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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너무 많이 보았던 작가, 브라이언 드 팔마 본문
너무 많이 보았던 작가, 브라이언 드 팔마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를 자극적인 불량식품 같은, 정상성의 궤도에서 벗어난 독특한 취향의 작품으로 취급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수정되어야 할 전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가령 6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정신에 기대어 말하자면, 조금은 삐뚤어진 방식처럼 보이긴 하지만 현재 드 팔마보다 더 직접적인 계승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는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변모의 윤리를 지켜왔기에 희귀하게 생존한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작가로 남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들이 지금 보여주는 작업들을 드 팔마의 근작인 <리댁티드>나 <팜므 파탈> 같은 영화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드 팔마는 흥행에 성공한 몇 작품을 제외하자면(가령, <언터처블>, <미션 임파서블>) 상품으로 제대로 팔리거나 예술적 매버릭으로 이해되는 작가는 아니었다. 종종 그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낭만적 영혼의 계승자로 찬미되었지만 쓸데없는 영화들에 재능을 낭비한 작가로 치부되기도 한다. 여성의 재현과 관련한 오래된 논란도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단번에 수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그의 초기작을 주의 깊게 보았으면 한다. 이를테면 <하이 맘!>의 경우가 그렇다(아쉽게도 이번 상영작에서 누락되었지만 <디오니소스 69>와 <그리팅스>를 같은 계열에서 생각해야 한다).
드 팔마는 60년대 실험적이고 정치적인 영화의 급진적 경향에서 빠져나오면서 70년대에 다른 뉴 시네마의 작가들과 다른 노선을 밟아나갔다. 선택의 두 교차로가 있었다. 그 하나는 상업적 시스템의 영화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경로는 언더그라운드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드 팔마는 스콜세지와 코폴라처럼 장르영화 제작을 실용적 수단으로 채택했지만, 이를 개작하고 실험하는 전복의 장기 전략으로 활용했다. 여기에 B영화와 히치콕의 서브코드를 동력으로 장착한다. 코폴라와 스콜세지가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모던한 영화 스타일을 결합해 품격의 고급스러운 길로 향했다면, 드 팔마는 B급 호러, 포르노그래피 등의 한계적인 영화들을 섞어 더 낮은 길로 향한다. 이 길은 물론 더 많이, 더 다르게 보면서 하위의 역량을 이미지의 에너지로 끌어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는 너무 많이 보려 한 아메리칸 시네마의 작가다. <캐리>나 <퓨리>에서 소년과 소녀가 몬스터가 되는 것은 6-70년대에 너무 끔찍한 것들을(그 대부분은 전쟁과 폭력, 암살 등이다)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비전의 희생자가 되었다. <드레스드 투 킬>에서의 살인과 광학적 장치들, <필사의 추적>에서의 시각적 도청, <스네이크 아이즈>나 <미션 임파서블>의 하이테크 비전들, 그리고 <팜므파탈>의 눈에 대한 공격까지. 그리고 최근작인 <리댁티드>에서의 멀티플 스크린까지, 드 팔마의 비전은 실로 다양하고 넓게 확장되었다. <리댁티드>가 다루는 이라크 전쟁의 참상은 복수의 스크린들이 서로 전투를 벌이는 양상이다. 이 영화에서 60년대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시 되돌아가는 1960년대의 아메리카. 미국(영화)의 꿈과 실패에서 기원한 그 모든 것들이 여전히 그의 영화에서 잔존하는 것들이다. 그는 영화의 변혁이 실패로 끝난 이후를 살아간 꽤 끈질긴 작가다.
아메리칸 고다르 –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하이 맘>
드 팔마를 히치콕의 적자로 이해하는 이들은 아마도 그의 60년대 초기작들을 보면 의아해 할 것이다. <그리팅스>, <하이 맘!>, 그리고 <디오니소스 69>와 같은 작품들은 히치콕보다는 거의 고다르의 <주말>이나 <남성, 여성> 같은 작품들의 영향 아래 있는 일종의 언더그라운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60년대에 고다르의 세례를 조금이라도 받지 않은 작가란 없을 테지만, 할리우드에서 이런 과격한 시도를 대놓고 한 작가는 찾기 쉽지 않다. 60년대 후반, 고다르의 영화가 베트남, 반전, 미제국주의, 맑스, 계급투쟁, 마오주의 등의 용어들을 떠올리게 했다면, 이 모든 것은 마찬가지로 드 팔마의 영화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JFK의 암살과 베트남 전쟁을 거친 드 팔마는 아메리칸 고다르를 꿈꿨던 것이다. <하이 맘!>은 이 모든 것의 예증이다.
<하이 맘!>의 서두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한 남자의 일인칭 시점을 따라 움직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주관적인 카메라의 활용은 관객들이 주인공과 동일화되도록 만드는데, 마침 이 남자는 건너편 아파트의 거주자들을 몰래 8미리 카메라로 촬영하는 영화를 제작 중에 있다. 남자 주인공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다. 영화 대부분의 내용은 주인공의 특권화된 관음증적 시선을 따라가지만, 그럼에도 시점과 형식은 인물을 넘어 여러 가지로 분산된다. 가령, 그가 카메라 숍을 방문하는 순간은 16미리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여인 라라의 시점으로 중계되며, 영화의 중간 중간에는 흑인운동을 알리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화면이 삽입되어 있다. 드 팔마는 고다르가 <남성, 여성>과 같은 작품에서 했던 것처럼 시네마 베리테의 관습을 빌려와 다큐멘터리적 진실이 영화의 테크닉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자기반영적으로 보여준다. 크게 보자면 이 영화는 세 가지 구성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가 백인 중산계급의 아파트에서 일상을 보여주는 ‘주부 다이어리’이다. 고다르가 중산층의 일상을 르포르타주처럼 파악한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 연상된다. 두 번째는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로, 백인 중산계급에 대한 흑인들의 비전을 보여준다. 셋째는, 이 전체를 조망하는 주인공의 시선이 담긴 ‘관음증적 영화’이다. 예술영화, 포르노그래피, 아방가르드 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60년대 미국 사회를 중산계급의 외설성과 흑인의 바깥의 시선으로 포착한 급진적이면서도 진지하게 유머러스한 영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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