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QUE DE M. HULOT

크리스마스를 위한 무드 - 왕가위의 <2046> 본문

영화일기

크리스마스를 위한 무드 - 왕가위의 <2046>

KIM SEONG UK 2023. 12. 24. 12:52



In the Mood for Christmas

나는 오랫동안 왕가위의 <2046>을 절절한 크리스마스 영화로 기억해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영화는 관객의 마음속에 이미지와 소리를 생생하게 구현하는 예술이기에 모든 관객은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기 마련이다. 단일 영화의 영화적 경험은 다양하고, 사람마다 기억의 코드가 달라서 영화를 떠올리는 방식 또한 다를 수 밖에 없다.

얼마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2046>을 상영한다고 말하니 아는 후배가 약간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영화 속 이야기가 크리스마스에 벌어진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도 왕가위 영화 속 인물들이 ‘러브 액추얼리’ 같은 그런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는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이들이기에 그런 편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 영화로 기억하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2046>의 모든 이야기는 예외적으로 크리스마스(이브)와 관련되어 있다. 양조위와 세 여성의 이야기는 1966년, 1967년, 1968년 모두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작한다. 왕가위 영화의 시간 코드와 마찬가지로 이 명백한 숫자가 때론 모호함을 주기는 한다. 가령, 영화의 한 장면에서 소설가 주모운으로 분한 양조위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무드를 말하는 장면의 해석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는 일본인 친구에게 장거리 전화를 걸고 싶어한 왕페이를 사무실에 데려다 주고는 이렇게 말한다

   | 그날 밤 나는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그녀를 신문사 사무실로 데려가서 남자친구에게 국제전화를 걸게 했다.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 사실 1224-1225번 객차는 이맘 때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는 모두 따뜻한 무언가를 원한다. 비록 난 가질 수 없었지만, 그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주모운의 내레이션에서 모호함은 1224, 1225 객차라는 표현에서 나온다. 생각해보면 딱히 번역의 오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말 그대로 1224-1225번 객차는 이맘때, 즉 크리스마스를 말한다. 영어 자막본에서는 이 대사를 ‘1224-1225 구역은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날을 상징한다’라고 더 설명적으로 옮겼다. 이 숫자의 출처는 영화 속에서 양조위가 쓴 ‘2046’이라는 소설의 한 구절에서 이미 흘러나왔기에 이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쉽게 숫자의 의미를 파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2046을 향하는 열차를 탄 승객을 묘사하면서 이런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 승객 가이드 201항을 보면 1224-1225번 객차의 난방이 무척 약하므로 승객끼리 끌어안고 체온을 유지하라고 되어 있다.

소설가 주모은은 이처럼 2046으로 가는 기차에서 가장 춥고 외로운 구간을 1224-1225 객차(혹은 구역)로 묘사한다. 이는 현실의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춥기에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안으라 조언한다. 소설에서 타쿠(기무라 타쿠야)가 유일한 탑승객이었기에 그는 안드로이드 승무원과 포옹한다.



왕가위의 영화에서 1224-1225구역의 지독한 외로움은 크리스마스의 시간을 공간화한, 그가 그리는 크리스마스날의 무드이다. 모두가 들떠 있을 때 더 깊은 쓸쓸함과 공허를 느끼는 이들이 있다. <2046>에서 왕가위는 <화양연화>의 매우 붐비는 좁은 공간에서의 근친적 감정과는 반대로 2046으로 향하는 거대한 기차의 차갑고 외로운 텅빈 구역들처럼 넓은 공간을 사용해 매우 좁고 공허한 감정을 표현한다. 때론 1224-1225 구역은 크리스마스날의 영화관일 수도 있다. 그날 어떤 이들은 2046으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한 타쿠처럼 홀로 영화관을 찾는다.

영화관의 어둠이 관객을 고립시키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어둠으로 고립된 관객을 감싼다. 관객은 고립되어 있지만 에드가 모랭이 말한 것처럼 영혼을 공유하는 거대한 젤라틴, 즉 숫자가 적든 많든 간에 집단적 참여가 있기에 고립된 개인과 집단에 속한 상태 사이의 모순적이고 상호 보완적 조건이 외롭고 추운 구역에 체온을 유지하게 한다. 모든 것이 우리의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일어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영화에 대한 기억은 먼 기억일지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의 기억이다.

18:30 <2046>(2004)
202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