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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우리들의 사랑에 무엇이 남았나? 본문
야스미 아흐마드의 <묵신>
말레이시아 영화계의 ‘대모’라 불린 야스민 아흐마드는 단 6편의 청춘송가와도 같은 보석 같은 작품을 남기고 2009년, 5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그녀의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0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우리 시대의 아시아 영화 특별전’에서 그녀의 유작인 <탈렌타임>(2009)을 상영했었다. 말레이시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예회를 무대로 벌어지는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인데, 아무도 없는 교실에 빛이 들어오고 하나씩 불이 꺼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명멸하는 빛과 시간의 무상함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야스민 아흐마드의 영화는 주로 민족이나 종교의 차이를 넘은 연애를 드라마의 소재로 다뤘는데 <묵신>도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묵신>은 오키드라는 소녀의 여러 생애를 다룬 ‘오키드 4부작’의 마지막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 4부작의 시간 순서는 제작 순서와는 다른데, <묵신>은 4부작의 대미를 장식하지만 극 중 이야기의 시간으로는 가장 빠른 유년기의 사랑을 그린다(가령, 극 중의 시간축은 <묵신>(2006), <가는 눈>(2004), <라분>(2003), <그부라>(2005)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는 우정과 사랑의 틈새에서 흔들리는 유년기의 감정의 혼란, 소녀 시대의 첫사랑을 그려내는 감상적인 필치가 모든 평범한 장면들에 묻어 있어 세심한 관찰을 요한다. 아니 관찰이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눈길이 장면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만큼 사랑스럽다. 야스민 아흐마드는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에게 어느 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이 90분 동안의 상영시간 동안 지속된다. 무엇보다 소녀에게 갑자기 발생하는 운명의 만남, 사랑의 순간을 지켜보는 매혹이 있다. 갑자기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빗속의 춤, 평범한 축구 경기, 벌판에서의 연날리기, 그리고 자전거를 함께 타는 순간들이 모여 작은 우주를 형성한다. 이렇듯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지나가 버린 작은 것들의 경험에서 소중한 시간들을 되찾게 한다. 무대가 되는 말레이시아의 다민족적, 다문화적 양상이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관의 충돌, 계층적 차이, 언어적 차이(가령, 오키드는 영국 유학의 경험을 지닌 어머니 아래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중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중국계 학교를 다닌다)로 부각되지만, 그리 심각한 편은 아니다. 영화는 이러한 모순과 갈등보다는 유년기의 첫사랑이라는 테마에 보다 집중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독의 상냥한 눈길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작품이기에, 설명은 그 다음의 일이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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