근원에서 기원한 것이다. 르콩트는 현대적 삶이 정서적 고독의 상태에 놓여있음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러므로 사랑과 우정이라는 가치가 단연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사랑처럼 선언되지 않는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는 <마이 베스트 프렌드>(2006)를 주목해 볼 수 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는 클로드 소테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영화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 두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 영화음악가, 촬영감독, 스타 배우들과의 지속적인 협업으로 유명하다. 세밀한 시각적 구성, 감미로운 음악, 돋보이는 연기들은 이런 지속적인 공정의 결과다. 이번 기획전은 소테의 영화들을 다시 논의해볼 좋은 기회이지만, 무엇보다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대중영화의 미덕을 품위 있게 지키는 두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욱 / 영화평론가)


*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클로드 소테, 파트리스 르콩트' 전에 맞춰 <씨네21>에 썼던 글이다. <겨울의 심장>(당시 개봉제목은 금지된 사랑이었던)을 신사동의 씨네하우스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클로드 소테의 초기작, 특히나 < 거대한 위험>은 필견의 작품이자, 누벨바그 영화들 가운데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작품이다. 클로드 소테의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계절. 

  1. fool 2014.02.27 23:54

    클로드 소테와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들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척 보고 싶은데 부산까지 가기엔......서울의 바쁜 일상이 여유로움을 주지 않을 듯 합니다.ㅠ.ㅠ

    • Hulot 2014.02.28 01:54 신고

      서울에서도 할 날이 있을 거예요. 겨울쯤에 조금은 쓸쓸한 느낌으로 영화들을 보고 싶네요.



 

이 목록들은 지극히 우연적인 선택의 결과다. 미국 영화들 중에서 최근 디지털 복원된 작품들 네 편을 추렸던 것이다. 시대는 제각각 다르다. 다만 선택의 과정에서 은연중에 ‘패닉panic’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패닉이란 알다시피 돌발적인 불안과 공포, 스트레스에 의한 혼란한 심리상태를 말한다. 혹은, 그에 따른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일종의 공황상태다. 이 단어와 함께 의식에 부상한 것은 도덕moral이란 말이었다. 그렇게 모럴과 패닉의 합성어가 만들어졌다. 이 개념은 1972년 영국의 사회학자 스탠리 코엔Stanley Cohen이 1960년대 영국의 매스미디어가 당시 모즈나 로커즈라는 거친 젊은이들을 어떻게 과잉 보도했는지를 기술할 때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도덕적 공황을 일컫는 말로 사회질서의 위협으로 간주된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발산되는 다수인들의 격렬한 감정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표현은 시대의 불안과 관련이 깊다. 어떻게 무분별한 시대의 불안이 사람들의 분노와 격노로 격해져 가는지, 치안에 대한 불안이 무뢰한이나 반문화집단을 배제하는 집단 공포와 집단 광기, 혹은 집단행동으로 전이되어 가는지를 말해준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섹션의 작품들은 그런 ‘도덕적 패닉’의 전형성을 대표할 영화들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연적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목록이 적다. 다른 부제들을 관객들이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만, 패닉과 시대적 모럴의 비틀어진 합성의 작품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영화 그 자체가 오랫동안 시대의 도덕적 패닉의 대상이 되어왔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극장의 어둠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보여주고 저급한 행동이 벌어질 수 있는 나쁜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언제나 무언가 은밀한, 음습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열이 동원되고 극장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스크린에 전시되는 폭력과 섹스의 이미지에 과다한 반응이 생기기도 했다. 영화는 비도덕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장소이자 반사회적인 이미지들이 들끓는 곳이기도 했다. 영화는 그 시대의 모럴의 위기를 반영하고, 혹은 그 위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영화에서의 패닉과 모럴의 문제는 그러므로 그 시대의 정치학을 반영한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는 시대의 상상된 사회에의 위협을 표상한다. 이 네 편의 영화는 그러므로 각각의 시대에서 사회의, 혹은 사회에의 위협을 상상화한 작품들이라 말할 수 있다. 목록은 당연하게도 확장되고 넓어질 것이다.



 

그 첫 번째 작품은 프리츠 랑의 <인간 사냥>(1941)이다. 프리츠 랑, 더글라스 서크, 로버트 시오도마크, 에드워드 드미트리, 존 베리, 조셉 로지, 밀로스 포먼, 로만 폴란스키. 이름은 더 호명될 수 있겠지만, 이들은 모두 시기와 이유는 다르지만 제 나라를 떠나야 했던 망명의 작가들이다.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던 이들, 빨갱이 사냥 시대에 미국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건너가야만 했던 작가들, 혹은 공산권에서 망명한 작가들이다. 망명자들의 영화, 혹은 망명은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그 흥미로운 사례의 처음에는 아마도 프리츠 랑이 자리할 것이다. 프리츠 랑은 나치 독일에서 망명한 작가이다. 프리츠 랑의 미국 시절(1934-1956)은 그러므로 독일의 우파Ufa 스튜디오에서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던 때와는 달리 실업을 피하기 위해 그가 얻을 수 있는 무엇이든 작업을 해야만 했던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피고용자 신분의 작업을 의미한다. <인간 사냥>은 이 시절의 초기에 만들어진 영화로, <사형수 또한 죽는다>(1943), <공포의 내각>(1944), 그리고 <클로크와 대거>(1946)로 이어지는 반-나치 영화의 첫 번째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하던 해는 1941년으로, 당시 미국은 2차 대전의 참전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진주만 폭격은 이 영화가 개봉하고 반 년 후에 벌어졌다.

영화의 첫 시작부에서 우리는 영국인 사냥꾼 손다이크가 독일의 시골 마을에서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체포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동물을 죽이지 않고 단지 목적을 달성하는 영국식 사냥 스포츠를 즐겼을 뿐이라 답한다. 나치 장교는 그가 히틀러를 암살 기도했다는 조작 서류에 사인을 하도록 강요한다. 때는 영국과 나치 독일이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가기 전인 1939년. 그는 죽음의 위협에서 탈출에 성공해 런던에서 아름다운 여인 제리에게 도움을 얻지만 얼마 후, 독일과 영국은 전쟁에 돌입하고 이번에야말로 그는 히틀러의 암살을 위해 적진에 침투한다.

서스펜스 스릴러처럼 전개되는 이야기가 꽤 복잡한 모럴의 문제를 불러오는 것은 영화의 중반 이후를 거치면서이다. 손다이크는 게임 사냥꾼으로 자신이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강변한다. 그는 죽이는 게 아닌 추적 과정에 그 맛이 있는 사냥이야말로 최고의 게임이라며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나중에 그의 운명은 나치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면서 그리고 한 여인과 만나면서 변하게 된다.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성냥갑이 그러하듯이 손다이크와 제리의 관계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은 활 모양의 머리핀이다. 이 둘의 관계에 어떤 낭만성이 없다는 것이 특이한 일이다. 랑은 둘의 로맨스 대신에 활 모양의 머리핀을 기호로 활용한다. 영화의 한 장면. 잃어버린 머리핀을 사기 위해 가게를 방문하는 장면은 어렴풋이 독일 시절 그가 만든 <엠>의 한 장면, 즉 연쇄살인범이 쇼 윈도우 앞에서 진열된 물건들에 사로잡힌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마찬가지로 쇼 윈도우 앞에서 넋을 놓고 소비사회의 물건들을 쳐다보는 소녀에 은밀한 시선을 보낸다. 쇼 윈도우는 랑에게 현대적 도시, 시각적 호기심과 매혹의 이미지가 전시되는 장소다. 미국 시절로 넘어가면서 랑의 영화에서 쇼 윈도우는 도시적 소비문화가 양산한 강박성과 억압된 욕망의 기호들의 전시로 종종 등장하곤 했다. <엠>에서의 기하학적 패턴의 칼과 거울, 그리고 화살 모양의 장식들을 보고 있던 살인자는 곧이어 도시의 어둠의 사냥꾼들에게 추적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영화의 내러티브 중심에서 벗어난 꽤 예외적인 휴지부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러티브를 갱생하는 이미지의 논리가 작동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인간 사냥>에서 우리는 이 화살의 기호가 어떻게 작동하게 될 것인지를 앞으로 보게 된다. 제리는 하트 모양의 머리핀은 흔하니 화살 모양의 핀을 달라고 주문한다. 가게 주인은 크롬으로 만들어진 이 머리핀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멀쩡할 거라 말한다. 그녀는 그 말대로 희생자가 될 것이고, 머리핀은 남아 손다이크의 모럴을 자극한다. 동굴에서의 나치 장교와의 활의 싸움. 최종적으로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그의 시도. 비행기에 그려진 화살의 기호. 사랑과 죽음, 그리고 공포의 이미지로 기억될 기호들.


 




헨리 헤서웨이의 <죽음의 키스>(1947)는 로버트 시오도마크의 <킬러>(1946), 아브라함 폴란스키의 <악의 힘>(1948),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1949), 그리고 라울 월쉬의 <화이트 히트>(1949)로 이어지는 40년대 필름 누아르의 대표작이다. 이야기는 뉴욕의 크리스마스 날에 벌어진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지만, 운이 좋지 않은 이들, 특히 전과자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닉에게는 불행한 날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하는 때에 다른 방식으로 선물을 사려 한다. 영화 초반의 돈을 터는 강탈 시퀀스, 그리고 이어지는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장면이 꽤나 초조한 긴장감을 불러올 만큼의 정교한 편집으로 흥미롭다. 이 영화는 범죄자 닉의 운명적 상황을 강조한다. 그의 범죄에 대한 뚜렷한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기에 이 사건은 순수하게 그가 처한 절망적 상황을 부각시킨다. 범죄가 크리스마스에 벌어지는 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그가 기독교적인 희생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삶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리하여 유일한 방법으로 종교적 믿음과 희생에 도달한다. 영화는 당시의 스튜디오에서 벗어난 리얼 로케이션 촬영의 진수를 보여준다. 동시에 사회적 행동과 개인의 모럴의 희망 없는 상태, 무력함을 전시한다. 그 가운데 휠체어의 노파를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신흥 범죄자 리처드 위드마크의 위협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 흥분된 에너지가 충격을 준다. 이 파괴적인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건 크레이지>와 <화이트 히트>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사회와 법이 시대적 불안과 공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70년대 터프한 경찰영화들에서도 발견된다. 즉, 사회가 구제될 수 있고 구제되어야만 한다는 약속이 실패로 끝나는 것은 <더티 해리>와 <프렌치 커넥션>(1971)과 같은 영화에서 플롯의 전제이다. 자경단의 액션은 정신이상적인 형사의 과격한 폭력에서 구제를 찾기 힘든 사회의 몸서리치는 비전을 제시한다. 윌리엄 프리드킨을 유명하게 만든 <프렌치 커넥션>의 주인공, 뽀빠이 형사 지미(진 핵크만)는 활력이 넘치고 과격한 폭력을 불사하는 이로 범죄자를 소탕한다는 명목 하에 차를 몰고 범죄자를 추적하면서 도리어 거리를 패닉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마르세이유의 허름한 집에서 한 남자가 킬러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해, 브루클린의 뒷골목에서 뽀빠이 형사가 마약 판매원을 후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영화는 법 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목 하의 과다한 폭력에의 의존, 더 나아가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사회적 질서를 도리어 침해하는 폭력을 행사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폭력과 살인을 종결시키려는 폭력은 뽀바이 형사와 같은 반영웅이 휴머니티를 반납하고 치러야만 하는 도덕적 부담이다. 자경단은 그러므로 다크 나이트의 초인이 되어야만 한다. 그의 매력은 그의 모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의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에 있다. 탐정으로서의 그의 절차적 능력, 범죄자를 쫓는 탁월한 드라이빙의 재능, 그리고 파이터로서의 몸의 파워. 경찰의 자질은 법 질서의 집행이 아닌 절차적으로 숙달된 능력에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공들인 유명한 장면들은 모두 추격의 시퀀스들이다. 그리고 이 추격의 상황이야말로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 선과 악의 판별력을 흐리게 만드는 무차별한 액션의 롤러코스트를 만들어낸다. 최선의 사내는 결국 최고의 추격자여야만 한다. 고도로 스타일화된 추격 장면은 그러므로 가장 사실적인 것으로 포장된다. 아니, 사실로서 인정되어야만 한다. <프렌치 커넥션>에 따라붙은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이란 비록 이 영화가 경찰들의 세속적인 일과들을 강박적으로 전시하고 있음에도, 지극히 양식적인 것들로 원인을 지워가면서 그들의 대담한 행동에 주목하게 하는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법 질서 확립의 권위를 상실한 사회에서 경찰은 사회적 질서를 대변하는 단독자로 나서기 위해 그의 모든 능력을 미화시켜야만 한다. 뉴욕은 더럽고 추하고 사악하다. 모럴은 그러므로 사회가 처한 물리적 위험보다 덜 중요해진다. <프렌치 커넥션>은 정치적 주장을 슬며시 피하면서(가령 뽀빠이 형사의 적수는 부패한 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 사업가이다) 흑백의 인종적 갈등을 법 질서와 경찰의 하위문화의 관계로 치환한다. 나중에 우리는 로드니 킹 사건에서 현실의 파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기말의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1999)이 있다. 공개 시에 폭력적인 영화이므로 상영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영화다. 실제로 <파이트 클럽>의 초기 예고편은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방영되지 않았다. 파시스트적이라거나 무책임한 영화로 비난받았고 영화의 극단적 폭력과 잔인성에 대한 시각적 묘사가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고 불쾌하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폭력이 흥미로운 것은 그 방향이 타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후반부의 집단적 테러리즘의 경우로 치닫는 경우를 제외하자면), 자기 파괴적인 폭력에 가깝다는 것이다. 맞는 것에 의해서 아픔을 안다는 것, 아픔을 느끼는 것으로 살아있다는 실감을 맛보는 것. 통증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래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얻어맞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가령, 빌딩의 술집 지하를 파이트 클럽으로 전용한 테일러에게 격분한 주인이 찾아와 그를 후려질 때, 테일러는 전혀 반격하지 않고 맞는 것을 기뻐한다. 그 반응에 불길함을 느낀 주인은 결국 사용을 허락하고 자리를 떠난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후반부에 내레이터(내레이션을 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가 미모의 청년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리는 분노의 폭력이다.

내레이터인 에드워드 노튼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에서 빠져나와 타일러와 만나면서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스러운 탈영토화의 공간에 자리하게 된다. 이들의 폭력은 소비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공격의 대상으로 한다. 그들은 캘빈 클라인의 속옷 광고와 잘 만들어진 근육을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항하는 저항으로 자기 파괴적인 폭력행위를 신봉한다. 파트리샤 피스터르스가 『시각문화의 매트릭스』에서 지적하듯이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분열증-운동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타일러가 내레이터에게 어떻게 비누와 폭탄을 만드는지를 가르쳐 줄 때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우아한 문화의 하나인 지방흡입 병원에서 사람의 몸에서 나온 찌꺼기인 지방 덩어리를 훔쳐 글리세린 비누와 니트로글리세린 폭탄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판매하는 비누는 백화점 매장에 진열되고, 폭약은 나중에 신용카드 회사와 자본주의 상징물들을 폭파시키는 데 활용된다. 지방 찌꺼기는 소비 상품으로 전화하고, 결국에는 전체 체계에 대항하는 니트로글리세린 폭탄이라는 파괴적인 무기로 전환되는 것이다. 지젝의 말을 빌자면 이러한 파괴는 위반으로서의 전복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전복 자체를 전복하는 것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2014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특별섹션으로 상영중인 네 편의 영화에 대한 글이다. 아쉽게도 상영작 중에서 프리츠 랑의 <인간 사냥>은 상영본의 문제 때문에 결국 상영이 취소되었다. 다른 기회에 다른 작품들의 목록을 포함해 다시 이런 주제의 프로그램을 기획해보고 싶다.

  1. noname 2014.02.27 00:10

    잘 읽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올려주시는 글 빠짐없이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글 올려주세요~^^

    • Hulot 2014.02.28 01:55 신고

      약속은 못하지만, 전보다는 자주 뭔가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2. YUTLU 2014.11.12 01:02

    이용약관위배로 관리자 삭제된 댓글입니다.

 

 

 


2014
년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1914-1977)의 탄생 백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올해 랑글루아 백주년 행사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 벌일 예정이다. 랑글루아는 책에서 언급된 영화들, 영화의 역사에 그저 이름만 있던 영화들을 살아있게 했다. 시네마테크의 상영 덕분이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아버지이자 영화 프로그래머란 직업의 창시자로, 영화의 아이들(cine-fils)이 그러하듯 적어도 이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어떤 의미로든 그의 아이들이다. 그의 특별함은 탁월한 열정뿐만이 아니라(그는 시네마의 종사자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열정passion이라 여겼다), 그것을 어떻게 전시하고 조직하는가에 있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역사에 정통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요하기 때문이다.

 

랑글루아는 영화와 관련해 손쉬운 합의를 도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의 종사자들에게 무조건적인 우정을 보내기도 했지만, 또한 치명적인 증오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 치명적 결과는 알다시피 1968년에 있었던랑글루아 사태로 벌어졌다. <랑글루아의 유령>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클로드 샤브롤이 지적하듯이랑글루아 사태는 그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명성, 그리고 그가 필연적으로 양산한 적들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영화의 역사는 친구만이 아닌 적들과의 전투의 흔적들이다. 우리의 동료이자 친애하는 적들. 자연스럽게 어떤 친구들은 적으로 돌아서고, 또 반대로 그를 시기했던 이들이 친구가 되기도 했다. 가령,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못지않은 아름다운 벨기에 시네마테크의 설립 자인 자크 르도는 그의 적대적 경쟁자였다. 물론 나로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와 친구들과의 돈독한 우정이다. 특별히 랑글루아와 그의아이들중의 한 명인 주앙 베르나르 다 코스타(1935-2009)와의 우정의 관계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베르나르는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를 포함해 페드로 코스타 등 포르투갈 감독들이 존경했던 포르투갈 시네마테크의 관장이었다. 베르나르는 젊은 시절에 리스본에서 영화사의 위대한 고전들과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5-60년대 리스본에서는 정치적 검열과 문화적 빈곤, 그리고 고립주의 때문에 과거의 영화와 만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1958, 23살의 나이에 그는 처음으로 파리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를 방문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의 고백. “극장문을 열고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함 포템킨>, <국가의 탄생>, <일출>, 그리고 <잔다르크의 수난>과 같은, 글에서 많이 읽었던, 사진들로만 보았던 영화들을 내 눈앞의 스크린으로 마침내 보게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을?” 영화는 늘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가 의미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았던 영화들을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우리가 기대하는 영화들은 언제나 아직 보지 못한, 하지만 존재하게 될 영화들’(고다르)이다. 그 후, 베르나르는 굴벤키안 문화재단의 영화부문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1973년 랑글루아의 도움으로 리스본에서로셀리니 회고전을 개최할 수 있었다. 리스본의 시네필들은 랑글루아가 대동한 로셀리니를 극장에서 만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무방비 도시>가 상영되는 오프닝 행사에서는 상영 후에 기립박수와 함께자유 만세파시즘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난무했다고 한다.

 

이런 훈훈한 우정에 더해 나로서는 그들의 우정을 넘어선 차이 또한 주목한다. 거부하고 싶더라도 우리는 결국 랑글루아의 키드이겠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시간대, 조건에 있기에 친화성 못지 않게 거리를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리스본의 베르나르 또한 파리의 랑글루아와는 다른 프로그래밍을 해야만 했다. 마치, 파리의 고다르와 저 남미의 글라우버 로샤가 만났을 때 로샤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들은 영화를 해체하고 있는데 우리는 해체할 영화가 없으니, 먼저 영화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랑글루아는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저급한 것과 고급한 것의 문화적 기준을 거부하는 프로그래밍으로 유명했다. 그는 심지어 좋은 영화만 선별한 것이 아니라 아닌 모든 영화를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작품이 좋은지 누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영화사는 그 반대의 진실을 언제나 보여주었었다. 반면, 베르나르는 주로 작가들의 회고전에, 그리고 다소 교훈적이고 영화사의 위대한 정전의 작품을 상영하는 데에 치중했다. 이는 1970년대 리스본에서 절실했던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관객을 늘리고 좋은 작품을 접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작들을, 그동안 상영되지 못했던 영화들을 소개하고 보다 근본적인 영화 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치중했다.

 

 

 

파리의 랑글루아는 상상적인 프로그래밍을 꿈꾸었다. 그는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가정한 프로그래밍, 가령 이 가상의 관객들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들이 하루 동안 종일 영화를 볼 경우에 서로 이질적인 영화들의 자유로운 배치로 영화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다리를 놓는 비밀스러운 기획을 하기를 원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영화적 이미지들이 그려내는 비밀스러운 성좌의 구축. 이미 시네마테크를 설립하기도 전에 그는 샹젤리제의 작은 공간을 빌려서시네마 판타스티크Le Cinéma Fantastique’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개최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에 랑글루아는 어떤 휴식 시간도 없이 세 편의 장편 영화를 연달아 상영했다. 장 엡스탱의 <어셔 가의 몰락>(1928),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그리고 폴 레니의 <라스트 워닝>(1929). 이 세 편의 정해진 주제와 기획의 의도는 분명치 않다. 그는 한 편의 영화 이전에, 그리고 다음 영화와의 관계에 영화가 놓여지기를 원했다. 라울 월쉬의 영화 전에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를, 미조구치의 영화 다음에 히치콕의 영화를 상영하는 식으로. 계몽적인 기획의 주제보다는 삼투현상에 의한 영화 교육을 믿었던 것이다. 종종 랑글루아의 영화박물관의 전시는 심지어 연대기도 그 어떤 꼬리표도 달지 않은 전시물들의 배치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전통적인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은 랑글루아의 그런 방식의 배치에 비전문가라는 경멸을 표하기도 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고물상의 무질서한 배치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라는 비난들. 하지만 상상의 시네마크는 이런 꿈이었다. 어느 날, 루브르 박물관에 도둑이 들어 모든 전시물들의 꼬리표를 제거하고 마음대로 예술품들을 뒤섞어 버린다. 그 다음 날 관객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박물관에 들어와 연대기도, 주제도 무시된 채 무질서하게 배치된 예술작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그런 날들이 오게 되면 더 비밀스러운 예술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이 어떤 일관된 기준 없이 선택한(친구들 스스로 작품을 선택하는 고유의 일관성과 철학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들이 상영되는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다. 정말 영화를 즐기고 싶다면 이 무질서한 영화들의 사이, 우연한 관계와 배치에 더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부탁드린다. 위계와 통제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 짐 자무시의 영화가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을 상기하고 싶다. No Limits, No Control.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2013 베니스 인 서울]

 

올해의베니스 클래식섹션에서는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연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다미아노 다미아니, 엘리오 페트리, 프란체스코 로지, 로셀리니의 대표작과 파졸리니, 베르톨루치에 관한 다큐멘터리 등 이탈리아 현대영화를 개괄할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작으로 소개하는 지안프란코 로지와 지아니 아멜리오의 작품 또한 전후 이탈리아의 위기를 반영한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있다. 1950년대의 네오리얼리즘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는 이탈리아 영화의 어떤 경향을 살펴본다.

 

네오리얼리즘 영화혁명

 

 

 

 

“1940년대의 영화 혁명인 네오리얼리즘과 1400년대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 간에 공통점이 있습니까?” 갈릴레오 박물관에 들어선 한 남자가 과학사 연구소의 박물관 관장에게 던진 질문이다. 박물관의 관장은 둘 간에 공통적인 흔적이 발견된다며 미술, 과학, 기술에 걸쳐 강한 연관성이 있었고 네오리얼리즘이 영화사에 변화를 일으켰듯이 르네상스 미술에 있어서 직선 원근법이 도입되면서 미술사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지아니 보차키의 <네오리얼리즘 강의>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하는 다큐멘터리다. 그는 다양한 영화인들(베르톨루치, 에르마노 올미, 파울로 타비아니,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 등)과 영화에서 발췌한 특정한 장면들을 병치하면서 네오리얼리즘으로 향한 영화의 창문을 열어 보인다. 내레이터는 올해 세상을 떠난 카를로 리차니이다. 그는 영화평론가로 출발해 로셀리니의 <독일영년>의 각본을 썼고, 네오리얼리즘을 이끈 영화감독이다.

영화와 미술, 혹은 과학사와의 관련성이 논의의 중심은 아니다. 요점은획기적인 변화혹은영화 혁명이라는 표현에 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아직 전쟁 중이던 1940년대 초부터 50년대 초까지 10년간 지속된 것으로 제한된 그룹의 이태리 영화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단어에 대한 어떠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심지어는 어떤 영화가 네오리얼리즘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거나 또는 그 영화들의 수를 몇 편으로 할지( 1,000편의 이탈리아 영화 중 몇 편이 네오리얼리즘 영화인가?)를 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네오리얼리즘은 시기적으로 대략 10여년간 지속됐지만, 그럼에도 20세기의 나머지 절반 동안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의 영화감독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던 영화 혁명이었다. 만약, 네오리얼리즘이 영화 혁명이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이러한 영화적 경향이 역사적 위기의 순간에 국민적 정체성의 부활의 수단으로서 새로운 영화의 역량을 보여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네오리얼리즘은 단지 하나의 사조가 아니라 미학적 저항, 즉 영화적 형식 그 자체의 새로운 관념에 근거한 미학적 저항이었다. 카를로 리차니의 충실한 강의에 고다르가 <영화사> 3A에서 제안한 네오리얼리즘의 혁명적 의미를 덧붙이고 싶다. 고다르는 영화가 역사적 위기의 순간에 국민적 정체성을 갱신하는 수단이라 설명한다. 3A에서 고다르는 제도화된 회상, 즉 파리수복 45주년  기념식의 장면에서 영화와 텔레비전의 현재 상태에 애도를 표한다. 왜냐하면 프랑스 영화는 결코 독일과 미국에서 해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과 할리우드의 점령에 저항한 유일한 영화로서 로셀리니의 영화를 손꼽고,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평범한 제작방식에 경의를 표한다. 완전히 예견치 못한,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적 행위, 그리고 스튜디오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서 적대적인 조건에서 촬영된, 영화의 완전한 잠재성의 실현, 시각예술의 독특한 형식, 대중적이고 국민적인 규모에서 작동하는 국민의 미래의 자아를 투사한 영화들.

 

 

 

 

 

파졸리니와 베르톨루치에 관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 윌터 파사노의 <베르톨루치가 말하는 베르톨루치>(2013)와 엔리코 멘두니의 <예언 : 파졸리니의 아프리카>(2013)에서는 네오리얼리즘의 짧은 시기를 거친 이후의 이탈리아 영화에 어떤 변경이 있었는지 두 명의 작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가령, 파졸리니는 네오리얼리즘의 영향 하에 있던 <아카토네> <맘마 로마>를 만든 후에 중요한 변화를 겪는다. 그는 수난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모순적인 충돌을 그리던 초기의 시기에서 전통적인 맑시즘의 위기와 현실사회주의의 문제들, 신자본주의와 파시즘의 등장이라는 명백한 위기를 정식화하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파졸리니는 1950년대의 작가들이 노동계급과 인간성에의 공통된 희망을 논의하는 성스러운 불꽃의 수호자였다면 이제 작가들에게, 그리고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시도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파졸리니는 이 시기에 또한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이탈리아적인 지식인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을 떠난 것이다. 1961, 파졸리니는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와 처음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 새로운 여행은 새로운 신화, 3세계에 대한 점차적인 발견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영화작업과 여행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이국적인 문화들과 먼 곳의 장소들을 탐구하는 행위로 확장된다. <예언 : 파졸리니의 아프리카>는 스스로를현대보다 더 현대적인 방랑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형제를 찾는 방랑자라 여긴 파졸리니의 제 3세계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60-70년대 정치영화의 두 전선 - 프란체스코 로지와 엘리오 페트리 

 

 

지난해베니스 인 서울에서 <마테이 사건>이란 작품으로 소개한 바 있는 프란체스코 로지는 전후, 그리고 포스트-네오리얼리스트 영화적 세계에서 단연 주목할 만한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영화는 이탈리아 사회의 현대적인 부패, 절대권력, 그리고총탄의 시대라 불린 70년대의 테러리즘을 다룬다. 로지는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의 조감독을 했고, 마피아 문제를 다룬 <살바토레 쥘리아노>(1961)로 데뷔해 유명세를 얻었다. 로지의 특징이라면 그가 전형적인 이야기의 작가라는 점이다. 그는 신화, 전설, 역사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가령, <살바토레 쥘리아노>를 시작으로 <마테이 사건>(1972), 그리고 <럭키 루치아노>(1973)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모두 정치적이고 산업적인 유명인들의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러나 단지 세계적으로 알려진 매버릭들의 개성과 성취, 삶을 다루는 전기 영화로 흐르지 않는다. 로지가 이러한 인물들을 다룬 것은 그들이 이태리 공화국의 삶에서 명백한 위기를 체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무법자이고, 또 다른 이는 정부의 독점가, 혹은 범죄자이다. 로지가 꼽은 인물들의 삶은 그러므로 이탈리아의 현대사, 그리고 국가의 일과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로지의 관심은 이탈리아의 정치적 맥락에서 권력, 통치, 경제적 지배를 인물들의 삶을 빌어 영화로 표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지는 타비아니 형제, 올미, 베르톨루치, 마르코 페레리, 마르코 벨로키오와 차이를 보인다. 그는 이데올로기적인 작가가 아니었다. 좌파 정치학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권력과 정치의 파워게임을 표상하는 데 더 관심을 보였다.

이번 ‘2013 베니스 인 서울에서 최초로 소개하는 <도시 위에 군림하는 손>(1963)은 그런 로지의 정치적 영화의 출발점의 작품이다. 현대 이탈리아의 권력구조가 주제이다. 나폴리의 주택지구 재개발 뒤에 숨겨진 거대한 부패가 관심사이다. 로지의 카메라는 정치적 언설들이 쏟아져 나오는 회의실, 법정, 의사당, 사무실, 바 등을 오가며 여기서의 발언들로 권력의 비가시적인 구조들에 접근해 들어간다. 로지의 영화는 강렬한 정치성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본성적으로 과격하거나 프로파간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특정 정당에 속하지 않았고, 계몽주의적인 태도나 주장을 전달하는 데에 덜 관심을 보였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그의 방식은 먼저 조사와 탐사에서 시작해 주제들이 논의되고, 그러한 사실들과 사건들에 대한 해석의 여지들을 비록 모호하고 복잡하더라도 풀어놓는 것이다. 권력과 지배의 매커니즘에 접근해 들어가는 것,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절대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의 불가능성, 곤란함에서 정치성을 사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로지의 영화가 지닌 흥미로움이다.

 

 

 

 

불행하게도 짧은 영화적 경력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난(그는 1929년에 태어나 1983년에 세상을 떠났다) 엘리오 페트리는 로지와 동시대에 다른 경로로 정치적인 영화를 시도한다. 로지의 영화가 특수하게 이탈리아적인 반면 페트리는 국제적 성공을 거뒀는데, 무엇보다 정치학과 이데올로기를 흥미로운 영화적 형식과 대중적인 기호들과 연결해 대중적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페트리는 노동계급 출신이고 이탈리아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영화비평가로서 활동을 시작해 카를로 리차니, 푸치니, 디노 리치 등의 이탈리아 감독의 각본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네오리얼리즘의 유산 아래서 영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객관적 현실의 재현보다는 사회적 의식의 형성에서 개인의 심리학을 고려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분석의 객관적 요소만이 아니라 개인의 의식, 주관성의 문제를 사회비평과 정치적 참여의 문제와 결합한다. 로지가 지리-정치학의 문제를 다뤘다면, 페트리는 사회의 병리학을 탐구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사적 소유는 절도가 아니다>는 권력의 졸개인 경찰에게 면죄부를 보장하는 사회의 매커니즘을 다룬 <완전범죄>(1970),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계급의 정신병리적인 문제를 다룬 <노동자 계급 천국에 가다>(1972)에 이어사회적 신경증 삼부작을 이루는 작품이다. 페트리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병리적 탐구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그리고 비평가들에게도 외면 받은 저주받은 영화다.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하고 그로테스크한 초상을 그렸던 탓에 그 대담한 시도가 아마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탓이다. 이 영화에서 페트리는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변태적 가치를 양산하는가를 탐구한다. 젊은 은행원인 토탈은 드문 피부 질병을 갖고 있다. 그는 돈에 알레르기를 보인다. 그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돈은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돈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사적 소유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페트리는 자본주의적인 질병을 소유에의 열망으로 표현하는데, 이 질병에 면역체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다. 페트리는 소유와 돈의 폐쇄된 방에 갇혀 우리의 무의식이 방출하는 유독성 개스에 질식되지 않으려면 그것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해야 한다고 말한다.

 

  

네오리얼리즘의 유산 - 두 편의 이탈리아 신작

 

 

네오리얼리즘의 유산은 두 편의 이탈리아 신작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가령,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지안프란코 로시의 <성스러운 도로>와 지아니 아멜리오의 <용감무쌍>이 그러하다. 각각, 다큐멘터리와 픽션이지만 이 두 편의 영화는 1950년대 네오리얼리즘 영화가 전후 이탈리아의 위기적 상황에서 담아낸 실직, 빈곤, 고독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성스러운 도로>는 감독 지안프란코 로시가 2년간 미니밴을 타고 로마의 거대한 외곽순환도로 ‘GRA’ 주변을 다니며 그 주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에 담긴성스러운은 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신비로움, 혹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로마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순환도로라는 설정은 중심과 주변의 차이를 강조하는데, 대략 이 외곽지역에는 300만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고, 로마 중심부에는 15만 정도의 인구가 있다고 한다. 이런 중심과 주변의 차이는 1950년대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주제를 또한 떠올리게 한다. 가령,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은 발 멜라이나Val Melaina라는 로마 성벽에서 5마일 떨어진 지구에서 시작하는데, 이곳은 아직 완성조차 되지 않은 신지구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중심지로부터의 거리 때문에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으러 도시로 갈 수도 없었다. <움베르토 D>는 더 이상 로마의 중심지에서 살 수 없어 변두리에 아파트를 구해야만 하는 노인의 절망을 그렸다. 중심지는 점점 현대화되어가고 돈을 갖지 못한 이들은 주변부로 계속 이주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구두닦이>의 소년들은 끔찍한 도시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들의 환경에서 결코 탈출할 수 없는, 가장 가난한 지역에 살던 희망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미지의 작가이지만 80년대 난니 모레티와 더불어 이탈리아 영화를 대표한 작가인 지아니 아멜리오 감독의 신작 <용감무쌍> 또한 비토리오 데 시카의 네오리얼리즘적인 시정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아멜리오 감독은 1990년작 <선고>, 1992년작 <도둑맞은 아이들>, 1994년작 <라메리카>로 유럽영화상을 수상했고, <도둑맞은 아이들>은 또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1998년작인 <우리가 웃는 법>으로는 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아멜리오 감독은 특정한 시대와 역사 속에서 힘겨운 삶을 겪은 한계적인 인물들에 주목했고, 특히나 인간적 관계의 어려움 가운데 인간의 존엄성과 휴머니티를 담아내는 데 주력해 왔다.

 

 

 

총탄의 시대에 테러리즘을 배경으로 부자 간의 갈등을 그린 처녀작 <마음의 통증>(1983)을 시작으로, 아멜리오 감독은 파시즘기의 팔레르모를 무대로 사형제도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그린 <선고>(1990)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도둑맞은 아이들>은 어머니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한 11살 소녀와 그의 동생이 젊은 경찰에 끌려 고아원으로 호송되어 가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힘든 현실에 노출되어 사회에 내던져진 아이들과 그들을 지키려는 경찰이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이 시정 넘치는 화면으로(특히 금빛으로 물드는 바닷가의 백사장에서 호송 중에 잠시 일탈해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잊기 힘들다) 아름답게 그려진다. <하우스 키>(2004) 15년간 떨어져 살던 아버지와 아들이 갑자기 만나게 되면서 겪는 부자의 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색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짧은 여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그들이 웃는 방법> 1958년부터 1964년까지의 이탈리아 부흥기를 배경으로 시칠리아에서 토리노로 상경한 형제가 시대에 농락당하는 비극을 그려낸 작품이다. 최근작인 <최초의 인간>(2011)은 알베르 카뮈의 자전적 소설이자 유작을 영화화했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빈곤과 차별이 횡행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용감무쌍>은 그런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놀랍게도 공식적으로는 그의 첫 번째 코미디이다. 경기침체가 만연한 밀라노를 배경으로 주인공 안토니오는 불가피하게 하루를 쉬어야 하는 노동자들을 대신해 매일 직종을 바꿔가며 일을 한다. 피자 배달원, 전차 운전, 장미꽃 배달, 레스토랑의 요리사 등등, 그가 하는 일들은 가히 모든 노동자들의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아내와 이혼한 안토니오는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20대 여성 루시아를 만나게 된다. 루시아는 미래 없는 자신의 삶에 꽤나 비관적이고 모든 일에 시니컬하게 대처한다. 영화의 전체 톤은 무성영화 코미디에 가까운데, 안토니오는 그래서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한다. 실업의 문제를 코믹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의 전작들에서 보인 인간들의 관계의 어려움을 어둡게 그려낸다. 젊은이들, 그리고 나이 든 이들은 피할 수 없는 실업의 문제에 시달린다. 안토니오는 조금씩 젊은 여인에게 마음이 끌리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고, 마찬가지로 섹소폰 연주자인 아들과의 사이도 서먹하다. 아멜리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세대의 대표자로서 젊은이들에게 죄의식을 느낀다고 고백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안토니오는 두 명의 이십대 젊은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는데, 그들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에 결국 절망감을 느낀다.

 

성공적인 데뷔작 - 엠마 단테의 <팔레르모의 결투> 

엠마 단테의 <팔레르모의 결투>(2013)는 영화 연출보다는 무대 경력과 배우로서 더 유명세를 얻었던 그녀의 성숙한 데뷔작이다. 영화의 원제는카스텔라나 반디에라 거리Via Castellana Bandiera’. , 그녀의 고향이기도 한 팔레르모의 외곽 주택지의 일방통행로를 의미한다. 이 거리에서 언덕길에서 마주오는 차를 만난 두 명의 여인이 심각한 상황으로 대치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다. 이런 내용으로도 장편영화가 성립할 수 있을까 싶은데, 때로 좋은 영화란 언제나 심플한 이야기에 근거한다고 미리 말하고 싶다. 물론 단순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진전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재능이다.

 

 

 

 

아무튼 이 좁은 일방통행로에서 대치하게 된 두 여인들 가운데, 그 한쪽은 여행 중에 다툼을 벌이는 로자와 클라라의 레즈비언 커플이다(그중 한 명이자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대치 상황을 풀 생각이 없는 고집스런 여인 로자를 연기한 이가 감독 자신이다). 반대 방향에서 차를 몰고 들어온 이는 손자와 가족을 차로 집에 데려다주고 있던 중인 마을의 고집스런 할머니 사미라. 때는 더운 여름날 오후다. 딱히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거리에서 벌어진 심각한 대치 상황에 마을 주민들은 문제를 해결하려기보다는 누가 먼저 물러설지에 내기를 거는 등 다소 방관적인 자세들을 보인다. 수수방관하기는 사미라의 가족들도 매한가지.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길을 양보하면 좋을 테지만 그 어느 쪽도 사태를 해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사실 뚜렷한 명분보다는 그 어떤 뒤틀린 심사와 분노가 이 둘을 심각하게 대치하게 했던 것이다. 낮이 지나 이윽고 밤이 찾아와도 저녁을 먹을 생각도 없이(심지어 이들은 화장실 갈 여유를 보이기도 싫어해 차 안에서 소변을 해결한다) 꼬박 하루를 보낸다. 몇몇 사내들이 나서 분쟁을 해결해 보려고도 하고, 손자를 불러 설득도 시도하지만 둘은 꿈쩍도 않는다. 가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있는 형국이다.

앞서 말했듯 아주 단순한 이야기의 설정이지만 두 여인의 고집불통의 대치가 불러오는 긴장감이 대단해 관객들의 주의를 분산시킬 여유를 주지 않는다. 여인들의 대결구도는 흡사 막다른 골목길에서 마주한 서부극 영웅들의 결투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왜 두 여인의 대치 상황이 발생했던 것일까. 단지 두 여인들의 행동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만은 아닌 이러한 대치 상황이 무엇을 표상하는가를 깨닫기 위해서 이 질문은 불가피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초반 15분간 장면들에서 몇 가지 정황적 근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의 첫 시작부에서 우리는 로자와 그녀의 연인 클라라가 팔레르모로 향해 자동차를 몰고가는 것을 보게 된다. 로자는 이 마을 출신으로 결혼식의 리셉션에 참석하기 위해 내려오지만 점점 마을이 가까워져 오면서는 클라라와 불화를 보이고, 급기야 클라라는 그녀와의 결별을 선언한다. 두 여인의 초조함과 불안은 자동차 내부의 좁은 공간을 폐소적으로 잡아내는 카메라의 타이트한 클로즈업으로 극대화되어 표현된다. 둘의 감정이 고양이 이후 골목길에서 대치하는 긴장감의 전조를 이루고 있다. 반면, 사미라(엘레나 코타가 탁월한 연기를 펼쳐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이 마을의 황폐한 무덤가에서 처음 모습을 보이는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의 묘비 앞에서 슬픔과 상실에 사로잡혀 있다. 그녀는 급기야 딸의 비석에 자신의 몸을 뉘어 부질없지만 불가능한 딸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영화는 내내 이런 두 고집불통의 여인에 초점을 맞춘다.

 

 

 

둘은 서로 다른 이유로 대치 중이지만 그럼에도 본원적인 연결이 있어 보인다. 그 하나는 팔레르모라는 지리적 장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로자에게 팔레르모는 불안의 근원적 장소처럼 보인다. 그녀는 이 고향 출신으로, 이전의 모든 것들과 관계를 끊으려 하는 상황이기에 아마도 이 마을이 그녀의 과거에서 기인한 불안을 야기하는 듯하다. 사미라의 완강함은 앞서 묘비의 장면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가눌 수 없는 슬픔과 애도에서 기원한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남과 어떤 타협과 소통을 이워내는 데 어려움을 야기하는 듯하다. 감독은 이러한 슬픔과 애도, 분노와 불안 등의 감정을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두 여인의 미묘한 얼굴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특히 사미라는 거의 말을 하고 있지 않기에 그녀의 얼굴이 대사를 대신하고 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쇠약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결들을 느끼게 된다. 두 여인의 대립에서 우리는 그들의 갈등과 차이(노년과 젊음, 전통주의와 자유주의 등)를 발견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알게되는 것은 이들이 기묘한 친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대치하던 두 여인의 감정의 상태가 누그러지는 때이다. 깜빡 잠든 로자는 사미라가 차 유리창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깨닫고는 놀란다. 하지만, 다시 보았을 때 그녀는 차 안에서 잠에 들어있다. 잠깐의 착각이다. 잠시 후, 로자의 고집에 화가 나 그녀를 떠났던 클라라가 찾아온다. 그녀에게 로자는 어린 시절 화가 났을 때 참지 못해 이곳을 찾았노라고 말한다. 그 때에 자신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이제 그녀의 곁에는 클라라가 있다. 그녀는 클라라에게 노래를 불러달라 하는데, 그녀의 노래가 들리는 가운데 우리는 사미라가 손자의 집을 찾는 발걸음을 지켜보게 된다. 나중에 우리는 이 장면이 일종의 꿈 같은 순간임을 알게 된다. 사미라는 자신 없이 어떻게 이 사람들이 살아갈 것인가를 걱정한다. 이 꿈 같은 장면은 한 사람의 찾아옴과 다른 사람의 떠남으로 대구를 이루면서 로자와 사미라를 기묘하게 연결하는 인상을 준다. 한 여인은 이제 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거두고 가족들과 작별을 치렀고, 또 다른 여인은 어머니와도 같은 이를 떠나보냈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끝날 무렵에 우리는 이 두 여인의 고집스런 대치상황이 기묘한 친밀감으로 변형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연극무대와도 같은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기술적인 화려함보다는 삶의 본성을 깊숙이 파악하려 한 성공적인 데뷔작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씨네21』에 실린 원승환 씨의 “'다양성이라는 획일적 명명이란 글을 읽었다. 다양성이라는 용어는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제안한 것으로, ‘다양성 영화라는 말로 통용되는 영화들은 주로 예술영화, 고전영화,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실험영화 등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자면 다양성영화는시장점유율 1% 이내인 영화 형식의 작품, 직전 3개년 평균 기준 서울지역 시장점유율 1% 이내인 국가의 작품, 영진위의 제작지원/배급지원 작품, 당해 연도 1% 미만의 스크린에서 개봉된 한국영화들이다. 원승환 씨가 지적하는 것은 다양성 영화라는 범주 안에 모든 비주류 영화의 범주를 우겨넣다 보니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마구잡이로 묶어놓은 결과 서로 다른 영화 간의 다양성이 지워져 버린다는 것. 그러므로 이 용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한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시기적으로 2007년은 정책적으로 독립영화, 예술영화, 시네마테크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을 시도하려 했던 해였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들을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개념을 요구받게 되었고, 이에 따라다양성 영화라는 표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양성 영화라는 표현은 자칫 그것이 어떤 실체의 대상을 지닌 개념처럼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류를 발생시킨다. 정책적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이러한 용어로 도리어 실종되어 가는 것이 원승환 씨의 지적대로 다양성의 근간을 이루는 차이들이다. 의문인 것은다양성 미술이니다양성 음악이라는 식의 표현은 다른 예술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데 유독 영화에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질적인 측면에서 고려하기보다는 양적인 차이로 환원하기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의에서 도리어 실종되어 가는 것이 영화 예술의예외성이다.

원래다양성이란 표현 이전에 적극적으로 활용됐던예외는 문화의 획일화를 피하는 동시에 문화를 보호하여 다양한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기획에서 제기된 용어다. ‘예외라는 표현은 예술 작품에 그 생산이나 유통의 시장 논리만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하나의 법적 수단으로 작품 생산과 배급에 시장의 평가 기준과는 다른 기준을 개입시켜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다양성 영화라는 표현이 근거로 상정했을문화적 다양성이란 용어는문화적 예외에 대한 시장주의자들의 공격을 피하고자 고안된 개념이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다양성이나 예외를 거의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지만 때로는 이 두 개념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들도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넓게 보자면 문화적 예외는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예외는 문화의 다양성, 다양한 미학에 의해 작품 생산과 배급을 장려하는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이다. 그러므로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는 것처럼, 시장의 규칙에서 예외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이 있는 법이다. 고다르가 말했던 것처럼 규칙은 문화의 문제이고, 예외는 예술의 문제인 것이다. (2013/ 12월 에디토리얼 '시네마테크')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베니스 인 서울' 영화제를 12월 17일부터 1월 5일까지 개최합니다.'2013 베니스 인 서울'에서는 다미아노 다미아니, 엘리오 페트리, 프란체스코 로지, 로셀리니, 파솔리니, 베르톨루치, 등등 특별히 현대 이탈리아 영화의 정치적인 작가들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1. 베니스 영화제 70주년을 맞아 전세계의 70명의 감독들이 참여해 만든 '베니스 70: 미래 재장전'. 김기덕, 홍상수, 클레르 드니, 베르톨루치, 왕빙, 키아로스타미,폴 슈뢰더, 몬테 헬만 등.
2. 지안프랑코 로시의 '성스러운 도로', 엠마 단테의 '팔레르모의 전투', 지아니 아멜리오의 '용감무쌍' 등의 이탈리아 신작들.
3. 지난해 소개한 '마태오 사건'의 프란체스코 로지의 정치적 출발점의 작품 '도시위에 군림하는 손'도 상영합니다. 여전한 시의성을 지닌 도시의 재개발을 둘러싼 권력형 비리에 관한 탐구작.
4. 올해 세상을 떠난 다미아노 다미아니의 혁명 웨스턴 '장군에게 총알을'의 복원작 상영. 지안 마리아 볼론테, 루 카스텔, 클라우스 킨스키 출연.
5. 흥미로운 복원작중의 하나는 엘리오 페트리의 잊혀진 문제작 '사적 소유는 더이상 절도가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질병에 관한 그로테스크한 탐구작.
6.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파이자'의 복원작을 포함, 이탈리아 현대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네오리얼리즘의 역사, 파솔리니의 아프리카, 베르톨루치가 말하는 베르톨루치, 안나 마냐니의 미국시절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상영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기뻤던 것은 카우리스마키의 '어둠은 걷히고'를 보러 많은 관객들이 왔었던 일이다. 다른 영화들도 그러하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영화의 운명이기에. 이 영화의 인물들은 그와 비슷한 운명에 처해있다. 실직한 이들은 그들을 고용해줄 사업자를 기다린다. 그들은 기다려진다. 하지만, 이들은 방향을 바꾸어 다른 이들에게 기다려지길 선택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카우리스마키의 인물들은 새롭게 오픈하는 '노동'이라는 음식점에서 찾아와줄 사람들을 기다린다. 대체로 그들은 전에는 떠났던 이들이다. 그들은 이제 음식을 맛볼 이들을 기다리기로 선택한다. 우리는 기다려지는 자들을 보게된다. 하나 둘씩, 여덟 명의 사람들. 아마도 그건 책임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음식을 맛본다는 것. 꽤나 오즈적인 주제인 미각은 이 영화에서 사실 표면적으로는 큰 관심을 끌 만한 주제가 아닌듯 하지만 사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외부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그 전의 카우리마키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유토피아를 향해 떠나던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여인들이 마시는 트로피칼 음료의 청량함의 블루가 있다. 그들은 낙원으로의 탈주대신에 레스토랑을 재건한다. 켄 로치의 영화가 건축적인 구성을 했다면 여기서 카우리스마키는 보다 회화적이다. 그리하여 엔딩은 결정이자 자세이다. 그들은 여기서 어떻게든 살기로 한다. 그래,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속적인 전투가 되어야하기에. 어떤 미래가 그들에게 도래할 것인지 기약할 수 없기에. 그들은 그럼에도 무언가를 빼앗기지만 아무것도 스스로 버리지 않으려 한다. 아나크로니즘적인, 꽤나 무뚝뚝한 반격의 시도. 2010년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와 같은 이유들이 여기에 있다. 기다려지던 영화관의 기억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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