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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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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로의 시네마테크/공세방어- 시네마테크사태

[무비위크] 위기에 처한 서울아트시네마

Hulot 2009. 2. 25. 03:20
[리포트] 위기에 처한 서울아트시네마





서울아트시네마가 위기에 처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 방식을 ‘위탁’에서 ‘공모’로 변경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김홍록 사무국장은 지난 2일 2008년 사업 보고와 2009년 사업 계획을 전달하기 위해 영진위를 방문했다가 이와 같은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영진위 측에선 각종 지원 사안들을 공모제로 전환하라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강력한 의지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진위 영상문화조성팀 김종호 팀장은 이와 관련해서 “아직까지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 공모와 관련해서 서울아트시네마 측과 의견을 조율하는 중이다. 그러나 공모 진행 여부와 관계없이 지원과 관련하여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실적 평가는 확실하게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공모제를 주장하는 영진위의 입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모든 위탁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라’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의 지시라고 하지만, 정작 문광부는 ‘영진위의 세세한 부분까지 지침을 내리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정확한 입장 정리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공모제에 대한 발상 자체가 황당하다.

영진위가 공모로 시네마테크를 선정할 경우 기존의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 여부에 따라 시네마테크로서 인정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기괴한 논리가 만들어진다. 만약 다른 단체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의 위탁 사업자로 결정될 경우 서울아트시네마는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당장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로 활기를 찾은 서울아트시네마에 예상치 못한 한파가 찾아온 것이다.

영화를 위한 국내 유일의 비영리 민간단체

서울아트시네마는 국내 유일의 고전 영화를 통한 교육을 목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을 펼쳐온 비영리 공간이다. 즉, 영진위나 문광부가 주도하여 설립한 기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순수하게 민간이 주도하여 만들고 이끌어 온 민간기관인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전국시네마테크연합’ 활동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시네마테크 활동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취지에서, 2001년 10월 26일 영화진흥위원회 시네마테크 지원 방향 마련 토론 좌담회를 시작으로 12월 18일까지 모두 5차에 걸친 전국 시네마테크 대표자 연석회의를 통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창립을 공동으로 발의했다.

이어 2002년 문화관광부를 통해 사단법인 인가를 받고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둥지를 틀며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현재의 허리우드 극장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지난 7년 동안 한국 영화 문화 발전을 위해 애써온 공간인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영화평론가, 영화배우들이 시네마테크를 아끼고 응원하는 것도 이러한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는 2009년 프로그램을 모두 완성한 상태다. 이들 중 다수는 외국 시네마테크나 아카이브와 교류를 통해 진행되는 감독들의 회고전들이다. 당장 4월에는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회고전’이 잡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모로 시네마테크를 선정하겠다는 영진위의 입장이 나오자 서울아트시네마로서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간 서울아트시네마가 외국 시네마네크와 쌓아온 신뢰와 명성에 손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맬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말이다.

주객전도의 위기에 처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 지원금 30퍼센트와 관객 수입 30퍼센트, 그리고 나머지는 자체 수입 사업으로 운영을 유지해 왔다. 영진위의 지원은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발족 후 서울아트시네마 오픈과 함께 시작했으며 형식적으로 매년 위탁 계약을 채결해 온 상황. 회계연도는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이며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 사업에 2억 9,000만 원, 시네마테크 네트워크 사업에 1억 5,000만 원 정도가 지원되어 왔다.

영진위는 위탁이라는 방식으로 시네마테크 운영금의 일부를 지원해 온 것이지,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업 주체를 영진위가 주도하고 시네마테크를 선정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조처라는 것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고 있는 영화인들의 주장이다. 이는 명백한 ‘주객전도’를 노리는 행동이라 이들은 말한다. 민간기관인 시네마테크의 운영에 정부가 관여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 측은 영진위의 일방적인 통보에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상태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또한 영진위의 통보에 반대 의사를 내세우면서 시네마테크를 위한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있다.

시네마테크 지원에 대한 사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거론된 문제다. 지난 3기 영진위에서 진행하려고 했던 복합 상영관 건립에 대한 안건은 4기 영진위로 넘어오면서 표류 중인 상태고, 시네마테크 운영에 대한 지원 또한 적극적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쉴새없이 팽창해 온 영화 산업 이면에는 영화의 문화적 가치와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영화 도서관을 외면한 무관심한 시선이 존재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공모 건은 영진위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사자인 서울아트시네마와 상의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것으로 절차상의 문제 또한 있어 보인다. 문광부는 답변을 회피하고 있지만 갑작스런 영진위의 결정에 외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 또한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영진위의 공모제 전환 통보는 영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지원이 행정 편의에 따라 언제든 쉽게 변경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주목된다.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보다 다양하고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장으로서 한국 영화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친구들 영화제에서 만난 영화인들은 한결같이 ‘영진위가 왜 이런 무리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관객들 또한 영진위의 결정에 반대하는 서명을 진행할 예정이란다. 영진위는 이에 대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40년 전 프랑스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운영권을 통제하려 했던 관료들에 영화인들이 반발해 ‘랑글루아 사태’가 일어났었다. 그 이후로 시네마테크에 관료들의 통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됐다. 영진위의 결정이 한국판 ‘랑글루아 사태’로 비화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무비위크 |2009.02.24 16:2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