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CINEMATHEQUE DE M. HULOT

2023 시네바캉스 서울 - 와이드스크린 본문

영화일기

2023 시네바캉스 서울 - 와이드스크린

Hulot 2023. 7. 22. 01:32

2023년은 와이드스크린 프로세스인 시네마스코프(Cinema Scope)가 도입된지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영화는 탄생 이래로 끊임없이 삶보다 더 큰 스크린을 확장하려 했고, 이 넓고 확장된 와이드스크린의 대중화는 1953년부터 시작되었다. 영화인들은 이 프로세스를 1950~60년대 뮤지컬부터 서부극, SF, 애니메이션, 멜로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에 사용했고, 오토 프레밍거, 니콜라스 레이, 더글라스 서크 등 다양한 작가들이 와이드 스크린으로 실험을 시도했다. 회화의 전통과 닮았고, 자연을 그대로 표현하고, 현실감을 강화하는 효과를 지닌 와이드 스크린은 실물보다 더 큰 화면을 통해 우리 삶을 보다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 환경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7월 21일(금)부터 8월 27일(일)까지 진행하는 “2023 시네바캉스 서울”은 이 확장된 스크린의 미덕을 극장에서 제대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작품들을 마련했다. 와이드스크린이 이제 텔레비전과 모니터 화면, 심지어 휴대폰 액정 화면에도 보편화되어 더 이상 창조적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혹은 시네마스코프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에릭 로메르가 나중에는 화면에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고, 머리 위와 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4:3 혹은 1.33:1 화면을 와이드스크린보다 선호한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50년대에 시작해 가장 대표적인 와이드스크린 포맷인 시네마스코프가 영화에 미친 영향과 그것이 열어준 길을 되돌아보는 것은 기술적 변화, 미학적 실천과 더불어 관객과 이미지의 관계에 관한 영화 전반에서 제기되는 근본적인 질문을 조명할 기회가 될 것이다. 

 

7월 21일, 첫 날의 개막작은 사무엘 풀러의 시네마스코프 걸작 <40정의 총 Forty Guns>(1957)이다. 풀러의 영화에서 액션이란 삶의 과정을 물리적 에너지로 표출하는 것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이 영화의 초반부 대결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욕망, 공포, 감각을 동반한다. 삶이란 총을 버린 이들에게도 폭력과 전쟁을 동반하는 불가피한 움직임으로, 이는 그가 폴크노 수용소에서 발견한, 죽음으로 향하는 폭력의 경험에서 나왔다(덜 알려져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풀러가 전쟁, 수용소의 증인이 감독이 된 특별한 경우라는 점이다. 그는 수용소의 시체를 보았다는 폭력적 경험을 "늘 나와 함께 있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악몽"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에게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은 공포이지만, 수용소는 공포를 넘어선 불가능성이었다). 이 독특한 서부극은 죽음의 행렬의 샘 페킨파, 대결의 극단적 클로즈업의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 그리고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POV 숏의 인용까지, 이후 영화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채찍을 든 여인(원제목이 그러했다) 바바라 스탠윅 주연, 토네이도를 동반하는 안티-웨스턴의 탁월한 아이디어와 어떤 의미로든 예기치 않은 전개로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2023 시네바캉스 서울 07.21.-08.27.

◆섹션1 시네필의 바캉스 | 와이드 스크린

 


돌아오지 않는 강 River of No Return (1954) 오토 프레밍거
마음의 등불 Magnificent Obsession (1954) 더글라스 서크 
난폭한 토요일 Violent Saturday (1955) 리차드 플레이셔
이유 없는 반항 Rebel without a Cause (1955) 니콜라스 레이 
파라오 Land of Pharaohs (1955) 하워드 혹스
40정의 총 Forty Guns (1957) 사무엘 풀러
외로이 달리다 Ride Lonesome (1959) 버드 보티커
공포의 대저택 The Innocents (1961) 잭 클레이튼
대탈주 The Great Escape (1963) 존 스터지스
검거 Szegénylegények / The Round-Up (1966) 미클로스 얀초
7월의 비 Iyulskiy dozhd / July Rain (1966) 마를렌 후치예프
문신 刺青 / Spider Tatoo (1966) 마스무라 야스조 
포인트 블랭크 Point Blank (1967) 존 부어맨
관계의 종말 Pat Garrett & Billy the Kid (1973) 샘 페킨파
그들만의 리그 A League of Their Own (1992) 페니 마샬

◆섹션 2. 공포 특급


블랙 사바스 I tre volti della paura / Black Sabbath (1963) 마리오 바바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 La ragazza che sapeva troppo / The Evil Eye (1963) 마리오 바바
8월의 달을 위한 다섯 인형들 5 bambole per la luna d'agosto / Five Dolls for an August Moon (1979) 마리오 바바
황혼에서 새벽까지 From Dusk till Dawn (1996) 로버트 로드리게즈
이치 더 킬러 殺し屋 1 / Ichi the Killer (2001) 미이케 다카시
로우 Grave / Raw (2016) 줄리아 뒤쿠르노

◆ 섹션3. 루이 말과 재즈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Ascenseur pour l'échafaud / Elevator to the Gallows (1958) 루이 말
마음의 속삭임 Le Souffle Au Coeur / Murmur of the Heart (1971) 루이 말

◆특별 섹션 - 자크 로지에 단편선


신학기 Rentrée des classes / Back to School (1955) 
청바지 Blue Jeans (1957) 
파파라치 Paparazzi (1963) 
바르도와 고다르 Le Parti des choses: BARDOT ET GODARD / Bardot and Godard (1963) 

◆ 작가를 만나다
펄프 픽션 Pulp Fiction (2023) 김응수 
개봉 20주년 | 장화, 홍련 A Tale of Two Sisters(2003) 김지운

 

 

◆ 심야 상영 - 호러특급
일시│8월 11일(금) 밤 11시 00분 ~ 다음 날 새벽 5시 30분
상영작│<이치 더 킬러>(129min) / <로우>(99min) / <황혼에서 새벽까지>(108min)


◆시네토크 
1. 완전 영화의 테크놀로지: 시네마스코프와 공간적 리얼리즘
일시│7월 29일(토) 오후 3시 30분 <이유 없는 반항> 상영 후
진행│정찬철(부경대 교수, 영화 및 미디어연구자)

2. 시간의 공기, 기후의 감각 - 마를렌 후치예프의 되찾은 일상
일시│8월 5일(토) 오후 3시 30분 <7월의 비> 상영 후 
진행│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 

3. 마리오 바바, 현대 공포영화의 창시자
일시│8월 12일(토) 오후 3시 30분 <블랙 사바스> 상영 후 
진행│허남웅 영화평론가 

4. 정념과 파국의 히로인, 와카오 아야코 
일시│8월 13일(일) 오후 3시 <문신> 상영 후
진행│황균민 영상예술학자 (『여배우 와카오 아야코』 번역)

5. 루이 말과 재즈 : 시드니 베셋 & 찰리 파커 
일시│8월 25일(금) 오후 7시  <마음의 속삭임> 상영 후 
진행│황덕호 재즈평론가

 

시네마스코프, 혹은 와이드스크린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2009년,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와이드 스크린 회고전'을 개최했을 때, 와이드스크린의 역사에 대해 썼던 짧은 글을 다시 소개한다. 

와이드스크린 영화의 미학


"와이드스크린의 등장은 영화의 역사에서 미장센에 있어서 최고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다" -- 자크 리베트

대형화면의 등장

"스크린이 너무 커서 관객은 머리를 들어오리고 끝에서 끝을 쳐다 봐야만한다. 이 새로운 스크린은 영화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이것은 관객에게 삶 그 자체보다 파노라마를 제공한다. 넓고 구부러진 화면을 쳐다볼 때, 관객은 자신이 마치 영화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예수를 처형한 로마인이 예수가 입었던 '성의'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그린 헨리 코스터의 역사극 <성의>(1953)를 알리는 위 광고는 영화 역사에서 사운드의 도래, 또는 컬러화면의 등장만큼이나 영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가 어떤 새로운 경험을 관객에서 제공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당시 미국에서 이러한 시네마스코프 영화가 나오게 된 것은 영화 역사에서의 모든 기술적 발명이 그러하듯 일차적으로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할리우드는 텔레비전의 등장과 더불어 관객의 수적 감소를 타개할 개성책을 고민했는데, 이는 입체영화와 화면의 대형화로 이어졌다. 넓은  화면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거대한 이미지는 1953년 시네마스포크가 등장하기 한 해 전에 이미 '시네라마'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바 있었다. 시네라마는 파라마운트사의 엔지니어인 프레드 윌러가 기존의 영화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현실감을 구현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세 대의 카메라로 인간 눈의 시각장과 근사한 화면을 만들어냈다. 시네라마는 35mm필름을 사용했지만 세대의 카메라로 촬영환 이미지를 거의 반원에 가까운 구부러진 스크린 위에 투사함으로써 깊이감을 창조할 수 있었다. 넓은 스크린을 쳐다보는 관객들은 자신이 마치 화면 안에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미 <삼손과 데릴라>(1949), <다윗과 밧세바>(1951), <쿠오바디스>와 같은 호화 성경 스펙터클 영화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50년대 초, 뉴욕의 브로드웨이 극장에서는 1952년 9월 <이것이 시네라마다>라는 영화가 개봉해 영화가 탄생한지 대락 60여년 동안 고집스럽게 지속되었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비와 완전히 다른 와이드스크린 화면의 혁명의 전야를 만들어냈었다.1952년 시네라마가 처음 선을 보인 후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앞 다퉈 시네라마와 유사한 와이드스크린을 만들어내려 했고, 이중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곳은 20세기 폭스사였다. 
폭스는 프랑스의 발명가인 앙리 크레티앙이 1920년대에 발명한 애너모포스코프의 세계 특허권을 사들였고, 이것을 시네마스코프라고 불렀다. 앙이 크레티앙이 고안한 애너모픽 렌즈는 표준 렌즈 앞에 부착되어 표준 렌즈가 수용할 수 있는 영상의 2배 정도의 크기를 좌우 방향으로 압축해 35mm 필름에 담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촬영한 필름을 거대한 와이드 스크린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극장에 펼쳐보이는 공정을 통해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만들어진다. 기존의 화면보다 2배 넓게 보이는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만들어진다. 기존의 화면보다 2배 넓게 보이는 시네마스코프의 화면비는 2.35 : 1 이었다. 효과는 유사하지만 시네마스코프는 시네라마와 다소 차이가 있다. 시네마스코프는 추가적인 장비, 이를테면 세대의 분리된 카메라나 영사기가 필요치 않았다. 그럼에도 효과는 시네라마나 당시의 3D와 유사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와이드스크린의 미덕 

 


와이드스크린 영화의 전성기는 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중반까지, 대략 10여 년간으로 알려져있다. 이 시기 할리우드의 영화제작들은 거대한면이 제공할 수 있는 스펙터클한 영화들을 주로 만들었는데 가령, 이시기 대표적인 작품들은 <전쟁과 평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80일간 세계일주>, <십계>,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등 이었다. 이들 영화는 관객들에게 텔레비전의 작은 화면이 제공할 수 없는 거대한 광경을 선사했다. 하지만 와이드스크린과 관련해 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할 것은 기술의 변화가 또한 영화 미학적 변화를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가령 시네마스코프는 고대 그리스 연극의 타원형 무대와 같은 사실적 효과, 즉 마치 관객이 영화의 장면 한 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은 현장감을 만들어냈다.
넓은 화면비율과 스크린의 굴곡 때문에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비판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3D와 같은 착각보다는 현실감을 더 중대시키는 효과가 있었다.와이드스크린 포맷은 사실 당시에 많은 감독들에게 어려운 과제를 던져 주었었다. 초기에 시네마스코프 영화는 한 사람이 방을 가로질러 다른 이에게 말할 때, 또는 그 둘이 한 쇼트 안에서 클로즈 업 없이도 충분히 크고 가깝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감독들은 '빨래줄에 널린 듯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을 연출할 방법이 없다'라며 와이드스크린의 미학에 대해 의문스러워하기 했다.
사운드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와이드스크린의 도래는 감독에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냈다. 가령 와이드스크린에서 클로즈업은 화면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었으며, 빠른 화면전환과 같은 편집이 의문시되었으며, 구도와 조명 또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절 니콜라스 레이, 오토 프레밍거, 엘리아 카잔 등의 혁실적인 영호감독들은 와이드스크린을 활용해 타이트한 클로즈업을 사용하면서도 배경을 살릴 수 있게끔 했고, 셈 페킨파는 <와이드 번치>등과 같은 작품에서 클로즈업으로 포착된 여러 사람을 한 화면 안에 등장시킬 수 있었다. 넓은 화면비율과 스크린의 굴곡 때문에 와이드스크린을 비판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와이드스크린은 3D와 같은 착각보다 현실감을 더 증대시키는 효과 또한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와이드스크린 영화는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을 촬영한 그래그 톨랜드가 고안했던 딥포커스와 유사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화면이 넓어지고 심도가 깊어질수록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 그만큼 화면의 민주화가 생긴다는 것이다.와이드스크린이 도래했을 때, 당시 프랑스의 비평가였던 자크 리베트는 와이드스크린의 등장을 영화의 역사에서 미장센의 최고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라 평한 바 있다. 그는 와이드스크린이 편집을 최소화하게끔 하면서 영화를 미장센의 예술로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 가령, 리베트는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과 같은 작품의 한 장면을 예로 들고 있다: 병원을 떠날 즈음 남자는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분홍색 알약 병이 침대 발치 오른쪽에 있는 테이블 위에서 조용히 빛을 내고 있고, 남자가 막 떠나려 할 때 그때서야 의사가 손을 뻗쳐 그것을 집는다.
이 장면에서 니콜라스 레이는 알약병을 이 쇼트의 마침표로 첨가하면서 이 장면과 연관된 다른 요소들을 수평으로 나란히 배열한다. 리베트는 이것이야말로 미장센의 새로운 시대를 예증하는 것이라 말했다. 와이드스크린은 관객의 주의를 수평의 확장영역으로 이끄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에릭 로메르는 '시네마스코프의 중요한 미덕'이란 글에서 와이드스크린을 웅호하면서 이 화면이 회화의 전통과 닮아 있으며 자연을 그대로 표현하고, 현실감을 강화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스펙터클 영화인 <성의>보다 거대한 자연의 풍경을 묘사한 헨리 헤더웨이의 <나이아가라>를 웅호했었다.
와이드스크린은 롱테이크와 미장센의 미학을 만들어냈고, 영화에서보다 중요한것이 편집이 아니라 촬영임을 일깨웠다. 와이드스크린은 또한 실물보다 더 큰 화면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 삶을 보다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끔 했다. 60년대 후반, 와이드스크린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것의 미학은 대형극장의 아련한 추억만큼이나 아지 끝나지 않는 꿈으로 남아있다.

| 김성욱 영화평론가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