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CINEMATHEQUE DE M. HULOT

나고야 시네마테크의 기억 본문

소실

나고야 시네마테크의 기억

Hulot 2019. 6. 19. 09:00


영화관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나요? 

열 평 남짓한 극장 로비에 앉아 질문하던 이들에게 그가 되물었다. 창문 너머로 느릿느릿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가 다시 물었다. 영화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나요?
방금 전까지 우리는 일본 영화관의 폐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말을 이었다. “대체로 극장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이게 바로 방금 전의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의 젊고 활력 넘치는 목소리에 안경 너머 부드러운 눈빛은 여전했다.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도 했다. “영화관을 운영하면서 무엇이 가장 큰 고민이고, 어떤 일이 괴로웠나요? 활동하면서 즐거운 일이 무엇이었나요?”
2016년 2월의 어느 밤. 나고야에서 그를 만났다. 마지막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난 1월, 그가 쉰 일곱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1983년 개관 당시에는 직원으로 참여해, 1987년부터 근 삼십 년 넘게 나고야 시네마테크의 지배인으로 일했던 히라노 유지. 시네마테크라고는 하지만 이마이케역 근처 평범한 주상복합빌딩 이층에 세들어 있는 사십 석 규모의 미니시어터다.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영화란 영사기와 흰 벽만 있으면 상영 가능하다. 문제는 늘 다른 곳에 있다. 꼬박꼬박 월세를 내야 하고 상영할 영화들을 수급해야 한다. 이제는 나고야에도 서너 개의 예술영화관이 있으니 극장들이 서로 각자의 상영 밸런스를 유지해 고유의 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데뷔 감독이 유명해져서 차기작을 다른 큰 극장으로 들고 가버리면 다른 감독을 찾으면 된다고 여긴다. 다른 영화들, 다른 감독들이 여전히 있기 마련이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 극장들이 각자 상영에서 개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란 있을 리 없다. 그는 백 명이 보면 백 명 모두 만족할 만한 영화로는 작가성이 성립될리 없다고 말한다. 열명이 보면 그중 다섯 명이 ‘좋은 영화’라고 말하더라도 나머지 다섯 명이 ‘좀 그렇네’ 혹은 ‘뭐야, 이거’라고 말할 영화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야 작가가 출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관객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것도 아닌 영화관. 덧붙이는 그의 말. “그러니까, 이 일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영화도, 영화관도 그렇다고 마음만으로는 충분할 리 없다. 그도 개관 스무 해를 맞이할 무렵에는 각각 백 석, 사십 석 규모의 두 개관 모델의 시네마테크를 마련할 생각도 있었다. 세 들어 사는 단관 극장으로는 새로운 세기에 적응하기 어렵다. 최소한 두 개관의 운영으로, 각각 규모 있는 작품과 수지가 맞지 않을 마이너한 영화들을 동시에 공개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지만, 꿈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극장 구석구석의 벽면에는 상영했던 영화 포스터와 극장을 방문한 영화인들의 사인이 적힌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친필 사인도 있다. 감독이 극장을 깜짝 방문했던 일을 그는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가 쓴 글에서 사연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3년 <텐>을 개봉하던 때에, 극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키아로스타미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평일 낮 시간. 열 명도 채 안 되는 관객들이 있을 거라 우려했지만 감독은 상관없다며 극장을 찾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몇 명의 관객들에게 불쑥 나타나 ‘이 영화의 감독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마음 졸이는 순간인지 알 것이다. 미리 무대인사가 있다고 알렸다면 그래도 관객들이 더 찾아왔을 텐데, 라는 말에 키아로스타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미리 무대인사를 하겠다고 하면 손님이 더 들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오는 사람은 나를 보고 싶거나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키아로스타미 본인은 없어도 상관없이, 그저 내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인 관객들이다.”
키아로스타미가 불쑥 만났던 그날의 관객이 어떤 이들이었을까 상상해본다. 극장의 밤에는 너무 밝으면 사라질, 너무 사소해 보여 어떤 이도 밖에서는 전하지 않는 소식들이 있다. 그날의 관객들은 사진작가 필립 퍼키스가 말한 ‘크게 일을 벌렸을 때 사라지고 마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비록 어떤 말로도 인도되지 않는 침묵의 밤이긴 했지만, 히라노 유지와 이야기를 나눴던 마지막 밤의 기억이 내게는 그런 순간으로 남았다.


'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미지 뒤편의 세계  (0) 2020.02.13
테이블은 비어 있습니다 - 2019년의 시네마테크  (0) 2019.12.30
사라질때까지  (0) 2016.10.03
最好的時光  (0) 2015.11.14
낙원의 겨울  (1) 201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