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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황폐한 삶 본문

영화일기

황폐한 삶

Hulot 2011. 8. 24. 04:18

토요일 오후, 극장에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황폐한 삶>을 보신 분들이라면 결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순간들을 아마 함께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본 후에 "아! 이건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장면이야."라고 묻게 되는 영화들이 가끔 있는데, <황폐한 삶>이 그런 영화입니다. 믿기지 않는 장면들로 보는 내내 숨이 막힐것 같은, 마치 기적의 순간을 함께 체험하는 흥분을 느끼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이런 영화는 예술도, 기술도 아닌 미스터리(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나 나무 그늘아래 있던 꼬마아이가 종종 걸음으로 뛰어가 나무 담장위로 올라가 수풀 사이로 사라진 말을 호기심에 쳐다보던 그 침묵의 순간이나 영화 후반부에서 그늘을 찾아 조용히 눈을 감는 강아지의 모습은 잊기 힘듭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작렬하는 태양 아래 부부와 두 어린아이가 화면의 앞으로 걸어오는 긴 롱테이크는 마지막 장면과 울림을 만들어내면서 또한 출구가 없어 보이는 지옥의 풍경을 그려냅니다. 아이는 연신 '지옥이 뭐야'라고 부모에게 묻습니다. 

 

아마도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영화 속의 강아지 발레이아의 연기(!)를 잊지 못하실 텐데, <황폐한 삶>에 관한 <강아지 발레이아>라는 짧은 다큐(픽션) 필름을 보시면 이 강아지를 둘러싼 몇 가지 재밌는 일화를 알 수 있습니다.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는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을 강아지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소개해 드리자면, 이 단편은 마치 파솔리니의 <매와 참새>처럼 유머러스한 구석이 있는데, 영화가 시작되면 방문을 열고 들어온 한 남자에게 새장의 앵무새가 느닷없이 자신이 유명한 '영화 배우'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1962년 브라질에서 자신이 영화에 출연했노라며(물론 사람들에게 이내 잡아먹히지만), <황폐한 삶>을 촬영하면서 생긴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줍니다. <황폐한 삶>의 강아지의 실제 이름은 피아바로,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 감독은 브라질의 북동부의 알라고아스주의  팔메이라 도스 인디오스라는 곳에서 촬영을 하면서 마을에서 우연히 이 강아지를 보고 즉석 캐스팅(!)을 했다고 합니다. 늘 그늘을 찾아 다니던 이 강아지를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황폐한 삶>의 그레이스 켈리'라고 불렀다고 하더군요. 감독은 파블로프의 메소드를 활용해 강아지의 놀라운 연기를 이끌어냈습니다. 

 

영화가 칸 영화제에 출품되면서 강아지는 유명세를 치르게 됩니다. 당시 칸 영화제에서 <황폐한 삶>은 호평을 얻았지만 동물을 학대하고 심지어 죽였다는 이유로 일부 언론은 혹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동물애호가들이 동물보호협회에 영화를 고소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강아지를 살해한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를 입증하기 위해 칸 영화제로 강아지를 데려와야만 했습니다. 에어 프랑스가 감독도 타지 못했던 일등석으로 강아지를 모셨고, 일부 사람들은 만약 동물에게도 연기상을 주었다면 당연히 이 강아지가 대상을 수상했을 거라며 떠들었고, 소피아 로렌과 제인 폰다와 함께 찍은 사진이 신문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이 엉뚱한 에피소드는 뭔가 생각하게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굶주림의 가장 고결한 문화적 표현은 폭력이다"라는 글라우버 로샤의 말을 더 곱씹게 되더군요. 준비했던 기간에 비하면 아주 짧게 영화제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브라질 영화제'가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고뇌하는 땅>은 다소 혼란스런 영화이지만 당시 지식인들의 '곤혹'이 무엇이었는가를 느낄 수 있는 영화로, 영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정말 소름이 돋을 만큼 식겁합니다. <산타 바바라의 맹세>는 편하게 말하자면 '놓치면 정말 후회할 영화'입니다. (김성욱)

2007/11/26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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