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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이 모든 것이 가짜는 아냐 본문

영화일기

이 모든 것이 가짜는 아냐

Hulot 2022. 1. 7. 23:43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1973년에 만든 <페이퍼문>의 제목은 1935년에 유행한 재즈곡 "It's Only a Paper Moon"에서 따온 것이다. 노래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그건 단지 종이로 만든 달일 뿐이라고 말해. 종이로 만든 바다를 항해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거짓은 아냐. 만약 네가 믿는다면.’

노래가 환기하는 상상과 믿음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속 모제(라이언 오닐)와 아디(테이텀 오닐)는 진짜 부녀는 아니지만(그러나 실제로는 부녀지간이다) 그럼에도 우여곡절의 여행을 거치면서 의사擬似 부녀관계를 맺게 된다. 진짜이든 가짜이든 그보다 믿는 것이 소중하다.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짜의 초승달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아디는 미주리로 가는 여정 중에 마을의 놀이 공원에서 하루를 보낸다. 놀이기구가 있고 서커스 천막이 있는 곳이다. 그 놀이공원 사진관에 앉아 하드보드로 만든 가짜 달 앞에서 애디는 사진을 찍는다. 모제를 기다리다 지친 아디의 아쉬움의 감정이 이 사진에  진하게 묻어있다. 이 장면이 꽤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노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피터 보그다노비치라는 감독의 이미지에 대한 특별한 매혹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함께 70년대 초 새롭게 태어난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대표한 감독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처럼 처음에는 비평가로 활동하다 영화를 연출하게 된 영화광 출신의 감독이다. 이런 감독들은 대체로 영화관의 스크린 앞에서 시간을 보냈던 그 순간들의 기억을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기 마련이다. 이는 영화에 대한 단순한 매혹만이 아니라 특정한 이미지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의 경험이다. 우리가 스크린의 이미지로 보았던 이 모든 것이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믿는다면.

RIP Peter Bogdanovich (1939-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