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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눈먼 자들의 도시 -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본문

영화일기

눈먼 자들의 도시 -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Hulot 2021. 4. 11. 14:52

“이제 볼 수 있나요?”

 

1929년, 헤이즈 코드의 도래, 유성 영화의 시작, 그리고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과 빈곤의 도래로 환상의 스크린 벽이 무너지고, 맹목의 신화가 풀려 이제 제대로 ‘볼 수 있나요’라고 묻게 될 때, 도시의 불빛 아래 채플린의 영화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비통하고 별난, 순수한 러브 스토리. 채플린은 <시티 라이트>를 이렇게 말했다. 빈곤과 대량 실업, 부자와 빈자가 ‘클래스’로 구별되는 대공황의 시대를 코미디로 극화하는 일은 채플린같은 예술가의 시대적 책무였다. 부자를 공격해야 웃음이 유발된다. 비통함은 그러나 빈곤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감지된다. 가난한 장님 소녀와의 로맨스에는 맹목의 환상이 필요했다. 떠돌이 찰리는 소녀의 꿈을 위해 부자를 연기해야만 한다. 전례 없는 일이다. 비통함은 그래서 떠돌이/부자의 환상의 막이 찢어질 때 드러난다. 그리하여, 영화는 고전적 균형이 아닌 착종의 상태에, 성립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영화 예술 그 자체가 사실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시티 라이트>가 나온 1931년은 무성영화의 황혼기였다. 채플린은 토키의 시대가 음향이나 말 같은 것을 전혀 요구하지 않은 자족적이고 독립적이던 무성 예술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 우려했다. 무성영화가 전에 갖고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소리와 말을 갖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토키의 시대에 나온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인 <시티 라이트>는 그러므로 제작의 모험이자 관객에의 도전이었다. 찰리는 무성적인 몸짓으로는 떠돌이지만, 말로, 목소리로는 부자로 인지된다. 찰리의 고유한 무성적 몸짓을 볼 수 없는 소녀와의 로맨스, 환상은 맹목일 때만 유지될 수 있다.

 

채플린이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에 맹목의 우화가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채플린이 몇 해 동안 마음속에 품어 온 망상의 내용은 이랬다. 어떤 부자 클럽의 회원인 두 남자가 인간 의식의 불안정성에 대해 토론한 끝에 둑 위에 잠들어있는 한 부랑자에게 실험을 해본다. 그들은 야숙하고 있는 떠돌이를 붙들어와 호화스런 아파트로 데리고 와서는 융숭한 대접을 해주고, 흠뻑 술에 취해 그가 잠에 들어버리면 다시 그를 둑 위에 데려다 놓는다. 떠돌이는 잠에서 깨어난 뒤, 멋진 아파트에 초대되어 식사 대접을 받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다. 채플린은 이 망상을 수정해 반대로 백만장자가 술에 곤드레만드레 되었을 때 떠돌이와 친구가 되었다가, 술이 깨고 나서는 그를 모르는 체 하는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다른 하나는, 이 주제에서 파생된 것으로, 떠돌이가 눈먼 소녀에게 백만장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아이디어의 결합이 <시티 라이트>의 내러티브 골격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이 영화의 라스트가 그토록 심금을 울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감옥에서 출소한 찰리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그가 눈을 뜨게 해준 여인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찰리가 아마도 부유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라 여겼기에,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는 찰리를 동정하며 동전 한 닢과 꽃 한 송이를 건네는데, 그렇게 손길이 스치자 그를 알아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본다. 영화는 찰리가 쓸쓸하게 미소 짓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라스트는 가장 잔혹하고, 숭고하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 한 장면에 채플린 영화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원했던 눈이 뜨이고 보니, 그녀 앞에 있는 이는 돈 많고 매력적인 남자가 아니라 집도 없는 실업자이다. 둘 사이의 환상의 막이 사라진다. 영화를 성립시켰던 맹목의 환상이 깨진 것이다. 보잘것없는 ‘리틀 트팸프'는 맹목의 대중 덕분에 스타가 되었다. 채플린은 이를 의심한다. <독재자>(1940)에서 찰리는 극악무도한 독재자 힝켈(히틀러를 희화한 인물이다)가 1인 2역의 인물이 되고, <살인광 시대>(1946)에 이르면 초라한 서민의 대변자였던 찰리가 이제 연쇄 살인마가 된다. <시티 라이트>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이제, 저를 볼 수 있나요?”.

 

Cine Club : 클래식의 현대성

| 2화. 스타의 역설, 당신도 내가 보는 것을 보고 있나요?

4월 13일(화) 오후 7시 30분 <시티 라이트 City Lights, 1931, 찰리 채플린)

진행 |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