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QUE DE M. HULOT

시네바캉스 서울2013- 가토 다이와 임협영화 본문

상상의 영화관

시네바캉스 서울2013- 가토 다이와 임협영화

KIM SEONG UK 2013. 7. 23. 16:57

 

 

 

 

가토 다이의 임협영화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소개된 것은 2003년 9월의 일이다. ‘일본 액션영화 걸작선’으로 마스다 도시오의 <붉은 손수건>(1964)에서 하세가와 가즈히코의 <태양을 훔친 사나이>(1978)까지 총 9편의 영화를 상영했는데, 이때 가토 다이의 ‘붉은 모란 시리즈’ 중 <화투 승부>(1969)와 <오류의 방문>(1970)을 상영했다. 그해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특별전의 순회상영이었다. 가토 다이의 영화를 비디오가 아니라 필름으로 극장에서 처음 보았던 때이다. 2011년에는 부천국제영화제에서 ‘붉은 모란 시리즈’ 7편을 상영하기도 했으니, 이번 ‘임협영화 걸작선’은 세 번째 기획행사로 특별히 ‘도에이 임협노선’에 주목한다.


도에이의 임협노선이란 1963년작 <인생극장 - 히샤카쿠>에서 시작해 1973년의 <의리없는 전쟁>에 이르기까지 10년간 지속된 제작노선을 의미한다. 이 시기 일본영화 산업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산업의 급성장으로 사양길에 들어서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영화사가 경영 위기에 빠져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는데, 이때 도에이는 전통적 사극을 현대화하면서 임협 장르를 고안했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도에이는 총 673편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중 임협영화로 분류될 영화는 235편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전체 작품의 1/3에 해당될 정도로 많은 비중이다. 특히 1967년과 68년 사이에 총 제작편수는 60편 정도로 줄었던 반면 임협영화는 30편에 달해 제작편수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흥행의 전체적 불황기에도 임협영화는 활기가 넘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대다수의 대중장르에 대한 논의가 그러하듯 임협영화 또한 영화와 감독, 사회, 문화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고려해야만 아마도 설명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영화사들도 시도는 했지만 특별히 도에이에서 이 장르가 만개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적인 스타들, 뛰어난 제작자, 그리고 특별한 감독들의 존재 덕분일 것이다. 도에이는 텔레비전에 잃어버린 관객들보다는 텔레비전이 끌어들일 수 없었던 관객층을 겨냥해 이 장르를 고안했다고 한다. 안보투쟁의 기세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었던 60년대의 반체제 학생들, 노동자 계층, 그리고 한계적인 여성층들을 목표로 이 장르는 효과적으로 기능했고 성공을 거뒀다. 영화가 뜨겁고 불량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임협영화가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전세계의 비평가들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임협영화, 혹은 가토 다이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던 듯하다. 외국 평자들에게도 가토 다이는 ‘장르 감독’ 이상의 그 어떤 범주에 속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임협영화 걸작선’을 맞아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는 저명한 영화평론가 야마네 사다오 씨는 그런 상황에 대한 인식으로 평론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1960년대 후반 가토 다이의 영화에 매료되었지만 당시 그에 관한 영화평론이 없었다며 그리하여 왜 본격적인 영화비평이 없는 것인지, 임협영화나 활극은 제대로 된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기성의 평론에 대한 불만을 더해 스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에게 가토 다이는 영화비평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내게 이 장르는 무엇보다 뜨거웠던 60년대 후반의 사회를 영화를 통해 상상하도록 하기에 흥미롭다. 오가와 신스케가 <압살의 숲>(1967)으로 학생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있었고, 오시마 나기사는 <교사형>(1968)을 만들고 있었으며, 쓰치모토 노리아키는 <빨치산 전사>(1969)를 만들던 때에 가토 다이의 <붉은 모란>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붉은 모란 - 돌아온 오류>(1970)의 라스트는 이러하다. 그녀와 함께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나이와 둘이서 후지 준코는 적진으로 쳐들어간다. 그들은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만 하는 것과 그 자신의 개인적 관심사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전투성과 모성을 양날의 칼로 지녔던 후지 준코는 그들을 에워싼 적들 속에서 단도를 휘저으며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액션을 토해낸다. 그로 인해 언제나 단정하게 말아 올렸던 그녀의 머리가 흐트러져 바람에 흩날린다. 이 장면이 매혹적인 것은 그것이 폭력의 순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그녀의 사랑이 흩어지는 순간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후지 준코는 60년대의 여인으로 기억된다. 이번 특별전이 새롭게 이 장르를 사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1. 의리의 인력거꾼 車夫遊侠伝・喧嘩辰 / Fightin’ Tatsu the Rickshaw Man

 

 

 

 

1964│99min│일본│B&W
연출│가토 다이
원작│가미야 고헤
각본│가토 다이, 스즈키 노리부미
촬영│가와사키 신타로
음악│다카하시 나카바
편집│ 미야모토 신타로
출연│우치다 료헤, 가와라자키 초이치로, 후지 준코

 

때는 1898년, 겨울의 오사카. 인력거꾼 다쓰고로는 항상 소동을 벌이는 말썽꾼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가 오사카 역에서 위세를 떠는 의원을 상대로 싸움질을 하다 구역을 책임지는 니시카와 조직의 야쿠자들에게 호되게 당하는 모습을 비춘다. 로우앵글의 화면이 돋보이는 초반부의 싸움에는 그러나 가토 다이의 이후 영화에서 보이는 비장함이란 없다. 오히려 시대극에 익살 소동극을 섞은 코미디에 가깝다. <의리의 인력거꾼>은 도에이의 임협영화가 아직 만개하기 전, 말하자면 장르의 규칙과 양식미가 엄격하게 작동하기 전 보다 자유롭고 가벼운 터치로 일관한 영화다. 영화의 흥미로움이 여기에 있다. 자기의 구역이라며 텃세를 부리는 야쿠자들에게 그는 모든 이들이 평등하며, 자신은 규칙을 따르는 일에 저항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후의 임협장르가 요구하는 이른바 규칙에 순응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는 꽤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고, 그 때문에 세 번의 결혼식이 벌어지는 소동이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이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게이샤 기미야코 때문에 시작된다.
구역싸움으로 허구한 날 다툼을 벌이던 다쓰고로는 어느 날 미모의 게이샤 기미야코를 인력거에 태우다 그녀가 건방진 행동을 한다며 다리 위에서 강에 내던져 버린다. 그 때문에 그는 니시카와 조직에 끌려가는데, 사실 그녀는 니시카와 두목의 여인이 되기로 했던 터이다. 두목은 그의 호기로움에 매료되어 조직원으로 들어오도록 요구하는데, 당돌하게도 그는 기미야코와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다. 첫눈에 그녀에게 빠졌다며 한눈에 반한 사랑은 지속된다는 엉뚱한 언설을 늘어놓는데, 이 호기로운 행동에 두목도 허락한다. 하지만 약혼식 후의 온천장에서 그는 기미야코가 두목의 여인이라는 고백을 듣고는 분개해 파혼을 선언한다.
액션의 장면들도 흥미롭지만 영화 초반 다쓰고로가 니시카와 조직에 끌려가 기미야코에게 구애를 하는 순간의 양식미가 눈길을 끈다. 수평으로 긴 시네마스코프 화면의 좌측 원경에서는 두목과 다쓰고로의 대화가 벌어지는데, 이때 정작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화면의 우측 전경에 클로즈업된 기미야코의 얼굴이다. 아주 긴 대화 장면이 컷 없이 지속되는 와중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기미야코의 생생한 표정을 관찰할 수 있다. 가토 다이의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는 심도 깊은 화면의 연출로 꽤나 아름다운 순간이다. 약혼식을 올리고 저녁길에 그녀를 인력거로 끌어 온천으로 향하는 장면 또한 낭만적이다. 남자들의 거친 액션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이런 세심한 장면들이 도리어 작지만 반가운 선물처럼 다가온다.

 

 

2. 메이지협객전 明治侠客伝・三代目襲名 / Blood of Revenge

 

 

 

 

1965│90min│일본│Color
연출│가토 다이
원작│가미야 고헤
각본│무라오 아키라, 스즈키 노리부미
촬영│와시오 모토야
음악│기쿠치 순스케
편집│가와이 가쓰미
출연│쓰루타 고지, 쓰가와 마사히코, 후지 준코


기야타쓰 조직의 두목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의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는 이 첫 사건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마을의 축제가 한창 벌어지는 거리. 문신이 새겨진 건장한 몸의 사내들이 가마를 메고 힘을 쓰는 중에 그 무리들을 등지고 한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보인다. 때는 1907년의 오사카. 이어 기타야쓰의 얼굴이 마찬가지로 클로즈업으로 등장한다. 이어지는 화면들도 짧은 컷의 연속이다. 발의 클로즈업. 칼의 클로즈업. 그리고 심한 고통에 일그러진 기타야쓰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보인다. 살인이 이제 막 발생한 것이다. 서두의 십여 분간 진행되는 이런 식의 살인극은 과장된 연기를 배제한 지극히 브레송적인 몽타주 컷들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소매치기>의 첫 장면을 살인극으로 구현했다고나 할까. 이미 첫 장면만으로도 <메이지협객전>은 충분히 관심을 끌 만한 영화다. 이어 보스가 살해되면서 다혈질의 아들 하루오는 복수를 결심하는데, 보다 차분하고 과묵한 보스의 오른팔 아사지로는 정의로운 방식으로 조직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보스의 죽음 이후 아사지로가 후계자로 임명되면서 갈등은 커져만 간다.
전작 <의리의 인력거꾼>과 마찬가지로 가토 다이는 야쿠자 장르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비련을 보다 섬세하게 표현한다. 게이샤를 연기한 후지 준코가 아사히로와 다리 위에서 마음을 나누는 장면은 <붉은 모란 - 돌아온 오류>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리에서 벌어지는 서정적인 순간의 전조이다. 로우앵글의 카메라가 다리 위를 걸어가는 후지 준코를 보여준다. 갑자기 그녀가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오는데 그때 아사지로가 반대편에서 등장한다. 아사지로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장례식을 잘 치렀냐고 묻는다. 아사지로는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그녀가 부모의 임종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녀를 도왔던 것이다. 그녀는 “왜 나 같은 여자에게 친절하게 하냐”며 반문한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품에서 꺼낸 복숭아 두 개를 꺼내 고향에서 들고온 선물이라며 그에게 내민다. 그들의 뒤로는 저녁노을이 이제 막 지고 있다. 아름다운 이별의 순간이다. 조직의 3대를 계승한 아사지로가 치르는 격전은 이 순간 다음에 벌어진다. 그는 경찰에 끌려가고 여인은 흐느낀다. 우리는 이 마지막 순간이 어떻게 변경되는지를 얼마 후 후지 준코가 연기한 ‘붉은 모란 시리즈’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이제 둘은 함께라면 죽어도 좋다는 동행의 의식으로 적들과 싸움을 벌인다.


3. 붉은 모란 - 화투 승부 緋牡丹博徒・花札勝負 / Red Peony Gambles Her Life

 

 

 


1969│98min│일본│Color
연출│가토 다이
원작│이시모토 히사키치
각본│스즈키 노리부미, 도리이 모토히로
촬영│후루야 오사미
음악│와타나베 다케오
편집│미야모토 신타로
출연│후지 준코, 아라시 간주로, 다카쿠라 겐, 와카야마 도미사부로


후지 준코가 주연한 도에이의 '붉은 모란 시리즈’는 총 8편이 만들어졌다. 야마시타 고사쿠를 시작으로 가토 다이 등의 감독이 연출에 참여했는데, 가토 다이는 이 중 세 편을 만들었다. 그 첫 작품이 3화인 <화투 승부>로,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눈먼 소녀를 돕는 야쿠자 도박꾼 오류(후지 준코)의 이야기가 6화에서 반복되기에 연작이기도 하다. 가토 다이의 탁월함은 폭력의 격전과 시정 넘치는 연애적 사건 둘 다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연출에 있다. 임협 장르에 품격을 더하는 것. 이를테면 오류는 단도와 총을 기모노의 넓은 소매 속에 숨기고 적진을 향해 돌진해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하지만 여전히 여성적 풍미와 관대함을 잃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의 나고야. 철로변을 걷고 있던 오류는 눈먼 아이가 기차에 치일 뻔한 순간 재빨리 구해준다. 이 우연하고 당돌한 시작의 사건은 오류의 인정과 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실은 간단치 않은 질문으로 진전된다. 결국 이 아이의 운명은 구제될 것인가? 나중에 니시노마루 일가에 신세를 지게 된 오류는 이 아이가 자신을 사칭하며 사기도박을 일삼는 여도박사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니시노마루의 외동아들 지로는 이 일가와 라이벌 관계인 긴바라 일가의 딸 야에코를 사랑한다. 두 일가가 사업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게 되면서 연인들의 사랑에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결국, 니시노마루가 긴바라 일당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고 오류는 혈혈단신 복수를 하기 위해 결전을 치른다.
이야기의 얼개는 임협 장르의 주된 특징에 기대고 있지만 가토 다이의 연출의 강세는 도리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남자와 여자의 멜로드라마를 부각시킨다. 지로와 야에코의 사랑은 라이벌 가문의 적대성 가운데 피어나는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비극적 사랑을 대중적인 클리셰로 드러내는데, 그 가운데 오류와 하나오카(다카쿠라 겐)의 소란스럽지 않은 사랑이 더해진다. 오류를 마음에 품고 있던 하나오카가 그녀의 살극의 책임을 대속하면서 여기서도 비극의 드라마가 완성된다. 이들의 사랑은 하나오카가 그녀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느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범상한 애정은 아니다. 영화는 이 둘이 빗속에서 처음 만나는 순간의 시정을 매혹적으로 표현한다. 오류가 그에게 우산을 넘겨줄 때 손가락이 가볍게 접촉하는데 그 순간 하나오카는 접촉의 감각에서 그녀의 온정을 죽은 어머니의 기억으로 떠올린다. 최종적인 액션이 벌어지기 바로 전에 눈밭을 둘이 걸어가는 순간이나 한 손에 단도를, 다른 손에는 총을 들고 수십 명의 적을 분주히 쓰러뜨리는 난투 장면은 이 강렬한 액션의 폭력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그것은 복수라기보다는 마치 폭력의 에너지들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보일 만큼 우아하다.


4. 붉은 모란 - 돌아온 오류 緋牡丹博徒・お竜参上 / Red Peony Finds a Daughter

 

 


1970│99min│일본│Color
연출│가토 다이
각본│스즈키 노리부미, 가토 다이
촬영│아카쓰카 시게루
음악│사이토 이치로
편집│미야모토 신타로
출연│후지 준코, 아라시 간주로, 스가와라 분타


가짜 ‘붉은 모란’ 행세를 했던 오도키의 딸 기미코를 찾기 위해 오류는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며 돌아다닌다. 도쿄의 아사쿠사 거리에서 결국 오류는 기미코를 찾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조직 간의 항쟁에 휘말리고 만다. 이곳에서는 야쿠자 일가들이 새로 생긴 인기 극장의 지배권을 두고 혈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오류는 분쟁에 휘말리고 기미코는 오류가 신세를 지는 뎃포큐와 라이벌 관계인 사메즈 가의 조직원인 긴지와 사랑에 빠진다. 3화에서 보였던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사랑이 반복된다. 그 와중에 오류는 7년 전에 헤어진 여동생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아오야마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게 된다.
6화에서 오류가 처한 도덕적 곤경은 더 심화된다. 그녀는 기미코를 오랫동안 방치했었고(그 때문에 오류는 소녀를 찾아 수년간 떠돌아다녔다) 급기야 기미코의 약혼자가 야쿠자의 복수극에서 희생당하기 때문이다. 두 장면에서 오류가 처한 상황이 극적으로 표현된다. 가령 오류가 기미코를 뎃포큐 가의 집에서 재회하는 첫 순간. 로우앵글로 표현된 깊이 있는 화면의 전경에는 기미코가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앉아 있다. 중경과 후경에는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야쿠자들이 보이고 그 사이에 오류가 있다. 긴 화면의 세로축의 심도가 강조된 밀도 높은 인물들의 배치는 중경과 후경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것에의 반응과 감정을 전경의 기미코에 집중하게 한다. 마침내 오류는 부모의 죽음으로 외톨이가 된 기미코를 두고 떠난 것을 사과하며 그녀에게 용서를 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오류가 화면의 전경에 위치하고 후경에는 기미코가 가부키 연극의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그녀는 여인의 운명을 대사로 읊조리고 있다. 오류는 무대 위의 기미코를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린다. 복수를 위해 적진에 홀로 나서기 직전이다.
잃어버린 동생이 유곽에서 쓸쓸히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아오야마와 다리 위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장면도 아름다운 순간이다. 눈발이 매섭게 내리고 있다. 아오야마는 이제 고향으로 되돌아가 죽은 여동생의 시신을 부모님 곁에 묻을 거라 말한다. 오류는 기차에서 드시라며 준비해 온 도시락을 내민다. 그 순간 품에서 떨어져 나온 귤 하나가 눈밭 위를 떼구르 굴러간다. 하얀 눈과 대비되는 오렌지빛 귤은 여성적 상냥함과 모성애와 갈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라스트의 액션이 심금을 울리는 것은 이러한 서정적인 순간들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감정을 격렬한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무리의 적들에 둘러싸여 그녀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격렬한 액션을 우아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언제나 단정하게 말아 올렸던 머리가 흐트러져 바람에 날린다. 그녀의 사랑이 흩어지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