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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거대한 홈 무비- 디어헌터 본문

영화일기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거대한 홈 무비- 디어헌터

Hulot 2019. 8. 17. 13:32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논쟁들. 

상반된 비전들이 마지막으로 허용되던 시절인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마지막 황금시대는 1970년대 말에 종말을 고한다. 피터 바스킨트에 따르면 80년대 변화의 양상은 영화의 주역들이 바뀌는 것에서 시작한다. 창조적 감독들이 주도하던 할리우드 문화는 이제 사무실에 앉아 투자 수익을 고민하는 회사의 중역들, 투자자들, 변호사들, 이른바 비즈니스맨들의 전일적 지배로 변경된다. 다른 변화는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장악하고 대중의 행동을 강력하게 규정하는 광고와 마케팅이다. 영화는 이제 홍보 여부에 따라 평가받고, 문장으로 요약될 있는하이 컨셉 아이디어가 성공작을 만든다. 영화학자 벨튼은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에 성공을 거둔 영화들이 대중을 불편하게 하기보다는 안심하게 해주는 영화들이며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1970년대 행동주의 미국의 사회 정치적 쟁점들이 이상화된 과거의 긍정적 이미지의 표면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말한 있다.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 그런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남았다. 

전쟁의 극화가 할리우드의 신속한 역사 전략이긴 했지만-1차대전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할리우드였다- 베트남 전쟁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1, 2 세계대전, 한국전을 다룬 수다한 영화들과 달리, 웨인의 형편 없는 작품 <그린 베레>(1968) 제외하자면 할리우드는 실패한 베트남 전쟁의 극화를 극도로 꺼려했다. 전쟁의 영향 아래 놓인 작품들이 있긴했다. 가령,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1976)처럼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자, 사회 부적응자, 정신 장애, 폭력 범죄자, 살인자, 방랑자들의 캐릭터 조형에 전쟁에서 귀환한 병사들이 활용되는 식이다. 참전 병사들이 겪는 물리적, 정신적 외상들은 이때 일종의스티그마 있다(전쟁으로 인한 스티그마와 관련한 다른 사례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에서 있는데, 그럼에도 그에게 베트남 전쟁은 없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의 극화가 시도된 시기는 대체로 1978년의 일로, 이 시기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 애쉬비의 <귀향> 공개됐다. 작품의 공통점은 상투적 전쟁영화가 아니라 참전 병사들의 귀환 후의 생활, 사회 복귀의 어려움을 다룬다는 것이다(이후,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로버트 알트만, 올리버 스톤, 스탠리 큐브릭, 브라이언 팔마 등이 만든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나온다.)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대중적 이야기 형식인 서부극의 신화적 틀을 활용해 공동체의 붕괴와 재생, 상喪과 (남성적)우울의 드라마를 도입한다. 영화의 배경인 펜실베니아의 작은 도시 클레이튼은 철강업을 기반으로 하는 러시아계 이민자 마을로, 영화의 주된 내용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젊은이들의 귀환을 그린다. 애쉬비의 <귀향> 마찬가지로, 참전 병사들은 모두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겪는 인물들로 이들은 폭력의 주체라기보다는 - 물론, 영화의 두번 부분에 해당되는 전쟁 장면의 묘사에 대해서는 비판이 제기되곤 했다. 가령, 로빈 우드는 정치학과 미학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며 영화의 정치적 기반의 불분명함을 지적한다. 남베트남인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장면이나 로버트 니로가 화염 방사기를 쏘는 장면, 혹은 도덕적으로 격분한 선량한 미국인이 동양의 타자에 대항해 싸우는 것으로 비쳐질 있는 장면들에 대한 언급들. 게다가 러시안 룰렛 게임이 과연 있었는가에 대한 사실성 여부의 논란들도 있다 - 전쟁의 희생자로 묘사된다.

21세기에 들어 이라크 전쟁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들의 인물 표상이 이러한 방식을 계승한다고도 있다. 가령 <허트 로커> 같은 작품을 두고 남성성의 상실과 트라우마, 폭력의 희생자로 이라크 참전 군인을 묘사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디어 헌터> 반전 영화의 계보라기보다는 그리피스, 비도, 포드 등의 미국영화의 거대한 에픽의 흔적을 계승한다. 환멸과 소진 이후의 미국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에 대한 질문들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치미노는 영화를 정확하게도 무비 불렀다. 이중적 의미다. 영화가집으로의 귀환'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마와 더불어 대담하게 중요한 것은 그가 홈무비의 형식과 고유의 리듬을 따르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엄청난 돈을 들인 작품을 ' 무비' 부르는 것의 대범함. 천만다행인 것은 파탄이 다음 작품-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마지막을 장식한 <천국의 >(1980)-으로 유보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무비 표현은 영화의 본질에 가깝다. 가령 베트남에서의 에피소드를 제외하자면, 영화의 매혹적 경험은 결국 초반부 70분에 달하는 장면들의 대담하면서도 풍요로운 순간들에 있다. 철강소에서 일하는 남성 신체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해 술집, 결혼식, 당구장 장면, 사슴 사냥으로 이어지는 거의 짧은 장편 하나에 해당되는 순간들. 장면들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제외하면, 관객인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는가? 혹은 시퀀스가 진행되는 동안,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가?

사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서,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영화의 특별함이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보는 것은 지역, 러시아 이주민들 공동체의 어떤 의식의 과정이다. 그리고 의식을 이루는 미시적 사건들의 디테일이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사람들, 러시안계 아메리카인들은 이런 식으로 일하고, 이런 식으로 놀고, 이런 식으로 의식을 치르고 춤을 춘다. 그들은 지역 공동체에서 평생 그렇게 살아갔다. 이러한 묘사를 두고 사실에의 강박이라 부르는 것은 반쯤의 진실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픽션의 장에 현실에서 가져온 질료를 넣어 통합하려는 열망이다. 장면의 요체는 마을 공동체의 호모소셜한 관계를 묘사하는 것에 있다영화의 시작에서 그려지는 것은 남자들간의 농밀한 관계들이다. 시간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장면은 베트남전에 참전하기 이틀 전의 이야기로, 붕괴될 공동체의 마지막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역사를 다룬 지금의 대중 영화들이 명백하게 잘못 생각하고 간과하는 시간의 힘을 전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비의 가장 친밀한 형태가 자체로 힘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전쟁의 피해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작은 공동체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홈무비의 형식은 전쟁의 결과를 가장 끔찍하게 보여 준다. 지금 우리가 보는 70분의 순간들은 <레오파드>(루키노 비스콘티) 댄스 장면처럼 이제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당구장 장면과 더불어 결혼식 장면에서의 다이렉트 사운드의 활용과 모든 인물들의 시점을 동시에 고려하는 프레임의 절대적 평등주의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이러한 기법은 <천국의 >에서 절정에 달한다. 물론 치미노의 무질서한 춤과 의식을 존 포드의 평온함과 대비할 필요가 있다.) 

무비 구성 형식의 반복과 리듬은 영화에 가지 주요 구성 부분 - , 고향 클레이튼, 베트남, 그리고 고향 클레이튼으로의 귀향 - 배치에서도 엿볼 있다. 치미노는 베트남과 클레이튼을 이질적인 세계로 구별한다. 구분은 고향에서 베트남으로, 혹은 베트남에서 고향으로의 이동 과정이 전혀 묘사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질적 세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흔들린다. 번째 에피소드에 이르면 클레이튼과 베트남은 전혀 다르지 않다. 서로 대립하지만 닮아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이질적 세계. , 클레이튼의 베트남, 혹은 베트남의 클레이튼. 로빈 우드는 이러한 구조적 형식과 관련해 중요한 지적을 있다. 가지 구조적 원칙. 번째는 클레이튼과 베트남의 대칭적 형식이다. 번째는 감축의 형식. , 결혼식으로 시작해서 장례식으로 끝나버리는 영화다. 번째는 모티브의 교차이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침공이 미국에 대한 베트남의 침공(하나의 경험, 상징, 정신 상태의 측면에서)으로 응수되는 방식이다. 가령 클레이트 철공소의 화염이 화염 방사기의 불촉으로, 그리고 지옥의 이미지로 교차되는 . 사슴 사냥의 러시안 룰렛 게임의 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형식의 혁신성은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전통에서 기원의 풍부함을 찾을 있다. 포드, 혹은 하워드 혹스의 영화들. 말하자면, 마이클 치미노에게는 스콜세지에게 없는 이상주의적 태도가 있다.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으로 영화를 만든다. 이는 할리우드에서 매우 드문 자질이자 흥미로운 자질이었다.  영화는 결국 삶에의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의 이상주의는 공동체의 파괴 - 현대 문명이 폐기처분한 것들 - 재생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고전적 전통이 이상적인 미국의 개념이 세워지는 순간에 놓인 미국 신화를 구현했다면 70년대에 마이클 치미노는 그것의 개념이 해체되는 순간에 놓인 미국의 신화에 관심을 보인다. 조화와 통일대신, 카오스와 불확실한 질서, 붕괴의 징후를 발견하는 . 가령, 결혼식 신부의 드레스에 떨어지는 붉은 와인 방울, 결혼식에의 그린 베레의 등장 신화적인 미국과, 긴장과 모순으로 찢겨져버린 미국, 그리고, 지배적인 미국이 파괴해버린 동유럽 이주민들의 공동체. 여기서 미국 /베트남 사이의 단절의 경계는 붕괴된다.  베트남의 재앙은 클레이튼 마을을 괴롭힌다. 1970년대에 베트남은 이미 미국에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웨스턴의 풍모를 따라가지만(3부의 귀환을 존 포드의 <수색자>와 비교해볼만 하다), 더 이상 거대한 공동체의 풍경은 희망의 구원을 제시하지 못한다. 무비에 담긴 거대한 역사.  (김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