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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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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영화에 대한 경의를 잃지 말아야 한다

Hulot 2020. 2. 15. 13:25

Amanda Ireland Prince Charles Cinema, London

지난 수요일에 F 시네마 포럼을 하면서, 일본 영화보존협회(FPS)의 이시하라 카에씨와 현재의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들었던 몇 가지 생각들을 적고 싶다. 

 

일본의 경우 대체로 2012-2013년을 디지털 영사의 전환점의 시기로 보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를테면 2013년 12월 4일, 예술영화관 시네큐브가 필름영사기를 모두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했다고 발표했다. 제일, 허리우드, 세방, 그리고 서울필름현상소가 문을 닫았고, 2010년에 이미 롯데시네마는 영사기를 모두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했다. 2012년에는 메가박스가, 2013년에는 CGV가 연이어 모두 상영을 디지털로 전환했다. 

 

고전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긴 하다. 포럼을 준비하며 과거의 자료들을 찾아보니, 우리의 경우는 디지털로의 큰 변화의 시기가 일반 영화관들보다 4년은 뒤늦은-디지털 전환의 속도를 지연시켜왔다고도 말할 수 있다-, 대략 2017-2018년에 벌어졌다. 가령, 2010년에 이전까지는 거의 전작을 35미리 필름으로 상영했다. 2014년에는 그 비중이 필름과 디지털이 대략 8:2 정도의 비율로, 이를테면 24편을 상영한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회고전의 경우 22편이 필름이었고, 존 포드 회고전의 경우는 16편중 11편이, 요시다 기주 회고전의 16편은 모두 35미리 필름이었고, 켄 로치 회고전의 10편중 7편이, 버드 보티커 회고전의 8편 모두가 35mm 필름이었다. 2016년의 경우에도, 고바야사 마시키 회고전 11편 전편이 필름, 미조구치 겐지 특별전의 7편 전편이 필름, 자크 리베트 회고전의 15편 중 10편이 필름이었다. 필름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은 알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필름으로 상영하던 그 시절 영사기사들의 노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2018년에는 상황이 다소 달라졌는데, 그해 총 61편의 영화를 필름으로 상영했다. 국적별로 보면 일본이 16편, 미국이 31편, 프랑스가 7편, 독일, 멕시코 등이 각각 2편 정도이다. 가령, 하워드 혹스 회고전때 4편,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때 4편, 소마이 신지 회고전시 11편, 로버트 알드리치 6편, 아이다 루피노와 라울 왈쉬의 경우 10편 등이다. 지난해는 대략 27편의 영화를 35미리 필름으로 상영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퍼펙트 월드>, 수전 세이들먼의 <애타게 수잔을 찾아서>, 장 그레미용, 아오야마 신지, 조지 쿠커,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들을 필름으로 상영했다. 

 

최근 2년 사이에 35미리 필름상영이 적어진 것은 디지털 상영본이 많아진 것도 이유이긴 하지만, 비용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 가령, 지난해 키라 무라토바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막대한 비용문제로 35미리 필름작품들은 처음부터 상영을 고려할 수 없었다. 러시아 영화제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고, 폴란드 고전들을 상영할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니 극장에서 꼭 상영하고 싶은 작품들 가운데 필름이란 이유로 상영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생기고 있다. 외국의 경우처럼, 필름으로 상영할때에는 입장료를 높게 받거나 텀블벅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특별한 지원이 없다면 말이다. 

 

이런 변화가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의 역사에서 기술적 변화는 탄생이래로 지속 됐고, 모든 전환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영화의 움직임은 결코 휴식을 찾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다. 매체의 지속적인 변화는 영화가 늘 과도기의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자면 영화의 역사는 어떤 안정적 휴식없이 매번 이전의 순간들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영화가 움직이는 매체, 과정적 본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불가피한 일이다. 우리의 노력은 이런 이행의 무분별한 속도를 조금 더디게 하고, 충분한 생각의 시간을 마련할 휴지休止를 마련하는 것이다. 산업 관계자들과는 대화가 쉽지 않겠지만, 이런 변화의 시기를 두고 영화 매체의 존재론을 연구하는 성실한 연구자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물질적, 제도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연구, 혹은 노동의 실천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미래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 경계할 뿐이다. 아울러 기억해야 할 문제. "기술은 계승을 쳐부수지만 기술이 없으면 계승도 있을 없다."(데리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개별성의 다른 경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즉, 기술의 변화에 계승의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  

이시하라 카에씨의 발표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전통적인 필름아카이브, 시네마테크는 “영화가 제작되어 처음 공개됐을 때에 필름으로 상영된 것이라면 그 영화는 앞으로도 가능한 한 오리지널에 가까운 상태로, 즉 필름으로 상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려 한다. 이제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녀의 발표 마지막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우리가 영화에 대한 경의만 잃지 않는다면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그럴 것이다. 디지털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방향은 감지되지만, 그 목적지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경의를 잃지 않는 것, 작가에 대한 경의를 잃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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