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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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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웰스니언 질리언 그레이버를 추모하며

Hulot 2008. 4. 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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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난 해 6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오슨 웰스 특별전'에 참여했던 분이라면 오슨 웰스의 영화에 대해 정열적으로 이야기를 하던 한 여인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해 '특별전'에 참석했던 오슨 웰스의 마지막 촬영감독이자 파트너였던 촬영감독 게리 그레이버의 미망인 질리언 그레이버(캐스너)가 지난 해 12월 5일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남편 게리 그레이버가 2006년 11월에 암과의 오랜 싸움 끝에 세상을 떠난 후, 꼭 1년 후의 일입니다. 함께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던 동료 글렌 제이콥슨씨가 보내온 이메일을 통해 그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됐습니다. 지난 해 서울에서 함께 보낸 몇일간의 일들이 갑자기 기억속에 떠올라 잠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질리언은 남편 게리 그레이버와 함께 오슨 웰스의 마지막 15년의 삶을 함께 했던 웰스니언으로, 그들은 웰스가 사망한 후에 그가 직접 기증한 프린트들과 그가 출연한 영화들, 클립들을 보관하는 ‘오슨 웰스 필름 아카이브’를 설립해 지난 20여 년간 국제영화제들과 시네마테크를 돌아다니며 웰스의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벌여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백혈병을 앓고 있던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됐고, 갑작스럽게 사망했다고 합니다.  


지난 해, 2007년 6월 2일, 토요일 오후. 게리 그레이버가 만든 오슨 웰스에 관한 다큐멘터리 <오슨 웰스와 일하며>의 상영 전에 인사동의 아름다운 한국식 찻집에서 웰스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얼마 전 출간된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이자 오슨 웰스의 전문가인 조나단 로젠봄의 ‘오슨 웰스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보여주었고, 질리언은 그 책의 서문에 실린 ‘많은 웰즈니언들에게, 그리고 특히 게리 그레이버와의 애정어린 기억에 이 책을 바친다. 그는 모든 웰스의 촉진자들 중에 가장 헌신적이었고 가장 관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웰스의 마지막 1/3의 작품을 가능케 했고,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사망했다’라는 글귀를 보며 ‘사랑스럽고 고마운 로젠봄’이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그래도 자신의 남편을 기억해준 로젠봄을 그녀는 무척이나 고맙게 여겼습니다.  


2006년에 출간된 조셉 맥브라이드의 ‘오슨 웰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라는 책과 더불어 로젠봄의 책은 그동안 간과된 웰스의 후기 작품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입니다. 조셉 맥브라이드는 그의 책에서 2006년 사망한 게리 그레이버를 추모하며 “게리 그레이버는 그의 삶 모두를 오슨 웰스에게 바쳤다. 게리가 없었다면 웰스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15년을 감독으로서 작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리는 또한 자신의 삶을 마지막까지 웰스를 위해 일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질리언은 이들 비평가들의 책에 큰 위안을 받았다며, 남편이 죽기 직전까지 평생을 바친 그들의 프로젝트에 관해 말을 꺼내며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의 꿈은 웰스의 마지막 영화 <바람 저편에>를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리언은 <바람 저편에>가 완성되어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언젠가 선보일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바람 저편에>의 후반작업을 끝낼 수 있는 예산을 마련하려고 한다. 가끔씩 좋은 소식을 듣기도 한다. 이제는 게리를 비롯해 <바람 저편에>에서 일했던 스태프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다. <바람 저편에>를 끝내는 것이 게리와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이제 너무 늦어버린 꿈이 돼버렸다”. 질리언은 할리우드가 여전히 웰스의 영화에 대해 무관심하다며 “스필버그는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라는 이름이 적힌 썰매를 고가로 구매했지만 정작 웰스의 마지막 작품을 위해 돈을 내지는 않았다. 70년대의 많은 할리우드 감독들이 웰스의 영향을 받았고 그의 영화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그의 영화를 완성하는데 아무도 투자를 할 생각이 없었다”라고 힐난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질리언과 서울아트시네마의 식구들이 함께 술자리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질리언은 또 다른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락해 <바람 저편에>를 보고 싶다고 해서 그의 제작사인 말파소를 찾아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사실 이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당시 그는 <추악한 사냥꾼>(90)을 만들 계획이었고, 존 휴스턴의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이 영화에서 존 휴스턴의 연기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추악한 사냥꾼>에서 이 영화의 몇 대사를 빌어갔다. 하지만 그 또한 <바람 저편에>의 개봉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떠나는 날, 잠시 짬을 내어 인사동의 민가다헌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스타벅스를 정말 싫어한다며 왜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차를 두고 미국식 커피점에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얼마 후 우연히 KBS의 문화프로그램의 촬영팀이 이 곳을 방문해, 외국인들이 본 한국문화라는 주제로 그녀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녀는 즐거운 표정으로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한국에서 그녀가 느낀 전통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촬영팀의 씩씩해 보이는 젊은 여자가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며 짧은 영어로 '유 아 베리 뷰티플'이라는 말을 했고, 나는 그녀에게 '미국에서 영화에 출연한 배우예요'라고 귀뜸을 했습니다.


질리언은 자신의 남편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미국의 케이블 채널 ‘쇼타임’과 웰스의 <바람 저편에>의 상영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망후에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고 싶어했는데, 하지만 그녀가 떠난 후에 이 프로젝트가 실현됐다는 소식을 나는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질리언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셉 맥브라이드가 쓴 그녀의 추모 기사에 따르면 그녀는 지난해 서울을 방문했던 기억을 무척이나 놀라운 경험으로 기억했다고 합니다. 맥브라이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녀는 서울 방문이 그녀의 동반자였던 게리 그레이버 없이 했던 최초의 여정이었고, 혼자 처음으로 200여명의 열광적인 영화광들과 그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 대단한 영광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웰스를 향한 그녀의 마지막 여행을 함께 했던 것입니다. (김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