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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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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이윤보다는 문화

Hulot 2020. 2. 21. 16:58

특정한 시기의 영화정책은 미래의 합당한 시나리오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적, 물질적 현실에 대한 판단과 정책수단을 결정하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이상의 실천에는 물리적 제약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테렌스 데이비스의 <먼 목소리, 조용한 삶>(1988)은 작품 만큼이나 당시의 영화정책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례로 남았는데, 왜냐하면 긴축재정과 민영화, 복지정책의 축소를 통해 작은 정부를 구현하려 했던 80년대 대처리즘 시기에 이 영화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테렌스 데이비스 뿐만 아니라, 데릭 저먼, 피터 그리너웨이, 등 80년대 영국의 개성적인 작가들의 작품들, 이른바 ‘브리티쉬 (소셜) 아트 시네마’라 칭한 작품들이 이 시기 등장했는데, 제작의 배경에는 당시 공공 자금, 복권 수익, 텔레비전 금융을 끌어온 BFI의 새로운 정책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어떻게 퍼스널한 재능의 작가들 작품들이 극장 스크린 위에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인가? 재능이 풍부한, 하지만 시장의 규칙에서 아직 만들어지지 못한 영화들의 현실화. 이는 영화정책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당시 영국 BFI의 제작위원장이던 콜린 맥케이브는 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아카데믹 연구자 출신으로서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그의 목표는 만들어지지 못하는 영화, 다른 식으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꼭 만들어져야 할 가치 있는 영화이지만, 제작되기 어려운 영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예전에 번역했던 마이클 오프레이의 <데릭저먼: 대영제국의 꿈>이라는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채널4를 끌어들인 당시 BFI의 정책 덕분에 데릭 저먼의 <카라바죠>(1985)를 시작으로 테렌스 데이비스의 <먼 목소리 조용한 삶>(88) 등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당시 영국 영화는 쇠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영화 산업'을 원하지만, 이는 실제로는 실현이 의문시되는 일로, 텔레비전과 연극에 비하면 영화산업이 그 자체 자율적인 산업으로 지탱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영국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자국의 언어와 스타를 모두 기용하는 헐리우드와 대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의 영역에 굳건하게 있는 텔레비전과 연극과 경쟁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능한 해결은 혼합경제를 시도하는 것, 즉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을 결합하는 것이다. 언급한 작가들의 작품은 한정된 예산으로 만들어진 개성적인 결과물로, 예산의 제약이 도리어 이점이 있는데, 흥행의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많지 않고, 관객의 호응을 얻기 위해 값비싼 스펙터클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대신 영화의 형식과 테크닉의 혁신을 시도할 수 있다. 저예산 아트 영화제작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추가 자금과 배급을 위해 이윤추구의 할리우드에 의존하기보다는, 유럽관객을 겨냥한 공동제작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시도로 이런 제작 경향은 데릭 저먼, 피터 그리너웨이, 샐리 포터, 켄 로치 등의 영국 예술영화 제작의 표준이 되었다. '이윤보다는 문화 culture over profit’를 중시한 태도는 실험을 장려하고 젊은 인재를 양성하며 문화적 가치를 상업적 생존력보다 우선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일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 80년대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2월 20일 저녁 6시 마지막 상영
먼 목소리, 조용한 삶 Distant Voices, Still Lives(1988) 테렌스 데이비스 Terrence D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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