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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반디앤루니스의 뉴스레터]- 영화보러 낙원상가 갑니다

KIM SEONG UK 2014. 4. 10. 14:18

아침에 메일함을 확인하다 '반디앤루니스'의 뉴스레터로 '영화보러 낙원상가 갑니다'라는 사려깊은 글을 읽었다. 글의 필자는 명기되어 있지 않은데,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찾았던 분인가보다. 책도 어려울테지만 "잘 안팔리는 책은 그래도 기다려주는 법이 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은가봅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보며 극장에서 추위에 시달렸던 기억, 만프레드 아이허가 방문했을때 서울아트시네마가 세종문화회관이라도 된것처럼 기뻤다는 글 앞에서 속절없이 미소짓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프레드 아이허가 '서울방문시에 가장 기억에 남는곳이 어디였나'라는 질문에 낙원옥상의 서울아트시네마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었다. 에드워드 양의 질문처럼 내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도 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는 서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이 공감하고 있을까? 뉴스레터의 글은 링크를 걸 수 없는듯해서 본문을 옮겨놓았다. 반가운 목요일 오후.


[반디앤루니스] 책과사람 - 이슈와 추천도서

영화보러 낙원상가 갑니다.

정말 좋은 책인데, 잘 팔리고, 잘 나가는 책에 가려 주목을 못 받고 있다면, 저는 그 책에 더 애정을 쏟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일까, 방법을 고민합니다. 신간은 쏟아지는데, 시대를 잘못 태어나 빛을 보지 못한 책이 너무 많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책은 웬만하면 기다려주는 성질이 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에는 약 460개의 스크린이 있고, 대부분은 대기업의 멀티플렉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멀티플렉스는 조금이라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영화에 대한 고려가 없습니다. 정말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도 말이죠. 세상이 이렇게나 빨리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꼭대기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가 하는 일은 좀 달라 보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월 11일부터 ‘동시대 영화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인데, 일종의 ‘시차’가 보입니다. 이대로 잊히기엔 아쉬운 영화들, 영화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만 극장에 머물렀던 영화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시차는 거기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세상이 차마 신경 쓰지 못한 영화들을 보존, 상영, 그리고 존중합니다. 작년 겨울, 추위를 뚫고 저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특별전을 보러 다녔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면, 추워도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관에서 그보다 따뜻할 순 없었으니까요. 저는 서울아트시네마를 다니면서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작년 가을, ECM 레이블의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을 땐 좌석이 매진됐습니다. 그때는 그곳이 마치 세종문화회관이라도 된 것 같아 덩달아 기뻤습니다. 오즈 야스지로를 처음 알고 좋아서 감상했던 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기억,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를 다 보고 영화관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던 기억도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서울아트시네마가 제대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본래의 목적인 영화를 수집, 보관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으며 많은 사람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극장 운영조차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계자가 서울시 온라인 청원사이트에 등록한 글 일부입니다. 해당 글은 서울 시민 1,000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 청원이 성립되었고, 지금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지만, 기뻐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 지원에 관해서는 3년 연속 서울시 정책 우선순위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영화를 결코 많이 보며 살아왔다고 말할 순 없지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 보는 기쁨을 처음으로 알았던 관객으로서,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올해는 서울시의 밝고 뚜렷한 약속을 기대해 봅니다.

공감하는 마음이 커져 변화가 생기길 바라며, 이만 오늘의 [책과 사람]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작자들은 과거에 히트한 작품만 영원히 쫓아다닌다. 새로운 꿈을 꾸려고 하지 않고 옛 꿈만을 바란다. 먹다 남은 음식을 재료로 해서 이상한 요리를 만드는 셈이다.”
- 구로사와 아키라,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모비딕,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