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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DE M. HULOT

필름2.0- 2007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대담 본문

시네마테크 이야기

필름2.0- 2007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대담

Hulot 2008. 1. 5. 02:22
봐야 할 영화 놓치지 않을, 전용관이 필요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담
2007.01.17 / 장병원 기자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행사가 2회를 맞았다. 지난해에 이어 홍상수, 구로사와 기요시, 유지태, 엄지원 등 새로운 얼굴들이 시네마테크의 지지자로 나섰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감독 등 시네필의 최후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나선 친구들의 지지 메시지를 대담을 통해 전한다. 대담에는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패널로 참여했다.

FILM2.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행사가 2회째를 맞았다. 봉준호 감독은 올해 신입 멤버시다.
봉준호 감독 작년에는 <괴물> 때문에 바빠서 참여를 못 했다. '친구들' 행사할 때 촬영 끝나고 편집하고 있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봉 감독께도 연락 드렸는데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

FILM2.0 다들 바쁘실 텐데, 요즘에도 시네마테크에 자주 가나?
박찬욱 감독 얼마 전 ‘알랭 들롱 회고전’ 때 갔었다. 그때 가슴 아픈 일이 있었어. 영화 시작 전에 추첨을 해서 상품을 준다는 거야. 상품이 프랑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했던 알랭 들롱 회고전 포스터하고 브로마이드. 세 명을 뽑아서 상품을 주는데, 마침 첫 회여서 나를 포함 총 관객이 일곱 명이었다. 일곱 중에 셋이면 자동으로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못 받았네. 진짜 받고 싶었는데.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전날 그 상품을 보여주기에 자꾸 만져보면서 "좋다. 이거 돈 주고도 못 사겠네", 그랬는데 꿈쩍도 안 해.
김성욱 프로그래머 오승욱 감독은 당첨돼서 받아가셨다.
박찬욱 감독 거기서 왜 못 뽑히나? 상품 탄 사람 중 한 아저씨는 원투쓰리 카바레 문 열기 전에 온 아저씨 갔던데.
봉준호 감독 나도 알랭 들롱 회고전이 마지막이다. 알랭 들롱도 들롱이지만, 장 피에르 멜빌을 필름으로 볼 심사로 갔다. 이상한 게 알랭 들롱은 나오는데 장 피에르 멜빌 이름은 안 나오는 거야. <암흑가의 세 사람>과 <암흑가의 두 사람>을 혼동해서 <세 사람>이 멜빌 영환데, <두 사람>을 본 거지.
류승완 감독 <두 사람> 때문에 프랑스에서 단두대가 없어진 거라는 말이 있지 않았나?
봉준호 감독 나도 그 얘길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랭 들롱이 단두대에 서는데 그 눈빛이 너무 호소력 있어서 단두대가 없어졌다는. 마지막 장면에서 들롱이 입은 와이셔츠를 싹싹싹 자르고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기가 막히다. 근데 그 장면 빼곤 다 후지더라.(웃음)
박찬욱 감독 나는 <세 사람>을 배우 임수정과 봤는데 좋아하더라. “옛날 아저씨들 멋지네요”, 그러면서.
류승완 감독 난 알랭 들롱 회고전은 못 봤고 지난여름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2006년에는 마틴 스콜세지 <성난 황소>, 샘 페킨파 <와일드 번치>를 프린트로 본 게 제일 큰 수확이다. 보는데 정말 눈물 났다.

시네마테크의 보루, 전용관

FILM2.0 올해는 행사제목이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다. 전용관 문제를 이슈로 삼았다.
류승완 감독 최근 리모델링한 프랑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이하 ‘프랑세즈’)를 보면 전용관의 위력이 실감된다. 프랑세즈는 건물이 여러 개인데 그중 어디에는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옷도 전시돼 있었다. 거긴 영화도 스크린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본다. 브라운관, 모니터로 보고 소리는 전화기로 듣는다. 그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더라. 영화 안 보는 관광객들도 구경 온다.
봉준호 감독 얼마 전 김기영 감독 회고전을 프랑세즈에서 개최해 갔었다. 거긴 스크린이 서너 개 된다. 앙리 앙글루아관, 장 비고관,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어 있다. 스크린이 여러 개라 복수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좌석이 미어터진다. 김기영 감독 회고전, 독일 표현주의전, 프레드릭 와이즈만 다큐멘터리가 한꺼번에 돌아간다. 그러면서 독일 표현주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도 같이 하는데,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팀 버튼의 <배트맨>이 줄줄줄 나온다. 짧게 한 편씩 하고 퇴장하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반복 상영하는 방식이다.
류승완 감독 내가 갔을 때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제를 했는데 알모도바르가 직접 한 디자인, 영감을 받은 그림들, 셀프카메라 등등 영화 외에도 다양한 자료들을 함께 볼 수 있다. 그걸 따라가면 이 감독이 어떻게 영화를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알모도바르 영화 보면 부감으로 도시 풍경 잡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그런 이미지는 친구 미술가의 그림과 거의 똑같이 진행된다는 걸 전시회 보고 알았다. 그런 거 보면서 여기에 내 흔적을 남기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찬욱 감독 꿈도 커.(웃음)
봉준호 감독 프랑세즈에서 무르나우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를 봤는데 특이한 체험이었다. 음악도 없었기 때문에 90분 동안 관객들이 숨소리 한 번 못 내고 두 손 모으고 봤다. 그때 중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한국에서도 피카소 전시회 하면 학생 무료공연도 있고 선생님이 숙제도 내주지 않나. 그런 식으로 온 애들이다. 걔들이 아무리 프랑스 애들이지만 그걸 보고 싶겠어? 비비 꼬고 떠들고 그러지.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독일 표현주의에 관한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걸로 봐서 영화학자가 분명한데, 이 아저씨가 앞에 있는 애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조용히 해!" 호통을 치더라. <에일리언> 1편 디렉터스컷을 잡티 하나 없는 프린트, 초대형 화면으로 봤는데 죽인다. 몰랐던 장면도 많이 있다. 그러니까 원조다. 이동갈비나 함흥냉면 같은 원조.
박찬욱 감독 스위스에도 유명한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하던데?
김성욱 프로그래머 벨기에다. ‘시네마테크 벨지움’. 거기엔 자크 루도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크 루도가 컬렉션을 해 만들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같은 감독은 ‘벨기에 시네마테크를 구하자’라는 주장도 했었다. 아주 작은 공간인데 들어가 보면 지하에 무성영화 시절의 영화들과 기계들이 전시돼 있다. 규모는 작지만 프로그램은 굉장히 알차다.

FILM2.0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가 영화만 상영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네필들의 ‘집’으로 개념이 전환되기를 바란다. 영화의 역사를 보존하고 시네필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살롱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봉준호 감독 그런 점에서는 이전에 있었던 아트선재센터가 좋았던 것 같다. 공간의 독립성이나 주변환경, 시설 등의 측면에서.
박 솔직히 난 여기도 괜찮은 거 같다. 오승욱 감독도 좋아하잖아. 젊은이들이 잘 안 오려고 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우선, 계약이 끝나면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지금 공간은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도 마땅치 않다.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전시 같은 기획을 해볼 수도 있는데 장소 문제가 제일 걸린다. 우리는 공간의 성격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 시네마테크라면 필름 아카이브도 있어야 한다. 스크린 수도 여러 개면 좋겠다. 영화제 기간이 짧고 상영 횟수도 몇 번 안 되기 때문에 잠깐 바쁜 일이 있으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런데, 영화학과 학생들이 시네마테크에 오지 않는 건 정말 이상하다.
류승완 감독 얼마 전에 모 대학에 갔는데, 그들은 자기 학교에도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주장한다. DVD나 디빅스로 다 본다는 거지. 공간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젊은이들은 PC, DVD, 필름을 다 같은 걸로 생각한다. 시네마테크가 뭔가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안 돼 있다.
봉준호 감독 영화학과 교수들도 개탄한다. 요즘 애들은 고전을 잘 안 본다고. <디파티드>를 보면 마틴 스콜세지의 초기영화를 보고 싶지 않을까? 나는 그랬는데 요즘 친구들은 안 그런 것 같다. 현재 영화와 과거 영화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생각이 갈려 있다. 고전영화도 당시에는 흥행작들이었는데, 현재 시점에서 고전이라고만 생각한다. 영화사 책에 나오는 영화와 <반지의 제왕>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박찬욱 감독 음대생들은 지금도 모차르트를 듣고 문학 전공하는 학생은 톨스토이를 읽는데 영화만 유독 고전을 도외시한다. 옛날 건 딴 세상 이야기 취급하고 요즘 것만 찾는다. 영화잡지도 아니고 왜 자꾸 새로운 것만 봐야 되는 거야?
류승완 감독 시네마테크 문화는 지금 아니면 정착시키기 힘들다. 지금이 좋은 기회다. 한국영화가 지금처럼 잘 나가고 존중받을 때, 영화에 대한 충심들이 솟아날 때 그런 문화를 만들어놔야 한다. 적어도 영화 하는 게 ‘딴따라’ 소리 안 듣는 시절에 뭘 해도 해야 한다.
박찬욱 감독 옛날에 조영욱(<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음악감독)하고 목동에서 비디오 가게를 한 적이 있다. 딱 1년 동안 영화마을. 비디오를 꽂아 놓을 때 좋은 영화를 구색으로 갖춰야 해서 꽂아놨는데 아무리 갖다 놔도 빌려가는 사람이 없다. 영화도 좋고, 기간도 길고, 대여료도 싼데 아무도 안 빌려가.
류승완 감독 난 영화마을에서 일할 때, 좋은 영화는 반짝거리는 비닐케이스로 포장을 바꿔놓았다. 반짝거리는 비닐로 싹 갈아 놓으면 신품인 줄 알고 잘 빌려 간다.(웃음) 테이프 위치도 신품처럼 앞으로 빼 놓는다. 빌려가서 2주씩 안 가져오는 사람들은 신프로 대신 그런 영화 꽂아 놓으면 여지없이 빌려간다. 나중에 와서 막 항의하지. 이런 거 왜 빌려 주느냐고.
봉준호 감독 체험을 하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고전영화인데 너무 재미있고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걸 체험하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시네마테크가 필요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이고.
박찬욱 감독 더글라스 서크 회고전 할 때 우리 아이를 데려와서 영화를 여러 편 봤는데 정말 재미있어 하더라. 보면 그렇게 좋아한다. 서크 영화가 또 멜로드라마니까 웃고 울고 하면서 보기 좋다.

시네필 문화의 달라진 풍경들

FILM2.0 지금 주 관객층들은 과거 시네필 세대와 연배 차이가 많지 않은가?
류승완 감독 난 지금 세대와 거의 차이 안 난다.
봉준호 감독 나도 별로 차이 안 난다. 박찬욱 감독님은 차이가 좀 나지? 우리는 야매 시네마테크 세대다. 불법 카피한 비디오테이프에 길들여진 세대. 화질이 다 뭉개진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를 눈이 벌개져서 본 사람들이다. ‘세계영화사’ 책에 나온 영화들을 전부 한 번 보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다. 우리는 후진 거, 떡 진 거라도 봐야 하는 세대였다. 요즘은 인터넷에 다 있고 DVD 주문하면 다 온다.
박찬욱 감독 80년대 초 서강대 커뮤니케이션센터라는 게 있었다. 거기가 야매 시네마테크였다. 프랑스문화원, 독일문화원이 자막은 없지만 그나마 제대로 영화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봉준호 감독 독일문화원에 빔 벤더스가 왔었잖아.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김홍준 감독이 놀라운 질문들을 퍼부어서 빔 벤더스가 흠칫 놀랬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한국에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던 거지. 그 다음에 문화학교 서울이 나타나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류승완 감독 문화학교 서울은 비디오테이프 겉에 쓴 영화제목을 타이프를 쳐서 붙였다. 나름대로 큰 변화였다. 다른 데는 급하면 매직으로 썼는데 거기는 굉장히 전문적이었다. 영화만 트는 게 아니라 공부도 하고 연구서도 냈다.

FILM2.0 비록 야매 시네마테크 문화지만, 그런 자양분이라도 받지 않았나? 지금의 다운로드 세대들은 영화 보는 방식, 접근 태도 모두 다르다. 당신들은 시네필 세대지만 영화를 만들어서 보여줄 사람들은 지금 세대들이다.
봉준호 감독 야매 말고 언더그라운드라고 하자. 안 그래도 그런 부분이 걱정된다. 시네마테크에서는 일정한 시간에 모여서 누군가 틀어주는 영화를 본다. 이렇게 허우대 멀쩡한 놈도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뭐 저렇게 생긴 애가 영화를 좋아하냐, 라는 공감을 하면서 본다. 컴퓨터에 저장시켜놨다 잠깐 보다가 벨소리 울리면 포즈 누르고 전화 받고 다시 보는 것과 완전히 개념이 다르다. 영화는 점점 휴대전화 동영상처럼 변하고 있지 않나.
류승완 감독 누구나 자기 과거는 좋게 기억한다. 지금 내가 좋아한 걸 놓치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건지, 요즘 세대들도 좋아할 수 있는데 몰라서 즐기지 못하는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요즘 세대들도 아주 싫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에 쇼크 먹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
봉준호 감독 고전이나 희귀영화 마니아들이 볼 만한 영화들은 더 다운받기 편하게 돼 있다. 자막도 기가 막히게 들어가 있다. 시네마테크가 빨리 자리를 잡아서 그 친구들을 자봉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이다.(웃음)
박찬욱 감독 <센소>는 거기에도 없던데. 다운로드에 도가 튼 선수들 시켜서 찾아보게 했는데 그런 영화는 없대. 컴퓨터나 DVD로 보는 것과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음악으로 치면 연주회에서 듣는 음악과 CD로 듣는 음악의 차이와 같다. 다운로드족도 개봉영화는 보러 가잖아.
봉준호 감독 시네마테크에서는 개봉영화를 안 하잖아.
류승완 감독 피카소 그림을 화집에서 봤으면, 그 그림을 ‘안다’고 하지 ‘봤다’고 하지 않는다. 음악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는 다운로드로 봐도 다 봤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 때 모니터 사이즈를 생각하면서 만들진 않잖아.
박찬욱 감독 영화가 쉬워서 그런가봐. 만만해서.
김성욱 프로그래머 영화를 봤다, 영화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화를 어디서 봤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해외 감독들은 비평가들에게 그런 불만을 많이 드러낸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영화가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 영화는 극장을 전제로 해서 만드는데 요즘은 다른 곳에서 본다는 게 큰 갭이다.
박찬욱 감독 요즘에는 사무실에서 봤나, 집에서 봤나가 중요하다.(웃음) 배우인 (이)병헌이도 친구들하고 시네마테크에 같이 오고 싶은데 자기 온다고 소문나면 일본 아줌마들이 표 다 사버려서 안 된대.(웃음) 일본 아줌마들 무서워.
봉준호 감독 알랭 들롱 회고전 때 보니까 시네마테크에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많이 와 있었다. 그분들에게는 알랭 들롱이 브래드 피트였고 디카프리오였다. 그분들 소싯적에 알랭 들롱 얼마나 대단했어. 지금 고전이 과거 흥행영화라는 걸 잊지 말아야 된다니까. 우리도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박찬욱 감독 프랑세즈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사람들 아닌가?
류승완 감독 김기영 감독님 회고전에 이화시 씨가 오는 거, <바람 불어 좋은날> 할 때 안성기 선배님이 오는 거, 이런 게 재미있다. 외국 고전도 있지만 한국영화 고전에도 눈을 돌릴 수 있다. 난 사실 2006년 가장 좋았던 게 이두용 감독님의 <최후의 증인>이었다. 영화 틀고 이두용 감독님 모셔서 얘기 들으면 재미있자나?
박찬욱 감독 영상자료원이 학문적이고 자료보관 측면이 강하다면, 시네마테크는 좀 더 자유롭고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꾸밀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봉준호 감독 김기영 감독님 회고전에는 정일성 촬영감독님 모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들도 듣고. 이화시 여사님은 박정희 정권 때 얼굴이 퇴폐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활동을 못 하신 게 영원히 상처가 되신 것 같았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윤여정 여사처럼 계속 영화하고 싶다고 젊은 감독들이 좀 불러 달라고 하셨다.
류승완 감독 진짜 생존에 계신 선배 감독님들 모셔서 회고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생한 증언들이 모이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두용 감독님 회고전에서 <최후의 증인> 상영하기 전에 앞에 나가서 감독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는데, 손을 부들부들 떠시면서 “이 영화는 인간 회복을 외치는 영화입니다!”라고 외치셨다.
박찬욱 감독 여러 해 전에 이두용 감독님을 만나서 <최후의 증인>이 최고라고 했는데, 그땐 가 더 낫지 뭘, 그러셨는데 자신감을 많이 얻으셨나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 별 이상한 애 다 보겠다는 눈으로 쳐다보셨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제도화된 아카이브와는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여지들이 있다. 서구 시네마테크의 기능 중에도 제대로 된 평가를 못받은 영화를 발굴하거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영화들을 묶어내고 조명하는 기능이 있다.
봉준호 감독 프랑세즈에서도 이상한 거 많이 기획한다. 테렌스 피셔의 공포영화, 이탈리아 에로티시즘 회고전 등 다양하다. 장 프랑수아 로제라는 사람이 있는데 잡스러운 취향이라 B시네마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시네마테크 상영을 통해 그런 영화들에 대한 평가를 달리 내리는 작업이 중요하다. 30석 정도 되는 공간이 허락된다면, 필름과 DVD를 혼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셀렉션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 난 찬성이다. DVD도 레이저로 한글자막을 쏴주면 된다.

우리들의 행복한 영화

FILM2.0 영화제를 위해 각자 영화들을 추천했는데, 실제로 더 보고 싶은 영화들도 있었다고 들었다.
박찬욱 감독 추천한 영화가 복수였다. 원래는 베르톨루치의 <컨포미스트>를 정말 보고 싶었다. 웬만하면 흑백 말고 컬러영화로 하려고 한다. 컬러가 프린트로 보면 감동이 더 크다. <컨포미스트>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촬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고 프로덕션디자인 측면에서 도 그렇다. 근데 그 영화는 이번에 상영이 어렵다고 해서 접었다. 안토니오니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패신저>를 추천했다. 안토니오니하고 같이 일했던 제작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안토니오니가 자기 영화 말할 때는 <여성의 정체>를 꼭 말한다고 그러대.
김성욱 프로그래머 <여성의 정체>는 예전에 한국에서 수입한 프린트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튼 적이 있다. 노출 장면이 많아서 제대로 개봉을 못 했다. 비디오로 출시될 때는 ‘에로티시즘의 거장 안토니오니’라는 말이 박혀서 출시됐다.
박찬욱 감독 난 이탈리아영화가 좋다. 영화제에 가면 경쟁 부문보다 회고전을 주로 보는데 감동적으로 봤던 게 ‘킹즈 오브 이탈리안 B’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래머가 조 단테와 쿠엔틴 타란티노였다. 전부 심야상영인데 다 재밌지는 않았지만 인상적이었다.
봉준호 감독 난 구로자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을 먼저 골랐는데 그 영화는 수입이 돼서 올해 개봉한다고 하더라. 화면 사이즈의 차이를 가장 압도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독이 구로자와라고 생각한다. <란> 같은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는데, 공간을 장악하거나 펼쳐내는 파워가 남다르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이 그 다음이었다. 사실 말은 안 했는데 베르톨루치 <1900년>을 보고 싶었다. 걸작이다 아니다 평하긴 쉽지 않지만 불균질하고 복잡한,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영화인 건 사실이다. 감독에게는 완전히 소진해버리는 시점이 있는 것 같다. 코폴라도 <대부> 1, 2편, <컨버세이션>을 지나 <지옥의 묵시록>에서 완전 연소가 되더니 그 다음부터 비리비리한 영화만 찍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베르톨루치에겐 <1900년>이 그렇게 완전 연소된 영화인 거 같다. 이탈리아영화도 계보를 만들어 상영하면 재미있을 거 같다. 펠리니도 로셀리니의 조감독 아니었나?
박찬욱 감독 비스콘티는 장 르누아르의 조감독이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안토니오니는 마르셀 카르네의 조감독이었고, 베르톨루치는 파졸리니의 첫 영화 <아카토네>에서 조감독을 했었다.
류승완 감독 난 처음에 <최후의 증인>을 꼽았다. 영상자료원에서 그 영화를 볼 때 분위기 정말 장난 아니었다. 저작권문제 때문에 못 틀게 됐지만. 예전부터 박찬욱 감독님이 <최후의 증인>, <최후의 증인>, 하도 그러셔서. 강우석 감독님도 <흑수선> 제작하실 때, <최후의 증인>을 봤기 때문에 <흑수선>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 실체를 보고, ‘내가 정말 존경할 만한 감독님, 자랑스럽게 얘기할 만한 영화가 생겼구나’라고 벅찬 흥분을 느꼈다. 구로사와의 <천국과 지옥>,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라울 월시의 <포효하는 20년대>를 거쳐서 <더러운 얼굴의 천사>가 올라갔다.
박찬욱 감독 그 영화가 제임스 캐그니가 사형당하는 영환가? 예전에 배우 최무룡 씨가 주부상대 아침 프로그램에 나왔다. MC가 “아드님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니까 그때가 <모래시계>하고 있을 때인데, “눈에 힘만 준다고 명연기는 아니죠”, 이러는 거다. 그러면서 “<더러운 얼굴의 천사>라는 영화를 보면 제임스 캐그니가 사형당할 때 보여주는 연기가 진짜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류승완 감독 제임스 캐그니 연기를 배우지망생들이 보면 진짜 좋을 거다. 캐그니는 진짜 갱으로 태어난 사람 같다. 캐그니를 보면 조 페시가 되게 착실해 보인다니까. 제임스 캐그니는 영화마다 설정이 있다. 그 영화에서 어깨를 까딱까딱하면서 말을 하는데, 어우 너무 멋있어서 영화 본 다음 며칠 동안 그거 흉내 내면서 다녔다. 되게 야비하게도 나오고. 그리고 키가 아담해서 좋아.
박찬욱 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위대한 배우 세 사람 중 하나로 꼽았자나.
봉준호 감독 나머지 두 명은 누구지?
박찬욱 감독 잭 니콜슨하고 제임스 스튜어튼가?

FILM2.0 기획자 입장에서 영화제를 준비한다면 어떤 프로그램들을 꾸리고 싶은가?
박찬욱 감독 난 지금 준비 중이다. 언젠가 할 거다. 악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중 걸작을 묶어서 하는 ‘최선의 악인들’이라고. 영국 ‘프리시네마 회고전’도 하고 싶었는데, 그건 2월 달에 한다고 들었다. 프리시네마 감독들은 진정한 연출의 ‘선수들’이다. 한국에서는 필름으로 보인 적이 없고 큰 조명을 받지 못해 지금은 완전히 잊혀졌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프리시네마 회고전 할 때 ‘감독조합 추천영화’를 받고 감독들이 직접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봉준호 감독 감독조합 추천작이라는 도장 찍고 감독조합 정기모임을 시네마테크에서 하는 거지. 떼로 와서 영화 같이 보고 한 명이 나가서 영화소개도 하고. 난 기획하라면 김기영 감독님 전작 회고전을 하고 싶다. 살아계신 한국 감독님들 회고전을 많이 해보고 싶다.
류승완 감독 나는 주목받는 신작들의 계보를 추적하는 영화제를 해보고 싶다. 감독 중심이 아니라 종역이나 단역, 스탭들을 중심으로 계보를 만들어 봐도 재미있을 거 같다. 예전에 한국어로 더빙된 한홍 합작 무술영화들이 있었다. 그게 그렇게 보고 싶다. 왕우가 ‘카사노바 왕’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진짜 싸구려 영화가 있는데 그런 거 보고 싶다. 옛날에 동시상영관에서 봤던 영화들. 그리고 마이클 파웰 영화 필름으로 보고 싶다. 색감이 진짜 죽일 것 같다.

FILM2.0 시네마테크에 바라고 싶은 당부도 있을 듯하다.
봉준호 감독 집중공략하는 타깃을 설정했으면 좋겠다. 대학과 연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화는 관람의 습관이란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계속 볼 수 있다.
류승완 감독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 방식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명분에 사는 일이지만 실리도 중요하다.
박찬욱 감독 난 영화제 기간이 짧다는 게 제일 아쉽다. 상영이 몇 번 안 되기 때문에 놓치는 영화들이 아깝다. 번듯한 전용관이 설치돼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난 이번 대선에서 시네마테크 전용관 확보와 지원을 공약으로 내 건 후보를 무조건 찍을 거다. 영화인들이 밀어주면 대통령이 되지 않나.(웃음)

진행 장병원 기자 | 정리 김교석 기자 | 사진 김수홍