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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심연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페드로 코스트와의 인터뷰(1) 본문
대체로 일을 하다보면 비슷한 질문을 받는 편이긴 한데, 얼마전 '페드로 코스타 영화를 왜 좋아하냐'라는 물음에 몇 가지 이유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고, 그 때문에 이런 서두의 짧은 글과 그와 2016년에 나눴던 인터뷰를 다시 소개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후에 더 말을 보탤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은 그 때 떠올린 이유를 말해야만 할 것 같다. 2001년 페드르 코스타 감독을 광주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었다. 당시 <반다의 방>을 상영하던 때다. 어둑하고 날선 눈빛, 하지만 작은 일에도 이내 맑은 미소를 지어보이는-그럴때마다 살짝 버드렁니가 드러나곤 했다-, 그의 전작들의 '피와 뼈'의 주인공들과 닮아보였던, 그러면서도 영화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이후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리고 2013년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 초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화만큼이나 그의 발언이 늘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화에 대해 해설하고 설명하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영화에 관한 일종의 작업-노동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데, 그 대부분은 대체로 직업적인 담화들, 이를테면 영화라는 집의 내부에서 (세계라 부르는)바깥에 대해 말하는-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스크린을 통해 영화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그런 위치와는 다른-, 시작도 끝도 명확하지 않고, 바깥에서 영화를 들여다볼 때의 자유로움이 부족하고, 영화와 노동-작업, 혹은 일상의 구분이 불분명한 직업적 말들이다. 말하자면, <호스 머니>에서 '호스'뿐만 아니라 '머니'에 대해-대체로 이에 관해서는 좀처럼 말해지지 않는다- 이야기하는 식이다. 그의 신작 <비탈리나 바렐라>(2019)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먼저 지난 2016년에 그와, 그리고 동료 후이 샤폐즈를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았다. (계속)
포르투갈의 거장 페드로 코스타 감독이 서울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조각가인 후이 샤페즈와 함께 영화와 조각의 만남인 ‘멀리 있는 방’이라는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를 위해서다. 이들의 작업은 ‘밝은 방’의 예술이 아니라 미술관의 흰 벽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후이의 조각은 철을 소재로 하지만 거의 그림자처럼 형상화되어 있고, 페드로의 영상은 <용암의 집>과 신작 <호스 머니>의 작품에서 가져온 용암과 얼굴들에 관한 것이다. 영화관에서 이동해 미술관으로 들어간 페드로 코스타의 영상이 간직한 희미한 빛은 무게를 상실한 철의 조각을 비추고, 관객인 우리는 근거(Grund)를 상실한 심연(Ab-grund)을 우리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거기, 조각과 영상의 그림자들의 심연에서 이들의 협업은 서로를 구제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16년/ 김성욱)
-두 분이 함께 2005년에는 <fall out>이란 작업을 하셨고, 일본에서 <무>라는 전시회를 하셨다. 이번 작업을 같이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
=페드로 코스타: 두 프로젝트 외에도 지난해 코임브라의 카타콤베에서 <파밀리아>라는 전시작업을 함께 했다. 이번의 경우는 우리가 하는 일들이 더 과거로, 시간 속에서 멀어진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우리의 조상이나 아티스트들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고대, 혹은 오래전 세계에 있는 존재들을 현재에 머물게 하려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둘 다 그 전통에 속해있다고 본다. 그들을 보호하려는 의미다. 방이라는 건 존재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식의 공간이다.
후이 샤페즈: 우리 이전에 있었던 조상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이전의 선배 같은 사람들을 계속 살아있는 것처럼 잊지 않기 위해서 하는 행위다. 일반인일 수도 있고 위대한 사상가, 작가, 영화감독, 조각가일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게끔 살려놓고 싶다. 왜냐면 그들은 지금 볼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갈수록 멀어지고 있는데 이런 방에서 프로젝트를 하면 그들을 혹은 그 이미지들을 좀 더 명확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 우리 이전의 선배가 아니어도 페드로의 영화에 나오는 벤투라같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과도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거리가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일을 하는 건, 우리가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예전에 했던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벤투라 같은 사람의 삶,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영화는 목소리, 얼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니까
-일본에서는 전시를 하신 적 있지만 한국에선 처음이다. 두 분이 영화와 조각의 영역 안에서 서로에게 어떤 끌림이 있었나.
=후이 샤페즈: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이나 현실을 보는 방식은 내 기억과 관련이 있고, 내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과도 상관있다. 페드로 영화 중 처음 본 영화는 <뼈>(1989)다. 영화를 보고 정말 흥미롭다고 느낀 건 페드로는 지나친 것이나 불필요한 걸 다 배제한다는 거다. 미니멀하다는 건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데 바로 핵심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뼈>는 저급한 장치를 쓰는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영화였다. 그 점이 내게 중요했다.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굉장히 급진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아주 극소수의 요소를 가지고 핵심적인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다. 좀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건 전부다 빼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절벽 끝에 서 있는, 칼날 위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제목처럼 다 깎아내고 뼈에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런 의미에서 조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페드로 코스타: 후이가 하는 일이 집중적인 축소다. 집중이 아니라 ‘집중적인 축소’이다. 예술로서 뿐만 아니라 철학으로서도 그렇다. 후이의 작품을 처음 보고 느낀 건 이런 식으로 작품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다. 작품을 할수록 미스터리가 깊어진다. 요새 아티스트는 갈수록 더 많은 것을 나타내고 보여주는데 후이는 그 반대로 작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내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후이 작품 속에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트라코라는 독일 시인이 했던 말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어두움을 더 어둡게 만들고 싶다”라고
-준비단계에서 전시를 잠깐 봤는데 두 가지 이미지를 봤다. 감옥 문의 형상과 페드로 감독의 <용암의 집>(1994) 이미지다.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용암이라는 게 이 전시에서 대단히 중요한 출발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그마이기도 하고, 두 분의 협업의 불꽃같기도 하고, <용암의 집>이란 작품 자체가 페드로 감독의 그 이후 작품들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뒷부분에 가면 네르발 시에서 온 <불의 딸들>도 쓰이는데, <용암의 집>으로 전시의 출발점을 잡은 이유가 있나.
=페드로 코스타: 실제로 후이가 나보다 더 불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불을 가지고 작업하는 건 은유적인 의미다. <용암의 집>을 만들면서 수집한 이미지를 보는데 ‘불의 딸들’이라는 이미지가 생각났다. 이 사람들이 사는 섬이 불의 섬이다. 활화산이 있는 섬이다. 말씀하신 시집도 떠올랐다. ‘불의 딸들’이란 표현을 그래서 사용했는데, 그런 아이디어를 이전에 누군가 했다는 것도 재밌었다. 그리고 여성들을 보면 가만히 서서 어딘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 왜 그렇게 서있는 건지 연쇄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계속 보다보면 그 여성들과 화산들과 연결점이 뭔지 생각하게 되고 또 뒤로는 주인공 벤투라와 계속 들리는 목소리들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건 전시의 주제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단순히 보면서 연상이 되는 것들이다. 이 여성들이 자기들끼리만 남게 됐는데, 연약한 여성들만 있는데 주변에 (후안이 만든) 강철로 된 보초들이 지켜주는 양상이다. 무력에 의한 보초가 아니라 시적인 의미의 보초다.
후이 샤페즈: 페드로가 하는 작업은 빛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사를 하니까. 그런데 빛으로 만든 실체가 아닌 것들이 굉장히 물질적인, 실체가 있는 강철로 된 걸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또 내 조각은 강철이 아닌 것처럼, 물질이 아닌 것처럼 위장되어 있고 그림자의 색깔을 하고 있다. 페드로 감독의 작품은 실제 물질이 아닌 것들이고, 내 조각의 강철이라는 것도 물질이 아닌 것처럼 나타나고 있어 마치 굉장히 연약한 것처럼 보이게 되어 있다. 우리 둘 다 작품 속에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면 아티스트들은 작품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하지 않는다는 거다. 메시지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와서 보고 의미를 부여할 때 의미가 생기는 거다. 작품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물체가 아닌 물질이 없는 빛(페드로의 영화)과 물질인데 위장이 된 것(나의 조각)이 합쳐져서 네거티브한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공간이 사람들의 눈으로 가득 차게 되고. 여성과 화산 같은 것들이 서로 연결된다.
-전시의 제목 ‘멀리 있는 방Distant Rooms’의 ‘디스턴스’는 일종의 기억을 촉발시킨다. 영화를 본 나로서는 3층의 영상에서 1층에 있던 <용암의 집>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당신의 영화를 기억하게 된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다른 결합을 떠올릴 것이다. 3층에 있는 후안의 조각은 보초같다 말했지만, 사실 바람에 흔들리는 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이 샤페즈: 1, 2, 3층이 분위기가 서로 다르다. 1층은 폭력적이고 언밸런스하고 정리가 안 된 분위기다. 노이즈도 많고 화산이 출연한다. 벤치들도 여러 개가 있는데 정리 정돈된 게 아니고 상처도 있다. 상처와 불과 노이즈가 주된 것이 1층의 컨셉이다. 2층은 풍경을 나타내는데, 수평으로 놓여있고 계곡, 그림자와 목소리로 이뤄져있다. 3층은 하모니로 이뤄져있는데 하모니 혹은 완벽함으로 인식할 수 있다. 어떤 얼굴이 있는데 움직이진 않는다. 그리고 커튼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그냥 떠 있기만 한다. 빛으로 이루어져 있고 물체는 없는 것과, 실체 물체인데 천처럼 가벼워 보이는 것, 이 두 가지가 같이 있다. 그리고 또 바람이 불어서 머리가 날리는 게 보이는데, 같은 바람 때문에 천처럼 보이는 철이 날리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조화를 이룬 것같이 보이는데 그러나 한계가 있다. 방 끝에 보면 원형으로 된 공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런 완벽해 보이는 하모니가 한계, 경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조각이다. 이번 프로젝트 제목을 독어 단어로는 ‘기다림Erwartung’, ‘기대’라는 뜻의 단어를 사용했다. 실제로 페드로 감독의 작품을 보면 액션의 영화가 아니고, 또 강제로 행위를 일어나게 하는 게 전혀 없다. 카메라를 들고 어디 가서 그냥 기다리는 식이다. 사냥꾼처럼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자기의 눈, 혹은 카메라의 눈을 가지고 기대를 갖고 기다린다. 실제로 시간 속 공간 속에서 일들이 일어나는데 무력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페드로 코스타: 독어로 된 제목은 쇤베르크라는 독일의 작곡가가 여성들의 위한 오페라를 썼는데 그 제목이 ‘기대감’이다. 그래서 음악과 연관이 있다. 가만히 있는데 절박함은 없는 거다.
-<행진하는 청춘>(2006)에서 보면 벤투라가 리스본의 칼루스트 굴벤키안 미술관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있다. 전시를 보면서 그런 벤투라를 미술관에 다시 배치시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미술관에 배치시키는 것에 있어서 페드로 감독은 어떤 가능성을 생각하는 건가.
=페드로 코스타: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서 보여주는 게 영화는 아니다. 후이가 얘기했듯 이런 도구, 수단, 소재로 작업을 하게 되면 보러 오는 관람객의 눈을 통해 뭔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들을 보면서 이게 왜 얼굴과 같이 있지, 왜 이런 느낌이 들지, 왜 이런 감옥의 면회실 같은 것을 통해서 벤투라를 봐야하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 그래서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진다. 내가 영화를 만들 때 이게 다큐다, 픽션이다 생각하지 않듯 박물관에 와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머릿속 혹은 눈 속에서 몽타주와 콜라주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1층에서 봤던 게 2,3층에서 생각날 수 있고 3층에서 봤던 커튼과 같은 이미지가 2층이나 1층에서 기억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오는 사람들이 후이의 작품을 보러 박물관, 미술관에 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호스 머니>(2014)를 봤을 때처럼 전시를 보면서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이콥 니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가난한 이민자들을 찍은 사진인데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전시 공간들을 봤을 때 드는 느낌이 제이콥 니스의 사진을 봤을 때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영상이긴 한데 픽션이라기보다 사실적인 느낌이 든다.
=페드로 코스타: 3층같은 경우는 이런 감정이 덜하긴 하지만 마치 내가 나를 가둬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고통이라든가 괴로움이라든가 이런 걸 느낄 수도 있고 아니면 뭔가 증상을 앓고 있다든가 하는 걸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해야할 일이 있는거다. 이거 뭐야 정신이 없다 하고 나갈 수도 있고 아니면 뭔갈 떠올리고 생각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거다. 말씀하신 제이콥 니스같은 경우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찍었는데 저의 작품 안에서도 사람들이 고통을 겪거나 갇혀 있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것이 실제 갇혀있는 게 아니라 심적으로, 내면에서 갇혀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이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살 수 밖에 없다.
후이 샤페즈: <호스머니>는 어떻게 보면 이 전시와 비슷한 점이라고까지는 얘기할 순 없지만 접근방식에선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페드로의 영화들이 대부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호스머니> 같은 경우는 그의 영화 중 가장 복잡하고 다른 요소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조명이라든가 칼라라든가 이전 영화들에서는 활용하지 않던 것들을 많이 활용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이 전시에도 여러 가지 요소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면 흑백을 사용하다가 굉장히 강렬한 칼라로 간다든가 그랬다가 또 다시 어둡게 간다든가하며 불규칙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전시도 역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후이씨같은 경우는 조각가여서 미술관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울 텐데 반면, 페드로 감독의 경우는 영화관을 떠나서 미술관,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것에 어떤 기대나 가능성, 혹은 위험에 대해 생각하는지?
=페드로 코스타: 기대는 전혀 없다(웃음). 가능성이라든가 그런 걸 생각한다면 보는 관객들이 자신만의 편집을 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한다. 극장과 다른 건, 무엇과 다른 것을 연관 짓거나 아니면 더 분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보다는 박물관에서 관객들이 그런 걸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극장에서와는 다른 감각을 사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극장과 비슷하게 관객들에게 조금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앞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에서든 극장에서든 마찬가지다.
-아쉽게 느끼는 건 미술관에서의 초대가 많았던 반면 극장에서의 공개가 적었던 한국의 예를 들자면, 나로서도 미술관에서 이런 전시가 열리는 게 기쁘면서도 페드로 감독의 영화가 극장에서 공개, 개봉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이 두가지의 어떤 차이랄까, 이게 계속 나타나는 현상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전시에 대해 더 관심을 많이 갖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비디오 인스톨레이션도 많고 박물관의 전시도 더 많아지고 있는데.
=페드로 코스타: 나는 이런 박물관 전시가 자주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말씀하신 게 사실이긴 한데, 배급사나 관계자들이 영화를 상영해줄 수가 없다, 그럴 예산이 없고 돈이 없고 관객들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약에 박물관에서도 그렇게 해줄 수 없다고 하면 안타까운 일이 될 거다. 그 부분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다.
후이 샤페즈: 페드로 감독의 작품은 매우 밀도가 높은 영화이기 때문에 비디오 아티스트의 작품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작품은 갤러리에서 전시가 되고, 간혹 극장에서 보이기도 하지만, 페드로의 작품은 ‘영화’이기 때문에 극장에서 상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상영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영화다. 단순히 어떤 장소에서 보여지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여전히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게 과거의 것처럼 계속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페드로 코스타: 언젠가는 사라질 것 같은데, 내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무속인이 아니라서 알 순 없다. 지금은 모든 게 다 디지털화되어서 영화 보는 것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바뀌었고, 어디 모여서 같이 본다든가 하는 집합적인 경험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거 같다.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영화 아카이브라든지 시네마테크 같은 데서 고전영화를 보는 게 아닌 이상, 모든 게 앞으로는 거대한 유튜브처럼 될 거 같다. 유투브에 들어가서 찾아서 보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보고 싶은 것, 그들의 필요에 맞춰서 바로 볼 수 있는 형태가 될 거 같다.
-<호스 머니>에 대해 말해보고 싶은데, 이 영화는 카네이션 혁명의 시기, 1974년 75년 그 시기적 배경을 하고 있는데 그게 두분에게도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영화와 관련해서. 두분의 삶의 영역 안에서. 카네이션 혁명이 어떤 의미인가?
=페드로 코스타: 원래는 시나리오를 위한 하나의 소재, 아이디어였는데 마침 벤투라의 이야기를 듣고 마침 역사적으로 사실이었던 거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거라 했는데 내가 12,3살 정도였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고 순수하던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접어드는 시점이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지만 짧은 시간에 순식간에 많은 걸 알게 되는 시기였다. 그래서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눈을 뜨게 되는 시기였고 기성 세대같은 경우 많은 사람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어디로 도망간다든가 하면서 많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이전까지는 48년 동안 독재정권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혁명같은 게 일어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문제가 생기면 수년동안 지속되는 것이 이렇게 하룻밤에 큰 일이 생기는 게 없었다. 74년 이전에는 검열이 굉장히 심했고 제약도 많았고 영화든 그림이든 모든 예술의 형태나 신문같은 경우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 내 영화의 경우에도 보여줄 수 없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영화뿐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냥 나한테 어떤 영향을 끼쳤다기보다는 이전에는 사회가, 국가가 이랬었고 그 이후에는 거의 반대로 되는 상황이 됐고 모두에게는 좋은 일이 된거다.
-작년에도 <파밀리아>라는 전시를 했고 일본에서도 사진집 출간 행사를 했는데 <파밀리아>라는 전시의 경우는 카타콤이라는 장소의 특이성이 있었다. 일본에서의 <무>의 전시도 유서 깊은 장소에서 했다. 반면, 서울에서의 전시는 그런 역사나 기억이 부족한 미술관에서다.
=후이 샤폐즈: <파밀리아>의 카타콤베는 포르투갈 중부도시 코임브라에 있는 로마 시대의 지하회랑이다. 한 사각형 안에 또 한 사각형이 있고, 그 두 개가 여러 가지 아치로 연결된 구조라서 처음 들어간 사람에겐 굉장히 복잡해 보인다. 그 공간이 완전히 텅 비어있었는데, 우리가 갔을 땐 많은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예전엔 거기가 사람들이 와서 떠들고 얘기하고 논쟁하고 아이 들이 뛰놀고 하는 활발한 곳이었단 생각을 했다. 지금은 침묵이 흐르는 곳이지만, 1000년 전에는 목소리들로 가득찬, 활기로 가득찬 곳이란 생각이 들어 아주 강렬한 인상이 들었다. 그 공간을 오히려 우리는 미니멀하게 접근하자고 생각했다. 페드로의 경우는 돌에다 얼굴만 투영하는 작품을 선보였고, 그래서 얼굴이 마치 돌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번 전시의 경우는 미술관이기 때문에 아무런 기억도 없고 목소리도 없다. 그리고 그냥 흰 벽만 네 개가 있다. 박물관이란 거 자체가 컨셉이 중립적이다. 그래서 하얀 큐브라고 생각한다. 하얀 큐브라는 건 모더니즘 전에는 없었다. 그래서 모더니즘이 발명해낸 건데,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고 활기찬 장소에서 전시했지만 모더니즘 이후로 하얀 공간에서 보여지게 된 것이다. <파밀리아>와 달리 이번 미술관의 전시는 반대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목소리, 기억으로 가득찬 곳에서 전시를 했다면 결과가 무척 달랐을 거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 하겠다. 페드로 감독이 2013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 방문했을 때 강연회 말미에 점점 더 영화 작업을 해나가는 것에 대한 믿음이 점점더 약해지고 있다는 얘길 했었다.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도 세상을 떠났고, 샹탈 애커만 감독도 지난해에, 올해는 자끄 리베트 감독도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예술가들이 떠나는 상황이다. 지금도 여전히 비관적인지, 혹은 영화 작업에서 어떤 확신과 믿음을 갖고 있나?
=페드로 코스타: 지금도 예전과 똑같이 비관적이다.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영화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고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영화라는 게 화가나 조각가가 하는 일보단 아무래도 돈이 더 필요한 건 사실이다. 기존에 하던 영화제작 방식은 정말 말 그대로 돈이 많이 든다. 조각을 하려면 강철이나, 돌이나 소재, 재료만 있으면 되는데 영화를 제작하려면 50명의 인원이 필요하다든가 그러니까.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영화 산업에서 하는 것과 달리 스태프도 소수 인원으로 하고 예산도 말 그대로 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게끔 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프로젝트들, 영화들은 손해를 본다거나 하지 않고 자체 제작이 가능하게끔 만든다. 왜냐하면 돈을 많이 들이면 그만큼 손실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영화산업 뿐만 아니라 일반 시장처럼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로 이해를 못한다. 경제전문가들조차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시장 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일 뿐이고,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식을 산다든가 영화에 관련된 돈을 들이는 사람들은 손해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산업이나 제작에 비관적이고 이런 영화산업은 2,30년 후면 끝이 나지 않을까 예상한다. 그런데 후반작업을 한다든가 하는 쪽은 미래가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디지털 작업을 한다든가. 그런데 그건 영화라 하기 힘들다. 그냥 스크린을 보고 헤드폰을 끼고 하는 일이다. 그냥 컴퓨터 가지고 하는 일이니까. 인간이 하는 거라 할 수 없다. 감정을 가지고 한다고 할 수 없으니까, 실제 영화 작업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라이트를 측정한다든가 하는 그런 일이 아니다. 그래서 조각가들이 우리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횔덜린이라는 독일 시인이 했던 말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우리는 모두 심연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2016년 / 페드로 코스타와의 인터뷰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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