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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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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위대한 실패자들의 세계 - "존 휴스턴 회고전"이 열립니다

Hulot 2008. 3. 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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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실패자들의 세계 - 존 휴스턴


존 휴스턴의 후기작인 <팻 시티>(1972)는 인생에서 정말 특별할거라고는 거의 없어 보이는 두 명의 권투선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는 걸작이다. 그 한 명은 과거의 링 위에서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나이든 실패자이고 또 다른 한명은 눈앞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다. 이들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에 처한 인물들인 셈인데, 그럼에도 결코 꿈꾸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첫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이란 노래가 나오면서 캘리포니아의 스톡턴의 거리가 보이고 할 일 없이 거리에서 나이든 사람들이 소요하는 거의 무료한 일상이 보인다. 이어 카메라는 침대에 누워 있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잠시 후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담배를 입에 물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와 공동주택 앞의 거리에서 어깨를 조금 들썩거리며 가벼운 춤을 추는데, 이내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하는 것에 혹은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무료함에 머쓱하다는 듯이 피우려던 담배를 거리에 던져버리고는 다시 방에 올라가 가방을 챙겨 거리로 나선다. ‘어제는 사라져 버렸고 내일은 보이지도 않아요, 홀로 있는 건 외로우니 이 밤을 지샐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예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팻 시티>의 첫 장면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는 것은 이 담담한 시퀀스가 존 휴스턴 영화의 전형적인 인물, 이를테면 인생의 낙오자를 아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컬러도, 볼거리로 가득한 모험적 세계도, 묵직한 사건의 전개도 없이 아주 담백한 이 장면은 진정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사회의 한계적인 곳에서 거주하는 인물들, 그들의 불운은 종종 사회적인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다. 시드니 루멧의 <뜨거운 오후>의 시작부가 그러하다. 하지만 휴스턴에게 이는 인간 존재의 고유한 딜레마에 가깝다. 인간이 처한 고유의 실존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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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슨 웰스는 말년에 <바람 저편에>라는 미완성의 자전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여기서 그는 당시 비순응자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을 모델로 각본을 썼다. 영화감독 역할에 그가 캐스팅한 인물은 존 휴스턴이었다. 웰스가 존 휴스턴을 끌어들인 것은 그가 단지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헤밍웨이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웰스는 휴스턴에게서 그의 독특한 외양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과 정서, 카리스마적인 아우라,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그의 존재성에 끌렸던 것이다. 웰스는 휴스턴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미국영화계의 가장 ‘위대한 매버릭’의 영화감독으로 여겼다. 


존 휴스턴은 영화만큼이나 그의 독특한 개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인물이었다. 로버트 미첨은 존 휴스턴이 ‘그는 매일 매일을 축제처럼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지루함을 피하는데 있어서 대가였죠. 거의 매주 특이한 모험과 마주쳤어요. 존은 배고플 때 먹고 목마를 때 마시며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았죠. 인도에서 호랑이를 사냥하고, 멕시코 기병대에서 말을 타고, 런던에선 빈민으로, 파리에선 이야기꾼으로 그리고 익살꾼, 연인, 도박꾼 등을 거쳤어요. 그런 와중에도 틈을 내어 영화라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최고의 남자였습니다. 아마 그런 사람은 또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표현처럼 휴스턴은 대단히 괴짜감독이었다.


명배우인 월터 휴스턴의 아들로 태어난 존 휴스턴은 3세에 무대를 밟았고, 10대에는 복서가 되어 아마추어 라이트급 챔피언을 획득했고 25전 23승이라는 놀라운 전적을 자랑했고, 잡지 편집자, 가수 등 일자리를 전전하며 런던, 파리를 방랑하기도 했다. 그는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던 인물이었고 스스로 자신의 삶이 다양한 우연과 다양한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그는 탐험가였다. 그는 영화감독의 삶이 수많은 작은 인생이 촘촘히 결합해 성립한다고 여긴 사람이었다.


휴스턴은 생전에 40여 편의 작품을 남겼지만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어떤 연속성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작품에는 특별한 스타일적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어떤 시각적 스타일이 그의 영화작품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가령 그는 히치콕이나 큐브릭, 혹은 오슨 웰스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될 수 없는 작가이다. 그의 스타일은 다른 곳에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 인물들을 바라보는 그 만의 독특한 방식에서, 인물들의 내적인 운동의 리듬을 영화에 담아내는 특별함에서, 인물들의 행위에서 발생하는 모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영화의 대단한 힘이 배우에서 기원한다고 여긴 사람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개최되는 존 휴스턴의 회고전은 그런 그의 독특한 작가성을 발견하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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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휴스턴은 윌리엄 와일러, 하워드 혹스 감독의 작품에서 각본을 쓰는 것으로 영화 인생을 시작했고, 각본가로서 정평을 얻으면서 당시로서는 조연에 머물렀던 험프리 보가트를 기용해 데뷔작 <말타의 매>(1941)를 만들었다. 이후 ‘하드보일드=보가트=존 휴스턴’이란 정식이 만들어질 만큼 휴스턴은 보가트와 콤비를 이뤄 <시에라 마드라의 보물>, <아프리카의 여왕>(1951) 등의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은 존 휴스턴에게는 대단한 영예의 영화가 됐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 감독상을 수상했고, 노인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그의 아버지 월터 휴스턴은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니 말이다.


이 영화의 특별함은 무엇보다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의 독특한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전작에서의 하드보일드한 영웅과는 달리 인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천한 인물, 혼자 중얼거리며 남을 의심하는 정신분열증적인 인물을 훌륭히 표현해내고 있다. 또한 휴스턴의 자연주의적인 연출 또한 뛰어나다. 인간의 탐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탐욕>(1921)을 염두에 둔 영화이며,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공포의 보수>나 <지하실의 멜로디>, <현금에 손대지 마라>와 같은 느와르 영화와도 비교할 만한 영화라 할 수 있다. 휴스턴은 이 영화에서 인간의 탐욕과 추함, 그리고 숭고함을 동시에 표현해냈다.


이후 그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셀즈닉과 대립해 감독의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멜빌의 원작을 각색한 <백경>(1956)으로 호평을 받았다. 60년대 그의 영화는 흥행과 비평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고 상대적으로 배우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1974)에서의 명연기는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에서의 아버지 월터의 연기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존 휴스턴의 유작은 의미심장하게도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을 각색한 <죽은 자들>(1987)이다. 죽음의 정적과 삶의 대비, 인간의 심리와 잠재적 의식의 세계를 그린 이 뛰어난 작품은 머지않아 망령이 되어버릴 그의 세상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그리는 듯하다. 휴스턴은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영화의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영화의 라스트에 보이는 아일랜드의 눈과 외로운 묘지, 그 회색의 세계가 마음에 서늘하게 스며들어오는데, 그것은 휴스턴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세계의 비전이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