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혹스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이 영화와 관련해 깊은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 하워드 혹스는 할리우드의 ‘사내중의 사내’라 불렸던 감독으로 남성들 간의 유대를 찬양했던 인물이다. 그는 ‘와일드 빌’ 월맨과 오토바이를 즐기고, 윌리엄 포크너와 비행을,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낚시와 사냥을 즐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마초니즘의 작가였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런 식의 ‘여성 버디무비’를 만들 수 있었을까?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두고 의문을 제기했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혹스의 작가성을 논의하기 위한 뇌관과도 같은 작품인 것이다. 혹스는 이 영화로 당시 주류 할리우드가 구축한 안정적인 젠더 정체성을 불안 투성이의 모호한 세계로 뒤바꾸어 놓았다. 혹스적인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들이 게다가 남성적 우주의 신성함과 권위를 조롱한다. 그런 점으로 이 영화는 <베이비 키우기>(38)와 <나는 남성 전쟁신부였다>(49), <몽키 비즈니스>(52)의 연장선상에서 논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1925년에 발표된 아니타 로스 원작의 동명소설은 발표 즉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다음해 소설을 희곡화한 무대극도 호평을 얻었고 1949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상연되어 대히트를 기록했다. 혹스의 영화는 원작의 20년대를 소비주의 시대의 50년대로 변경했고 뉴욕의 나이트클럽의 인기 댄서 로렐라이(마릴린 먼로)와 도로시(제인 러셀), 두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로렐라이는 부호의 아들 거스와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지만 거스 아버지의 반대로 여의치 않다. 로렐라이는 도로시와 호화 여객선으로 파리로 향하지만 선상에서 로렐라이가 유혹한 광산왕의 아내가 준 다이아몬드를 몰래 챙겨 둘은 말썽에 휘말린다. 그 와중에 도로시는 로렐라이를 감시하는 탐정 말론에게 마음이 끌린다.





로렐라이는 "다이아몬드가 최고의 친구다"라고 노래 부르고 반대로 도로시는 결혼의 제일 조건이 사랑이라 믿는다. 먼로가 연기한 로렐라이는 당시 할리우드가 준수해온 도덕 가치관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아들의 돈 때문에 결혼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는 부친에게 로렐라이는 "부자의 남자는 미인의 여자와 같아요. 당신은 자신의 딸을 가난한 사람과 혼인시키고 싶은가요? 그것을 내가 바라면 안 되는 건가요?" 라고 당돌하게 반문한다. 이만큼 ‘현실적인’ 해피엔드로 끝나는 영화를 찾기도 쉽지 않다. 부도덕한 결말처럼 보이지만 마릴린 먼로의 천진난만함의 승리라 여겨도 좋을 것이다.



혹스의 세심한 연출은 눈여겨 볼만하다. 가령 영화의 첫 장면, 화려하게 보석으로 장식한 제인 러셀과 마릴린 먼로가 처음 등장해 붉은 세퀸으로 장식한 가운을 입고 ‘우리는 리틀락 출신의 두 미녀’라고 노래 부르는 순간은 영화 전체를 예시한다. 이들은 리틀락에서 남자들에게 상처를 입었고 뉴욕에 와보니 어디나 남자들은 똑같다고 노래한다. 이어 ‘신사분을 찾아요. 내성적이던 활발하던 키가 크던 작던 나이에 상관없이 부자라면 돼요’라고 노래하는데 이들이 나중에 만나게 될 사람들이다. 로렐라이는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숭배자인 에스먼드의 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보고 틀림없이 반지를 넣은 상자가 있음을 눈치 챈다. 그녀의 다이아에 대한 몰두는 선상에서 늙고 볼품없는 페기의 얼굴에서 거대하고 반짝이는 욕망 가득한 다이아를 떠올릴 때 거의 추상적인 수준에 달한다. 그녀는 남성에의 섹스와 사랑의 욕망을 돈과 다이아몬드로 대치한다. 낭만적인 사랑의 논리보다 자본주의 논리가 제공하는 조건에서 남성과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가장 하드 보일드한 로맨틱 코미디인 셈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한 혹스의 문제작이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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