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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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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

사라질때까지

Hulot 2016. 10. 3. 23:24


2005,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대만영화제에 참석한 차이밍량은 감독 자신이 직접 표를 파는 행위에 나섰다고 말했다. 관객을 찾아나서는 모험을 벌이는 중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알려고 할 뿐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 그는 동시대 대만 관객들이 영화가 보는 예술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내 영화의 시사회장은 다른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대부분의 시사회장에서는 영화가 끝난 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있거나 야유가 뒤따른다. 하지만 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대부분 느리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이밍량은 제발 내 영화를 눈으로 보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로부터 대략 십년이 지난 2014, 차이밍량은 <서유>를 끝으로 극장용 영화제작에서 은퇴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의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데뷔로부터 20여년이 지나, 대략 열편의 극영화를 만들고 스스로 극장의 스크린에서 사라져갔다. 영화를 찍는 것이 신이 그에게 정해준 운명이라 생각한 이였고, 감독이 직접 나서서 관객들에게 표를 파는 행위를 일종의 문화운동으로 여겼던 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영화가 언제나 잔혹한 현실에 직면했다는 걸 이제 순응하기 시작했다. 비평가들의 높은 평가도 있었지만 관객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차이밍량의 영화를 보는 것을 꺼려했다. 영화의 한 장면이 그리하여 꽤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영화속 주인공들이 폐허의 건물에 그려진 벽화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그들이 가만히 벽화를 보는 순간은, 마찬가지로 관객들이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지켜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는 그가 십년 전에 관객들에게 요구했던 영화를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시간을 끌어오는 순간이다. 폐허에서 등장 인물들이 멈처서 벽화를 바라볼 때, 이 때 그 시간에 의해서만 이 공간이 창출된다. 천천히 움직이고, 사라질때까지 사물을 바라보는 것. 차이밍량은 그런 일이 이제는 극장에서 불가능하고 장시간 전시하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느긋하게 편안히 바라볼 수 있는 미술관에서나 허용될 수 있다고 여긴다. 보는 쪽도 만드는 쪽도 서두를 필요가 없는 곳. 그런데 그곳이 이제는 영화관이 아니고, 관객들이 아니라는 것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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