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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와카오 아야코를 만나다 본문
마스무라 감독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합니다
- 배우 와카오 아야코와의 인터뷰
배우 와카오 아야코를 만났다. 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다이에 특별전’에 참석한 그녀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만났던 시간은 40여 분 정도였다. 스크린에서 그녀를 보아왔던 열망의 시간에 비하자면 턱없이 부족한 만남의 시간이다. 물론, 관객과의 대화와 이어진 뒤풀이 자리까지 참석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녀와의 만남에 아쉬움은 없다. 다만 이 짧은 기록이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나 무엇보다 그녀만이 가능했던 연기의 비밀에 다가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할 것이다. 어쩌면 그 비밀에 우리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녀는 마스무라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고 그게 사명이라는 생각했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와카오 아야코는 배우로서 총 160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했다. 60년대 전성기 시절 다이에 영화사에서 그녀는 연간 11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에서 굴절되거나 도착되지 않으면서 열정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여성상을 매번 특별한 연기로 표현했다. 그럼에도 동시대에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하나의 전통을 형성해온 ‘일본영화’라는 관념이 그에게 거부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그 또한 동시대의 비평가들에게 외면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스무라 야스조가 다시 화려하게 재발견되고 배우 와카오 아야코가 대중들에게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녀는 담담하게 마스무라 감독이 당시 시대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며 지금 와서야 비로소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김성욱│먼저, 이렇게 한국에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에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
와카오 아야코│일단은 한국에서 영화 관련된 일로 초청을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꽤나 신선한 경험이다.
김성욱│일본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서 마스무라 야스조 회고전이 전국적으로 개최되었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마스무라 회고전이 열린 것이 2005년의 일이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21세기 들어서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이 다시 발견되고 마찬가지로 당신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열렸는데,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와 배우의 존재가 새롭게 논의되는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와카오 아야코│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요즘에 그런 작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질문에의 답변은 어렵다. 전세계적으로 좋은 배우들도 많은데, 답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라는 게 시대와 맞거나 안 맞는 문제들이 있다. 마스무라 감독은 당시 시대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야 비로소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마스무라 감독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시에 과소평가되었던 상황이 이해가 될 수 있다.
김성욱│배우로서, 출연작이 총 160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이에 시절에, 60년대에 주연작으로 연간 11편 정도에 출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매 작품에서 이렇게 특별한 연기를 보여준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1960년대 다이에 촬영소 시절의 상황은 어땠는가?
와카오 아야코│그 당시에는 영화가 일주일에 한편씩 개봉하는 상황이었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다들 극장을 갖고 있었고 아무리 흥행이 잘되어도 일주일 뒤에는 새로운 작품을 상영했다. 그러니 일 년 내내 촬영소에 있던 기억밖에는 없다. 연간 11편의 영화들 모두에서 주연을 한 것은 아니었다. 촬영일수로 보면 8편이 거의 한계이다. 나머지 세 편은 우정 출연으로 하는 것이었다. 설이나 구정에 개봉하는 작품에 출연했던 것들이다. 그중 몇 편은 사장의 독단으로 만들어졌고, 나머지는 제작부에서 수시로 기획을 해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김성욱│쟁쟁한 감독들과 작업했는데, 마스무라 감독 이전에 미조구치 감독과의 첫 작품은 <기온 바이샤>로 1953년의 일이다. <적선지대>(1956)에 주연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마스무라 감독과의 첫 만남은 <명량소녀>인데, 어떻게 처음 작업하게 되었는가?
와카오 아야코│미조구치 감독의 <적선지대>에 주인공으로 발탁됐는데, 당시는 나도 신인이었기에 주변의 선배 배우나 여배우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 정도의 촬영 후에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미조구치 감독이 내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는지 마스무라 감독에게 나를 교육시키라고 말했었다. 그때 마스무라 감독은 회사의 명령으로 이태리에 유학 예정이었다. 실비나 망가나, 소피아 로렌 등이 출연했던 이태리 촬영소에서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명랑소녀>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영화에 내가 주연으로 발탁됐다.
김성욱│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해 자기 결정을 주장하는 여인상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와카오 아야코│당시 일본영화의 젊은 여인의 역할은 국한되어 있었다. 예쁜 여성, 조용하고 차분한 여성, 아니면 악역이나 못된 짓하는 여성이다. 그런 식으로 두 가지 패턴이 있었다. 반면 마스무라 감독이 이탈리아에서 본 영화 속의 여성상은 살아 있는, 리얼한 여성이다. 이탈리아 여성은 일본 여성과 달리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좋은 것은 좋다고 표현하는 여인들이다. 그런 것을 내게 바랐던 것 같다. 일본으로 돌아온 마스무라 감독은 얼핏 안 어울릴 것 같은 나를 자기 개성과 주장이 강한 여성상으로 개조하고 싶어 했다. <명량소녀>의 원작은 신데렐라 스토리이다. 신데렐라는 괴롭힘을 당하는 여성이다. 그런데 마스무라 판의 신데렐라는 달랐다. 기존의 신데렐라와 달리 당하기도 하지만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무찌르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쾌재를 부르는 그런 인물이다. 나는 항상 마스무라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고, 그게 사명이라는 생각으로 연기를 해왔던 것 같다. 마스무라 감독은 자신의 의지를 가진 여인, 그런 여인을 연기하게끔 했다.
김성욱│당시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은 일본영화와 일본영화의 전통을 파괴하는 급진적인 시도를 벌였다 생각한다. 당시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이런 새로운 시도에 배우로서 어떻게 공감하셨는지?
와카오 아야코│(그런 여성상에) 공감했다기보다는 그동안 그려진 여성상이 실제로는 가짜였다고 생각한다. 17살, 18살의 살아 있는 실제 여자라면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다. 마스무라 감독도 영화 속의 허구적인 여성상에서 좀 더 리얼한 자연에 가까운 여성을 그려내려 했던 것이다. 그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여배우로서의 기쁨이었다. 당시 소위 의욕적이라 불리던 동년배 여배우들은 “나는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 이런 역할이 나에게는 맞다”고 피력한 경우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감독님이 와카오에게 이런 것을 시키면 재미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어울리는 역할을 해왔다. 내게서 감독들이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에 기대를 갖게끔 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김성욱│<아내는 고백한다>의 마지막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가?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인 것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을 맹렬한 속도로 파고들어간다. 배우로서 이런 작품의 연기를 할 때 어떤 생각들을 했는가?
와카오 아야코│마지막 장면은 촬영 첫 날 찍었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하면 시나리오 속에 들어갈 수 있는가의 마음의 준비를 했다. 감독은 손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식의 세부적인 디렉션은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을 했다. 내가 느끼는 대로 포현한 것을 나중에 감독님도 최종본에 썼기에 감독에게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와 감독의 관계는 일종의 투쟁이라 생각한다.
김성욱│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은 편안한 감독이지만 업무상으로는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고 들었는데, 촬영 현장에서 어땠는지?
와카오 아야코│까다롭다기보다는 엄격했다. 현장에서는, 나는 물론 감독님에게 대항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항상 감독님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보통 촬영이 끝나면 배우와 감독이 회식을 한다던가 하는데 우리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렇다고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다. 현장에서는 항상 긴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독과의 관계는 좋았다.
김성욱│당신이 보여준 연기는 배우가 만들어내는 기적 같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에 어떻게 이렇게 새로운 여성상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와카오 아야코│영화를 찍을 때는 어려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연기에만 집중한다. 이게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생각하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여성상이 받아들여졌기에, 지금까지 나 또한 여배우로서 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뷰:
若尾 文子 X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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