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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영화의 책] 프랑수아 트뤼포의 사심 가득한 인터뷰 -<히치콕과의 대화> 본문

상상의 영화관

[영화의 책] 프랑수아 트뤼포의 사심 가득한 인터뷰 -<히치콕과의 대화>

Hulot 2014. 4. 2. 03:16

영화에서 감독이란 불가시의 존재이다. 나로서는 그런 보이지 않는 감독의 존재를 인지하게 해준 고마운 책 중의 하나가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이다. 이 책은 또한 좌절과 불평등의 인식을 안겨준 책이기도 했다. 비디오가 없던 시절에 순전히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고 감독과 인터뷰를 했던 트뤼포의 놀라운 기억력과 보는 능력에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트뤼포가 거의 외우다시피 보았던 영화들에서 사소한 질문을 할 경우에(가령 <숙녀 사라지다>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경우)는 가끔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은 한 명의 영화광이 자신이 숭배하는 작가를 만나 영화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비평가의 초기시절이 아니라 1966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물론, 인터뷰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시절부터, 그리고 본격적으로는 1962년부터 시작되었다), 트뤼포가 히치콕을 인터뷰한 본심은 자신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 정작 미국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한 것과 히치콕과의 정밀한 인터뷰가 가능하다면 사람들에게 그가 만든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는 표면적 이유는 거짓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는 감독의 자격으로 히치콕의 작업의 비밀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트뤼포는 영화를 만들면서 연출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마다 히치콕 식으로 생각하며 해결점을 찾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영화작법을 알기 위한 시도로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이 비슷한 일을 동시기에 자크 리베트도 했었다. 자크 리베트는 1966년 5월에서 6월까지 ‘우리 시대의 시네아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장 르누아르를 만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사실 그는 르누아르와 3주의 시간을 보내면서 르누아르의 영화적 비법을 전수받을 사심에 이 작업을 했다. 누벨바그 작가들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운, 도제시스템을 거치지 않았던 영화광들이다. 그들이 영화 연출에서 곤경에 처할 때 존경하는 감독을 인터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 ‘히치북Hitchbook’이라 불린 이 책은 프랑스에서는 ‘히치콕의 영화Le Cinéma selon Hitchcock’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정사각형 모양에 350장의 사진을 포함, 총 260페이지의 화려한 책으로 초판이 발행됐다. 미국판은 다음해인 1967년 11월에 출간되었는데, 정작 프랑스판은 5천부가 팔린 반면 미국판은 하드커버가 15,000부, 페이퍼북이 21,000부 가량 판매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한국 초판본은 1994년에 나왔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트뤼포의 친구이기도 했던 야마다 코이치와 하수미 시게이코의 번역으로 1981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이 책의 출간 기념회가 꽤 멋졌다고 생각한다. 트뤼포는 책 출간을 기념하는 리셉션에 히치콕을 초청하면서 출판사가 점심 파티를 제안한 것을 거절하고 감독에게 경의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히치콕의 영화 발췌본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발췌본에는 <39계단>에서 두 남녀가 서로 수갑을 채워지는 장면, <이창>의 마지막 장면, <나는 비밀을 안다>에서 앨버트 홀 시퀀스, <사이코>에서의 욕실 살해 장면과 안소니 퍼킨스가 물걸레질하는 장면, 그리고 자동차가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장면, <새>에서 멜라니가 학교에 도착하는 장면, <마니>에서 정신분석학적인 회합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혁명적인 인터뷰 책은 영화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나, 종종 영화연출이 절망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바이블이다. 지금 이 책이 한국에서는 절판 중이라고 한다. 책의 재출간과 더불어 히치콕의 대대적인 회고전을 시네마테크에서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김성욱)

 

*'씨네21'에 절판된 영화책에 대한 특별기획에 썼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