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의 질문. "주식으로 사라진 돈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혹은, 정서적으로 무미건조해진 헤어진 연인들의 사랑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르트가 안토니오니를 예찬하며 말했던 것처럼 '일식'에서 안토니오니는 멈추어 서서 오랫동안 대상과 사물이, 인물이 사라질때까지 바라본다. 사물들이 소진될때까지 철저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것. 우리들이 없는 세계를 보는 불안. 이는 진정한 영화(관람)의 모험이다.


일식(1962)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Eclipse(1962) / Michelangelo Antonioni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아내 미즈키는 거실 뒤편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인기척을 느껴 되돌아본다. 한 남자가 서 있다. 남편 유스케다. “몇 년 만이지?” “3년이네요.” 둘의 대화는 이상할정도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이들 사이의 3년이란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속내를 알기 어려운 꽤나 느긋한 부부의 대화다. 그가 3년 만에 되돌아온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이런 상냥한 환대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실제로 3년 전에 사라졌고, 시체는 발견되지 못했지만 죽은 것은 사실이다. 유스케는 자신의 몸이 바다에 있고, 고기들이 몸을 이미 씹어 먹어 버렸기에 시체를 보더라도 자신을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끔찍한 말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내에게 말한다.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그녀는 성을 내지도, 눈물을 보이지도, 와락 달려드는 일도 없이 상냥하게 유령을 환대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해안가로의 여행>은 부부의 재회를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과묵한 대화는 몹시 인상적이다. 그 리듬을 잊기 어렵다.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리듬과는 무연하다. 누구나 자기만이 느끼는 아픔의 리듬이 있고, 이 순간의 리듬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다. 헤어짐을 견디거나 고통을 멀리 떼어내는데 그들 각자의 고유한 시간이 걸린다. 헤어짐의 아픔,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시간은 이곳 생에 걸친 사람들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이 장면은 저쪽 편, 죽음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도 그 아픔의 리듬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3년 만에 되돌아왔다. 유령의 도래에 담긴 비밀은 부활에 있을게 아니라 3년이란 시간의 간격에 있다. 죽은 자가 비록 당돌하게 되돌아오지만(그렇게 보일 뿐, 유령들 각자 재림의 고유한 리듬이 사연만큼 있다), 그러므로 공포나 놀람보다는 재림이 불러오는 것은 맑은 눈물이다. 브레송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여인의 눈에 촉촉이 젖은, 눈가의 물이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순간 말이다. 죽은 자 가운데 되돌아온 남편이 아내를 이끌어 당도하게 될 해안은 말 그대로 물이 가장 많고 빛나는 곳이다(더불어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에서 과다한 물의 이미지가 불러온 정서를 또한 떠올려보게 된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짧은 글에서 밝힌바 있지만, 3.11 혹은 4.16 이후 당분간 우리는 물의 이미지들에서 어떤 죽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안으로의 여행이란 그러므로 물에 도달하는 것이자(그 곳에서 남편은 죽었다고 한다), 밝게 빛나는 물들(눈물)과 만나는 여정이다. 그가 몹시도 아름다운 곳이라 말했던 이곳은 사실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디에나 있을 바닷가일 뿐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 도달하는 순간 관객인 우리는 이 여행을 납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말 아름다운 곳에 도착한다. 모든 것이 빛나는 곳이다. <도쿄 소나타>에 이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몹시도 감동적인 영화를 이 세상에 가져왔다는 것에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도 <도쿄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와 바다가 등장한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 반복에 대해 먼저 말해야만 한다.

 



<해안가로의 여행>은 피아노를 치는 한 소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느린 템포의 피아노곡이 연주되고 있다. 아이가 있는 거실의 넓은 공간은 몇 개의 가구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는 편인데, 이상한 것이 저 뒤편의 바깥으로 향한 창문에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기에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왜 여기서 창문이 열려 있어야만 할까? 문이 열려 있는 것도,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그 자체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이가 있는 거실의 창문이 바람에 흔들릴 정도로 열려 있다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자면 낯설다Unheimlich. 배치의 의도를 작가에게 묻지 않고는 가볍게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이다. 이 부조리한 장면에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구로사와 기요시의 과거 작을 거론하며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는 무례한 이들이 아닌, 여전히 최근작들을 몹시도 좋아하는 드문 팬들일 것이다. <도쿄 소나타>의 몇 장면들이 이 순간 그들에게도 떠올랐을 것이다. 거론하는 <도쿄 소나타>의 첫 장면은 이러하다. 카메라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측면 운동을 하며 움직여 거실을 보여준다. 거실의 바닥 위로 신문지 한 장이 바람에 날린다. 전경의 탁자 위에 놓인 잡지의 몇 페이지가 마찬가지로 바람에 날려 펄럭거린다. 집의 내부로 폭풍우가 밀려오고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더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저 뒤편,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을게 눈에 들어온다. 가정주부인 메구미가 급히 뛰어나와 창문을 황급히 닫고 마루를 걸레질한다. 물끄러미 창문을 쳐다보던 그녀는 다시 문을 열고는 비가 몰아치는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장면에서 열린 창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장면. 학교에서 꾸지람을 들은 소년은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는 우연히 카네코 피아노 교실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가정집 앞을 지나다 열린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된다. 아이가 고개를 돌려 집을 들여다보면 피아노 선생이 한 소녀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아이는 천천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얼마 후, 꼬마는 그 선생에게서 피아노 강습을 받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 피아노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아이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강당의 뒤 편 창문에서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이 어쩌면 <해안가로의 여행>의 첫 장면과 가장 유사하다 말할 수도 있겠다. 열린 창문으로 바깥의 바람이 실내로 들어온다. 반대로 내부의 무언가가 바깥으로 향하게 되기도 한다(<도쿄 소나타>에서 열린 문으로 들어온 정체불명의 도둑에 이끌려 메구미는 해안가로 납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설정을 <해안가로의 여행>의 기이한 여행과 연결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해안가로의 여행>의 첫 시작은 비슷한 구도에서 시작한다. 한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뒤편의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커튼이 펄럭거린다. 잠시 후, 피아노 선생인 미즈키가 등장해 아이에게 천천히 연주할 것을 주문한다. 나중에 소녀의 어머니는 그런 미즈키의 주문을 못마땅해 한다. 조금 밝게, 빠르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는 없느냐고. 이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쯤에 다시 반복되어 나온다. 유스케와 해안가로의 여행 중에 음식점에서 함께 일하게 된 미즈키는 우연히 식당에 있는 피아노 위에 놓인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악보에 손이 끌린다. 무심결에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연주한다. 갑자기 가게 주인 여인이 달려와 그녀의 연주를 제지한다. 허락도 받지 않고 연주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 말한다. 격렬한 제지에 미즈키는 적잖게 놀라는데, 그녀는 슬픈 사연을 털어 놓는다. 그녀의 여동생이 연주하던 곡이다. 동생은 어릴 때 연주를 많이 했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곡을 완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린 나이에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부모는 피아노를 버리자 했지만, 악기가 동생의 몸의 한 부분이라 여긴 그녀는 동생을 기억하며 여태껏 버리지 못하고 있던 터다. 사연을 들은 미즈키는 자기가 그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싶다 말한다. 그러자 응답처럼 갑자기 어린 아이의 유령이 나타난다. 언니는 망연자실 바닥에 쓰러진다. 미즈키는 아이가 곡을 연주하도록 피아노로 이끈다. 아이는 건반 위에 손을 얹고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아마도 예전처럼 실력에 부친 듯 쉽지 않아한다. 연주를 지켜보던 미즈키는 나지막이 소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피아노가 놓인 식당 저 뒤쪽의 열린 창문으로 커튼이 마찬가지로 펄럭거린다. 실내는 잠시 어둠 속에 잠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이 이 세 명의 여인들을 어둠 속에서 감싸고 있다. 유미코는 소녀의 연주를 응시하고, 저 뒤편에서 언니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동생의 피아노 연주를 조용히 듣고 있다. 세 여성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구도가 인상적이다. 상냥한 기쁨, 혹은 부드러운 슬픔의 순간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지금 어쩌면 나루세의 세계에 근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미코의 눈에 촉촉이 눈물이 고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눈물을 반짝거리고 있다. 아이는 연주를 마치고 컷이 되면 장면이 바뀌어 이내 소녀는 사라지고 없다. 어둡던 식당이 천천히 밝아진다. “너의 템포로 연주하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미즈키가 아이에게 주문했던 느린 템포의 연주는 기실은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 리듬이었을 것이다(물론 그 템포는 남편과 사별한 미즈키의 삶의 리듬이기도 했다).




이런 식의 연출은 전형적인 호러영화와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유령이 어떻게 출현하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 반대가 중요하다. <절규>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2007년에도 그는 사다코의 유령처럼 어떻게 기발한 방법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흥미를 느끼는 것은 어떻게 유령이 사라지는가이다. 하늘로 날아갈 것인지, 문을 열고 나갈 것인지, 계단을 타고 내려갈 것인지 등등. 이런 생각은 호러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일찌감치 무효로 하는 설정이지만 더 흥미로운 질문이다. 유령은 이 세계에 갑자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빈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어떻게 유령을 보게 될 것인가. 혹은 유령임을 어떻게 판명할 것인가.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유령과 결별할 것인가. 횡으로 넓은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이런 빈 공간의 여백을 담아내는데 적절했을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달라진다. 유스케는 왜 돌아왔을까. 그것도 3년의 시간이 걸려서. 비록 유스케가 생전 좋아했을 음식을 요리하는 때에 매번 돌아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그의 첫 출현이 그랬다. 마찬가지로 그가 다시 사라진 이후-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즈키 그를 두고 떠났던 일이지만- 다시 그를 불러내기 위해 음식을 요리한다), 이는 개연성이 없는 하나의 설정,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유령은 언제나 빈 공간에 거주한다. 그의 출현은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다만 그를 소환하거나 사라지는 것에 영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프레임이라는 틀(구조물)과 컷 이라는 분리장치다. 영화의 프레임은 가시성의 틀이다. 틀 안에는 물론 보이지 않는 공백들도 담겨진다. 또 다른 하나. 하나의 컷에서 다른 컷 사이의 공백, 어둠에서 유령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가령, 한 컷에서는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다음 컷에서는 소녀는 없고 피아노만 놓여있다. 멜리에스의 영화처럼 트릭필름이라 불렀던 초기영화부터 있던 아주 단순하면서도 오래된 방식이다. 프레임이든 컷의 변경이든, 여기서 유령의 출현과 사라짐은 불가해한 바깥에의 감각을 강렬하게 한다. 프레임 안으로 바깥의 세계를 유입하는 것, 혹은 컷의 바깥으로 유령을 사라지게 하는 것.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유령이란 존재(와 그의 출현과 사라짐)가 인물의 심리와 무연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유령적 존재를 라울 루이즈의 용어를 빌려 ‘정오의 유령’이라 부르고 싶다. 루이즈가 들려주는 기이한 일화. “어느 날 한 사람이 칠레의 거리를 걷다 40년 전의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진부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는다거나, 우유 값이 올랐다거나, 근처 다리에 구멍이 있다던가 하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얼마 후 그가 깨닫는다. 그 친구는 몇 년 전에 죽었던 것이다.” 루이즈는 이러한 존재를 ‘정오의 유령’이라 불렀다. 이는 나쁜 이들에게 복수하는 그림자나 고딕 유령이나, 억압된 것의 귀한이나 악의 있는 힘으로 살아 있는 자에 출몰하는 그런 유령이 아니다.

그가 돌아왔다. 처음에 미즈키는 유스케가 돌아온 것이 꿈인가 싶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깨어난 그녀는 그러나 “나랑 같이 가겠어. 아름다운 곳이야.”라 말한다. 이렇게 되돌아온 자가 같이 가자고 하는 곳은 그러나 피안의 세계가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현실의 세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실의 세계의 다른 곳이다. 그를 돌보아주었던 사람들이 있던 곳이다. 부부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기차를 타고 여행한다. 때론 버스를 타기도 한다. 현실의 수고는 유령이라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유령 유스케는 심지어 길을 몰라 기차역의 승무원에게 행선지를 묻기도 한다. 그들은 때론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여전히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어느 날밤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왜 돌아왔어요? 그는 대답대신 묵묵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다시 묻지만 왜 유스케는 3년 만에 되돌아온 것일까. 그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수백 장의 기도문을 썼던 응답이 되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마치 제사상의 음식처럼 어느 날 우연히 마련했기 때문인가. 사실 그 이유는 미즈키에게 연유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 의문은 미즈키가 아닌 유스케에게 전적으로 속한 것이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아내에게 되돌아오기에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둘의 여행은 아내가 따라나선 그의 사후 3년의 행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녀에게 다가오는데 3년의 시간이 걸렸던 이유를 가늠하는 일은 드라마의 논리에 따라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설명은 그러나 흥미롭지 않다. 영화는 대신 다른 길, 꽤 물리학적 경로를 따라간다. 영화 후반부에 유스케는 시골 작은 마을에서 과학 선생처럼 주민들에게 우주의 기원에 대해 말한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언어로 우주의 기원과 존재에 대해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무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 설명은 드라마의 개연성과는 무연한 영화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자와 함께하는 여행은 단지 둘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유령이면서도 3년을 살았던 그의 행적을, 사후생의 흔적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아내는 그런 다른 생을 받아들인다. 아름다운 곳이 있어, 함께 가지 않겠어. 유스케가 미즈키를 여행으로 안내하는 주문이다. 아름다운 곳. 사실 그들이 찾은 곳은 절경도 실로 아름다운 곳이라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작은 마을들이다. 유스케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그러므로 아직 볼 수 없었던 바깥의 세계다. 평범하지만, 전적으로 유령의 눈에 비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의 세계란 아직 미즈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아직 들리지 않았던, 그러므로 아직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관련된다.


영화의 후반부에 미즈키는 유스케에게 묻는다. “나는 궁금해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이 둘은 함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즈키는 지금 유스케와 같은 것을 보고 있던 것일까? 미즈키는 지금 영화에 고유한 특별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영화란 나 이외의 사람에게도(실은 죽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고유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한다. 존재하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최대한으로 줄여가는 것.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보는 사람이 공유하는, 영화적 체험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안가로의 여행>은 이를 가장 감동적으로 느끼게 하는 영화다.

사족을 달자면, <해안가로의 여행>은 올해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체험하고 싶다. 아직 정식 개봉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그 때에 남은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 더 기쁜 일은 이미 구로사와 기요시가 또 다른 신작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크리피>라는 작품으로, 일가족 실종사건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다. 올 6월에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늘 있었지만) 돌아온걸 환영해요.



 

 

두 편의 '아이들' 영화를 이번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에서 상영한다지난해 베니스 인 서울에서 <용감무쌍 L'intrepido>(2013)을 소개하면서 지아니 아멜리오 감독에 대해 잠깐 언급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그의 작품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바가 거의 없다그의 전작을 소개하는 일은 아직 요원하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아이들 도둑>을 통해 그의 작가적 세계에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베니스 인 서울'에서 소개한 지아니 아멜리오의 '용감무쌍'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  http://cinematheque.tistory.com/434 )

영화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어머니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한 11살 소녀 로제타와 그의 동생 루치아노가 젊은 경찰에 끌려 고아원으로 호송되어 가는 과정 중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힘든 현실에 노출되어 사회에 내던져진 아이들과 그들을 지키려는 경찰이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이 밀라노에서 시작해 시칠리로 향하는 여정으로 그려진다

아멜리오의 작품은 원제가 암시하듯이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떠올리게 한다내용적으로는 데 시카의 또 다른 두 편의 영화 <아이들이 보고 있다 I bambini ci guardano >(1942) <구두닦이 Sciuscià>(1946)와도 어울린다네오리얼리즘과의 연계를 따지자면 밀라노를 배경으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루키노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현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며비전문 배우의 기용과 로케이션의 활용드라마틱한 구조를 넘어선 보고와 산책의 형식이 분명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유산을 느끼게 한다. <자전거 도둑>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버지와 그를 따르는 아들의 교감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경찰 안토니오와 두 아이들의 감정의 교류가 영화 후반부의 가장 중요한 정서이다물론 차이는 있다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에서 자전거는 모든 이들이 원하는노동자의 삶에서 중요한 물질적 수단이다반면아멜리오의 영화에서 자전거를 대신한 아이들은 물질적 대상도 아니며 반대로 모두가 원치 않는 사회가 버린 이들이다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들을 어떻게 포착하는가이다유일하게 도둑질의 대상이 되는 것이 영화 후반부프랑스 여행객의 손에 들린 카메라인 것은 사소한 설정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이 카메라로 프랑스 여행자들은 소녀의 얼굴을 몰래 촬영했고이들은 나중에 소녀가 매춘에 가담했던 사실을 알고는 동정을 표한다로제타는 이를 거부한다

 

 

 

 

밀라노에서 시작해 시칠리로 향하는 로드무비의 여정은 세 가지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영화는 도시에서 바다로, 그리고 열린 공간으로 향한다. 이러한 공간적 이전은 물리적 이전이자 동시에 정신적 이전, 영혼의 순례에 가깝다. 이는 무엇보다 출발점에서의 아이들의 상태에서 그들이 정신과 영혼을 회복해가는 이야기의 설정이다. 아이들이 놓인 환경과의 관계가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에서 열린 자연적 환경으로 확장되어 간다. 그리하여, 여름빛으로 가득한 해변가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아이들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이 순간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게 될 장면이다. 이는 처음, 밀라노의 아파트, 범죄가 저질러지는 풍경과 사뭇 다르다.

둘째, 이 여정은 그들의 기원, 즉 시칠리가 고향인 그들의 고향, 근원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안토니오의 고향 또한 시실리 근처, 칼라브리아다. 이들이 시실리 해변에서 휴양을 하는 것은 그러므로 의사 가족적 관계, 즉 정서적 연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해변은 또한 그녀가 고민하던 문제, 즉 영혼의 순화와 연결된다. 일종의 제의적 여정이다.

셋째, 동시에 이 이동은 이탈리아의 역사, 말하자면 전후 이탈리아에서 시칠리 등 남부에서 북부 공업지대 밀라노로의 이민의 역사, 이주의 역사를 반대의 방향으로 거슬러 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여정은 90년대의 시점에서 이탈리아 역사의 과정을 거슬러 가는 것이다. 덧붙이지만, 아멜리오 감독 또한 칼라브리아 출신으로, 1962년에 로마로 이주해 텔레필름의 작업을 거쳐 1982년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여정은 그러므로 감독의 자전적 여정과 닮았다.

그렇다고 공간의 이전이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다. 여정과 더불어 이탈리아 전역에 놓인 사회의 문제가 겹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밀라노의 범죄적 환경, 로마 테르미니역 근처의 노숙자들, 집시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로제타는 여기서 노숙자의 술을 한잔 몰래 훔쳐 마신다. 게다가 불관용은 도처에 있다. 안토니오의 고향, 칼라브리아에서 친척들이 보이는 불관용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아이의 과거 사실을 폭로하는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들. 사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갈 곳이 없다. 칼라브리아에서의 불관용은 마찬가지로 동시대, 알바니아인들의 이탈리아 남부로의 대량이주의 역사와도 맞물린다. 1994년작인 <라메리카>는 알바니아 이민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모든 뛰어난 영화가 그러하듯 우리는 다른 잠재성의 순간들을 지켜볼 수 있다. 가령, 아이들의 만남. 그들만의 방식의 시선의 아름다운 교환의 순간이 있다. 가령, 가령, 아이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수녀원에서 동생 루치아노가 천천히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교실을 둘러보고 병원에 혼자 누워 있는 여자아이인지 남자애인지 알 수 없는 병약한 아이와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병실의 아이는 손거울을 보며 혼자 노래를 부른다. “나는 아주 작은 물고기를 보았네. 지독한 감기에 걸렸고 더러운 물에 병들었지만, 병원에는 그 물고기를 위한 방이 없었다네.” 루치아노는 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도둑과 연결되는 것이 카메라인 것은 꽤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본다, 만난다, 마주한다와 대비되는 것이 카메라와 연결된 사진의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처음 잡지에 실린 아이들의 모습이다. 로제타는 사진을 극도로 거부한다. 보도에는 아이들에 대한 묘사의 추악함이 있다. 영화는, 원래 실제로 신문에 실린 십대 매춘에 대한 아이의 사진에서 촉발했다. 영화에서 잠깐 잡지의 커버가 나오기도 한다. 아멜리오의 시도는 아이의 존엄을 회복시키고 그녀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돌려주는 것에 있다. 그것이 이 여정의 진정한 목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여정은 아이로 향한 관음증적 시선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로제타는 단지 매춘을 했다는 과거적 사건에 사로잡혀 있는 것만이 아닌 잡지의 퍼블릭한 이미지에 감금되어 있다. 관음증의 시선, 불관용의 시선, 매스미디어의 퍼블릭한 선정적 시선에서 벗어나 감독은 아이의 (도둑질 당한)이미지를 되돌려주려 한다. 아이에게(혹은 아이를 바라보는) 정당한 이미지를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러니 사회적 차원의 해결이 결말로 제시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을 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로 향한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불관용의 시선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두 아이가 진정으로 함께하는 순간을 영화의 마지막에 보게 될 것이다.





소마이 신지의 숀벤 라이더는 아멜리오의 영화와는 다른 방향에서 아이들을 담아낸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보다는 그에게는 몸짓을 그려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목할 만한 롱테이크에서 요점은 테크닉이 아니라(물론 타무라 마사키의 촬영은 그 자체로 뛰어나다 할 수 있다. 그는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의 촬영감독이자, 오가와 신스케의 산리즈카 시리즈의 다큐를 촬영했던 장인이다), 그 긴 지속에 담긴 아이들의 실존이다. 서툴러도 상관없다. 흔들려도 상관없다. 움직임의 지속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얼굴을 분별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는 개별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몸짓들, 움직임의 긴 여정을 무엇이라 말해야만 할까?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지리적 여정을 거듭하고, 유괴당한 아이를 찾겠다지만, 이 여정은 그 목표와는 상관없이, 가능한 방향의 모든 흔적들을 탐사한다. 부모와 가족이 사라진, 마찬가지로 아이 같은 야쿠자 어른들은 어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없는 세계를 통과해나간다




영화의 긴장은 매번 아이들의 서투른 분노에서 나오는데, 이는 80년대 동시대 액션의 설계와는 사뭇 다른 길이다. 가령, 숏들의 연결에서 나오는 폭력의 리듬을 대신하는 것이 그 반대의 몸짓이라 할 수 있다. 소마이 신지의 관심은 인물의 실존, 그가 놓인 상황, 그리고 시간을 거듭해가는 변형의 과정, 말하자면 변형의 지속을 담아내는 것에 있다. 클로즈업과 컷 어웨이, 혹은 명상적 장면들 대신에 끈질긴 롱테이크가 있다. 이는 우아한 안무와는 사뭇 다른, 장애물을 뛰어 건너야만 하는 허들 경주자의 몸짓처럼 끈질기게 이어가는 액션이다. 서투르지만 어떻게든 이어가는 지속의 몸짓. 여기에 예기치 않은 행동들과 갑작스런 중단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왜 아이들은 그렇게 뛰고 달리는가? 미지의 무엇이 부르는 육체의 뒤틀림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은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다른 쪽으로 몸을 움직여 간다. 컷의 반응에서 나오는 액션 게임은 그러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부와 외부의 게임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로 이끌리는 몸의 움직임을 그려내야만 한다. 그리하여 요코하마, 아타미, 나고야, 오사카로 향하는 지리적 여정 외에 장소 밖의 부름, 공간의 흔들림이 있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중단의 신호에도 장애물을 넘어서서 가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놀랍고도 고통스런 경험이다.

납치된 아이를 찾아가는 모험이 전시하는 것을 이렇듯 아이들의 특별한 힘의 실천이다. 영화의 몹시 감동적인 순간은 강둑에서 벌어지는 액션신이다. 수차례 아이들이 물에 빠지고 뛰어내린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자꾸 던지고 내던진다. 물의 흔들림과 나무들의 진동이 있다. 도달하고, 달리고, 안 빠지려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총격의 순간이 있다. 이 경험이 그들을 변형한다. 통과의례의 긴 시퀀스를 거쳐 그들이 살아남는 것은 결국, 살아가는 것의 신비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살아가야 한다. 2014년, 4월 이후,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벌써 열번째다. 한 여름 시네바캉스를 처음 시작한 것이 2006년의 일이다. 그 해 7월 25일, 개막작은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였다. 무려 40편의 영화를 쉬는 날 없이 하루에 네 편씩 한달간 상영했다. 에릭 로메르의 8편의 바캉스영화들, 불멸의 스타전, 특별전:비시 정권하의 프랑스 영화, 뮤지컬 영화걸작선, 공포특급, 마스터즈 오브 호러, 필름 콘서트, 씨네키드, 시네클래스 등의 행사가 열렸다. 시네바캉스 열 번의 포스터들을 되돌아보고 있으면 마치 가지 못했던 여름 휴가의-사실 그 십년간 영화제 때문에 여름 휴가를 갔던 적이 없기에-기억들을 떠올리는 것 같다. 이제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여름 바캉스를 떠난다. 2006년 첫 시작을 알렸던 개최의 변을 떠올리면서.

한 여름의 영화여행 - 시네바캉스를 시작합니다!
7월 25일부터 시작하는 ‘시네바캉스 서울’은 서울아트시네마가 해마다 5월에 개관을 기념해 개최하던 ‘시네필의 향연’을 좀더 대중적으로 확대한 행사입니다. 작품수를 약 60 편으로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기간도 늘어났고 동시에 영화감독들의 연출특강과 교육행사,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키드’, 그리고 영화와 음악이 함께하는 ‘필름콘서트’ 등의 다양한 행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영화애호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편하고 자유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시네바캉스 서울’은 기존의 거대한 영화제들과 비교하자면 아주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치러지는 영화제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함께 보고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길 원하기에, 다른 호사스런 행사는 없습니다. 레드 카펫도 필요 없고 개막을 알리는 떠들썩한 이벤트 공연도 없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혹은 여행을 떠나듯 극장을 방문해 해변의 폴린느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재회하는 장면을, 폭풍우 속의 장 가뱅과 미셸 모르강을, 매혹적인 자태의 마릴린 먼로와 도미니크 산다를 스크린 위에서 만나며 토드 브라우닝, 사무엘 풀러, 브라이언 드 팔머, 존 카펜터, 다리오 아르젠토와 함께 공포의 휴가길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축제를 영화로 떠나는 ‘바캉스’라 칭한 것도, 이 단어의 본래 의미인 무언가로부터 자유롭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제도화된 영화, 시간의 속박에 갇힌 영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다양한 영화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바캉스는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 아니라 한 달간 지속하는 긴 여행입니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그동안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열정적인 관객들과 새롭게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의미 있는 만남의 기회가 생기기를 원합니다.

영화는 장소의 기억과 결합한 대중문화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참된 기쁨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대형의 스크린에서 우리들은 감각, 감정과 감동을 경험하며 추억의 일부가 되는 다양한 세계의 기억과 만나게 됩니다. ‘시네바캉스 서울’은 그런 대중의 기억이 간직된 다양한 영화들을 극장에서 새롭게 다시 만나는 행사입니다. 여행은 매번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대감과 만남을 도모하는 용기를 제공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와 함께 즐거운 휴가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2006. 07.25.



우리들의 환대 Our Hospitality

버스터 키튼은 영화가 탄생한 1895년에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에 서커스와 마임에 기원한 무성영화의 근본적인 장르인 뷔를레스크(익살희극)의 창시자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유성영화가 도래하던 2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잃기 시작해, 30년대 이후에는 할리우드에서 완전히 망각되었다. 1933년 이후에 그는 대략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고작 <선 셋 대로>나 <라임 라이트> 정도였을 뿐이다. 이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그저 미미한 조연에 불과했다.

키튼의 영화는 그러나 1950년대에 새롭게 발굴됐다. 하나의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1954년 어느 여름밤. 버스터 키튼은 아내와 함께 <제너럴>이 상영되는 L.A.의 코로넷 극장을 우연히 방문했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자신의 옛 영화를 결코 보려하지 않았던 키튼이기에 이 방문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극장의 지배인이었던 레이먼드 로하우어는 키튼이 극장을 방문한 것에 놀라 그에게 무성영화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키튼은 자신의 차고에 몇 편의 영화가 있다며 필요하다면 가져가라고 그에게 말했다. 다음 날, 키튼의 집을 방문한 로하우어는 그의 주차장에서 <세 가지 시대>, <전문학교>, <셜록 주니어>, <항해자> 등의 질산염 프린트를 발견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미 파산한 ‘버스터 키튼 프로덕션’의 유실된 영화들이 수집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할리우드 무성영화의 80% 이상이 소실되었음에도 키튼의 영화는 이례적으로 보존되어 1950년대 미국의 극장에서 다시 새로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영화는 6-70년대에 새롭게 조명되었다. 1965년에는 사무엘 베케트의 <필름>에 출연했고, 1968년에는 케빈 브라운로우의 무성영화에 관한 인터뷰책 'The Parade's gone by'가 출간되었고 같은 해 '그레이트 스톤 페이스'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이번 특별전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5년(마찬가지로 키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던 해)에 다시 화려하게 키튼은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1995년. 키튼의 탄생 100주년의 해에 ‘버스터 키튼의 예술’이란 세 박스 세트의 DVD가 출시되었다. 11편의 극영화에 19편의 투 릴 영화들이 DVD에 수록되었다. 우리가 대중적으로 키튼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DVD의 출시 덕분이었다.

버스터 키튼의 회고전을 처음 개최한 것이 이미 2004년의 일이다. 당시 레이먼드 로하우어의 방대한 무성영화 컬렉션-700편-을 인수한 곳이 두리스 코퍼레이션으로 이 곳의 팀 란자 씨의 협조로 이번에 상영하는 영화들 대부분을 필름으로 상영할 수 있었다. 당시 31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방대한 두리스 필름의 무성영화 컬렉션이 다른 곳으로 팔리면서 한동안 대규모 회고전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이 십년이 지나 다시 한번 큰 규모의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2004년을 기억하며 그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터 키튼에 대한 "우리들의 환대"를 표하고 싶다. 그는 최선을 다해 불가능한 일을 완수하고 고독한 형상의 이미지를 남기고 사라졌고, 다시 우리들에게 나타났다. 그는 형편없는 패가 들어와도 태연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새로운 리듬으로 사랑하고 이 세계에서 가장 쿨하게 생존했다. 댄 칼라한이 했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그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단지 우리들의 웃음이었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Welles after Welles 

 

 

 

 

 

오슨 웰스는 자신의 얼굴과 몸을 훼손하는 데 꽤 열중했던 작가다. 그는 의도적으로 몸을 부풀리고 과도한 분장을 하거나 앙각촬영으로 자신의 몸을 덩치크게 표현하려 했다. 그는 비만에도 무관심했다고 한다. <아카딘 씨>에서 그의 몸은 존재만으로도 인물들을 압도한다. <악의 손길>에서 그가 처음 등장할 때 마르린 디트리히의 놀란 표정은 잊기 힘들다. 미국의 일부 평자들은 그가 후기에 텔레비전이나 B급 영화 등의 저급한 역에 (젊은 웰스의 건장한 몸과 비교해) 예의 비만의 몸으로 출연했던 것을 한탄했다고 하는데,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만은 아닌 어떤 의도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그는 십대부터 조숙한 재능을 발휘했고,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당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도 누리지 못했던 편집권을 얻어 <시민 케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의 젊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후 60년대의 뉴웨이브 영화들처럼) 젊음을 찬양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는 젊음보다는 일찌감치 이미 노년을 연기했다. 노년의 권력과 젊음의 열정 사이에는 심각한 거리가 있고 웰스는 이를 처음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설은 제목에도 이미 나타나는데, 케인이라는 거대한 권력자와 시민이라는 차이가 이 영화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로즈버드’는 그러한 차이를 연결하는 마법의 열쇠이지만 <시민 케인>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웰스는 미국이 자신을 존중했던 것이 전적으로 젊음을 요구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라 말한 바 있다. 젊은 미국은 동어반복처럼 항상 젊음을 예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그 젊음을 지속시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웰스의 진정한 저항은 그러므로 젊음을 일찍부터 부정하거나 그것에 도전하려 했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 생각엔 젊음이라고 치기를 부리는 것보다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젊음의 저항처럼 보인다. 웰스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 그가 끊임없이 자신을 비대하고 늙은 모습으로, 혹은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젊고 잘생긴 얼굴을 가리고 의도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출연하려 했다. <심판>에서 웰스는 꽤 의식적으로 얼굴을 숨기고, 11명의 다른 캐릭터의 목소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속임수도 즐겨 했다. <오슨 웰스와 일하며>(1994)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웰스가 마술과 장난, 속임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정말 뛰어난 마술사였다.

 

 

 

말년의 걸작 <거짓과 진실>(1974)은 그런 웰스의 거짓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천재적인 그림 위조범, 즉 ‘거짓’이라는 책을 쓰고 하워드 휴즈의 가짜 자서전을 쓴 클리포드 어빙의 이야기에 웰스 자신이 전 미국인을 상대로 속임수를 썼던 <우주전쟁>의 라디오극 에피소드를 더한다. 이 영화에서 웰스는 “나 같은 사기꾼은 그러나 사실 진실을 추구합니다. 이걸 건방지게 표현하자면 예술이라 할 수 있죠. 피카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고요”라고 말한다. 그는 젊음 뒤의 노년, 혹은 눈에 보이는 세계 뒤편의 다른 책략과 연극을 영화로 다뤘던 작가다. 그가 연극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이런 다성성의 세계에 깊이를 더한다. <시민 케인>이 뛰어난 작품임에도 여전히 웰스를 <시민 케인>의 작가로만, 그의 젊은 시절과 혁명적 데뷔를 찬양하는 것에 머무는 일은 그래서 아쉬운 일이다. 이번 ‘오슨 웰스 백 주년 회고전’에서 이른바 웰스 이후의 웰스에 더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 그의 노년성이야말로 영화적 젊음의 모습이었다. 웰스에 관한 뛰어난 평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이렇다. 웰스는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제대로 발견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재발견의 대상이 되는 작가였다. 여전히 <아카딘 씨>가 대관절 뭘 말하는 영화인지(고다르는 <필름 소셜리즘>에서 아카딘 씨의 비밀 리포트에 대한 궁금증을 보여준 바 있다), <심판>이 현대영화가 새로 등장하던 60년대의 시기에 웰스의 어떤 태도를 담고 있는 작품인지, 왜 <불멸이 이야기>가 오슨 웰스의 '완벽한 영화'인지, 혹은 <심야의 종소리>가 왜 주목할 만한 작품인지를 말하는 이들은 드물다. 물론 쉽게 말하기도 어렵다. 웰스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웰스의 회고전 방문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욱)

 

 

 

예전부터 내가 쓰는 메일이나 트위터, 페이스북의 아이디는 대체로 Hulot이다. 버려진 숲처럼 방치되고 있는 이 블로그의 이름도 “Cinematheque de M.Hulot”이다. 가끔 원고를 청탁하는 기자나 강의를 의뢰하는 분들에게 전화로 메일 주소의 알파벳 단어를 또박또박 불러줄 때마다 다시 환기되곤 하는 이 이름은 대체로 '훌로' 혹은 '휠롯'으로 불리곤 했다. 정확한 프랑스식 발음은 윌로이다. 시네필들은 대체로 알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괴상한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물론 나 또한 그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엘르 잡지의) 에디터의 질문을 받기 전까지도 내가 왜 윌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90년대 초에 처음 비디오로 그를 만났던 것 같다. 내가 쓸데없이 본격적으로 영화에 빠져들던 때이다. <윌로씨의 휴가>라는 작품이었는데, 발랄하긴 하지만 큰 웃음을 만들기엔 재주가 없는 프랑스에서 백년에 한 번 나올까 싶은 자크 타티라는 영화감독이 1953년에 만든 작품이다. 윌로는 타티가 연기한 그의 분신이다. 영문자막이 들어간 미국판 비디오였는데, 사실 자막이 필요 없는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에 가까운 영화였다. 그 당시 나는 새벽에 두 세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을 의식처럼 치르고 있었는데, 불안한 정신을 추스르려 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해야 했고 할 일을 찾아야만 하는 낮의 일들은 대체로 피곤했고, 때마침 누나가 구입한 비디오플레이어 덕분에 밤에는 눈을 뜨고 꿈을 꿀 수 있었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지만, 코미디와 뮤지컬이 새벽의 주요 목록이었다. 내 앞의 미래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계획 없는 삶에 그래도 가급적 진지한 영화는 새벽에는 피했던 탓이다. 그때 헤매었던 비디오 무덤사이로 윌로라는 아저씨가 나타났다. 어릴적 이끌렸던 배우들의 목록은 많았지만 성인이 되어 무심하게 매혹을 느낀 첫 아저씨였다. 

 

그는 시동이 종종 꺼지고 소리만 요란한 20년대산 구식 아밀카를 몰고 남들처럼 바캉스를 떠나는 평범한 아저씨로 나타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이다. 그는 외톨이지만 그렇다고 채플린처럼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떠나는 방랑자는 아니다. 해변을 찾는다고 여자를 꼬드기거나 낭만을 즐기는 식의 그 흔한 동기도 없다. 반겨줄 친구나 함께 시간을 보낼 애인도 없다. 남들처럼 그도 휴가를 떠났을 뿐이다. 이름도 없고 약간은 격식 차린 '무슈'라는 표현이 앞에 붙거나 '나의 삼촌' 같은 식의(그 다음의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말할 때 호명되는 식으로 등장한다. 사실 그는 언제나 타자의 눈과 말을 빌려 존재성을 얻은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이다. 내면의 실체가 불분명한 존재. 한 여름 바캉스에 그가 처음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캉스의 '바쿰'이라는 어원의 의미가 그러하듯, 그는 텅 빈 존재이다.

 

윌로는 불평 없는 과묵한 아이이거나 철없는 어른이다. 여기에 축복과 고독이 교차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로 놀러왔지만 휴가가 끝나면 다시 부모의 손에 강제로 학교나 집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바캉스에서 탄생한 월로는 되돌아갈 곳이 없다. 그가 떠났던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윌로는 매일 바캉스를 떠나거나 즐기는 축복받은 아이이자 아직도 바캉스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여전히 해변에 머물러 있는 미련한 어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모두가 떠난 해변에서 휴가가 끝났다는 사실을 모른 채 계속 머물러 있다. 내가 그에게 속절없이 매혹됐던 이유다. 내 젊음의 축제는 끝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에게서 나는 어둡지만 위안을 얻을 그림자를 보았던 것이다. 얼마 후 내가 발을 들이게 된 영화라는 세계는 휴가철의 해변처럼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됐지만, 나는 축제가 끝난 해변에 있는 윌로처럼 오래된 극장에 앉아 있다. 염원하던 일이기도 했다. 윌로는 내가 매혹에 빠진 그림자, 나의 영무자影武者이기 때문이다.  /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엘르 잡지 에디터가 '내가 매혹된 대상'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한 것에, 썼던 글이다.

 

 

 

야스미 아흐마드의 <묵신>

 

말레이시아 영화계의 ‘대모’라 불린 야스민 아흐마드는 단 6편의 청춘송가와도 같은 보석 같은 작품을 남기고 2009년, 5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그녀의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0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우리 시대의 아시아 영화 특별전’에서 그녀의 유작인 <탈렌타임>(2009)을 상영했었다. 말레이시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예회를 무대로 벌어지는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인데, 아무도 없는 교실에 빛이 들어오고 하나씩 불이 꺼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명멸하는 빛과 시간의 무상함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야스민 아흐마드의 영화는 주로 민족이나 종교의 차이를 넘은 연애를 드라마의 소재로 다뤘는데 <묵신>도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묵신>은 오키드라는 소녀의 여러 생애를 다룬 ‘오키드 4부작’의 마지막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 4부작의 시간 순서는 제작 순서와는 다른데, <묵신>은 4부작의 대미를 장식하지만 극 중 이야기의 시간으로는 가장 빠른 유년기의 사랑을 그린다(가령, 극 중의 시간축은 <묵신>(2006), <가는 눈>(2004), <라분>(2003), <그부라>(2005)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는 우정과 사랑의 틈새에서 흔들리는 유년기의 감정의 혼란, 소녀 시대의 첫사랑을 그려내는 감상적인 필치가 모든 평범한 장면들에 묻어 있어 세심한 관찰을 요한다. 아니 관찰이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눈길이 장면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만큼 사랑스럽다. 야스민 아흐마드는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에게 어느 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이 90분 동안의 상영시간 동안 지속된다. 무엇보다 소녀에게 갑자기 발생하는 운명의 만남, 사랑의 순간을 지켜보는 매혹이 있다. 갑자기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빗속의 춤, 평범한 축구 경기, 벌판에서의 연날리기, 그리고 자전거를 함께 타는 순간들이 모여 작은 우주를 형성한다. 이렇듯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지나가 버린 작은 것들의 경험에서 소중한 시간들을 되찾게 한다. 무대가 되는 말레이시아의 다민족적, 다문화적 양상이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관의 충돌, 계층적 차이, 언어적 차이(가령, 오키드는 영국 유학의 경험을 지닌 어머니 아래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중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중국계 학교를 다닌다)로 부각되지만, 그리 심각한 편은 아니다. 영화는 이러한 모순과 갈등보다는 유년기의 첫사랑이라는 테마에 보다 집중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독의 상냥한 눈길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작품이기에, 설명은 그 다음의 일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지배의 공허한 영광

-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빅토르 에리세, 아키 카우리스마키, 페드로 코스타의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






포르투갈의 북서부에 자리한 구시가지 기마랑이스 지구는 포르투갈의 발상지라 불리는 최초의 수도이다. 2012, EU는 이 지구를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했고 1년간 집중적으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는 이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제작됐다. 감독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러했다. 1143년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된 후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거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따라 유럽의 영화계를 대표한 네 명의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 북유럽 핀란드 출신이면서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 그리고 포르투갈을 대표해 페드로 코스타,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가 참여했다.


카우리스마키의 <식당 주인>은 기마랑이스 거리의 한 식당 주인의 하루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언제나 그러하듯 카우리스마키는 과묵하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그린다. 언뜻 <어둠은 걷히고>의 식당이 떠오르는데, 그 영화에서는 비즈니스의 정글의 법칙에서도 오래된 고객과 가게의 일원들 간의 연대감이 돋보였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관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관계는 절연됐고 정서적 차가움이 더하다. 그의 가게에는 종일 손님의 발길이 드물다. 가게를 닫고 저녁에 댄스클럽에서 춤을 함께했던 여인에게 그는 마음을 전하려 하는데 그녀가 기혼임을 알게 되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카네이션이 거리에 버려진다. 라디오로 들리는 소리들은 2012EU의 전례가 없는 헝가리에 대한 경제 제제조치의 내용들이다. EU는 당시 재정적 감축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었다. 간혹 축구경기의 중계방송 소리도 들려온다. 이 고독한 정서에 다른 기운을 불러오는 것은 파두의 노래다. 블루의 컬러 또한 여전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 남자는 그럼에도 길거리의 고양이를 위해 문 앞에 우유접시를 놓는다. 이 단순한 행동이 묵묵히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물론 그가 낮에 식당에서 준비한 어부를 위한 스프에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던 것처럼 고양이 또한 등장하지는 않는다. 남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이다. 이 막연한 기다림이 마음을 울린다.





빅토르 에리세의 <깨어진 창문>은 기마랑이스에서 조금 떨어진 방치된 옛 방직 공장을 무대로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영화다. 일찍이 이 공장에 근무했던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 명씩 옛 공장의 식당을 배경으로 과거 그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1845년에 창업한 이 공장은 1990년에 경영위기로 2002년에 문을 닫았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의 소중한 추억이자 고된 노동의 괴로운 경험들이다. 14세에 일을 시작했던 한 여성은 기계의 소음 때문에 고막 이식 수술을 했는데, 이제 56세라며 인생이 끝났다고 토로한다. 영화 마지막에 한 남자가 아버지의 일을 회상하면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데 그 곡에 맞추어 식당 벽에 걸린 거대한 크기의 사진에 보이는 무수한 익명의 사람들의 얼굴이 화면을 장식한다. ‘포르투갈에서의 영화를 위한 테스트라는 작은 제목이 영화의 시작 부분에 나오지만 평범할 수도 있는 장면이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을 불어오는 이 작품을 에리세의 가벼운 습작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정복된 정복자>는 기마랑이스 지구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담은 가장 짧은 단편이다. 기마랑이스 지구의 거리와 광장, 엔리케스 아퐁수의 동상과 그곳을 관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를 이룬다. 정복자의 동상을 올려다보는 쇼트에 모든 관광객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대조시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페드로 코스타의 <스위트 엑소시스트>는 그 자체만으로는 기마랑이스 지구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영화다. 그는 기마랑이스라는 주제로 얼마나 기마랑이스라는 특정한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포르투갈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시험한 듯하다. 코스타는 대신 1974년 포르투갈의 독재정권에 대항해 젊은 장교들이 궐기한 카네이션 혁명에 대해 말한다. 식민지 카보베르데의 이민자 출신인 벤투라가 이번에도 주인공이다. 그는 이 쿠테타에 참가했다 숲속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에 입원한다. 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청동의 페인트로 칠한 (사람인지 역사의 유령인지, 혹은 기념비적인 조각인지 모를)병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던 코스타는 74년의 카네이션 혁명의 체험이 벤투라와 같은 이민자들에게는 아프리카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고 말했었다. 혁명에의 체험이 달랐던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역사적 순간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감정, 역사, 특별히 제목처럼 공포의 체험을 전한다. 영화의 제목 스위트 엑소시스트1974년에 발매된 커티스 메이필드의 앨범에서 따온 것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알랭 레네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90년대 초, 문화학교서울의 비디오테크에서 어렵게 만났던 그의 영화 덕분에 나는 영화에 매혹되었고 이 세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강박관념들: <밤과 안개>의 시체들, <세상의 모든 기억>의 (감옥)도서관, <히로시마 내 사랑>의 '그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라 말하는 기억의 괴로움에 사로잡힌 엠마누엘 리바, <지난 해 마리앵바드>와 <뮤리엘>의 돌아온 자들과 만나는 맘각으로 고통받는 델핀 세리그. 곤경에 처한 '우리들'. 알랭 레네에게서 내가 배웠던 것은 영화가 결국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레네는 영화의 동력이 그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장소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가였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의 모든 기억과 마주한 우리들의 변호인이었다. 아래 글은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를 기다리며 '씨네21'에 썼던 글이다. 하지만 결국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 소개된 <라일리의 삶>이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우리들은 모두 레네의 신작을 기다린다


본디 레네식의 만남이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인생이 기이하게 근거리에서 교차하고 평행해 새로운 삶의 리듬과 가능성을 창조하는 것에 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알랭 레네의 만남이 그랬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 출연한 엠마누엘 리바와 90세를 넘기고도 신작으로 칸을 방문한 알랭 레네의 우연한 조우. <히로시마 내 사랑>으로 둘이 칸을 찾았던 것이 1959년의 일이니, 실로 50년만의 일이다. 이들의 과거를 추억하고픈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그들에 대해 본 것이 없다. 다만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제목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의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대사가 떠올랐을 뿐이다. 물론 이 두 영화는 관계가 없을 것 같다.


‘씨네21’의 칸 영화제 중간리포트에서 정한석 기자는 주저 없이 홍상수의 영화와 알랭 레네의 신작을 최고의 영화로 손꼽았다. ‘한 노감독의 힘없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사유의 찬란한 결과물’이 선정이유였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전작 <마음>과 <잡초>의 파격이 여전하다면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 이래로 우리는 히로시마와 마리앵바드, 혹은 뮤리엘의 레네에게서 멀리 떨어진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행히 신작이 개봉예정이라는데, 이게 무슨 유언장처럼 보인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의 대략의 이야기는 이렇다고 한다. 연극 연출가 앙트완느 오투악이 사망한다. 그는 마치 유언처럼 자신의 연극에 출연했던 과거의 배우들을 성에 모이도록 한다. 이들은 모두 <에우리디스> 연극을 함께 했던 배우들이다. 그들은 거기서 거실의 스크린에 상영되는 젊은 배우들이 새롭게 번안한 연극을 보게 되는데, 어느 덧 스크린의 이쪽 편에 있는 배우들도 무대에 서 있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영화와 연극, 배우와 관객, 삶과 죽음의 관계를 다룬 영화라고들 한다.


궁금해서 찾아본 유투브의 칸 기자회견 영상을 보면서 은발의 노신사 곁에 미셀 피콜리를 위시해 그의 전속배우 사비느 아제마와 피에르 아르디티, 램버트 윌슨, 그리고 새롭게 레네의 배우군단에 자원한 마티유 아멜릭 등 실로 많은 배우들이 다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배우들이 너무나 사랑해 너도나도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했던 전성기 할리우드의 황태자 에른스트 루비치가 떠올랐다. 농담이 아니다. 그의 최근작들은 뮤지컬이 가미된 일종의 코미디이고 <입술만은 안돼요>는 루비치의 영화에서 특별한 영감을 얻었다. 루비치 터치는 레네의 기이한 작가성에도 있다. 그는 한 명의 모던한 작가라기보다는 화법과 형식을 파괴한 실험의 작가였고, 실로 작가라기보다는 연극처럼 배우들과 극단을 거느린 연출가에 가깝다. 알랭 플래셔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영화는 ‘아틀리에 예술’이다. 그는 언제나 집단을 구성해 다른 예술을 영화에 끌어들였다. 누보로망 작가들의 문학, 희곡의 영화화는 물론이고 엠마누엘 리바, 델핀 세리그, 사비느 아제마 등 무대 여배우들을 영화에 기용했고, 오페레타와 뮤지컬, 만화, 범죄 영화, 멜로드라마 등의 장르를 적극 활용했다. 레네의 영화는 개인보다는 집단의 산물이고, 그는 현대영화의 탁월한 황태자이다.


그러니 호모 사케르식 개인에 집중했던 초기작들을 넘어서 근작들에서 우리는 레네의 ‘우리들’을 보아야만 한다. 비록 실감 없는 현실에서 정체성의 위기와 우울증을 겪지만 그럼에도 감성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우리들 말이다. <마음>과 <잡초>에서 레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정신, 의식, 마음에 카메라를 올려놓았고 아스팔트의 틈새에서 굳건하게 피어오르는 잡초마냥 우리들의 마음을 피어오르게 했다. ‘극장을 나오면 어떤 것도 놀랄게 없다. 무엇이든 발생할 수 있다’고 <잡초>의 내레이터가 말한다. 그러니 그의 아틀리에에 들어가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레네의 신작을 기다린다. (김성욱)






  1. 느베르 2014.03.08 02:37 신고

    "나도 망각과 싸웠지만 당신처럼 나도 잊고 말았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잊고마는 망각의 공포에 맞서
    매일 힘겹게 싸웠지만 당신처럼 나도 잊고 말았죠.
    .......................기억할 건 기억해야만 해요!!"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 중에서...............

  2. 고쌍 2014.11.30 15:01 신고

    아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이 재개봉 중이다. 이 영화는 혁명전야의 시대를 살아간 세대를 그린다는 점에서 그의 혁명적인 데뷔작이기도 했던 <혁명전야>의 주제를 다시 반복한다. 베르톨루치에게 중요했던 것은 혁명의 효과나 68혁명에 관한 영화가 아니었다. 혁명의 시절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혁명 이전의 가능성을 다시 사고하는 것. 말하자면 정치적, 성적, 미학적(영화적) 유산의 잠재성들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문제를 이번 3월에 상영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5월 이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이 보낸 시대에 관한 이야기로, 5월 혁명의 공기로 감싸였던 파리에서 시작해 혁명과 예술에 몰두했던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다.


이미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카를로스>에서 70년대~80년대에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5월 이후>에서 그는 이제 자신의 분신이 분명한 주인공 고교생의 이야기를 빌어 한 손에는 돌을, 다른 손에는 붓을 들었던 청춘의 빛나던 시절을 노래한다. 소녀들과의 사랑 이야기 또한 빠질 수 없다. 1955년생인 아사야스는 68혁명 당시 열 세 살로 학생 운동에 참여하면서 음악과 예술, 그리고 영화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앤디 워홀의 예술에, 그리고 기 드보르를 위시한 상황주의자의 운동에 매혹되었다. 젊은 날의 아사야스에게 중요했던 것은 당시 그가 살던 사회 체제에서 어떻게든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론으로 아사야스는 예술에 끌리게 된 것이다. 빛나는 청춘은 물론 다소 염세적이고 고독을 맛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은 그러나 지나갔고, 혁명에 뒤늦게 도달한 세대는 그러므로 그 어디에서도 이상향을 찾기 힘든 가운데 다시 혁명의 가능성과 잠재성의 기원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아사야스의 영화는 그래서 장 뤽 고다르가 <즐거운 지식>에서 했던 표현을 빌자면 (영화)제로지대로의 회귀를 시도한다. 이 제로지대로의 회귀는 베르톨루치가 <혁명전야>에서 말한 현재의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아사야스는 ‘그라운드 제로’를 맞았던 21세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으로 혁명 전후를 되돌려 구축하는 것이다. 5월의 빛나는 청춘과 만나기를 기원한다.

-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3월의 '시네마테크' 소식지에 에디토리얼로 쓴 글이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와 베르톨루치의 영화가 3월, 동시기에 소개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클로드 소테와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들 간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를 말하는 것은 그들 각자의 영화에 어떤 일관된 테마와 스타일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감정의 세공술사’라는 이번 시네마테크 부산의 기획전 제목은 그래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터인데, 대신 나는 다른 비교들을 들고 싶다. 1924년생인 소테와 1947년생인 르 콩트는 작업의 시대로만 보자면 누벨바그 이전과 누벨바그 이후의 작가들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두 감독이 한국의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인지된 것은 90년대 초의 일이다. 여전히 대중적 기억에 회자되는 <겨울의 심장>(국내 개봉제목은 ‘금지된 사랑’이었다)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 서울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씨네하우스란 극장에서 소개되었다. 예술영화의 늦바람이 살랑거리던 때로 소테와 르콩트의 영화는 중년의 연애를 섬세하고 관능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는데, 그 때가 프랑스 영화들에 ‘누벨 이마주’라는 기묘한 꼬리표를 붙이던 시절이었기에 이들의 영화는 분류 불가능한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쯤으로 치부되었다.


프랑스라고 별반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던 듯하다. 가령, 클로드 소테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 할만한 <거대한 위험>(1960)은 개봉즉시 외면당했다. 하필이면 고다르의 충격적인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와 한 달 차이를 두고 개봉해 잔뜩 누벨바그에 쏠린 관심때문에 r의 영화가 쉽게 무시되었던 것이다. 소테의 영화는 누벨바그의 악동클럽들과는 달리 자크 베케르와 장 피에르 멜빌의 고전주의에 더 친화력을 갖고 있었다. <거대한 위험>은 호세 지오바니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그는 자크 베케르의 <구멍>(57)과 장 피에르 멜빌의 <두 번째 숨결>의 원작자이자, <시실리안>, <암흑가의 두 사람>의 연출가이기도 하다), 사내들의 우정과 배신을 그린 프렌치 누아르 풍의 영화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편견 없이 보자면 정말 감탄할 만큼 탁월하다. 지금으로 보자면 두기봉 영화의 오프닝 정도가 이에 필적할 만하다. 밀라노 역에 두 사내가 가족들을 데리고 등장한다.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가족들을 모두 기차에 태우고는 사람들로 붐비는 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얼마 후 우리는 이들이 백주대낮의 노상강도임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자동차 도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지 갑자기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로 갈아타는데 그는 경찰의 제지로 다시 야산으로 탈주한다. 다시 자동차를 훔쳐 달아난 이 사내는 반대편에서 오던 차를 몰고 오던 예의 친구를 만나 기쁨의 재회를 나눈다.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에서 은행을 턴 남녀가 차를 몰고 달아나다 재회해 기쁨의 키스를 나누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어 이들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프랑스로 건너가는데, 때마침 등장한 경찰들과의 총격전으로 가족들과 그 사내가 사살되고 주인공 니노 벤추라만이 살아남게 된다. 예측 불가능한 속도와 사건으로 치닫는 영화 초반부의 시퀀스는 실로 놀라운데, 운동의 리듬뿐만 아니라 음악, 액션의 안무, 얼굴의 클로즈업으로 이어지는 장면의 연쇄가 꽤나 시적이다. 장황하게 소개한 이유는 잘 알려진 소테의 영화들 가운데 여전히 덜 알려진 이 영화가 이번 기획전에서 다시 재평가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1955년에 <미소여 안녕>이란 작품으로 데뷔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소테는 <거대한 위협>의 실패 이후에 절치부심하다(그는 이후 십여 년간 프랑스 영화계의 주요한 시나리오들을 손봐주는 ‘시나리오 닥터’로 활동했는데, 트뤼포를 포함해 모든 이들이 그에게 시나리오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1970년작인 <즐거운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197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로미 슈나이더와 엠마누엘 베아르 등의 여배우들과의 협연으로 유명하다. 특히 범죄자를 놓쳤다는 자책감에 시달린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맥스>(1971)와 중년의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세자르와 로잘리>(1972)에서의 로미 슈나이더의 마성의 미에 주목할 만하고, <겨울의 심장>(1992)과 <넬리와 아르노>(1995)에서의 엠마누엘 베아르의 귀품 있는 연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나쁜 아들>(1980)도 주목할 만하다.






소테의 영화에 대해 덧붙여 말한다면, 나는 그의 영화가 1930년대 프랑스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에 근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그의 영화에서 엿보이는 노스탤직한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작업의 방식, 스타일에서도 나온다. 프랑스 영화하면 작가 영화로 환대받지만 프랑스 고전주의는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스릴러, 사극 등의 장르 영화에 배우 시스템이 가미된 대중적인 영화였다. 시적 리얼리즘은 그러한 대중주의에 멜로드라마, 사회적 판타지, 누아르 리얼리즘, 낭만적인 페시미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을 결합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의 미덕이라 함은 일상에 시적, 정서적인 감성을 더하는 것으로 일상을 서정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에 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 또한 대중주의에 가까운데, 그는 비평가와의 불편한 관계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1999년 프랑스 비평가들이 대중적, 상업적인 프랑스 영화를 죽이기 위해 비평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며 맹비난을 했었다. 그의 대중적 면모는 스스로 ‘오락 영화를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자신감에 찬 말에서도 엿보인다. 물론 그의 대중주의는 이중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코미디에서 액션, 사극, 서스펜스 터치의 작품 등 르콩트는 다양한 장르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단일한 장르나 장르의 규범에 종속되지 않는 독특한 그만의 향기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는 과장된 코미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원래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다 영화를 시작했는데(최근작에서 그는 전력을 살려 드디어 3D 애니메이션 <파리의 자살가게>(2012)을 만들었다), 데뷔작의 실패 이후 그가 감독인생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은 프랑스 희극연극집단의 무대를 여름 휴양지로 옮겨 소시민들이 벌이는 레저 익살소동극인 <선탠하는 사람들>(1978)의 대중적 흥행덕분이었다. 후속작인 <선탠하는 사람들2>(1979)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들고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너무 열정적이라 조금은 왜곡된 사랑과 꿈같은 여정을 그린 출발점의 작품은 단연 <살인혐의>(1989)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1990)이라 할 수 있다. <살인혐의>는 언제나 창백하고 무표정한 고독한 중년 남자가 이웃집 아파트에 새로 이사온 앨리스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훔쳐보면서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인생이란 고독에서 행복과 사랑의 빛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의 영화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르콩트의 영화가 철저한 개인주의와 연애지상주의로 무장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노르망디 해안가를 배경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에 흥분을 느낀 소년이 나이가 들어 아름다운 미용사와 결혼해 꿈같은 사랑을 얻게 되는, 하지만 충격적인 비극으로 향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르콩트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인들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꿈처럼 제시한다. 그의 작품은 가장 일상적인 현실에서 시작해 다른 세계로의 꿈같은 여정을 그리는데, 이는 하나의 시간과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와 시간으로 톤과 분위기뿐만 아니라 빛, 컬러, 운동, 음악 등의 변형으로 표현된다. 일종의 무의식의 방법이라 할 만한 스타일에서 중요한 것은 정서적 일관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르콩트의 영화는 항상 현실과 허구의 세계가 다툼을 벌이고 남녀관계의 뒤얽힘이 계기가 되어 충만해져가는 꿈과 망상의 세계를 그린 우디 앨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르콩트의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특별한 연애관이다.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에서 엿보이듯이 르콩트의 주인공들은 연애라는 감정 안에서 서로의 차이들을 수용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습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연인들의 사랑의 감정인데, 이는 지극히 둘만의 유토피아적 세계에서만 납득할 만하다. 이런 경향은 결혼과 아이들 대신에 둘만의 관계와 모험, 여행을 강조하는 <걸 온더 브릿지>(1999)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영화는 관습과 모럴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애지도를 그리는 것만이 아닌 우리의 감각을 건드리는 침투해들어오는 여인의 몸들의 지닌 관능성 때문에 지극히 감각적이다. 그는 여인의 몸에서 빛이 쏟아지도록 화면을 장식한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물론이고 지극히 에로틱한 <이본느의 향기>(1994), 그리고 <친밀한 타인들>(2004)에서 우리는 여성의 머리카락, 어깨, 쇄골, 발끝이 얼마나 감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게 된다. 그의 영화는 루이 말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논리나 이성보다는 감성의 여행을 떠나기를 관객들에게 권고한다. 연인들은 그의 영화에 투영된 감성의 지도 위에 그려진 강줄기를 따라 미지의 영토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런 연인들의 유토피아는 또한 우리들의 삶의 근원에서 기원한 것이다. 르콩트는 현대적 삶이 정서적 고독의 상태에 놓여있음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러므로 사랑과 우정이라는 가치가 단연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사랑처럼 선언되지 않는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는 <마이 베스트 프렌드>(2006)를 주목해 볼 수 있다.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는 클로드 소테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영화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 두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 영화음악가, 촬영감독, 스타 배우들과의 지속적인 협업으로 유명하다. 세밀한 시각적 구성, 감미로운 음악, 돋보이는 연기들은 이런 지속적인 공정의 결과다. 이번 기획전은 소테의 영화들을 다시 논의해볼 좋은 기회이지만, 무엇보다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대중영화의 미덕을 품위 있게 지키는 두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욱 / 영화평론가)


*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클로드 소테, 파트리스 르콩트' 전에 맞춰 <씨네21>에 썼던 글이다. <겨울의 심장>(당시 개봉제목은 금지된 사랑이었던)을 신사동의 씨네하우스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클로드 소테의 초기작, 특히나 < 거대한 위험>은 필견의 작품이자, 누벨바그 영화들 가운데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작품이다. 클로드 소테의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계절. 

  1. fool 2014.02.27 23:54 신고

    클로드 소테와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들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척 보고 싶은데 부산까지 가기엔......서울의 바쁜 일상이 여유로움을 주지 않을 듯 합니다.ㅠ.ㅠ

    • Hulot 2014.02.28 01:54 신고

      서울에서도 할 날이 있을 거예요. 겨울쯤에 조금은 쓸쓸한 느낌으로 영화들을 보고 싶네요.



 

이 목록들은 지극히 우연적인 선택의 결과다. 미국 영화들 중에서 최근 디지털 복원된 작품들 네 편을 추렸던 것이다. 시대는 제각각 다르다. 다만 선택의 과정에서 은연중에 ‘패닉panic’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패닉이란 알다시피 돌발적인 불안과 공포, 스트레스에 의한 혼란한 심리상태를 말한다. 혹은, 그에 따른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일종의 공황상태다. 이 단어와 함께 의식에 부상한 것은 도덕moral이란 말이었다. 그렇게 모럴과 패닉의 합성어가 만들어졌다. 이 개념은 1972년 영국의 사회학자 스탠리 코엔Stanley Cohen이 1960년대 영국의 매스미디어가 당시 모즈나 로커즈라는 거친 젊은이들을 어떻게 과잉 보도했는지를 기술할 때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도덕적 공황을 일컫는 말로 사회질서의 위협으로 간주된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발산되는 다수인들의 격렬한 감정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표현은 시대의 불안과 관련이 깊다. 어떻게 무분별한 시대의 불안이 사람들의 분노와 격노로 격해져 가는지, 치안에 대한 불안이 무뢰한이나 반문화집단을 배제하는 집단 공포와 집단 광기, 혹은 집단행동으로 전이되어 가는지를 말해준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섹션의 작품들은 그런 ‘도덕적 패닉’의 전형성을 대표할 영화들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연적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목록이 적다. 다른 부제들을 관객들이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만, 패닉과 시대적 모럴의 비틀어진 합성의 작품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영화 그 자체가 오랫동안 시대의 도덕적 패닉의 대상이 되어왔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극장의 어둠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보여주고 저급한 행동이 벌어질 수 있는 나쁜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언제나 무언가 은밀한, 음습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열이 동원되고 극장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스크린에 전시되는 폭력과 섹스의 이미지에 과다한 반응이 생기기도 했다. 영화는 비도덕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장소이자 반사회적인 이미지들이 들끓는 곳이기도 했다. 영화는 그 시대의 모럴의 위기를 반영하고, 혹은 그 위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영화에서의 패닉과 모럴의 문제는 그러므로 그 시대의 정치학을 반영한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는 시대의 상상된 사회에의 위협을 표상한다. 이 네 편의 영화는 그러므로 각각의 시대에서 사회의, 혹은 사회에의 위협을 상상화한 작품들이라 말할 수 있다. 목록은 당연하게도 확장되고 넓어질 것이다.



 

그 첫 번째 작품은 프리츠 랑의 <인간 사냥>(1941)이다. 프리츠 랑, 더글라스 서크, 로버트 시오도마크, 에드워드 드미트리, 존 베리, 조셉 로지, 밀로스 포먼, 로만 폴란스키. 이름은 더 호명될 수 있겠지만, 이들은 모두 시기와 이유는 다르지만 제 나라를 떠나야 했던 망명의 작가들이다.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던 이들, 빨갱이 사냥 시대에 미국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건너가야만 했던 작가들, 혹은 공산권에서 망명한 작가들이다. 망명자들의 영화, 혹은 망명은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그 흥미로운 사례의 처음에는 아마도 프리츠 랑이 자리할 것이다. 프리츠 랑은 나치 독일에서 망명한 작가이다. 프리츠 랑의 미국 시절(1934-1956)은 그러므로 독일의 우파Ufa 스튜디오에서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던 때와는 달리 실업을 피하기 위해 그가 얻을 수 있는 무엇이든 작업을 해야만 했던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피고용자 신분의 작업을 의미한다. <인간 사냥>은 이 시절의 초기에 만들어진 영화로, <사형수 또한 죽는다>(1943), <공포의 내각>(1944), 그리고 <클로크와 대거>(1946)로 이어지는 반-나치 영화의 첫 번째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하던 해는 1941년으로, 당시 미국은 2차 대전의 참전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진주만 폭격은 이 영화가 개봉하고 반 년 후에 벌어졌다.

영화의 첫 시작부에서 우리는 영국인 사냥꾼 손다이크가 독일의 시골 마을에서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체포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동물을 죽이지 않고 단지 목적을 달성하는 영국식 사냥 스포츠를 즐겼을 뿐이라 답한다. 나치 장교는 그가 히틀러를 암살 기도했다는 조작 서류에 사인을 하도록 강요한다. 때는 영국과 나치 독일이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가기 전인 1939년. 그는 죽음의 위협에서 탈출에 성공해 런던에서 아름다운 여인 제리에게 도움을 얻지만 얼마 후, 독일과 영국은 전쟁에 돌입하고 이번에야말로 그는 히틀러의 암살을 위해 적진에 침투한다.

서스펜스 스릴러처럼 전개되는 이야기가 꽤 복잡한 모럴의 문제를 불러오는 것은 영화의 중반 이후를 거치면서이다. 손다이크는 게임 사냥꾼으로 자신이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강변한다. 그는 죽이는 게 아닌 추적 과정에 그 맛이 있는 사냥이야말로 최고의 게임이라며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나중에 그의 운명은 나치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면서 그리고 한 여인과 만나면서 변하게 된다.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성냥갑이 그러하듯이 손다이크와 제리의 관계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은 활 모양의 머리핀이다. 이 둘의 관계에 어떤 낭만성이 없다는 것이 특이한 일이다. 랑은 둘의 로맨스 대신에 활 모양의 머리핀을 기호로 활용한다. 영화의 한 장면. 잃어버린 머리핀을 사기 위해 가게를 방문하는 장면은 어렴풋이 독일 시절 그가 만든 <엠>의 한 장면, 즉 연쇄살인범이 쇼 윈도우 앞에서 진열된 물건들에 사로잡힌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마찬가지로 쇼 윈도우 앞에서 넋을 놓고 소비사회의 물건들을 쳐다보는 소녀에 은밀한 시선을 보낸다. 쇼 윈도우는 랑에게 현대적 도시, 시각적 호기심과 매혹의 이미지가 전시되는 장소다. 미국 시절로 넘어가면서 랑의 영화에서 쇼 윈도우는 도시적 소비문화가 양산한 강박성과 억압된 욕망의 기호들의 전시로 종종 등장하곤 했다. <엠>에서의 기하학적 패턴의 칼과 거울, 그리고 화살 모양의 장식들을 보고 있던 살인자는 곧이어 도시의 어둠의 사냥꾼들에게 추적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영화의 내러티브 중심에서 벗어난 꽤 예외적인 휴지부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러티브를 갱생하는 이미지의 논리가 작동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인간 사냥>에서 우리는 이 화살의 기호가 어떻게 작동하게 될 것인지를 앞으로 보게 된다. 제리는 하트 모양의 머리핀은 흔하니 화살 모양의 핀을 달라고 주문한다. 가게 주인은 크롬으로 만들어진 이 머리핀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멀쩡할 거라 말한다. 그녀는 그 말대로 희생자가 될 것이고, 머리핀은 남아 손다이크의 모럴을 자극한다. 동굴에서의 나치 장교와의 활의 싸움. 최종적으로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그의 시도. 비행기에 그려진 화살의 기호. 사랑과 죽음, 그리고 공포의 이미지로 기억될 기호들.


 




헨리 헤서웨이의 <죽음의 키스>(1947)는 로버트 시오도마크의 <킬러>(1946), 아브라함 폴란스키의 <악의 힘>(1948),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1949), 그리고 라울 월쉬의 <화이트 히트>(1949)로 이어지는 40년대 필름 누아르의 대표작이다. 이야기는 뉴욕의 크리스마스 날에 벌어진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지만, 운이 좋지 않은 이들, 특히 전과자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닉에게는 불행한 날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하는 때에 다른 방식으로 선물을 사려 한다. 영화 초반의 돈을 터는 강탈 시퀀스, 그리고 이어지는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장면이 꽤나 초조한 긴장감을 불러올 만큼의 정교한 편집으로 흥미롭다. 이 영화는 범죄자 닉의 운명적 상황을 강조한다. 그의 범죄에 대한 뚜렷한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기에 이 사건은 순수하게 그가 처한 절망적 상황을 부각시킨다. 범죄가 크리스마스에 벌어지는 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그가 기독교적인 희생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삶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리하여 유일한 방법으로 종교적 믿음과 희생에 도달한다. 영화는 당시의 스튜디오에서 벗어난 리얼 로케이션 촬영의 진수를 보여준다. 동시에 사회적 행동과 개인의 모럴의 희망 없는 상태, 무력함을 전시한다. 그 가운데 휠체어의 노파를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신흥 범죄자 리처드 위드마크의 위협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 흥분된 에너지가 충격을 준다. 이 파괴적인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건 크레이지>와 <화이트 히트>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사회와 법이 시대적 불안과 공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70년대 터프한 경찰영화들에서도 발견된다. 즉, 사회가 구제될 수 있고 구제되어야만 한다는 약속이 실패로 끝나는 것은 <더티 해리>와 <프렌치 커넥션>(1971)과 같은 영화에서 플롯의 전제이다. 자경단의 액션은 정신이상적인 형사의 과격한 폭력에서 구제를 찾기 힘든 사회의 몸서리치는 비전을 제시한다. 윌리엄 프리드킨을 유명하게 만든 <프렌치 커넥션>의 주인공, 뽀빠이 형사 지미(진 핵크만)는 활력이 넘치고 과격한 폭력을 불사하는 이로 범죄자를 소탕한다는 명목 하에 차를 몰고 범죄자를 추적하면서 도리어 거리를 패닉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마르세이유의 허름한 집에서 한 남자가 킬러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해, 브루클린의 뒷골목에서 뽀빠이 형사가 마약 판매원을 후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영화는 법 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목 하의 과다한 폭력에의 의존, 더 나아가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사회적 질서를 도리어 침해하는 폭력을 행사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폭력과 살인을 종결시키려는 폭력은 뽀바이 형사와 같은 반영웅이 휴머니티를 반납하고 치러야만 하는 도덕적 부담이다. 자경단은 그러므로 다크 나이트의 초인이 되어야만 한다. 그의 매력은 그의 모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의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에 있다. 탐정으로서의 그의 절차적 능력, 범죄자를 쫓는 탁월한 드라이빙의 재능, 그리고 파이터로서의 몸의 파워. 경찰의 자질은 법 질서의 집행이 아닌 절차적으로 숙달된 능력에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공들인 유명한 장면들은 모두 추격의 시퀀스들이다. 그리고 이 추격의 상황이야말로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 선과 악의 판별력을 흐리게 만드는 무차별한 액션의 롤러코스트를 만들어낸다. 최선의 사내는 결국 최고의 추격자여야만 한다. 고도로 스타일화된 추격 장면은 그러므로 가장 사실적인 것으로 포장된다. 아니, 사실로서 인정되어야만 한다. <프렌치 커넥션>에 따라붙은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이란 비록 이 영화가 경찰들의 세속적인 일과들을 강박적으로 전시하고 있음에도, 지극히 양식적인 것들로 원인을 지워가면서 그들의 대담한 행동에 주목하게 하는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법 질서 확립의 권위를 상실한 사회에서 경찰은 사회적 질서를 대변하는 단독자로 나서기 위해 그의 모든 능력을 미화시켜야만 한다. 뉴욕은 더럽고 추하고 사악하다. 모럴은 그러므로 사회가 처한 물리적 위험보다 덜 중요해진다. <프렌치 커넥션>은 정치적 주장을 슬며시 피하면서(가령 뽀빠이 형사의 적수는 부패한 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 사업가이다) 흑백의 인종적 갈등을 법 질서와 경찰의 하위문화의 관계로 치환한다. 나중에 우리는 로드니 킹 사건에서 현실의 파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기말의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1999)이 있다. 공개 시에 폭력적인 영화이므로 상영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영화다. 실제로 <파이트 클럽>의 초기 예고편은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방영되지 않았다. 파시스트적이라거나 무책임한 영화로 비난받았고 영화의 극단적 폭력과 잔인성에 대한 시각적 묘사가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고 불쾌하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폭력이 흥미로운 것은 그 방향이 타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후반부의 집단적 테러리즘의 경우로 치닫는 경우를 제외하자면), 자기 파괴적인 폭력에 가깝다는 것이다. 맞는 것에 의해서 아픔을 안다는 것, 아픔을 느끼는 것으로 살아있다는 실감을 맛보는 것. 통증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래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얻어맞는 것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가령, 빌딩의 술집 지하를 파이트 클럽으로 전용한 테일러에게 격분한 주인이 찾아와 그를 후려질 때, 테일러는 전혀 반격하지 않고 맞는 것을 기뻐한다. 그 반응에 불길함을 느낀 주인은 결국 사용을 허락하고 자리를 떠난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후반부에 내레이터(내레이션을 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가 미모의 청년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리는 분노의 폭력이다.

내레이터인 에드워드 노튼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에서 빠져나와 타일러와 만나면서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스러운 탈영토화의 공간에 자리하게 된다. 이들의 폭력은 소비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공격의 대상으로 한다. 그들은 캘빈 클라인의 속옷 광고와 잘 만들어진 근육을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항하는 저항으로 자기 파괴적인 폭력행위를 신봉한다. 파트리샤 피스터르스가 『시각문화의 매트릭스』에서 지적하듯이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분열증-운동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타일러가 내레이터에게 어떻게 비누와 폭탄을 만드는지를 가르쳐 줄 때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우아한 문화의 하나인 지방흡입 병원에서 사람의 몸에서 나온 찌꺼기인 지방 덩어리를 훔쳐 글리세린 비누와 니트로글리세린 폭탄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판매하는 비누는 백화점 매장에 진열되고, 폭약은 나중에 신용카드 회사와 자본주의 상징물들을 폭파시키는 데 활용된다. 지방 찌꺼기는 소비 상품으로 전화하고, 결국에는 전체 체계에 대항하는 니트로글리세린 폭탄이라는 파괴적인 무기로 전환되는 것이다. 지젝의 말을 빌자면 이러한 파괴는 위반으로서의 전복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전복 자체를 전복하는 것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2014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특별섹션으로 상영중인 네 편의 영화에 대한 글이다. 아쉽게도 상영작 중에서 프리츠 랑의 <인간 사냥>은 상영본의 문제 때문에 결국 상영이 취소되었다. 다른 기회에 다른 작품들의 목록을 포함해 다시 이런 주제의 프로그램을 기획해보고 싶다.

  1. noname 2014.02.27 00:10 신고

    잘 읽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올려주시는 글 빠짐없이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글 올려주세요~^^

    • Hulot 2014.02.28 01:55 신고

      약속은 못하지만, 전보다는 자주 뭔가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2. YUTLU 2014.11.12 01:02

    이용약관위배로 관리자 삭제된 댓글입니다.

 

 

 


2014
년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1914-1977)의 탄생 백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올해 랑글루아 백주년 행사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 벌일 예정이다. 랑글루아는 책에서 언급된 영화들, 영화의 역사에 그저 이름만 있던 영화들을 살아있게 했다. 시네마테크의 상영 덕분이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아버지이자 영화 프로그래머란 직업의 창시자로, 영화의 아이들(cine-fils)이 그러하듯 적어도 이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어떤 의미로든 그의 아이들이다. 그의 특별함은 탁월한 열정뿐만이 아니라(그는 시네마의 종사자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열정passion이라 여겼다), 그것을 어떻게 전시하고 조직하는가에 있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역사에 정통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요하기 때문이다.

 

랑글루아는 영화와 관련해 손쉬운 합의를 도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의 종사자들에게 무조건적인 우정을 보내기도 했지만, 또한 치명적인 증오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 치명적 결과는 알다시피 1968년에 있었던랑글루아 사태로 벌어졌다. <랑글루아의 유령>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클로드 샤브롤이 지적하듯이랑글루아 사태는 그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명성, 그리고 그가 필연적으로 양산한 적들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영화의 역사는 친구만이 아닌 적들과의 전투의 흔적들이다. 우리의 동료이자 친애하는 적들. 자연스럽게 어떤 친구들은 적으로 돌아서고, 또 반대로 그를 시기했던 이들이 친구가 되기도 했다. 가령,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못지않은 아름다운 벨기에 시네마테크의 설립 자인 자크 르도는 그의 적대적 경쟁자였다. 물론 나로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와 친구들과의 돈독한 우정이다. 특별히 랑글루아와 그의아이들중의 한 명인 주앙 베르나르 다 코스타(1935-2009)와의 우정의 관계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베르나르는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를 포함해 페드로 코스타 등 포르투갈 감독들이 존경했던 포르투갈 시네마테크의 관장이었다. 베르나르는 젊은 시절에 리스본에서 영화사의 위대한 고전들과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5-60년대 리스본에서는 정치적 검열과 문화적 빈곤, 그리고 고립주의 때문에 과거의 영화와 만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1958, 23살의 나이에 그는 처음으로 파리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를 방문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의 고백. “극장문을 열고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함 포템킨>, <국가의 탄생>, <일출>, 그리고 <잔다르크의 수난>과 같은, 글에서 많이 읽었던, 사진들로만 보았던 영화들을 내 눈앞의 스크린으로 마침내 보게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을?” 영화는 늘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가 의미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았던 영화들을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우리가 기대하는 영화들은 언제나 아직 보지 못한, 하지만 존재하게 될 영화들’(고다르)이다. 그 후, 베르나르는 굴벤키안 문화재단의 영화부문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1973년 랑글루아의 도움으로 리스본에서로셀리니 회고전을 개최할 수 있었다. 리스본의 시네필들은 랑글루아가 대동한 로셀리니를 극장에서 만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무방비 도시>가 상영되는 오프닝 행사에서는 상영 후에 기립박수와 함께자유 만세파시즘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난무했다고 한다.

 

이런 훈훈한 우정에 더해 나로서는 그들의 우정을 넘어선 차이 또한 주목한다. 거부하고 싶더라도 우리는 결국 랑글루아의 키드이겠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시간대, 조건에 있기에 친화성 못지 않게 거리를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리스본의 베르나르 또한 파리의 랑글루아와는 다른 프로그래밍을 해야만 했다. 마치, 파리의 고다르와 저 남미의 글라우버 로샤가 만났을 때 로샤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들은 영화를 해체하고 있는데 우리는 해체할 영화가 없으니, 먼저 영화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랑글루아는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저급한 것과 고급한 것의 문화적 기준을 거부하는 프로그래밍으로 유명했다. 그는 심지어 좋은 영화만 선별한 것이 아니라 아닌 모든 영화를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작품이 좋은지 누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영화사는 그 반대의 진실을 언제나 보여주었었다. 반면, 베르나르는 주로 작가들의 회고전에, 그리고 다소 교훈적이고 영화사의 위대한 정전의 작품을 상영하는 데에 치중했다. 이는 1970년대 리스본에서 절실했던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관객을 늘리고 좋은 작품을 접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작들을, 그동안 상영되지 못했던 영화들을 소개하고 보다 근본적인 영화 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치중했다.

 

 

 

파리의 랑글루아는 상상적인 프로그래밍을 꿈꾸었다. 그는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가정한 프로그래밍, 가령 이 가상의 관객들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들이 하루 동안 종일 영화를 볼 경우에 서로 이질적인 영화들의 자유로운 배치로 영화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다리를 놓는 비밀스러운 기획을 하기를 원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영화적 이미지들이 그려내는 비밀스러운 성좌의 구축. 이미 시네마테크를 설립하기도 전에 그는 샹젤리제의 작은 공간을 빌려서시네마 판타스티크Le Cinéma Fantastique’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개최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에 랑글루아는 어떤 휴식 시간도 없이 세 편의 장편 영화를 연달아 상영했다. 장 엡스탱의 <어셔 가의 몰락>(1928),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그리고 폴 레니의 <라스트 워닝>(1929). 이 세 편의 정해진 주제와 기획의 의도는 분명치 않다. 그는 한 편의 영화 이전에, 그리고 다음 영화와의 관계에 영화가 놓여지기를 원했다. 라울 월쉬의 영화 전에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를, 미조구치의 영화 다음에 히치콕의 영화를 상영하는 식으로. 계몽적인 기획의 주제보다는 삼투현상에 의한 영화 교육을 믿었던 것이다. 종종 랑글루아의 영화박물관의 전시는 심지어 연대기도 그 어떤 꼬리표도 달지 않은 전시물들의 배치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전통적인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은 랑글루아의 그런 방식의 배치에 비전문가라는 경멸을 표하기도 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고물상의 무질서한 배치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라는 비난들. 하지만 상상의 시네마크는 이런 꿈이었다. 어느 날, 루브르 박물관에 도둑이 들어 모든 전시물들의 꼬리표를 제거하고 마음대로 예술품들을 뒤섞어 버린다. 그 다음 날 관객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박물관에 들어와 연대기도, 주제도 무시된 채 무질서하게 배치된 예술작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그런 날들이 오게 되면 더 비밀스러운 예술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이 어떤 일관된 기준 없이 선택한(친구들 스스로 작품을 선택하는 고유의 일관성과 철학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들이 상영되는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다. 정말 영화를 즐기고 싶다면 이 무질서한 영화들의 사이, 우연한 관계와 배치에 더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부탁드린다. 위계와 통제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 짐 자무시의 영화가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을 상기하고 싶다. No Limits, No Control.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씨네21』에 실린 원승환 씨의 “'다양성이라는 획일적 명명이란 글을 읽었다. 다양성이라는 용어는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제안한 것으로, ‘다양성 영화라는 말로 통용되는 영화들은 주로 예술영화, 고전영화,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실험영화 등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자면 다양성영화는시장점유율 1% 이내인 영화 형식의 작품, 직전 3개년 평균 기준 서울지역 시장점유율 1% 이내인 국가의 작품, 영진위의 제작지원/배급지원 작품, 당해 연도 1% 미만의 스크린에서 개봉된 한국영화들이다. 원승환 씨가 지적하는 것은 다양성 영화라는 범주 안에 모든 비주류 영화의 범주를 우겨넣다 보니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마구잡이로 묶어놓은 결과 서로 다른 영화 간의 다양성이 지워져 버린다는 것. 그러므로 이 용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한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시기적으로 2007년은 정책적으로 독립영화, 예술영화, 시네마테크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을 시도하려 했던 해였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들을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개념을 요구받게 되었고, 이에 따라다양성 영화라는 표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양성 영화라는 표현은 자칫 그것이 어떤 실체의 대상을 지닌 개념처럼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류를 발생시킨다. 정책적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이러한 용어로 도리어 실종되어 가는 것이 원승환 씨의 지적대로 다양성의 근간을 이루는 차이들이다. 의문인 것은다양성 미술이니다양성 음악이라는 식의 표현은 다른 예술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데 유독 영화에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질적인 측면에서 고려하기보다는 양적인 차이로 환원하기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의에서 도리어 실종되어 가는 것이 영화 예술의예외성이다.

원래다양성이란 표현 이전에 적극적으로 활용됐던예외는 문화의 획일화를 피하는 동시에 문화를 보호하여 다양한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기획에서 제기된 용어다. ‘예외라는 표현은 예술 작품에 그 생산이나 유통의 시장 논리만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하나의 법적 수단으로 작품 생산과 배급에 시장의 평가 기준과는 다른 기준을 개입시켜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다양성 영화라는 표현이 근거로 상정했을문화적 다양성이란 용어는문화적 예외에 대한 시장주의자들의 공격을 피하고자 고안된 개념이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다양성이나 예외를 거의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지만 때로는 이 두 개념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들도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넓게 보자면 문화적 예외는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예외는 문화의 다양성, 다양한 미학에 의해 작품 생산과 배급을 장려하는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이다. 그러므로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는 것처럼, 시장의 규칙에서 예외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이 있는 법이다. 고다르가 말했던 것처럼 규칙은 문화의 문제이고, 예외는 예술의 문제인 것이다. (2013/ 12월 에디토리얼 '시네마테크')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시네아스트의 초상'은 작가를 영상을 통해 소개하기 위한 프로그램. 만약,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다큐멘터리를 마치 거장의 마스터클래스처럼 들었으면 한다. 그 첫 시작은 자크 리베트의 르누아르 다큐 삼부작. 이 프로그램은 1966년 5월에서 6월까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제작됐다. 자닌 바쟁, 앙드레 라바르트가 기획한 ‘우리시대의 시네아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자크 리베트가 만든 다큐멘터리이다. 1부. 상대성의 탐구가 1967년 1월 13일일에, 3부 ‘규칙과 예외’가 같은 해, 2월 8일에 방영됐다. 2부인 ‘배우의 연출’은 장 르누아르와 미셀 시몽의 긴 인터뷰가 담겨있는데, 이는 원래 방영될 계획이었지만 텔레비전으로는 상영되지 못했다. 이 다큐의 일부가 미완성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인데, 그 때문에 2부는 거의 극장에서도 상영된 적이 없다. 이 3부를 모두 소개하는 예는 프랑스를 제외하자면 극히 예외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만약 이번 상영회에서 2부를 보았다면 그 만큼 레어한 상영을 체험한 것이다). 그 만큼 번역도 쉽지 않았던 일이다. 르누아르의 시네레슨 하나. 새로운 영화의 활력은 외부성에 있다. 르누아르의 야망은 당시 프랑스 영화에 생동감과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빌자면, 모든 예술에서 무언가를 기여하려 한다면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롱사르, 라블레, 몽테뉴는 프랑스적이지만, 영감을 외국에서 얻어왔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고, 예술가가 습관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은 그들의 직무인데. 신이 예술가를 만든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갑작스런 일로 이야기할 기회를 놓친 프로그램.  

이마무라 쇼헤이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영화는 광기의 여행’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광기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신들의 깊은 욕망>(1968)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의 혼신이 담긴 괴작이자 최고의 작품이며 전환점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는 일본 열도 남단의 오키나와 근처의 가공의 섬. 일본이 가진 낡은 습속이 이곳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낡은 샤머니즘이 여전히 있어서 무녀가 몰아지경의 상태에서 신의 소리를 들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고지하면 주민들은 그 말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외딴 곳에도 산업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섬에는 비행장을 만들고 관광객을 들이는 계획이 진행된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은 본토에서 떨어진 작은 섬마을 공동체의 성스러운 의식들을 지극히 느리게, 하지만 숨 막힐 정도로 공포스럽게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특히나 영화 말미에 나오는 장엄한 제의적 죽음의 장면이 압도적이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이곳 주민들이 ‘호모 루덴스’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비롯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던한 일본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당시 이마무라 쇼헤이가 이상적인 일본 민주주의를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바라봤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들이야말로 더 현실적인 사람들이었고 모던한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원형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마을의 정신적인 연대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지, 그러기 위해서 낡은 신앙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리고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배제하고 말살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몰살의 의식을 고려하면 영화에 나오는 상어와 돼지의 조우는 꽤 우화적인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배에 실린 돼지들의 농담처럼 평안한 모습과 이어지는 상어의 습격은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지극히 무감한 카메라의 응시로 표현된다. 아주 취약한 죽음이 벌어지는 것과 이에 대한 카메라의 무감한 응시는 희생자를 구제할 길은 없다는 것과 그들의 운명을 상기시킨다. 돼지가 가라앉고 푸른 배경 위에 붉은 오점이 남는다. 앙트안 드 베크가 지적하듯이 이 시퀀스에는 인간의 감정도, 상황의 스펙터클도 없다. 카메라는 이 고요한 응시를 영화 내내 유지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이다. 인간은 여기서 피를 흘리는 작은 돼지이다.
<신들의 깊은 욕망>은 일본영화가 이제 막 변혁의 시기로 치닫던 때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1968년은 여전히 영화의 혁명을 믿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오시마 나기사는 쇼치쿠를 뛰쳐나가 독립제작사인 ‘창조사’에서 <일본 춘가고>, <교사형>, <돌아온 주정뱅이>등을 만들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돼지와 군함>, <일본 곤충기>, <붉은 살의>, <인류학 입문>을 거쳐 <신들의 깊은 욕망>에 이르러서는 닛카츠를 떠나야만 했다. 영화가 사회와 대치하고 국가라는 환상과 대항하던 때였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영화 이후에 근 십년간 영화작업을 제대로 못했지만 촬영소의 붕괴와 영화사의 몰락 이후 갈 곳 없어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학교를 개설하기도 했다. 1975년에 개관한 ‘요코하마 방송영화 전문학원’(이 학교는 1986년에 요코하마에서 가와사키로 이전해 일본영화학교로 개칭했고 2011년 4월, 일본영화대학의 모체가 되었다)은 현역 감독, 극작가, 카메라맨, 녹음기사 등이 실제로 영화를 만들며 일의 방식을 배우는 학교였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광기의 여행’은 일본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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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일탈의 작가 - 자크 로지에의 바캉스

 

 

 

 

 

 

* 지난 8월 5일(일) 자크 로지에의 <오루에 쪽으로>의 상영후에 했던 강연의 정리내용이다. 그의 소개되지 않은 단편들을 짧게 보여주었고, 긴 상영시간 탓에 가능한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여전히 아직은 미지의 작가인 자크 로지에의 영화를 처음 소개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이 꽤나 즐거운 일이다. 자크 로지에라는 작가의 기이한 위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로지에가 만든 단편들의 일부를 보겠다. 로지에가 50년대에 만든 단편 영화를 보면 놀라운 느낌을 받게 된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자크 로지에의 단편 영화를 보고 질투심 같은 걸 느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로지에의 <신학기(Rentrée des classes)>(1956)는 트뤼포의 <개구쟁이들>(1957)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나는 로지에의 단편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어떤 학생이 신학기에 학교에 가다 친구의 꼬임에 빠져 냇가에 가방을 던진 후 가방을 찾아서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두 번째로 보여드릴 영화는 <블루진(Blue Jeans)>(1958)이라는 영화인데, 칸에서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두 청년이 여자를 꾀려고 하는 내용이다. 이 두 편의 단편을 보게 되면 자크 로지에가 자연, 바다, 해변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다.

 

 

 

 


로지에의 첫 장편 데뷔작은 <아듀 필리핀>(1962)이라는 영화다. 1959년에 고다르가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들고 나서 제작자가 고다르에게 동료 감독 중에서 괜찮은 감독을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고다르가 추천한 감독이 자크 드미, 아녜스 바르다, 자크 로지에였다. 그 덕분에 제작자가 자크 로지에의 데뷔작을 만들었다고 한다. 제작자는 비용이 덜 들도록 촬영을 짧게 끝내기를 원했지만 자크 로지에는 빨리 찍는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로지에는 장편을 총 4편 만들었는데, 근 10년에 한 편 꼴이다. 빅토르 에리세와 더불어 과작의 작가라 불릴 만하다. 그런데 이런 작업방식이 로지에의 대중적 지명도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됐다. <아듀 필리핀> 개봉 당시 극장 관람객은 5천 2백 명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고다르 영화의 제작자는 자신이 제작한 영화들을 미국에 배급했는데, 미국의 수입자는 로지에의 영화를 전혀 수입할 생각을 안 했다고 한다. <아듀 필리핀>이 미국에 처음 소개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오늘 보신 <오루에 쪽으로> 역시 프랑스 개봉 후로부터 20년이 지나서였다. 16mm로 촬영된 영상을 35mm로 블로우 업 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고다르는 로지에를 빨리 찍는 작가라고 소개를 했지만, 사실 로지에는 촬영을 느리게 진행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두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서 작업했고, <아듀 필리핀>에는 4만 미터의 필름을 썼다고 한다. 당시 감독들마다 사용했던 필름의 양을 따지면 샤브롤이 1만 7천 미터, 고다르가 1만 미터 정도였다. 촬영을 굉장히 길게, 많이 한 것이다. <아듀 필리핀>은 현장 녹음이 잘 들리지 않아서 더빙 작업에만 5개월이 더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고 작업한 것이 아니라서 동시녹음이 좋지 않아 후시로 배우의 입술 움직임을 해독하며 녹음했다고 한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로지에는 그렇게 효율적인 작가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이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효율성은 많이 떨어지는 셈이다.

 

 

 

 

 

방금 보신 단편 중 첫 번째 단편에서 자크 로지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로지에의 기본적인 특징은 탈선이라 할 수 있다. 정상적 궤도에서 자꾸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 영화사에서 보면 <익사에서 건져낸 부뒤씨> 같은 장 르누아르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로지에는 르누아르의 조감독을 하기도 했다. 정상적 궤도에서 빠져나가는 상황으로, 등교길에서 갑자기 책가방을 물에 던지면서 꼬마는 자연적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어린아이의 모험은 우연히 던져진 가방에서 시작해, 그 가방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그런 점에서 르누아르적인 탈선이 있다. 로지에는 르누아르의 계승자이자, 로지에 이후의 작가로 보면 키아로스타미, 이오셀리아니의 선구자격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자연의 시냇물의 아름다움은 그 물이 직선으로 흘러가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장애물과 만나며 굴절되는 데 있다. 직선의 움직임도 가능하지만 그건 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말했다. 지그재그 3부작 같은 영화가 <신학기>와 비슷하다. 이런 영화들이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것은 삶의 영역에서 우회로를 해 나가는 것이다. 이들 영화는 지그재그로 진행되는 사건을 그리는데, 그때 삶의 근원적 진실에 훨씬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렇게 정상적 궤도에서 탈선해가는 경향이 로지에에게 시대와의 불화성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다. 즉 상업적 효율성에서 보면 영화를 찍기 전에 시나리오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 사전적 준비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는데, 로지에는 늘 탈선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경향이 대부분 휴가나 바캉스 영화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휴가의 감독, 그리고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화 제작에서도 너무 오래 휴가를 떠난 것이다(웃음). 바캉스의 감독이라는 점에서 자크 로지에는 에릭 로메르와 비슷하지만, 로메르는 굉장히 효율적으로 1년에 한두 편씩 영화를 만들었다. 프랑스 평론가 장 두셰에 의하면, 자크 로지에는 상업적 규칙을 지키지 않았고, 그 어떤 규칙도 지키지 않으려 했던 작가로 표현되고 있다. 자유로움을 좋아했다는 점이 그의 영화를 돋보이게 만들지만 제작의 어려움도 낳은 것이다.

 

 

 

 

로지에의 두 단편과 <오루에 쪽으로>를 보면 그런 점이 느껴진다. 아이가 물뱀을 쫓아가는 장면처럼 정상적 궤도에서 일탈해 나간다는 건 바깥 저편으로 나가는 것이자, 거기서 낯선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화가 갖고 있는 규칙성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이야기적이라기보다 몸짓, 말투, 웃음소리들, 이상한 제스처들, 다양한 소리들로 가득 차있는 영화에 가깝다. 그래서 동시대적으로 보면 존 카사베츠 영화와 비슷하다. <오루에 쪽으로>는 카사베츠의 <남편들>(1970)의 여성적 버전 같다. 야생성이라고 하는 것에서 연관성을 찾아보면, 로메르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1987)의 첫번째 에피소드와도 비슷하다. 로메르도 이런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정상적 궤도에서 많이 탈피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레네트>는 예외적으로 많이 이탈해있는 영화다. 로메르의 바캉스 영화나 자크 로지에의 바캉스 영화는 그런 식으로 노출된, 무의식적인 야생성(savage)과 만나는 것이 특징이다. <오루에 쪽으로>에서 굉장히 길게 나오는 보트 타는 장면은 그런 느낌을 준다. 요즘으로 보면 거의 3D 체험이 가능할 정도다. 그렇게 자연과의 만남이라는 사건들이 있다. 그런데 카메라가 자연과 만난다는 것, 바캉스를 영화로 찍는다는 것 외에도, 그런 야생성을 영화의 내부로 비집게 들어오게 하면서 영화를 내부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로지에의 또 다른 특징이다. <오루에 쪽으로>를 보면 인물들이 자연적 세계로 나가는 것도 있지만, 바깥의 자연이 내부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침입이 있다. 가령 집 안에 물고기, 장어가 돌아다니고, 그 때문에 내부의 소동이 벌어진다. 또 다른 한편으로 영화적 사건으로 보자면, 그것은 카메라가 찍는 자연적 대상으로 배경을 찍어 나갈 때 영화가 갖는 근본적인 변화의 과정들을 겪는다는 것이다. 자연적 세계, 굉장히 낯선 세계는 완벽히 컨트롤 불가능하고 여기에 영화가 들어가게 되면서 영화의 진행 경로가 자연스럽게 여러 우회들을 거쳐나가게 된다. 트뤼포는 <아듀 필리핀>이나 <오루에 쪽으로> 같은 영화가 누벨바그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루에 쪽으로>는 말 그대로 파도wave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10여 분 간 요트의 장면은 누벨바그란 게 뭔지 그대로 보여준다. 자크 로지에는 어떤 면에서 순항의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적 세계와의 만남이라는 것은 세계의 풍부함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한 것이고, 카메라 앞에 오는 삶의 역동성을 직접적으로 영화가 담아내는 계기를 이루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 소수의 스태프들과 함께하는 동시녹음, 올 로케이션 현장 안에서 영화의 규칙성을 탈피해 나가는 과정들을 느낄 수 있다.

 

 

 

 

로지에의 두 번째 단편 <블루진>은 자크 로지에의 인물들의 출발점 같기도 하다. 로지에의 인물들은 고독하고 위약한 인물들이다. 똑같은 바캉스의 인물을 그려도 로메르의 사람들은 자기 논리에 빠져있고 자기변명, 자기합리화가 분명하다. 그들은 결코 자기 태도를 바꾸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이상한 궤변을 부린다. 그런데 로지에의 인물들은 멜랑콜리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이들은 종종 집단으로 구성된다. <블루진>에서는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하고 <아듀 필리핀>에는 셋, <오루에 쪽으로>는 여자 셋 남자 둘이 나온다. 그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함께 노니는 것이다. 현대적인, 도시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 반대로 규칙적 세계에서 일탈해나가는 상황에서는 이오셀리아니의 영화가 그렇듯이 같이 노래 부르고 와인 마시고 떠돌아다니는 등 의 집단성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오루에 쪽으로>도 그렇고, 자크 로지에 영화에서는 연인보단 동성 친구끼리 나오는 경우가 많다. 도시적 세계에서 빠져나와 자연적 세계에서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흥취를 영화가 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흐름과 하모니가 있다. 그런데 <오루에 쪽으로>의 결말이 굉장히 쓸쓸해 보이는 건, 그 하모니가 깨지는 과정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에 관객들은 세 여자의 각각의 리듬을 잘 모른다. 그러다 카메라가 각각의 인물을 따로따로 보여주는 방식에서 조금씩 그들은 개별화가 된다. 대표적인 장면은 모두 모여 음식을 먹던 중 조엘이 꺄린과 패트릭이 이야기하는 걸 지켜보는 부분이다. 그것도 모르고 질베르는 계속 엉뚱한 얘기를 하고, 조엘은 꺄린이 패트릭과 내일 배를 타러 간다는 사실에 좀 짜증이 나 있는 상태다. 그때부터 영화에서 균열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고, 일탈적인 것의 집단성이 무너져가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것이 이 영화를 좀 쓸쓸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오루에 쪽으로>는 70년대라는 특정한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있다. 즉 우리는 세 여자가 갖고 있던 집단성이 점차 괴멸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지칭하고 있진 않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67~68년의 젊은이들의 집단적 열기가 완전히 빠진 이후에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기운의 쇠락이 보이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자크 로지에는 68혁명의 젊은 기운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히피 유토피아의 쓸쓸함을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이후에 나올 장 으스타슈의 <엄마와 창녀>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물론 이 작품이 시대적 감각들을 정치적이나 사회적 주제 안에서 드러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형식과 젊음에 대한 태도는 동시대적인 쓸쓸함에 대한 느낌이 있다. 영화에는 저항적인 음악을 만들었던 공(GONG)이라는 락밴드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밴드의 사이키델릭한 음악이 영화의 서두와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런 점에서 젊음의 소멸성과 그에 대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가 사라지는 시간을 담아냄으로써 그 시간들을 보존하는 기능도 하기 때문에, 쓸쓸한 지난여름의 기억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럼으로써 보존되어 있는,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의 보존 같은 것도 있다.

 

 

로지에는 스스로를 뤼미에르처럼 영화를 만드는 이로 생각했다. 그는 자연적 상태를 기록하는 상태로서의 영화를 선호했다. <오루에 쪽으로>를 보면 그런 미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바캉스 영화인데, 바캉스라는 건 자연적 세계 안에서 사람들을 노출시키고 직접적이고 투명한 것들을 드러낸다. 여름의 바캉스에서 공간, 상황들의 투명함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투명하게 드러내게 되는 과정들이 보인다. 직접성이나 투명성이란 말은 어떤 해석의 골조나 설명들로 연결되지 않고 관객이 직접 이미지와 접촉시켜 나가는 가능성을 가진 작품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경험의 회복으로도 볼 수 있다. 다른 매개들을 거쳐 해석하거나 이야기를 이해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현실과 접촉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는 파졸리니의 영화를 두고 베르톨루치가 했던 말, 즉 영화가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묵격하는 것 같은 기쁨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를 발견하는 것 같은 기쁨, 사람 혹은 사물과 접촉하는 원초적인 상태의 경험을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

자크 로지에와 바캉스의 영화들

- 시네필의 바캉스

 

 

 

 

1959년에 고다르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가 큰 성공을 거뒀다. 이에 자극받은 제작자 조르주 드 보르가르는 고다르에게 요즘 젊은 영화감독들 중에서 빨리 촬영하고 저예산으로 그처럼 기적을 만들어낼 감독 몇 명을 추천해 달라 제안한다. 고다르는 주저 없이 세 명을 골랐다. 아직까지는 단편을 만들었을 뿐인 신인 감독들. 자크 드미, 아네스 바르다, 그리고 자크 로지에. 자크 드미는 1961년에 <롤라>를, 아네스 바르다는 다음 해에 <5시에서 7시의 클레오>를, 그리고 자크 로지에는 뒤늦게 <아듀 필리핀>(1962)을 만들었다. 고다르가 이 세 명의 영화감독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가 궁금하지만, 단지 기이한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들은 모두 해변과 바캉스를 좋아한 감독이었다. 근작인 <바르다의 해변>에서 알 수 있듯 아네스 바르다는 자신의 심상을 일련의 해변들로 채워버린다. 실제로 남 프랑스 어촌에서 그녀는 첫 번째 영화인 <라 포앵 쿠르트로의 여행>(55)을 촬영했다. 바르다의 해변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었다. 자크 드미는 낭트에서 태어나 도빌, 쉘부르, 칸느, 마르세이유, L.A. 등의 해변을 떠돌아다닌 작가였다. 마지막 남은 자크 로지에. 그는 로메르 이상으로 바캉스의 영화인이다. 데뷔작 <아듀 필리핀>을 시작으로 <오루에 쪽으로>(1973), <메인-오세안>(1985) 등의 세 편의 장편은 물론이고 단편 <블루 진>(1958)과 고다르의 <경멸>을 촬영하던 당시 바르도와 고다르의 관계를 담은 <바르도와 고다르>(1964), <파파라치>(1964)는 모두 해변가와 바캉스를 배경으로 한다. 바다와 섬, 바캉스를 왜 좋아하느냐의 질문에 로지에는 “바캉스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자유의 순간이다. 그리고 야외에서 촬영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바깥에서 촬영하기. 그리고 우리를 되돌아보는 것. 바캉스의 영화가 그러하다. 위대한 해변의 작가인 에릭 로메르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다. 첫 장편인 <사자좌>(1961)에서 로메르는 자신이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세느 강변과 물에 반사되는 햇빛의 인상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물과 하늘은 공기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소박한 배경이지만 그에게는 화면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원소였다. 자연을 더 풍성하게 담아내기 위해 그는 종종 촬영차 여름 해변에 내려갔다. <수집가>와 <클레르의 무릎>에서부터 <해변의 폴린느>를 거쳐 <여름 이야기>로 이어지는 바캉스의 영화들이 그렇다. 자연 덕분에 영화를 좋아한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이는 것처럼 유작인 <로맨스>(2007)를 만들면서 로메르는 원작의 무대인 포레 지방을 찾았다. 하지만, 산업개발로 자연파괴가 되어 동시녹음이 불가능해지자 새로운 촬영지를 찾기 위해 그는 3년의 시간을 허비했다고 한다. 바람과 자연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이 <로맨스>의 순수한 목적이기도 했기에 그랬다. 그에게 좋은 영화란 다만 있는 것을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영화 작가의 의도나 계획과는 무관하게 다만 눈앞에 있는 자연의 생생함을 필름에 새겨 넣는 일이 중요하다(물론, 로메르의 영화에는 그런 자연 앞에 노출된 생의 불안상태가 날카롭게 새겨지기도 한다. 시선에 노출된 클레르와 폴린느의 무릎과 다리. 혹은 <녹색광선>에서처럼 고요한 숲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인물들이 그러하다). 노출된 인간,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기록하는 기계적인 특성이 예술 이전에, 우선 기계인 영화의 독특성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적인 작가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야생성이 로메르 영화의 특징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1986)의 첫 에피소드에서 낡은 헛간을 개조한 시골소녀 레네트의 방에 초대된 파리지앵 미라벨은 창으로 보이는 전원의 풍경을 바라보다 툭 한마디를 던진다. 완전히 야생적이야. 민속학을 전공한 학생임을 감안할 때 도시녀인 미라벨은 시골녀인 레네트와의 만남을 다른 문화에 속하는 인간과의 만남,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원시성과의 만남으로 느끼고 있다. 이런 원시성과 야생성은 웨스턴의 대지를 떠나 남태평양으로 건너간 존 웨인을 그린 <도노반의 산호초>(1963)나 사춘기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앙드레 테시네의 <야생갈대>(1994)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영화가 바캉스를 떠난다는 것은 세계의 풍부함을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를 해변에 가져간다는 말이다. 바다는 없는 시골의 숲속이라 해도 상관은 없다. 요점은 미셸 투르니에가 말하듯 세계의 풍부함이 우리의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고레에다 하로카즈는 언젠가 자신이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한 작가임을 언급하며 세계의 풍부함과 만나는 도구로서 눈과 귀를 열어 두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바캉스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그런 태도를 존중한다. 작가의 구상에 개념적으로 선재하는 것들, 즉 시나리오, 대사, 데쿠파주, 스토리보드 등은 현실과의 만남에서 수정되고 보완될 것이다. 배우의 현실, 장소와 공간, 빛, 소리들의 현전성을 구상에 맞게 통제하기보다는 풀어놓고 자유롭게 해야 한다. 현실에 기인한 원시적이고 천연의, 가공되지 않은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 허우 샤오시엔은 자신의 태도를 이런 식으로 말했었다. ‘창의력은 항상 외부에서 온다. 내 영화는 나 자신과 외부의 진실 간의 만남에서 태어난다’. 바캉스 영화의 매혹은 이런 자연의 미학에서 기원한 것이다. 자크 로지에의 영화를 질투했던 트뤼포의 말을 변용하자면 뛰어난 바캉스의 영화는 촬영된 사건들의 무의미함과 우리들을 매혹하는 현실의 밀도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영화들이다.

 

앙드레 바쟁의 표현을 빌자면 바캉스의 시간은 (서구, 특히 프랑스에서라면) 일년 중에 11개월은 사라졌다가 때가 되면 한 달간 나타나는 반복의 시간이다. 이를테면 남프랑스의 해안에서 조수의 순환처럼 자연스럽게 반복해 되돌아오는 시간. 바로, 시에스타의 시간이다. 2006년부터 기획해 매년 여름에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를 개최한 것은 그런 반복의 시간 감각에서 영화들을 소환하는 작업이었다. 올해는 제대로 바캉스의 영화들과 만나려 했다. 물론, 모든 현실의 여행이 그러하듯 결과는 예측할 수 없었던 것. 접촉한 영화들은 많지만 여행지는 현실의 잔고를 고려해야만 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여전히 미지의 작가인 자크 로지에의 해변에서 이 바캉스가 그래도 시작되었으면 한다. 물론 그의 영화가 처음은 아니었다. 다만, 트뤼포가 로지에의 첫 장편 데뷔작 <아듀 필리핀>을 두고 ‘누벨바그의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 말했을 때 그의 위치는 분명했다.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을 도시가 아닌 여름의 해변으로 끌고 갔을 때, 영화 만들기의 관습적 문법을 따르지 않는 로지에의 모험(빅토르 에리세와 더불어 거의 10년에 한 편씩 장편을 만든 고유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로지에의 변함없는 무대는 해변이 되었다. 8월 말에 시작한 휴가를 즐기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두 번째 장편인 <오루에 쪽으로>에는 그럼에도 표면적으로는 특별한 구석이 없다. 지중해의 뜨거운 빛, 그것을 머금은 물결, 모래사장, 그리고 소녀들의 웃음이 전부다. 존 카사베츠의 <남편들>이 저주파 소리들로 가득한 영화라 말했던 것처럼 이 영화도 일견 의미 없어 보이는 소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필름에 담겨진 영화의 빛과 소리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이야기다.

 

이어지는 몇 편의 바캉스. 알랭 타네는 <백색도시>(1983)에서 리스본에 도착한 주인공 폴이 비추는 8밀리의 어슴푸레한 영상으로 대낮의 환영을 만들어낸다. 그는 마을에 도착해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일은 없다. 8미리 카메라에 담긴 영상 또한 특별할 것은 없다. 영화의 한 장면. 바에 들어가 카운터의 여성에게 맥주를 주문한 폴은 문득 벽에 걸린 시계가 거꾸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폴은 그녀에게 시계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녀는 엉뚱하게도 “아니요. 올바르게 움직이고 있어요. 반대로 세계가 거꾸로 움직이고 있죠”라 말한다. 시계를 모두 반대로 하면 세계도 올바르게 움직일 거라며. 폴이 돌아다니는 도시의 광경은 일종의 시네마틱한 사건과도 같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보고 감각하는 현실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전차처럼 그를 색다른 삶으로 운송한다. 그리고, 두 편의 청춘의 이야기들. 때는 알제리 독립전쟁이 마지막을 맞이하던 1962년. 프랑스 남서부의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앙드레 테시네는 <야생갈대>(1994)에서 시대의 비극을 반영한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젊음을 아름다운 자연과 빛으로 담아낸다. 장 으스타슈의 <나의 작은 연인들>(1974)은 그런 청춘 영화의 정점이다. 프랑스 남서부의 시골 마을 페삭(감독의 고향이기도 하다)을 배경으로 으스타슈는 부자유스러운 생에 노출된 어린 다니엘이 예민하게 감지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경우는 다르지만 사회주의 붕괴 이후 기억상실증에 빠진 수구선수의 이상한 이야기를 다룬 난니 모레티의 <빨간 비둘기>(1989)는 바캉스처럼 텅 빈 존재로 되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마지막은 로메르의 여름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 싶다. ‘난 아무 것에도,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바캉스를 보여주고 싶다. 그것은 무-존재의 순간. 그런 존재에 해당하는 여름이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는 한 명의 영화작가가 얼마나 사랑을 가지고 그의 전 생애 동안 영화를 만들었는가를 보여준다. 사랑에 굶주린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했고, 영화로 만난 여배우들을 사랑했고, 사랑을 추구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400번의 구타>에서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앙투안 드와넬은 거리를 쏘다니다 몰래 우유를 훔쳐 마시는데, 벽에는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굶주림을 그린 위대한 희극왕에 대한 경배의 표현이다. 동시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 소외되어 불량소년으로 떠도는 인물의 삶이 채플린이 창조한 부랑자 찰리의 삶과 만나는 순간이다. 트뤼포는 이런 식으로 상실의 삶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기획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었다.

 

트뤼포에게 영화는 수줍어하는 소년이 예쁜 소녀에게 고백하는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이다.그는 어린 시절 아벨 강스의 <잃어버린 천국>을 본 순간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전쟁 시기, 극장은 군인들로 들끓었다. 전선으로 떠나기 전 여자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온 군인들은 1차 대전의 비극을 그린 아벨 강스의 영화를 보며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그에게 어두운 극장은 감정의 제전이 벌어지는 장소이다. <앙투안과 콜레트>에서 앙투안은 극장과 유사한 음악 연주회장에서 건너편에 앉은 콜레트를 은밀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그녀에게 이끌린다. 관음증에 가까운 시선처럼 보이지만 요점은 극장의 어둠에 몸을 맡긴 수줍은 소년이 이러한 보기의 방식을 빌어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트뤼포의 영화에서 우리는 영상을 점점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아이리스 기법처럼 감정의 표현이 다양한 영화적 기제들, 효과들, 장치들을 경유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를 쏴라>에서 소심한 찰리의 감정은 건반과 현을 두드리는 해머의 무감한 메커니즘과 아이러니한 관계를 맺는다. 그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살결, 자신의 삶을 부드럽게 터치하지 못한다. <앙투안과 콜레트>에서 앙투안은 음악회에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음악과 소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은 그가 묵묵히 도자기처럼 레코드판을 굽는 긴 장면과 미묘한 관계를 맺는다. <도둑맞은 키스>에서 앙투안의 소심함과 주저, 수줍은 고백은 낭만적인 편지로 전달된다. 트뤼포는 지하 수도관처럼 보이는 긴 파이프를 따라 낭만적인 감정이 담긴 편지가 전달되는 과정을 길게 보여준다. 내밀한 감정을 표현의 기계적 메커니즘을 통해 전시하는 이러한 장면들은 트뤼포에게 영화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또 다른 강렬한 순간이 있다. <아메리카의 밤>에서 영화감독으로 분한 트뤼포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400번의 구타>의 레오를 떠올리게 하는 꿈속의 소년은 조셉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 속 소년처럼 거리를 걸어 나와 영화관에 걸린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의 포스터와 사진들을 훔친다. <개구쟁이들>에서도 그렇지만 트뤼포는 이미지를 훔치는 소년에의 매혹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거리의 소년은 그 자신의 순수한 이미지일 것이다. 소년이 훔치는 영화 포스터와 사진들은 그가 가져보지 못한 삶의 이미지들이다. 트뤼포는 삶에 관한 생각들 대부분을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얻었고, 영화의 역사, 과거와 현재를 시네마테크에서 배웠다고 고백한 감독이다. 영화는 그에게 삶보다 거대하고 매혹적인 것이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10년전에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한다는 걸 알리는 초청장을 꺼내보았다. 우연한 일이었다. 지난 달에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린 '파솔리니 특별전'에서 짧은 강연을 위해 내려가던 중 파솔리니에 관한 책 안에 이 초청장이 숨어있었다. 생각해보니 2002년 5월 10일 서울아트시네마가 정식으로 개관하기 바로전, 가칭 시네마테크전용관(아트선재센터)에서 '파솔리니 회고전'을 개최했었다. 당시에 나는 문화학교서울의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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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의 영화:

테렌스 데이비스의 '먼 목소리 조용한 삶'

 

 

  

 

 

1. 창문의 영화

 

 

 

 

 

 

 

 

 

 

 

 

 

 

 

 

 

 

 

 

 

2. 위태로운 어머니

 

이 영화의 오랫동안 남아있는 하나의 이미지. 엄마가 창틀에 매달려 창유리를 닦고 있다. 아이는 '엄마 떨어지면 안되'라며 맘을 졸이는데, 정작 엄마는 '다시 사랑이 찾아왔어요'라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어지는 것은 그러나 끔찍한 남편의 구타. 왜 '먼 목소리 조용한 삶'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슬픔처럼 기억에 남았을까. 테렌스 데이비스의 사적인, 지극히 미시적인 가족의 기억이 영화에 담겨있을 뿐인데. 위태로운 어머니의 모습...

 

 

 

 

 

3. 파문의 영화

 

 

 

 

 

 

 

 

 

 

 

 

 

 

 

 

 

 

 

4. 회자정리

 

 

 

 

 

 

 

 







천국은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베푼 혼인잔치의 상황과 같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문득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선택’이란 표현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2006년에 시작한 이 영화제는 참여하는 영화인들이 그들 각자의 영화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백지수표’라 부르는 이런 방식은 영화가 선택하는 영화인에 의해 소환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영화는 우리가 다 볼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렇기에 언제나 선택해 보는 사람에 의존하게 됩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영화의 진실입니다. 선택받는 영화가 있는 만큼 결국 선택받지 못하는 영화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낙원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이 초대에 응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 중에서도 일부만이 잔치에 참여합니다. 이 구절에 따르자면 이들 중에서도 아마 일부만이 택함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득 떠오른 이 구절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 ‘택함’입니다. 영화를 선택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나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 모두는 선택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보는 행위는 적극적인 선택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선택하고 있다는 말은 어쩐지 이상해 보입니다. 영화에 관한 한 우리는 언제나 피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아니라 영화가 우리들을 선택해 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세르주 다네가 시네필의 상황과 관련해 ‘우리의 유년시절을 지켜보았던 영화들’이라고 말할 때, 영화와 우리의 관계는 역전됩니다. 그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이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끄러미 스크린에 떠오르는 얼굴을 쳐다볼 때, 우리가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인지 혼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령, 이번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1925년에 만들어진 <황금광 시대>는 90여년의 시간 동안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관객은 영화의 초대에 응했던 손님들이고 그들 중 택함을 받은 이들이 다시 이 영화를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친구들의 선택은 거주할 장소를 잃어버린 영화를 시네마테크라는 장소에 입양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왜 영화들을 이곳에 입양하려 할까요? 다네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영화들이 보답으로 우리를 입양해주기 바라서입니다. 영화의 천국에 택함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영화가 우리를 지켜보았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 아닙니다. 시네마테크가 처음 문을 연 것은 우리들의 의지일 수 있겠지만, 그 이후의 모든 일들은 결국 영화가 해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영화들 덕분에 시네마테크는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재정적 지원이나 친구들의 후원, 관객들의 노력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곳은 유지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해에는 ‘이번이 마지막 영화제일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치렀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올해에도 영화제가 열리는 것은 영화가 우리를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영화만이 아니라 시네마테크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2012년은 시네마테크가 개관한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10년은 되돌아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영화의 오랜 역사를 반복해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교훈은 이런 것입니다. 당연히 존재하는 영화란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제를 치르는 것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 언제나 수십 편의 영화들을 목록에서 지우는 것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부재와 마주하면서 만이 영화의 존재를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10년의 시간이 의미를 지닌다면 결국 이제 우리를 지켜볼 수 있는 영화들을 얻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글|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식민지 치하의 조선에서는 '시적 리얼리즘' 혹은 '사회적 판타지'라 명명된 1930년대 프랑스 영화들이 대거 수입되어 관객들의 사랑을 얻었다. 자크 페데나 마르셀 카르네의 영화, 줄리앙 뒤비비에의 <망향>(1936), <무도회의 수첩>(1937)과 같은 작품들이 특히 대중적 인기를 얻었는데, 가령 작가인 김남천은 <망향>(첫 개봉 제목은 <페페 르 모코>이었지만, 전후에 재개봉할 때 <망향>이란 제목으로 바뀌었다)을 본 후의 소감을 소설에서 이런 식으로 기술한다. “어떤 날 오후, 봄이라지만, 아직도 치위가 완전히 대기 속에서 가시어 버리지 않은 날, 나는 영화 상설관에서 <페페 르 모코>를 구경하고 일곱 시경에 거리에 나섰다. 저녁을 먹어야 할 끼니때가 이미 지났으나, 곧 뻐스에 시달리면서 집으로 향할 생각을 먹지 않고, 어데 그늘진 거리나 거닐면서 지금 보고 나오는 토키가 주는 아름다운 흥분을, 고지낙하니 향락하고 싶어서, 나는 발을 뒷골목으로 돌려놓았다. 서울의 빈약한 거리를 걸으면서도, 나의 상념의 촉수는 ‘카즈바’의 소란하고 수상스러운 세계를 헤매고 있었다. <페페 르 모코>가 소프트의 뒷전을 추켜서 머리에 올려놓고, 줄이 반뜻한 양복에 색 구두를 신고, 목에는 명주 수건을 얌전히 둘러 감고서, ‘카즈바’의, 소굴을 탈출하야 계집을 찾아 부두로 향하던 그림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필름 누아르라는 표현은 원래 1930년대 프랑스의 시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시적 리얼리즘 영화 대부분은 파리의 노동자등의 하층계급에 의한 도시적 드라마가 주를 이루면서 인물의 파멸이나 절망을 강조한 연애, 범죄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한 범죄 소설의 전통을 계승했다. 특히 조르주 심농과 당시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들이 영감의 원천이었다. ‘시적’이란 표현에서의 이 영화의 시정은 그래서 일상적인 사물, 배경, 환경, 분위기 등에 있다. 대표적인 작가였던 마르셀 카르네와 시인 자크 프레베르는 현대 도시의 산업지역에서 길을 잃어버린 19세기 말의 낭만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기질은 회색빛 색조의 우울한 세계에 가까웠다. 그의 영화에서 선한 자들은 종종 범죄를 저지른다. 이는 반항이나 사랑과 같은 우발적 이유 때문이었고, 악인들은 추상적인 범죄자들이 아니라 사악하고 비열하며 사기꾼에 탐욕스럽기까지 하다. 불한당들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반면 실패는 언제나 선한 자들의 운명이었다. 아마도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가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들에게 어필했던 것이리라.

이렇듯 1930년대 프랑스 영화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일치감치 친숙했다. 사실 40대를 넘긴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마도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이들의 작품 한두 편을 시청했던 공동적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 영화의 비관주의는 인민전선의 희미한 희망이 사라진 시점의 불안한 정신사를 반영하는 것이라 말해진다. 정치적 불안정과 임박한 전쟁의 위협,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배신과 회의, 이런 식으로 모든 희망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때 개인적인 반항(때로는 거의 자살에 이르는 시도) 외에는 달리 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 몰락을 씁쓸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었다.

1930년대 프랑스는 격변으로 치닫던 때이다. 글로벌한 경제적 위기를 겪었고, 정치적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대중들의 열망을 사로잡고 있었다. 프랑스 영화는 당시 아방가르드에서 대중적 영화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전의 대담한 실험가들이 좌파 인민전선과 결합했지만, 이내 좌절로 끝났고 어두운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다양성과 프랑스 제작의 양질의 전통에 따르자면, 이 시기 마르셀 카르네, 르네 클레르, 줄리앙 뒤비비에, 자크 페이데르, 사샤 기트리, 마르셀 파뇰, 장 르누아르, 장 비고 등의 작가들이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게다가 사운드의 도래로 프랑스 영화가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변화를 겪던 때인데, 문화적 비관주의와 산업적인 파멸의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영화산업을 표준화시켰고 로케이션 촬영은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대신 영화제작이 스튜디오의 통제 가능한 환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30년에서 누벨바그 직전의 30년간은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로 제작편수로 보자면 일종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3,094편의 극영화가 만들어졌는데, 1930년대에 1,305편, 1940년대에 807편, 그리고 1950년대에 982편의 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고전기’라는 표현은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주의를 요한다. 가령, 이 시기를 연속성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을까? 전전과 전후로 이 시기를 구분해야 할까? 앙드레 바쟁은 이와 관련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종전의 시기가 아니라, 1941년에 프랑스 영화의 단절의 시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 시기가 비록 전쟁의 기간이긴 했지만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전전 프랑스 영화의 위대한 거장들인 장 르누아르, 르네 클레르, 줄리앙 뒤비비에 등이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연속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대적 차이와 미학적 견지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명백하게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어떤 식으로 시대를 구분하던 이 시기는 누벨바그의 도래와 비교하자면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로 불리어질만하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들(세계 경제위기, 인민전선, 2차 대전, 냉전 등)이 있었고, 영화의 중요한 기술적 혁신(사운드와 컬러의 도래)이 있었다.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작가 영화와 대중(주류)영화의 구분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전후의 젊은 비평가들은 ‘작가정책’이라는 표현으로 이 시기의 주류 영화들 가운데 ‘작가’를 구분하려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영화는 이 시기 할리우드 영화처럼 장르성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스릴러, 사극 등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있었고 배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영화의 대부분은 게다가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프랑스의 고전기가 할리우드의 고전적 규범과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학자인 지네트 뱅상도는 이 시기의 프랑스 영화를 ‘스펙터클의 예술’이라 불렀다. 이는 몇 가지 중요한 미학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 정교한 음악과 대사, 뮤지컬적인 퍼포먼스가 있다. 둘째, 섬세한 편집과 긴 카메라의 움직임이 활용되고 있었다. 가령, 줄리앙 뒤비비에, 장 르누아르, 막스 오퓔스 등의 영화는 할리우드의 보편적 리듬과 속도와 상이한 섬세한 편집과 연극적이고 뮤지컬적인 전통에서 기원한 느린 리듬의 카메라 움직임이 있었다.

시적 리얼리즘은 또한 대중주의적 멜로드라마, 사회적 판타지, 누아르 리얼리즘, 로맨틱한 페시미즘, 마술적 리얼리즘 등의 다양한 표현들을 내포한 새로운 형식의 리얼리즘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서정의 시학으로 끌어올리는 시적 리얼리즘은 바쟁이 카르네의 영화를 두고 지적했듯이 특별히 인물들의 주변을 둘러싼 사물과 환경의 역할을 탐구했다. 가령, <망향>에서 장 가뱅이 마지막 밤을 보낼 때에 그의 운명적 상황과 과거를 지시하는 것은 테디베어, 자전거, 거울, 브로치, 담배들과 같은 시시한 사물들이다. <북호텔>(1938)에서 시학을 구성하는 것은 감상적인 노래들과 대사들, 독일 촬영술에 근거한 표현주의적 조명, 파리의 아름다운 환유를 제공한 노스탤직한 세트 디자인들이다. 시적 리얼리즘의 미학은 그래서 창조되고 양식화된 시각적 구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프랑스 고전기의 사멸은 이러한 시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화의 등장이라 말할 수 있다. 바쟁의 표현을 빌자면 ‘시적’인 것에서 ‘사실적’인 것으로의 변화가 전후의 프랑스 영화에서 등장한다. 시적 리얼리즘을 계승하고 넘어선 두 종류의 사실적인 장르가 있었다. 그 하나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 앙리 베르뇌유, 클로드 오탕 라라의 누아르 심리학적 드라마가 있다. 이들의 영화는 개인의 심리학에 근거한 범죄 드라마들이다. 이전의 범죄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사랑이 더 이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혼성의 상실이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자크 베케르, 줄스 다신, 장 피에르 멜빌이 창조한 황혼의 갱스터 영화들이다.

누벨바그의 도래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의 명백한 단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계승과 영속성의 관점에서 프랑스 고전기의 영화들은 이후의 영화들에 거대한 영향을 행사했다. 비평의 새로운 시작도 이러한 변경의 과정에서 발생했다. 가령, 바쟁의 영화비평은 점령기 프랑스 영화들의 비평에서 시작해 마르셀 카르네, 장 그레미용, 줄리앙 뒤비비에의 영화들을 세심하게 분석했다. 또한 ‘사실적인 미학을 위하여’, ‘영화적 비평을 향해서’, ‘대중을 창조하기’, ‘리얼리즘에 대하여’, ‘영화와 대중 예술’ 등의 비평적 에세이가 이 시기의 영화들에서 나왔다. 바쟁은 1943년에 쓴 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 예술은 창조 그 자체이다. 이제 영화를 재발견하자!’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이제 고전기 프랑스 영화들을 재발견하자! 이 특별전은 그 첫 시작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하워드 혹스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이 영화와 관련해 깊은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 하워드 혹스는 할리우드의 ‘사내중의 사내’라 불렸던 감독으로 남성들 간의 유대를 찬양했던 인물이다. 그는 ‘와일드 빌’ 월맨과 오토바이를 즐기고, 윌리엄 포크너와 비행을,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낚시와 사냥을 즐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마초니즘의 작가였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런 식의 ‘여성 버디무비’를 만들 수 있었을까?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두고 의문을 제기했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혹스의 작가성을 논의하기 위한 뇌관과도 같은 작품인 것이다. 혹스는 이 영화로 당시 주류 할리우드가 구축한 안정적인 젠더 정체성을 불안 투성이의 모호한 세계로 뒤바꾸어 놓았다. 혹스적인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들이 게다가 남성적 우주의 신성함과 권위를 조롱한다. 그런 점으로 이 영화는 <베이비 키우기>(38)와 <나는 남성 전쟁신부였다>(49), <몽키 비즈니스>(52)의 연장선상에서 논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1925년에 발표된 아니타 로스 원작의 동명소설은 발표 즉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다음해 소설을 희곡화한 무대극도 호평을 얻었고 1949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상연되어 대히트를 기록했다. 혹스의 영화는 원작의 20년대를 소비주의 시대의 50년대로 변경했고 뉴욕의 나이트클럽의 인기 댄서 로렐라이(마릴린 먼로)와 도로시(제인 러셀), 두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로렐라이는 부호의 아들 거스와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지만 거스 아버지의 반대로 여의치 않다. 로렐라이는 도로시와 호화 여객선으로 파리로 향하지만 선상에서 로렐라이가 유혹한 광산왕의 아내가 준 다이아몬드를 몰래 챙겨 둘은 말썽에 휘말린다. 그 와중에 도로시는 로렐라이를 감시하는 탐정 말론에게 마음이 끌린다.

로렐라이는 "다이아몬드가 최고의 친구다"라고 노래 부르고 반대로 도로시는 결혼의 제일 조건이 사랑이라 믿는다. 먼로가 연기한 로렐라이는 당시 할리우드가 준수해온 도덕 가치관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아들의 돈 때문에 결혼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는 부친에게 로렐라이는 "부자의 남자는 미인의 여자와 같아요. 당신은 자신의 딸을 가난한 사람과 혼인시키고 싶은가요? 그것을 내가 바라면 안 되는 건가요?" 라고 당돌하게 반문한다. 이만큼 ‘현실적인’ 해피엔드로 끝나는 영화를 찾기도 쉽지 않다. 부도덕한 결말처럼 보이지만 마릴린 먼로의 천진난만함의 승리라 여겨도 좋을 것이다.

혹스의 세심한 연출은 눈여겨 볼만하다. 가령 영화의 첫 장면, 화려하게 보석으로 장식한 제인 러셀과 마릴린 먼로가 처음 등장해 붉은 세퀸으로 장식한 가운을 입고 ‘우리는 리틀락 출신의 두 미녀’라고 노래 부르는 순간은 영화 전체를 예시한다. 이들은 리틀락에서 남자들에게 상처를 입었고 뉴욕에 와보니 어디나 남자들은 똑같다고 노래한다. 이어 ‘신사분을 찾아요. 내성적이던 활발하던 키가 크던 작던 나이에 상관없이 부자라면 돼요’라고 노래하는데 이들이 나중에 만나게 될 사람들이다. 로렐라이는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숭배자인 에스먼드의 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보고 틀림없이 반지를 넣은 상자가 있음을 눈치 챈다. 그녀의 다이아에 대한 몰두는 선상에서 늙고 볼품없는 페기의 얼굴에서 거대하고 반짝이는 욕망 가득한 다이아를 떠올릴 때 거의 추상적인 수준에 달한다. 그녀는 남성에의 섹스와 사랑의 욕망을 돈과 다이아몬드로 대치한다. 낭만적인 사랑의 논리보다 자본주의 논리가 제공하는 조건에서 남성과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가장 하드 보일드한 로맨틱 코미디인 셈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한 혹스의 문제작이다. (김성욱)





영화제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늘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영화의 역사를 영화를 보며 체험하고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그런 걸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영화의 역사는 교과서에 기록된 사실들의 역사라기보다는 영화가 이룬 역사이자 영화들이 맺는 관계들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네바캉스서울 영화제'에서 '천국의 웃음'이란 섹션에서 소개하는 로맨틱한 코미디에서도 그런 관계의 역사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에른스트 루비치와 빌리 와일더. 이 두 감독의 영화를 하루에 함께 보는 경험은 그런 내밀한 관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상대적으로 와일더의 코미디 중에서 덜 알려진 <하나, 둘, 셋>은 사실 역사적으로 더 각별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만들어진 1961년, 이 시기 동독은 자국민의 서독으로의 이주를 금지하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세웠고, 와일더는 그런 철의 장막이 만들어지기 바로 직전에 동독과 서독의 경계지대를 무대로 정치적인 풍자가 가득한 이 코미디를 만들었습니다. 빌리 와일더가 1961년 6월 베를린에서 이 영화를 촬영할 때 동독의 발터 울르리히트는 ‘동서독 사이에 장벽을 세울 의향이 전혀 없다’고 공언했었지만 영화 촬영이 끝난 두 달 뒤인 8월 13일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기에 사실 이 영화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의 시점을 반영하는 아주 각별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영화의 형식과 내용 대부분은 남녀의 티격태격 사랑이야기를 다룬 스크루볼 코미디입니다. 러시아와 동유럽의 철의 장막을 뚫고 코카콜라를 판매하려는 야심을 지닌 서독의 코카콜라 지사장인 맥나마라(제임스 캐그니)는 어느 날 미국본사 사장으로부터 서독으로 놀러온 사장의 딸 스칼렛을 돌봐달라는 요청을 받는데, 이 말괄량이 딸은 매일 저녁마다 동독으로 월경을 시도해 동독의 공산주의자 청년인 오토와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맥나마라는 망연자실, 급기야 사장이 딸을 만나기 위해 서독을 방문한다는 전갈을 받고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맥나마라는 오토를 순수한 혈통, 뼈대있는 가문의 자식으로 둔갑시켜 위기를 모면하려 하면서 일대 소동이 벌어집니다. 

 

<하나 둘 셋>의 즐거움은 동독 공산주의 청년과 미국 소녀 간에 벌어지는 엉뚱한 사랑이야기에 자본주의자인 맥나마라와 공산주의자 젊은이 오토가 벌이는 일대 설전에서 빛을 발합니다. 당시 동서독간에 끓어오르고 있던 긴장의 분위기가 이들이 벌이는 말다툼의 배경을 이루기에 이 영화에는 ‘양키 고 홈’이나 ‘후르시쵸프를 지옥으로’ 또는 ‘프랭크 시나트라를 지옥으로’ 같은 격렬한 구호들이 등장하고, 이런 소동은 살인적인 속도로 진행되는 대화, 시끄럽고 정신없이 진행되는 사건으로 영화의 템포를 계속 '업up'해가기에 다소 의아스런 제목 '원, 투, 쓰리'가 정확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 영화는 정말 코미디의 '속도'가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냉전과 동서독의 경계지대를 배경으로 한 와일더의 코미디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텐데, 이 점은 오히려 루비치의 영화 <니노치카>(1939)를 보시면 좀더 흥미를 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빌리 와일더는 <니노치카>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런 점에서 <니노치카>에서 니노치카의 동료인 세 명의 소련 당원들은 곧바로 <원 투 쓰리>에서 맥나마라의 사업 파트너인 러시아인 3인방을, 소련 공산당원인 니노치카는 그녀보다 아주 교조적이긴 하지만 동독 공산당원 오토와 닮아 보입니다. 이러한 유사성은 이 두 편의 시나리오를 와일더가 직접 작성했다는 점만이 아니라 그의 영화에 미친 루비치의 영향력, 특히 영화적 위트와 스타일을 고려할 때 좀더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니노치카>의 시나리오를 쓸 때 와일더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공산주의자 이데올로기의 정당성 유무가 아니라 그들의 유머감각의 부재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여긴 공산주의자의 문제는 '잘 웃지 않는다'는 것이고 남을 '웃기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니노치카>에서 이러한 특징은 절대로 웃지 않는 니노치카(그레타 가르보)의 캐릭터에서 적절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와일더가 보기에 이런 사정은 <하나 둘 셋>을 만든 1961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하나, 둘 , 셋>에서 공산당원인 동독 젊은이 오토는 그래도 사랑스러운 니노치카에 비하면 정말 버럭 목소리만 큰 인물입니다.

 

와일더는 루비치와 작업하면서 루비치의 독특한 '스타일', 즉 이른바 '루비치 터치'라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드리죠. 빌리 와일더는 <니노치카>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어떻게 소련 당원인 그레타 가르보가 자본주의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가를 영상으로 표현할지에 대해 무척 고민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루비치는 와일더에게 '그럼, 모자를 사용해보지'라고 말했답니다. 그러니까 <니노치카>에서 '모자'와 관련한 에피소드, 즉 시나리오를 쓴 와일더가 고백하기를 <니노치카>의 핵심적 요소인 것은 루비치의 아이디어였던 겁니다. 더는 말씀 안드리죠. 영화를 보시면 그 '터치'가 무엇인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니노치카>에는 정말 요즘말로 하자면 '므흣'한 대사들이 즐비한데, 특히 보석을 팔기 위해 파리에 머물고 있는 러시아 스파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건너온 냉정한 스파이 니노치카(그레타 가르보)가 파리의 자본주의 문명과 처음 만나면서 겪는 해프닝이 정말 재밌습니다. 파리의 기차역에 도착한 니노치카는 자신의 가방을 운반하려는 짐꾼에게 ‘왜 남의 가방을 운반하려는 겁니까'라고 까칠하게 묻죠. 짐꾼이 습관처럼 ‘그게 원래 제 일입니다, 마담’이라 대답하자, 가르보는 짐꾼에게 그건 당신일이 아니라 자본주의사회의 불공평 때문이라 단호하게 말한다. 이어지는 짐꾼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가르보에게 그는 ‘마담, 그거야 팁에 달린 거죠’라 말합니다. 뭐 말로 이렇게 하는건 재미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영화를 꼭 보세요.

 

<원, 투, 쓰리>가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바로 직전에 만들어진 영화라면 <니노치카>는 전전의 파리, 그러니까 2차대전이 발발하기 바로 직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니노치카>의 서두에 나오는 '이 영화는 황금기의 파리 이야기이다. 사이렌 소리는 공습 경보가 아니라 사랑스런 아가씨의 목소리였고 프랑스 사람들이 전등을 끄는 이유는 소등 경보 때문이 아니었다'라는 자막은 정말 의미심장합니다.(루비치의 <죽느냐 사느냐> 또한 그런 영화였죠.)

 

 

 

 

 

빌리 와일더와 에르스트 루비치, 이 두 선수들의 영화를 비교하는 것도 재밌지만, 또 <니노치카>에 출연한 그레타 가르보를 '불멸의 스타' 섹션에서 상영하는 루벤 마믈리안의 <퀸 크리스티나>에 출연한 그레타 가르보와 비교해 보는 것도 무척 흥미있는 일입니다. 그레타 가르보가 출연한 영화들 중 <퀸 크리스티나>는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 영화의 그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에도 삽입되기도 했죠. 하루 밤을 보낸 크리스티나, 즉 그레타 가르보가 남자에게 '이 방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미래의 내 기억 속에 이 방을 정말 말이 떠올릴것 같네요.'라 말하면서 방안을 돌아다니며 물건 하나 하나에 손길을 던지는 장면은 영화를 볼 때 정말 숨 막힐 듯한 순간을 창조합니다. 이 순간의 가르보의 클로즈업은 정말 롤랑 바르트가 표현한 대로 '경외로운 두려움 그 자체'를 불러일으킵니다. 전설적인 촬영감독 윌리엄 다니엘스의 빼어난 촬영이 정말 볼 만합니다. (이번에 상영하는 루비치의 <니노치카>와 <모퉁이 가게>도 윌리엄 다니엘스가 촬영을 했죠.) 영화학자인 벨라 발라즈는 가르보의 아름다움을 두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채플린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처연한 아름다움'이라 예찬한 바 있습니다.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는 '시네바캉스서울 영화제'는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주 색다른 영화들의 관계들의 역사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주말 서울은 정말 더울 거라 하더군요. 하지만 루비치와 와일더, 그리고 그레타 가르보를 대형 스크린에서 만나는 체험을 꼭 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정말 꼭 꼭 ! 가르보의 얼굴을 대형 스크린에서 만나보세요. 사실, <퀸 크리스티나>를 극장에서 틀어보는 것은 개인적인 소망중의 하나였죠. (혹 누군가는 그냥 대중적인 오락영화라 치부할 수 있을 테지만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뭉클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클로즈업이 뭔지 백날 이야기하는 것보다 가르보의 얼굴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는 체험이 아마도 그것의 역사와 미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을 제공합니다. (위의 가르보의 얼굴을 대형 스크린에서 만난다고 상상해 보세요..) 좀더 부언하자면 가르보의 얼굴을 <샤레이드>의 오드리 햅번의 얼굴과 비교해 보시면 영화의 역사에서 초상학의 두 시대, 예컨대 경외로운 두려움에서 매력으로의 변화와 이행의 미학과 역사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흠...짧고 간결하게 쓰려던 처음의 생각이 영화 이야길 하다보니 자꾸 길어지네요..ㅠ (김성욱)


'프리츠 랑의 아메리카 특별전'이 이번주로 끝납니다. <블루 가디니아>를 제외하면 한번씩은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지난번 오승욱 감독님과의 시네토크에서도 서로 나눈 이야기이지만 프리츠 랑의 미국영화는 독일시절의 영화들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매혹적입니다. 가능한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점점 급진적인 페시미즘의 세계로 빠져든 프리츠 랑의 50년대 영화들이 그러합니다. <빅히트>나 <도시가 잠든 사이에>를 보면 밀통과 음모, 시스템과 파워게임, 기계장치들의 표면과 깊이의 드라마가 아주 탁월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영화의 묘미는 '스토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스토리 '텔링'에 있습니다. <도시가 잠든 사이에>을 보는 즐거움이나 놀라움은 살인자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는 랑의 작법에, 그리고 <빅히트>의 특별함은 영화의 첫 시퀀스에 이미 내재해 있습니다. 예술가로, 펄프픽션의 스토리텔러로, 때로는 엔터테이너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고민해야만 했던 미국시절의 프리츠 랑이 만든 영화는 현재에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을 위한 추천작은 이미 영화를 보신 다른 분들이 해주셨으면... 저로서는 50년대 랑의 모든 영화를 가능한 다 보셨으면 합니다. 쉽게 볼 수 있는, 극장에서 볼 기회가 많은 영화들이 결코 아닙니다.   

가을에는 시네마테크에서 그동안 묵혀두었던 영화강좌를 개설합니다. 예전 '카페 뤼미에르'라는 제목으로 일본영화와 아메리칸 시네마를 강좌를 통해 살펴본 적이 있었고, 영화제가 열리면 매번 시네토크'나 '관객과의 대화'시간을 준비하긴 하지만 영화에 대해 좀더 꾸준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라면서 10월 17일부터 매주 수요일 7시 30분 부터  10번에 걸쳐 '영화의 매혹'을 살펴보는 연속강좌를 준비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공지를 통해 나가겠지만,  미리 예고해 드리자면 이번 연속강좌는 영화와 시각성(주은우), 막스 오퓔스의 무대위의 삶과 이동하는 카메라(홍성남), 자크 투르뇌르의 영화미학(이수원), 영화에서의 미술(정은영), 루키노 비스콘티와 멜로드라마(한창호), 한국영화와 모더니티(김소영), 살인의 해부: 1960년대말 미국/일본/프랑스 액션영화 커넥션(오승욱), 구로사와 기요시의 복수연작과 장르성(김영진), 마이클 만과 아메리칸 시네마(김성욱), 영화와 테크놀로지: 공각기동대와 매트릭스(이정우) 등, 철학자, 사회학자, 영화비평가, 영화감독 등이 참여해 각각의 주제로 이와 관련한 영화장면의 클립들을 함께 보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이번 강좌를 통해 시네마테크에서 영화애호가들끼리의 나름의 커뮤니티가 또한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김성욱)


2007/10/2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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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삶  (0) 2011.08.24

아마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듯 해서, 그리고 11월 소식지에 나가겠지만 미리 말씀드리자면, 11월에 열리는 '브라질 영화제'는 브라질의 신영화(시네마 노보)를 기념하는 영화들을 상영합니다. 지난 해에 <마쿠나이마>를 이미 상영한 바 있는데, 보통 트로피컬리즘이나 카니발리즘이라 불리는 시기로 넘어가기 전 단계의 시네마 노보의 대표적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을 상영합니다. 작품에 다소 변동이 있긴 하겠지만(그래서 추가되는 작품이 생길 수 있는데), 현재 확정된 작품은 5편입니다. 글라우버 로샤, 넬슨 뻬레이라 도스 산토스의 영화, 그리고 로게리오 칸젤라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글라우버 로샤는 조금이라도 영화사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은 아실테지만(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글라우버 로샤 회고전에서 작품을 일부 보신분들이 있을 테고요), 글라우버 로샤의 대표적인 작품 두 편 <검은 신, 하얀 악마>(1964)와 <고뇌하는 땅>(1967)이 상영됩니다.(그런데 <안토니오 다스 모르테스>는 안트나요? 흠.. 왜 안 그러고 싶겠습니까만...) 대신 좀더 주목해주셨으면 하는 작품이 넬슨 뻬레이라 도스 산토스의 두 편의 영화 <황폐한 삶>(1963)과 <사랑의 갈구>(1968)입니다. 도스 산토스는 프랑스 이덱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돌아와 초기 시네마 노보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낸 탁월한 작가입니다. 그리고 로게리오 칸젤라라는 당시 23살의 나이에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B급 영화의 풍으로 만든 <레드 라이트 밴디트>(1968)란 영화가 상영됩니다. 로셀리니, 풀러, 키튼, 혹스, 고다르의 영화를 이 한 영화 안에 녹아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이 과대망상인지 아닌지... 아, 이 영화 극장에서 보면 어떨까 궁금합니다.

아마도 눈치가 빠른 분들은 이미 아실테지만, 요 몇년 사이에 서울아트시네마는 60년대 세계영화사에서 혁명적인 영화들을(꼭 정치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서울아트시네마를 가끔 방문하지 마시고 끈질기게 찾으시면 각자 나름의 영화사(들)을 스스로 구성해낼 수 있을 겁니다.) 틀고 싶은 작품들을 원하는 대로 다 틀 수는 없는 조건이기에 작품의 셀렉션에 늘 아쉬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그 몇편 들을 통해서라도 이 시기의 정말로 생산적이고 폭발적인 영화의 기운들을 꼭 체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시네마 노보를 기다리시는 분들은 더 자세한 사항들이 곧 공지로 나올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김성욱)   


2007/11/0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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