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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모든 감독들이여 창조적인 장수를 누리기를 - 살아서 백주년을 기념하는 영화감독 본문

영화일기

모든 감독들이여 창조적인 장수를 누리기를 - 살아서 백주년을 기념하는 영화감독

Hulot 2008. 3. 6.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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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 세기를 살아온 거장이 있다. 영화의 역사와 함께 살아왔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그의 걸음걸음에 영화의 산 역사가 호흡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테고. 심지어 이제 그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고, 신의 숨결이 그의 육신을 빌어 예술을 만들고 있다고 그렇게 허풍을 떨어도 고개를 끄덕여 주어야 할 법한 사람이다. 2005년 <불안>이 한국에서 개봉할 때 그에 관한 글을 쓰면서 '관 짜고도 남았을 97세의 나이에 매년 한 편씩 신작을 내놓는 괴력의 소유자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정말 포르투칼의 영화감독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감독이 올 해 100세를 맞았다. 그는 1908년에 태어났다. 이거, 축구감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백세의 나이는 영화 탄생의 순간을 경험하고도 남았을 나이로, 올리베이라는 연배로만 보자면 로베르토 로셀리니, 로베르 브레송, 조셉 로지, 오토 프레밍거, 오즈 야스지로, 안소니 만, 자크 베케르와 동시대인이고, 오슨 웰스보다 더 나이가 많다. 그는 20세의 나이인 1929년에 첫 다큐멘터리 <두오로 강>을 만들었는데, 이는 현재로서 보자면 무성영화 시대에 영화 경력을 시작한 유일한 현역감독이다. 그는 장 비고와 같은 시대 영화를 만들었다. 1949년에는 첫 장편 <아니키 보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는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다. 그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동시대인이다. 한동안 쉬다가 1963년에 만든 두 번째 장편 <봄의 신비>로 다시 영화계에 복귀했다.

근 15년 만에 영화로의 복귀는 대단히 인상적인 일화로 알려져 있다. 올리베이라는 50년대에 <안젤리카>라는 영화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이는 한 젊은 여인의 실제 죽음을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얻었던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는 고인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죽음을 기록한 이미지, 아니 죽음을 넘어 삶을 불러오는 권능의 이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칼 드레이어의 <오데트>(1955), 루이스 부뉘엘의 <비리디아나>(1961), 그리고 히치콕의 <현기증>(1958)이 나오던 시기에 올리베이라는 영화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이러한 관심은 “영화는 현실의 유령"이라는 그의 발언으로 요약된다.

영화는 유령이자, 현실의 구세주이며, 죽은 자를 회복시킬 수 있는 권능을 지니고 있다. 이 각별한 믿음은 그의 영화에 담긴 특유의 멜랑콜리를 설명해준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는 죽음, 사라짐, 손상 뒤의 발생하는 애도의 느낌이 담겨 있다. 삶은 매 순간 우리의 곁을 떠나버린다. 남겨진 것은 기억과도 같은 셀룰로이드에 고착된 이미지이다. 그는 인간의 심오함, 우리가 답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탐구, 즉 우리가 왜 살며 왜 죽는가에 대한 탐구때문에 칼 드레이어를 찬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산다는 것은 지독하게도 수치로 가득 찬 행위다. 우리는 쾌락과 고통에 적응해 나가며, 이유도 모른 채 그 모든 것들을 마지막 날까지 감내한다, 고 그는 말한다.

각설하고, 그런 올리베이라의 창조적 장수가 부러울 뿐이다. 영화를 만들 의지와 힘이 있다는 것이, 여전히 그럴 수 있다는 환경이 부럽다. 한국에서 요 몇년 사이에 데뷔하는 감독들은 '내가 평생을 만들어도 10편을 못 넘길것 같다'라고 종종 말하곤 한다. 그러니 수십년이 지난 후에 시네마테크에서 그들의 회고전을 하게 된다면 정말 작품들이 조촐할 듯 싶다. 한 달에 두 세 명을 해도 될 법한 필모들. 흠... 거장의 영화인생을 되돌아보는 데 달랑 10편 미만의 작품이 전부라니! 이런이런.... 제발, 한국의 영화감독들이여 창조적 장수를 누리기를.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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