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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시네클럽 4화 - 범용한 살인자, 혹은 트램프의 신화 재고 본문

영화일기

시네클럽 4화 - 범용한 살인자, 혹은 트램프의 신화 재고

Hulot 2021. 4. 23. 17:33

 

사회가 독재자를, 혹은 광적인 살인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채플린의 생각은 <독재자>에 이어 <살인광 시대>(1946)에서 보다 극명하게 표현된다. 채플린은 <살인광 시대>를 ‘살인에 대한 희극’으로 평가했다. 이 영화는 거의 웃음이 없는, 차가운 냉소성이 느껴지는 블랙코미디로 매카시즘에 급격히 물들고 있었던 당시 미국의 편협성을 반영한다. 전원생활을 하는 베루도(채플린)는 모범적인 인물이지만 수십 년 일한 은행에서 해고되면서 연쇄살인마로 돌변한다. 그는 살인이 사업의 연장이라 여긴다. 급격한 시대의 변화가 그러한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초라한 서민의 대변자였던 방랑자 찰리가 이제 결연히 무시무시한 현실의 세상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조장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섬뜩한 것은 그것이 당시의 현실 세계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가 말했듯이 이 영화에서 잘 다린 바지, 단정한 넥타이 등으로 성장한 새로운 인물은 이전의 찰리처럼 더 이상 우리의 동정심에 호소할 수 없는 모습이고 예전의 상투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는다. 채플린은 이 영화로 사회의 비판에 대단히 위험스러울 정도로 정면으로 다가서고 있다. 

 

 

<살인광 시대>는 결국 커다란 논란을 불러왔다. 아름다운 보름 달 아래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면서 우아하게 살인이 벌어지고, 이내 채플린이 돈을 세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우아하고 잔혹하고, 섬뜩한 장면이다. 거대한 논란은 영화 마지막에서 사형직전의 베루도의 항변으로 그는 법정에서 ‘전 지식이 있습니다. 세상이 떠밀어 살인자가 됐죠. 세계는 대량 살인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파괴의 무기를 제조하고 있습니다. 살상 무기를 만드는 건 오직 살인을 위한 것이지 않습니까? 죄 없는 여자와 어린 아이를 과학적으로 산산조각내기 위한 건 아닙니까? 대량살인에 비하면 살인광으로서 전 초보일 뿐입니다.’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채플린은 이 영화로 당시 영화계의 공산주의적 경향을 추적하던 반미행위 징계워원회의 조사를 받아야만 했고 얼마 후 그는 미국 거주를 단념하고 미국을 떠나 영국으로 향했다. 1953년 채플린은 미국사회에 대한 환멸을 토로하며 ‘나는 반방동주의자들의 선동과 모략의 희생자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영향력과 고자질을 일삼는 언론의 지지를 기반으로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들이 지탄과 박해를 받는 병적인 사회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내가 영화제작을 계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미국 거주를 단념했다’고 밝혔다. 

 

 

희극에 비극의 깊이를 부여할 줄 알았던 채플린은 20세기의 사회의 빈곤과 허기, 전쟁과 광기를 영화를 통해 표현했다. 그는 점점 사회가 스스로 모든 권력자들을 독재자로 만들고 모든 사업가들을 살인자로 만드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경고했고, 당시의 미국이 전쟁을 부추기는 사회이자 범죄자들의 시대라고 비난했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채플린의 근심어린 경고는 지금의 사회를 보더라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노년기의 걸작인 <라임 라이트>(1952)를 보고 있으면 채플린이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 단지 웃음과 비애뿐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죽음만큼이나 더 괴롭고 힘든 일이라 말한다. 그러나 삶에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와 상상력이다. 

 

시네클럽 Cine Club

범용한 살인자, 혹은 트램프의 신화 재고

4월 27일(화) 오후 7시

<살인광 시대> (Monsieur Verdoux, 1947) 찰리 채플린 Charles Chaplin

진행 |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