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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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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로의 시네마테크/공세방어- 시네마테크사태

[경향신문기사] 영진위는 왜 '시네마테크'를 흔드나

Hulot 2009. 2. 19. 20:57

[영화는 묻는다]영진위는 왜 ‘시네마테크’를 흔드나
ㆍ‘실물보다 큰’

영화의 신(神)은 어디에 삽니까.

칼 같은 겨울 바람이 불던 10일 오후, 영화의 신전에 다녀왔습니다. 누린내 나는 돼지머리 고기집을 지나, 전기 기타가 새 주인을 기다리는 악기상을 넘어,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 영화의 신은 이 누추한 신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5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한적하고 깔끔했던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건물에서 3년을 보낸 뒤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사당동 등지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의 젊은 영화 신도들은 그렇게 장소를 옮겨가며 앞서간 영화의 신들을 사모하고 경배해 왔습니다.

추운 평일 오후였지만, 극장에는 70여명의 관객이 모였습니다. 대부분의 관객이 혼자 온 듯 보인다는 점도 여느 극장과 다른 풍경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친교, 유희가 아닙니다. 이들은 영화의 신과의 직접 만남을 추구하는 ‘근본주의자’이자, 영화 예술의 전위를 음미하는 ‘얼리어답터’이고, 잊혀져가는 영화 유산을 기억하는 ‘고고학자’입니다.

이날 제가 만난 신은 니콜라스 레이. 그의 대표작 <실물보다 큰>(원제 Bigger Than Life)이 스크린에 투사됐습니다.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가장 에드는 희귀병으로 쓰러집니다. 의사들이 실험 중인 신약을 투약하자 에드는 병석을 털고 일어납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성실했던 가장은 어느새 공포의 폭군으로 변합니다. 제작사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20세기 폭스. 스튜디오 시스템이 허술했던 것일까요, 스튜디오 간부가 개방적인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당대 관객의 감수성이 전위적이었을까요. 이 광기어린 가족극이 1956년도에 제작됐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연중 최고 행사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갓 열린 2월초,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년 간의 지원 기간이 1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죠.

지난해의 경우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 지원금 4억5000만원을 받았습니다. 이 돈은 공간 임대료, 운영비 등 연간 예산의 30%에 해당합니다. 영진위 측은 지난해 국감에서 비공모제의 문제점이 지적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고전·예술 영화를 보유하고 상영하는 시네마테크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보고 싶고, 영화를 나누고 싶은 청년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자발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쌓여온 시네마테크들의 역량이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로 뭉쳤고,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시네마테크에 후원하는 것은 한국의 영화문화와 예술에 투자하는 것”(유현목 감독), “우리의 영화팬들이 지난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을 때 우리 영화는 좀더 풍부해지며 탄탄한 전통을 쌓아갈 수 있을 것”(배우 안성기) 등은 시네마테크를 위한 헌사입니다.

영화를 ‘진흥’한다는 영진위는 뒤늦게 끼어들어 몇억원의 돈으로 시네마테크의 역사를 흔들려 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미 올해 20개 이상의 행사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설령 공모를 통해 서울아트시네마가 탈락해 정체모를 누군가가 시네마테크 운영 주체로 나선다 하더라도, 영화의 신도들은 새 신전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아니라 신전의 규모에 반해 종교를 가지는 신도가 진정한 신도입니까.

“기껏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분들께서 기억할 만한 역사의 사건이 있습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앙리 랑글루아 관장이 해임되자, 이에 반대한 장 뤽 고다르, 알렝 레네 등 당대의 혁신적인 젊은 감독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학생, 노동자가 뒤를 따랐습니다. 서구 사회의 가치관, 시스템을 송두리째 뒤흔든 68혁명의 시작입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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