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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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영화관

전설적인 러시아 영화들이 온다

KIM SEONG UK 2009. 3. 31. 15:40

[김성욱의 상상의 영화관]<3>영화의 영원한 젊음과 미완의 소비에트 영화혁명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 기획자로서 말하자면, 러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일은 정말 오랜 숙원중의 하나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젊은 시절에 러시아 영화에 빠져들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있을까? 고다르가 말하듯이, 영화의 아이들은 러시아 영화와 놀기 마련이다. 이번 주부터 한 달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은 그래서 단지 한 나라의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만은 아니다. 혹은, 영화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을 단순하게 '회고'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1920년대 소비에트 영화들은 곧바로 영화의 젊음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1895년에 탄생한 영화가 20대를 맞이해 젊음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쳤던 것이다. 1920년대 소비에트 영화인들은 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실험했고, 영화로 민중과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으며, 다른 예술가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신세계 건설에 걸맞은 표상을 만드는 작업에 나섰다. 영화의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낡은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이후 영화가 겪어야 할 모든 고난을 미리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가혹한 시련을 견뎌야만 했다. 달리 말하자면, 소비에트 영화감독들은 영화의 데미우르고스이자 프로메테우스였다.


▲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의 전설적인 영화 <전함 포템킨>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된 것은 1896년으로 파리에서의 뤼미에르 영화의 최초 상영 다음해의 일이다. 하지만 최초의 러시아 영화는 1908년 드란코프가 제작한 <스텐카 라진>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본격적으로 러시아 영화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20년대의 일로 볼셰비키 혁명을 완수한 이후다. 러시아 영화는 혁명으로 일신했다. 볼셰비키 정권은 문맹율이 높았던 시대에 영화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아직 읽고 쓰기의 교육도 충분하지 않았던 시대에 활자를 개입시키지 않는 영화라는 미디어는 교육, 선전에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 영화는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레닌이었다. 하지만, 혁명 후에 곧바로 영화가 개화한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인 집회나 파업을 기록한 뉴스릴이나 선전영화는 존재했지만, 혁명과 그때부터 계속된 내전의 영향으로 영화계는 피폐해 있었다. 전환점은 1920년대 초 신경제정책이 벌어지면서 시작됐다. 이 시기에 영화사 재건과정이 이루어지면서 통합스튜디오로서의 모스필름(Mosfilm)도 만들어지게 됐던 것이다. 이번 영화제는 러시아 최대의 영화사였던 '모스필름'이 제작한 영화들 중 19편을 선정해 상영하는 행사다.



이번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영화들은 단연 1920년대 무성영화들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무엇보다 1920년대-30년대의 소비에트 영화들을 소개하려 한다.(통상 해빙기로 불리는 시기의 러시아 영화들, 그리고 타르포크스키의 영화들에 대한 소개는 다음기회에 소개하려 한다) 1920년대 소비에트 영화는 실로 엄청난 재능을 지닌 영화인들을 배출한 영화역사의 보고였다. '영화사의 기적'이라 부를 만큼 소비에트 영화는 세계 영화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뤄냈다. 에이젠슈테인, 쿨레쇼프, 베르토프, 푸도프킨, 도브첸코, 보리스 바르넷, 미하일 롬, 알렉산드르 메드베드킨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영화인들의 등장은 1920년대를 소비에트 영화의 '황금기'라 부르게 했다. 그중에서도 몽타주론을 제시한 쿨레쇼프, 다큐멘터리 영화의 문법을 확립한 베르토프는 이후 소비에트 영화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의 기능이 정치사상을 수호하는 것이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레닌의 주장으로부터 베르토프는 오직 다큐멘터리 영화만이 실제로 이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1920년대 소비에트 영화인들은 도시, 공장, 시간과 공간, 자연과 기계, 미와 감각 등과 관련해 전례가 없는 방법으로 영화언어를 창조했다. 영화적 새로움은 혁명적이어야만 했다. 그 새로움이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세계, 다른 관계를 영화에 도입하는 것이다. 영화의 장면화, 조명, 몽타주, 현실의 기록과 허구, 다른 예술 및 과학과의 관계가 그리하여 새롭게 질문 받게된다. 혁명을 거친 젊은 영화는 10월 혁명의 정당화에 도움을 주었고, 또 10월 혁명은 영화의 혁명화에 이바지했다. 영화사가인 마르크 페로가 지적하듯이 당시 소비에트 영화는 혁명 이후의 새로운 체제가 구현했다고 주장하는 기술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예술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영화 예술인들은 현실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현실을 재현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분해했다가 다시 재구성하는, 독특한 소비에트 몽타주를 창안했다. 에이젠슈테인과 푸도프킨은 이러한 몽타주 영화의 대표자였다.


이러한 시도는 1920년대 중반에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25)과 푸도프킨의 <어머니>(26)가 나오면서 거대한 흐름을 형성한다. 막심 고리키의 원작 ‘어머니’는 혁명운동에 몸을 바친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정치적으로 각성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푸도프킨은 배우의 사실적인 연기를 이루냈다. 이런 개인의 드라마는 이후 <성 페테스부르그의 최후>(27)와 <아시아의 폭풍>(29)으로 이어진다. 이에 비하자면 에이젠슈테인은 <파업>(24)에 이어 1905년의 혁명을 다룬 <전함 포템킨>으로 집단적인 민중들의 움직임을 영화에 담아내는 것에 열중한다. 정지와 움직임의 역동적인 대비, 압도적인 군중장면, 롱 쇼트와 클로즈업의 교차, 그리고 그 유명한 ‘오데사 계단 학살시퀀스’에 사용된 ‘충돌의 몽타주’는 미국식 몽타주와 대비되는 소비에트 영화혁명의 상징이 됐다. 에이젠슈테인은 이후 <10월>(27)과 <전선>(29)을 만들었지만 <베이징 고원>을 기획해 촬영에 들어가면서 자금난을 겪었고 ‘형식주의자’로 몰려 공적 비판을 받았다. ‘수직적 몽타주’를 선보인 <알렉산더 네프스키>(38)는 사운드 영화의 창조적 걸작이지만 이제 그는 소비에트의 영구혁명이 아니라 러시아의 과거사를 다루는 보다 안전한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 알렉산더 메드베드킨 감독의 첫 장편 <행복>의 한 장면.


보다 흥미로운 사례는,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알렉산더 메드베드킨이라는 전설적인 영화감독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동식 영화관이라 할 수 있는 '영화 기차'를 만들어 촬영과 배급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러시아 전역을 '영화 기차'로 돌아다니며 어디서든 멈추어, 영화를 촬영하고 현상하고,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도는 영화를 민주적으로 이용하려는 기획이기도 했다. 이러한 민주적 노력은 당시 소비에트 영화감독들이 공산주의가 전 세계적 사명을 띠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러시아라는 '국민적 문제'는 이후의 일이었다. 이들은 미국 중심의 영화체제를 혁파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열정으로 자신들을 데미우르고스, 즉 세계의 창조자에 비유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메드베드킨의 두 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두 편 모두 소비에트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교정할 수 있는 필견의 영화들이다. 그의 첫 번째 장편인 <행복>은 메드베드킨이 '영화-기차'로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알게 된 농부들의 삶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는 볼셰비키 혁명 전과 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게으른 농부가 겪는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꿈은 짜르가 되어 고기를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무위도식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는 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꿈을 좌절시키고, 농부로서의 소박한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는데, 이 또한 군대를 동원해 갑자기 들어 닥친 관료들과 사제들이 '누가 당신에게 그런 자살을 허용했나? 농부가 죽으면 누가 세금을 내지'라며 따지는 탓에 실패한다(이 장면은 소비에트 혁명 전의 사회와 개인의 충돌을 보여주는 가장 코믹하면서도 신랄한 장면중의 하나다.) 반면 그의 부지런한 부인은 혁명 이후 집단농장에서 행복을 찾는다. 이 영화는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영화들 정도로 알고 있는 러시아 영화와는 아주 다른 스타일의 작품으로, 사건들 대부분이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리얼리즘과는 아주 거리가 먼 기발하고 코믹한 장면으로 가득한 영화다. 한 여인이 풍차의 날개에 자살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농부가 보초를 서는 곡식창고를 아예 짊어지고 훔쳐가는 도적들의 기발한 행동들, 농부의 아내가 말을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메드베드킨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새로운 모스크바>는 1935년 러시아의 새로운 변화를 반영한 작품이다. 이 시기 러시아에서는 제1차 모스크바 재건 총계획이 수립되면서 도로가 확장되고 제정 러시아 시대의 낡은 건물이 철거되는 등 도시 대개조가 시작된다. 러시아 역사에서 '스탈린 시대'라 부르는 이 시기에 문화적 패러다임 또한 급격하게 변모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생활방식의 건설, 과거의 대담한 부정과 미래의 유토피아로의 지향이 이전 시대를 특징지었다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 '스탈린 시대'의 도래는 소비에트 이상주의의 생동감과 보편주의의 사라짐을 의미했다. 대신 더욱 민족적이고 영웅적인 과거 러시아로의 회귀가 발생한다. 메드베드킨은 이러한 변경의 시기에 <새로운 모스크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모스크바의 미래도시를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시뮬레이션 기법을 고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 중 한명이 수도 재건의 기획을 설명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떠나는데, 그 여행에서 아름다운 도시 여인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 메드베드킨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새로운 모스크바>의 한 장면.



메드베드킨은 이 영화에서 도시를 재건하려는 엔지니어의 열정을 사랑의 에너지와 결합한다. 국가의 자랑인 수도를 재건하는 노력을 벌이는 것과 매력적인 도시의 여인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같은 것이다. 나중에 젊은이는 도시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언제나 모스크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모스크바 재건에 모두들 동참하길 염원합니다. 젊은 애국자들의 열정과 의지가 아름다운 수도로 향해 있습니다."라 말한다. 스탈린 초기의 낙관적인 분위기가 담긴 영화로, 메드베드킨은 당시 모스크바 전체가 거대한 건설현장으로 변모해 동화처럼 새 건물이 들어서는 모습에서 사회주의의 미래를 내다봤다. 하지만 이 영화가 스탈린주의를 찬양하는 선전영화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아방가르드주의자들이 그러했든 메드베드킨은 현실의 직접적인 변형뿐만 아니라 상상의 수단에 의해 현실을 파괴하는 급진성을 영화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가 시뮬레이션 기법으로 과거의 낡은 모스크바를 파괴하는 장면(혹은 실수로 현재의 모스크바가 무너지면서 과거 러시아의 전원적인 풍경이 되살아나는 장면)을 보여줄 때, 이는 낡은 현실을 파괴하면서 미래의 유토피아로의 중단 없는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급진성은 당시 문학, 예술계를 지배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과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었다.  (계속)


/김성욱 영화평론가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에서 소개되는 소비에트-러시아 영화들에 관한 글을 "프레시안"에 세번쯤 나눠 연재할 생각으로 쓴 글입니다. 19편이 상영되는 이번 회고전은 크게 20-30년대 초기 소비에트 영화, 해빙기 시절의 영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특별전, 그리고 최근 러시아 영화로 나뉘어져 있다. 각 시기마다 러시아 영화들이 처했던 상황이 달랐고 또 작품들의 특색 또한 다르다. 이번 회고전은 방대한 러시아 영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걸음 정도쯤으로 여기면 좋을 듯 싶다. 에이젠슈테인과 아브람 롬의 경우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반면 메드베드킨의 영화는 덜 소개되어 있고, 상영할 기회도 없었다. 때문에 메드베드킨의 영화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그럼에도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과 <알렉산더 네프스키>는 필견의 영화이며 아브람 롬의 <제3의 소시민>은 또 다른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