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나요? 

열 평 남짓한 극장 로비에 앉아 질문하던 이들에게 그가 되물었다. 창문 너머로 느릿느릿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가 다시 물었다. 영화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나요?
방금 전까지 우리는 일본 영화관의 폐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말을 이었다. “대체로 극장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이게 바로 방금 전의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의 젊고 활력 넘치는 목소리에 안경 너머 부드러운 눈빛은 여전했다.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도 했다. “영화관을 운영하면서 무엇이 가장 큰 고민이고, 어떤 일이 괴로웠나요? 활동하면서 즐거운 일이 무엇이었나요?”
2016년 2월의 어느 밤. 나고야에서 그를 만났다. 마지막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난 1월, 그가 쉰 일곱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1983년 개관 당시에는 직원으로 참여해, 1987년부터 근 삼십 년 넘게 나고야 시네마테크의 지배인으로 일했던 히라노 유지. 시네마테크라고는 하지만 이마이케역 근처 평범한 주상복합빌딩 이층에 세들어 있는 사십 석 규모의 미니시어터다.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영화란 영사기와 흰 벽만 있으면 상영 가능하다. 문제는 늘 다른 곳에 있다. 꼬박꼬박 월세를 내야 하고 상영할 영화들을 수급해야 한다. 이제는 나고야에도 서너 개의 예술영화관이 있으니 극장들이 서로 각자의 상영 밸런스를 유지해 고유의 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데뷔 감독이 유명해져서 차기작을 다른 큰 극장으로 들고 가버리면 다른 감독을 찾으면 된다고 여긴다. 다른 영화들, 다른 감독들이 여전히 있기 마련이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 극장들이 각자 상영에서 개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란 있을 리 없다. 그는 백 명이 보면 백 명 모두 만족할 만한 영화로는 작가성이 성립될리 없다고 말한다. 열명이 보면 그중 다섯 명이 ‘좋은 영화’라고 말하더라도 나머지 다섯 명이 ‘좀 그렇네’ 혹은 ‘뭐야, 이거’라고 말할 영화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야 작가가 출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관객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것도 아닌 영화관. 덧붙이는 그의 말. “그러니까, 이 일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영화도, 영화관도 그렇다고 마음만으로는 충분할 리 없다. 그도 개관 스무 해를 맞이할 무렵에는 각각 백 석, 사십 석 규모의 두 개관 모델의 시네마테크를 마련할 생각도 있었다. 세 들어 사는 단관 극장으로는 새로운 세기에 적응하기 어렵다. 최소한 두 개관의 운영으로, 각각 규모 있는 작품과 수지가 맞지 않을 마이너한 영화들을 동시에 공개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지만, 꿈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극장 구석구석의 벽면에는 상영했던 영화 포스터와 극장을 방문한 영화인들의 사인이 적힌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친필 사인도 있다. 감독이 극장을 깜짝 방문했던 일을 그는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가 쓴 글에서 사연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3년 <텐>을 개봉하던 때에, 극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키아로스타미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평일 낮 시간. 열 명도 채 안 되는 관객들이 있을 거라 우려했지만 감독은 상관없다며 극장을 찾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몇 명의 관객들에게 불쑥 나타나 ‘이 영화의 감독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마음 졸이는 순간인지 알 것이다. 미리 무대인사가 있다고 알렸다면 그래도 관객들이 더 찾아왔을 텐데, 라는 말에 키아로스타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미리 무대인사를 하겠다고 하면 손님이 더 들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오는 사람은 나를 보고 싶거나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키아로스타미 본인은 없어도 상관없이, 그저 내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인 관객들이다.”
키아로스타미가 불쑥 만났던 그날의 관객이 어떤 이들이었을까 상상해본다. 극장의 밤에는 너무 밝으면 사라질, 너무 사소해 보여 어떤 이도 밖에서는 전하지 않는 소식들이 있다. 그날의 관객들은 사진작가 필립 퍼키스가 말한 ‘크게 일을 벌렸을 때 사라지고 마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비록 어떤 말로도 인도되지 않는 침묵의 밤이긴 했지만, 히라노 유지와 이야기를 나눴던 마지막 밤의 기억이 내게는 그런 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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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만에 아트선재센터를 찾아 영화를 봤다. ‘허우 샤우시엔 회고전’을 진진과 공동 개최하면서 개막행사 참석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개막행사에 이어 '자객 섭은낭'을 보았다. 1시간 44분 동안 영화와 함께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처음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서식지를 마련했던 시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2003년 4월에 개최했다. 당시 6,000여명의 관객들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해가 지나 2004년 10월 무렵, 아트선재센터가 공사를 이유로 계약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통고를 해왔다(사실 이런 방식이 최근 벌어진 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서 놀랍기도 했다). 2000년이래로 시네마테크가(당시는 문화학교서울 영화제로 개최했다) 회고전을 계속 해왔던 곳이다. 이곳에서 프리츠 랑 백주년 회고전을 했고,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그 때 세이준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을,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개최했던 곳이다. 2002년 5월에 정식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아트선재 지하에 개관할 수 있었다. 개관 3년만에 계약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2005년 3월, 개관 이래로 1,000여편의 영화를 상영하고는 파스빈더 회고전을 끝으로(마지막엔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상영했다), 말 그대로 쫓겨난 시네마테크는 낙원으로 이전했다. 공사가 끝나면 되돌아갈 생각도 있었고, 몇 번 비공식적 경로로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나로서는 그 곳이 좋은 장소라기보다는, 처음 문을 연 곳에서 가능하면 오래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었다. 수 십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파리나 뉴욕, 도쿄의 영화관들처럼. 그곳에서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을 수 있는 곳으로. 하지만, 그 이후 아트선재센터가 개보수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고, 계약도 다시 할 일도 없었다.

그 이후로 십년간 나는 근처를 지나간 일은 있지만 한 번도 그곳에 들어가 본적이 없다. 그곳은 말하자면 기억이 노예가 되는 장소였다. 처음 시네마테크를 개관한 곳이지만, 나는 그곳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지난해, 어쩌다 참여한 학술 행사로 불가피하게 무대에 올랐고, 그리고 올해 초 좋아하는 필립 가렐의 '질투' 상영에 이은 토크로 어쩔 수 없이, 결코 되돌아갈 생각 없던 그 곳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 십년 만에 처음 객석에 앉아 영화를 봤다. 개막행사 전에 아주 짧게 그런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긴 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14년간 시네마테크를 하면서 네 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하게 됐다. 2003년 처음 소격동 시절에(아트선재 시절이라 결코 말하지 않는다), 2005년 낙원으로 넘어와 1회 대만영화제를 하면서(그 해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내한했다), 2008년 2회 대만영화제에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를 또 몇 편 상영했고, 그리고 올해 2015년 새 공간으로 이사 오면서 다시한번 허우 샤오시엔 회고전을 개최한다. 이번 회고전의 제목을 '最好的時光', 즉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시간’이라 정했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틀었던 그 시절은 시네마테크에도, 우리에게도 좋았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 기억들도 피하고 싶어진다. 다행히 거리에는 비가 내렸다(가렐 영화의 토크를 했던 날에도 우연처럼 비가 내렸다. 그 날, 예전 소격동 시절 영화를 보러오던 사람들과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던 길을 다시 걸으며 안국역 횡단보도에 이르러서는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그곳에, 아마도 더 이상 가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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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9 18:50

    비밀댓글입니다

말이 실패하는 곳에서, 사랑이 떠난 시간에서 음악이 시작한다고 한다. 음악을 듣는 것은 그래서 우리를 매번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젖게한다. 우울할 때 음악을 듣는 일은 그래서 예전에는 피했던 일이다. 대신 그럴때 나는 책을 꺼내들곤 했다. 책은 우울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악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머물게 하기에. 그러면 영화는 우리를 어디에 데려다줄까. 혹은 영화는 어디에서 시작하게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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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빈 자리는 정말 비워진것이 아니라 거기 없는 사람들, 떠났거나 아직 오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으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해왔다. 좋은 영화는 빈 자리의 영혼의 무게를 동반한다. 극장안의 우리는 혼자라도 홀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기 없는 이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앞서 보고 있는 일종의 척후병斥候兵들로- 사실 누가 그들을 파견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차용되어 나온 것이다. 빈 자리의 그들은 우리의 정찰과 탐색 이후에 어쩌면 나중에 오게 될 것이다. 극장을 하는 나의 믿음은 이러했다. 사람들은 이제 생각을 바꾸라 한다.
대체로 영업의 논리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문화라 부르는, 사실은 영업과 통상通商의 규칙은 채워짐을 욕망하고, 요구한다. 대체로 관료들이나 통상인들의 주문이 그러한데, 이제는 다른 이들도 나선다. 사람들은 자신이 변했거나 변하기를 원할 때 상대도 바뀌기를 원한다. 때로 어떤 이들은 변화를 자신의 능력으로 여긴다. 그러면서 그들 대부분은 정작 변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대체로 느끼지 못하거나 숨기면서 상대가 변하기를 요구한다. "그래요, 예전 같지 않아요. 당신 말예요."(20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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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을 보았다. 기억나는건 물론 노래들과, 무엇보다 고양이. 고양이는 르윈 데이비스의 생활 공간에서 먼저 깨어나 움직이고 집에서 빠져나와 그의 예술을 위한 험난한 여정에 동행한다. 그는 고양이를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아무도 고양이를 보호할 이들은 없다. 르윈 또한 고양이를 두고 제 길을 떠나려 한다. 르윈이 도달하려 했던 두 세계를 왕래해 두 단절된 공간을 대면시키는 고양이의 믿기 힘든 모험. 고양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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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창의 커튼을 젖히자 차오프라야 강의 탁 트인 전망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이후로 가끔 호텔에서 보았던 이 풍경을 꿈에서 만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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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우리의 음악.. 그래, 음악처럼 우리는 듣는다. 눈을 감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미지를 떠올린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면, 눈을 감은 채.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라는. 즉,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아마도 이 지점에서 시네아스트와 그렇지 않은 나의 분화의 지점이 있으리라. 나는 그것이 '나'의 음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의 이미지라고. 그런데 시네아스트는 그것이 '우리'의 음악이라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걸 담아낼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란 언제나 '내'가 '타자(들)'과 관계를 맺어야만 성립하는 것이다. 그걸 절절하게 느끼는자만이 시네아스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듣는다. '우리'의 음악인 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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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공연장을 지나다 비를 피하려 들어선 순간 흘러나오는 노래에 취해 가만히 대기실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종종 시간을 거스르게 한다. 내가 아직 어릴때 긴 머리에 노래를 부르는 여자에게 빠졌던 적이 있었다. 옆에서 검은 코트에 긴 머리에 담배를 물고 기타를 연주하던 한 남자가 있었고, 난 그 자리에 있고 싶었기에 기타를 배웠었다. 그렇게 보았던 상상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지만 가끔 그 노래소리들을 듣곤한다. 아니 그 소리들을 피하려곤 한다. 노래와 음악은 벽을 넘어서고 몸을 꿰뚫고 경계의 기슭으로 이끌기에.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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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일찍이 꿈꾼 적이 없었던 바다에서의 꿈이다. 우리 안의 바다가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이 틀림없다. 바다는 우리에게 빛의 위대한 시간을 보이고 어둠이 내려올 때 꿈처럼 바다로 향하게 했다. 너무 추운 날이었고 아주 잠깐 머물 수 밖에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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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가 8살이 되었고, 여덟살 생일을 기념해 지난 5월 20일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및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했습니다. 
그날 '서울아트시네마 8년의 기억'이란 동영상을 상영했습니다.  이 영상에 실린 글귀는 영화인들의 발언과 올해 초 시네마테크 공모제가 불거질 때 관객들이 썼던 후원의 글들에서 모두 무작위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각 사람들의 발언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서울아트시네마의 기억이 그런 공동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입니다. 내레이션은 올해 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배창호 감독님이 연설한 내용입니다. 가끔 극장의 옥상에 서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쓸쓸한 색채를 띠며 우울한 풍경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 마음 속에서 열정이 분출하기 시작하면, 환상은 이 세상에 영혼의 불을 지펴 작은 것들을 크게, 추한 것들을 고결하게 만든다. 마치 보름달의 빛이 들판으로 번져 나갈 때처럼 말이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들이 다시금 떠올라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그것은 긴 잠에서 깨어나 마음 속에 떠돌던 수많은 풍경을 한데 모은 뒤 우리의 삶의 일부로 만든다."  

 

 

 

지난 7월 6일 저녁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지난 5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故곽지균 감독의 49제를 맞아 그의 명복을 비는 추모의 밤 행사를 가졌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동문회가 함께 마련한 이 자리에는 그와 친분이 있던 많은 영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뤄졌다. '가야할 먼 길'이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다시금 생전의 그를 추억했던 그 잔잔한 애도의 현장을 전한다. 

故곽지균 감독의 추모의 밤 자리에는 곽지균 감독과 친분을 맺었던 많은 영화인들과 서울예대 동문들이 다수 참석해 안타까움을 전했. 배창호, 이명세, 허진호, 김국형 감독을 비롯해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안성기, 강석우, 배종옥, 정보석, 지현우, 김혜선 등의 배우들이 함께 모여 곽지균 감독을 추모했다.


깊은
애도의 뜻을 담은 추모 행사는 3부로 진행되었다. 1부에는 간단하게 곽지균 감독에 대한 동료 영화인들의 애정과 그리움을 듣고 그를 기리는 순서가 마련되었다. 1부는 곽지균 감독의 후배들인 서울예대 영화과 출신 연기지망생(강홍렬, 김아림)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이들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곽지균 감독의 49제는 오는 9 곽지균 감독의 추모 영화제가 끝난 직후 이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이번 추모의 행사는 49 전에 관객들과 영화인이 함께하는 깊은 자리가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본격적인 추모행사의 번째 순서로 곽지균 감독의 생전모습과 그가 만들어냈던 10편의 작품을 간단히 소개하는 비디오 클립이 상영되었다. 영상은 짧지만 곽지균 감독이 걸어온 길과 그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정리하고 회고할 있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뒤이어서는 곽지균 감독과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영화인들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첫번째 추도사로 나선 이는 서울예대 부총장을 맡고 있는 정중헌 부총장. 그는 조선일보 기자 시절 곽지균 감독의 데뷔서부터 지켜본 기자 사람으로, 부음을 듣고 감독을 찾고 싶어도 거리가 멀어서 뵙지 못했는데 이렇게나마 영상으로 만나 뵈니 세월의 추억이 다시 새삼 떠오른다 짧은 감회를 전했다. ‘곽지균 감독은 나에게 아스라함, 아련함 같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정중헌 부총장은, 영화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지금까지 감독의 영화 10편이 우리 영화사에 많은 자양분을 주었고 눈물과 회한을 간직하게 해주는 좋은 기록자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번째 추도사는 겨울나그네로 연을 맺은 배우 강석우 씨가 바톤을 이었다. “ 극장에서 <사랑의 수잔나> 보았는데, 그때 진추하와 아비가 만나는 장면을 보며 이후 곽지균 감독님과 제가 극장에서 특별전으로 다시 만나는 상상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뵙게 줄은 몰랐다 상기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어 지금 생각하니 감독님이 어떤 분이었다는 영화로 증명이 되는 같다 곽지균 감독의 따듯한 정서가 있었기에 <겨울 나그네> 찍으며 힘들어 하던 당시 나의 소년적 감성이 위로 받고 이해 받을 있었다 말했다. 또한 그는 곽지균 감독을 ‘유리알 같은 분’이라 표현했다.

이어
감독의 <젊은 날의 초상> 출연했던 배우 배종옥씨가 마이크를 건네 받아 곽지균 감독에 대한 애정을 짤막하게 토로했다. 그녀는 곽지균 감독과 함께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주고 받던 순간들이 너무나 절실하게 기억난다 눈시울을 붉혔고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영화가 아름다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주신 분이 감독님이었다는 배우 배종옥 씨는, 우리나라는 젊은 감독들에게만 많은 이야기가 주어지는지 안타까웠고 나이가 들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들과 제작현장이 충분히 마련되지 못한 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배종옥 씨에 이어서는 곽지균 감독의 스크립터, 코디네이터 등을 맡았던 프로듀서 박미정 씨가 추도사를 이어 갔다. 그녀는 '초여름에 길을 떠난 겨울 나그네'라는 문구가 너무 아름답고 처연하게 다가온다며, 대전 장례식장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했고 정말 많이 울었다며 현장의 기억을 묘사했다. 또한 감독이 은퇴하면 제주도에서 우편배달부가 되고 싶어 했다는 말을 종종 했다며 분명 그는 하늘나라에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국의 우편배달부가 되어 행복하고 편히 계실 것이라는 말로 추도사를 마쳤다.

그 다음
추도사는  <그해 겨울은 따듯했네>에서 조감독이었던 곽지균 감독과 함께 작업했고 그의 동료였던 배창호 감독이었다. 배창호 감독은 준비해온 원고를 수줍게 펼치면서 시를 읊듯 곽지균 감독에 대한 애도와 추억들을 조근 조근 읽어 내려갔다. ‘주머니가 텅텅 비었던 충무로 조감독 시절에 우리는 만났지만 모두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던 시절’이라며 과거를 추억했던 배창호 감독은 감독의 활약으로 인해 무사히 영화를 마칠 있었다는 감독의 무용담을 지금도 후배들에게 들려주곤 한다고 밝혔다. 한편 배창호 감독에 이어 1 행사의 마지막 피날레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극장을 찾은 배우 정보석 씨가 맡았다. 그는 항상 수줍게 웃고 맑은 눈동자로 따뜻하고 편하게 해주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옳은 선택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영화를 하면서부터 , 생각을 가지면서부터 갖고 싶었던 마지막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며 감독의 명복을 빌었다.

감독과
배우, 영화인들의 간단한 조례가 이어진 후에는 곧바로 2 순서인 <겨울 나그네> 상영되었다. 곽지균 감독을 기리며 행사에 참석했던 배우와 감독들은, 1 행사가 끝나자마자 스크린과 가까이 자리를 잡고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를 보는 도중, 스크린을 마주하며 간간히 객석에서는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으며, 영화 상영 직후 배우들과 감독들은 잠시 동안 객석에 남아 <겨울 나그네>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나누기도 했다. 2 상영 이어진 3 리셉션 현장에는 부리나케 극장에 달려온 배우 안성기 씨의 모습을 보였으며, 배우 강수연, 박상민 곽지균 감독의 많은 ‘친구’들은 행사에 참여할 없는 대신 애도와 착잡한 심정을 전달했다. 아름답고 처연한 청춘 영화 <겨울 나그네> 상영 이후, 서울아트시네마의 로비에 모인 영화인들과 관객들은, 진정 ‘겨울 나그네’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다 작고한 곽지균 감독을 다시 추도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가득 채웠다.


한편 이날 추모의 밤 행사를 시작으로 곽지균 감독의 추모영화제는 8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계속된다. (강민영)



* 뒤늦게 '추모의 밤' 행사 내용을 올립니다. '한 여름에 먼 길을 떠난 겨울나그네'라는 표현은 김국형 감독님이 제안한 것입니다. 배창호 감독님의 추도사를 듣다가 "곽감독...당신의 이런 선택에 대해서는 정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애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종각역에서 내려 문득 매일 그랬던 것과는 달리 탑골공원을 지나쳐 극장으로 갈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날이 더웠고 지쳐 있었고 다른 길에 들어서고 싶었나 봅니다. 
  1. 랭보 2010.07.09 08:22

    다른 길로 들어서고 싶었나 봅니다, 를 오래 들여다보며...
    저도 가끔 인이 박힌 습관에 반칙을 하게 되는데,
    마치 제가 겪는 것처럼 선명합니다.

    • Hulot 2010.07.21 01:49 신고

      다른 길로 들어서는 생각만은 아니고, 정말 다른 길로 들어서는 때가 올거라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날들입니다.

  2. 2010.07.13 03:43

    비밀댓글입니다

    • Hulot 2010.07.21 01:47 신고

      오늘은 정말 날이 덥더군요. 작은 짜증도 있고 위층 집에서는 싸우고, 구르고..감정의 전쟁!

  3. 2010.07.21 11:31

    비밀댓글입니다

    • Hulot 2010.07.21 01:52 신고

      휴가가 끝났는지도 모르고 철지난 바닷가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엉뚱하게 쳐다보고 있는 윌로에 가까울 겁니다...

오늘은 유난히 하늘이 참 맑은 날이었습니다. 화요일 <안나와의 나흘 밤>을 마지막으로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가 끝났고 상영이 없는 수요일 오후의 극장은 옥상도 로비도 한가했습니다. 잠깐 담배를 피기 위해 나선 옥상에서 올려다 본 하늘에 검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날들을 기억에 담아두고 싶을 때가 있고, 또 그런 이미지를 기록에 남겨두고 싶을 때가 있나 봅니다. 언제나 비슷할 풍경일테지만 그 언제나가 주는 안도감과 위안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브레송은 '종달새의 노래가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같은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또 잠깐 사람이 못 미더울 때도 있나 봅니다. 그럴 일을 할 거라 생각지 않은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을 볼 때의 당혹감이 있습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던 5월 26일 오후 5시 10분. 아무도 이 곳에 있지 않을 때, 그래도 눈에 담아두고 싶은 분들을 위한 그저 평범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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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cgufin 2010.05.27 02:37

    그곳에 가면 하늘을 보게 됩니다.
    옥상...하늘과 가까운 곳!!!
    햇볕 사나운 날보다 비오기 직전의 하늘을 좋아합니다.
    오늘은 13년만에 가장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답니다.
    문득 13년 전의 그 날이 궁금해지던데요~
    이젠 '맑은 하늘'은 그 자체로 뉴스가 되는 세상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것 만큼 위안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건 언제나, 한결같기란 힘들기 때문일겁니다.
    유난히 맑았다는 날, 하늘 올려다 볼 여유도 없이 보냈는데...
    오후 5시 10분의 하늘을 여기서 보고 있네요~

  2. Hulot 2010.06.06 20:12 신고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아 생전 사진을 안찍다가 핸드폰을 바꾸는 통에 가끔 사진을 찍어봅니다. 오늘은 다른 영화제로 사람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익숙한 사람들은 많지 않네요. 펠리니 회고전이 열리는 6월 10일 이후에나 사람들을 볼 수 있겠어요.

그들은 아직 있다
우리들이 나이를 먹어 
다가오는 밤을 가만히 바라볼 때도
그들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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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to myself and feeling old

Sometimes Id like to quit

Nothing ever seems to fit

Hangin around, nothing to do but frown

Rainy days and fridays always get me down


What Ive got they used to call the blues

Nothing is really wrong

Feeling like I dont belong

Walking around some kind of lonely clown

Rainy days and fridays always get me d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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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8 13:56

    비밀댓글입니다

  2. 구라구라 2009.07.19 02:20

    fridays로 바꿔도 느낌이 괜찮군요^^

비가 내리는 걸 지켜보다, 문득 한달 전쯤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아시아 독립영화들을 소개하는 행사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리버 피플>의 상영이 있었고 감독과 간단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허 지엔준이라는 중국의 영화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황하강 유역의 작은 마을을 촬영했다. 고기를 잡는(그 일외에 달리 할게 없는)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 도시로 떠나려는 이야기다. 그 먹먹한 강이 떠올랐던 건 아마 비 때문이었을텐데, 사실, 지난 주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작가를 만나다'에서 상영했던 강미자의 <푸른 강은 흘러라>를 보며, 이 영화를 또한 떠올렸다. 떠나는 자와 남아 있는 자의 이야기, 딱 그런 설정이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문득 떠나는 일들이 그리웠던 탓일까. 아니면, 떠나지 않고 살고 싶은 것일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리버 피플>은 <북극의 나누크>를 황하로 옮긴 듯한 그런 영화다. 아니, 장 루슈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황하강 유역에 있는 2천여명 정도의 사람들은 평생 강에서 고기를 퍼올리다 생을 마친다고 한다. 감독은 산을 찍으러 가던 중에 정작 강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끌렸다. 거의 사계절을 담았는데, 겨울이 찾아오면서 황하강이 얼어버리는 통에 고기를 잡지 못하면서 그들의 생계 또한 어려워진다. 마을을 떠나는 젊은이들도 보인다. 하지만, 봄이 다시 찾아오고 강에는 고기가 넘쳐난다. 강이 메마르지 않는 한 사람들도 그 곳을 떠나진 않을 것이다. 감독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떠나지 않고 사는 삶은 불가능할까? 강미자 감독의 <푸른 강은 흘러라>를 보면서도 그 비슷한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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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09.05.06 10:44

    전주에서 70년대 스리랑카 영화를 보는데, 끊임없이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나왔어요. '그들이 왔다'란 영화는 아름다운 영화였는데요 강을 두고 유입되고 또 떠나가는 사람들이 나오고 시구와 음악들이 그 여정과 그 사이를 흘렀어요. 마치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쓸쓸함을 위로하듯이요..
    저는 영활 보면서 약한 것들이, 어리고 연약하기에 떠내려가는 것 같았아요.

  2. Hulot 2009.05.07 11:17 신고

    초등학교 2학년 이래로 같은 동네에 살면서 무수히 많은 집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고, 좁은 골목길이 대로로, 소점포가 마켓으로, 작은 가게들이 일년에도 서너번 뒤바뀌는 그런 모습들을 보아 왔네요. 마치, 전쟁의 폭격을 겪은 느낌입니다. 어렴풋한 회상을 거부하는 망각, 동네를 거닐 때 펼쳐지는 광막함, 이 모든 변화를 눈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가끔 신기할 지경입니다. 난, 여전히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있지만 이미 이 곳에선 내가 낯선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떠나도, 떠나지 않아도... 세상을 끌어안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3. ... 2009.05.08 00:28

    예쁜 동화 속처럼 재정비된 전주 한옥마을을 새벽에 산책하다가 울컥했어요. 선생님의 글을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낮과 밤을 메우고 있던 젊은 관광객들은 사라지고 새벽잠이 없으신 노인분들이 어딘가로부터 꾸역꾸역 나와 거리에 하염없이 어딘가를 보며 띄엄 띄엄 계시는데 그분들의 집은 보이질 않았어요. 그분들이 무엇을 보고 계셨던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떤 골목으로 들어가보았더니 어울리지 못한 낡은 한옥집들이 있더라고요. 낮과 밤, 저녁과 아침 말고요, 마치 새벽엔, 그 때엔 정말 숨길 수 없는게 없는것 같았어요....

베이유에게 중력은 인간 내부에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인간은 중력의 하강감으로 도주한다. 그런데, 은총은 굳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할 때에 발생하는 조용한 고양감이다. 이것은 상승한다. 중력과 은총은 그래서 우선 자기의 내부로 하강하는 때에 타자를 받아들이며 상승해, 거기로부터 새로운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개인은 집단, 혹은 사회적 연대를 거치지 않고 상승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베이유는 그런데, 페랑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말로 친한 대화는 두 명이나 세 명의 경우 밖에 없다고, 다섯이나 여섯 명이 넘어가게 되면 벌써 집단의 말이 지배되어 악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고 말한다. 중력만이 더 가중되어 갈뿐, 좀처럼 상승의 조용한 고양감이 발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것의 두려움, 그것의 환멸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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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르누아르의 <강>은 정말 아름다운 영화다. 지난해 '장 르누아르 회고전'을 하면서 다시 봤던 르누아르의 영화가 문득 생각나 다른 일들을 잠깐 멈추고 DVD로 몇 장면만을 들여다봤다. 가끔씩 시집을 들춰보거나 사진집이나 그림을 들여다보듯 영화를 볼 때가 있다. <강>은 마치 지뢰밭을 걷는 듯한 긴장감과 불안한 느낌으로 마음을 산란하게 만든다. 과거로부터 탈출하는 것의 안도와 미지의 경험에의 긴장이 조용한 감동을 준다. 앙드레 테시네의 <Loin>이란 작품을 보면 장 르누아르의 <강>을 인용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누구나 멀리 떠나고 싶은 느낌이 들 때의 젊은 마음이 있는데 현실은 언제나 살얼음같이 느껴지곤 한다. 도피하고픈, 저 멀리떠나고픈, 과거와 절연하고 절망적인 현재와 이별하고픈 그런 젊음의 욕망이 <Loin>에도 담겨있다. 
선물로 받은 루시스 페풀베다의 <소외>라는 책을 읽는다. 원제는 'Historias Marginales', 즉 '주변적인 이야기들'쯤 될 듯 하다. 소외의 이야기라는 표현은 조금 더 나아간 듯 하다. 미셀 투르니에의 '외면 일기'쯤 되는 방식으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삶의 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잊히기 쉬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내가 자주 다니던 곳들은 대부분 요 몇년 사이에 문들 닫거나 사라졌고 마찬가지로 그 곳에 있던 사람들도 만나기 쉽지 않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 자주 다니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인사동의 잘 가던 음식점들은 대부분 점심 시간인데도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던 곳이었다. 때문에 조용히 앉아 밥을 먹고 담배를 한 대 피고 나눠주는 커피도 한잔 마시고 가끔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이 없던 음식점은 맛은 별로 내세울 게 없었다. 다만 조용한 낮시간의 공간이 내겐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 해 중순 경에 하나 둘씩 그런 음식점들은 사라졌고, 또 그 즈음에 강의를 하던 문예아카데미도 사라졌다. 연말에는 자주 가던 카페도 문을 닫았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글을 쓰던 '필름 2.0'도 지난 해 말부터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썼던 카를로스 사우라 회고전 기사, 그리고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사무엘 풀러에 관한 글은 사라져버렸다. 잃어버린 물건들의 리스트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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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르나스 2009.01.21 03:25 신고

    장 르누아르의 강은 흐릿하고 잡히지 않는 근원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심연의 경계처럼..그렇게 붙들어요..문득 문득.

  2. 2009.01.21 17:36

    비밀댓글입니다

  3. ... 2009.07.14 21:51

    하루종일 비바람이 퍼붓는, 위로받을 길 없는 이런 날씨에 왜 문득 이 글이 다시 읽고 싶어졌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 이 짧은 단상을 읽었을때 제 상상속에서 펼쳐지던 [강]이란 영화의 물이미지때문일까요..
    제가 떠올린 '강'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끝없이 마찰을 벌이는 현재의 위험한 충동이자 고요한 절규이고, 끝내 어디에도 닿을 수 없음을 아는 체념같은 것이었어요.
    프로그래머님이 쓰신 이 짧고 멋진 글만으로도 이 영화는 보고싶은 영화목록 순위권이라는..ㅎ

    음..지루하게 이어질 여름장마 초기부터 이렇게 가라앉으면 안될텐데 말이죠.

    참 최근에 스페인 영화제- 사람들의 폭발적 반응에 놀라웠답니다.
    (역시 영화의 매혹이란!!!)

  4. Hulot 2009.07.18 00:59 신고

    오늘도 비가 많이 내리더군요. 극장 마당에 내리는 비를 한참을 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기묘한 곡을 들을 때에 그러하듯이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가 내가 몰랐던 과거를, 내가 울어주지 않았던 비애의 감각으로 흠뻑 적셔주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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