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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눈먼 자들의 영화 -ECM과 고다르 본문
ECM 특별행사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이번 기회에 ECM과 영화의 관계를 살펴보는 특별전을 시네마테크에서도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흥미로운 기획이 될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특별히 ECM의 대표인 만프레드 아이허도 방한하니, 직접 그에게서 고다르 등의 작가들과의 작업에 대해 듣고 싶었던 것이다. 고다르의 사운드에 관한 이야기를 만프레드 아이허를 통해 듣게 된다니! 원래 대로라면 테오 앙겔로플로스나 베르히만, 타르코프스키 등의 영화도 상영할 생각이 있었지만, 아쉽지만 이 영화들의 국내 상영은 국내배급사가 판권을 갖고 있어 도리어 상영이 어렵다.
음악인들은 생소할 테지만-때론 영화인들조차 모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ECM 은 그동안 영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특히 고다르와 ECM의 관계는 각별하다. 만프레드 아이허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운드 작업이 고다르의 <그녀의 생을 살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고, 고다르는 ECM의 (현대)음악들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들의 음악을 듣는 것 같다는 음악적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이 둘은 이미 사운드를 프로듀싱하는 방식에서 이미 공유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가령, 고다르의 사운드 활용은 주류적인 영화음악의 작곡과 비교할 때 더욱 특별해 보인다. 그는 80년대 이래로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음악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고다르는 자신이 영화의 ‘작곡가’임을 자칭하기까지 한다(종종 그는 크레딧에 자신이 작품을 ‘연출directed by’했다기보다는 ‘작곡composed by’했다고 쓰곤 한다). 고다르가 음악과 관련해 작업하는 일이란 기성의 곡을 활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ECM의 만프레드 아이허와의 우호적이고 지적인 관계에 힘입은 바 크다. 자신이 흥미있어 하는 여러 음악가들, 그들의 작품에서 창작에 쓸 만한 것들을 선별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오직 고다르만이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작업의 방식은 고다르의 작품에 특별한 흔적을 남겼다.
첫째, 고다르의 음악의 활용은 일반적인 영화음악과는 달리 편곡, 혹은 리믹스에 가까운 것이 된다. 그는 몇 가지 예외를 제하자면(이를테면 단편들에서 전곡을 활용하는 경우), 대부분의 작품에서 ECM 음반의 음악적 질료들을 리믹스해 그의 작품에 새롭게 활용했다. 이러한 수법은 각각의 음반이 지닌 고유한 특징들, 역사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지의 몽타주와 비슷한 효과를 갖는다. 그렇게 고다르는 아르보 파트, 폴 힌데미스, 메레디스 몽크, 기야 칸첼리의 음반들을 자신의 작품에 가져왔다.
둘째, 고다르는 <누벨바그>를 시작으로 단지 영화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ECM에서 영화의 음반을 만들었다. 통상적으로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라 부르는 것인데, 고다르의 사운드 트랙은 영화에서 활용된 음악들의 모음이 아니라 영화의 대사와 노이즈 등이 모두 포함된 완전한 사운드 트랙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영화의 음반이 아니라, 이미지들이 부재한 또 한 편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으로서의 영화’는 이미지와 독립된 고유한 표현 형식으로서의 작품이다. 이는 논리적으로 눈먼 관객들, 즉 시각성의 부재에서 영화를 체험하는 다른 관객들을 전제할 것이다.
고다르는 원래 ECM 레코드의 음악가들 몇 명을 방문하는 아이디어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계획은 고다르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나중에 대폭 수정되어 다른 작품이 되었다. 그렇게 고다르의 <아워뮤직>이 만들어졌다. 사라예보를 방문하는 것으로 상황은 변경됐지만, 그럼에도 음악에 관한 아이디어는 그 제목에 흔적을 남겼다. 우리들의 음악이란 여기서 영화의 다른 표현과 다른 작용을 의미할 것이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보기를 중단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혹은, 마치 바울의 회심을 이끌었던 사건처럼 새로운 빛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고다르의 표현을 빌자면, 영화는 어둠 속에서 빛으로 우리를 이끄는, 우리들의 음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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