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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알랭 레네가 세상을 떠나다 본문
* 알랭 레네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90년대 초, 문화학교서울의 비디오테크에서 어렵게 만났던 그의 영화 덕분에 나는 영화에 매혹되었고 이 세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강박관념들: <밤과 안개>의 시체들, <세상의 모든 기억>의 (감옥)도서관, <히로시마 내 사랑>의 '그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라 말하는 기억의 괴로움에 사로잡힌 엠마누엘 리바, <지난 해 마리앵바드>와 <뮤리엘>의 돌아온 자들과 만나는 맘각으로 고통받는 델핀 세리그. 곤경에 처한 '우리들'. 알랭 레네에게서 내가 배웠던 것은 영화가 결국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레네는 영화의 동력이 그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장소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가였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의 모든 기억과 마주한 우리들의 변호인이었다. 아래 글은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를 기다리며 '씨네21'에 썼던 글이다. 하지만 결국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 소개된 <라일리의 삶>이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우리들은 모두 레네의 신작을 기다린다
본디 레네식의 만남이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인생이 기이하게 근거리에서 교차하고 평행해 새로운 삶의 리듬과 가능성을 창조하는 것에 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알랭 레네의 만남이 그랬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 출연한 엠마누엘 리바와 90세를 넘기고도 신작으로 칸을 방문한 알랭 레네의 우연한 조우. <히로시마 내 사랑>으로 둘이 칸을 찾았던 것이 1959년의 일이니, 실로 50년만의 일이다. 이들의 과거를 추억하고픈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그들에 대해 본 것이 없다. 다만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제목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의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대사가 떠올랐을 뿐이다. 물론 이 두 영화는 관계가 없을 것 같다.
‘씨네21’의 칸 영화제 중간리포트에서 정한석 기자는 주저 없이 홍상수의 영화와 알랭 레네의 신작을 최고의 영화로 손꼽았다. ‘한 노감독의 힘없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사유의 찬란한 결과물’이 선정이유였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전작 <마음>과 <잡초>의 파격이 여전하다면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 이래로 우리는 히로시마와 마리앵바드, 혹은 뮤리엘의 레네에게서 멀리 떨어진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행히 신작이 개봉예정이라는데, 이게 무슨 유언장처럼 보인다.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의 대략의 이야기는 이렇다고 한다. 연극 연출가 앙트완느 오투악이 사망한다. 그는 마치 유언처럼 자신의 연극에 출연했던 과거의 배우들을 성에 모이도록 한다. 이들은 모두 <에우리디스> 연극을 함께 했던 배우들이다. 그들은 거기서 거실의 스크린에 상영되는 젊은 배우들이 새롭게 번안한 연극을 보게 되는데, 어느 덧 스크린의 이쪽 편에 있는 배우들도 무대에 서 있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영화와 연극, 배우와 관객, 삶과 죽음의 관계를 다룬 영화라고들 한다.
궁금해서 찾아본 유투브의 칸 기자회견 영상을 보면서 은발의 노신사 곁에 미셀 피콜리를 위시해 그의 전속배우 사비느 아제마와 피에르 아르디티, 램버트 윌슨, 그리고 새롭게 레네의 배우군단에 자원한 마티유 아멜릭 등 실로 많은 배우들이 다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배우들이 너무나 사랑해 너도나도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했던 전성기 할리우드의 황태자 에른스트 루비치가 떠올랐다. 농담이 아니다. 그의 최근작들은 뮤지컬이 가미된 일종의 코미디이고 <입술만은 안돼요>는 루비치의 영화에서 특별한 영감을 얻었다. 루비치 터치는 레네의 기이한 작가성에도 있다. 그는 한 명의 모던한 작가라기보다는 화법과 형식을 파괴한 실험의 작가였고, 실로 작가라기보다는 연극처럼 배우들과 극단을 거느린 연출가에 가깝다. 알랭 플래셔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영화는 ‘아틀리에 예술’이다. 그는 언제나 집단을 구성해 다른 예술을 영화에 끌어들였다. 누보로망 작가들의 문학, 희곡의 영화화는 물론이고 엠마누엘 리바, 델핀 세리그, 사비느 아제마 등 무대 여배우들을 영화에 기용했고, 오페레타와 뮤지컬, 만화, 범죄 영화, 멜로드라마 등의 장르를 적극 활용했다. 레네의 영화는 개인보다는 집단의 산물이고, 그는 현대영화의 탁월한 황태자이다.
그러니 호모 사케르식 개인에 집중했던 초기작들을 넘어서 근작들에서 우리는 레네의 ‘우리들’을 보아야만 한다. 비록 실감 없는 현실에서 정체성의 위기와 우울증을 겪지만 그럼에도 감성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우리들 말이다. <마음>과 <잡초>에서 레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정신, 의식, 마음에 카메라를 올려놓았고 아스팔트의 틈새에서 굳건하게 피어오르는 잡초마냥 우리들의 마음을 피어오르게 했다. ‘극장을 나오면 어떤 것도 놀랄게 없다. 무엇이든 발생할 수 있다’고 <잡초>의 내레이터가 말한다. 그러니 그의 아틀리에에 들어가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레네의 신작을 기다린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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