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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벌거벗은 인간에의 관심 - 장 르누아르 본문

영화일기

벌거벗은 인간에의 관심 - 장 르누아르

Hulot 2008. 3. 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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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를 대표한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그의 아들인 장 르누아르 감독은 프랑스의 예술사에 있어서 이름을 남긴 두 명의 거장이다. 이 두 거장의 예술세계를 아버지의 회화와 아들의 영화를 통해 함께 조망하는 행사가 2005년 파리에서 개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데, 이는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미술박물관이 함께 개최한 공동의 행사였다. 



일본에서도 지난 2월에 화가 르누아르와 영화감독 르누아르의 공통의 테마를 근거로 자화상과 가족의 초상, 모델의 표현방식, 자연으로부터의 영향, 그들의 공통의 기호, 화면의 구도와 파리의 일상적인 광경에 대한 묘사 등의 다양한 관계성을 살펴보는 기획전이 열렸다. 가족의 초상’, ‘모델’, ‘자연’, ‘오락과 사회생활’이라는 네 개의 장으로 두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행사로 오르세이 미술관에서 소장한 르누아르의 작품의 전시와 장 르누아르의 영화에서 발췌한 장면을 함께 상영함으로 해서 둘 사이의 깊은 연관을 살펴보는 기획전이었다. 파리와 일본에서 열린 ‘르누아르/르누아르’ 기획전에 어불성설 견줄만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올 해 부산과 서울에서 장 르누아르의 영화를 상영하는 회고전이 열렸고, 3월초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지막 회고전이 개최된다.




영화와 회화의 관계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만든 <중국여인>(1967)이란 영화에는 이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인 장 피에르 레오는 영화를 발명한 루이 뤼미에르가 화가, 특히 '인상주의의 마지막 화가'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뤼미에르가 정말 화가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뤼미에르가 인상주의 화가들인 모네, 르누아르, 세잔과 동시대인이라는 점이다. 고다르는 언젠가 '우리는 세잔, 피카소가 아벨 강스, 루이 푀이야드와 동시대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오늘날 우리는 그 때의 영화들이 마치 낡은 영화라고 여기지만 세잔 혹은 르누아르의 그림은 젊은 회화 혹은 현대적인 회화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앙드레 말로는 일치감치 영화가 '조형적 리얼리즘, 즉 르네상스와 더불어 그 원리가 출현하고 바로크 회화에서 그 극한적 표현을 찾아낸 조형적 리얼리즘의 진보된 양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와 회화가 헤어질 수 없는 커플, 혹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와도 같다고 말할 때 화가 르누아르와 영화감독 르누아르를 연결시키는 프로젝트는 지극히 흥미로운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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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르누아르는 가족의 초상을 기꺼이 그렸다고 한다. 그 작품에는 아내를 비롯해, 배우가 된 장남 피에르, 영화감독이 된 장 르누아르, 그리고 동생 클로드의 모습이 몇 번이고 등장한다. 장 르누아르는 그의 생애를 통해 아버지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자연에 대한 관심이나 생의 기쁨과 같은 감화뿐만 아니라 예술적 성찰과 관련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장 르누아르는 아버지가 예술에 관해 그 어떤 구체적인 언질을 준 적이 없지만 만약 그림을 그리려한다면 그것을 하려는 욕구가 너무도 강렬해 물리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숭배하던 모차르트에 대해 말하면서 ‘그가 음악을 작곡했던 것은 자신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오줌누는 것과 같았다’라고 말했고, 마찬가지로 장 르누아르 또한 예술은 그 자체로서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업을 실행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 어떤 인간 활동을 수행하는 방법, 그것이 예술이라 말한다. 만약 당신의 영화나 정원이 훌륭하다면, 영화나 원예의 종사자로서 그들은 예술가로 자처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 장 르누아르의 생각이었다.




장 르누아르는 아버지의 스튜디오에서 모델로 온 한 여인에게 반하면서 그녀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 그녀의 이름은 카트린느 에슬링이었고 장 르누아르가 만든 첫 영화의 제목 또한 <카트린느>였다. 이 작품은 대단히 실망스런 작품으로 남았지만 그 이후로 이미 금단의 열매의 맛을 본 르누아르는 영화예술의 세계에서 발을 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장 르누아르가 아버지에게서 얻었던 것이 창조에의 정열의 핵심을 이룬 여성, 달리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음을 일깨운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장 르누아르의 인간에 대한 관심에 대해 ‘그의 영화는 사회적 삶의 거대한 환상에 의해 지탱되고 있을 뿐인 사실은 벌거벗은 인간, 바로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시각을 결코 잃지 않았다’라고 적절하게 표현한 바 있다. (김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