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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뮤리엘, 혹은 회귀하는 시간 본문
알랭 레네의 영화를 진정한 현대영화의 출발점이라 말하면서 종종 간과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프랑스 역사의 어두운 지대를 통과하며 세계 기억(홀로코스트, 히로시마, 알제리 전쟁)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이다. 레네에게 중요했던 것은 기억의 지리정치학이다. 그는 전후 20년의 침울한 시기동안 프랑스인들이 기억상실증에 빠졌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기억의 계속적인 변경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레네적 인물들의 무기력은 그들이 과거의 기억과 망각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예외적인 인물들, 즉 수용소의 시간에서 되돌아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와 관련한 거짓 기억들과의 다툼에서도 발생한다. <히로시마 내 사랑>(1959)에서 레네는 글로벌한 기억과 개인적 기억의 충돌을 그렸다. 글로벌한 공포의 기억은 히로시마라는 장소에 구현되어 있고, 개인적인 기억은 느베르에서 프랑스 여인이 겪은 외상에 있다.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기억 저편에는 기억상실과 망각을 강요한 억압된 기억이 또한 있다. <지난해 마리앵바드>(1961)에서 기억은 미로와도 같은 거울들에 왜상을 만든다. 남자는 여인에게 둘이 지난해에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눴고 그녀가 정한 약속을 위해 지금 왔으며 이제 그녀를 데려가겠다고 말하지만, 여인은 남자의 주장을 부인한다. 둘은 기억을 공유하지만 한 명이 확언할 때 다른 이는 부인한다. <뮤리엘>(1963)에 이르면 두 개의 글로벌한 기억(2차 대전의 폭격과 알제리 전쟁)이 개인적인 사랑의 기억과 연결된다. 불론느에서 중고가구점을 운영하는 엘렌은 알제리에서 돌아온 옛 애인 알퐁스와 재회하면서 기억의 혼란에 빠진다. 한편 알제리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엘렌의 아들 베르나르는 고문으로 사망한 알제리 소녀 뮤리엘에 대한 기억 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린다. 레네는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의 재건축 과정과 전쟁의 기억을 병치시키면서 조심스럽게 알제리 전쟁이 초래한 정치적인 문제를 끄집어낸다.
<뮤리엘>의 첫 장면은 유례없는 몽타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층위에서 보자면 엘렌이 자신의 중고가구점에 온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장면이다. 하지만, 마치 깨어진 유리조각들처럼 엘렌과 여인, 가구들, 그리고 누군가 커피 잔을 매만지는 손의 파편적인 쇼트들이 불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가 세계와 맺는 관계의 방식이 이러하다. 전쟁의 파괴에서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세계에 거주하는 이들이 서로 공유할 수 없는 기억에 의해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레네의 몽타주는 이런 파괴된 세계, 뿔뿔이 흩어진 세계, 중심을 잃어버린 세계의 감각을 파편적인 몽타주로 구축한다. 기억과 의식 그 자체가 무질서를 조건으로 하기에 불연속적 쇼트가 구축한 세계 또한 무질서가 허용된다. 시간의 혼동, 공간의 혼동 속에 속박되어 있는 인물들, 그들의 정신적 상태는 사고와 언어의 위기뿐만 아니라 표상의 절대 위기를 반영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뒤라스의 문학에 대해 지적하면서 ‘극악무도하고 고통스런 그런 광경들이 (결국) 해를 입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지각장치와 표상장치다’라고 말했던 것이 이와 같다.
글/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뮤리엘>의 첫 장면은 유례없는 몽타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층위에서 보자면 엘렌이 자신의 중고가구점에 온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장면이다. 하지만, 마치 깨어진 유리조각들처럼 엘렌과 여인, 가구들, 그리고 누군가 커피 잔을 매만지는 손의 파편적인 쇼트들이 불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가 세계와 맺는 관계의 방식이 이러하다. 전쟁의 파괴에서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세계에 거주하는 이들이 서로 공유할 수 없는 기억에 의해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레네의 몽타주는 이런 파괴된 세계, 뿔뿔이 흩어진 세계, 중심을 잃어버린 세계의 감각을 파편적인 몽타주로 구축한다. 기억과 의식 그 자체가 무질서를 조건으로 하기에 불연속적 쇼트가 구축한 세계 또한 무질서가 허용된다. 시간의 혼동, 공간의 혼동 속에 속박되어 있는 인물들, 그들의 정신적 상태는 사고와 언어의 위기뿐만 아니라 표상의 절대 위기를 반영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뒤라스의 문학에 대해 지적하면서 ‘극악무도하고 고통스런 그런 광경들이 (결국) 해를 입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지각장치와 표상장치다’라고 말했던 것이 이와 같다.
글/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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