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모든 감정들. 질투와 불안, 기대와 염려, 자유와 쾌락, 사랑과 우정. 그 무엇보다 모든 이들이 품고 있는 열정. 물론 이를 구현하는 일은 어렵고 그만큼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아름다운 장면들은 낮은 위치의 사람들이, 한번도 무대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올려다볼 때이다.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기대와 질투. 낮은 위치의 사람들에 카메라를 두는 것. 그것이 그레미용의 휴머니즘이다. 하지만 그 짜릿한 비행을 맛본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공유될 수 없는 우정과 연대. 장 그레미용의 ‘창공은 당신의 것’.


영화관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나요? 

열 평 남짓한 극장 로비에 앉아 질문하던 이들에게 그가 되물었다. 창문 너머로 느릿느릿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가 다시 물었다. 영화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나요?
방금 전까지 우리는 일본 영화관의 폐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말을 이었다. “대체로 극장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이게 바로 방금 전의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의 젊고 활력 넘치는 목소리에 안경 너머 부드러운 눈빛은 여전했다.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도 했다. “영화관을 운영하면서 무엇이 가장 큰 고민이고, 어떤 일이 괴로웠나요? 활동하면서 즐거운 일이 무엇이었나요?”
2016년 2월의 어느 밤. 나고야에서 그를 만났다. 마지막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난 1월, 그가 쉰 일곱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1983년 개관 당시에는 직원으로 참여해, 1987년부터 근 삼십 년 넘게 나고야 시네마테크의 지배인으로 일했던 히라노 유지. 시네마테크라고는 하지만 이마이케역 근처 평범한 주상복합빌딩 이층에 세들어 있는 사십 석 규모의 미니시어터다.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영화란 영사기와 흰 벽만 있으면 상영 가능하다. 문제는 늘 다른 곳에 있다. 꼬박꼬박 월세를 내야 하고 상영할 영화들을 수급해야 한다. 이제는 나고야에도 서너 개의 예술영화관이 있으니 극장들이 서로 각자의 상영 밸런스를 유지해 고유의 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데뷔 감독이 유명해져서 차기작을 다른 큰 극장으로 들고 가버리면 다른 감독을 찾으면 된다고 여긴다. 다른 영화들, 다른 감독들이 여전히 있기 마련이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 극장들이 각자 상영에서 개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란 있을 리 없다. 그는 백 명이 보면 백 명 모두 만족할 만한 영화로는 작가성이 성립될리 없다고 말한다. 열명이 보면 그중 다섯 명이 ‘좋은 영화’라고 말하더라도 나머지 다섯 명이 ‘좀 그렇네’ 혹은 ‘뭐야, 이거’라고 말할 영화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야 작가가 출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관객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것도 아닌 영화관. 덧붙이는 그의 말. “그러니까, 이 일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영화도, 영화관도 그렇다고 마음만으로는 충분할 리 없다. 그도 개관 스무 해를 맞이할 무렵에는 각각 백 석, 사십 석 규모의 두 개관 모델의 시네마테크를 마련할 생각도 있었다. 세 들어 사는 단관 극장으로는 새로운 세기에 적응하기 어렵다. 최소한 두 개관의 운영으로, 각각 규모 있는 작품과 수지가 맞지 않을 마이너한 영화들을 동시에 공개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지만, 꿈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극장 구석구석의 벽면에는 상영했던 영화 포스터와 극장을 방문한 영화인들의 사인이 적힌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친필 사인도 있다. 감독이 극장을 깜짝 방문했던 일을 그는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가 쓴 글에서 사연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3년 <텐>을 개봉하던 때에, 극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키아로스타미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평일 낮 시간. 열 명도 채 안 되는 관객들이 있을 거라 우려했지만 감독은 상관없다며 극장을 찾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몇 명의 관객들에게 불쑥 나타나 ‘이 영화의 감독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마음 졸이는 순간인지 알 것이다. 미리 무대인사가 있다고 알렸다면 그래도 관객들이 더 찾아왔을 텐데, 라는 말에 키아로스타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미리 무대인사를 하겠다고 하면 손님이 더 들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오는 사람은 나를 보고 싶거나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키아로스타미 본인은 없어도 상관없이, 그저 내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인 관객들이다.”
키아로스타미가 불쑥 만났던 그날의 관객이 어떤 이들이었을까 상상해본다. 극장의 밤에는 너무 밝으면 사라질, 너무 사소해 보여 어떤 이도 밖에서는 전하지 않는 소식들이 있다. 그날의 관객들은 사진작가 필립 퍼키스가 말한 ‘크게 일을 벌렸을 때 사라지고 마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비록 어떤 말로도 인도되지 않는 침묵의 밤이긴 했지만, 히라노 유지와 이야기를 나눴던 마지막 밤의 기억이 내게는 그런 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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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예술영화관 국도예술관이 오늘 1월 31일 마지막 상영후 문을 닫는다고 한다. 건물주로부터 임대계약 연장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국에서라면 유독 흔한 일이다. 우리도 겪었던 일이다. 중구 남포동 옛 국도극장에 있던 국도예술관. 지금 그 자리는 CGV남포가 되었고, 2008년 6월 남구 유엔기념공원 근처에 있는 가람아트홀로 이전해 십년을 채우지 못하고 폐관한다. 이 또한 한국에서는 유독 흔한 일이다. 오늘 총회에 참석했던 지역 시네마테크 관계자들은 내일 극장의 마지막을 함께 할거라 한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일이 오늘이라 멀리서나마 폐관의 아쉬움을 마음으로만 보낼 뿐이다.
사람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온 열시 무렵, 사무국장에게서 동파된 수도관에서 물이 흘러 서울아트시네마 사무실 바닥이 흥건히 젖고 전기가 차단되는 일이 생겼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사무실 컴퓨터나 전기가 복구 가능한지는 내일에야 확인이 될 수 있다한다. 인터넷 예매가 오늘은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눈 온뒤의 물난리라니. 그럼에도 오늘은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 개막일이다. 어느 극장은 마지막 상영을 끝내고 사라지고 우리는 또 열세 번째 영화제의 개막을 시작한다.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보다 오랜 생을 스크린에서 살았을, 1926년의 무성영화를 만나러 사람들이 발길을 옮겨주었으면 한다.


* 아래의 글은 영상자료원의 2016 사사로운 리스트로 꼽은 열편의 영화에 대한 글이다. 무엇보다 내가 감동한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에 대한 마음의 글.


지금 말하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지극히 사적인 영화들의 목록이다. 만들고 싶은 영화, 꿈꾸는 영화들, 마음으로 두고 싶은 영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열 편의 작품은 굳이 말하자면 각별히 올해 내 마음에 다가왔던 영화들이다. 그러니 작품을 평가하거나 가치를 나열할 생각 대신에 마음이 동했던 몇 가지 이유들을 적으려 한다.

먼저, 최근에 세상을 떠난 두 작가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1993), 그리고 샹탈 아커만의 <노 홈 무비>(2015). 이 두 편의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획한 추모전의 일환으로 상영했다(사실 이들을 추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삶과 죽음을 간결하면서도 대담하게 다룬 작품들인데, 두 편 모두 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올리베이라는 영화가 예술이 아니며, 인생도 아니고, 그 둘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라 말했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영화는 늘 그 사이에 있고, 우리 또한 영화들 사이에 있다.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관객을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공간에 초대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에게 초대받을 만한 친밀한 이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들의 방문이 작별을 통고받는 자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실은 우리가 함께할 시간을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이라 생각한다.

후카다 코지의 <사요나라>(2015)와 필립 그랑드리외의 <밤임에도 불구하고>(2016)는 바라보는 것의 불안을 오래간만에 느낀 작품들이다. 후카다 코지의 영화에 대해서만 짧게 언급하자면,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대전아트시네마에서 개최한 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했다. 히라타 오리자의 안드로이드 연극을 원작으로, 이른바 ‘포스트 3.11 영화’의 계열에 자리 잡을만한 작품이다. 미래의 어느 때, 원전사고가 일어난 일본에서 해외 이주정책이 발표되고, 폴란드 난민 출신의 여인은 이제는 더 이상 떠날 곳을 찾지 못해 예정된 죽음을 기다린다. 하루하루의 소멸될 시간에서 유일한 말벗은 시를 읽어주는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창가의 소파에 누워 마지막 시간을 보내던 여인은 마침내 숨이 꺼지고, 시간이 흘러 그녀의 피부는 썩어들어 가고 한 줌의 뼈로 남게 된다. 그 모든 시간을 그녀 앞에서 꼼짝 않고 바라보던 이는 그녀의 로봇이다.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게 될 세계에서 우리의 죽음을 지켜볼 시선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파멸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매혹적인가.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특별히 나이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게 했던 영화들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민하고 자숙한다. 자기 자신으로 남는 피로감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야 할 욕구 사이에서 주저하고 용기를 내기도 한다. 주아옹 니콜라우의 <존 프롬>(2015)은 십 대들의 욕구와 환각 모험을 그리는데, 여전히 이런 경쾌한 움직임이 영화에서 가능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몹시 반가웠던 영화다. 이제 서른인 대만의 여성감독 위에이산의 <어린 부모>(2015)는 내가 꼽는 올해의 데뷔작 중의 한 편이다. 이 영화의 라스트는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안이한 결말로 쉽게 끝나지 않으면서, 얇지만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서늘한 느낌이 오래 남았던 영화다. 비극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는 한 번 더 기회가 여전히 주어진다는, 그럴 기회가 있음을 믿게 하는 영화다. 사실 이 두 편의 영화는 이 작품을 본 소수의 관객들과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나만의 리스트’로 남게 될 것이다. 미아 한센 러브의 <다가오는 것들>(2016)은 유일한 개봉작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만든 성숙한 영화라는 점에서 공감했다. 생 말로의 고요한 섬, ‘파도와 바람 소리만을 듣고자 했다’는 샤토브리앙의 무덤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이 영화가 끝난 뒤 다시 생각난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거쳐,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 여인의 고립과 분리를 마치 섬의 고립처럼, 조수간만의 물결처럼 밀려오고 떠나가게 한다. 한때 급진적인 생각을 지녔던 주인공 여인은 학생들의 파업에 반발하고, 변모하는 철학 서적 마케팅 시장의 논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급진적인 사상의 제자에게서 사고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난까지 듣는다. 나도 이제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자각! 그녀는 “난 변했다”고 말한다. 제자는 그녀에게 “그런데 세상은 그대로인 걸요. 더 나쁘기만 해요”라 반문한다. 변한 게 없는 변화의 삶이라니. 삶의 변화란 어떤 마음의 결심을 하는 것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대신 다른 곳에 가고, 다른 것들을 보고, 다른 것을 듣고,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것으로나 가능할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와 켄 로치의 두 작품은 영화라는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은판 위의 여인>(2016)에서 한 컷을 촬영하는데 몇 시간 내지 하루가 걸리는, 노출 시간이 긴 촬영을 고집하는 은판사진작가의 강박적인 작업은 이미지에 대한 어떤 기대가 없다면 그저 시대에 뒤떨어진, 위험하고 지루한 노동일 것이다. 영화작업이란 여전히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노동이다. 켄 로치의 영화는 이제는 작가적 접근보다는 어떤 하나의 사상이 작동하는 영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외에 다른 불만을 내세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미 사상이 되어버린 예술가의 견해라고 할까.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본디 그에게 속한 존엄을 되돌려 받기 위해 주장한다. 행복에의 기대, 그 이미지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켄 로치에게 영화라는 노동은 시민에게 존엄을, 시민권을 되돌려주는 예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도 나 홀로 이야기하게 될 한 작품이 남았다. 케이타 무카이의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2016)가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이들은 내가 아는 한 서너 명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제주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한 바 있으니, 제주 시민들 백여 명 정도가 더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나라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작은 미술관 강당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보느라 서다 앉기를 반복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했다. 나라에는 사슴은 많지만 국제영화제가 개최될만한 영화관은 없다고 한다. 나라시의 지원도 끊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어 개막식 레드 카펫 행사에 나섰다. 영화제의 중심에는 알다시피 가와세 나오미가 있다.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내게 영화제 방문은 그녀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을 깨는데 충분한 기회였다. 그녀의 수고와 노력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였다. 아무튼, 이 작품은 실은 큰 기대 없이 보았던 영화다. 그때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였을 뿐이다. 영화 경험이 전무한 스물네 살의 청년이 만든 자전적인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카탈로그에 실린 짧은 소개 글을 읽으며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될까, 염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몸을 뒤척거리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는데, 첫 내레이션부터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석양에?물든 호류지(나라현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의 절이라고 한다)가 보이면서 배경에는 희미한 종소리가 울린다. “호류지의 종은 두 시간마다 울린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금속의 울림은 온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울려 퍼지다가 사라져 간다. 내 어린 시절, 하루의 끝에서 울리던 그 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호류지의 종소리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도록 재촉하는 불안한 소리였다. 양호시설의 통금시간은 여섯 시. 밤 아홉시에는 소등이 된다. 화면에는 마치 수용소를 보여주는 것 같은 몇 장의 사진들이 슬라이드 화면처럼 지나가고, 날마다 똑같은 고아원에서의 반복적인 일과들이 설명된다. 그나마 특별한 날이라면 달이 바뀔 때마다의 생일잔치였다고 한다. 파티 장식도 없고, 음악도 없었고, 늘 똑같은 축축한 버터크림의 초콜릿 케이크가 전부였던 생일잔치이다. 그런데 이 달콤한 초콜릿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도 같아 그에게 어두운 과거를 단박에 떠올리게 한다.

감독 케이타 무카이는 이 작품으로 양호시설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18세가 되면 아이들은 양호시설을 떠나 자립해 살아가야만 한다. 그는 이제 성인이 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고, 양호시설에 자신을 맡긴 아버지와 힘겨운 대화를 시작한다.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 관심을 두어 양호시설 자원봉사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영화작업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열등감, 부모에 대한 분노, 가난과 학대받은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말하게 하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함께 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예전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들에게 기억은 그러므로 일종의 이중구속으로,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들은 양호시설에서의 삶을 비판하되 부정하지 않는다. 비록 수용시설의 경험이라 하더라도, 그 기억과 시간은 이제 간신히 긍정할 수 있게 된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를 한편으로는 달콤하고 씁쓸한 기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든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표현한다.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의 종소리는 이 둘의 특별한 결합이다. 기술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케이타 무카이의 촬영이 가장 탁월한 표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는 중반 이후의 장면부터는 내내 서서 보아야 할 정도로 몹시 감동을 받기도 했다.

나라국제영화제에서의 첫 상영 후 잠깐 감독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작품이 상영되기를 기원한다고 말을 건넸다. 그 자리에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그의 친구들도 함께했다. 때마침 올해 제주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상영할 수 있었고, 상영 후 그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에서의 첫 상영에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공개될 만한 작품이 아니라며 부끄러워했고, 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가 국내에서도 더 상영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그를 한 명의 작가로서 기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삶이 영화라는 것을 통해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떻든 나는 그의 다음을 기대하고 있다.

김성욱 |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비토리오의 질문. "주식으로 사라진 돈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혹은, 정서적으로 무미건조해진 헤어진 연인들의 사랑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르트가 안토니오니를 예찬하며 말했던 것처럼 '일식'에서 안토니오니는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대상과 사물이, 인물이 사라질때까지 바라본다. 사물들이 소진될때까지 철저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것. 우리들이 없는 세계를 보는 불안. 이는 진정한 영화(관람)의 모험이다.


일식(1962)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Eclipse(1962) / Michelangelo Antoni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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