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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지난 9월, 가보르 보디의 초기작 〈네 개의 바가텔〉과 〈아메리카의 엽서〉 상영 후, 특별전을 준비한 기획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나르키소스와 프시케〉(1980)를 상영할 계획이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가보르 보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지만, 아직까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나 또한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상영 시간만 220분에 달하고, 자막 제작도 쉽지 않아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 역시 이 영화를 보고 싶어했고 이렇게 빨리 상영이 성사될 줄은 몰랐다. 오는 월요일, 〈나르키소스와 프시케〉의 국내 첫 상영이 열린다. 가보르 보디(Gábor Bódy, 1946–1985)는 1970~1980년대 헝가리 및 유럽 영화예술을 대표하는 가장 독창적이고 급진적인 영화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
환상(공포)영화에 매혹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아마도 영화라는 예술이 지닌 본질에 가장 근접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이 장르가 겪은 변화의 궤적에 깊은 흥미를 갖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에도 1960~7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의 하나가 판타지와 호러 영화로, 흔히 ‘판타테러(Fantaterror)’라 불리는 이 장르는 현실의 불안과 억압을 환상과 공포의 형식으로 전환하는 스페인 특유의 미학적 표현이다. 아름다움과 혐오, 관능과 폭력이 교차하는 이 영화들은 종종 과장된 시각적 스타일, 에로티시즘, 그리고 고어에 가까운 폭력의 묘사를 특징으로 하며, 프랑코 정권의 검열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은유적 저항의 언어를 구축했다. 이 장르의 근간에는 내전과 프랑코 ..
“안녕하세요. 저의 영화들을 한국에서 상영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더불어 건강이 좋지 않아 여러분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1967년 (Titicut Follies)을 시작으로 저는 제도를 다룬 일련의 영화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저는 다소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겨우 일 년에 한 편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에서 만든 영화가 몇 편 있지만 저의 영화 대부분은 미국의 삶을 그리고자 하는 목표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형태는 다르더라도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제도들, 이를테면 병원, 경찰서, 복지시설, 무용단과 같은 곳들을 통해 미국의 초상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복지시설처럼 일정 시간 이상 존재해 왔으며, 국가의 보조를 받으며, 일반적인 기관이 제공하는..
유디트 엘레크는 마르타 메사로시와 함께 그는 1960년대 이후 헝가리 영화의 부흥을 이끈 대표적인 여성 창작자 중 한 명이다. 지난 ‘가보르 보디 특별 상영’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그는 가보르 보디, 이스트반 자보 등과 함께 헝가리 영화의 주제와 미학을 근본적으로 갱신한 실험적 영화 제작 스튜디오, ‘벨라 발라즈 스튜디오’의 핵심 인물이었다. 지난해 마르타 메사로시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올해는 그간 한국에서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유디트 엘레크의 작품을 상영하는 첫 회고전을 열자는 생각을 했다. 데뷔작 단편 과 , 과 같은 대표작에서 느껴지는 인간 삶에 대한 특별한 성찰과 특유의 멜랑콜리한 느낌을 좋아했다. 국내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고, 다큐멘터리 작품이 많아 번역에도 어려움이 있었기에..
‘구로사와 기요시 회고전’이 시작한다. 2004년 이후, 근 20년 만에 마련한 이번 회고전은 전작을 망라하지는 않지만-그것은 실로 불가능하다-,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1990년대에 발표된 몇몇 작품들—예컨대 〈지옥의 경비원〉, 〈뱀의 길〉, 〈거미의 눈동자〉—과 그의 최근작들은 오는 12월 열릴 ‘PART 2’에서 만날 수 있다.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온 비결을 묻는 질문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의식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만들 수 있는 것을 찍어왔다”고 답한 바 있다. 이 답변은 그의 데뷔작 〈간다천 음란전쟁〉(1983)에서부터 꽤 특이한 주문형 비디오 플랫폼을 통해 공개한 (2024)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 동..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그것을 다루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가? […] 텔레비전의 영향으로 인해 영화는 19세기 문학의 정신을 닮은 현실적이고, 서술적이며, 도식적이고, 평면적으로 변해하고 있다. 텔레비전은 분위기와 형식을 죽이는데, 바로 그것-분위기와 형식-이야말로 내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이다.” - 보이치에흐 예지 하스보이치에흐 예지 하스는 1925년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에서 태어났다. 부르주아와 인텔리겐치아, 예술의 전통이 살아있는 이 도시는 그의 성장 과정에서 감수성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하스는 생에 여러 차례 이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 음악, 문학에 깊은 열정을 보였던 하스는 미술은 공간과, 음악과 문학은 시간과 연결 지었다. 또한 연..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은 단순한 건물 조성 이상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10년 넘게 이어진 민간과 공공의 협력이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로 그 건물에 실현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초에 들어서, 캐나다의 TIFF 벨라이트 박스, 뉴욕의 아메리칸 링컨 센터,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각 기관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서울시네마테크 건립 역시 이러한 국제적 사례들과 유사하게, 서울아트시네마(시네마테크)를 포함해 독립영화전용관(인디스페이스), 미디어센터(미디액트) 등 독립 문화 주체들이 함께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하기 위한 공동의 프로젝트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프로젝트는, 그 ..
쓰나미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학교의 헌화대에는, 수많은 꽃과 제물이 고요히 놓여 있다. 변해버린 교실로 들어선 소녀는, 누렇게 바래버린 벽과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쓰나미가 들이닥친 오후 3시 37분에 멈춰버린 시계에 시선을 멈춘다. 그리고 문득, 교실 창밖으로 서서히 물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다 무심결에 친구에게 묻는다. “저기서 파도가 밀려왔을 때, 무슨 기분이었을까?” 뒤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던 다른 소녀가 조용히 답한다. “너도 나도, 원하는 대로 살자. 더 이상 고통스러워질 필요는 없어.” 오늘 상영하는, 사토 소노미의 중편 두 편, 《우리 곁을 지나가는 봄(春をかさねて)》(2019)과 《너의 눈에 말할 수 있다면(あなたの瞳に話せたら)》(2019)은 각각 픽션의 형식을, 다른 하나는 편지 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