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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배창호 특별전 개막식과 꼬방동네 사람들, 그리고 윤성호, 양해훈의 오마주 본문

영화일기

배창호 특별전 개막식과 꼬방동네 사람들, 그리고 윤성호, 양해훈의 오마주

Hulot 2008. 5. 20.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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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화요일 7시 '배창호 특별전'이 개막합니다.

개막작은 배창호 감독님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입니다. 철없던 고등학생 시절에 몰래 봤던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1983)과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82)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담배 연기 자욱한 동네의 조그만 재개봉관에서 교외지도 단속선생님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마음을 졸이며 이 영화들을 봤습니다. <바보선언>은 당시 텔레비전에서 봤던 안토니오니의 <확대>만큼이나 정말 이해하기 힘든 영화였습니다. 자율학습을 피해 극장으로 숨어든 고등학생 소년이 부랑자 둘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이는 퍼포먼스를 이해할 길이 없었습니다. 보상과 축복은 물론 다른 방식으로 얻게 됐습니다. 이보희란 배우에 반해 한동안 이장호 감독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떠돌아다녔으니까요.

<꼬방동네 사람들>의 충격은 남달랐습니다. 당시 내가 살던 사당동은 점집과 은밀한 윤락가,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판자집들이 즐비한 달동네였는데, 그 때문인지 이 영화에 보이던 동네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보연씨가 리어커에 짐을 싣고 집을 떠나는 장면인데, 그녀는 문득 깨진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다 울컥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가 엄마를 쳐다보다 뒤에서 그녀의 몸을 더듬으며 울음을 멈추게 하려는 듯이 간지럼을 태웁니다. 엄마는 자신을 다독거리는 아이의 행동에 문득 놀란듯이 울음을 멈추고, 이윽고 무거운 리어커를 끌고 정처 없이 마을을 떠납니다. 아이는 연신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라 묻습니다. 마치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의 마지막에서 로마 시내의 거리를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잠시 후 그녀의 전 남편인 안성기씨가 택시를 몰고 그녀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 때 기약 없는 인생에서 운명에 몸을 싣고 덧없이 떠나는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김영동의 ‘조각배’란 유명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장면입니다.

다른 영화들도 그렇긴 하지만, 어린시절에 동네 재개봉관에서 봤던 한국영화를 이렇게 상영하고, 게다가 소개할 기회를 갖게 될때면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땐 정말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내일 개막식에는 배창호 감독님은 물론이고 영화에 출연한 김보연씨, 김희라씨가 함께 합니다. 사정 때문에 안성기씨가 참여하지 못해 아쉽지만 근 25년만에 다시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님과 함께 본다는 것에 마음이 설레고 있습니다.

개막식에는 윤성호, 양해훈 감독이 배창호 감독님에게 경의를 표하며 만든 단편이 특별 상영될 예정입니다(어쩌면 러닝타임 때문에 그중 일부만 내일 상영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영화의 촬영이 있었습니다. 배창호 감독님이 일부 장면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기에 촬영현장에 참여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배창호 감독은 젊은 친구들의 영화작업 현장을 하루 종일 지켜보며, 묵묵히 현장을 바라보다 한 편으로는 웃음을 터뜨리고(특히나 윤성호 감독의 재치있는 즉흥적인 대사에 연신 허허허 웃음을 터뜨리시더군요) 또 한편으로는 '영화에서 감정의 리듬을 연결하는게 중요하다'며 충고를 하고, 또 일부 장면에 대해선 날카로운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촬영이 중단된 틈에 감독님이 '어이 김성욱씨. 우리 바람이나 잠시 쐬러 나갈까'해서 담배연기 자욱한 3층의 카페 촬영장을 나왔는데 때마침 비가 내리는 통에 카페입구에 서서 내리는 비를 묵묵히 쳐다봐야만 했습니다. 잠시의 침묵이 있은 후, 근심섞인 표정으로 감독님이 '참, 요새 은 친구들이 열심히 영화를 찍어요. 김성욱씨, 이런 젊은이들의 작업에 지원이 제대로 있어야 할텐데 말야'라고 나즉히 말씀하시더군요. 한동안 그냥 내리는 비만 쳐다봐야만 했습니다. 

5월 20일의 개막식과 <꼬방동네 사람들>의 상영과 함께 2주간의 '배창호 특별전'이 열립니다. 이 행사는 2주 동안 배창호 감독님과 함께 그가 난 30년 동안 걸어온 영화의 길을 함께 하는 여행이기도 합니다.<길>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배창호 감독은 정말 길을 빨리 걸어가는 분입니다. 언제나 성큼성큼 젊은이들 보다 더 빨리 길을 재촉합니다. 그 흔치 않은 여행길에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합니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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