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문화척도 
-문화선진국으로 도약 위해 안정적인 시네마테크 공간 확보 및 재정적 지원 시급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대표 최정운www.cinematheque.seoul.kr)와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위원장 이명세, 이하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 추진위), 그리고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미경 의원이 공동 주최하는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위한 정책포럼’이 지난 26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영화단체 관계자, 영상문화에 관심이 많은 서울시의회 의원 및 서울시 집행부 관계자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일반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포럼은 1,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1부 행사 때에는 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등 시의회 관계자와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명세 감독,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2차 후원광고 캠페인에 출연한 이준익 감독 등의 영화인, 그리고 10여 년간 민간 단위에서 꾸준히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쳐온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최정운 대표가 모두발언자로 나서 기조연설을 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발표로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는 관련 영상 상영 및 현황 보고가 이어졌다.

본격적인 지원정책을 논의하고 모색해보기 위한 주제 발표 및 토론이 진행된 2부 행사에서는 허문영 시네마테크부산 원장과 여금미 파리3대학 영화학 박사이자 고려대학교 응용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이 각각 시네마테크의 지원에 관한 선진사례로서 부산과 파리시의 정책에 대하여 주제발표를 진행했고, 김혜준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와 김미경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이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정책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그 방안에 대한 주제발표를 했으며, 사회는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변재란 순천향대 영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가 맡았다. 또한 서울시의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안승일 서울특별시 문화관광기획관, 김경욱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위원, 송승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이 토론자로 나서 관련 주제에 대한 열띤 논의를 펼쳤다.

“서울을 최고의 영화도시로 만들기 위해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_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허광태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은 “제8대 시의회가 출범한 이래 많은 시대의 필요성과 요청에 의한 많은 전문적인 토론회가 이 장소에서 이루어졌지만 민간 단위에서 열심히 활동해오던 시네마테크와 같은 곳을 지원하기 위하여 서울시의회 관계자와 영화인, 민간 관련 단체가 공동으로 이렇게 준비한 포럼은 아마 지금까지 지방 의회 20년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며 “그래서 이 자리가 더할 나위 없이 뜻 깊고 앞으로 서울을 최고의 영화도시로 만들어내기 위한 관계자 여러분의 목소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며 노력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영화문화에 대한 지원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시네마테크이다”
_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영화는 종합예술로 패션, 음악 등이 총망라되어 있어 영화가 발전하면 산업이 발전하고 서울이 발전한다고 믿는다. 서울시는 현재 상암동에 DMC센터를 마련, 감독, 프로듀서를 지원하고 최근에는 프로덕션 센터까지 만들어 지원하고 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시네마테크 같다. 오늘 정책토론회가 영화산업과 영화발전을 위한 특별한 계기가 되길 기원하고 문화체육관광위원장으로서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시네마테크는 한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_이명세 영화감독,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추진위원장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위원장이자 영화인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참석한 이명세 감독은 “누벨바그의 아버지인 바쟁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네마테크는 한 나라의 문화예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며 “만약 이런 시네마테크가 좀 더 일찍 자리 잡았다면 한국영화의 진화는 좀 더 빠르게 이뤄졌을 것”이라 말했다. 또한 그는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2012년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10주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이제라도 이러한 자리를 통해 서울시가 공공문화예술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는데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문화권력을 우선시하는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_ 이준익 영화감독

또 다른 영화인으로 최근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광고에도 출연한 이준익 감독은 “정치, 경제, 문화 세 가지 권력 중 어디에 우선순위가 있느냐에 따라 선, 후진국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후진국은 정치권력이 우선하는 나라이고 중진국은 경제권력이 우선하는 나라이며, 마지막 문화 권력을 우선하는 나라가 가장 선진국에 속한다”며 “디자인 서울, 문화선진국을 꿈꾸는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에 번듯한 시네마테크 하나 없다는 것은 실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서울이 형식 면에서는 많이 발전했는데 내용면에서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이제는 서울이 형식보다는 내용에 충실할 때가 왔고 형식을 뛰어넘는 내용을 갖추는 첫 번째 조건은 장르간의 화합이며 그 내용의 구체적인 사례로 시네마테크가 기능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문화선진국에 살 수 있도록 서울시가 앞장서서 많은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네마테크의 공적 활동의 재원을 서울시가 지원하는 것은 문화도시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필요한 일이다” 
_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이사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이사는 “영화는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며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문화예술에 대한 활동을 제하고 서울이 세계 제 1의 문화도시라는 목표점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적 활동의 재원은 당연히 공공기관이나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에서 담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 이 자리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현실적 지원방안을 제안하고 검토하는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부산이 문화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씻어낸 것은 시네마테크 부산의 역할 덕분이다” 
_ 허문영 시네마테크 부산 원장

한편 본격적인 발제와 토론이 이어진 2부 행사의 첫 번째 주제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시네마테크전용관 선진사례로서 ‘시네마테크부산 지원사례’에 대하여 발표를 맡은 허문영 시네마테크부산 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과 문화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씻어내고 영상도시로 발돋움하려는 부산시의 의지가 맞아떨어졌기에 빠른 진행이 가능했다. 시네마테크부산이 공공기관이 주축이 된 위로부터의 건립이었다면, 서울은 자생적으로 성장한 아래로부터의 건립 추진이므로 더 큰 힘과 지속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네마테크부산의 경우도 하드웨어적으로 일정 정도 토대를 갖춰놓긴 했고 올해 9월 이후 더 넓은 공간인 영상센터로 이전할 예정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위탁운영이 올해로 끝나고 시네마테크 업무가 영상센터 운영법인에 이관될 가능성도 있어 부산시를 비롯해 여러 기관 단체, 혹은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시네마테크라는 고유한 기관의 성격, 고유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관한 지속적인 설득의 작업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리는 이미 80억 규모의 예산을 들여 시네마테크를 지원하고 있다.” 
_ 여금미(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파리3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여금미 박사는 해외 선진사례로 ‘영화적 다양성을 위한 파리시의 정책’을 주제로 파리시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시네마테크 포럼데지마주에 대한 사례를 발표했다. 그녀는 “포럼데지마주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수집함으로써 도시의 변모 과정이나 다양한 시각을 통해 조명된 도시의 이미지 등을 보관하고 이를 시민에게 제공한다는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무려 80억 규모의 예산을 파리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며 “서울아트시네마가 포럼데지마주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공간이므로 이 공간의 물적토대를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지 서울시와 함께 모색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안정적인 시네마테크전용관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의지가 중요하다” 
_ 김혜준(부천문화재단 대표)

‘서울의 시네마테크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세 번째 발제를 맡은 김혜준 부천문화재단 대표는 “무엇보다도 곧바로 일을 추진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전용관을 지을 수 있다”며 “일단 건물을 잘 지을 것인가, 지속적인 운영예산 마련에 힘쓸 것인가 등 실질적 문제들에 대한 서울시의회와 서울아트시네마 간의 협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용관을 잘 지어놓으면 건립을 도와준 의원의 이름이 100년간 기억될 것"이라며 의원들의 도움을 촉구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 조례제정을 통해 서울시의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_ 김미경(서울특별시의회 의원) 

마지막 발제자로 이날 포럼의 공동주최자이기도 한 김미경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은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정책 방안’에 대한 주제 발표에서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의 근거가 될 만한 현행 조례가 있지만 그 근거가 불명확하다. 별도의 독립영화 및 시네마테크 지원 조례 제정을 통해 서울시의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영화산업에 대한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가 끝난 후에는 토론자들의 질의와 함께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 서울시의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안승일 기획관은 "영화의 박물관이자 도서관이자 상영관인 시네마테크전용관의 필요성에 깊게 공감한다. 시민운동 형태로 추진되는 것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며, 이에 문화사업 총괄자로서 반성하는 바가 있다. 그동안 서울시도 문화영상 사업의 육성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예산이라는 게 늘 부족하다. 예산 책정의 실질적 권한을 지닌 서울시의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별도의 조례를 마련하지 않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다"고 말했다.



또 한명의 토론자인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김경욱 전문위원은 “조례 제정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시네마테크에 대한 조금 더 명확한 정의와 기존에 영상자료원 같은 공공기관과의 분명한 차별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미경 의원은 “조례를 통해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예산 책정도 어려울 것이다. 집행부 측은 새로운 예산을 되도록이면 추가하지 않으려고 하는 생리가 있다"고 밝혔고, 여금미 박사는 "한 도시에 시네마테크가 하나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양성 측면에서도 그러하며, 파리의 경우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포럼데지마주 등의 다양한 기능의 시네마테크가 있다”며 시네마테크 서울 전용관의 건립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허문영 원장 또한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영화를 보존하고 상영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으며, 시네마테크 부산은 애초의 설립 취지에 맞추어 주로 아시아권 영화들을 보존하려 한다. 따라서 서울아트시네마는 지금까지 해오던 방향처럼 전 세계의 중요한 영화적 자료들을 보존한다면 세 기관 간에 서로 보완적인 조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뜨겁게 진행된 토론과 객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참여는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과 공간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성을 공감하는 자리가 됐다. 한편 주최측은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기 위해 5월 이후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방안과 조례제정에 관한 구체적인 후속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이와 관련하여 논의를 진전시켜나갈 수 있는 토론회 및 관련 기관과의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번 포럼의 공동주최로 나선 김미경 의원은 앞으로 시네마테크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을 발의하는 등 시네마테크 지원과 관련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 신선자 (서울아트시네마 기획홍보팀장) 

* 충무로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필름2.0>에 실었던 글이다. 
 

지속적인 영화 상영 보존의 길 : 김성욱,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나다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인사를 한 이래로 나는 그를 몇 번 만났다. 3년 전 파리에서 그를 만나 짧게 인터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샤이오를 떠나 랑글루아 시절부터 염원했던 새로운 장소(최종적으로는 베르시로 결정됐다)로 이전하기 직전이었는데,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공간 계획과 관련해 몇 가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물론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고,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와 마찬가지로 민간에 의한 조직이지만 국가 재정 지원이 80%이고, 그럼에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점이 부러웠다. 장 프랑수아 로제는 1992년부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첫 번째로 기획했던 ‘마리오 바바 회고전’을 뜻 깊게 생각하고 있었고, 법학을 전공했던 때문이었는지 ‘폐쇄’라는 주제로 정신병원과 감옥과 관련한 기획전을 열었던 것을 또한 즐겁게 추억했다. 이번의 만남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새롭게 복원한 막스 오퓔스의 <롤랑 몽떼>(1955)의 복원판 상영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물론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현안을 더 논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일정 때문에 그런 논의는 나중을 기약해야만 했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이번에 충무로국제영화제에 참여한 건 <롤라 몽떼> 복원판 상영 때문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복원하게 됐나?
장 프랑수아 로제 일단 이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먼저 소개가 됐고, 7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도 야외에서 상영했었다. 11월부터는 파리의 두 곳 상영관에서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영화의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복원은 관장인 세르주 투비아나와의 협의 하에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사실 이 작품은 오래전부터 보지 못했던 영화다. 막스 오퓔스의 뜻대로 영화가 상영될 수 없었고 온전한 판본이 없었다. 프랑스 영화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작품이고 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작품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분은 제작자의 딸인 로렌스 브라운 베르제로, 그녀의 아버지가 제작자는 아니지만 1966년에 이 영화의 판권을 구매했었다. 그 분을 설득해 영화를 복원하게 됐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작업 중 어려움은 어떤 것이었나?
장 프랑수아 로제 작업 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했던 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로 이 영화의 여러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최대한 모아서 모든 소스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여러 시네마테크에서 가져온 프린트를 비교했다. 그 다음은 칼라 복원 문제가 있었다. LA에 있는 ‘테크니 칼라’에서 디지털 복원을 했다. 중요한 스폰서가 두 군데 있었다. ‘톰슨 재단’에서 영화 복원에 대한 기술적 지원을 받았고, ‘프랑스-미국 문화재단’이 공동으로 후원을 했다. 2년 이상이 소요됐는데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톰슨 파운데이션’은 어떤 곳인가?
장 프랑수아 로제 ‘톰슨 파운데이션’은 영화유산을 보존하고 그것의 복원에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다. LA에 테크니 칼러 복원회사를 또한 갖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톰슨에 의해 가능했다. 또한 자금적인 지원 또한 이들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영화의 기념비화, 혹은 디지털의 우려
 

<롤라 몽떼>의 복원에 참여한 곳은 정확하게 네 군데이다. 실무적인 진행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했고, 이 영화의 판권을 갖고 있던 ‘목요일 필름’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의 복원을 위한 판권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톰슨 파운데이션’은 2006년부터 <롤라 몽떼>의 복원과 관련한 작업에 지원을 했는데 주로 디지털 팀과 테크니 칼러의 복원과 관련한 진행을 했다. 또한 미국영화와 프랑스영화의 보존과 복원에 노력을 기울이는 ‘프랑스-미국 문화재단’이 참여했다. 이런 필름 복원은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를 보존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다. 90년대 이래로 서구에서는 ‘재발견의 영화’라 불리는 고전영화의 디지털 복원과 ‘복원판’의 재상영이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복원’은 종종 시네마테크의 숭고한 ‘임무’처럼 취급되고, 영화의 역사를 ‘기념비화’하는 마술적인 언어로 포장되는 문제를 낳기도 했다. 필름을 복원해 거대한 영화제에서 이벤트로 상영하는 것을 ‘숭고’하게 여기고 반면에 극장에서 그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게 되는 경향들이 있다는 것이다
 


김성욱(영화평론가) 근래에 디지털 복원이 유행처럼 많이 생기고 있다. 영화제를 통해 복원된 영화가 상영되고 DVD로 출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종종 이러한 복원은 비평적 관심보다는 영화의 ‘기념비’화를 초래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 프랑수아 로제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DVD의 경우는 또 다른 상영 방식이라 생각한다. 일단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데 있어서 상영관의 확보가 어려운 문제다. <롤라 몽떼>의 경우에는 사실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러 상영판본이 존재하면서 영화가 잘려나가는 수난을 겪었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경우에는 제대로 상영되거나 본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감독의 의도대로 복원을 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시네마테크의 임무는 영화를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단순히 자료로서 창고에 정리돼 있는 것이 영화를 보존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존한다기보다는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보존하는 것, 결국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보존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김성욱(영화평론가) 한 예를 들고 싶다. 몇 년 전에 장 비고의 <라탈랑트>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 적이 있었다. 그 프린트 버전에서는 고몽영화사가 이 영화를 훼손한 것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는 짤막한 안내가 있었다. 고몽이 장 비고의 사후에 이 영화를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편집해서 상영한 것을 반성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해 초에 홍상수 감독의 추천작으로 이 영화를 다시 상영할 때에는 프린트의 앞부분에 이러한 내용이 없더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복원된 영화가 사실 결핍과 부재의 흔적을 제대로 지니지 못할 경우, 결국 이후의 관객들이 그 영화 복원의 함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좋은 화질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그래서 그런 영화의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런 복원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장 프랑수아 로제 그런 인식에 공감한다. 기술적인 면 때문에 피할 수 없지만 그러나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 영화와 관련해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복원의 과정에서도 감독이 의도한 대로의 진실성에 최대한 접근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부분을 놓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훌륭한 복원가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상영과 관련해서 디지털의 문제는 사실 더 심각하다. 갈수록 필름 프린트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괴테 인스트티튜드’를 통해 예전에는 독일영화의 16㎜ 프린트들이 유통됐었다. 이제는 필름이 아니라 모두 DVD로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 유럽의 고전영화를 필름으로 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시네마테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좋은 상태의 프린트를 찾는 것이 어렵고, DVD나 디지털 상영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것은 시네마테크의 상영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장 프랑수아 로제 시네마테크의 디지털 상영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반대의 입장이다. 그러나 가끔 보존 필름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 디지털 상영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필름이 없어지는 것이 오래된 영화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현대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자면 클로드 샤브롤의 일부 영화가 그렇다. 더 이상 좋은 상태의 35㎜ 필름이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 있다. 7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프린트가 손상됐고, 판권을 갖고 있던 회사가 샤브롤의 영화를 보존하는 데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루브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영화의 역사는 <롤라 몽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손실과 결핍, 폐허의 역사이기도 했다. 1930년대 이래로 절멸의 위기에 처했던 영화들은 그 기원의 장소인 상업극장에서 아카이브나 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의 수장고로 조금씩 이전해 갔다. 그렇지만 필름아카이브는 결코 완벽한 수장고가 아니었고 언제나 결핍의 흔적을 갖고 있다. 때문에 시네마테크는 영화박물관으로서의 새로운 기능들을 모색해야만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가 ‘영화박물관’, 즉 ‘영화의 루브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박물관이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른, 기존의 박물관으로부터의 일탈, 탈구축을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도르노가 박물관(Museun)과 사당(Mausoleum)의 발음상의 유사성에 근거해 박물관을 예술 작품의 묘지라 불렀던 그런 비판을 넘어서야만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2005년, 보다 크고 넓은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이런 오랫동안의 꿈을 부분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랑글루아는 1961년에 영화예술의 박물관이 기술의 박물관이 아니라 예술의 박물관이어야만 한다며 20세기 초의 모든 예술 경향들의 교차로서의 예술의 박물관, 시네마테크를 꿈꿨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 상영만이 아니라 기획전, 심포지엄, 교육,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공간이다. 한국에서 이런 박물관에 대한 꿈은 여전히 상상적으로 남아 있다.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입주하는 ‘복합 상영관’의 설립에 관심을 기울였고 예산의 일부를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네마테크는 박물관의 기능을 하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제도화된 박물관을 탈피해야만 한다. 영화가 제도화된 박물관의 불이 꺼진 후에 개장하는, 무의식의 밤의 역사를 담아낸 ‘밤의 박물관’이었기 때문이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박물관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요즈음 시네마테크에서는 ‘데니스 호퍼’의 전시회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전시를 하게 됐나?

장 프랑수아 로제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고, 10월에 전시회가 열릴 계획이다.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전시회였다. 데니스 호퍼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현대예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의 작품, 그의 주변 사진, 그리고 그가 수집하고 소장한 컬렉션들을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것이다. 시네마테크에서의 전시는 보통 일 년에 두 차례 치러지는데, 올해 초에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전시가 있었다. 그 전에는 샤샤 기트리에 관한 전시를 했었다. 내년에는 자크 타티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굉장히 특이한 전시가 될 것이다. 샤이오에서 2005년에 베르시로 이전하면서 전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해졌다.



김성욱(영화평론가) 베르시로 이전하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영화박물관’의 기능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전시도 열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상영관도 4개관이다. 영화도서관(BIFI)도 함께 입주해 있다. 랑글루아 시절부터 시네마테크는 박물관의 개념을 중요하게 여겼다. 시네마테크의 박물관적 기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장 프랑수아 로제 박물관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일반 박물관은 방문자들이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의 방문을 하고 끝나버리지만 시네마테크는 일반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 달리 영화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또한 시간을 보여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전과 더불어 공간을 확보하면서 그런 박물관의 이미지를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일반 방문객들이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과의 차이는 문화적인 공간으로서 작품을 만든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가 개발될 때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런 박물관과 관련한 문제가 시네마테크에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김성욱(영화평론가) 예전에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영화의 루브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장 프랑수아 로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웃음) 영화가 예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불투명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아주 노블레스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그래서 경계선이 애매하다. 어떻게 보면 그게 기회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김성욱(영화평론가) 하지만 동시에 고다르가 박물관에 대해 경멸조로 말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의 찬가>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일종의 약탈자로 묘사하는 식으로 말이다. 박물관에서 예술의 물리적 현존이 예술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장 프랑수아 로제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더 맞는 것 같다. 영화는 현존하는 예술의 분야이고 대단히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6~70년간 영화가 예술 장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네마테크가 출발했었다. 이런 의문은 사실 현대에 와서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 시네마네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래머인 장 프랑수와 로제와는 이번 인터뷰외에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에서 첫 만남 이래로, 파리에서 '김기영 감독 회고전'이 열릴 때 옮기기 전의 샤이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커피를 마시다 인사를 나눴다. 규모와 사정이 워낙 다른 탓에 뭔가 서로 교감을 나누기에는 힘든 실정이지만 결국 고민하는 문제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 공간의 법적인 지위와 관련한 제도적 문제가 요즘 관심사이기도 해서 그런 문제들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지만 다른 일정들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요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스파이크 리 회고전'을 하고 있던데, 문득 그 정도 연배급의 한국영화 작가들이 여전히 프랑스에서도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프랑세즈'라는 국적의 표현이 들어가있긴 하지만 실은 글로벌한 영화역사의 '박물관'이길 꿈꿨었다. 글로벌과 로컬리티의 충돌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건 여전히 그들의 시네마테크에 모순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또한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시네마테크, 우리들의 영원한 사랑
시네마테크 후원회 감독들을 만나다
2006.01.25 / 편집부

좀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은 감독과 배우들, 영화평론가들이 뭉쳤다.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아트시네마의 지속적인 재정난을 안타까워하던 이들은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중 박찬욱 감독, 오승욱 감독, 류승완 감독과 김성욱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초대해 대화를 나눴다. 영화를 보고 만든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들에게 시네마테크는 왜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대담 참석자 박찬욱 감독, 오승욱 감독, 류승완 감독, 김성욱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진행 김용언, 허지웅 기자

FILM2.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박찬욱 감독 극장이 워낙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길래, 그러다 문이라도 닫게 되면 큰일이다 싶어 참여했다. 당장 프로그램이 부실해진다거나 하면 그게 우리 손해지.
오승욱 감독 맞다. 시네마테크가 없어지면 어디서 영화를 보나.
류승완 감독 나는 평생 회원 카드까지 있는데 문 닫으면 아까워서 큰일이다.
오 예전에 영화 아카데미 면접 시험을 보는데 다수의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를 꼽더라. 그때 시네마테크의 위력을 실감했다. 시네마테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FILM2.0 2000년대에 정식 개관한 시네마테크를 처음 찾았을 때의 감회가 모두 남달랐을 것 같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부연 설명을 하자면, 상영은 1999년부터 시작했다. 루이스 부뉘엘, 오손 웰스, 로베르 브레송, 에릭 로메르 등의 작품들을 상영하며 시네마테크 구축을 위한 기초 작업을 했고, 2002년 5월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정식으로 개관했다. 그 전에는 문화학교 서울과 서울시네마테크로 분화돼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활동이 통합된 것이다.
박찬욱 감독 맞아, 오손 웰스 회고전을 찾아가서 봤던 게 기억난다. 시네코아에서 하지 않았었나? 처음에는 단발성 행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공간이 생기면서 정착이 되니까 한국이 정말 달라졌구나 싶었다. 도쿄에 있는 시네마테크를 그렇게 부러워했었는데 말이지.
오승욱 감독 하다못해 홍콩에도 있다.(웃음)
김성욱 프로그래머 하다못해 필리핀에도 있다.(웃음)
류승완 감독 나는 아트선재센터 시절에 시네마테크를 자주 찾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때 <요짐보>와 <7인의 사무라이>를 필름으로 보고, 또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을 한꺼번에 보고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와, 이런 세계가 다 있구나 싶었다. 브레송 영화를 볼 때도 비디오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자극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관객들의 면면이다. 날마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웃음) 매일 오던 분들만 계속해서 오는 거다. 도대체 뉴 페이스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분들이 취직을 하신 건지 점점 사라지더라. 극장에 온종일 죽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분들도 먹고살아야 할 텐데'라며 걱정했었는데, 정작 이 분들이 사라지니까 극장에 위기가 찾아오더라.(웃음)
오승욱 감독 막상 눈앞에 생기고 나니까 그 전에 시네마테크의 존재를 갈망했던 마음들이 많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이제는 영화제들도 많아졌으니까.
류승완 감독 요즘은 영화들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다. 동영상으로도 보고, DVD로도 보고... 필름으로 보는 맛이 전혀 다른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박찬욱 감독 동감한다. 난 로버트 알드리치의 <더티 더즌>을 비디오로 봤을 땐 그저 그런 오락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필름으로 다시 보고 나니 ‘내가 이 영화를 정말 보기는 했나’ 싶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필름으로 보면 전혀 달라지는 영화들이 있다.

류승완 감독 유서 깊은 허리우드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도 있지 않나? 족발 냄새 나는 골목을 뚫고 지나가 예술영화를 보는 쾌락.(웃음)
박찬욱 감독 극장 건너편의 카바레 출입하시는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아슬아슬한 정서!
오승욱 감독 엘리베이터 타고 함께 올라가 아줌마, 아저씨들은 카바레로, 우리는 극장으로 갈라져 향할 때의 그 정서 말이지. 왠지 은밀해 보이고, 무슨 범죄라도 벌어지는 것 같은 느낌.
류승완 감독 내 돈 내고 영화 보러 가는데 눈치가 보인다.(웃음)
오승욱 감독 낮에는 그런 느낌이 더 강렬해진다. 남들 다 일하는 낮 시간에 영화 보러 가는 것이나, 카바레 가는 것이나 둘 다 그다지 생산적인 활동은 아니거든. 이런 두 가지 성격이 절묘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이를테면 ‘죄의식을 동반한 영화 보기’ 말이다. 옛날 동시 상영 극장 주변에는 카바레도 있고 술집도 있어서 분위기가 참 묘했다. 난 아트선재센터 시절도 좋았지만 지금 허리우드극장 분위기가 더 좋다.
류승완 감독 극장 앞 카페에 앉아 있으면 재미있다. 극장 주변에 펼쳐진 안국동 일대를 내려다보면 정치, 사회, 경제 전반을 두루 걱정하는 분들이 숱하게 많다는 걸 알 수 있다.(웃음)
오승욱 감독 얼마 전에 보니 카페 앞에 ‘사채업자들 출입 금지’라고 써 있더라. 옛날에 극장에서 꼬마들에게서 삥 뜯던 양아치들이 생각났다.
류승완 감독 그 분들이 나이 들어서 사채업자를...(웃음)
김성욱 프로그래머 종로 쪽 극장들이 모두 리모델링해서 재개관했지 않나. 환경이 그렇게 되면서 사채업자들이 갈 곳이 없어지니 우리 극장 앞으로 모여들더라.
류승완 감독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관람의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영화를 겪고 체험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며 한 편의 영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박찬욱 감독 외국인들에게서 한국영화의 개성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영화사의 중요한 작품들을 순서에 맞게 체계적으로 감상하거나 공부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회가 되는 대로 배웠기 때문에 그런 개성이 형성된 게 아닌가 싶다. B무비부터 보기 시작해 존 포드를 마흔 살이 넘어서 처음 보게 되니까, 우리가 만드는 영화들도 어딘가 특이해지는 것이다.
오승욱 감독 맞다. 내가 장철이나 페킨파 영화 보고 열광할 때, 프랑스 애들은 장 르누아르 영화를 보고 있던 식이다.
류승완 감독 오우삼이 장 피에르 멜빌을 좋아했다라고만 알고 있다가 나중에 <사무라이>를 보고서야 ‘이게 진짜구나’ 싶었다.
박찬욱 감독 오우삼을 먼저 보고 샘 페킨파를 나중에 본다든가, 성룡을 먼저 알고 그 다음에 버스터 키튼을 알게 된다든가. 이런 식으로 거꾸로 역사를 거스르는 모습들이 재미있는 경험과 성향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류승완 감독 특히 우리 세대는 그 불균형이 매우 심하다. 40대인 선배들과 다르게,(웃음) 우리는 주로 비디오를 통해 모든 것을 보던 세대다.
박찬욱 감독 그런 경험들이 고전에 대한 아주 잘못된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조악한 환경에서 고전을 보면서 ‘저런 영화가 뭐가 좋을까’라는 잘못된 생각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승욱 감독 시네마테크에서 필름으로 고전을 다시 보면서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된다. 일전에 <성난 황소>를 관람하면서 그런 충격을 받았다. 양 옆이 잘려 제대로 된 화면 비율을 감상할 수 없는 비디오 영상으로는 영화의 가치를 발견하기 힘들다.

FILM2.0 여기 모인 감독들은 B무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기로 유명하다. 그런 취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살점과 피가 난무하는 것을 보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키우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웃음)
박찬욱 감독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웃음) 난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다는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류승완 감독 두 시간 동안 남자 여자 계속 이야기하는 영화, 정말 못 보겠다. 도대체 말이 안 되잖아. 그걸 왜 돈 들여서 두 시간 동안이나 보고 있어야 하나.(웃음)
박찬욱 감독 우리는 남녀가 장난치고 눈빛 교환하는 것 보고 있으면 왠지 창피해져서 견딜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아, 부끄러워.(일동 폭소)
오승욱 감독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옛날부터 폭력에는 관대한 나라가 아니었나. 시대적인 부분을 감안해보면 우울한 군사독재 시대를 지나오면서 ‘이런 세상에서 순진한 사랑 놀음이 웬 말인가’라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런 영화들, 왠지 낯설고 창피하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여기 모인 감독들은 한국영화 지평 위에서 볼 때 굉장히 새로운 세대다. 그 전의 감독들은 사실 영화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자신의 영화적 취향에 대해 강력하게 표현하는 감독들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FILM2.0 자신의 취향으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고 했을 때, 그 안에 진정 나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성질이 존재할지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이를테면 무의식 중에 다른 영화를 따라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 말이다.
박찬욱 감독 난 한 번 본 영화들을 많이 잊어버리는 편이다. 옛날에는 영화를 본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지워져버린 것 같아 무척 슬펐다. 그런데 이제 영화를 직접 만드는 입장이 되고 나니 오히려 좋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많이 봤어도 일부러 따라하지 않는 이상, 자기 영화에서 남의 것이 묻어나오진 않는다.
오승욱 감독 그에 버금가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인데, ‘이런 장면에서는 저렇게도 표현을 하는구나’라며 참고를 할 뿐이지 그것을 모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류승완 감독 나 같은 경우는 하도 남의 영화를 베꼈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무감각해졌다. 사실 좋은 장면은 베끼고 싶다. 이를테면 <포인트 블랭크>에서 구타하다가 지쳐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나서 “내가 빨리 먼저 베껴야지!”하고 소리질렀다.(웃음) 그런데 실제 따라해 보려고 하면 절대 그대로 나와주질 않는다. 배우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면 결과물이 같을 수 없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나는 당신들의 영화에서 60년대로부터 70년대로 넘어가던 순간의 미국영화의 정서를 느낀다. 과잉의 에너지 말이다. 비교될 만한 미국영화들과 당신들의 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기획도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나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같은 경우도, 둘이 전혀 다른 영화 같지만 화면을 분할하는 운용의 방식을 비교해보면 참 재미있다.
박찬욱 감독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처음에는 주인공으로 고두심 선생을 고려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와 너무 비슷해질 것 같아 변경했다.
오승욱 감독 하늘 아래 과연 새로운 것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박찬욱 감독 내 생각은 다르다. 예술 작품은 모두 새롭다고 생각한다. 관점에 따라 모든 것들이 다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연기자가 다르고 주변의 환경이 다르며 감독의 의식이 다르기 때문에 매번 다른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오승욱 감독 박 감독과 나 사이에 ‘새롭다’는 의미가 다르게 해석된 것 같다. 물론 감독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 안에 담기게 되는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시각은 언제나 새로워야 한다. 하지만 영화적 구성의 형식을 새롭게 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강박관념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FILM2.0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의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구나’하는 동질감이나 안도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을 텐데. 나만의 스승을 찾았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오승욱 감독 시네마테크에서 한 감독의 열 편 이상 되는 작품을 한꺼번에 본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을 조망하고 체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체험은 창작자에게 영화를 계속 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다.
류승완 감독 안도감보다는 경외감을 더 느낀다. 과거에 아무 생각 없이 봤던 B무비를 시네마테크에서 다시 보면서 어느 순간 존경스러워진다. 도대체 어떻게 알드리치는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스즈키 세이준이나 쇼 브라더스 영화를 다시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무술 영화인줄 알았는데 한 데 모아 보니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박찬욱 감독 정말 그렇다. 시네마테크의 회고전이나 기획전을 통해 접한 감독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정말 그 감독과 사귄 것 같고, 굉장히 잘 아는 사이인 것 같고.
오승욱 감독 알드리치 회고전을 전부 보고 나왔더니 그 양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더라.(웃음)
류승완 감독 보면 볼수록 많이 배운다. 실제로 시네마테크를 거치면서 최근 몇 년간 취향도 많이 바뀌었다.
박찬욱 감독 신작을 보러 개봉관에 가본 지 몇 년 됐다. 같은 시간을 투자해 시네마테크나 DVD로 500배 더 재미있는 영화들을 볼 수 있으니까.
오승욱 감독 난 사실 개봉관 공포증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엉망이고 재미없는 영화인데, 입추의 여지없이 꽉꽉 들어찬 관객들이 모두들 웃고 있을 때, 정말 낙오자가 된 느낌이다.(웃음) 이래서 영화감독을 할 수 있겠나 싶고. 나 혼자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무서웠다.
류승완 감독 그런데 이렇게 가다간 시네마테크는 ‘낙오자 집단이 영화 보는 곳’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 같다.(일동 웃음) 대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FILM2.0 관객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평론가들이 영화의 유령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지 않나. 시네마테크에 오는 관객들 역시, 색이 바래서 존재가 희미해지는 옛날 고전 프린트들을 열렬하게 감상하는 유령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공간과 관객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관람이 이뤄지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모두들 영화 내용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지 않나. 그 동안 영화에 대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왔는데 유독 영화를 보는 공간에 대한 담론은 전무했던 게 사실이다.
오승욱 감독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공간과 관객에 대한 느낌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고등학생 때 <디어 헌터>를 극장에서 봤을 때가 생각난다. 영화가 끝나고 멍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려는데, 저쪽 구석에 내 또래 남학생이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더라. 별다른 말을 건네지는 못했지만 큰 감동을 느꼈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경험과 느낌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한 동질감이랄까. <디어 헌터>를 떠올리면 그때의 광경이 제일 먼저 기억난다.
박찬욱 감독 옛날에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 볼 때는 관객들 사이에 교류하는 정서가 매우 풍부했다.
류승완 감독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그런 정서들이 많았다. 시네코아나 문화학교 서울을 가도 영화를 본 뒤 토론하는 풍경들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지금 세대 영화광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 궁금하다.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경쟁적으로 영화에 관한 글을 올리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좀 이상하다. 그 영화에 대한 자기 생각이 아니라 줄거리만 달랑 써 있을 때가 많다. 그 영화를 봤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한 것 같더라.
김성욱 프로그래머 공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얼마 전 프랑스에 갔을 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이전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10년이 넘도록 이전 문제를 논의했다는 건 알았는데, 새로 장소를 옮기면서 굉장히 럭셔리한 성전처럼 바뀌었더라.(웃음) 동시에 제도적 공간이라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그다지 제도적이지 못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결국 딜레마라는 생각이 든다.
류승완 감독 나는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이 고전에 치우치기보다는 우리 주변의 묻혀버린 감독들에 대한 재발견 위주로 편성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 감독이 그의 필모그래피를 걸작으로만 채워나가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졸작만 만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승욱 감독 흥행이라는 측면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브라이언 드 팔마처럼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안 그래도 신년을 맞이해 큰 기획을 생각 중이다. 한국의 젊은 감독들과 영화광들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꼽는 마틴 스콜세지나 드 팔마 같은 감독의 특별전을 구상 중이다.
오승욱 감독 아무튼 시네마테크가 심각한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활동하면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어진 스펙트럼을 구축해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 예전에는 누가 감히 알드리치나 멜빌의 회고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FILM2.0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회고전이 있다면?
박찬욱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영화제를 한번 했던가?
김성욱 프로그래머 아직 못했다. 예전에 로마까지 가서 노력해봤는데 잘 안 됐다. 김지운 감독은 파졸리니 감독 회고전을 했으면 하더라. 파졸리니 같은 경우는 저작권 소유자가 굉장히 까다로워서 전작 회고전을 개최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회고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오승욱 감독 존 포드의 두 번째 회고전과 하워드 혹스 전작, 그리고 무엇보다 기노시타 게이스케 회고전이 보고 싶다. 일본영화사를 보면 이 감독의 명성이 너무나 자자해서 많이 궁금했었는데, 이번 쇼치쿠100주년영화제 때 <나라야마 부시코>와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를 보고 나서야 왜 유명한지 이해가 갔다. 게이스케의 모든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류승완 감독 샘 페킨파와 존 프랑켄하이머의 영화들, 특히 <맨츄리안 켄디데이트>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오승욱 감독 페킨파 좋지. 세르지오 레오네도 함께라면 더 좋겠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극장에서 완전판으로 보는 게 소원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모두들 미국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일본, 유럽영화에도 관심 많은데, 이탈리아의 마르코 벨로키오승욱 감독 같은 감독들의 영화제도 꼭 보고 싶다.
오승욱 감독 그동안 미국영화를 굉장히 폄하해 왔던 경향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50년대 미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시대 영화들 속의 기이한 정서, 이를테면 두 번의 세계대전과 매카시즘에 대한 죄의식들이 영화 속에 암호처럼 박혀 있는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쾌락이 있다.

FILM2.0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제에 추천했던 작품의 변을 부탁한다.
박찬욱 감독 돈 시겔의 <킬러>를 선택했던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 순전히 리 마빈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팬클럽 회원이다.
오승욱 감독 나도 팬클럽 회원인데. 리 마빈,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웃음)
류승완 감독 난 새뮤얼 풀러의 <충격의 복도>를 골랐다. <지옥의 영웅들> DVD를 보다 서플먼트에 그 영화가 언급되길래 고른 것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못 볼 것 같아 아트시네마 쪽에 끈질기게 졸랐다. 예전에 박찬욱 선배가 <벤허> 10편과 <충격의 복도> 1편을 바꾸자고 하면 바꾸지 않겠다고. 그런데 <벤허>는 우리 아버지가 지상 최고의 영화로 꼽는 작품이다.(웃음)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하고 궁금해졌다.
오승욱 감독 난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갱들>이다. 예전에 아트시네마에서 <석양의 무법자>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경상도 아가씨가 대단히 노골적인 경상도 억양으로 영화의 오프닝 송을 흥얼대며 지나갔다. 내 인생에서 매우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웃음) 나와 20년 이상 차이 나는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좋아한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이번에 <석양의 갱들>을 보고 나올 때 관객들이 이 영화의 오프닝 송을 흥얼대는 걸 꼭 듣고 싶다.

사진 김춘호 기자

특별기고 | 우리의 마지막 방어선을 지켜야 한다
시네마테크의 후원자 정성일의 헌사
2006.01.25 / 정성일(영화평론가)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아트시네마는, 한 마디로 서울 유일의 영화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이 아니라면 우리는 영화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시네마테크를 안정적으로 보존하려는 영화계의 움직임이 2006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시네마테크의 후원자 ‘친구들’ 중 한 명인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진심 어린 헌사를 싣는다.

짧은 글의 헌사. 그러므로 여기서는 문제를 간단하게 말하자. 시네마테크는 우리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만일 이게 무너진다면 이 땅에서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 개소리다.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시네마테크 없이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찰리 파커의 사보이 레코딩을 들은 적 없는 재즈 애호가를 상상할 수 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의 선 세션을 들은 적 없는 록 매니아를 인정할 수 있을까? 아르튀르 시나벨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녹음을 들은 적이 없으면서 고전음악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D. W. 그리피스의 <흩어진 꽃잎>,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결혼행진곡>, 칼 드레이어의 <집안의 주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10월>, 빅톨 셰스트롬의 <바람>, F. W. 무르나우의 <밤으로의 여행>, 두 편의 <증기선>(존 포드와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장 르누아르의 <성냥팔이 소녀>, 프랭크 로이드의 <씨 호크>, 라울 월시의 <영광의 대가>, 기누가사 데이노스케의 <미쳐버린 한 페이지>, 오즈 야스지로의 <비상선의 여자>, 조셉 폰 스턴버그의 <뉴욕의 부두>, 알프레드 히치콕의 <살인!>, 제임스 쿠르즈의 <활동사진의 머톤>, 프리츠 랑의 <스피오네>, 헨리 킹의 <스텔라 달라스>, 보리스 바르네트의 <모자상자를 갖고 온 소녀>, 레프 쿨레쇼프의 <법의 이름으로>, 장 엡스탕의 <어셔 가의 몰락>, 자크 카트랑의 <괴물들의 갤러리>, 킹 비더의 <빅 퍼레이드>, 에른스트 루비치의 <내게 다시 한 번 키스해주세요>, G. W. 파프스트의 <판도라의 상자>(나는 아트시네마로부터 받은 ‘백지수표’에서 2006년 1월에 함께 보고 싶은 영화로 우선 이 영화들을 떠올렸다. 왜냐 하면 이 목록은 나에게 일종의 고향 같은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영화들이 빠졌다) 중 단 한 편이라도 안 본 영화가 있다면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내 생각에 그건 영화의 사랑에 대한 교양이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들을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본 사람과만 영화를 이야기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보았을 때 적어도 매번 3년 이상의 간격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비로소 그렇다면 영화를 통해서 얼마만큼 자신의 사랑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어디서 할 수 있을까? 물론 당나귀 프로그램을 동원하여 집에서 컴퓨터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감동을 받을 때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와 함께 그 순간 탄식의 한숨을 쉬고야 마는 그 숨소리를 듣고 싶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나와 함께 바로 이 순간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함께 나누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싶다. 이 위대한 영화들을 보는 순간, 시네마테크는 나에게 우주의 중심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위대한 순간에 우리는 감동으로 연대한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여기가 방어선이다. 이걸 지켜야 한다.

봐야 할 영화 놓치지 않을, 전용관이 필요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담
2007.01.17 / 장병원 기자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행사가 2회를 맞았다. 지난해에 이어 홍상수, 구로사와 기요시, 유지태, 엄지원 등 새로운 얼굴들이 시네마테크의 지지자로 나섰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감독 등 시네필의 최후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나선 친구들의 지지 메시지를 대담을 통해 전한다. 대담에는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패널로 참여했다.

FILM2.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행사가 2회째를 맞았다. 봉준호 감독은 올해 신입 멤버시다.
봉준호 감독 작년에는 <괴물> 때문에 바빠서 참여를 못 했다. '친구들' 행사할 때 촬영 끝나고 편집하고 있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봉 감독께도 연락 드렸는데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

FILM2.0 다들 바쁘실 텐데, 요즘에도 시네마테크에 자주 가나?
박찬욱 감독 얼마 전 ‘알랭 들롱 회고전’ 때 갔었다. 그때 가슴 아픈 일이 있었어. 영화 시작 전에 추첨을 해서 상품을 준다는 거야. 상품이 프랑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했던 알랭 들롱 회고전 포스터하고 브로마이드. 세 명을 뽑아서 상품을 주는데, 마침 첫 회여서 나를 포함 총 관객이 일곱 명이었다. 일곱 중에 셋이면 자동으로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못 받았네. 진짜 받고 싶었는데.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전날 그 상품을 보여주기에 자꾸 만져보면서 "좋다. 이거 돈 주고도 못 사겠네", 그랬는데 꿈쩍도 안 해.
김성욱 프로그래머 오승욱 감독은 당첨돼서 받아가셨다.
박찬욱 감독 거기서 왜 못 뽑히나? 상품 탄 사람 중 한 아저씨는 원투쓰리 카바레 문 열기 전에 온 아저씨 갔던데.
봉준호 감독 나도 알랭 들롱 회고전이 마지막이다. 알랭 들롱도 들롱이지만, 장 피에르 멜빌을 필름으로 볼 심사로 갔다. 이상한 게 알랭 들롱은 나오는데 장 피에르 멜빌 이름은 안 나오는 거야. <암흑가의 세 사람>과 <암흑가의 두 사람>을 혼동해서 <세 사람>이 멜빌 영환데, <두 사람>을 본 거지.
류승완 감독 <두 사람> 때문에 프랑스에서 단두대가 없어진 거라는 말이 있지 않았나?
봉준호 감독 나도 그 얘길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랭 들롱이 단두대에 서는데 그 눈빛이 너무 호소력 있어서 단두대가 없어졌다는. 마지막 장면에서 들롱이 입은 와이셔츠를 싹싹싹 자르고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기가 막히다. 근데 그 장면 빼곤 다 후지더라.(웃음)
박찬욱 감독 나는 <세 사람>을 배우 임수정과 봤는데 좋아하더라. “옛날 아저씨들 멋지네요”, 그러면서.
류승완 감독 난 알랭 들롱 회고전은 못 봤고 지난여름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2006년에는 마틴 스콜세지 <성난 황소>, 샘 페킨파 <와일드 번치>를 프린트로 본 게 제일 큰 수확이다. 보는데 정말 눈물 났다.

시네마테크의 보루, 전용관

FILM2.0 올해는 행사제목이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다. 전용관 문제를 이슈로 삼았다.
류승완 감독 최근 리모델링한 프랑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이하 ‘프랑세즈’)를 보면 전용관의 위력이 실감된다. 프랑세즈는 건물이 여러 개인데 그중 어디에는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옷도 전시돼 있었다. 거긴 영화도 스크린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본다. 브라운관, 모니터로 보고 소리는 전화기로 듣는다. 그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더라. 영화 안 보는 관광객들도 구경 온다.
봉준호 감독 얼마 전 김기영 감독 회고전을 프랑세즈에서 개최해 갔었다. 거긴 스크린이 서너 개 된다. 앙리 앙글루아관, 장 비고관,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어 있다. 스크린이 여러 개라 복수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좌석이 미어터진다. 김기영 감독 회고전, 독일 표현주의전, 프레드릭 와이즈만 다큐멘터리가 한꺼번에 돌아간다. 그러면서 독일 표현주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도 같이 하는데,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팀 버튼의 <배트맨>이 줄줄줄 나온다. 짧게 한 편씩 하고 퇴장하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반복 상영하는 방식이다.
류승완 감독 내가 갔을 때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제를 했는데 알모도바르가 직접 한 디자인, 영감을 받은 그림들, 셀프카메라 등등 영화 외에도 다양한 자료들을 함께 볼 수 있다. 그걸 따라가면 이 감독이 어떻게 영화를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알모도바르 영화 보면 부감으로 도시 풍경 잡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그런 이미지는 친구 미술가의 그림과 거의 똑같이 진행된다는 걸 전시회 보고 알았다. 그런 거 보면서 여기에 내 흔적을 남기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찬욱 감독 꿈도 커.(웃음)
봉준호 감독 프랑세즈에서 무르나우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를 봤는데 특이한 체험이었다. 음악도 없었기 때문에 90분 동안 관객들이 숨소리 한 번 못 내고 두 손 모으고 봤다. 그때 중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한국에서도 피카소 전시회 하면 학생 무료공연도 있고 선생님이 숙제도 내주지 않나. 그런 식으로 온 애들이다. 걔들이 아무리 프랑스 애들이지만 그걸 보고 싶겠어? 비비 꼬고 떠들고 그러지.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독일 표현주의에 관한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걸로 봐서 영화학자가 분명한데, 이 아저씨가 앞에 있는 애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조용히 해!" 호통을 치더라. <에일리언> 1편 디렉터스컷을 잡티 하나 없는 프린트, 초대형 화면으로 봤는데 죽인다. 몰랐던 장면도 많이 있다. 그러니까 원조다. 이동갈비나 함흥냉면 같은 원조.
박찬욱 감독 스위스에도 유명한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하던데?
김성욱 프로그래머 벨기에다. ‘시네마테크 벨지움’. 거기엔 자크 루도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크 루도가 컬렉션을 해 만들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같은 감독은 ‘벨기에 시네마테크를 구하자’라는 주장도 했었다. 아주 작은 공간인데 들어가 보면 지하에 무성영화 시절의 영화들과 기계들이 전시돼 있다. 규모는 작지만 프로그램은 굉장히 알차다.

FILM2.0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가 영화만 상영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네필들의 ‘집’으로 개념이 전환되기를 바란다. 영화의 역사를 보존하고 시네필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살롱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봉준호 감독 그런 점에서는 이전에 있었던 아트선재센터가 좋았던 것 같다. 공간의 독립성이나 주변환경, 시설 등의 측면에서.
박 솔직히 난 여기도 괜찮은 거 같다. 오승욱 감독도 좋아하잖아. 젊은이들이 잘 안 오려고 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우선, 계약이 끝나면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지금 공간은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도 마땅치 않다.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전시 같은 기획을 해볼 수도 있는데 장소 문제가 제일 걸린다. 우리는 공간의 성격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 시네마테크라면 필름 아카이브도 있어야 한다. 스크린 수도 여러 개면 좋겠다. 영화제 기간이 짧고 상영 횟수도 몇 번 안 되기 때문에 잠깐 바쁜 일이 있으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런데, 영화학과 학생들이 시네마테크에 오지 않는 건 정말 이상하다.
류승완 감독 얼마 전에 모 대학에 갔는데, 그들은 자기 학교에도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주장한다. DVD나 디빅스로 다 본다는 거지. 공간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젊은이들은 PC, DVD, 필름을 다 같은 걸로 생각한다. 시네마테크가 뭔가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안 돼 있다.
봉준호 감독 영화학과 교수들도 개탄한다. 요즘 애들은 고전을 잘 안 본다고. <디파티드>를 보면 마틴 스콜세지의 초기영화를 보고 싶지 않을까? 나는 그랬는데 요즘 친구들은 안 그런 것 같다. 현재 영화와 과거 영화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생각이 갈려 있다. 고전영화도 당시에는 흥행작들이었는데, 현재 시점에서 고전이라고만 생각한다. 영화사 책에 나오는 영화와 <반지의 제왕>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박찬욱 감독 음대생들은 지금도 모차르트를 듣고 문학 전공하는 학생은 톨스토이를 읽는데 영화만 유독 고전을 도외시한다. 옛날 건 딴 세상 이야기 취급하고 요즘 것만 찾는다. 영화잡지도 아니고 왜 자꾸 새로운 것만 봐야 되는 거야?
류승완 감독 시네마테크 문화는 지금 아니면 정착시키기 힘들다. 지금이 좋은 기회다. 한국영화가 지금처럼 잘 나가고 존중받을 때, 영화에 대한 충심들이 솟아날 때 그런 문화를 만들어놔야 한다. 적어도 영화 하는 게 ‘딴따라’ 소리 안 듣는 시절에 뭘 해도 해야 한다.
박찬욱 감독 옛날에 조영욱(<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음악감독)하고 목동에서 비디오 가게를 한 적이 있다. 딱 1년 동안 영화마을. 비디오를 꽂아 놓을 때 좋은 영화를 구색으로 갖춰야 해서 꽂아놨는데 아무리 갖다 놔도 빌려가는 사람이 없다. 영화도 좋고, 기간도 길고, 대여료도 싼데 아무도 안 빌려가.
류승완 감독 난 영화마을에서 일할 때, 좋은 영화는 반짝거리는 비닐케이스로 포장을 바꿔놓았다. 반짝거리는 비닐로 싹 갈아 놓으면 신품인 줄 알고 잘 빌려 간다.(웃음) 테이프 위치도 신품처럼 앞으로 빼 놓는다. 빌려가서 2주씩 안 가져오는 사람들은 신프로 대신 그런 영화 꽂아 놓으면 여지없이 빌려간다. 나중에 와서 막 항의하지. 이런 거 왜 빌려 주느냐고.
봉준호 감독 체험을 하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고전영화인데 너무 재미있고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걸 체험하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시네마테크가 필요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이고.
박찬욱 감독 더글라스 서크 회고전 할 때 우리 아이를 데려와서 영화를 여러 편 봤는데 정말 재미있어 하더라. 보면 그렇게 좋아한다. 서크 영화가 또 멜로드라마니까 웃고 울고 하면서 보기 좋다.

시네필 문화의 달라진 풍경들

FILM2.0 지금 주 관객층들은 과거 시네필 세대와 연배 차이가 많지 않은가?
류승완 감독 난 지금 세대와 거의 차이 안 난다.
봉준호 감독 나도 별로 차이 안 난다. 박찬욱 감독님은 차이가 좀 나지? 우리는 야매 시네마테크 세대다. 불법 카피한 비디오테이프에 길들여진 세대. 화질이 다 뭉개진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를 눈이 벌개져서 본 사람들이다. ‘세계영화사’ 책에 나온 영화들을 전부 한 번 보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다. 우리는 후진 거, 떡 진 거라도 봐야 하는 세대였다. 요즘은 인터넷에 다 있고 DVD 주문하면 다 온다.
박찬욱 감독 80년대 초 서강대 커뮤니케이션센터라는 게 있었다. 거기가 야매 시네마테크였다. 프랑스문화원, 독일문화원이 자막은 없지만 그나마 제대로 영화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봉준호 감독 독일문화원에 빔 벤더스가 왔었잖아.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김홍준 감독이 놀라운 질문들을 퍼부어서 빔 벤더스가 흠칫 놀랬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한국에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던 거지. 그 다음에 문화학교 서울이 나타나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류승완 감독 문화학교 서울은 비디오테이프 겉에 쓴 영화제목을 타이프를 쳐서 붙였다. 나름대로 큰 변화였다. 다른 데는 급하면 매직으로 썼는데 거기는 굉장히 전문적이었다. 영화만 트는 게 아니라 공부도 하고 연구서도 냈다.

FILM2.0 비록 야매 시네마테크 문화지만, 그런 자양분이라도 받지 않았나? 지금의 다운로드 세대들은 영화 보는 방식, 접근 태도 모두 다르다. 당신들은 시네필 세대지만 영화를 만들어서 보여줄 사람들은 지금 세대들이다.
봉준호 감독 야매 말고 언더그라운드라고 하자. 안 그래도 그런 부분이 걱정된다. 시네마테크에서는 일정한 시간에 모여서 누군가 틀어주는 영화를 본다. 이렇게 허우대 멀쩡한 놈도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뭐 저렇게 생긴 애가 영화를 좋아하냐, 라는 공감을 하면서 본다. 컴퓨터에 저장시켜놨다 잠깐 보다가 벨소리 울리면 포즈 누르고 전화 받고 다시 보는 것과 완전히 개념이 다르다. 영화는 점점 휴대전화 동영상처럼 변하고 있지 않나.
류승완 감독 누구나 자기 과거는 좋게 기억한다. 지금 내가 좋아한 걸 놓치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건지, 요즘 세대들도 좋아할 수 있는데 몰라서 즐기지 못하는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요즘 세대들도 아주 싫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에 쇼크 먹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
봉준호 감독 고전이나 희귀영화 마니아들이 볼 만한 영화들은 더 다운받기 편하게 돼 있다. 자막도 기가 막히게 들어가 있다. 시네마테크가 빨리 자리를 잡아서 그 친구들을 자봉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이다.(웃음)
박찬욱 감독 <센소>는 거기에도 없던데. 다운로드에 도가 튼 선수들 시켜서 찾아보게 했는데 그런 영화는 없대. 컴퓨터나 DVD로 보는 것과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음악으로 치면 연주회에서 듣는 음악과 CD로 듣는 음악의 차이와 같다. 다운로드족도 개봉영화는 보러 가잖아.
봉준호 감독 시네마테크에서는 개봉영화를 안 하잖아.
류승완 감독 피카소 그림을 화집에서 봤으면, 그 그림을 ‘안다’고 하지 ‘봤다’고 하지 않는다. 음악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는 다운로드로 봐도 다 봤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 때 모니터 사이즈를 생각하면서 만들진 않잖아.
박찬욱 감독 영화가 쉬워서 그런가봐. 만만해서.
김성욱 프로그래머 영화를 봤다, 영화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화를 어디서 봤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해외 감독들은 비평가들에게 그런 불만을 많이 드러낸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영화가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 영화는 극장을 전제로 해서 만드는데 요즘은 다른 곳에서 본다는 게 큰 갭이다.
박찬욱 감독 요즘에는 사무실에서 봤나, 집에서 봤나가 중요하다.(웃음) 배우인 (이)병헌이도 친구들하고 시네마테크에 같이 오고 싶은데 자기 온다고 소문나면 일본 아줌마들이 표 다 사버려서 안 된대.(웃음) 일본 아줌마들 무서워.
봉준호 감독 알랭 들롱 회고전 때 보니까 시네마테크에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많이 와 있었다. 그분들에게는 알랭 들롱이 브래드 피트였고 디카프리오였다. 그분들 소싯적에 알랭 들롱 얼마나 대단했어. 지금 고전이 과거 흥행영화라는 걸 잊지 말아야 된다니까. 우리도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박찬욱 감독 프랑세즈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사람들 아닌가?
류승완 감독 김기영 감독님 회고전에 이화시 씨가 오는 거, <바람 불어 좋은날> 할 때 안성기 선배님이 오는 거, 이런 게 재미있다. 외국 고전도 있지만 한국영화 고전에도 눈을 돌릴 수 있다. 난 사실 2006년 가장 좋았던 게 이두용 감독님의 <최후의 증인>이었다. 영화 틀고 이두용 감독님 모셔서 얘기 들으면 재미있자나?
박찬욱 감독 영상자료원이 학문적이고 자료보관 측면이 강하다면, 시네마테크는 좀 더 자유롭고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꾸밀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봉준호 감독 김기영 감독님 회고전에는 정일성 촬영감독님 모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들도 듣고. 이화시 여사님은 박정희 정권 때 얼굴이 퇴폐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활동을 못 하신 게 영원히 상처가 되신 것 같았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윤여정 여사처럼 계속 영화하고 싶다고 젊은 감독들이 좀 불러 달라고 하셨다.
류승완 감독 진짜 생존에 계신 선배 감독님들 모셔서 회고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생한 증언들이 모이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두용 감독님 회고전에서 <최후의 증인> 상영하기 전에 앞에 나가서 감독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는데, 손을 부들부들 떠시면서 “이 영화는 인간 회복을 외치는 영화입니다!”라고 외치셨다.
박찬욱 감독 여러 해 전에 이두용 감독님을 만나서 <최후의 증인>이 최고라고 했는데, 그땐 가 더 낫지 뭘, 그러셨는데 자신감을 많이 얻으셨나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 별 이상한 애 다 보겠다는 눈으로 쳐다보셨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제도화된 아카이브와는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여지들이 있다. 서구 시네마테크의 기능 중에도 제대로 된 평가를 못받은 영화를 발굴하거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영화들을 묶어내고 조명하는 기능이 있다.
봉준호 감독 프랑세즈에서도 이상한 거 많이 기획한다. 테렌스 피셔의 공포영화, 이탈리아 에로티시즘 회고전 등 다양하다. 장 프랑수아 로제라는 사람이 있는데 잡스러운 취향이라 B시네마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시네마테크 상영을 통해 그런 영화들에 대한 평가를 달리 내리는 작업이 중요하다. 30석 정도 되는 공간이 허락된다면, 필름과 DVD를 혼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셀렉션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 난 찬성이다. DVD도 레이저로 한글자막을 쏴주면 된다.

우리들의 행복한 영화

FILM2.0 영화제를 위해 각자 영화들을 추천했는데, 실제로 더 보고 싶은 영화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박찬욱 감독 추천한 영화가 복수였다. 원래는 베르톨루치의 <컨포미스트>를 정말 보고 싶었다. 웬만하면 흑백 말고 컬러영화로 하려고 한다. 컬러가 프린트로 보면 감동이 더 크다. <컨포미스트>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촬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고 프로덕션디자인 측면에서 도 그렇다. 근데 그 영화는 이번에 상영이 어렵다고 해서 접었다. 안토니오니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패신저>를 추천했다. 안토니오니하고 같이 일했던 제작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안토니오니가 자기 영화 말할 때는 <여성의 정체>를 꼭 말한다고 그러대.
김성욱 프로그래머 <여성의 정체>는 예전에 한국에서 수입한 프린트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튼 적이 있다. 노출 장면이 많아서 제대로 개봉을 못 했다. 비디오로 출시될 때는 ‘에로티시즘의 거장 안토니오니’라는 말이 박혀서 출시됐다.
박찬욱 감독 난 이탈리아영화가 좋다. 영화제에 가면 경쟁 부문보다 회고전을 주로 보는데 감동적으로 봤던 게 ‘킹즈 오브 이탈리안 B’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래머가 조 단테와 쿠엔틴 타란티노였다. 전부 심야상영인데 다 재밌지는 않았지만 인상적이었다.
봉준호 감독 난 구로자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을 먼저 골랐는데 그 영화는 수입이 돼서 올해 개봉한다고 하더라. 화면 사이즈의 차이를 가장 압도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독이 구로자와라고 생각한다. <란> 같은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는데, 공간을 장악하거나 펼쳐내는 파워가 남다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이 그 다음이었다. 사실 말은 안 했는데 베르톨루치 <1900년>을 보고 싶었다. 걸작이다 아니다 평하긴 쉽지 않지만 불균질하고 복잡한,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영화인 건 사실이다. 감독에게는 완전히 소진해버리는 시점이 있는 것 같다. 코폴라도 <대부> 1, 2편, <컨버세이션>을 지나 <지옥의 묵시록>에서 완전 연소가 되더니 그 다음부터 비리비리한 영화만 찍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베르톨루치에겐 <1900년>이 그렇게 완전 연소된 영화인 거 같다. 이탈리아영화도 계보를 만들어 상영하면 재미있을 거 같다. 펠리니도 로셀리니의 조감독 아니었나?
박찬욱 감독 비스콘티는 장 르누아르의 조감독이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안토니오니는 마르셀 카르네의 조감독이었고, 베르톨루치는 파졸리니의 첫 영화 <아카토네>에서 조감독을 했었다.
류승완 감독 난 처음에 <최후의 증인>을 꼽았다. 영상자료원에서 그 영화를 볼 때 분위기 정말 장난 아니었다. 저작권문제 때문에 못 틀게 됐지만. 예전부터 박찬욱 감독님이 <최후의 증인>, <최후의 증인>, 하도 그러셔서. 강우석 감독님도 <흑수선> 제작하실 때, <최후의 증인>을 봤기 때문에 <흑수선>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 실체를 보고, ‘내가 정말 존경할 만한 감독님, 자랑스럽게 얘기할 만한 영화가 생겼구나’라고 벅찬 흥분을 느꼈다. 구로사와의 <천국과 지옥>,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라울 월시의 <포효하는 20년대>를 거쳐서 <더러운 얼굴의 천사>가 올라갔다.
박찬욱 감독 그 영화가 제임스 캐그니가 사형당하는 영환가? 예전에 배우 최무룡 씨가 주부상대 아침 프로그램에 나왔다. MC가 “아드님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니까 그때가 <모래시계>하고 있을 때인데, “눈에 힘만 준다고 명연기는 아니죠”, 이러는 거다. 그러면서 “<더러운 얼굴의 천사>라는 영화를 보면 제임스 캐그니가 사형당할 때 보여주는 연기가 진짜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류승완 감독 제임스 캐그니 연기를 배우지망생들이 보면 진짜 좋을 거다. 캐그니는 진짜 갱으로 태어난 사람 같다. 캐그니를 보면 조 페시가 되게 착실해 보인다니까. 제임스 캐그니는 영화마다 설정이 있다. 그 영화에서 어깨를 까딱까딱하면서 말을 하는데, 어우 너무 멋있어서 영화 본 다음 며칠 동안 그거 흉내 내면서 다녔다. 되게 야비하게도 나오고. 그리고 키가 아담해서 좋아.
박찬욱 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위대한 배우 세 사람 중 하나로 꼽았자나.
봉준호 감독 나머지 두 명은 누구지?
박찬욱 감독 잭 니콜슨하고 제임스 스튜어튼가?

FILM2.0 기획자 입장에서 영화제를 준비한다면 어떤 프로그램들을 꾸리고 싶은가?
박찬욱 감독 난 지금 준비 중이다. 언젠가 할 거다. 악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중 걸작을 묶어서 하는 ‘최선의 악인들’이라고. 영국 ‘프리시네마 회고전’도 하고 싶었는데, 그건 2월 달에 한다고 들었다. 프리시네마 감독들은 진정한 연출의 ‘선수들’이다. 한국에서는 필름으로 보인 적이 없고 큰 조명을 받지 못해 지금은 완전히 잊혀졌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프리시네마 회고전 할 때 ‘감독조합 추천영화’를 받고 감독들이 직접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봉준호 감독 감독조합 추천작이라는 도장 찍고 감독조합 정기모임을 시네마테크에서 하는 거지. 떼로 와서 영화 같이 보고 한 명이 나가서 영화소개도 하고. 난 기획하라면 김기영 감독님 전작 회고전을 하고 싶다. 살아계신 한국 감독님들 회고전을 많이 해보고 싶다.
류승완 감독 나는 주목받는 신작들의 계보를 추적하는 영화제를 해보고 싶다. 감독 중심이 아니라 종역이나 단역, 스탭들을 중심으로 계보를 만들어 봐도 재미있을 거 같다. 예전에 한국어로 더빙된 한홍 합작 무술영화들이 있었다. 그게 그렇게 보고 싶다. 왕우가 ‘카사노바 왕’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진짜 싸구려 영화가 있는데 그런 거 보고 싶다. 옛날에 동시상영관에서 봤던 영화들. 그리고 마이클 파웰 영화 필름으로 보고 싶다. 색감이 진짜 죽일 것 같다.

FILM2.0 시네마테크에 바라고 싶은 당부도 있을 듯하다.
봉준호 감독 집중공략하는 타깃을 설정했으면 좋겠다. 대학과 연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화는 관람의 습관이란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계속 볼 수 있다.
류승완 감독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 방식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명분에 사는 일이지만 실리도 중요하다.
박찬욱 감독 난 영화제 기간이 짧다는 게 제일 아쉽다. 상영이 몇 번 안 되기 때문에 놓치는 영화들이 아깝다. 번듯한 전용관이 설치돼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난 이번 대선에서 시네마테크 전용관 확보와 지원을 공약으로 내 건 후보를 무조건 찍을 거다. 영화인들이 밀어주면 대통령이 되지 않나.(웃음)

진행 장병원 기자 | 정리 김교석 기자 | 사진 김수홍

영화의 집을 짓자, 보는 기쁨을 위하여
시네마테크 전용관, 어떻게 시작할까?
2007.02.14 / 김혜선 기자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필요성이 대두된 지는 오래다. 이젠 언제 어떻게 누가 그런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어떤 사례를 좇아 한국적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들이 뒤따라야 할 때다.

지난 1월 18일부터 2월 6일까지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2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류승완, 김지운, 김홍준, 오승욱 감독, 영화평론가 정성일, 배우 유지태, 엄지원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를 자처했고, 작품을 추천한 이들 게스트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거의 매진됐다. 이 때문에 영화제 첫 주엔 280석의 상영관에 200석이 들어차는 등 평일 평균 좌석점유율이 75%에 달했을 정도.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인해 영화제는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행사 중 가장 흥행이 잘되는 축에 속하는 ‘시네바캉스’도 평균 관람객이 100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상황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수정 사무국장은 “19일간의 영화제 기간 동안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전체 관객 수는 약 8,300명이다. 2006년에는 9일간 5,800명이 들었다. 기간이 19일로 늘었는데도 작년에 비해 관객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꽤 고무적”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관객들 중 상당수는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추천한 영화를 보고 싶다는 기대감, 영화를 보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영화제를 찾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절규>와 '봉준호 감독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대담‘은 가장 먼저 표가 매진됐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의 추천영화 중에선 <복수는 나의 것>이 가장 빨리 매진을 기록했다. 김수정 사무국장은 “2주차로 접어들며 빌리 와일더 영화를 상영했을 때는 평소 시네마테크를 찾는 연령층의 관객들이 많았지만 감독들이 관객과 대화를 하러 오는 시간에는 관객 연령층이 매우 젊었다”고 설명한다. 신작 <절규>의 상영과 대담을 진행하고 영화제 후원차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런 풍경을 보고 무척 놀라워했다. “일본에선 주류 영화감독들이 절대 이런 일 안 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자기 영화 찍느라 바쁘다. 어떻게 이처럼 관객 몇백만을 동원하는 현역 감독과 젊은 관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영화를 볼 수 있는지 신기하다.” 하긴, 이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풍경이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등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를 보고 열띤 토론을 했던 시절은 그들이 누벨바그의 명감독이 되기 전이었다. 기요시의 말처럼 이 신기한 풍경 속에는 시네마테크의 미래를 열어갈 중요한 열쇠가 있다.

공간이 곧 문화

감독들은 왜 시네마테크를 사랑할까? 지난 12월 말 ‘FILM 2.0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담’에 참석했던 봉준호 감독의 말이 그 이유를 대변해준다. "우린 불법 카피한 비디오테이프에 길들여진 세대다. 화질이 다 뭉개진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를 눈이 벌개져서 본 사람들이다. ‘세계영화사’ 책에 나온 영화들을 전부 한번 보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다.“ ‘야매’ 비디오 속 다 찌그러진 영상을 보면서 영화를 공부하고 만들었던 이들에겐 그 ‘야매’들의 실체인 필름으로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놀라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 다운로드가 횡행하는 시대, 작은 모니터나 TV 화면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스크린의 기운이 그들을 시네마테크로 불러 모으는 것이다. 그런 감독들의 체험담을 들으러 온 관객들 사이에서 미래의 감독, 미래의 배우, 미래의 평론가가 나오는 순환의 역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체험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영화를 평생의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나 영화를 문화로 받아들이는 이들 모두에게 일종의 축복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허하라”는 이슈는 이런 취지에서도 부각됐지만 이 얘기가 물론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2002년 1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출범하고 2002년 5월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에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했을 때부터 그 길고 긴 논의의 역사는 시작됐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아트선재센터와의 2년 계약 후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고 2005년 서둘러 지금의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로 이사했다. 그러나 전세살이다보니 새로 이사 간 집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올해 3월 만료 예정이었던 허리우드 극장과의 계약이 1년 연장되면 잠시 안정을 찾긴 하겠지만 임대계약 연장은 당연히 임시방편에 불과함을 관계자들 모두 인지해왔다. 불안한 세입자 신세를 청산하지 않고서야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일.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그렇게 촉발됐고, 2007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그 논의는 더욱 진지한 태도를 갖추게 됐다. 특히 영화제 중반 무렵인 지난 1월 31일에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포럼이 개최됐다. ‘시네마테크는 전용관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이 포럼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계획 중인 새로운 전용관의 조성계획과 이 공간의 성격과 내용 등에 대해 밝혔고, 40명가량의 회원 관객들이 참석해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영화의 집‘을 만들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내놓은 전용관 구상은 이렇다. 일단 200~250석 규모로 영화 상영과 기타 공연이 가능한 단관 상영관의 형태를 취한다. 서울아트시네마 측은 “영화를 영화로 보기에 적합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2, 3개관보다는 단관 형태가 좋다고 판단했다. 규모가 커지면 어쩔 수 없이 이벤트성 행사를 열어야해 시네마테크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단관을 지향하기로 했다”고 밝힌다. 그 안에 대형스크린이 설치돼 있고 50명 정도를 수용해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세미나실을 둔다. 관객들의 토론문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허리우드 극장의 열악한 영사실과 다른 넓은 영사실의 필요성도 부각된다. 현재는 상영회 때만 어렵게 구한 필름을 상영하고 반납하는 형태지만, 필름을 지속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아카이브가 만들어진다면, 상영설비 역시 다양한 영화들의 포맷에 맞는 시스템을 갖춰야하기 때문이다.

전용관엔 다양한 형태의 필름을 틀기 위해 16mm, 35mm 등 여러 종류의 영사기를 갖추고 한꺼번에 10여 편을 상영하는 영화제를 열 경우 필름 릴을 여러 개 보관할 수 있는 규모의 넓은 영사실을 마련할 계획이다. 필름편집기를 보유한 필름검색실도 만들겠다는 포부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의 감흥을 간직한 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영화 얘기를 할 수 있게 만든 시네카페도 부대시설로 계획 중이다. 미래의 서울아트시네마 전용관은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나 미국의 필름 포럼, 필름 소사이어티 오브 링컨 센터처럼 박물관이나 전시실, 아카이브를 포함한 화려한 규모는 아니지만 한국적 실정에 맞춰가자는 취지의 구성으로 보인다. ‘영화의 집’으로 일컬어지는 ‘메종 드 시네마’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의 집’이 정확히 무엇일까? 영화 박물관인가? 영화관인가? 영화 학교인가? '영화의 집‘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해야하는 곳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미래의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만으로 그 기능을 다한다 할 수 없다. 교육, 자료 열람이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곳이어야 한다. 과거의 영화들도 보면서 현재의 영화를 토론하고, 미래의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북돋아주는 곳이 돼야 한다”며 ’영화의 집‘의 가치를 설명한다. 문제는 이런 전용관을 어디에 어떻게 세울 것이냐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밝힌 전용관 구상에 따르면 전용관 건립비용은 60~7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 정도 비용은 정부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뜻있는 대기업이 기업이름과 이미지를 내걸고 대폭 지원금을 낼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진흥위원회와의 연계를 통해 서울시와의 면담을 추진 중이다. 서울아트시네마 측은 오세훈 서울 시장과의 만남이 성사된다면 "대중을 이끄는 예술가들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자라고 봤을 때 60~70억의 건축비용이나 대지 마련이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님“을 피력할 계획이다. ”영화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곧 문화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임을 설득하려 한다.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문화 로비스트‘로서의 사명을 띠고 이 만남에 시네마테크의 대변인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2006년 12월에서 올해 2월로 연기된 이 만남은, 그러나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시네마테크 서포터스, 모여라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짓는 게 플랜 A라면,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할 때까지 무사히 혹은 꾸준히 현재의 시네마테크를 지켜내는 것은 플랜 B다. 플랜 B의 어려움은 시네마테크 운영의 어려움과 직결된다. 2006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전국 시네마테크 지원금은 총 3억 7천5백만 원인데, 서울아트시네마가 허리우드 극장에 내는 임대료만 해도 그 액수의 1/3가량 되는 1억 4천만 원이니 운영재정의 열악함은 말로 다 못한다. 한정된 예산 하에서 프로그램을 위해 필름을 수급하고, 번역과 자막작업을 하는 등의 업무를 온전히 해내기란 당연히 어렵다. 절대비교를 할 순 없지만 미국 뉴욕의 대안극장이자 예술영화 전용관인 ‘필름 포럼’의 1년 운영예산이 35억 원임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프로그램 운영과 필름 수급 등을 원활히 하려면 역시 지금보다 더 많은 서포터스가 필요하다.

시네마테크의 ‘붉은 악마’라 할 열혈 서포터스는 몇몇 영화감독들과 배우들의 모임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대표 박찬욱 감독)이다. 올해는 문화적 연대의 차원에서도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미술가들이 참여해 전시회를 연 바 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 외에도 서포터스 그룹을 하나둘 늘려나갈 요량이다. 추후 가장 눈에 띄는 서포터스그룹으로 떠오르는 이들은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감독조합의 감독들이 매달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영화들 중에서 한 편을 골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한다. 그 시작은 2월 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영국 프리시네마 특별전부터다.

첫 타자는 <타짜> 최동훈 감독. 존 슐레진저의 <어 카인드 오브 러브>를 소개하고,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최동훈 감독은 “한때 놀랍게도 한국에 시네마테크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시네마테크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감독조합 차원에서 마음의 응원 이상의 물질적 응원을 하겠다는 공론이 모아져서 참여하게 됐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보고, 관객들과 필름으로 영화를 보는 그 놀라운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최동훈 감독 외에도 감독조합의 봉준호 감독, 김대승 감독, 정윤철 감독, 김태용 감독 등이 적극적인 동참의 의지를 피력했다. 감독조합은 거시적 차원에서 상업적 이유가 아닌 시네마테크 상영을 위한, 혹은 소장가치가 있는 고전영화의 필름과 상영권을 구입해 시네마테크에 기증하겠다는 계획도 논의 중이다. 최동훈 감독은 “지금 한국 영화산업이 위기라고들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문화적 저변을 넓혀야하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시네마테크에서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을 보고 이걸 필름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거의 울다 왔다. 본다는 것의 소박한 기쁨을 영화광이 아닌 일반인들에도 알려주고 싶다. 무식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해외로 유학 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국에 시네마테크가 건재하면 더 이상 유학 갈 필요도 없지 않겠나”라고 말한다. 사실 그렇다. 감독조합의 이런 움직임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존 터투로 같은 배우들과 영화, 음악, 연극, 문학, 분야 기부자들이 참여해 미국 필름 포럼을 후원하는 집단 '서클 오브 아티스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 외에도 더 많은 배우들, 촬영감독조합, 소설가 집단이나 그 밖의 문화예술 단체들과의 연계를 통해 시네마테크 서포터스의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정부와 기업, 투자하라

1948년 앙리 랑글루아가 설립한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2005년 낡은 샤이어궁에서 나와 전용관 격인 건물을 짓고 베르시로 이전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80년대부터 이전 논의가 계속됐고, 90년대 말부터 정부 차원에서 이전 프로젝트가 구체화됐다. 현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 상영을 위한 네 개의 스크리닝 룸이 들어서고, 랑글루아 시절부터 축적된 엄청난 소장품을 보유한 영화 박물관과 전시실, 모든 좌석에서 DVD, CD 등 영상을 볼 수 있는 영상자료실, 그리고 영화 전문가나 관계자들을 위한 라이브러리,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이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전하기 전에는 10만 정도의 관객이 들었지만 이전 후엔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 수와 박물관, 전시회, 자료실을 다녀가는 방문자 수를 포함해 연간 40~50만 명이 다녀가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영화문화의 토양과 역사가 판이하게 다른 한국의 시네마테크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표준모델로 삼을 수는 없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오랜 역사 속에서 이뤄낸 것을 한국의 시네마테크가 속성으로 이뤄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영화를 포함한 더 큰 문화유산으로 여긴 프랑스 정부의 시선은 모델로 삼을 만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정부와 CNC(프랑스영화진흥위원회)가 재정의 80% 이상을 지원하며 나머지 20%는 관객수입으로 채운다. 포럼 데 이마주는 파리 시가 90%의 재정을 지원한다. 프랑스처럼 일찌감치 영화를 문화적 유산으로 인정한 독일의 경우도 시네마테크가 지역의 커뮤니티가 되는 사례가 있다. 독일 전역에서 160개 정도 운영되고 있는 공공영화관 코뮤날레 키노인데, 비영리단체가 재정의 80%를, 코뮤날레 키노가 들어서는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 20%를 지원한다. 국가의 관여나 제도적 장치가 아닌 시장에서의 비상업적 방식으로 영화문화를 활성화한 미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뉴욕영화제를 하면서 상설 시네마테크로 만들자는 의견을 수렴해 1969년 문을 연 ‘필름 소사이어티 오브 링컨 센터’는 극장수입, 잡지 판매수입, 사업수입으로 재정의 50%를, 기부금으로 나머지 50%의 수입을 충당한다. 2006년 미국 연예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지가 ‘뉴욕 최고의 극장’으로 평가한 ‘필름 포럼’은 포드 재단의 저금리 융자와 티켓수입이 재정의 40~50%를 차지하고, 기업 조성금, 개인 기부, 공적 지원 등을 받아 민간과 기업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상 이들 어느 곳도 우리에게 딱 맞는 모델은 없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한국적인 상황을 고려해 우리 스스로 모델을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금으로선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용관 구상이 단순한 구상에 그치지 않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인구 1,200만의 도시 서울을 향한 시네마테크의 호소가 받아들여질 때 부산과 대구 등 지역 시네마테크의 미래도 단단해진다. 그러려면 문화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서울시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 프로젝트를 한류 버금가는 중요한 문화 프로젝트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래의 위기를 두 손 놓고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네마테크는 더 이상 영화광만을 위한 집이 아니다. 영화라는 꿈을 꾸고 보는 유년부터 노년까지의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사진 이휘영

위기의 시네마테크를 구하기 위한 특별한 행사가 지난 1월18일 수요일 밤 종로구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있었다. 18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자회견 및 서울아트시네마 후원의 밤이 함께 열린 것이다. 먼저 영화제 기자회견에는 박찬욱, 김지운, 오승욱, 류승완 감독 등이 단상에 올라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의의 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뒤이어 영화배우 권해효의 사회로 열린 후원의 밤 행사는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김수정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사무국장이 향후 서울아트시네마의 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설명회가 끝난 뒤에는 버스터 키튼의 <제너럴>을 상영했다. 이날 열린 행사는 침체에 빠진 한국의 시네마테크 문화를 일으키자는 의의에서 마련됐다.

“이곳이 없어지면 영화 볼 곳이 없다”

“감독들 중에서 영화 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연계해서 힘이 되어보자 해서 출발하게 된 거다. 나 같은 경우 이곳이 없어지면 영화 볼 곳이 없어진다는 위기감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오승욱), “우리에게도 이런 시네마테크 공간이 있고, 그게 미래의 유산이 될 수 있었으면 하고, 그래서 이곳이 더 좋은 조건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김지운), “보고 듣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영화를 체험한다는 의미에서 이곳은 각별한 의미인 것 같다”(류승완). 각자 감독들은 영화제의 친구들로 이름을 올리게 된 이유와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친구들’의 대표를 맡게 된 박찬욱 감독은 “만약 지금 이 공간이 없었거나, 문을 닫는다면 영화광들은 얼마나 많은 불평을 하겠나? 어렵던 시절에 영화를 공부하느라 고전을 보지 못했다. 지금은 진짜 만학도의 기쁨을 누리는 중이다. 한국의 영화광들은 이곳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줄 만한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네마테크의 올해의 ‘친구들’은 총 9명이다. 감독 박찬욱, 김지운, 오승욱, 류승완, 김홍준, 영화평론가 정성일, 김영진, 배우 황정민, 문소리 등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9명에게 보고 싶은 영화를 한편씩 추천하도록 했고, 각각 <킬러> <벌집의 정령> <석양의 갱들> <충격의 복도> <춘몽> <흩어진 꽃잎> <바람 불어 좋은 날> <올댓재즈> <오프닝 나이트> 등을 꼽았다. 행사 중에는 각자가 추천한 영화 상영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갖는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로버트 알드리치 회고전 때 이 감독들이 내내 극장에 오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 그때가 계기가 되어 이 영화제를 생각하게 됐다. 이들은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는 관객으로서의 친구를 필요로 한다. 2006년 서울아트시네마가 좀더 많은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며 친구들 영화제의 배경이 시네마테크의 대중화를 위한 일환임을 시사했다.

낙원동 이전 이후 관객 40% 감소

후원의 밤 행사장 입구

2002년 개관한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극심한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4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지금의 종로구 낙원동 자리(구허리우드극장)로 옮기면서부터다. 현 2년제 임대계약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김수정 사무국장은 “극장은 장소가 가진 의미가 큰데, 장소를 이전해야 하니까 타격이 컸다”고 밝힌다. 장소를 옮기면서 인지도가 약화됐고, 극장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그나마도 찾던 관객의 발걸음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이다. 예년과 비교해 지난해 관객 수는 40%나 급감했다. 이전을 하면서 든 비용을 포함, 4천만원의 적자를 낸 한해였다. 매년 영화진흥위원회의 국고 지원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김수정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가령, “영진위에서 지난해 3억6천만원 정도의 지원비를 받았지만, 전용관 이전비용 및 임대료, 기기 구입 등에 1억9천만원이 들어갔고, 나머지 1억7천만원 중에서 (번역자막지원사업과 출판지원사업의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주요 사업인 지역순회상영 사업에만 9천만원이 들어갔다”고 밝힌다. 따라서 행사를 할 때마다 외부 지원 조건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예산을 갖고 하는 게 아니다. 행사를 하려면 어디에서 지원을 받아야 할까 고민하는데,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의 영화를 자주 하는 이유도 그곳의 연계 기관들이 지원을 잘해주는 편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에 열린 “일본영화 계승과 혁신:쇼치쿠 110주년 영화제”의 경우도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 2천만원을 지원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총비용 4천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행사였고, 수입은 1200만원에 못 미쳤다. 인건비와 실비를 모두 제하고도 400, 500만원의 적자를 낸 상황이다. 대관 행사까지 포함하면 지난 한해 5만8천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지만, 사실 이 수치는 한회 상영에 10명에서 20여명 남짓한 관객이 썰렁하게 앉아 영화를 보는 안타까운 풍경을 의미한다. 개관 이래 4년 동안 1100여편의 영화를 상영한 영화의 전당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대중화와 재정 확보가 시급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련된 방안은 크게 두 가지, 대중화와 재정 확보다. “아트하우스와 시네마테크를 구분해야 한다. 시네마테크는 이윤 추구를 위한 곳이 아니다. 그것이 아트하우스와의 결정적 차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전체적인 기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김수정 사무국장의 말처럼, 저명 영화인들이 발벗고 나서 ‘친구들’을 자청한 것은 시네마테크를 친근하게 알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친구들 영화제는 향후 1년에 한번씩 친구들을 새로 선정하여 올해와 같은 방식으로 추천 영화들을 받아 상영하며, 마스터 클래스도 가질 예정이다.

올해 9명의 명단 외에도 ‘친구’가 되기로 약정된 사람들 중 권종관, 김성호, 이현승 감독 등은 후원의 밤 자리에도 참석했다. “여기 친구가 되면 버림받은 걸작 <진짜 사나이>를 틀지도 모른다고 해서 올라 왔다”는 권해효의 재치있는 오프닝 멘트로 시작한 후원의 밤 행사는 서울아트시네마의 향후 주요 사업을 프레젠테이션하는 순서로 이어졌고, “(대표) 안 하면 <달은…>과 <3인조>를 상영해버리겠다는 협박을 듣고 왔다”는 역시 재치있는 박찬욱 감독의 멘트로 끝났다.

이날 주최쪽이 발표한 주요 사업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아트시네마의 대중화, 후원을 통한 안정적 재정 확보, 공간의 안정화를 위한 노력, 교육사업 확대, 기본적인 영화들의 확보” 등이다. 친구들 영화제와 같은 행사로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 후원회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재정확보의 틀을 마련하는 것, 확보된 재정으로 지금의 공간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것, 또한 교육 사업과 아카이브 구축에 매진하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영, 교육, 아카이브가 주기능인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쇄신의 의지다. 구체적으로는 개인후원, 기업후원, 영화제 후원 등으로 나눠 후원금을 모집하고, 연령별 청소년 영화교육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기부를 통한 프린트 확보도 추진 중이다.

<씨네21>은 시네마테크의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공동 주최로 ‘시네마테크 후원 릴레이 캠페인’을 2월부터 시작한다. 매주 한명의 영화인이 기부의사를 밝히고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전적 기부를 포함, 프린트, 물품, 강의 제공 등 다양하게 전개할 계획이다. 영화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모두가 동참할 때다.

글 : 정한석   사진 : 서지형 | 2006.01.25

[핫이슈]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허하라!

전용관 없어 2~3년마다 이전 불가피, 필요성 인식 확산 및 각종 지원 시급

2007.02.08
글: 김민경

“잠시 영화 상식 퀴즈가 있겠습니다. 서울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있다, 없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4층에 자리한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해본 이라면 “있다!”고 자신있게 답할 것이다. 50년대 할리우드영화부터 90년대 한국영화까지 일반 영화관에선 결코 만날 수 없는 옛날영화들을 소개해주는 서울아트시네마는 명실상부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그렇다면 왜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김지운, 홍상수, 김홍준, 오승욱 감독들은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이라는 부제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마련해야 했을까. 1월31일 열린 전용관 포럼을 자발적으로 찾은 40여명의 관객이 “시네마테크는 집이 필요하다”며 고민을 나눈 건 어째서일까.

제 역할 위해 공간의 안정성 및 부대시설 확보해야

시네마테크는 일반 상업극장에서 보기 어렵지만 영화사에 의미가 깊은 영화들을 보존 및 상영하는 비영리 민간기관을 뜻한다.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에선 서울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시네마테크 부산, 대전시네마테크, JIFF테크(전주) 등 15개 단체의 연합체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지난 2002년 1월 출범했다.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에서 개관했다. 거장 감독들의 회고전 외에도 독립영화와 실험영화 후원, 청소년 대상의 교육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형태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상영관 임대료 전액과 운영비 일부를 지원한다.

문제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아슬아슬한 셋방살이를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처음 문을 열었던 아트선재센터가 2년 계약 만료 뒤 재계약 불가 통보를 보내자 서울아트시네마는 부랴부랴 새로운 셋방을 찾아 짐을 꾸려야 했다. 지금의 낙원상가에 겨우 간판을 달았지만 세입자 신세는 여전하다. 올해 3월 만료 예정이던 허리우드극장과의 계약은 다행히 1년 더 연장됐지만 안도할 수만은 없다. 시네마테크가 안정된 전용관 없이 2, 3년 단위로 방황하는 현실은 시네마테크의 위상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수정 사무국장은 “겨우 인지도를 확보할 만하면 금방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직도 아트선재센터에 가서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말한다. 건물과 장소가 지니는 의미가 무겁다는 주장이다. 현재 공간이 상영관 외의 부대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계속 지적돼왔다. 시네마테크는 스크린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로서 온전히 기능하기 위해 △ 무대 공연을 겸할 수 있는 200석 규모의 상영관 △ 25평 이상의 서적 및 영상자료실 △ 50석 규모의 소회의실 △ 필름보관실 등의 시설 모델을 제시한다. 상영 전후 관객이 관련 서적을 접할 자료실, 영화를 본 관객이 자연스레 모여 토론할 시네카페 등을 갖춰야 비로소 자생적인 영화 문화의 요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상영회 때마다 어렵게 구한 필름 프린트를 1회 상영 뒤에 반납하는 형편이지만, 상영용 필름을 지속적으로 보관, 재상영하기 위한 아카이브도 필수다. 상영 설비 역시 옛 영화들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상영해야 한다는 시네마테크의 원칙을 종종 좌절시킨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의 사정이 이렇다는 건 사실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해 무르나우 감독 회고전을 위해 독일에서 프린트를 공수받았는데, 우리 기계론 이 영화의 영사 속도인 14프레임을 제대로 재생할 수가 없었다”고 씁쓸한 심정을 토로했다.

양질의 영화문화를 위한 장소로서 인식 확산 필요

넉넉지 못한 운영비도 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6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한 예산은 3억7500만원. 서울아트시네마가 아닌 전국의 시네마테크에 할당된 금액이다. 이중 1억4천만원이 구 허리우드극장의 임대료로 쓰이고 있다. 10여편을 상영하는 회고전 한번에도 저작권료와 프린트 운송료, 자막 번역 비용 등으로 2천만~3천만원가량이 소요된다. 올해는 5천만원가량 지원금이 늘었지만 여전히 관객 수입과 타 영화제 자막 대행 사업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관객 수입에 의존하는 사정 때문에 관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발굴에 주저하게 된다. 운영 주체들이 자신의 경제적 보상을 희생해서 시네마테크를 지탱해가는 현실도 정상적인 풍경은 아니다. 시네마테크는 순수 민간기관이지만 영화의 문화적 가치를 지키고 유통시장의 대항 문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국가 및 비영리기관의 지원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위탁으로 99년 설립된 시네마테크 부산은 자체 운영비 7억원 중 5억원 이상을 시에서 지원한다. 부산시에서 부지를 매입해 건립한 전용관은 160석 규모 상영관과 서적 및 영상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자료실, 세미나실, 편집실 등을 갖췄다. 프랑스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정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이 재정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포럼 데 이마주는 파리시로부터 90% 이상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독일의 코뮤날레 키노처럼 공익 목적의 사단법인이 예산의 80%를, 시가 나머지 20%를 지원하는 형태도 있다. 미국은 기부금과 기업에서 설립한 재단의 조성금이 재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필름 소사이어티 오브 링컨센터와 필름포럼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김보연 대리는 “안정적 공간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현재 독립영화 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입주할 적당할 공간을 물색 중”이라고 밝혔지만, 사업이 막 걸음을 뗀 상태라 가까운 시일에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서울아트시네마쪽은 다양한 선례를 참고하여 서울시의 지원, 기업 후원 등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당장 시네마테크의 존재 의의에 대한 공감대 형성부터 쉽지 않다. 전용관 포럼에 참석한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전국 시도에 박물관, 미술관이 하나씩은 다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예술행사에 쓰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미술관이 없다는 건 창피해하지만 시네마테크가 없다는 사실엔 놀라울 만큼 무관심하다”며 인식의 부재를 한탄했다.

결국 서울아트시네마의 새 집을 찾아주는 작업은 ‘한국사회에 시네마테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번 전용관 논의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영화산업의 눈부신 성장으로 영화가 산업으로 존중받게 되고 제도화된 영화 교육도 생겨났지만, 정작 다양한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기초적인 영화 문화는 퇴색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네마테크가 좋은 평론가와 관객, 감독을 배출하는 인큐베이터라는 인식이 확산되지 않으면 몇몇 활동가가 “독립운동 하듯이” 지속해온 시네마테크의 미래도 더이상 장담할 수 없을 거란 경고를 보낸다. 전용관 문제에서 시작된 이들의 호소는 영화진흥위원회나 문화관광부뿐만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가들부터 영화를 소비하는 일반 대중 모두를 향한 것이다. 우연히 퇴근길에 이곳에 들렀다가 인연을 맺었다는 한 관객은 “원래 영화를 잘 알진 못했다. 여길 집처럼 드나들다 1년 동안 200편 정도의 영화를 보게 됐는데, 내가 30년 동안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이곳은 내게 학교 같은 곳이다. 그런데 학교가 자기 건물도 없고, 교무실, 강당, 운동장 등 필요한 시설도 없다니 슬픈 일이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티켓 한장으로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이 영화 학교를 지켜가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를 향수하는 모든 이들의 능동적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류승완 감독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공간의 안정성이 시급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했다.
=거창한 명분 때문이 아니라 감독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1년 만에 눈에 띄는 양적 성작을 느낀 건 아니지만 관객층이 넓어지고 있다고 본다.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지난해엔 <와일드 번치>와 <분노의 주먹>을 본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비디오로 수십번 봤지만 스크린으로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더라. 그 감정의 크기하며,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가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명화를 화집에서 보고 그 그림을 봤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영화도 그렇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공간의 안정성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방문했을 때 많은 걸 느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회고전이 열렸는데 감독이 직접 큐레이팅하고 내부 디자인까지 참여하며 4개월을 준비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그런 것도 가능할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아쉬웠던 점은 ‘공인된 걸작’에만 관객이 쏠리는 현상이다. 알려져 있지 않은 걸작을 발굴하기 위해 모험을 하는 맛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봤을 땐 ‘이곳에 내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영화가 경쟁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시네마테크는 예술가들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앞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위해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지.
=관객과의 대화처럼 전용관 설립을 응원하는 행사를 계속할 계획이다. 감독들과 돈을 모아 좋은 영화를 구입, 기증하거나 각자의 영화 프린트를 상영용으로 제공하는 것도 토의 중이다.

글 : 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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