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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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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영화관

영화잡지들이 사라지고 있다

Hulot 2009. 3. 21. 14:16


지난 주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신동일 감독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상영 후에 조촐한 뒤풀이를 하다 알고 지내던 몇 몇 영화기자들에게서 영화잡지 <프리미어>가 폐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작스런 결정이었다고 한다. 기자들도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폐간을 접했다고 했다. 올해 초부터 <필름 2.0>이 발행을 잠정 중단한 상태에서 또 하나의 영화잡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최종호'를 제대로 내지도 못하고 영화잡지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마치 개봉도 못하고 사장되는 영화의 마지막을 보는 듯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영화잡지를 사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지금은 잘 읽진 않지만(ㅠ) 좋아하는 감독의 기사가 실린 잡지들을 사서 모으던 때가 있었다. 노란색 표지 시절의 '카이에 뒤 시네마'를 사거나 좋아하는 윌로씨의 특집기사가 실린 '텔레라마 특별판'을 살 때의 즐거움이란! 사진은 한 장도 없이 묵직하게 글만 나열되어 있는 '트래픽'이나 가끔 화보가 맘에 들어 구매하던 '사이트 앤 사운드',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에 창간되어 첫 정기구독자가 됐던 <스크린>. 배우들이나 못본 영화들의 스틸사진만 들춰봤던 일본판 '로드쇼'. 누구나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잡지를 찾아보게 된다. 영화관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 무언의 공감을 나누는 심정으로, 마치 일주일마다 혹은 한 달에 한번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마음으로 잡지를 찾게 된다. 영화잡지의 폐간은 그런 기다림의 즐거움을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추억만을 곱씹기에는 냉정한 현실의 문제가  있다. 안타까움 반, 고민 반의 심정으로 '프레시안'에 영화잡지의 폐간에 대한 글을 썼다. (Hulot)

      
 
그 많던 영화잡지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있나?
- 영화잡지는 '경영학' 뿐만 아니라 '정치학'도 중요하다




최근 영화잡지들의 폐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 초에 영화잡지 <필름 2.0>이 잠정적으로 발행을 중단한 상태이고 <프리미어>도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갑작스럽게 폐간결정이 내려졌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 토요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신동일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상영된 후 몇몇 알고 지내는 영화기자들과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모두들 최근의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잡지는 영화가 낳은 자식들 중의 하나였다. 영화를 보고 잡지의 글을 읽는다지만 반대로 잡지에 실린 글로 영화를 찾을 결심을 하기도 한다. 1984년 3월, <스크린>이란 잡지가 창간됐는데, 고등학생으로 영화에 관심이 있던 나는 생애 처음으로 잡지를 정기구독할 생각을 했었다. <스크린>은 '팬 매거진'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내가 당시에 보지 못한 영화들의 정보와 글들 또한 가득했다. 일본판 <로드쇼>를 사진만 들쳐보던 내가 처음으로 영화에 관한 글을 제대로 접하면서 영화를 떠올렸던 것이다. 나중에 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와 같은 잡지를 알게 되면서 영화를 사고하는 폭 또한 넓어질 수 있었다. 미국의 <필름 코멘트>나 영국의 <사이트 앤 사운드>, 혹은 프랑스의 <포지티프>나 <트래픽>, 그리고 출시되지 않은 작품들의 DVD를 부록으로 제공한 <시네마>(프랑스에서 계간지로 발간되던 이 잡지는 최근에 재정적자로 폐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와 같은 영화잡지들은 영화만큼이나 사랑을 느꼈던 영화의 친구들이다. 영화잡지가 영화로의 길을 안내해주었던 것이다.

그런 점으로 영화잡지의 폐간이 가져온 위기가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그 어떤 위기가 영화잡지의 폐간을 가져온 것일까? 워낙 복합적인 요인들이 많아 위기의 근거와 원인에 대해 단언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잡지의 폐간을 두고 곧바로 영화비평의 위기라고 지레 호들갑을 떠는 일은 피하고 싶다. 근본적인 문제는 영화 저널리즘과 재정적 위기에 있다.




영화잡지의 폐간이 없었던 일은 아니다. 영화전문지를 추구했던 월간지 <키노>와 계간지 <필름 컬처>는 영화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던 시기에 창간되어 새로운 세기에 폐간됐다. 재정적 어려움 때문이었지만 물론 차이는 있었다. <키노>는 한국에선 드물게도 '영화잡지에서의 미장센'에 심혈을 기울이며 '볼 수 없었던 영화들'에 대한 소개와 감독들과의 충실한 인터뷰, 기획기사, 취재기사로 영화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구독자들의 수가 영화잡지의 제작비용을 상회하지 못하면서 위기가 발생했다(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 또한 이와 비슷한 위기를 경험했고, 매년 십만 유로의 적자를 내왔지만 잡지의 브랜드에 관심있던 '르 몽드'가 잡지를 인수하면서 생존할 수 있었다). 반면 <필름 컬처>는 계간지였기에 매번의 특별기획에 따라 비평가들이 유연하게 결합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필름 컬처>는 재정적 손실보다는 잡지를 출간할 수 있는 초기 제작비용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매번 안정적인 최소한의 제작비만 있었다면 <필름 컬처>의 경우 발행 중단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잡지의 재정적인 어려움은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잡지가 처한 최근의 곤경은 영화 저널리즘, 혹은 저널리스트들의 위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통적으로 영화에 관한 글이 실린 유료잡지들, 혹은 그 잡지에 글을 쓰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이제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영화잡지의 발행에는 비용이 들고, 또 안정적으로 잡지를 발행하기 위해 필요한 저널리스트들의 고용에도 비용이 든다. 적당한 수의 독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제작비용이 잡지의 발행에 큰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이미 2007년부터 신문사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영화비평 담당기자들을 해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신문사의 이윤을 늘리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신문사들이 자사의 영화비평 지면을 없애거나 줄이고, 아울러 소속되어 있던 영화평론가들을 해고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스포츠를 취재하는 스포츠 기자와 영화비평 담당기자들 중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기자를 감원해야 한다면 당연히 신문은 영화기자들을 해고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비평기사와 신문사가 경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1972년에 창간된 일본판 <로드쇼>도 최근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올 1월호로 마지막으로 폐간됐다고 한다. 현재 영화잡지의 위기는 글로벌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화잡지의 위기를 두고 '사람들이 더 이상 비평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지금의 현실을 고려할 때 완벽한 진실은 아니다. 가령, 인터넷에는 수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문적인 리뷰어들의 평론(reviewing)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글들이 영화에 관한 세심한 비평(critic)과 구분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열정적인 글쓰기는 저널리즘을 압도할 만큼 지성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오히려 반대의 양상이 전통적인 영화잡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를테면, 주류 영화잡지들에 오히려 영화에 관한 심각한 비평을 꺼려하는 태도가 있다. 신문사나 영화잡지의 편집자 스스로가 영화에 관한 심각한 비평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독자를 잃지 않으려는 자구책으로 영화잡지가 점점 엔터테인먼트 잡지로 변모하면서 이러한 태도는 점점 확고한 신념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글쎄, 그게 기사거리가 될까'라고 미리 예단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럴 때 언제나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럼, 영화 잡지에서 기사거리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영화잡지들도 대중성이라는 미명하에 점점 엔터테인먼트 잡지로 변모를 추구하는데, 그런데 이러한 변모가 결국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오히려 영화잡지의 독특성과 색깔을 잃어버리면서 폐간으로 향하는 경우도 많았다.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서 영화가 스포츠나 연예기사보다 더 대중적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다.


영화 저널리즘의 위기가 재정적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저널 스스로가 자초한 면이 있다는 말이다. 전통적인 영화잡지는 영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영화들의 교통을 이뤄내는 역할을 했다. 문자와 이미지, 영화보기와 읽기, 표지와 본문 사이, 기사와 기사 사이에 놓인 거리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특집과 기획, 비평과 홍보, 기사와 광고 간의 거리와 관계가 있다. 잡지의 내용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영화에 대해 가치평가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개별적인 기사의 내용 못지않게 영화들의 '교통'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대해 저널은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들의 '맥'을 짚어보아야만 한다. 어디서 영화의 순환장애가 생겼는지, 또 어떤 영화들이 지금 제대로 숨을 못 쉬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영화의 소생의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상당히 많은 잡지들이 매달 개봉하는 영화들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너무 많은 지면을 소비하곤 했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도 그만큼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가 있는데 말이다. 영화잡지가 교통시키는 정보가 단지 소비 가능한 상품으로서의 영화에 치중될 때 잡지 또한 시장에서 큰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영화잡지는 산업과 공생할 것만이 아니라 영화 문화와도 공생할 노력을 해야만 했다.




과연 얼마만큼의 영화잡지가 3월 말에 시네마테크에서 열리는 '러시아 영화 회고전'을 비중있게 다룰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이건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 것일까? 이때 상영되는 러시아의 무성영화들, 혹은 타르코프스키의 초기작들은 지금까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작품들이다. 이러한 영화들의 상영이 지닌 중요성을 잡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러시아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비평이 영화 저널의 몇 페이지나 장식할 수 있을까? 이건 물론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보다 중요한 일들이나 더 중요한 작품들, 혹은 더 중요한 영화관련 정보가 있을 것이다. 정직한 저널이라면 이에 대해 엄밀한 영화적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가끔 영화잡지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미국의 조너던 로젠봄은 지난해 뉴욕영화제에서 열린 '영화비평의 위기'와 관련한 포럼에서 영화비평의 위기를 논하기 전에 미국 저널리즘의 위기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의 저널이 정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저널이 이라크 '침공'을 이라크 '전쟁'이라 표현하면서 진실을 호도할 때 사람들은 저널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재정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영화잡지의 폐간이 영화 저널리즘의 위기와 맞물려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잡지의 '경영학'도 중요할 테지만 영화잡지의 '정치학'도 꽤나 중요하다. 예전의 <키노>나 <필름 컬처>가 보여주려 했던 것이 이러한 태도였다. 중요한 영화들이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되거나 거론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화잡지는 글로 영화들의 존재성을 알렸다. 하지만 이제 그런 역할들을 주류 저널이 아니라 대다수의 블로거들이 하고 있다. 독자들이 영화비평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제 독자들이 스스로 글의 생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주류 언론에서 영화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먼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김성욱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