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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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 -은밀한 개인주의자

KIM SEONG UK 2021. 6. 4. 08:30


에릭 로메르 전기가 을유문화사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로 번역출간됐다. 이 비밀스런 작가의 생애는 그가 세상을 떠난후 남긴 대략 140개의 서류박스에 담긴 200편이 넘는 자료들 덕분에 쓰여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숨긴 비밀스런 로메르의 영화와 삶을 우리 눈앞에 나타나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추천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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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영화

‘습관의 논리에 통제되는 모리스 세례의 가족생활은 전기 작가에겐 흥미로울 게 거의 없다’고 책의 저자인 앙투안 드 베크와 노엘 에르프는 말한다. 이 논리를 따르자면, 10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흥미로울 게 전혀 없는 평범한 대작가의 초상이다. 하지만, 저자들이 부언하듯 이런 평범한 삶에 이야기가 스며들고 가장 작은 것이 픽션이 된다. 에릭 로메르의 삶에 영화가 뒤늦게 찾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성인이었고 다른 예술적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영화는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 예술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의 영화와 만날 기쁨을 얻었다.  
이 위대한 평범한 작가의 개인적 삶은 고다르나 트뤼포에 비해 비교적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도 없었다. 흥미를 가질 만한 사회적 사건에 그가 연류된 것도 없었다. 이 전기가 알려주는 바, 로메르는 영화를 숨기려 했던 비밀스런 작가기 때문이다.
그는 사생활과 직업 생활을 매우 영리하게 분리했고, 대중들 앞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길 거부했고, 영화제와 같은 축제의 레드 카펫위에 서서 화려한 조명을 받기를 꺼렸다. 평생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2001년 처음으로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한국에서 개최하면서(여담이지만, 그해 서울에서의 회고전을 위해 로메르가 직접 보내준 편지는 개인적인 자랑거리 중의 하나였다. 편집자인 마리 스테판이 나중에 내게 들려준 말에 따르면, 이런 편지는 정말 드문 일이라 한다. 로메르 감독은 극도로 비밀 스러운 사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어떤 '마케팅'적 요소를 쓸모없다고 생각했기에 편지를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에 그의 ‘탄생 백주년 회고전’을 다시 기획해 로메르의 후기 편집자인 마리 스테판을 초청해 대화를 하고, 대표작 10편을 ‘시네마테크 아카이브’로 구입해 극장에서 상영하면서, 에릭 로메르에 관한한 가장 적극적으로 그의 영화를 소개하는 노력을 했다지만, 여전히 나는 그의 영화를 온전하게 전달하는데 부족함을 느껴왔다. 명백하게 최고의 작가인 에릭 로메르의 삶은 영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운 비밀의 삶을 숨기고 있다. 이 방대한 책이 이를 증명한다. 로메르라는 가명 뒤에 숨어 있는 모리스 셰레의 삶을 추적한 이 책의 번역 덕분에 더 이상 로메르의 영화가 얼마나 위대하고,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예술인지를 부언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니, 그 반대의 기회도 얻었다. 덕분에 우리는 로메르 영화의 위대함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상한 일이지만 로메르의 영화 속에는 영화가 없다. 60년대 동시대 누벨바그 감독들, 가령 비평가에서 시작해 영화를 만든 고다르나 트뤼포의 영화와 비교해볼 때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다른 영화를 인용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다. 로메르의 인물들 일상에는 영화관이라는 장소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러가거나, 심지어 영화를 논하는 사람조차 없다. 일부러 피했다고 밖에 볼 수 없겠다. 대신, 철학을 논하거나 연극을 보러가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름 바캉스를 보내기 위해 해변을 찾거나 도시를 배회하고 카페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역설적이지만,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정작 영화가 없는 세상으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혹은, 영화가 사라지는 영화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영화에서 작가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지 않은 것이라 여겼다. 이는 로메르 영화 제작의 원칙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숨기면서 존재의 비밀에 접근하는 부분적 관찰자이기를 원했다. 영화는 기게스의 반지처럼 자신을 숨긴 채 인간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다. 영화가 부재한, 혹은 영화가 사라지는 영화는 말하자면 로메르 미적 비평의 핵심이자 그의 영화적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