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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영화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본문

영화일기

영화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Hulot 2012. 1. 9. 15:25







천국은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베푼 혼인잔치의 상황과 같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문득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선택’이란 표현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2006년에 시작한 이 영화제는 참여하는 영화인들이 그들 각자의 영화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백지수표’라 부르는 이런 방식은 영화가 선택하는 영화인에 의해 소환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영화는 우리가 다 볼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렇기에 언제나 선택해 보는 사람에 의존하게 됩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영화의 진실입니다. 선택받는 영화가 있는 만큼 결국 선택받지 못하는 영화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낙원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이 초대에 응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 중에서도 일부만이 잔치에 참여합니다. 이 구절에 따르자면 이들 중에서도 아마 일부만이 택함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득 떠오른 이 구절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 ‘택함’입니다. 영화를 선택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나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 모두는 선택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보는 행위는 적극적인 선택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선택하고 있다는 말은 어쩐지 이상해 보입니다. 영화에 관한 한 우리는 언제나 피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아니라 영화가 우리들을 선택해 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세르주 다네가 시네필의 상황과 관련해 ‘우리의 유년시절을 지켜보았던 영화들’이라고 말할 때, 영화와 우리의 관계는 역전됩니다. 그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이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끄러미 스크린에 떠오르는 얼굴을 쳐다볼 때, 우리가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인지 혼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령, 이번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1925년에 만들어진 <황금광 시대>는 90여년의 시간 동안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관객은 영화의 초대에 응했던 손님들이고 그들 중 택함을 받은 이들이 다시 이 영화를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친구들의 선택은 거주할 장소를 잃어버린 영화를 시네마테크라는 장소에 입양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왜 영화들을 이곳에 입양하려 할까요? 다네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영화들이 보답으로 우리를 입양해주기 바라서입니다. 영화의 천국에 택함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영화가 우리를 지켜보았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 아닙니다. 시네마테크가 처음 문을 연 것은 우리들의 의지일 수 있겠지만, 그 이후의 모든 일들은 결국 영화가 해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영화들 덕분에 시네마테크는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재정적 지원이나 친구들의 후원, 관객들의 노력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곳은 유지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해에는 ‘이번이 마지막 영화제일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치렀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올해에도 영화제가 열리는 것은 영화가 우리를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영화만이 아니라 시네마테크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2012년은 시네마테크가 개관한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10년은 되돌아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영화의 오랜 역사를 반복해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교훈은 이런 것입니다. 당연히 존재하는 영화란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제를 치르는 것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 언제나 수십 편의 영화들을 목록에서 지우는 것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부재와 마주하면서 만이 영화의 존재를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10년의 시간이 의미를 지닌다면 결국 이제 우리를 지켜볼 수 있는 영화들을 얻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글|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