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QUE DE M. HULOT

스페인 판타 테러 특별전 - 2025 스페인 영화제 본문

영화일기

스페인 판타 테러 특별전 - 2025 스페인 영화제

KIM SEONG UK 2025. 11. 5. 10:57

 

환상(공포)영화에 매혹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아마도 영화라는 예술이 지닌 본질에 가장 근접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이 장르가 겪은 변화의 궤적에 깊은 흥미를 갖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에도 1960~7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의 하나가 판타지와 호러 영화로, 흔히 ‘판타테러(Fantaterror)’라 불리는 이 장르는 현실의 불안과 억압을 환상과 공포의 형식으로 전환하는 스페인 특유의 미학적 표현이다. 아름다움과 혐오, 관능과 폭력이 교차하는 이 영화들은 종종 과장된 시각적 스타일, 에로티시즘, 그리고 고어에 가까운 폭력의 묘사를 특징으로 하며, 프랑코 정권의 검열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은유적 저항의 언어를 구축했다. 이 장르의 근간에는 내전과 프랑코 독재 체제라는 스페인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있다. 

 

공포 영화는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 동안 금지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재 말기 십년 동안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였다. 스페인 판타테러의 황금기는 1968년부터 1977년 사이의 시기다. 이 장르 영화가 다시 부흥한 것은 1990년대 후반으로,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그리고 <판의 미로>를 만든 멕시코 영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를 통해서 그 부활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올해 스페인 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이 이러한 판타테러 장르에 속하는 영화들이다. 초중기의 작품들도 물론 흥미롭지만, 새로운 해석과 미학적 혁신을 시도한 후기의 작품들을 먼저 소개하게 되었다. 대부분 처음 상영하는 작품들이다. 비센테 아란다의 <피묻은 신부>(1972)는 흡혈귀 전설을 가져와 에로티시즘과 폭력을 더해, 고전적 서사와 젠더의 규범을 뒤흔들며 환상을 대중적 서사 속에서 비판적 도구로 활용한 작품이다. 비가스 루나의 <푸들>(1979)은 병적 욕망과 광기를 정교한 미장센으로 형상화한 문제작으로, 가족과 동물, 성적 긴장이 얽힌 기묘한 심리극이다. 이반 줄루에타의 <황홀>(1979)은 가히 탁월한 문제작으로, 영화 이미지의 흡혈적 속성을 탐구하며, 스페인 아방가르드가 판타테러라는 장르를 통해 판타지의 메타영화적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다. 영화 창작 행위를 불안하고도 시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이 작품은 이미지가 불러오는 병적인 매혹을 탐구한다. 11월 9일(일) 상영 후에 ‘판타테러, 장르의 변용과 이미지의 매혹’이란 주제로 시네토크를 할 예정이다. 

 

시네토크 판타테러, 장르의 변용과 이미지의 매혹

일시│11월 9일(일) 오후 3시 30분 <황홀> 상영 후 

진행│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

 

 

11월 5일(수) 저녁, 개막작으로 상영하는 나르시소 이바녜스 세라도르의 <누가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1976)는 평화로운 휴양지를 배경으로 전쟁의 폭력과 아이들의 희생이라는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며 그들의 반란을 통해 인간성과 폭력의 관계를 되묻는다. 오프닝의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영화 후반의 장면은 잊지 못할 순간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얼마 전에 개봉한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1973)은 판타지 장르의 본질을 새롭게 해석한 영화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스페인 역사의 어두운 면을 은유적으로 다룬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에서는 파시즘의 억압 속에서 태어난 스페인 판타지의 미학이 21세기에 어떻게 새롭게 계승되고 변주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전복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금기와 인간 내면의 어둠을 실험적으로 탐구한 스페인 판타테러 영화의 문제작들과 처음 만날 수 있는 기회다. 

 

2025 스페인 영화제 - 판타스틱 스페인 

-2025 Spanish Film Festival -El Fantaterror 

11월 5일(수) ~ 9일(일)

 

영국인 관광객 부부가 도착한 외딴 섬에는 아이들만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이끌려 어른들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나르시소 이바녜스 세라도르의 충격적인 작품, <누가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1976)는 “만약 아이들이 감정이 없는 살인자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충격적인 가정에서 시작한다. 물론, 이 전제는 다양한 전쟁과 역사적 재앙으로 인해 부상당하고 굶주린 어린이들을 보여주는 시작부의 다큐멘터리 영상 몽타주에서 아마도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영화의 상상적 전제를 현실의 잔혹한 근거로 연결하며 두 가지 금기(!)를 위반한, ‘괴물-아이’의 소환은 다분히 도발적이다. 

역사적 균열의 시기에 아이의 트라우마를 섬세하게 그린 동시대 <벌집의 정령>이나 <까마귀 기르기>와 달리, 그 때문에 <누가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는 금기를 넘은 설정으로 논란을 낳았고, 오랫동안 잊혀졌다(비록 컬트적 지위를 얻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효과나 괴물의 존재 없이(조지 로메르의 영화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대낮의 눈부신 햇빛 아래 ‘일상의 백색 공포’를 구축하며 관객을 도덕적 딜레마 속으로 밀어 넣는 이 작품의 대담한 시도는, 여전히 신선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11월 5일(수) 오후 7시 30분 개막작 

<누가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 ¿Quién puede matar a un niño?>(1976, 나르시소 이바녜스 세라도르 Narciso Ibáñez Serr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